식민지 시대, 일제는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을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목졸라 살해했다. (신돌석 기념관의 전시 사진 재촬영)
경북 영덕의 <신돌석 기념관> 앞에 세워진 장군의 시비. 시비 뒤로 충의사가 보인다.
登樓遊子却行路
可歎檀墟落木橫
男子二七成何事
暫依秋風感慨生
신돌석 의병장이 27세에 쓴 시다.
그가 시를 얼마나 썼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남긴 것으로는 이 시가 유일하다.
27세에 이렇게 비분강개한 시를 썼던 의병장 신돌석은
30세에 죽었다.
그것도 일제가 내건 상금에 눈이 먼
주민에게 암살당하였다.
적은 내부에 있다고 했던가.
<신돌석, 백년만의 귀향>의 저자 김희곤(안동대 교수)은 이 시를
아래와 같이 번역하였다.
누각에 오른 나그네, 문득 길을 잊고서
낙목이 가로누운 단군의 터전을 한탄하노라.
남아 27세에 무슨 일을 성취하랴.
잠시 추풍에 비껴앉아 감회를 느끼네.
시비의 뒷면에는 장군의 한시가 아래와 같이 번역되어 있다.
루에 오른 나그네 갈 길을 잃고
낙목에 가로놓인 단군의 터전을 한탄하노라.
남아 27세에 이룬 일이 무엇인가?
문득 가을바람이 부니 감개만 솟는구나!
이희곤 교수의 번역과 사뭇 다르고, 느낌도 다르다.
어느 번역이 신돌석 장군의 마음을 더 정확하게 읽고 있는지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다만 나는, 아직도 친일파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가 지금
'갈 길을 잃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30세에 처참하게 죽은 신돌석 장군의 영령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기념관의 모습(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산60-5/ 전화 054-730-6397)
기념관 문을 열면 바로 마주치는 장군의 모습
서울 국립묘지의 신돌석 장군 묘소. (영덕 신돌석 기념관 전시 사진 재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