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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불룩한 배를 안고 송도에 있는 산부인과를 가겠단다. 깨끗이 집을 청소하고 신발을 가지런히 놓는다. 환하게 웃고 출근하는 문 앞까지 따라나서며 잘 갔다 오라 인사하는 아내다. 출산 때 어찌 될까 미리 정리해 놓고 인사하는 거란다.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눈망울이 반짝반짝 뽀얀 석주가 태어났다. 팔다릴 막 흔들며 반갑단다. 버둥거리며 잠시 가만있지를 않는 귀여운 아들을 낳았다. 살아서 낳았다며 기뻐한다. 같이 아기 있는 방으로 가 번호를 찾았다. 고만고만한 아기들이 누웠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출석은 중간을 돌았다. 몇 해 졸업이라고 기억한다. 한 반에 60명이 넘어서 몇 번이냐고 물어야 했다. 그때마다 번호를 대줘야 얼른 찾아 동그라미나 체크 표시를 했다. 겨울 난로에 지필 장작을 갖고 오게 하고 쥐꼬리를 끊어가야 했다. 식목일 날은 잘 크는 산의 나무를 쑥 뽑아 달랑달랑 들고 갔다. 쥐잡기가 쉽나 오징어발을 지졌다.
중학교 입학 때 수험번호를 받아 면접을 봤다. 시골 학교에서 읍내 중학교는 굉장해 보여 주눅이 들었다. 아직 이른 봄이어서 추위에 살살 떨린다. 줄 서서 기다리는 게 불안해서인지도 모른다. 다니던 초등학교는 단층 목조건물이어서 추울 땐 옹기종기 모여 밀고 당기며 영차영차 해야 몸에 열이 나 덜 춥다. 양달 진 곳 벽에 붙어 움직여야 한다. 먹은 게 허해 사시나무 떨 듯했다.
여기 2층 건물 중학교는 웅장하다. 교무실 앞 테라스에 스피커가 커다란 소릴 한다. 수험생은 동편 복도에 번호 순서대로 서서 대기하라는 말이 나온다. 키 큰 말끔한 교복 입은 학생들이 곳곳에서 안내했다. 모두 내 기를 죽인다. 면접 선생님은 두려워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어쩌면 저리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원두막 높이와 단층만 보다가 2층은 놀랍다. 처음 보는 확성기가 운동장 구석구석 들렸다.
교복을 입고 줄서기를 할 땐 번호를 외치며 댔다. 인원이 맞나 확인한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하나, 둘, 셋... 소리쳤다. 군인 같은 행동이다. 벌설 때도 번호를 대고 엎드리거나 손을 위로 번쩍 치켜들었다. 고등학생은 교련 과목을 하면서 군사훈련과 교육을 받는다. 번호 대는 일은 하도 해서 이력이 났다. 번호를 빨리 대야지 늦으면 지적받는다. 나무총을 들고 찔러 총 했다.
첫 수능시험을 봤다. 학력고사였다가 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뀌었다. 늦가을 날 추웠다. 이래저래 떨리는데 시험이라니 어렵다. 서면의 고등학교이다. 전날 찾아가 시험 칠 교실을 살피고 내 자릴 살펴봤다. 입실 문 위의 긴 번호를 꼼꼼히 확인해 뒀다. 다닥다닥 붙은 책걸상을 띄엄띄엄 앞뒤와 좌우를 벌려놨다. 뒤 게시물을 종이로 덮었고 벽면과 앞 흑판 좌우 글자, 위 중앙 태극기도 종이로 덮어 막았다. 시험 칠 때마다 떨린다. 수능이 젤 어려웠다.
한 달 뒤 발표한 합격번호도 3으로 시작했다. 내게 주어진 번호는 왠지 3이 많다. 대학에 수능점수와 함께 입학원서를 내고 수험번호를 받았다. 중·고등학교 수업 중에 중간 기말고사를 치른다. 그때마다 시험지 위에 번호와 성명을 적어넣었다. 초등을 마치고 중고등 대학 갈 때마다 입학시험을 봤다. 수험번호를 가슴에 달고 책상에서 떨며 기다렸다. 수능합격은 기뻤다. 한 명도 합격자를 못 낸 학교도 있다.
대구 성서의 신병 훈련소를 거쳐 전방으로 배치되니 3으로 시작하는 군번이 주어졌다. 3 전후가 따라다닌다. 그땐 그걸 외쳐야 했던가 지금도 잊지 않고 여덟 자릴 달달 읊는다. 거 참 신기하다. 평생 기억할 것 같다. 다른 건 잊히는데 이것만 잘잘 입에서 맴도는 게 이상하다. 지금도 하라면 3104-로 죽죽 외운다. 군청 직원이 우릴 훈련소 마당에 데려놓고선 잘 있으라며 갈 때 서운했다. 밤에 보면 대구 시내의 환한 전깃불이 보인다.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하다. 3천만으로 시작하는 군번을 잘 읊는다. 호롱불 켜던 내 살던 곳과는 달랐다.
도민증이었다가 주민증으로 바뀌었다. 앞 여섯 개와 뒤 일곱 개로 열셋 숫자나 된다. 군번 기억하듯이 이것도 외울 수 있다. 하도 많이 써서이다. 이것이 나를 표시하는 숫자로구나. 어떤 면접에서 주민증 번호를 대라 했다. 갑자기 물으니 우물쭈물하면서 기억이 안 난다. 됐다면서 나가라 하니 난감하다. 외우던 것이 콱 막혔다. 그 뒤 외웠는데 다시 물어보는 데가 없다.
주소지도 몇 번지를 기억해야 하고 도로도 번호가 있다. 버스를 타려면 집으로 가는 노선 번호를 알아야 찾아갈 수 있다. 지하철도 몇 호선인가를 기억해야 한다. 출입구를 잘 살펴야지 잘못하면 다른 곳으로 나간다. 가로와 남쪽은 짝수이고 세로와 북쪽은 홀수인가 했는데 맞는 데도 있지만 가는 게 꾸불꾸불해서인가 그러지 않는 곳이 있다. 곳곳마다 전신에 번호다. 서울엔 출구에 홀수와 짝수가 보인다.
내려 이곳으로 나가면 남포동 바닷가로 가려니 했는데 아니다. 반대쪽으로 나온 것이다. 그럴 때가 가끔 있는데 지하철은 꼭 출구 번호를 알아야 편하다. 다시 들어갔다 나오려면 늦어진다. 온통 가는 곳마다 번호를 익혀야 다닐 수 있다. 아무 때나 지하철이 다니는가 했는데 다 시간이 있다. 벽에 빼곡히 적혔다. 시간과 번호를 살펴본다. 이리 나가면 맞는가 했는데 아니다. 정말 전철은 받친 것처럼 방향을 알 수 없다.
차를 사 번호판을 붙이니 근사하다. 내 차가 됐다. 그 번호를 쓰다듬으며 외웠다. 네 자리에다 앞에 두 자리와 한글 하나를 넣었다. 이것도 쉽지 않다. 누가 물으면 퍼뜩 대답이 안 나온다. 보수동 교회에서 학교로 올라가며 꼼지락거리는 앞차를 따라갔다. 좁은 골목이고 오는 차를 피하고 아이들을 살피며 가야 한다. 좁은 산복도론 아이들이 튀어나와 설설 기어간다.
앞차를 뒤따르며 무심히 꽁무니 네 자리 번호를 본다. 어디서 많이 보던 숫자이다. 내차 번호이다. 깜짝 놀란다. 뭘 잘못 봤나. 고물고물 천천히 가는 차를 보면서 계속 오르막을 간다. 어찌 똑같은 번호가 버젓이 나와 거리를 누비며 다니는가. 그래도 되는가. 굽어지는 곳을 빠져 산복도로에서 갈라졌다. 잘 가 했지만 내내 찜찜하다. 똑같은 번호가 있을 수 있나. 앞번호와 한글이 다르다.
은행에서 돈을 찾으려니 비밀번호가 맞지 않아 거듭 물어본다. 내 생년으로 한 것 같은데 아니란다. 잘못 적어넣었는가 다르다. 이것저것 대다 겨우 맞았다. 내 것도 몰라 헤맸다. 같은 것으로 하면 안 될 것 같아 여기저기 달리했다. 다르게 할 땐 알 수 있으려니 했는데 지나면 그걸 다 기억하나 그만 감감해진다. 잘한다는 게 더 어렵다. 같은 숫자로 하면 불안해서이다.
컴퓨터에서 은행일 보려니 비밀번호가 복잡하다. 네 자리가 아니라 6자리로 하다가 숫자와 다른 문자를 조합하란다. 8자리나 된다. 거기다 아이디를 만들어야 하니 그것까지 합치면 되게 어지럽다. 기억시켜 그냥 들어가니 편리하다. 다른 은행도 만들어야 하니 이 등쌀에 견딜 수 없다. 적어두고 수시로 꺼내 봐야 알 수 있다. 들어가자면 아이디를 댄다. 거기다 비밀번호를 넣어야 열린다. 모두 수십 글자이다.
“무슨 수로 외우나.”
몇 해 지나자 바꾸라 하니 그런 게 많아 일일이 기록해도 모두 기억하기 어렵다. 찾기도 힘들다. 어디에 적어뒀는지 난감하다. 바꿔야 하는데 지난 것은 맞지 않아 잘못으로 자꾸 나온다. 그것도 몇 차례 더하면 은행으로 찾아가야 한다. 만들 때 대소문자를 넣으면 좋다 해서 그렇게 했다가 애를 먹었다. 통 모르겠다. 막 헷갈린다. 바꿀 때 잘 적어놔야 한다. 빠뜨리면 큰일이다.
은행만 그러나 폴더나 카페를 드나들 때도 번호를 대야 한다. 하나로 통일하면 쉬우나 은행은 위험하다 해서 다 틀리게 했더니 이 일을 감당할 수 없다. 어디 가서 급하게 물으니 아는 것도 기억이 흐려져 가물가물하다. 이게 저것 같고 저것이 이것 같다. 어느 것인지 구별이 안 돼 난처해져 점점 흐릿하게 빠져든다. 폴더에 드나드는 일도 은행만치나 어렵다. 카페도 쉽지 않다.
문화지원금을 받기 위해 신청을 하는데 담당 직원이 비밀번호를 물어올 때 기억이 잘 안 나서 겨우 숫자를 말했더니 틀린다. 그때부터 컴퓨터 문화재단 번호와 내가 넣은 여러 가지 자료를 보는데 막혀 들어갈 수 없다. 직원이 다시 만들어서 켜고 했다. 이리저리 막히니 짜증을 낸다. 오늘은 안 되겠다며 다음 날 한 번 더 오란다.
여러 해 떨어졌다가 겨우 얻어걸린 기회인데 이렇다. 잘 기억나다가 요럴 때 막혀 집에 가야 하니 딱하다. 버스로 두 시간 걸리는데 어찌 갔다 오나. 한번 막히니 여러 개가 다 걸려 혼란스럽다. 집에서는 폴더나 카페에 들어가 송금도 한다. 각종 번호를 잘 외웠는데 훤칠한 여직원이 다잡아 묻고 하니 기가 눌렸는가 대는 것마다 안 맞다. 한번 틀리니 걷잡을 수 없다. 잘 아는 것도 자신이 없어졌다.
어머니께서 농협은행에 잔돈을 찾아오라 해 번호를 외우면서 갔다. 가선 거꾸로 대니 되나 다시 전화해 물어야 했다. 번호를 말하는데 그만 틀리다. 외우던 번호도 누가 물으면 그만 잊어버린다. 긴 것을 외우기 어렵다. 차 번호도 어금버금하다. 오래 기억했는데 이젠 걸핏하면 잊는다. 자꾸 생기는 번호를 일일이 기억하며 살자니 힘겹기만 하다. 0077이라 외우면서 왔는데 7700으로 말했다. 화초장 화초장 하다가 고추장으로 변했다. 007 영화가 생각났다.
친구 교사가 번호를 잘 기억한다. 여러 사람 차 번호를 다 외운다. 내 것도 어려운데 남의 것을 어이 그리 외우나. 쓸데없이 속 시끄러운 일이다. 지난날 폐차한 것도 정확히 알아내니 그런 걸 다 알 수 있을까. 비상한 머리다. 난 외우지도 않았지만 들으니 비슷하다. 맞는 것 같다.
자전거를 몰고 댈 때마다 자물쇠로 묶어 잠근다. 번호를 돌려놓았다가 탈 때 맞춰 열었다. 목욕탕에 들어가면 번호 키를 받아 신발통과 옷장에 벗어 넣는다. 은행이나 관공서, 병원을 가면 순번 번호를 받아 기다렸다가 차례가 되면 들어간다. 식당에도 웅성거리는 곳은 번호표를 받아 순서대로 앉는다. 온 사방이 번호가 있어야 들어가는 세상이다. 내 마음대로 살 수 없다. 거기에 맞춰 살아야 하니 번호가 판치는 세상이다.
아파트 분양 때 덜렁덜렁 갔더니 줄이 어디만치나 이어졌다. 번호를 받아 끝에 서는데 몇 킬로를 뒤로 밀려가야 했다. 햇볕이 뜨거워 받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면서 조금씩 앞으로 가니 세월아 네월아 한다. 조는 사람과 먹는 이, 앞뒤를 보면서 얘기하는 자, 자리다툼을 하는 게 보였다. 천태만상이다. 이럴 줄 알았던지 아예 의자를 갖고 와 버젓이 앉았는데 젤 편해 보인다. 다 젊고 괄괄하다. 나이 들어 후- 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기차를 탔는데 자리가 맞나 한다. 보니 앞칸이다. 몇 번째 칸인가를 봐야 하는데 잘못 앉았다. 헷갈려서 멋쩍게 일어나 찾아가야 했다.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에서 번호를 받아 기다려도 갖다 주지 않았다. 나오는 숫자를 보고 손수 가져왔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 적응하려면 눈치가 빨라야 좋다. 절에서 새우젓을 얻어먹는다. 어디 가도 숫자를 잘 봐야 했다.
길게 이어져 고개를 젖혀서 한참 찾아야 했다. 가지런해 죽 나가며 살폈다. 덩치 큰 버스가 좁은 칸 안에 다닥다닥 대고서 문을 열고 기다렸다. 전국 각지로 떠난다. 지명이 번호에 따라 적혀있다. 버스 대는 번호가 어디까지 길다. 번호 아니면 안 된다 편리하다. 스르르 빠져 복잡한 시내를 지나 고속도로로 들어가니 날 듯이 달린다. 괴나리봇짐을 지고 며칠씩 가던 곳을 잠시면 갔다.
노포동 지하철에서 내리면 바로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이어진다. 편리하다. 시내에서 멀어도 전철로 가니 빠르다. 시간에 맞춰 갈 수 있다. 계류장도 널찍해서 수많은 대형 버스들이 돌릴 수 있다. 금방 들어오고 나가며 그 복잡한 동선을 어찌 움직일까. 사람들 계획과 설계가 대단하다. 빙빙 돌아보는데도 번호를 보고 다니면 곧 찾아졌다. 좁은 번호 칸에 알맞게 쏙 들이댄다. 시간 되면 정확히 들고 났다.
대구 시외버스 정류장은 커다란 건물 안에 있어서 표를 사려고 한참 찾아 헤맸다. 안동 가는 곳을 둘러봐도 안 보인다. 다시 내려가 물었다. 몇 번이라 해서 한층 더 올라가 번호를 빙 둘러봤다. 저 끝에 있었다. 동대구역 바로 앞에 있는데도 복잡해서 번호 아니면 오르내리면서 헤매다가 제시간에 타기 어렵다. 반가워서 소리쳤다. 막 떠나려는 참이었다. 가까스로 겨우 올라탔다. 다음 차로 갈 뻔했다.
말레이시아 공항에 내리니 새벽이고 소낙비가 쏟아졌다. 겨울인데도 후끈한 날씨다. 페낭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쪽저쪽을 뛰었다. 줄 서 타려니 아니란다. 다시 다른 곳으로 급히 찾아갔는데 또 오르는 걸 막았다. 표를 보더니 몇 번으로 가라 해서 겨우 다른 회랑을 따라갔다. 어두컴컴한 곳에 여자 승무원들이 내려와 우리 일행 오기를 기다렸다. 이륙 시간이 지났는데 고맙게도
“피낭-피낭-.”
외치고 있었다.
타자마자 윙-하고 출발했다.
울란바토르 공항에 내리니 으스름한 새벽인데 붙들렸다. 남들은 다 빠져나가는데 오도카니 남겨졌다. 가방을 헤쳐보더니 약봉지를 덜렁 들고 갔다. 밀수 약장수로 여기는가 보다. 일 년 먹을 당뇨약이라 해도 듣지 않고 마냥 기다리게 했다. 아예 사무실에 들어가 나오지도 않고 기다릴 테면 기다려 보란 태도다. 처방전이 있어야 한단다. 갑자기 영문처방전을 어찌 만드나.
자물쇠로 채워 열쇠로 열던 걸 번호로 한다. 보통 네 자리 숫자를 맞추면 살 열린다. 그걸 잊으면 어렵다. 온갖 숫자를 들이대도 맞지 않으며 열릴 기미가 없다. 그러다 결국 잘라내야지 어찌해 볼 수 있나. 그래서 알기 쉽게 생년이나 생일, 주민증 번호 일부를 쓰기도 한다. 또 집 전화번호나 차 번호를 이용하여 기억시킨다.
편리하다 여겼는데 온라인에서 그런 건 쓰면 안 된다고 다시 바꾸란다. 그러니 급한 김에 아무거나 쓰다 보니 낭패를 만난다. 생각나려니 했다가 얼른 적어두지 못해 깜박 잊고 쩔쩔맨다. 아무리 떠올려도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말해놓고 기억할 수 없다. 하도 어려워서 내가 치매에 걸렸나 자책하며 지난다. 편리한 게 민주다. 번호는 막히는 일이 십상이다. 생년을 거꾸로 사용해도 안 된다.
아파트 열쇠가 번호로 바뀌면서 기억해 둬야 한다. 지하주차장이나 1층 로비에서부터 비밀번호를 눌러야 엘리베이터를 탄다. 차 몰고 들어갈 땐 호실 번호를 눌러야 했다. 자동으로 기억해 열게 하니 좋다. 나갈 땐 저절로 열리고 들어올 땐 차 번호가 뜨면서 차단봉이 올라간다. 기기들도 희한하다. 카메라가 번호를 보고 알아낸다. 어찌 그리 만들었을까. 관리사무실에 알리면 단지 내 어디든 출입이 된다. 그냥 들어가려면 굳게 닫혀 꼼짝도 안 했다.
집 앞에 와선 내 집 문 번호를 터치해야 열린다. 네 자리가 아니다. 입구에선 10개 숫자이고 집은 여섯이다. 왜 이리 복잡한지 어지럽다. 들어올 때마다 생각했다가 누른다. 어떨 땐 기억이 흐릿해 맞나 몇 번이나 해야 했다. 가끔 이러다가 감감해지면 어쩌나 마음이 든다. 그리될 날이 안 오겠나. 전혀 떠오르지 않을 때가. 가끔 턱턱 막혀 생각이 안 날 때가 있다. 가물가물하다가 캄캄해진다. 그게 길어지면 큰일이다.
하기야 방범으로 아파트 관리가 엄격하다. 주위에 카메라가 다 지켜보고 있다. 삼엄하고 철통같다. 차로 들어갈 때도 동 호수 번호를 눌러야 하는 걸 신고해 저절로 다닐 수 있게 됐다. 출입문과 집 대문도 일일이 기억하기 쉽지 않아 카드를 발급받았다. 갖고 다니면서 대줘야 열렸다. 한결 들어가기 쉬워졌다.
요즘은 살기가 좋아 강도와 사기꾼, 도난이 드물다. 지난날 가난했을 땐 빈집털이다. 가스관을 따라 도둑이 들었다. 여름날 더워 문 열어 두면 낯선 사람이 덜컥 들어왔는데 그런 게 줄어들었다. 또 세상이 어려워지면 그런 일이 생길 것이다. 모든 게 여유롭고 부유한 지금은 팍팍한 그때의 어려운 사건들이 들려오지 않는다. 도난이 생겼다. 강도가 나타났다. 밤중에 지붕 위를 걷는 소리가 들린다 오싹하다.
죄를 지으면 감옥으로 간다. 가슴에 죄인 번호를 달고 다닌다. 인격도 없고 이름도 흐려진다. 번호로 살아가야 한다. 똑같은 복장으로 간수들의 지시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인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정해졌다. 잠자는 것도 점호를 받고서야 자리에 들 수 있다. 하나에서 열까지 시키는 대로 움직이며 살아간다. 얼마나 답답하겠나. 군대 생활보다 더 엄격하다.
청포도 시인 이육사(264)는 일정 때 대구형무소에서의 수인번호를 필명으로 썼다. 멋지다. 다시 보기 싫은데도 생각하기도 꺼림칙했을 텐데도 그걸 사용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 언덕 떨어진 곳으로 길이 난다고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버리고 부르니 오히려 나아 보였다. 그의 본명은 사라졌다. 알 수 없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이육사면 그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안동 이육사문학기념관에 가끔 딸이 찾아와 아버지 얘길 들려준다. 한적한 안동댐 가에 세워졌다.
「언브로큰」 영화에 미군 포로를 학대하는 장면이 나온다. 허우대 큰 포로들이 태평양 섬에서 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심한 노동, 폭행, 총살을 당했다. 일본으로 옮겨 와서도 시달림을 받았다. 미군 폭격이 일본 본토에 시작되니 북쪽 탄광촌으로 이동해서 중노동에 시달렸다. 수용소 오장 와타나베가 같은 올림픽 육상선수였던 「루이」를 불러 침목을 들고 벌서게 했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었던 국가대표였다. 헐벗고 굶주려 뼈만 남은 포로들이다. 대나무 광주리에 석탄을 담아지고 배 위로 올린다. 높은 절벽에 떨어져 죽는 포로들이 속출했다.
떨어뜨리면 쏘라 명령한다. 불쌍한 그는 동료들의
“루이! 루이!--- 살아나라.”
응원을 들으며 들고 있다. 기름 먹은 그 무거운 침목이 얼마나 힘겨웠을까. 오늘은 기어이 고통을 안겨 죽이려고 단단히 별러 마음먹었다. 비틀거리며 쓰러지려는 몸을 일으켜 젖먹은 힘을 다해 번쩍 치켜들어 올렸다. 지옥이 따로 없다. 죽음이 눈앞을 어룽거렸다.
그 베를린 올림픽경기 마지막 마라톤에서 같이 달렸던 선수 중에 382번으로 보이는 가슴 번호가 손기정이다. 우승 후보였던 아르헨티나 사발리를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히틀러가 목에 메달을 걸어주고 악수했다. 평북 의주 출생으로 서울 중구 만리동에 손기정체육공원과 기념관도 세웠다. 이때 동메달은 남승룡이 받았다. 휩쓸었다. 투구는 보물로 지정되었다. 42킬로를 2시간 19분으로 뛰어 그 당시 신기록을 세웠다. 선수 가슴의 일장기를 지워서 동아일보사가 어려움을 겪었다.
방송에서 어디 누가 보낸 글이고 말씀이라 했는데, 언제부터 번호나 특수 문자로 말한다. 사람이 숫자나 문자로 바뀌어 불린다. 사람을 아이디나 아이피로 나타낸다. 사생활이나 인적 사항을 보호하느라 애쓴다. 그러나 개인이 흐려져 정나미가 덜하다. 유령처럼 엉성해 보일 때가 있다. 지난날 월남으로 보내는 음악 편질 즐겨들은 적이 있다. 한밤의 음악 편지가 기다려졌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 ---.”
수산시장 어판장에 경매가 있다. 농산물 공판장에도 그런다. 피둥피둥한 생선 상자가 즐비하다. 어디서 저리 많이 잡았는지 온갖 것이 널렸다. 멀고 가까운 바다에서 어선들이 싣고 온 것이다. 농산물 시장에서는 당장 필요한 채소와 과일, 감자, 고구마, 양념 등 생필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산지사방에서 그득그득 실은 차들로 붐볐다. 펄펄 살아있는 현장이다. 넘치는 생선과 농산물이다.
“저 산더미가 언제 다 팔리나.”
새벽에 이뤄지는데 검은 모자에 하얀 번호 숫자를 크게 적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는 이상한 소리를 하면 알아듣고 손짓 몸짓으로 사겠다를 표시해 연결된다. 입찰자가 없어 유찰되면 다시 가격을 낮춰 경매에 들어간다. 그 많은 것을 이렇게 해 일시에 일찍이 해결한다. 건어물도 그렇게 해 낙찰받아 소매상으로 넘어갔다.
“어어 오오 랄랄”
“손을 오므렸다 폈다.”
경마장이나 경륜장에 번호표가 눈 내린 듯 바닥에 흩날린다. 떨어진 표를 그냥 바닥에 던져버린 것이다. 되면 그 쪽지를 입에 대거나 코에 문지르고 이마로 붙인다. 네 발목이 가늘고 미끈해야 잘 달린다. 기수가 이기려 맘먹어야 한다. 되나마나 돌면 헛일이다. 그 넓은 주차장에 차 댈 곳이 없다. 얼마나 모였는지 가득하다. 영업 택시도 여기저기 보인다. 다음에 뛸 말을 선보일 때 점찍었다. 내 말이 꼴찌로 처져 들어온다.
복권이 여러 개다 올림픽과 주택, 연금 등이다. 사 두면 주말에 발표하는데 기대로 한주가 잘 간다. 혹시 걸리기라도 하면 떼돈을 만진다. 아직도 백만장자는 부자이다. 세금 제하고 10억 이상이니 노려볼만하다. 쏘세요 하면 화살이 번호판에 맞는데 몇 개 되다가 끝에 어긋난다. 요즘은 돌리세요 해서 공들이 뱅글뱅글 돌다가 나오는데 한두 개는 맞아도 다 그러기는 하늘에 별 따오기다. 수십 년을 샀는데 모두 깡통 허탕이다.
“그게 맞으면 큰일이제.”
저녁 먹고 자리에 앉으니 조금 둘려 눈감고 잠시 기다렸다. 뜨니 그만 세상이 막 돌아간다. 울컥울컥 올라오고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누워 뒹굴게 된다. 속이 뒤틀려 계속 올린다. 처음으로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가게 됐다. 귓속 전정관이 탈 났다. 달팽이관 옆에 평형을 유지하는 조그만 덩어리 그게 말썽이다. 구급 소방관이 금방 현관에 들이닥쳤다. 원하는 병원 응급실로 실어다 주곤 가 버렸다. 고맙다 인사말 할 사이도 없이.
긴급 전화번호가 있다.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사고로 위급할 때가 있다. 불이 나 동동걸음을 칠 때 누구나 서둘러 신고해 줘야 한다. 노상강도를 만나거나 거리에 패싸움이 벌어져 어려움이 생기면 빨리 연락해서 경찰의 도움을 받는다. 가다가 차가 고장 나거나 교통사고로 다쳤을 때 보험회사에 얼른 알려 구조를 받는다.
“화재와 사고는 119로”
“범죄는 112다.”
“보험회사 전화번호를 기억하라.”
총선에서 여야와 무소속 후보들이 나와 약세일 때는 자기 당원을 밀어주고 들어간다. 여당 Ⅰ번 제일 야당 Ⅱ번, Ⅲ번 등으로 번호를 부여받는다. 젓가락 표시로 한다. 해방 직후 총선에서 문자해독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작대기 하나, 둘로 기호 표시를 했다. 그리스 문자와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1번이 중요하다. 모르면 앞번호를 찍기 때문이다. 제헌 국회의원은 200명이고 오늘날은 300명이다. 초대 국회 개회 때 하나님을 찾는 기도로 시작했다.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기호 1번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가까운 우방 일본과 동맹인 미국은 간선이다. 우리는 민주의 꽃인 전 국민 유권자 직선으로 투표한다. 대통령은 추앙받는 이 나라의 영원한 대표 이름이다. 모두 행복하지 못해 보인다. 추방되거나 밀려나고 저격당하며 구속되는 사람이 여럿이다. 거기다 자살하는 분도 있다. 임기를 마치고 편히 물러나는 사람이 드물다. 터가 안 좋은가.
문자에 누가 죽었다고 들어왔다. 이름이 익숙하다. 낮에 교회에서 마주 앉아 얘기했는데 돌아가다니 무슨 말인가 다른 사람이겠지 했다. 맞다. 악수할 때마다 힘이 넘쳤다. 기억을 잘하고 깐깐한 사람이 갑자기 이럴 수 있나. 몇 시간 전인데 어쩌다 날벼락을 맞은 교통사고인가. 교회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대신동 아파트에 살면서 집을 못 찾아 부식을 들고 다녔단다. 아주 기억이 가물거렸나 보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아침저녁으로 드나들던 집을 뱅뱅 돌면서 못 찾았다, 멀리 가잖고 가까이에서 헤맸다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웃에서 보고 집으로 안내했는데 저녁 먹고 그만 잠들 듯이 숨이 멎었다. 몇 해 전 아내 권사가 당뇨로 세상을 떠났다. 딸과 함께 지나면서 늦게 들어오는 금은방 딸을 위해 반찬거릴 사 들고 간다. 그런데 아파트 칸을 몰라 헤맸다. 갑자기 벌집처럼 복잡했는가. 집으로 데려다줬을 때도 머뭇거린다. 번호를 알 수 없었다. 집 문 번호도 기억나지 않았다. 지난날 철도원으로 길 찾는 데는 익숙한 사람이다. 다 잊어먹어 깜깜했나 보다.
사람은 산기슭에 살다가 죽으면 뒷산으로 간다. 삭풍 막아주는 산 아래 살면서 맑은 산골 물 먹고 펀펀한 들판 농사를 지으며 흐르는 앞 강에서 몸 씻는 게 살기 좋은 땅이다. 춘란 찾아 산속을 뒤지다 보니 온 산이 무덤 천지다. 공동묘지 공원묘원이 즐비하다. 아름다운 산하가 덕지덕지 어설프고 어지럽다. 이웃이 좋아야 명당이다. 산 좋고 물 맑아야 복지이다. 무덤 많은 곳은 으스스하다. 온 산이 무덤 천지다.
동생이 묻힌 대전 현충원을 가 지난번 기억을 더듬으며 살폈는데 볼 수 없다. 그게 그것 같고 가지런해서 알 수 없다. 한참 돌고 나니 눈알이 핑핑 돈다. 할 수 없이 사무실에 물었다. 번호를 알려줘서 쉽게 확인했다. 월남전에서 얻은 폐암과 골수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줄 맞춰 가로와 세로 빗면까지 쪽쪽 바르다. 드넓게 펼쳐졌다. 연병장 군인들 서 있는 것 같다. 비석 벌판이다.
서울과 대전, 영천 등 어디 어디 국립 현충원이 자꾸 들어선다. 산은 공원묘지로 평지는 국립묘지로 무덤 천지다. 이러면 되겠나 걱정이다. 사람 살 집터와 농사지을 땅이 허물어져 점점 좁아져 가고 있다. 나중에는 무덤으로 꽉 채워질 것이다. 자녀에게 화장하라고 일렀다. 좁은 땅에 서너 평씩 무덤을 쓰면 어찌 되겠나. 부활 동산에 두 기를 사뒀는데 내놨다. 결혼과 장사지내는 일에 비용이 엄청 많이 들어 다들 허리가 휘청거렸다. 태워서 산천에 뿌리지 쓸데없이 무덤을 만드나.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곧 닥치는 일을 어찌 막을 수 있나. 다 오래 살면 증·고조가 같이 지내는데 끔찍스럽다. 가는 일이 참하고 아름다우며 거룩하다. 청나라에 120여 년을 산 사람이 아내만 수십 명이고 자녀가 그리 많다니 뭐 좋은가. 나물을 즐겨 먹고 부지런히 한의원 일을 했단다. 녹용과 인삼 보약을 많이 먹어서인가 타고난 건강일까. 마음 편히 사는 게 좋다. 보통 6·70세이고 강건하면 80이라 했다.
한 무제 때 동방삭은 삼천갑자 18만 년을 살다가 갔다. 한 갑자 60년이 천수인데 3천 번을 더 지냈으니 얼마나 긴 세월인가. 그래도 더 살고 싶어서 죽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잡으러 오는 저승사자를 피해 중국을 떠나 먼 서울 근처 한적한 강가를 지났다. 숯 씻는 사자를 보다가 잡혔다니 전해오는 얘기가 재밌다. 그 강이 경기도 성남을 지나는 탄천(炭川)이라 한다.
“검을 숯을 희게 씻겠다는 말 삼천갑자를 살았어도 처음 들어본다.”
며 껄껄 웃다가 잡혔다.
성경에 600에서 900년 천년을 산 사람의 얘기가 나온다. 단군도 천년을 훨씬 넘게 누리며 살았다. 잘 살면 100세를 넘긴다. 한 500년 살다 갔으면 민요도 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태풍이 불어온다. 북태평양 서부에서 발생한다. 동부에 나타나는 것은 허리케인이고 벵골만이나 인도양에선 사이클론이다. 강풍과 홍수, 해일로 인류에게 가장 큰 자연재해를 안긴다. 북반구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남반구는 시계방향이다. 50개 정도 발생한다. 그중 태풍이 20여 개로 많다. 생명이 열흘 정도이다. 초속 30미터 내외 강풍이다.
괌 미국 태풍경보센터에서 번호를 매겨 발표한다. 이름은 중국 일본 한국 아세안 국가 14개국에서 지은 것이다. 여름에 발생 10월까지 간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채모양 이동한다. 그러다가 시월엔 다시 아세안으로 몰아친다. 잊을 수 없는 큰 피해를 남긴 사라호는 추석날 불어닥쳤다. 홍수로 집과 논밭을 덮쳤다. 커다란 미루나무가 뿌리 체 뽑히고 아름드리 밤나무 밑동이 부러져나갔다. 한 많은 사라호 노래도 생겼다. 전국을 휩쓸고 할퀴었다. 우수수 알밤과 사과, 감, 배를 주우러 다녔다. 반쯤 묻힌 나락 논의 모래흙을 손으로 긁어내야 했다.
반찬을 더 달라고 모서리 초인종을 누르면 번호가 떠 종업원이 이내 온다. 정선 사북 카지노에 들어서면 기계마다 사람들이 붙어 앉아 열심히 당긴다. 뒤에서 끝나길 기다리며 지켜보면 두 대를 사용해 교대로 500원 동전을 넣고 있다. 바쁘니 나보고 계속 넣어달란다. 쏟아져 한 소쿠리 담는다. 작동이 어려우면 호출 번호를 보고 이내 직원이 와서 도와준다. 딴 것이 무거워서 헤아리기 어려웠다. 정미소 통 같은 곳에 넣어 정확히 헤아려서 지폐로 바꿔줬다. 홍콩에선 홀라당 잃었는데 여기선 땄다.
중투와 호, 복륜, 소심을 캔 진해 웅천 산기슭을 헤매다가 드넓은 잔디밭을 만났다. 골프장이다. 전에 안 보이던 난데없는 미끈한 풀밭이 시원하다. 들어선 김에 한 바퀴 돌았다. 주차장엔 고급 차들로 꽉 찼다. 빈틈이 없다. 간편 복장에 채를 들고 1번 홀로 들어서는 사람이 보인다. 저쪽 산엔 나간 사람들이 캐디와 함께 라운딩하고 있다. 폭스바겐과 아우디, 벤츠, 렉서스, 링컨, 그랜저, 제네시스 등이 널렸다. 처음 본 벤틀리도 보였다.
전화 있는 집은 부자로 보였다. 청색, 백색이니 하면서 한참 말이 있었다. 학교에서 가정 형편 조사에 전화나 시계, 라디오를 적었다. 급한 일이 있으면 옆집으로 찾아가 다이얼을 돌렸다. 그러다가 숫자가 늘어나면서 너도나도 들여놨다. 부모님 댁에도 놔 드렸다. 직장에서 집으로 쓸데없이 전화하는 즐거움이 생겼다. 급할 때 우체국에 가 신청하는 수고를 던다. 먼 친인척에게 수시로 안부를 묻는다. 수소문하면 오랜 친구도 목소릴 들었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집이 비었다. 가끔 들러서 처마에 앉아 피리를 불었다. 나나니벌이 잉잉거리며 주윌 맴돌아 쳤다. 추운 겨울날 어찌 지날까 계실 것만 같아 전화를 눌렀다. 띠리리--- 신호는 가는데 대답이 없다. 아들딸 전화번호를 벽에 큼직하게 붙여뒀다. 맏이에겐 꾹 누르면 바로 통화되게 단축번홀 했다.
번호를 외웠다. 또 친인척을 수첩에 적어두고 필요할 땐 요긴하게 불렀다. 앞에 두 자리 뒤에 네 자리 숫자다. 얼마 뒤 앞 세 자리로 바뀌었다. 어디서 전화 오면 몇 번이라고 번홀 알려주는 조그만 삐삐 기계가 생겨 허리에 차고 다녔다. 그러다 이내 손전화가 나왔다. 유선전화가 얼마나 좋았는데 정이 푹 들었다. 이 세상 어디든 다 나온다. 산골이나 바닷가 세계 어디에도 다 걸린다. 엊저녁 미쳐 못 본 연속극도 나온다. 지금 뉴스가 바로 나왔다.
무전기처럼 조그만 것이 신기도 해라 전국 어딜 다녀도 받을 수 있으니 이럴 수 있나. 에스케이나 유플러스, 올레 등 통신사 대리점이 한 집 건너서 가게를 차렸다. 이젠 집 전화는 사용이 없어 떼 냈다. 열 자릴 누르다가 11자리가 됐다. 016이나 017, 018, 019 등이 있다가 010으로 바뀌었다. 지하철이나 버스, 휴게소, 사무실에 보면 옆 사람과 얘기는 사라지고 모두 손전화 보기 바쁘다. 화투놀이도 바둑도 두자면 상대가 나온다. 기차나 비행기 예매를 간단히 한다. 택배나 음식배달, 송금 등 두루 다 통했다.
라디오가 나오자 신기해서 이웃이 모였다. 조금 있으니 유선으로도 방송됐다. 주파수를 따라 여기저기 들을 게 많다. 안테나를 지붕 위에 세워서 들었다. 장대 위에 철사를 칭칭 감아올렸다. 멀어지고 가까웠다가 했는데 한결같이 고르다. 좌 쪽에서 우측으로 번호를 옮기면서 듣는다. 잘 나오는 곳과 희미한 방송이 뒤섞였는데 해맑은 곳에 멈춘다. 카랑카랑한 아나운서의 뉴스로 세상을 듣는다. 가수와 연속극의 배우들이 너무 예뻐 보였다. 한참 듣다 보면
“여기는 평양입니다.”
텔레비전이 생겨 손 채널을 돌린다. 십여 개로 나오는 건 서너 개였다. 흑백이다가 이내 천연색으로 바뀌었다. 케이블방송도 생겨 신비하던 아나운서와 배우들을 한꺼번에 다 볼 수 있다. 대통령과 장관, 만담가, 가수들을 가까이서 본다. 자그만 하던 화면이 점점 커져 실물같이 나타난다. 전국 어디든 카메라가 찾아간다. 사건이 생기면 현장에 있는 것 같다. 앉아서 전국을 돌아다닌다. 세계 곳곳을 다 본다. 채널 번호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당구와 바둑 방송도 있다.
운동 경기를 즐겨 본다. 축구와 권투, 레슬링을 할 때 팔다리가 저절로 나간다. 밤늦게 끝나는 축구를 보다가 잠을 설친다. 일본 원정에서 샌드백처럼 얻어맞고 링 구석에 비틀거리는 모습은 화가 치민다. 허리를 꺾이고 팔다릴 비틀리며 수도로 양 목과 가슴을 얻어맞아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팔을 힘껏 당겨 링으로 던지고 반동으로 돌아올 때 크게 치려 한다. 한 골 넣으면 마을이 함성으로 들썩인다. 펀치를 하도 맞아 눈두덩이 퉁퉁 부었다.
그때다. 도로 잡아 머리에 박치기를 넣는다. 뚤뚤 구르며 꼬꾸라지는 상대 선수다. 꿈틀거릴 때 다시 한번 더 들이박는다. 밖에서 흰 수건이 던져진다. 속이 다 시원하다. 얻어터질 땐 참을 수 없다. 왜 저리 맞고만 있나. 어찌 좀 해봐. 몸이 움찔움찔한다. 실컷 때리고 끝내야지 그리 두들겨 맞고 끝에 잠깐 이기니 속이 떨떠름하다. 역시 잠 오기 틀렸다.
스포츠방송에 야구가 자주 나온다. 몇 번 타자를 말하면서 힘껏 쳐올려 담장을 넘기면 후련하다. 세차게 날아오는 공을 잡아 밟고 곧바로 첫 번 베이스로 던지면 한꺼번에 두 점을 올린다. 통쾌하다. 운동 경기가 다 그렇지만 야구는 더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아슬아슬 몸이 비틀렸다. 무섭게 날아오는 딱딱한 공을 퍽퍽 받아내는 손바닥과 힘껏 던지는 팔이 괜찮을까. 투수가 팔 빠지게 고생한다. 공 날아가는 게 개구리 뛰듯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출발점에 서면 가슴이 떨리겠다. 번호선 앞에 발을 대고 언제 신호가 내릴지 조마조마하다. 육상이나 자전거, 스케이트, 경마가 달려간다. 모두 하나같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언제부터 이리 거꾸로 돌아갔나. 포환 던질 때도 몇 미터 지점으로 날려 보낸다. 그것도 그리 돌렸다. 사람은 왼쪽으로 도는 걸 좋아하는가.
사선에 서면 떨린다. 잘 맞아야 할 텐데 번호에 따라 칸 칸 들어가 조준하며 숨죽이고 기다린다. 조교가 반동이 크니 조심하란다. 삼엄하다. 잘못 움직이면 야단이다. 시키는 데에 만지작거린다. 동작이 둔하거나 딴짓하면 긴 대나무가 머리와 손바닥을 찰싹찰싹 스친다. 얼마나 겁을 주는지 소름이 다 돋는다. 쏘고 나니 별것 아니었다. 수만 파운드라 해서 어깨가 무너지는 줄 알았다. 조교의 대나무 회초리가 맵다.
중국에서 유행한 야바위는 운이 아니라 속임수다. 1-6 숫자에 골패를 섞어놓는다. 돈 놓고 배로 따 먹기다. 아주 쉬워서 그저 먹을 것 같다. 해보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번번이 잃는다. 십인계도 야바위다. 1-10 번호에 돈을 댄다. 대통에 넣고 흔들어 맞는 숫자가 판돈을 가져간다. 더 어렵다. 바가지 안쪽에 숫자를 쓰고 맞춰야 한다. 잃으면 바가지 썼단 말과 쪽박 찬다는 말이 생겼다. 야바윈 눈뜨고 속아 귀신 곡할 노릇이다.
일본 동경의 번화가가 18번가이다. 즐겨 부르는 자신 있는 노랠 18번이라도 한다. 중국은 무술이 뛰어난 나라다. 싸움이 잦아 춘추전국시대가 있다. 말달리기와 창검 다루는 게 일상이다. 몸으로 날 듯이 뛰면서 때리고 차는 걸 잘한다. 장기놀이도 한나라와 초나라의 싸움이다. 잘하는 정도를 계라 부른다. 1계에서 10계 20계로 높이 올라간다. 가장 잘하는 게 36계로 도망이다. 임전무퇴보다 피하는 것이 뛰어나다.
나라의 경계는 산이나 바다, 강으로 이뤄진다. 중국은 남동이 바다이다. 인도도 동남쪽은 바다이며 북쪽은 산맥으로 중국과 경계를 지었다. 위도로 국경을 한 나라도 있다. 미국은 좌우 바다이고 북쪽은 49도로 캐나다와 국경을 이뤘다. 우리나란 백두산을 정점으로 좌우 압록강과 두만강을 중국과 경계지점으로 했다. 지금은 38도 선으로 남북이 갈라졌다. 국경 지역은 다 위태위태하다. 그곳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걸 봐왔다.
바둑은 흰색과 검은 조약돌로 싸우는 놀이다. 10급에서 1급이 있고 더 잘 뜨면 1단 2단이라는 급수와 단수의 번호를 내려받는다. 동양에서는 장기와 바둑, 마작 등을 갖고 논다. 마작만 노름꾼 돈놀이가 심하다. 태권도와 유도도 흰 띠에서 검은 띠를 두른다. 1단 2단--- 유단자는 오랜 단련을 통해 단수를 인정받는다. 유도와 태권도는 올림픽 종목에 들어갔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닿았다. 1층 로비 출입문에서 카드를 꺼내려니 없다. 아침에 옷 갈아입으면서 깜박 두고 나왔다. 번호를 누르니 맞지 않는가 열리지 않는다. 늘 사용했으면 될 텐데 카드로 꾹꾹 누르고 다녔으니 번홀 잊어버렸나. 전에 이 숫자로 한 것 같은데 안 된다. 네 자리 누르고 샤픈가 별표인가를 눌렀는데 헷갈린다. 가끔 눌러 들어갔는데. 이렇게 감쪽같기는 처음이다.
네 자릴 두 번이나 눌러야 하니 어렵다. 내 집인데 들어가기가 힘들다. 한참 들여다보며 만지작거리다가 멍하니 서 있게 된다. 누가 오면 따라 들어가야 한다. 경비실로 연락하면 열어주는데 그것도 얼떨떨하다. 뭘 눌러야 하는지 도시 막막하다. 이렇게 생각이 안 날 수 있나. 전활 해서 아내에게 열어달라 해야 할까. 번호만 가맣게 잊었다. 다른 건 희미하게 생각났다.
그것도 머뭇거리다 뒤늦게 떠오른다. 안 되니 다 막혀서 가물거린다. 사람도 빨리 안 와 문밖에서 서성이는 게 이상할 수 있다. 할 수 없이 지하 1층으로 내려갈까 한다. 들어가야 내려가는데 닫혀서 갈 수 있나. 다른 입구를 통해 들어가 옥상에서 내려오면 될까. 옥상 문을 늘 채워두던데 되겠나 생각이다. 길이 없다. 이것저것 다 잊으면 난 거리로 나설 차례다.
한참 뒤늦게서야 차도로 내려가 들어가면 되겠다 간단하게 떠올랐다. 빨리 안 나온다. 막혀서이다. 시간이 흐르니 그것이 생각났다. 내려가니 거기도 1층과 마찬가지다. 비밀번호를 대야 한다. 또 아까처럼 이것저것 눌러봐도 소용없다. 똑같다 이런 일이 있나. 다시 지하 2층을 갔다. 역시 열 수 없다. 샤프를 눌러야 하는데 별표를 눌러댔다. 시건이 원망스럽다.
얼마를 이리 헤매다가 마침 들어가는 사람이 있어 같이 가자고 소리쳤다. 그가 놀란다. 웬 낯선 사람이 부르나 하고 보니 오르내리면서 만났는가 인사를 한다. 그것도 기억이 없어 인사를 안 받고 멀뚱멀뚱했다. 층을 눌러야 하는데 가만있으니 쳐다본다. 그가 내리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머뭇거리다 13층을 누른다. 개울 버들치를 잡았다 놓아주면 한참 섰다가 설설 어슬렁거리며 가듯이 좀 돌아오는가.
내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까 싶어 내 방으로 들어가 의자에 가만 앉았다.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사람이 들어오는 기척이 있는데 조용하니 아내가 저쪽 방에서 “왔어요” 소리친다. 오면 왔습니다. 하고 말하는데 살 숨어드니 미심쩍어서 묻는다. 다행히 그러려니 하고 오지 않았다. 왜 이럴까. 혼미해져서 큰일이다.
노망기가 있다. 집을 찾지 못하거나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는 중증은 아닌 것이 다행이다. 암보다 무섭다 하지 않는가. 그러나 시작이니 언제 그렇게 되면 난 어쩌나. 아내가 늙어서 주체못해도 절대 시설에 가지 않겠단다. 텔레비전에서 요양원 노인을 질질 끌며 구석으로 밀쳐 넣는 걸 봤다. 아들이 듣고 잘 모시겠다며 얼른 대답한다.
아버지 관을 어머니 옆에 모시려 했다. 땅을 팠을 때 물이 비쳐 나왔다. 비는 자꾸 내리고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돌아간다. 동생과 딸들이 모두 화장하자고 부쩍 서둔다. 시골에선 그리하면 부모를 잘 모시지 못한단 말을 듣는다. 상문 친인척과 호상 앞에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었다. 그렇게 하자고 대부분 예 하는 대답이다.
하는 수 없이 두 분 관을 장의차에 모시고 영주 화장장으로 갔다. 일이 꼬여 장삿날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가족을 위해 헌신한 어머님을 편히 모시려고 뒷골 밭을 무덤으로 돋우었다. 두 봉분을 만들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산다는 상록수 주목을 좌우에 세웠는데 다 소용없다. 물이 줄줄 흐르는 3년 지난 모친 관까지 비닐로 싸 옮겼다.
그런 와중에 물야면사무소 이장 허가와 휴천동사무소 화장장 사용 허가를 받으러 갔다. 해거름에 지정번호에 따라 부모님 관이 들어간다. 종일 비를 두들겨 맞고 출출한 가족이 울고불고한다.
“한생전 모습이 이글이글 불빛에 아롱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