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제1차 오일쇼크 이후 프라이부르크 인근 비일 지역에 원전 건설계획이 추진되면서 촉발된 프라이부르크 주민들의 원전반대운동은, 단순히 시위에만 그치지 않고 대량소비생활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바탕으로 에너지절약을 생활화하고 제도화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프라이부르크 시의회는 만장일치로 ‘탈원전'을 선언했고 이와 동시에 에너지절약ㆍ교통정책 등 환경문제 전반에 대해 종합대책을 수립하면서 ‘에너지자립도시'를 선언하게 됐다.
그 가운데 가장 역점을 둔 것이 태양에너지 개발정책이다. 지난 1995년에는 드라이잠 축구경기장 남쪽 스탠드 지붕에 ‘시민참여형'으로 대형 태양전지패널을 설치했으며 3년 뒤에는 솔라주식회사(SAG)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솔라주식'을 모집해 대규모 태양광발전장치를 설치하여 전력을 생산하고 이를 에너지공급회사에 판다.
이러한 것이 가능했던 것은 태양전지패널 생산회사인 ‘솔라공장(Solar Fabrik)'을 설립한 게오르크 살바모자 씨 같은 기업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라이부르크 시에 들어서 있는 태양광 시설 지도.
2000년 4월 독일 연방 차원에서 실시된 재생가능에너지법으로 독일 전역에
100만호 태양전지지붕 건설계획이 수립되는 등 태양광발전 붐을 선도했다.
그는, 종전까지 주로 공적자금의 보조금에 의존해 추진돼 오던 태양광발전사업과는 달리 '솔라주식'을 발행함으로써 태양광시장을 형성시켰다.
1999년에는 솔라주식회사를 상장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가 설계한 태양광발전장치는 대히트를 쳤다.
프라이부르크 에너지관리공단(FEW)의 롤프 디시 이사장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태양광 건축가였던 그는 직접 '헬리오트롭(태양의집)'이라는 태양광 주택을 지었다. 프라이부르크 교외 뮌징겐 지역에는 태양광 분양주택단지인 '솔라가든'이 즐비하다.
자동차 없어도 대중교통수단과 자전거만으로 어디든 OK
1972년 선진국의 대부분이 고속도로 건설에 익숙해져 있던 시기에 프라이부르크는 자동차 억제정책을 도입한다. 이 방침에 따라 시 전차 노선과 자전거도로망 확충, 시내버스 노선 정비, 보행자 안전지대 설치, 주택가 최고시속 30킬로 제한, 중심지 자동차노선 축소 및 진입 제한, 주차요금 인상, 주택지구 주차우선권제도 등 실질적인 교통정책을 수립했다.
또 1984년부터는 ‘레기오카르테'라는 환경정기권을 도입해 전철ㆍ버스 등 대중교통 환승시스템을 개발해 값싸고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90개의 노선을 통합ㆍ조정했다.
그리고 프라이부르크 근교 전차의 시외역 인근에 넓은 무료 주차장을 조성해 놓고 시외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차량은 이곳에 주차를 한 후 자동차 운전자가 전차로 갈아타고 시내에 들어오도록 하는 ‘파크 앤 라이드(park & ride)' 시스템도 도입했다.
‘종합교통계획'을 통해 1989년부터 시내 모든 주택가에서 자동차 주행속도를 시속 30킬로로 제한하여 주택가에 배기가스나 소음을 줄일 수 있었고, 교통사고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프라이부르크 시의 교통정책에 맞춰 기업이나 직장에서도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에코통근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가 실행되고 있고, 기업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환경정기권을 구입해 사원에게 싸게 공급하거나 대중교통 이용자에게는 별도의 통근수당을 지급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하여 1979~1989년 10년간 프라이부르크 시내의 승용차 대수는 6만 2,000여 대에서 7만 8,000여 대로 늘어났음에도 사용 대수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게오르크 살바모자가 설립한 태양전지패널 생산회사 '솔라공장(Solar Fabrik).
프라이부르크가 에너지 자립을 이루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산업도 '에코' 아니면 발붙이기 힘들다
프라이부르크는 곡물의 일부나 토양을 풍부하게 하는 식물을 가축 사료로 사용하고 그 가축들이 비료를 제공해 토양을 다시 풍부하게 하는 이른바 ‘에코농업'이 발달해 있다. 이들 에코농업의 농장주들은 ‘비오란트(Bioland)'라는 단체를 조직해 엄격한 품질관리를 하고 있다.
이러한 에코농업을 바탕으로 에코제조업도 발전하고 있다.
에코맥주회사인 ‘람스브로이'는 무농약 유기농 원료를 사용하고 에콜로지컬(Ecological)한 방침에 따라 맥주를 생산하는 독일 최초의 에코맥주제조회사로 자리 잡고 있다.
제조공정에서도 중유 사용을 전면폐지하고 대신에 천연가스를 이용하며,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폐열을 제조공정에 재투입해 이용하고, 포장에도 일회용 알루미늄 캔이나 일회용 용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호프나 맥아 등의 쓰레기도 버리지 않고 가축의 사료나 퇴비로 사용하며, 배달망도 근교에 한정해 에너지 소비와 배기가스를 감소시키고 있다. 이에 1999년에는 ISO14001을 받을 수 있었다.
프라이부르크의 은행도 예외는 아니다. 이곳의 은행들은 환경과 생태를 중시한다. 1992년 태양광 혹은 풍력발전 등 환경친화적인 프로젝트나 기업에만 융자나 투자를 하는 독일 최초의 은행인 ‘에코방크'가 문을 열었고, 1997년에는 별도의 ‘환경은행' 또한 설립됐다.
환경은행은 별도의 은행창구 없이 잡지 광고를 통해 영업을 하는데도 다양한 정기예금 및 적금, 환경펀드, 온라인뱅킹, 절세용 환경프로젝트 투자, 주식 구입, 보험 등 은행이 제공하는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시민ㆍ기업가ㆍ행정가, 프라이부르크의 미래를 '선택'하다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그것은 시민과 행정 간의 파트너십에서 나온다. 반핵운동을 통해 대안을 제시할 정도로 성장한 ‘에코 인스티튜트'와 같은 시민연구소가 있고 독일의 대표적인 환경단체인 ‘분트'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체는 국가나 자치단체 등의 토지개발 건설계획에 의견서를 제출하는 것 외에도 환경전시회, 에코센터의 운영, 환경프로그램 제작, 환경컨설턴트, 기업을 위한 환경보전활동, 세미나 개최 등 활동의 폭이 아주 넓다.
프라이부르크 사회환경교육시설인 외코스타치온.
프라이부르크는 1970년대부터 학교에서 환경교육이 의무화될 만큼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시민단체의 힘은 이러한 학교교육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시민단체의 힘은 1970년대부터 시작된 학교 환경교육의 힘이기도 하다. 실제로 1980년부터 학교에서 환경교육이 의무화됐는데 학교에서는 학년이 시작될 때 교사가 ‘재생지 노트를 살 것', ‘만년필 사용하기' 등을 강조하고 교과서는 무상대여로 매년 하급생에게 물려진다.
또한 태양광을 연구한 기업가와 발명가가 있었고, 이들이 곧 태양광산업을 선도했다. 무엇보다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에는 롤프 뵈메라는 환경시장이 있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20년간을 재임하면서 ‘태양도시 만들기'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이처럼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는 적극적인 시민과 기업가, 그리고 행정가들이 함께 도시의 미래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데 그치거나 방관하지 않고 각 분야에서 스스로 미래를 선택하고 이를 실천한 데서 태양도시 프라이부르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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