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공화국 시절 정치적으로 가장 많은 적을 만들면서 가장 깊숙하게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는 김형욱 중앙정보부장과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을 물러나게 했던 이른바 ‘이만섭 폭탄발언’. “김형욱·이후락 저승사자가 있다”고도 했던 박정희 정권 시대의 최대 공화당 쿠데타 사건이 당시 이만섭 의원에 의해 40년만에 전모를 드러냈다.
“야, 이 의원! 나한테 그러기야?”
“뭐 이 새끼야? 네가 할 일은 그만두는 것밖에 없어! 네가 대통령 앞이라고 큰소리쳐?”
이 정도의 고함과 삿대질이 오갈 때는 이미 김형욱 중앙정보부장과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이 그 막강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징조가 확실한 즈음이었을 것이다. 이제, 제3공화국 시절 정치적으로 가장 많은 적을 만들면서 가장 깊숙하게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는 김형욱 중앙정보부장과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을 물러나게 했던 이른바 ‘이만섭 폭탄발언’의 비사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라호텔 영빈관 폭탄선언
흔히 ‘신라호텔 영빈관 폭탄선언’이라고도 했고 “김형욱·이후락 저승사자가 있다”고도 했던 박정희 정권 시대의 최대 공화당 쿠데타 사건은 당시 이만섭 의원에 의해 시작됐다.
박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뒷받침할 수 있는 헌법적 근간이 되는 소위 3선개헌을 앞두고 집권 공화당 109명 의원 중 101명이 참석한 1969년 7월29일의 영빈관 의원총회에 대해, 지금까지 지상에 알려진 토막토막의 비사들이 관련자 본인들의 증언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 폭탄선언을 했던 이 의장 본인이 품격 있는 지면에 비록 욕설이더라도 박 대통령과 영빈관에서 있었던 그대로를 리얼하게 공개하기는 처음일 것이다.
그 시대의 권력 주변 인물들이 얼마나 권력욕에 전부를 던지다시피 했는지, 정치적 수준은 어떠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기록성의 가치까지 고려해 사실 그대로를 싣는다. 지금으로부터 꼭 40년 전인 1969년 4월24일. 비가 쏟아지는 김포공항으로 김종필(JP)이 귀국하면서 3선개헌의 혓바닥은 감춰진 입 속에서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JP 친위세력이 박 대통령의 지시를 거역하고 권오병 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찬성함으로써 일으킨 이른바 4·8 항명파동을 일본에서 지켜본 JP는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박 대통령이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서둘러 귀국길에 오른 것이었다. 당연히 개헌문제 때문이었다. 물론 3선개헌에 대한 신호탄이 이전에도 터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1월3일 이효상 국회의장이 더듬더듬 발설했고, 6일에는 길재호 사무총장이 애드벌룬을 띄웠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7일에는 윤치영 당의장서리가 개헌 구상을 엉거주춤 내밀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굳어지는구나 하는 느낌을 준 것이 JP의 귀국날인 4월24일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JP의 영향력이 컸다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향력이 컸다는 것은 동시에 국민들로서는 배신감이 깊었다는 말이 된다.
이때부터 믿었던 JP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 국민의 시선은 개헌에 쏠렸고, 마침내 6월12일, 지성을 대표한다는 서울대 법대생 300명이 “독재자의 아집과 자기과신은 결국 일국의 운명을 파멸의 길로 이끌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면서 저항을 공식화하는 ‘헌정수호선언’을 발표했다.
이렇게 되자 개헌의 행동대라고 할 수 있는 이후락·김형욱·김성곤·길재호 씨를 비롯한 공화당 중진들이 휘청거리면서도 대내외 설득 공작을 더욱 본격화할 수밖에 없다는 다급함을 느끼게 됐고, 급기야 7월로 접어들면서 개헌공작을 노골화하자 그에 맞선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양심적인 시민세력과 함께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상황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국회도 혼란에 빠져들었다. 야당인 신민당은 의원직을 걸고 개헌반대 배수진을 쳤다. 이미 헌정수호를 선언한 학생들의 저항은 갈수록 더욱 격화했다. 피해도 늘어났다. 어느새 120명의 고려대생이 부상을 입었고, 7월3일에는 138명의 서울대생이 연행되면서 문리대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이쯤 되자 11일 길재호 사무총장이 사퇴하고 청와대도 뭔가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 같은 제스처를 썼지만 ‘개헌이 없다’는 명확한 대답은 내놓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마침내 대한민국 헌정사로나 집권 공화당으로나 창피한 날로 기록되는 7월29일, 공화당 의원총회가 열리는 것이다. 장소는 서울 장충동 소재 신라호텔 구내 영빈관.
“나는 이미 개헌해서는 안 된다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지만, 솔직히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말이에요. 뭐냐 하면 JP만큼은 끝까지 개헌을 저지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JP께서 일본에서 돌아오더니 어찌된 영문인지 개헌 저지에서 개헌 지지로 돌아섰다는 거야. 그러니 반대파에 속했던 의원들도 갈팡질팡하게 되고, 이건 미칠 노릇이야. 의원총회가 끝나면 소속 의원들의 서명과 개헌결의문을 채택하기로 돼 있는데 막을 길도 없고…. 그래가지고 이제는 어쩔 수 없다, 폭탄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이 나라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요소들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내 마지막 양심선언과 같은 ‘폭탄선언’을 할 수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한 거야. 생각해봐요. 이미 박 대통령이 나흘 전인 25일 특별담화에서 ‘개헌을 통해 나와 정부에 대한 신임을 묻겠다’는 발표를 해 놓은 상황인데, 의총에서 솔직한 의견개진이 되겠어요? 의총을 해봤자 김형욱·이후락·김성곤·길재호, 그런 사람들이 짜여진 각본에 따라 의원들을 구워 삶고 지역구 민원이나 해결해주겠다는 식으로 시쳇말로 기분 좋게 마사지나 해주는 건데. 그렇게 해서 서명하고 결의문이 채택되면 국민이 어떻게 볼 것이며, 국회의원은 그 자체가 헌법기관인데 이만섭이의 양심은 어디서 확인하느냐 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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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이 의원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 폭탄선언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말하면 5개항의 선행조건 아닙니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 건데, 어차피 내 혼자 힘으로 막을 수 없다면 국민 보기에도 최소한의 명분은 내걸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의원총회 전날 정말 비장한 심정으로 작성했어. 뒤에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5개항 중 첫 번째가 권력형 부정부패의 원흉인 김형욱과 이후락을 즉각 물러나게 하라는 것이었거든? 그건 정말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소리야. 정보부장과 대통령비서실장을 치는 건데…. 당시 그들의 파워라는 것은 노려보기만 해도 오뉴월에 얼음이 언다고 했을 정도이고, 특히 김형욱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 야당의 기수 김영삼 원내총무 얼굴에 하수인을 시켜 초산을 뿌리게 했던 인간 아니야? 물론 초산 살포가 실패로 끝났지만 문제가 커지고 하니까 초산 뿌렸던 하수인 두 사람이 한동안 숨었다 나중에 인천 앞바다에서 시체로 떠올랐잖아요? 그게 김형욱이 짓이라는 것이 파다하게 퍼졌는데 내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아? 그 정도로 잔인한 인간을 내가 즉각 사퇴시키라고 요구했으니 김형욱의 보복을 생각하면 비장한 각오 없이 할 수 있겠어요?”
5개항의 선행조건
-그날의 의총 분위기와 의원들의 반응도 간략히 회고해주시죠.
“원래 회의는 정각 10시에 열린다고 했는데, 오전 11시가 지나도 회의를 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에요. 그만큼 소속 의원들 의견이 일치되지도 않았고, 심정이 날카로워 있었다는 말이야.
의안의 중대성 때문에 영빈관 주변에는 수많은 보도진이 몰려들었고, 사복경찰들이 정보보고를 하느라 전부 웅크리고 있고 말이지. 식사도 전부 영빈관 안에서 먹었어요. 무려 18시간 릴레이 의원총회를 했으니 그 심각성은 짐작되잖아요? 물론 회의를 대외비로 하자고 했기 때문에 보도진의 접근을 막았지만, 그게 되나?
들어오지는 못했어도 전부 진을 치고 있는 거야. 하여간 회의가 시작되니까 윤치영 당의장서리가 ‘우리 서로 가슴을 열어놓고 토의를 해 봅시다’ 그래요. 그때부터 발언을 하는데, 백남억·오치성·김성곤·김택수·백두진·이병옥·정래정·김성희·오학진·김정열·김우영 의원 등이 단상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개헌 지지 쪽인데, 앞줄에 턱 앉아 있으니 누가 반대하겠어?
단상에서 볼 때 왼편 앞쪽에 앉은 정구영 의원만 참 고독한 모습이더구먼. 당의장을 지낸 분 아니에요? 하여간 잔뜩 긴장들을 하고 있는데 당시 구주류에 속했던 신윤창 의원이 정구영 의원한테 목례를 하고 마이크를 잡더니 ‘개헌을 몰고가려는 당 지도부는 국민 앞에 어떤 명분을 내세우려고 그러느냐’면서 반대 발언을 했는데 그나마도 개헌 반대에 대한 논리라기보다 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 거예요.
그러니까 듣고 있던 오치성 사무총장과 김택수 총무 이마에 갈매기가 떠요. 불쾌하다 이거지. 그러더니 김택수 총무가 벌떡 일어나 마이크를 잡고는 ‘북괴의 도발을 막고 지속적인 경제건설을 해나가자면 지도부의 강력한 리더십이 계속 필요합니다.’ 딱 못을 박는 거야. 이건 반대자에 대한 공박이거든.”
-반대자들은 가만히 있었습니까?
“JP부대의 이론가들로 알려졌던 윤천주·김성희·김우영 의원 등이 반대 발언을 했지만, 이미 JP가 돌아섰는데 설득력이 있겠어요? 사실 4·8 항명파동으로 제명당한 예춘호·양순직·김달수·박종태·정태성, 그런 의원들이 있었으면 끝까지 반대하겠다고 해서 분위기는 달라졌겠지만 그 사람들은 무소속이 돼버렸고, 그때 나하고 끝까지 반대했던 정구영 의원이 나서요. 참 꼿꼿하시더구먼.
‘현실여건의 변화는 있을지라도 원칙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어요. 개헌은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소신이올시다. 몸이 편치 못해 긴 말은 못 하겠으나 찬반토론을 들으려고 모였으면 완전한 자유 분위기를 보장해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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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만 딱 하고 노인이 흐느적흐느적 회의장을 걸어 나가시는데 말이야….”
일순간 장내에는 비애가 스치는 것 같았다. 이만섭 의원이 상체를 일으키며 정구영 의원을 응시했다. 밖으로 나가던 정 의원도 약간 걸음을 멈추고는 이 의원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지만 서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이어 오학진·김정열 두 의원이 반대 발언을 했지만 역시 대수에 묻혀버렸다.
오전 의총은 결론 없이 끝나고, 다시 회의가 속개된 것이 오후 2시께. 의외로 회의는 길어질 조짐을 보였다. 이러다 자칫 결론이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을 우려했는지 김택수 총무가 허리를 반쯤 굽히고 빠른 걸음으로 김성곤 재정위원장 앞으로 갔다. 그러더니 “이제 웬만큼 토론했으니 결론을 내립시다”라고 했다. 그러나 김 총무의 판단은 착오였다. 누구랄 것도 없이 저항을 보였다.
“토론은 무슨 놈의 토론! 토론한 게 뭐 있어?”
“당신 혼자 토론했어? 더 해야 돼. 더!”
여기저기서 고함이 터졌다. 별 수 없이 저녁식사 시간을 가져야 했다. 이만섭 의원이 보이지 않은 것은 그때였다. 그는 홀 모퉁이에서 담배만 빨아대고 있었다. 이 의원은 필경 7월22일 밤 2시간40분간 박 대통령과 독대하던 때를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의총이 열리기 꼭 1주일전인 7월22일, 그는 박 대통령의 호출을 받았다. 물론 그 배경이 있었다.
당시 개헌 추진은 이후락·김성곤·길재호·김형욱 씨 등이 분담해서 맡았다. 각자 분류해서 지연·학연·혈연 등으로 나눠 각각 개헌 반대자들을 설득하거나 협박하면서 찬성하도록 회유해 나갔다. 그러나 이들 4명 중 어느 누구도 이만섭에게는 접근하지 못했다. 결국 이후락 실장이 박 대통령에게 “이 의원은 각하께서 맡아주셔야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박 대통령은 화를 버럭 냈고 “여태까지 그 놈 하나 꼼짝 못하게 끄나풀도 안 만들어놓고 뭐 했어”라고 했다. 끄나풀이라는 것은 비위사실 같은 약점을 말하는 것이었다. 별 수 없이 박 대통령은 “내가 만나지” 해서 이만섭은 박 대통령 담당이 됐던 것이다.
-박 대통령이 호출했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내 기억력은 아직 청년이야! 하하…. 그때는 나도 각오하고 들어갔지. 박 대통령과 2층 응접실로 들어갔는데, 핵심은 뻔하잖아요? 박 대통령이 은은한 미소까지 보이시면서 ‘이 의원, 나를 도와주겠지요?’ 이러시더구먼. 나도 착잡했지만 각오하고 갔으니 ‘각하, 저는 3선개헌에 반대합니다’라고, 분명히 그랬어요. 그때부터 2시간40분간을 맞서는 거예요. 박 대통령의 눈빛에 날이 서고 대단하시더구먼.
‘왜 반대해?’
‘각하, 5·16은 나라를 위한 구국혁명이었다고 하더라도 무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각하의 업적 때문에 국민은 무력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헌하시면 그야말로 지금까지의 업적보다 무력이었다는 사실이 더 강하게 살아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5·16의 근본부터 흔들리게 될 것 아닙니까? 5·16을 승화시켜야 합니다.’
그랬더니 단박에 ‘이것봐요’ 하시더니 내 말을 잘라버리면서 ‘그게 반대 이유야’ 그러시는데, 이미 엎어진 물이야. 눈에서 광기가 나요. 그렇지만 나도 할 말은 해야겠다 싶어 ‘각하, 후배에게 넘기십시오. 김 당의장(JP)이 싫으시다면 다른 사람한테 4년만 맡기십시오. 그리고 4년 후 다시 정권을 잡아 또 8년을 하시면 되잖습니까?
그때는 남북문제를 심도 깊게 다뤄 나가십시오’ 그랬어요. 그때는 굉장히 참으시는 표정이야. 그러더니 차를 가져오라고 해서 한 모금 마시고는 톤을 착 가라앉히면서 그래요. 시간이 꽤 흘렀지. ‘그렇다면 이 의원은 누가 좋겠어? 종필이야?’ 상당히 부정적 표정으로 되받아요. ‘꼭 김 당의장이 싫으시다면 이효상 씨나 백남억 씨는 어떻습니까?’ 그랬지.”
박 대통령은 잔뜩 찡그리더라고 했다. 한마디로 시원찮은 인물로 여기고 있음이었다. 그러면서 그 두 사람에 대해 단점만 열거할 뿐 장점이라고는 단 하나도 꺼내지 않더라고 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이 순간은 실로 시한부에 매달린 집권자의 고독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순간이었다. 쾅! 하고 박 대통령이 내리친 주먹에 탁자가 휘청 했다.
박 대통령의 호출
“각하, 누가 잡아도 다 똑같고 마찬가지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대로 해석하셔야 합니다. 간신배들이 해석해 주는 대로 이해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미 이만섭의 말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다른 사람한테는 이런 말 안 해. 만약 4년간 다른 사람한테 정권을 맡겼다 4년 뒤에 다시 잡는다는 보장이 없으면 어떻게 해!”
“예?”
이 의원은 얼음판에 나자빠진 황소마냥 눈만 껌벅거릴 뿐이었다.
“4년 동안 정권 맡겨 놓으면 조직 다 짜게 될 거고, 그렇게 되면 4년 후에 나한테 가져올 놈이 어디 있어?”
“아이고, 각하. 만약 조직을 잘 짜고 일을 잘한다면 각하께서 다시 하실 필요는 어디 있습니까? 그냥 나라의 어른으로서 이끌어 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이런 미친놈’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만섭 의원의 대꾸가 용감하기는 했으나 여간 미련한 대응이 아니었던 셈이다. 결국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국민에게 직접 개헌의 찬반을 묻겠다고 했다.
-영빈관 폭탄선언이 의원총회의 하이라이트가 되는데, 의원들은 의장님이 당시 폭탄선언을 할 거라고 예상하는 분위기였습니까?
“전혀 폭탄선언이 나오리라고는 누구도 예상 못 했지. 솔직히 ‘폭탄선언’이라는 것은 언론에서 붙여준 제목이고, 의원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면서 내가 밝힌 선행조건을 만장일치로 채택해주리라는 것도 터뜨리기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다고요.
내가 전날 준비한 원고를 꺼내놓고 그랬다고. ‘좋아요! 개헌한다고 칩시다! 하지만 지금의 공화당 꼬락서니 가지고 어떻게 국민을 납득시킵니까! 그래서 나는, 먼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5가지 선행조치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로 이후락 비서실장과 김형욱 부장을 부정부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즉각 물러나게 해야 합니다!’ 이랬더니 첫 번째 조건에서부터 상상도 못했던 이후락·김형욱 이름이 나오니까 의원들이 완전히 굳고 술렁거리는 거야.”
분위기를 열기 속으로 몰아넣는 발언이었다. 5개항의 선행조건이 있다면서 이제 겨우 한 가지만 했는데도 여기저기서 “옳소!” 하는 함성이 터졌고, 어느 의원은 두 손을 번쩍 쳐들고 박수까지 쳐댔다. 김성곤 의원과 장경순 국회부의장이 후다닥 일어나더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장내는 삽시간에 긴장 속으로 치달렸다.
바로 이것이 이후락 실장과 김형욱 부장을 퇴진하게 만드는 결정적 탄환이 된 셈이었다. 이만섭 의원의 발언은 계속 됐다. 그것은 ‘중앙정보부는 정치에 간여할 것이 아니라 대공 사찰에만 전념할 것과 차제에 말단의 단속에만 그치고 있는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는 조처를 단행할 것, 개헌안이 설사 부결되는 한이 있더라도 국민투표는 공명정대하게 할 것, 당의 체질을 창당 이념에 부합하도록 개편할 것, 4·8 항명파동 등으로 제명된 의원들을 복당시킬 것’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그야말로 겁 없는 30대 이만섭의 발언에 장경순 국회부의장은 파랗게 질렸고, 김성곤 의원은 황급히 백남억 의원과 심각한 귀엣말을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미 의총 회장은 박수가 지진을 일으킬 정도가 돼버렸다. 겁을 집어먹은 백남억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정치 부재를 인정도 하고 의원들의 소외감에 대해 위로도 보낸다”고 했지만, 이미 치솟은 불기둥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했을 뿐 도저히 진화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만섭 의원은 5개항에 대해 조치가 따르지 않으면 서명할 수 없다고 배수진까지 치고 있었다. 어느새 밤 11시. 이변이 일어났다. 생각지도 않았던 이 의원의 선행조건이 의원들의 만장일치로 채택돼버린 것이었다. 긴급간부회의가 열렸고, 시간은 새벽 2시, 김성곤 재정위원장과 장경순 국회부의장이 다급히 선행조건을 들고 청와대로 달렸다.
-박 대통령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나도 나중에 들었는데, 두 사람이 들어가니까 이미 대통령은 내용까지 훤히 알고 ‘선행조건은 무슨 놈의 선행조건이야? 당신네들이 언제부터 선행조건을 찾았어’ 하면서 커피잔을 집어 던지고 책상을 걷어차면서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더라는 거지요.”
-김형욱 씨와 이후락 씨의 반응도 있었을 것 아닙니까?
“그것도 뒤에 들었는데, 김형욱은 부장실에서 녹음을 통해 회의 내용을 듣고 있다 ‘이만섭이 이놈 새끼 죽이갔어. 이놈의 새끼 죽이갔어’ 하더니 청와대 이후락 실장 방으로 달려가더라는 거지. 그래가지고 이후락 앞에서 길길이 뛰면서 당시만 해도 김형욱이가 이후락한테 형님이라고 불렀거든? ‘형님! 이만섭이 이놈 죽입니다! 이만섭이 이놈이 이후락하고 김형욱이가 있는 한 공화당은 국민 앞에 낯짝을 들지 못한다고 했시요! 우리보고 부정부패의 원흉이고, 책임을 물어 즉각 몰아나야 한다고 그랬단 말이야요!(잠깐 쉬고) 아 형님은 왜 입만 꾹 다물고 있습네까!’ 이랬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김성곤이 그 놈도 없애버리는 건데, 이만섭이가 누구를 믿고 까불었겠느냐, 김성곤이가 배후다, 김성곤이도 수염을 확 뽑아버리든지 죽이겠다고, 김형욱이가 이북 출신인데 성질은 급하고 펄펄 뛰더라는 거지. 충분히 그랬을 거야. 그런데 이 실장은 김형욱보다 수준이 다르니까, 의총에서까지 성토가 나왔고 이제는 그만둘 때가 왔다고 생각했는지 김형욱한테 ‘그만두어야 하지 않겠어’ 그랬다는 거지요. 그런데 김형욱은 ‘나는 그렇게 못 합네다! 이만섭이부터 죽이갔어요!’ 이러면서 뛰쳐나갔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자 선행조건이 안 되겠다고 하는 마당에 머뭇거릴 것이 없었다. 이 의원은 다시 마이크를 잡고 “동지 여러분! 이후락·김형욱이를 당장 여기에 불러와서 사퇴시킵시다” 하고 고함을 쳤다. 그때였다. 김성곤 의원도 분노를 터뜨렸다. 정보부에 자기 라인이 있었던 김 의원이어서 정보가 남달리 빨랐던 그는 커다란 모션을 써가며 “김형욱이가 나를 잡아가겠다고 길길이 뛰고 있다 그칸다! 저 밖에 얼굴 없는 그림자가 진을 치고 있다! 나를 죽이겠다고 그칸다는데 누구 글씨 잘 쓰는 사람 내 유언 좀 받아 적거라” 이러면서 불을 댕겼다. 얼마 전까지 개헌공작을 같이했던 사이가 여지없이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
거물급 정치인들이나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꽁뜨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분위기가 이쯤에 이르자 장경순 부의장은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청와대로 달려갔고 얼마 뒤 퍼석한 얼굴로 돌아와 “잘될 것이다.
그러니 나를 믿고 개헌결의문을 채택하자”는 설득을 폈다. 박 대통령이 잘 알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의원총회는 대통령 임기를 2차 중임까지 허용한다는 개헌안을 의결하기로 하고 선행조건 결과를 다음 의총 때까지 기다려보자면서 끝났다. 30일 새벽 2시가 넘고 있었다.
-의장님은 집으로 가지도 못했지요?
“못 갔어. 이미 김형욱이가 나를 죽인다고 수류탄과 권총을 소지한 중정 요원을 우리 집으로 출동시켰다는 정보는 들어오고 말이야. 참담하더구먼. 어쨌든 코로나 승용차에 올라탔는데, 그때 <중앙일보> 정치부 심상기 기자가 재빠르게 내 차에 올라탔어.
취재하려고. 심 기자가 질문공세를 펴는데, 상당히 과감하고 논리정연하더구먼. 하여간 도중에서 심 기자를 내려주고 그때부터 어디로 가야 하나 망설여져요.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그렇게 허망한 기분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었을 거야. 광화문 넓은 길을 두고 좁은 이면도로를 몇 바퀴 돌았는데 골목길의 지저분한 풍경마저 아름답게 느껴지는데, 국회의원인 내 자신은 숨어들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추한 것 같고 말이지. 결국 집으로 못 가고 미아리 친척집으로 갔지.
선행조건에 대한 결말도 못 보고 김형욱의 밥이 될 수는 없잖아? 그래가지고 미아리에서 새벽을 보내고 집으로 전화하니까 청와대에서 김성구 비서관이 대통령께서 찾는다고 전화가 왔다는 거예요. 평소 대통령이 찾을 때 연락했던 사람이 김성구 비서관과 전석영 비서관이야.”
-김형욱이는 정말 결행하려고 하수인을 의장님 집으로 보냈습니까?
“그게 재미있어. 실제로 김형욱의 직속부하가 나중에 나한테 실토하면서 권총과 수류탄으로 나를 죽이라고 했다고 그랬는데, 김형욱이가 기밀문서실로 감찰실장하고 부실장을 불러 이만섭이를 죽이라고 했다는 거야.
부실장이 ‘누구 명령입니까’ 하니까 ‘무조건 죽여!’ 이러면서 씩씩거리더래. 직감적으로 이건 김부장 명령이다 싶어 ‘이만섭이를 정치적으로 죽이면 되지 육체적으로까지야 죽일 필요 있습니까?’ 했대. 그러니까 더 길길이 뛰면서 ‘정치적이고 육체적이고 죽여! 뒤는 내가 책임져!’ 이랬다는 거예요. 그러니 도리 없이 수류탄과 권총을 들고 나갔다는 거지.
그런데 김성곤 의원이 그 정보를 듣고 신문로 자기 집에서 속이 불편해 죽을 먹고 있다 곧바로 뛰어나가 박 대통령한테 ‘이만섭이를 해치면 큰일납니다. 안 그래도 개헌정국으로 난리인데 어쩌자는 겁니까’ 그랬대. 그러니까 박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김형욱한테 전화 대라고 하더니 ‘이만섭이한테 손댔다가는 임자(김형욱)가 나한테 죽어!’ 하시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암살공작이 멈춘 거야.”
3선개헌 국민투표와 개각
-박 대통령은 왜 들어오라고 한 겁니까?
“결국 내가 선행조건으로 내걸었던 것을 받아주신 거예요. 청와대로 들어가니까 대통령께서 대뜸 그래요. ‘이 의원, 김 부장하고 이 실장을 왜 그리 못 잡아먹어서 그래?’ 그러시더라고.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는 감정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내 개인 차원이 아니었다는 말이야. ‘각하, 제가 잡아먹자는 게 아닙니다.
국민이 잡아먹으려고 그럽니다. 각하도 잘 아시잖습니까? 장관들 약점 잡아 마음대로 흔들고, 의원 중 대부분이 김 부장한테 당하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알고 있어’ 이러시더라고. 그러면서 김성곤 의원하고 나하고 관계라든가 JP하고 관계, 뭐 몇 가지 말이 있었지만 ‘이 의원, 충정은 알겠어’ 이래요.
그것으로 다 끝났구나 했지. 그런데 그날 저녁에 또 부르시는 거야. 하루에 두 번씩 부르는 경우가 없다 싶어 다시 들어가니까 저녁을 먹자고 하면서 청와대 식당으로 내려갔는데, 거기에 이후락·김형욱·김성곤 씨가 와 있잖아. 아하, 각하께서 화해시키려고 하시는구나 싶어요. 그런데 그 순간 김형욱이가 나를 쏘아보면서 ‘야, 이 의원! 나한테 그러기야?’ 이러는 거야.
‘뭐 이 새끼야? 네가 할 일은 그만두는 것밖에 없어! 네가 각하 앞이라고 큰소리쳐?’ 그걸로 사실상 김형욱하고 나하고는 영원한 작별이 된 거야. 김형욱은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 못했고, 내가 대통령 앞에서 그래서는 안 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됐지요.”
이제, 마지막 의총이 개헌안 투표를 이틀 앞두고 다시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리게 됐을 때였다. 박 대통령은 이만섭 의원을 다시 호출한다. 여기서 대통령은 선행조건을 수용하는 결정적 발언을 하는 것이다.
“국민투표가 끝난 뒤 둘을 조치할 테니 의총에서 이 문제가 다시 나오지 않도록 해줘야겠어.”
대통령으로서도 7년이 넘는 세월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이후락 실장을 자르는 것까지 생각할 때는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의원은 확실한 답을 기대하면서 국민투표를 하기 전에 잘라야 한다고 했다. 국민 투표가 끝나고 나면 두 사람은 찬반투표의 공로자가 되는데 자를 수 있겠느냐는 것이 이유였다.
“너무 고집부리지 마라. 투표를 앞두고 둘을 그만두게 하면 개각을 해야 하지 않나? 조직을 바꿔 놓으면 차질이 생겨 안 돼. 나한테 맡겨.”
대통령은 약속을 지켰다. 10월17일.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가결되고 사흘 뒤인 20일 정일권 내각과 이후락 비서실장, 김형욱 정보부장 등이 일괄사표를 냈고, 1주일 뒤인 10월27일 개헌안이 정식 공포되면서 정부 요직을 대폭 개편한다. 그 중에 중앙정보부장 김계원, 비서실장 김정렴의 이름이 새롭게 뜨는 것이다.
이만섭 전 의장은 그랬다.
“이후락 실장이 대사로 떠나기 전날이야. 옥류장에서 이 실장 환송회가 열렸는데 우연히 그곳에 갔다 이 실장을 만났어. 건강하게 있다 오라고 했더니 이 실장이 웃으면서 그래요. ‘이 의원께서 나를 쫓아냈으니 불러들이는 것도 이 의원께서 책임지고 불러들여주세요.’ 하하하. 역시 단수가 높은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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