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재료를 구하러 중국에 갔을 때 공원마다 노인들이 부드럽게 혹은 고요하게 태극권에 빠져있는
모습을 지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부드럽게 몸이 출렁이다가 꼬이면서 마치 구렁이가 기어가듯
손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모습을 보자 그는 전율이 이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온통
그의 머리 속에는 태극권의 그 오묘한 몸놀림이 생각 났다. 한국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구해 읽고
미처 채우지 못한 부분은 중국을 주유하며 스승을 구했다. 스승을 구하기 위한 그의 행로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중국에서 무예로 이름이 있다고 하는 분들을 찾아가서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대개가 허명만 있고 진짜 무술의 대가가 아니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야말로
이름만 날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무림의 진짜 고수는 숨어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중국 전역에 태극권의 진짜 고수를 찾기 위해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영화배우 이연걸에게 태극권을 가르친 명인 등걸 노사로부터 진식 태극권을,
위수인 노사로부터 양식 태극권을 배사했다. 도가 곤륜파 29대 장문인 양매군 노사에게 직접
대안기공을 사사 받았으며, 일인 전승으로 이어지는 음양팔괘장을 전극련 노사에게 배사받았다.
짧을 때는 한 달에서 길면 두세 달까지 중국에 머무르면서 스승들의 무술을 익힐 때면
세상이 온통 중원이었고 무림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고단했다.
작은 도장을 했지만 태권도 처럼 인기 스포츠가 아니다 보니 관원이 10 여명도 채 되지 않았다.
임대료를 내고 나면 언제나 생활은 어려웠지만 무술에 대한 못 말리는 집념만큼은 금강석처럼
단단해지기만 했다. 그에게는 돈과 명예보다 귀한 것이 태극권이었기 때문이다.
태극권에 미친 정 선생의 연공을 도운 이는 바로 아내 김경희 씨였다. 처음에는 그녀도
보통의 아내처럼 바가지를 긁었다. 생활에 보탬이 되기는 커녕 일년이면 두세 번은 무술수련을 위해
훌쩍 중국으로 날아가는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다 남편이 그토록 미쳐있는 태극권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8년전이었다. 태극권을 정식으로 배우면서 그동안 남편에게 가졌던 원망과 아픔이 사르르
녹아내려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은 누구보다도 남편의 삶을 이해하는 동지가 되었다.
그녀는 최근까지 카톨릭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태극권 강좌를 맡기도 했다.
"태극권은 정신이 일어나면 기가 뒤를 받치고 그로 인해 몸이 움직이는 무술입니다. 부드럽다고 해서
태극권이 약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능히 제압할 수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무술의 강하고 약함을 논하는 것 자체가 정민영 선생에게는 허망한 일이다.
태극권은 남과 싸워 이기는 박투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는 국내 이종격투기 강자중의 한 명이지만, 당시 택견 최고수인 홍주표 선수가 정 선생의 태극권
도장을 찾아와서 수련을 하게된 원래 목적은 싸움의 기술을 배우고자 했던것이 아니라 심신의 건강을
위함이었다. "상대방과 싸워서 이기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저 끝나고 나서 인터뷰를
어떻게 할 것인가만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무념이 되었을 때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죠."
고수와 발경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현대의 태극권은 생활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태극권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고, 여러가지 질병도 바로잡을 수 있다. 중국의 많은 사람들이 태극권에 심취해
있는 것도 도구없이 누가나 쉽게 그리고 확실하게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 스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고요함으로써 기를 맑게 해야 순정스러운 진기가 나온다고요.
순정스러운 기는 욕심을 버려야 가능한 일입니다.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없으면
우주가 신비스러운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무예의 궁극적인 도는 결국 남을 위해 사는 마음,
스스로의 욕심을 없애는 것입니다. 제가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바로 마음입니다.
자기 마음을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죠."
무술을 좋아하고 무림의 세계에 빠져있던 소년은 현실의 풍파를 거쳐 다시 무림으로 돌아왔다.
절대고수들이 결국은 마음의 바다에 몸을 맡기듯이 정민영 선생도 심해(深海)속에 사는 기쁨이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다. 그에게서 무술인의 땀 냄새가 아니라 묵향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무림고수에게만 느껴지는 부드러운 예기가 훈풍처럼 도장 안을 채워나갔다.
글.사진/ 최병열 (2007.02. 새마을 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