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의 훈요 10조란 무엇일까?
[ 자 료 ]
● 훈요 10조
짐이 듣건대, 순(舜) 임금은 역산(歷山:중국 산둥성에 있는 산)에서 농사를 짓다가 마침내 요(堯) 임금의 선양(禪讓)을 받았고, 한(漢) 고조(高祖)는 패택(沛澤)에서 일어나 드디어 한나라 제업(帝業)을 일으켰다고 한다. 짐도 또한 미천한 가문에서 일어나 그릇되게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서, 여름에는 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겨울에는 추위를 피하지 않으며, 몸과 마음을 괴롭힌 지 19년 만에 삼한을 통일하였다. 외람되게 왕위에 있은 지 25년이 되니, 몸은 이미 늙었도다. 다만, 뒷임금들이 정욕(情慾)을 함부로 부려서 기강을 어지럽게 할까 크게 근심하는 바이다. 이에 훈요(訓要)를 말하여 뒷날에 전하니, 바라건대 조석(朝夕)으로 펴 보아 영구히 귀감(龜鑑)으로 삼을 지어다.
1. 우리 나라의 대업은 부처님 덕분이니, 교·선의 사원을 창건하도록 하라.
2. 모든 사원은 다 도선이 산수의 순역을 가려서 개창한 것이니, 함부로 사원을 지어 지덕을
손상시키지 말라.
3. 왕위 계승은 적자·적손을 원칙으로 할 것
4. 거란과 같은 야만국의 풍속을 본받지 말 것
5. 서경은 수덕이 순조로워 우리 나라 지맥의 근본이니 100일간 그 곳에서 머물라.
6. 연등·팔관의 주신은 가감하지 말 것
7. 소인을 멀리하고, 현인과 친하며, 조세를 가볍게 하고, 상벌을 공평히 할 것
8. 차현 이남의 인물을 등용하지 말 것
9. 관리의 녹봉은 그 직무에 따라 제정할 것
10. 경사를 널리 읽어 고인의 말을 거울 삼을 것
[ 개요 및 분석 ]
훈요 10조는 고려 태조가 942년(태조 25년)에 자손들을 훈계하기 위하여 몸소 지은 열 가지 유훈으로 태조가 죽을 무렵 박술희에게 전하여 후세의 귀감으로 삼도록 부탁한 것이다. 고려 왕실의 한 헌장으로 태조의 신앙, 사상, 정책, 규범 등을 보여 주는 귀중한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고려사 태조 세가 26년 4월조와 고려사절요 동년 동월 조에서 보여지는데 이는 당시의 실제 상황을 기록한 고려 실록에서 인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훈요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 부분은 서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신서(信書)이며 뒷부분은 본론격인 10조의 “훈요”이다. 최근 이 훈요 10조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