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야행*
신 택균
날씨가 좋은날 여행을 떠나게 되면 운이 좋다고 생각들 것같다.
여행 날짜는 잡아 놓고 일기예보에 비가 오거나 바람이 강하게 분다면
출발부터 삐걱대고 말 것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차에는 간단하게 잠을 잘 수 있게 잠자리에 필요한 것을 챙겨 실었다.
물론 식사도 차에서 해먹을 생각에 준비를 했다.
서울외곽고속도로에 들어 서기전에 주유소에 들러 자동차에 연료를 가득 채웠다.
오랜만에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서해안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이른 아침인 데도
차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얼마를 다렸는지 웅장한 서해대교가 나타났다.
휴게소에서 아침을 해결 하고 가기로 하고 차를 휴게소 한쪽으로 주차를 했다.
가스렌즈위에 냄비 물을 올려놓고 컵라면과 햅반을 데워 김치와 마른반찬의
진수성찬에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아침밥은 최고의 조반이 되었다.
배를 두둑하게 채우고 다시 길을 재촉 하였다.
처음으로 찾은 곳은 서천 비인 동백정 이다.
동백정은 1980년대 내가 젊은30대 때 어려운 시기에 추억을 갖고 있는 곳이라
언제 부터인가 시간이 되면 가보고 싶은 곳 이었다.
세월은 30년이 지났지만 그때 묵었던 똘이네 식당이 지나치는 차창 밖으로 보였다.
동백꽃이 굴락을 이루고 있어 동백정 이라 명명 한 것 같아 보였다.
추억을 아로 새기며 다시 길을 나섰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서 고창 선운사에 들어섰다.
첫 인상은 고 사찰이라고는 하지만 주차비와 입장료가 비싸다는 느낌이 와 닿는다.
사찰을 들러보고 나오다가 주차장에서 점심을 해결 하고 가기로 했다.
갑자기 비가 오다 말다 하는 날씨에 컵라면에 햅반을 끓이고 데워서 해결을 하고
비를 맞으며 디저트로 커피까지 마시고 다음 행선지로 길을 나섰다.
길에 있는 이정표를 따라 간 곳은 고창 청 보리밭 너무 아름답고 멋지다.
넓은 청 보리밭은 답답한 마음을 확 트이게 하며 푸른 보리밭 속 에서 들리는
음악이 추억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있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많은 사람들이
비를 피해 몸을 숨기기에 바쁘다. 정말 아름다운 보리밭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아쉽다는 느낌을 받으며 다음 행선지로 길을 나섰다.
고흥으로 가다 보니 담양이 눈에 들어 왔다.
이왕 온 김에 담양 대나무를 보고 가기로 하고 차를 담양 죽녹원 으로 향했다.
대나무숲길 그림으로만 본 대나무 길을 걷고 있다.
1박2일 강호동 팀이 다녀갔다는 표지막이 시야에 들어 왔다.
금강산도 식후구경 이라고 저녁 시간이 돼 저녁은 사먹기로 했다.
물론 거금을 들여 저녁을 먹는 것이다. 담양에 와서 죽순요리는 먹어 봐야할 것 같다.
대나무 통밥 죽순나물 무침으로 저녁은 해결 했지만 거금을 썼다는 것이 아쉽다.
너무 비싸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오늘 묵을 잠자리를 구해야 할 것 같다.
처음 계획은 차에서 자는 것을 생각 했는데 찜질방에서 자기로 했다.
담양에서 찜질방을 찾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찾을 길이 없어 파출소에
물었더니 하나있던 찜질방이 보수수리 기간이라며 담양에서 가까운 광주로 알려준다.
해는 지고 화려한 레온불빛 어리벙벙 남에 동네 와서 물어물어 24시 찜질방을 찾아
시원하게 목욕하고 내일의 일정을 위해 찜질방에서 잠을 청했다.
일찍 샤워를 하고 찜질방에서 짐을 챙겨 나섰다.
국도를 따라 고흥 나로도를 향해 달리다 휴게소를 만나 아침을 해결 하고 가기로
하고 차를 휴게소 한쪽 모퉁이에 주차를 했다. 비가 오락가락 한다.
비를 맞으며 전과 같이 컵라면에 햅반과 김치 멸치볶음 양반 김으로 아침을 뚝딱
하고 커피가지 한잔씩 마시고 다시 길을 재촉 했다.
전남 고흥 나로도 나로 우주기지에 도착하였다. 날씨가 오늘도 비가 뿌리다 말다를
거듭하며 안개가 시야를 맑게는 해주질 못한다. 그래도 남쪽 끝자락에 와있다.
로켓 우주선 모형이 당당하게 하늘을 향해 당장이라도 괴음을 내면 하늘로 치솟아
오를 것 같은 기세로 당당히 서있다. 전시실과 4D영상관을 관람하고 다음 목적지 남해로
방향을 잡았다. 남해에는 독일마을과 보리 암을 찾아 가는 길이다.
몇 년 전에 광양 매화마을 홍쌍리 매화 촌으로 매화꽃을 나들이에 왔던 그곳 같았다.
불자들이 많이 찾는 보리 암을 거쳐 독일마을을 찾아 갔다.
독일 광부 간호사 들이 나라살림 도와 달러벌이 가서 돌아오지 못하고 살다
고향에서 살다 죽겠다고 찾아와 형성된 마을로 알면 될 것 같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이런 노래도 있지만 고향을 찾아온 독일마을 어르신께
건강하고 행복한 고향생활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해에서 다리를 건너 섬마을 또 다리를 건너 삼천포항에 왔다.
부두가의 생선비린내가 코를 자극 한다. 삼천포항 갈매기는 울어대는데 뚝방에 걸터앉아
저녁을 먹는 맛이란 어느 누구도 모를 것이다, 컵라면에 햅반 묵은 김치 정말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배가 부르고나니 잠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 같다.
오늘은 쉽게 삼천포에서 24시 찜질방을 쉽게 찾았다
.
어제 광주에 찜질방 보다는 규모와 시설이 떨어졌고 사용료도 비쌌다.
오늘도 목욕을 하고 찜질방에서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삼천포찜질방에서 일찍 나섰지만 이른 아침부터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비도 내리고 아침식사는 휴게소에서 사먹었다.
가격만큼 음식이 따르지 못해 후회가 들고 컵라면에 햅반 묵은 김치가 떠올랐다.
진영에서 빠져나와 봉하 마을로 향하는 중이다. 내가 봉하 마을을 찾는 것은 이렇다.
정치를 꿈꾸는 정치문하생도 아니고 여당 야당에 속하는 당원도 아니고
노사모 회원도 더군다나 아니다. 한때는 정치인 노무현 그리고 대통령 노무현 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고 노무현 대통령의 모든 것 이었다.
갑작스런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에 가슴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
노무현 대통령을 다시 생각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생각을 한다.
그 후 노무현대통령묘소 박석기부에 참여해 놓고도 시간이 나질 않아 이제
가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묘소에 우리부부는 정중히 참배를 마치고 수많은 박석 중에
내가 기부한 박석을 찾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나-45구역” 이란 것은 알고 갔지만 묘소 관리 안내 하는 분의 도움으로 찾을 수가
있었다.
“노무현님은 영원할 것입니다” 라는 글과 내 이름 석 자가 대통령님을 지키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부엉이바위 대통령의 생가를 들러 보고 다시 길을 재촉 했다.
하늘도 슬퍼 우는지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 속에도 참배객은 줄을 이었다.
고속도로를 잘 못 들어가고 나와 부산을 왕복 하고 난 끝에 경주에 도착 할 수가 있었다.
경주는 4번째 오는것 같은데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학창시절에 수학여행으로 다녀갔고 직장에서 봄 야유회로 경주로 해서 포항 해안도로
타고 설악산까지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가족 두 딸 초등학교 다닐 때 경주-포항-
백암온천-강릉 그리고 이번에 단 둘이 경주를 찾아왔다.
불국사에 도착해 들어서 다보탑 석가탑 을 들러 대웅전 부처님 앞에서 두 손 모아 소원을
빌며 계속되는 재배 속에 아내에게 고마움과 감사하며 건강하길 기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길 끝칠줄 모르던 빗줄기가 충북 괴산을 지나자 화창한 햇살이
차창을 통해 환하게 비친다.
아내는 부처님께 두 딸 좋은 배필 만나 행복하게 살게 해 달라고 빌었단다.
그리고 남편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해달라고 빌었단다.
이런 사람이 우리의 아내이고 자식들의 엄마가 아닌가 한다.
아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고 사랑 한다고 전해주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