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의 일이다. 부산의 시내에서 14호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윗반송을 지나 안평 조금 못미처 풀웅덩이가 있었고 아래로 야트막한 줄물기가 돌들 사이로 흘렀다. 반송천이다.
아침이 끝나 햇살이 본격적으로 반짝이는 여름의 이곳은 동네 사람들로 왁자했다. 아낙네들의 흥정맞은 빨랫방망이 소리며 사내들의 등목 치는 소리에 개구쟁이 아이들의 요란한 물놀이 소리다. 엄동설한이면 어떠랴, 찰싹찰싹 아낙들의 빨랫방망이 소리야 계절이 없지만 사내와 아이들에게는 제철이다.
일상도 비슷했으니 차림도 별반 내세울 게 없다. 반소매에 일바지가 아니면 쓰란치마고 아이들은 러닝 하나가, 초등학교생의 조금 큰 녀석이라면 허리끈을 동인 색바랜 반바지가 고작이다.
아이들은 물놀이에 빠지고 펀한 석괴의 아낙들은 이야기 꽃을 피운다. 수다 반, 빨래 반이다. 화제는 동네 소문이며 가족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 애들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못 살겠어요'로 시작한 한 아낙의 푸념은 옆의 '누가 아니래요, 우리애두 그렇다니까요, 그런데 누가 그러더라? 아랫동네 영식이는 중학교 시험에 좋은데 붙었다던데...'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건너편 아낙이 '그래요?'하고 위에서 놀던 자기 아이를 향해 '야이 녀석아! 물놀이만 하지말고 들어가 공부 안 해, 으응!'하며 물방치질을 멈추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방망이를 냅다 휘젖는다. 이러면 화기애애하던 빨래터 분위기가 순식간에 살얼음으로 변한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눈치있는 처음의 아낙이 화제를 바꾼다.
'에이, 뜬소문이겠지요. 그 학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데'로 슬쩍 빼다가 어젯밤 정전으로 어떻게 지냈느냐, 빨래 삶을 때 연탄불은 잘 피더냐 등으로 대상을 바꾸기라도 한다면 불을 지펴 움찔했던 아낙이 기다렸다는 듯 '촛대를 찾다가 거기에 찔릴 뻔했다'는 우스개로 슬쩍 피한다. 그러면 조금 전의 분위기는 간 곳이 없고 빨래터는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된다. 그러니 힘든 빨래도 시간가는 줄 모른다.
아낙들이 이러는 사이 개천에서 놀던 아이들은 풀웅덩이로 간다. 물고기를 잡기위해서다. 그물이래야 나란히한 막대기 두 개를 모기장으로 어설프게 엮은 것이 고작이지만 그래도 신난다. 하나가 그물을 수풀에 들이 대면 둘은 양쪽에서 발을 굴려 몬다.
"빨리 올려, 빨리!"
물고기를 몰던 둘 중 하나가 다급하게 소리치면 잡고 있던 아이는 그물을 한 번 더 앞으로 밀고는 순식간에 걷어 올린다. 겨우 미꾸라지 몇 마리가 고작이다.
그러다가 그물에서 새끼 붕어 한 마리라도 포들짝거리면 난리가 난다.
"와아, 형아야, 붕어다, 붕어!"
먹을 것도 아니면서 환성이 대단하다.
이렇듯 당시의 개천은 단순한 물놀이나 빨래만 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쉼터인 동시에 내일을 준비하는 광장으로 일상을 채워 나갔던 공간이었다. 인정과 개천물이 동시에 마른 오늘, 이웃의 웃음과 호흡이 얽혔던 반송천의 아늑함에 빠져 본다.
소설가 이호길
novel_57@hanmail,net
첫댓글 김광수 올림, 모처럼 카페에서 신작콩트 읽으니 기분 참 좋습니다. 메아리 없는 글올리기에 지쳐서 달포쯤 쉬려 했는데, 이호길 소설가님이 용기를 주셨습니다.
언제나 우두커니 카페를 지켜주시는 거 다 알아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