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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마음의 눈’을 찾아서
신발이 가득 걸린 나무의 이야기를 엄마가 들려주자 아이가 물었다. “엄마, 나도 그 나무 보고 싶어요.” 어른이 되면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터무니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동화책을 읽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읽고 나서 그 터무니없(다고 여겨지)는 얘기에 감동받고 그것을 곱씹어 간직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최근 미하엘 엔데의 장편동화 <모모>가 TV드라마에 등장하면서 서점가 베스트셀러 1위 목록에 올랐다. 이런 계기라도 있지 않으면 어른이 돼서 동화책을 들춰볼 일이 또 있을까(물론 그림책을 즐겨보는 만 4∼10살의 자녀를 둔 부모들은 제외하고). 어른이 읽어도 좋을, 혹은 어른도 읽어야 하는 동화를 여덟권 모아보았다. 40쪽 안팎의 만 4∼6살용 그림책이 대부분이지만, 100여쪽짜리 초등학교 고학년 문고와 300쪽이 넘는 장편도 있다. 동물과 어린아이가 등장하는 단순하고 밝은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역사적 지식이나 문학작품에 대한 참조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희한한 동화책들도 있다. 아름다운 그림, 공인된 문학성, 깊이있는 시각을 고루 갖춘 동화책을 통해 잠시라도 잊고 지내던 동심을 돌이켜보시길. |
<꿈을 먹는 요정>
<꿈을 먹는 요정>은 딸을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아버지의 이야기이자, 단꿈을 방해하는 악몽에 관한 이야기다. 숙면을 최상의 가치로 치는 ‘단잠나라’에서 단꿈공주는 악몽 때문에 잠자기를 거부한다. 심각한 국사(國事)를 해결해줄 사람을 나라 안에서 찾지 못하자, 왕은 몸소 먼 길을 떠난다. 춥고 어두운 땅을 걷던 왕은 메마른 금작화들 사이에서 서슬 퍼런 달빛의 요정을 만난다. 커다란 입에 가시가 돋친 머리에 주름살 많고 말버릇 고약한, 못난 악동 같은 요정은 “빨리 맛있는 악몽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며 왕을 닦달한다. <끝없는 이야기> <모모> 등 아이들을 위한 길고 긴 책을 써낸 미하엘 엔데는 아이들에게 꿈, 희망, 사랑, 용기만을 속삭이지 않고 어둠과 그림자, 절망과 죽음까지 말해온 작가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은 주인없는 그림자들의 존재를 다루며, <보름달의 전설>은 허무한 세상을 등진 채 진리를 추구하던 은자(隱者)의 어리석은 교만을 전하는 동화다. <꿈을 먹는 요정>도 다르지 않다. ‘나에게 고통스런 악몽이 누군가의 맛난 음식’이라는 기괴하고 어두운 상상을 곱고 부드러운 그림체로 덮은, 무거운 동화책이다. 악몽 먹는 요정을 초대하는 주문도 왠지 외워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단꿈이 있는 한 악몽도 끝나지 않는 거라고 이 책이 당부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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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조금도 이상할 것 없어! 고슴도치가 뱀과 달팽이를 가장 잘 먹는다는 걸 몰라? 나도 말하자면 꿈을 먹는 고슴도치이기 때문에 악몽을 더 좋아하는 거야. 나는 처음부터 악몽을 먹고살게 만들어졌고, 또 그게 바로 내가 이 세상을 사는 이유야. 어때, 아주 간단하지?”
<토끼 아저씨와 멋진 생일 선물>
두 손바닥 합친 크기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동화책 <토끼 아저씨와 멋진 생일 선물>은 엄마의 생일 선물을 고민하는 여자아이와 그를 기꺼이 돕는 토끼 아저씨의 대화로만 이루어진 간결한 이야기책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색깔을 소녀가 말하면 토끼 아저씨는 그 색깔을 띤 물건들 중에 선물할 만한 것을 제안한다. 빨간 불자동차 혹은 빨간 지붕, 노란 유치원차 혹은 노란 버터, 초록색 에메랄드 혹은 초록색 애벌레. 아이는 맘에 드는 대목이 나올 때까지 나름 이유를 들어 제안에 반대한다. 스토리는 터무니없이 무료하지만, 작가가 써내려간 소박한 문장들은 읽을수록 입가를 맴돈다. 엄마가 속삭여주던 자장가의 가사처럼. 글을 쓴 샬롯 졸로토는 아동문학의 독자적 영역을 개척한 선구자로 인정받은 작가이며 1998년 자신의 이름을 딴 상이 제정되는 영예까지 누렸다. 달이 뜰 때까지 선물을 찾아다닌 두 존재 사이의 친밀감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삽화가는 모리스 센닥이다. 유대계 미국인 3세로 태어나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아이들의 갈등과 고통을 이해하는 그림책들로 세계의 어린이문학상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미국도서관협회가 수여하는 로라 잉걸스 와일더 상, 미국의 대표적인 그림책 상인 칼데콧 상 등을 수상했다. 노랫말 같은 글과 수채화 엽서 같은 그림으로 만들어진 작은 동화책 <토끼 아저씨…>는 1963년 칼데콧 명예상 수상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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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우리 엄마는 빨간색을 좋아하세요.” 아이가 말했어. “빨간색? 하지만 빨간색을 선물할 수는 없잖아.” 토끼 아저씨의 말. “그러니까 무언가 빨간 거요.” 아이의 말. “아, 무언가 빨간 거.” 토끼 아저씨가 말했어. “뭐가 빨갛지요?” 아이가 물었어. “가만, 빨간 속옷이 있군.”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영국의 고전동화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수많은 명작 동화들의 시작이 그렇듯) 부모가 자식을 위해 지어낸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작가 케네스 그레이엄은 마흔살에 얻은 외아들 엘레스테어가 선천적으로 약한 시력을 잃어가는 걸 보며 숲속 동물들의 이야기를 꾸며 들려주기 시작했다. 제목부터 다정한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네 마리의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다. 소심하지만 충성스러운 두더지 모울, 인내심 많고 너그러운 물쥐 래트, 호기심도 정도 많은 두꺼비 토드 그리고 지혜로운 오소리 아저씨 배저. 이들의 이야기는 어느 화창한 봄날, 대청소가 하기 싫어진 모울이 땅속 집을 뛰쳐나오면서 시작된다. 그레이엄의 이야기는 동물들의 숨찬 모험담보다 그들이 순간적으로 겪는 심정, 상황의 묘사에 더 힘을 기울인다. 집을 보여주기 부끄러워진 모울이 양 앞발로 얼굴을 가린다든지, 따뜻한 난롯가 앞에서 시를 쓰던 래트가 졸고 있다든지, 자동차에 반해 넋이 나간 토드가 친구들의 부축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든지 하는 대목들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시선은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길처럼 섬세하고 부드럽다. <곰돌이 푸우>로 유명세를 얻은 삽화가 어니스트 하워드 셰퍼드는 그레이엄을 이렇게 회고했다.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이러더군요. ‘나는 작품 속의 동물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을 친절히 대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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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래트는 날렵하게 노를 저어 강을 건너와서 배를 붙들어 맸다. 그리고 모울이 조심스럽게 배에 올라타려고 하자 앞발을 잡아주었다. “나한테 기대. 그리고 힘차게 발을 디뎌 봐!” 놀랍고 황홀하게도 모울은 진짜로 고물에 앉게 되었다. “여긴 날씨가 참 화창하구나! 난 태어나서 한번도 이걸 타본 적이 없어.”
<북경 이야기1: 우리는 바다를 보러 간다> <북경 이야기2: 아버지의 꽃은 지고, 나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다>
대만에서 활동하는 동화작가 린하이윈의 <북경 이야기>는 작가의 자전적 기억을 토대로 쓰여진 책이다. 린하이윈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남베이징에서 보낸 중국인이다. 그때 모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고향을 대한 뒤 (상처를 받아서) 작가는 어린 시절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글을 썼다. <북경 이야기>는 총 5개의 에피소드를 두권의 책에 나눠 담고 있다. 애인에게 버림받고 아기마저 잃어 미친년이 되었다는 여자, 남동생의 학비를 대기 위해 도둑질을 했다는 아저씨, 젊고 예쁜 첩에게 마음을 두었다가 들키고 만 아버지, 제 아기는 젖동냥을 보내고 남의 집 유모로 들어온 아줌마, 그리고 전교 1등으로 졸업하는 모습을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열세살 소녀 잉쯔. 이 다섯명의 이야기를 한데 아우르는 시선은 일곱살 소녀 잉쯔다. <북경 이야기>는 일곱살이던 잉쯔가 열세살이 될 때까지 만나고 이별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에피소드는 이별로 막을 내린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제목은 <아버지의 꽃이 떨어졌다>다. 린하이윈은 잉쯔의 6년 속에 1920∼30년대 베이징의 풍경을 (낙타의 방울소리까지) 세밀히 담아넣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림을 그린 관웨이싱도 중국 출신이다. 맑은 수채로 테두리 없이 완성된 그림은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에서 2년 연속 일러스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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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여름이 가고, 가을도 가고, 다시 겨울이 돌아왔다. 낙타도 다시 왔다. 하지만 한번 가버린 어린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겨울 햇살 아래서 낙타의 되새김질을 따라하던 바보 같은 짓은, 나 역시 다시는 하지 않게 되었다.
<고릴라>
<고릴라>는 고릴라를 좋아하는 소녀 한나가 한밤중에 고릴라와 고릴라 구경을 떠나는 이야기다. 한나의 아빠는 너무 바빠서, 동물원에 같이 가주세요, 한번만, 하며 조르는 딸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다. 생일 선물로 “고릴라 한 마리”를 말한 딸에게 팔뚝만한 작은 고릴라 인형을 선물해주고 만 아빠. 그날 밤 한나는 아빠만큼 커다란 진짜 고릴라 옆구리에 끼어 나무를 타고 동물원을 구경간다. <고릴라>의 세계는 고릴라에 푹 빠진 한나의 눈에 비친 세계다. 한나의 집에 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의 얼굴이 고릴라이고, 한나가 보는 영화 속에서 슈퍼맨 복장을 입고 나는 것도 고릴라다. 한나의 집에서 내다보이는 숲도 고릴라 형상을 하고 있다. 이처럼 어른들도 웃게 만드는 재기발랄한 유머 감각으로 앤서니 브라운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동화작가가 되었지만, 정작 그의 그림책이 감동적인 순간은 사실적인 그림체가 완벽한 구도 그리고 여백과 만났을 때다. 아빠를 조르는 한나의 조용한 뒷모습, 어두운 방구석에서 TV화면의 불빛에 둘러싸인 채 혼자 앉아 있는 한나의 작은 모습은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외로움의 기억을 깊이 들추어낸다. 이 정서적인 울림은, 부녀가 손을 잡고 동물원으로 향하는 마지막 페이지의 작은 뒷모습으로까지 길게 이어진다. 영국 작가 앤서니 브라운은 지난 2000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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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한나야, 놀라지 마. 널 해치러 온 게 아니야. 동물원에 가고 싶지 않니?” 고릴라가 따뜻하게 웃었기 때문에 무섭지는 않았어. “나, 정말 동물원에 가고 싶어.” 한나와 고릴라는 살금살금 아래층으로 내려갔어. 한나는 자기 코트를 찾아 입었고, 고릴라는 아빠 코트를 입었지. “꼭 맞는데?” 고릴라가 속삭였어.
<발랄라이카를 연주하고 싶은 생쥐>
유럽 어느 마을의 작은 여관 겸 술집에서 태어난 생쥐 트루블로프는 음악을 사랑한다. <발랄라이카를 연주하고 싶은 생쥐>는 술집 전속 악단의 음악을 넋놓고 듣느라 잠잘 시간도 놓치는 그 생쥐가 발랄라이카(세모꼴 몸통에 줄이 3개 달린 우크라이나 민속 악기) 연주자가 되는 과정을 섬세한 눈길로 담은 동화책이다. 이름도 예술가스러운 트루블로프는 목수 일을 하는 할아버지로부터 작은 발랄라이카를 선물받았지만 연주 방법을 몰라 속상하다. 훌륭한 연주가가 되어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는 꿈을 밤마다 꾸던 트루블로프는, 추운 겨울날 떠돌이 집시 악단을 좇아 가출한다. 영국식 제도교육의 엄격함을 적응하지 못해 친구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던 존 버닝햄의 <발랄라이카…>는 작가가 생쥐의 키만큼 눈높이를 낮춰 그린 그림책 같다. 트루블로프는 집시 음악가의 손만큼 작지만 그 옆에 나란히 앉아 그와 똑같은 포즈로 연주 연습을 하고, 집에 돌아가서는 사람들이 머무는 술집에서 갈채를 받으며 발랄라이카를 연주하게 된다. 대안학교에서 미술을 배우기 시작한 버닝햄의 독특한 그림체는 이런 편견없는 눈길에 따뜻한 힘을 더한다. 불균일한 컬러링과 거친 스케치, 투박한 캐릭터 등 일러스트레이션이 갖춰야 할 강박적인 조건들 없이 완성된 그의 그림체를 평론가들은 ‘아이들의 순수한 무의식에 가장 가까운 표현’이라 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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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어느 날 저녁 집시 할아버지가 술집에 있는데, 구석에서 끼익 끽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어요. “이리 와 보렴.” 집시 할아버지가 부르자, 트루블로프는 발랄라이카를 들고 머뭇머뭇 다가갔어요. “이런, 쯧쯧. 내가 가르쳐주고는 싶지만 오늘 밤에 떠나야 한단다.” 집시 할아버지의 말에 트루블로프는 몹시 실망했어요. 하지만 곧 좋은 생각이 떠올랐죠.
<세 개의 황금 열쇠>
한 남자가 열기구를 타고 날아가 텅 빈 듯한 도시에 다다른다. 자신의 고향집이 있는 곳 근처다. 그는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살려 집 앞까지 도착한다. 대문은 굳게 잠겨 있고, 세개의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남자는 세개의 열쇠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매들린…” 하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시작되는 동화책 <세 개의 황금 열쇠>는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망명한 작가 피터 시스가 어린 딸에게 자신의 고향 이야기를 남겨주고자 그리고 쓴 책이다. 어린 시절 들었던 프라하의 전설들을 하나씩 되새길 때마다 작가의 손에는 황금열쇠가 하나씩 쥐어지고, 열쇠를 찾아 누비는 골목마다 차오르는 것은 겨울낮 썰매를 끌거나 여름밤 늦도록 뛰놀던 아련한 추억들이다. 작가는 혼잣말을 하듯 짧은 글을 쓰고, 수만개의 섬세한 터치들로 고향 프라하를 그렸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시 전체, 추억이 흐르는 작은 골목들, 어릴 때 즐겨찾던 도서관과 시계탑 안. 버드아이뷰숏과 익스트림롱숏, 클로즈업 등 동화책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다채로운 구도의 장면들이 영화적인 호흡을 따라 배치된 것도 인상적이다. 간절한 그리움 말고 이 책을 요약할 수 있는 구절은 달리 없는 듯하다. 세개의 열쇠를 손에 쥐고 집 앞에 당도한 남자. 문을 열면 무엇을 만나게 될까. 가장 소박하게 그려진 마지막 장면의 감동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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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달이 가고 해가 바뀌는 지난 세월 내내 나는, 돌 하나하나 목소리 하나하나를 기억하려 했다. 다시는 그것들을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만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이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우리는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휴양지>
화가가 직업인 화자는 어느 날 오후, 상상력을 잃어버린다. 절망에 잠긴 화가는 상상력을 되찾아오기 위해 무작정 차를 몰고 길을 나선다. 도착한 곳은 ‘어딘지아무도몰라’ 마을의 바닷가 끝 외딴 호텔. 하나둘씩 손님들이 찾아든다. 외다리 선장, 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녀와 그의 수간호사, 모래밭에 비행기를 처박은 비행사 등등. (죄다 어디서 본 듯한) 투숙객들은, 마치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하나같이 말을 아끼고 남들의 시선을 피해 은밀한 행동을 한다. 통통한 형사는 “손님들 모두 혐의가 있다”며 그들이 감춘 비밀을 캐기 시작한다. <마지막 휴양지>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일러스트레이터 로베르토 인노첸티가 “내가 상상력을 잃었다 되찾은 이야기”라며 구상해낸 초현실적인 스토리는 기존 문학작품들 속에 담긴 상상력에 대한 오마주이자, 책읽기를 즐겨온 어른들을 위한 지적인 추리 게임이다. 인노첸티의 사실적이고 탁한 그림체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 테두리를 입힌 듯하며, 아이들보다 어른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시인 겸 구성작가 존 패트릭 루이스는 낭만적인 문체 안에 풍부한 문학적 지식을 눌러 담았다. 여러 번 읽어야만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묘하고 비밀스러운 결말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휴양지>는 쉽게 짐작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런 책이 대형서점 ‘어린이’ 코너에 꽂혀 있다니, 믿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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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나는 추억의 조각들에 매달려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았다. 친구여, 추억이란 낡은 모자일 뿐이다. 그러나 상상력은 새 신발이지. 새 신발을 잃어버렸다면 가서 찾아보는 수밖에 달리 무슨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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