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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교 회 |
도 |
도시 및 지방 |
북장로교회 |
경 기 |
서울/고양/파주/교하/양근/광주 일부/과천/용인/양지/진위/양성/안성/시흥/김포/죽산/통진/지평/양주일부 |
충 북 |
연풍/청주/문의/영동/화인/청산/보은/청안/옥천/황간/괴산일부 | |
경 북 |
대구/안동/경주를 비롯한 전 지역 | |
황 해 |
봉산/수안 일부/곡산/황주/은율/문화/장연/신천/송화/풍천/안악/재령/평산/서홍 일부 | |
평 남 |
평양/안주/숙천/영유/순안/강동//지산/삼등/중화/상원/영원/덕천/개천/순천/은산/맹산/성천/강서/ 일부/증산 일부/용강 일부 | |
평 북 |
의주/용천/철산/선천/곽산/정주/가산/박청/구성/삭주/창성/벽동/초산/위원/강계/자성/후창 | |
남장로교회 |
충 남 |
대전/부여/목천 |
전 북 |
전주/군산/이리/익산 등 전 지역 | |
전 남 |
목포/나주/광주/순천 등 전 지역 | |
제 주 |
전 지역 | |
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회 |
경 남 |
부산/마산/진주/거창/통영/김해 등 전 지역 |
캐나다장로교회 |
함 남 |
원산/성진/문천 등 북부지역 |
함 북 |
회령/종성/경성 등 전 지역 | |
미 감리교회 |
경 기 |
서울/인천/수원/안산/남양/교동/강화/부평/여주/광주 일부/이천/ 음죽/양조 일부/양천 |
충 북 |
진천/음성/충주/제천/청풍/영춘/단양/괴산 일부 | |
강 원 |
원주/횡성/평창/영월/정선/강릉/삼척/단양/괴산 일부 | |
황 해 |
옹진/강녕/해주 연안/배천/평산/신계/봉산 일부/수안 일부/서흥 일부 | |
평 남 |
평양/양덕/함종/삼화/맹산 일부/성천 일부/개천 일부/온산 일부/ 증산 일부/강동 일부/봉강 일부 | |
평 북 |
태천/운산/회천/영변 | |
남감리교회 |
경 기 |
서울/송도(개성) |
강 원 |
춘천/철원/양주/이천/지경대 | |
함 남 |
원산회양/안변/용동 |
조선의 교인들은 비록 그들의 선교사가 교파가 다르다고는 해도 국내에서 만큼은 한국교회만의
형태를 가진 초월적 교파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과는 달리 선교사들은 갈등과 대립
을 보여왔고 결국 세력화가 안정된 가운데서 그들의 통합 유치 의지는 흐지부지 되었다.
이후 그들은 능률적인 면을 강조한 분할선교법을 통과시키게 된다.
분할선교에 앞서 통합공의회의 발촉은 높이 살만한 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리적인 통합에
비해 정치적 문제로 인한 대립은 통합을 방해하게 되었고 각 교단이 분할의 형태를 취해 선교
에 나섰다는 점은 우리에게 있어 교단 정치와 교리가 통합하기 어렵다는 점을 다시한번
일깨워 준다.
개항기 한국에는 선교본부가 있었던 여러 국가별로, 그리고 같은 국가 내에서도 교파별로 다른 배경을 가진 선교사들이 진출하였다. 그러므로 같은 장로교 선교사라 해도 미국 북장로교 소속의 선교사들과 미국 남장로교의 선교사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 소속의 선교사들로 나뉘어진다. 이들은 선교와 선교지부를 따로 운영하면서 경쟁적으로 선교 활동을 벌였기 때문에 서로 충돌하거나 갈등을 빚을 위험이 컸다.
그리하여 이들은 한 지역에 여러 교파의 선교회가 선교활동을 할 때 일어날 수도 있는 갈등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선교회간에 선교할 지역을 나누는 협정을 맺기로 하였다. 이러한 선교지역 분할협정은 1892년 미국 감리교와 미국 북장로교 사이에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이 협정에서는 선교지역을 나누는 일반 원칙을 정하였다. 즉, 인구 5천명 이상의 대도시나 개항장은 선교회들이 공동으로 선교하고, 그 이하의 도시와 지방은 이미 설립되어 있는 선교회의 기득권을 인정한다는 원칙이 정해졌다. 그리고 그 외에 아직 개척되지 않은 지역은 새로 오는 선교회로 하여금 개척하게 한다는 원칙도 정해졌다.
장로교 선교회들간의 선교지역 분할협정은 1893년에 열린 장로교연합선교공의회에서 이루어졌다. 이에 따르면 미국 남장로교는 한반도 서남지역인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을 맡게 되었다. 1898년에는 미국 북장로교와 캐나다 장로교간에 협정이 이루어져 캐나다 장로교는 미국 북장로교로부터 함남의 원산 지역을 양도받았다. 캐나다 장로교는 이곳을 기점으로 함경도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1909년에 다시 미국 북장로교와 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 사이에 협정이 이루어져 그 때까지 미국 북장로교가 활약하고 있었던 부산이 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에 양도되었다. 그리하여 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는 부산을 근거로 하여 경남지역을 선교지역으로 삼게 되었다.
감리교의 경우에도 선교지역 분할협정이 추진되었다. 뒤늦게 진출한 미국 남감리교는 서울, 개성, 원산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벌이다가 미국 북감리교와의 협정을 통해 1901년부터 원산지역을 양도받았다. 개성은 원래 미국 남감리교가 개척한 곳이고 서울은 공동 점유가 가능한 대도시였기 때문에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후에도 선교지역 분할협정이 계속 있었지만 1909년의 미국 북감리교와 미국 북장로교 사이의 협정으로 한반도 내에서 선교구역은 대체로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