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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여는 벧엘의 소리
 
 
 
카페 게시글
자유로운 게시판,·´″`°³оΟ☆ 스크랩 학생상담지도 사례집
불의소리 추천 0 조회 569 09.06.25 09: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01년도

-상담교사 및 학생상담자원봉사자-

학생상담지도사례집








강 원 도 원 주 교 육 청
2001년도

-상담교사 및 학생상담자원봉사자-

학생상담지도사례집










강 원 도 원 주 교 육 청



사랑과 관심 속에서 올곧게 성장하는 아이들


2001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평소 원주교육의 발전과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남다른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상담 활동에 헌신적으로 애써주신 선생님과 학생상담자원봉사자 선생님의 노고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까지 어린 청소년들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도와주고, 갈등과 고민을 덜어주며, 보다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친자식 대하듯이 남다른 관심과 사랑을 갖고 지도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팽배된 이기주위와 개인주의, 무분별한 외래 문화 수용에 따른 가치관의 혼란, 향락적인 소비 문화, 유해 환경, 산업화?도시화로 인한 가정붕괴 등의 원인으로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이 청소년들에게 청소년 범죄를 유발시킬 수 있습니다. 더구나 청소년기는 그 어느 시기보다도 감수성이 예민하고 호기심이 강하며 자기 조절 능력이 미약하므로 사회악에 물들기 쉬운 때입니다.
그러므로 가정과 학교, 사회의 어른들이 연계하여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지도해야 청소년들이 올곧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청소년들이 21세기 사회가 필요로 하는 자질과 능력을 함양하고, 자기 삶을 주관하여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자생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 우리 세대들의 의무이자 사명입니다.
이 사례집을 통하여 자녀 교육뿐만 아니라, 상담 현장에서도 새로운 활력소와 지침서가 되어 상담교사 및 학생상담자원봉사자 선생님들께 자기 연찬을 위한 좋은 참고 자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2001년 12월


강원도원주교육청 교육장 심 대 섭
찾 아 보 기

표지그림 : 원 주 중 학 교 교사 김 기 태
편 집 : 강원도원주교육청 장학사 이명렬


발간사 4
학교생활 부적응 학생의 생활지도상담 사례 교학초등학교 구 은 영 / 7
홀로서기 남원주초등학교 양 문 숙 / 12
상담교사로 거듭나고 싶다 단강초등학교 신 동 철 / 15
지금도 생각나는 이름 보람이 둔둔초등학교 정 미 아 / 17
또 다른 만남 만종초등학교 임 재 학 / 20
사랑으로... 매지초등학교 임 정 미 / 23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운 아이 신림초등학교 신 동 원 / 26
점점 커져 가는 사랑 신평초등학교 정 규 남 / 31
칭찬 한 마디 우산초등학교 김 승 연 / 33
게임 중독이 주는 영향 원주초등학교 박 경 희 / 39
계란 한 판의 깨달음 태장초등학교 황 승 욱 / 43
진실이는 만능 해결사 학성초등학교 신 차 석 / 48
얘들아, 미안하다 흥양초등학교 김 현 정 / 53
선생님, 배가 아파요 흥업초등학교 김 향 숙 / 56
독특한 말투가 불러온 친구사이의 단절 남원주중학교 김 명 성 / 59
풍물 가락으로 맺은 사랑 문막중학교 정 재 성 / 63
고교 입시 스트레스 북원여자중학교 이 영 란 / 68
아름답게 변화되길 기대하며 상지여자중학교 원 길 순 / 72
호영이의 가뿐 숨소리 육민관중학교 최 상 준 / 74
민정이의 방황은 이제 끝 지정중학교 원 순 자 / 77
또래 상담 운영계획서 평원중학교 상 담 실 / 81
지나치게 내성적인 규 (G : 가명) 학성중학교 김 문 희 / 88
넌 혼자가 아니란다 황둔중학교 김 영 희 / 92



작은 보람 큰 기쁨 단계초 상담자원봉사자 권 문 경 / 98
학생 심성수련, 나의 심성수련 북원여중 상담자원봉사자 김 정 희 / 100
따뜻하게 안아주는 환경을 희구하며 서원주초 상담자원봉사자 박 성 만 / 102
하루의 보람 원주중 상담자원봉사자 이 상 옥 / 105
컴퓨터에 묶여 사는 아이들 평원초 상담자원봉사자 강 성 윤 / 107






1. 봉사 시간을 엄수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활동에 임한다.
2. 비밀을 요하는 상담 내용에 대하여 함부로 공개하지 않는다.
3. 활동 내용은 반드시 기록하고 다음 활동에 활용한다.
4. 모든 활동은 상담 실무자를 조력하는데 초점을 두어 전개한다.
5. 일체의 홍보 내용은 기관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본래의 상담 활동 이외의 목적으로 내담자와의 개인적인 접촉을 금한다.
6. 봉사 시간에 활동이 곤란하게 되었을 때에는 여유를 두고 활동 상담실로 연락한다.
7. 봉사자들 간에 서로 협력하며 활동의 능률과 창의성을 높인다.









1. 자신을 태우는 촛불 되어 청소년들에게 따뜻하고 밝은 빛을 주는 봉사자가 된다.
1. 사랑과 인내의 뿌리를 깊이 내려 그들이 바람직한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1. 친절한 말씨, 긍정적인 눈, 경청하는 귀로 따뜻한 마음을 주고 받는 대화자가 된다.
1. 상담 봉사자로서 신념과 긍지를 가지고 교육의 내실화에 최선을 다한다.
1. 우리는 교육 가족으로서의 공동체험을 명심하여 지성으로 봉사한다.










교사 상담 지도 사례

학교생활 부적응 학생의 생활지도상담 사례

교학 초등학교
교사 구 은 영

Ⅰ. 내담자 기본자료

1. 내담자 인적사항
? 성 명 : 김철수(가명) 성별 : 남 3학년 10세
? 주 소 :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275 감은사(가명)
? 보 호 자 : 감은사 주지 혜정 스님 ( 여, 68 세 )
? 가족사항 : 스님, 철수, 여자 1명
? 중복장애 : 정신지체 및 언어장애

2. 내담자의 인상과 성격적 특성
항상 스님처럼 머리를 빡빡 깎고 다니며 장난기가 있어 보이는 인상이며, 키 136㎝에 몸무게 37㎏으로 신체적으로는 정상이나 행동이 매우 우둔하여 달리기나 공놀이를 남들처럼 하지 못하고 뒤뚱거린다.
친구들이 함께 놀아주지 않으니까 1, 2학년 아이들을 주로 상대하고, 장난치다가 p 대 얻어맞고도 좋아한다.

3. 내담자의 가정환경
치악산 국립공원 입구에 학교가 있고, 가까운 산밑에 68세의 여자 스님이 운영하는 감은사라는 암자가 있다.
현재는 고모라 불리는, 스님의 출가한 딸과 김철수와 같은 처지의 1명이 가족 모두이다.
김철수는 부산의 어느 암자에서 여자 스님에게 보육되다가 그 여자 스님이 연로하여 더 이상 보살펴줄 수 없는 처지가 되자 3살 때, 친분이 있는 혜정 스님에게 오게 되었다. 스님의 말로는, 성도 나이도 알 수 없고 출생에 대하여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했다.
철수는 절에서 스님을 할머니라고 부르고 제일 무서워한다. 스님의 이야기로는, 철수는 같은 처지의 나이 어린 동생과도 잘 싸우고, 고집이 세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전에는 절의 살림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신도들을 점쳐 주고 굿해주는 일로 인해 수입이 많아져서 김철수에게 옷도 잘 해주고 용돈도 조금씩 주고 있다고 했다.

4. 내담자의 문제점 및 특징
학년초 부임하여 전교생에게 인사를 할 때 머리를 빡빡 깎은 철수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에서 공부하여야 할 학생으로 생각이 되었다. 정신지체에다 언어장애로 의사 소통이 어렵고 한글은 미해득이며, 수 개념은 전혀 없고 1에서 10까지의 수를 읽지 못하기 때문에 학습활동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생활면에서도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기 신변처리를 못하였으며, 남의 책가방을 자주 뒤지고 돈이 있으면 꺼내어 과자를 사 먹으면서도 잘못인 줄 몰랐다. 하루 중 자주 하는 말로는 “밥 먹어 ”, “집에 가?”, “이창욱이 때렸어요” 라는 말이었다..
잘하는 행동은 마루 쓸기, 색종이 접기이었다. .

5. 상담경위
김철수는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에게 동정의 대상은 되어도 사랑으로 마음을 열어주고 가까이 하지는 못하는 실정이었으므로 항상 외톨이로 운동장 구석이나 교실 모퉁이에서 지내는 형편이었다. 유일한 보호자인 스님은 나이가 많을뿐더러 절을 찾아오는 신도들 때문에 철수를 돌봐 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담임조차 무관심하고 보살핌이 없으면 언제까지고 사람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철수에게 훗날 성인이 되어 홀로 설 수 있는 작은 힘이라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철수는 가끔 저학년 아이들에게 끌려가서 매를 맞아 얼굴이나 몸에 상처가 나서 집에 돌아가곤 하였다. 보호자 입장에선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여 상담을 하고 싶어했고, 담임도 보호자를 찾아보고 상담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적은 액수이지만 학급에서 도난사고가 있어서 전화를 통하여 보호자에게 상담을 청하게 되었다.

6. 내담자에 대한 희망
내담자인 김철수는 언어장애로 간단한 의사소통만 이루어져서 처음에는 보호자인 스님과 함께 상담을 하였다. 스님은 학교생활에 조금씩이라도 적응할 수 있도록 해 주면 좋고, 이름이라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상담을 한 결과, 다같이 바라는 것은 우선 학교에 잘 나오고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며, 좋은 습관을 가지고 기초학습을 습득하며 친구와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것뿐이다.
나중에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특수학급이 있는 중학교로 진학하게 될 것이고, 그때 본인의 소질을 발견해서 지도가 잘 이루어지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7. 내담자의 현재 생활 상태
출석은 잘 하나 정신지체와 언어장애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교실에 남아있거나 다른 아이들이 노는 것을 구경하는 정도이다.
지능이 60이하로 학습능력이 부족하여 국어 교과서 내용을 보고 겨우 쓸 정도이고, 종이 접기는 기초적인 모양을 접을 수 있다
가정 생활은 스님이 법당에서 기도할 때 함께 하고 간단한 심부름을 할 정도이다.

8. 상담자가 보는 내담자의 문제와 원인
어려울 때 데려다 양육을 하다보니 출생에 대하여는 알 수 없지만, 지능이 떨어지고 언어장애가 있다는 것을 늦게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미혼모에 의한 출산이거나 정상적이지 못한 관계에서 출생하여 버려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언어장애와 왼쪽귀가 난청으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상담이 어렵다.

▣ 상담자가 보는 내담자의 문제점
① 언어장애에 대한 발음문제
② 남의 가방 뒤지는 습관
③ 기초적인 운동능력 부족
④ 숫자 익히기, 읽기, 쓰기 등의 기초적인 학습문제
⑤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함
⑥ 학교생활 부적응 등

9. 이대로 둘 경우 내담자의 주변에 대한 예측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고 적응하지 못하면 결석이 많아질 것이며, 학습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므로 학교생활이나 가정생활에 어려움이 많아져 보호자 없이는 사회 생활을 전혀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10. 상담계획 혹은 처치계획 및 검사
보호자와의 상담을 통하여 문제점을 알아내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계획하고 지도한다
▣ 상담 실시 내용


▣ 상담을 통한 처치계획
1) 발음 교정
말하는 사람의 입 모양을 보고 따라 소리내도록 하여 발음을 교정한다
2) 운동능력 향상
달리기, 공놀이를 통하여 체력을 향상시켜 활동성을 높인다.
3) 학교 생활 적응
놀이 모둠을 통하여 친구들과 어울리게 하여 학교생활이 즐겁도록 한다.
4) 생활습관 지도
군것질하는 습관, 가방 뒤지는 습관을 지도한다 .
5) 봉사활동정신
청소활동을 통한 봉사활동정신을 기른다.
6) 읽기 쓰기로 기초학습능력 기른다.

Ⅱ. 상담 과정

1. 관계형성
3학년 아이들은 모둠별로 좌석을 앉고 철수는 교사용 책상 앞의 창가 쪽에 따로 책상을 마련하여 혼자서 앉도록 한 것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앉으면 학습에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교사와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지도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년초에는 교사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가까이 오지도 않으려 했는데, 먹을 것을 주고 친근감 있게 대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거리감을 두지 않고 가까이 다가왔다.
오후에 남겨서 글 쓰기도 시키고 그림도 그리게 하며 이것저것 물어보면 나름대로 말은 하지만, 언어 장애로 의사표현이 잘 안 되니까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했다. 청소시간에 빗자루로 마루를 쓰는 일은 잘 했다. 그래서 청소할 때마다 칭찬해 주면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면담 때의 분위기는 비교적 밝은 편이며 물어보면 나름대로 열심히 떠들고 손가락으로 숫자를 나타내지만, 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수를 못 나타낸다.

2. 상담 지도 결과
중복장애자로 정상적인 학생만큼의 효과는 기대할 수 없었지만 스스로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어 3학년 동안 많이 변화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자기 신변처리를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고, 나쁜 버릇도 없어지고 체력도 향상되어 선생님들의 관심과 보살핌, 친구들의 도움만 있으면 별 어려움 없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홀로서기

남원주 초등학교
양호교사 양문숙

아이들은 마음의 밭에 책과 노트를 가지고 다닙니다. 그 마음의 책을 함께 읽어주는 일은 교사로서의 보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노트에 아이들이 써놓은 글들은 너무도 어설퍼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애틋하게 합니다.
세균감염과 청결의 필요성을 강조하면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모두다 약속이나 한 듯 우르르 세면장으로 달려갑니다. 또한 자기가 며칠 전에 배가 아팠던 일들, 또는 지금 배가 아픈 것이 손을 잘 씻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보건실로 질문을 던져옵니다. 심지어는 부모님과 형제들이 잘 씻지 않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고민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보건수업, 보건방송수업이 있는 날에는 수업과 관련된 건강과 생활습관에 대한 상담이 하루종일 줄을 잇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이 느끼는 것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 지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 일일 것입니다. 따라서 건강을 상담해오는 아이들이나 아픔을 호소하는 아이들에게 그들에게 있었던 생활의 일들을 물어보거나 습관적인 일상을 감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의 문제는 아이들 자체에 있기보다는 아이들의 주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주변의 일들에 대해 어느 정도 합리적일 수 있는지에 따라서 아이들의 행동은 다양한 변화를 겪습니다. 따라서 일탈 적인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에게서, 마음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신호를 받게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마음의 공백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싶어합니다. 아름다운 장식을 찾게 하는 일은 가르치는 일로 가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장식을 마음 밭에 스스로 꾸미는 일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 진솔한 대화,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는 상호 신뢰 속에서 비롯하는 자기확인과 남에 대한 이해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지난해 저는 이 아름다운 마음의 장식을 찾아 헤매는 한 아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재동이(가명)를 만난 것은 비만과 식생활 습관에 관한 보건수업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나서였습니다. 보건실로 찾아온 재동이는 자신의 키가 너무 작아서 고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또래의 6학년 아이들에 비해 재동이는 작고 왜소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작고 왜소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어떤 의식을 갖고 있는가 라는 것이 문제이기에, 재동이는 자기확인을 필요로 하고 있으리라 생각되어졌습니다. 따라서 나는 재동이가 키로 인해서 따돌림을 받고 있는지, 놀림을 당하는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작은 키 때문에 불편을 느끼는지, 상대적으로 다른 아이들에게 열등감을 느끼는지 알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재동이는 의외로 조숙하고 자기신념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문제는 키가 작다는 사실자체이지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대화의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의 고민을 아이로부터 들어봐야겠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재동이는 왜 자신이 키가 작다고 생각하니?”라는 물음에 아이는 의외로 “밥을 잘 먹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어떻게 하면 키가 클 수 있겠느냐고 도리어 물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비로소 나는 이 아이가 자기모순의 어떤 상황을 극복하고자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은 물론 저녁조차도 안 먹을 때가 더 많다고 말하는 재동이에게 “너 왜 밥을 먹지 않니?”라는 직접적인 물음은 좀 성급한 감이 들었습니다. 또한 아이가 키에 관한 고민을 호소하고 밥을 잘 먹지 않아서 그렇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우선의 말은 그저 지식적인 훈계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칼슘섭취가 중요한 때에 아침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니 거르지 말라는 것과, 저녁을 너무 늦게 먹거나 아예 먹지 않아서 취침 중에 성장하는 순간들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만들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밥을 잘 먹지 않아서 키가 작다고 생각하는 아이에게 밥 잘 먹으면 키 큰다는 이런 식의 대화는 왠지 석연치 않았고 우리의 첫 만남은 그렇게 마침을 찍게 되었습니다.
재동이와 다시 만나 대화하게 된 것은 첫 만남 이후 두 달이 지나서였습니다. 마침 비만으로 상담을 받아오던 석주가 재동이와 같은 반이기에 재동이의 소식을 묻게 되었습니다. 석주의 말에 의하면 재동이가 2주일 동안이나 학교를 무단 결석하고 집을 나와 있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재동이의 지난번 고민이 키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밥을 먹지 않는 그 이유에 있었다는 막연한 추측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쉬는 시간을 통해 “양호 선생님이 보고 싶어한다”는 말을 전하고 우리는 긴 시간 대화하였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재동이가 왜 밥을 먹지 않는지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친어머니와 함께 자란 재동이는 2학년 2학기 이후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새로운 형제들과 같이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 후 빚 때문에 아버지는 자주 집을 비우셨고 새어머니와의 싸움도 끊이지 않아서 자기는 자기 방에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집에 돈이 없기 때문에 다니던 학원도 못 다니게 되었지만 학습지와 학습자료를 살수 없게 되면서부터 점점 더 새어머니에게 무슨 부탁의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에서 밥을 안 먹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돌아와 보니 집에 아무도 없고 열쇠도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문밖에서 하루를 지새운 후부터였다고 합니다. 그 날 부모님과 형제들은 새 외갓집에 다녀들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자신도 가끔 횡성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찾아가게 되었고 학교를 주 빠졌다는 것입니다. 재동이는 자신의 가정 환경을 말하면서 때때로 감정이 복받쳐 오는지 울음을 멈추지 못하였습니다. 며칠 전 학교를 무단 결석한 일도 횡성 할머니 집에 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처음 재동이를 만났을 때 아이가 자기 모순적인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는 있었으나, 그것이 가정 환경과 관련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만난 후 재동이가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을 쉴틈 없이 터트릴 때, 제 가슴은 미어지는 듯 하였습니다. 재동이는 그 누구보다도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아이였습니다. 또한 받은 상처에 대한 마음의 치유가 있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먼저 재동이 스스로가 서야할 자리가 어디인지 확인시켜 주고 싶었습니다. 재동이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며, 새어머니와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스스로 서고싶은 자리를 아이는 알고 있습니다. 더불어 나는 아이에게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도왔고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며, 함께 고민을 풀어 가는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아이가 받은 상처는 삶 속에서 풀어야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상담자로서, 교사로서, 친구로서 저는 재동이에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스스로 바르게 설 수 있도록 지탱시켜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또한 교사로서 바른길을 제시하고 인도하는 일이 저의 의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친구로서 재동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 해에 재동이는 누구보다도 자주 보건실을 찾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일상의 일들을 말하고 보건실에 먹을 것이 생기면 불러보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재동이가 초코케익을 가지고 보건실에 찾아왔습니다. 새어머니가 주신 용돈으로 케익을 하나 샀다고 합니다. 함께 케익을 먹는 동안 목이 메어옵니다. 재동이가 저를 생각해주는 고마운 마음 때문에 메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 케익을 사기 위해 용돈을 모았다고 하는 그 갸륵한 정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새어머니가 주신 용돈… 새어머니가 주신 용돈…” 재동이는 자랑하듯이 말합니다. “새어머니가 주신 용돈으로 산 것입니다”.
상담교사로 거듭나고 싶다

단강 초등학교
교사 신 동 철

2001년 1월 겨울방학과 8월 여름방학 20일 동안 학생상담 직무연수 기초과정과 심화과정을 공부하면서 가족들에게 연습 아닌 연습을 많이 했다. 그럴 때 가족들은 “당신 내 남편 맞아? 꼭 남하고 얘기하는 것 같애” “ 우리 아빠 맞아? 꼭 목사님 같애” 라는 반응으로 어색해하며 나의 미숙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아니 왜 이렇지? 배운 대로 책에 쓰인대로 했는데, 반영해 주고 해석해 주고 잘 공감한 것 같은데...... 무엇이 잘못된 거지?” 혼자 고민도 많이 하고 애꿎게 가족들의 정신상태를 운운하면서 트집을 잡기도 했었다. 상담을 피해야 하는 대상 중에 으뜸이 가족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접어둔 채, 상담초기에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만용으로 헤매곤 했다. 그러나 학교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마음의 고통을 겪는 많은 어린 학생들을 만나면서, 이젠 가족들까지도 편안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화도 내고 속상해하기도 하지만 금새 무엇 때문에 내가 화났는지, 속상해하는지를 알고 그것을 표현하고 해결하는 능력도 생겼으니 다행스럽다.
가끔 내가 만일 교육을 받은 상담자가 아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아찔하기도 하다. 한없는 시행착오로 얼마나 시간을 낭비하고 살고 있을까?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알 수 있었을까? 내가 편해야 세상이 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까? 나에게도 타고난 잠재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미해결 된 감정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수 차례의 개인분석과 집단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삶이란 각자 몫이 다르고 사연 없는 사람 없고 누구든지 행복해지려고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상담을 하면서 사람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게 된 것에 감사한다. 나를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하고 성찰하게 하는 이 변화의 길이 곧 상담자로서의 성숙을 향한 길임을 확신하며 부족하지만 만족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린 내담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이끌어 내면서 상담의 목표에 도달한 뒤, 고맙다고 인사를 할 때면 그 동안의 노력이 큰 보람으로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한다. ‘너희들이 있음으로 내가 좋은 상담자가 될 수 있다’ 상담과정에서 펼쳐 보이는 그들 나름대로의 세계, 때로는 평생 묻어두었던 소중한 사연들의 감정이 쏟아져 나올 때는 그들처럼 가슴 떨리고 조심스러워 숨죽이며 그 마음을 담아내기에 벅차게 느껴져 ‘내가 무엇인가?’ 라는 직업의 엄숙함으로 압도당할 때가 있다.
도움이 필요해서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찾아오는 그들은 나를 성장시키는 귀한 사람들이고 그들의 삶의 내용은 그대로 살아있는 상담전공서들이다. 지속적인 만남의 경험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게된다. 난 항상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고자 씨름하는 어린 학생들이 고맙고, 진심 어린 사랑과 우정으로 언제든지 도움을 주려고 더욱 노력할 것이다.
상담은 경험만큼 그리고 그 경험에 따른 세월의 깊이 만큼 인간을 이해하는 조명의 폭이 달라진다는 것을 체득하면서 성숙한 학생 상담자로서 우뚝 서있을 미래의 변화된 내 모습에도 늘 신선한 기대로 주목하고 있다.
지금도 생각나는 이름 보람이

둔둔 초등학교
교사 정 미 아

설레이는 마음으로 신학기를 맞았다.
올해는 1학년 담임을 맡기로 했기에 어느 학년보다 더 설레였다. 어느 학년이나 그렇긴 하지만 특히 1학년은 학교 생활을 처음하는 아이들이 학교를 편안하고 좋은 곳으로 여기고 정말 자고 일어나면 가고 싶어지는 곳이 학교가 될 수 있도록 해 줘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은 학년의 담임이기에 그 책임의 무게만큼이나 긴장이 되는 것이다.
드디어 입학식 날이 다가오고 나는 혼자서 입학원서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아이들 가슴에 달아줄 명찰을 만들었다. 이 아이들 하나 하나를 미리 머리 속에 떠올려 보면서...
그렇게 명찰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병설 유치원 선생님이 명단을 보고 병설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보람이라는 아이를 지목하였습니다.
보람이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하였고 그 후유증으로 1년이 넘게 병원에 입원하고 있으며 아버지 병간호로 엄마는 늘 집에 없고 어린 자매끼리만 생활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래서인지 그 아이는 말도 없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으며 급식소에서 밥을 먹을 때도 편식으로 인해서 식사시간에 거의 대부분 소리도 없이 울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심한 경우 먹은 것도 없이 구역질을 해서 토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끔 급식소에서 밥은 먹지 않고 울고 있던 작은 체구의 아이, 둥그런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앉았던 보람이라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침내 입학식과 함께 난 보람이라는 아이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기운이 없고 어깨는 축 처진 모습이 어찌나 애처로와 보이는지...
입학 후 난 이 아이의 예쁜 얼굴에 웃음을 되찾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3월 한달 ‘우리들은 신나는 1학년’ 학습을 하는 동안에 보람이는 많은 고민거리를 주었다. 게임을 할 때나 여럿이 협동하는 일에 거의 참여를 하지 않은 아웃 사이더였다. 게임이 한참 진행 도중 보람이 차례만 되면 꼭 게임이 중단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기회를 주어도 보람이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점심시간!
난 그동안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는 그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보람이 때문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일부러 자리를 보람이 가까이에 앉아서 밥을 먹으면서 보람이를 관찰했다. 보람이는 밥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젓가락으로 세듯이 먹고 있었다. 나는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먹으면서 보조를 맞추어서 밥을 먹었다.
보람이는 연실 눈을 내리깔고 힐금거리며 나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나는 1학년의 올바른 식습관 형성을 위해 밥을 다 먹고 나면 식반 검사를 꼭 해야만 교실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늦게 먹는 아이들이 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교실로 들어간다. 하지만 보람이의 경우는 고학년이 먹고 나갈 때까지도 마냥 밥알만을 세는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는 울고 있는 것이다.
난 처음에는 가까이 다가가서 조금만 더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보람이는 얼굴까지 벌개지면서 콧물, 눈물 범벅을 하는 것이었다. 너무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될지 난감했다. 그래서 이제 그만 먹고 교실로 가라고 하니 언제 울었더냐는 식으로 뚝 그치고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일이 일주일 내내 반복되는 것이다.
이것은 편식이 아니라 음식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편식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인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초조해갔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다른 아이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또 다른 친구들 역시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눈치다. 나는 보람이에게 다가가 집에서 있었던 일을 물어 보았더니 ‘예, 아니오’ 라고만 답하거나 아니면 고개를 가로젓기, 끄덕이기 정도로만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도 쉬지 않고 다가가 말을 붙였다.
이런 사실은 또한 다른 선생님께도 이야기하면서 아는 척을 많이 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랬더니 2학년 선생님께서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셨다. 마침 2학년과 식사 시간대도 같았다. 우리는 보람이가 조금이라도 잘 먹는 날은 많이많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덕분일까?
그렇게 밥을 거부하던 보람이가 차츰 차츰 밥을 먹는 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하나 달라진 것은 수업할 때 발표를 전혀 안하던 보람이가 손을 조금 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고 처음에는 아니라고 생각도 했지만 혹시나 하면서 보람이가 손을 든 것 같은데 발표해 볼까? 했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발표를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도 놀랬지만 반 아이들의 반응은 더 나를 놀라게 했다. 갑자기 여기 저기서
“야, 보람이가 발표했어.”
“와!”
하면서 일제히 박수를 치며 격려를 보내는 것이었다. 보람이는 더욱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채로 말이다. 그렇게 보람이는 급식소에서, 교실에서 아이들과 나에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2학년 선생님까지도 정말 보람이가 몰라보게 밝아졌다며 같이 기뻐해 주셨다. 그러는 사이 5월이 거의 지나가던 어느 날 나는 뜻하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보람이 어머니께서 전화를 처음으로 하셨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아빠가 퇴원을 하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순간 나는 너무 안타까웠다.
그동안 보람이랑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던 일과 함께 새로운 환경에 보람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걱정이 앞을 가렸다. 보람이가 떠난 던 날, 보람이는 많이 울었다.
군인인 아빠들의 전보가 수시로 있어 전학을 자주 하는 이곳 아이들의 특성상 전입학에 별로 민감하지 않고 또한 헤어지는 일에도 익숙한 아이들인 것이다. 그리고 보내는 아이들 역시 눈물을 글썽였다.
‘정들자 이별이라더니.....’
마지막 떠나는 보람이의 뒷모습! 교실에서 아이들과 작별 인사하며 흘리던 눈물!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지금 보람이는 새로운 학교에서 잘 적응하며 살고 있는지....


또 다른 만남

만종 초등학교
교사 임 재 학

Ⅰ. 만남을 준비하며

지금 맡고있는 학급이 2년째라 친숙한 아이들과 함께 올 한해를 그리 어렵지 않게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중 길동(가명, 만 12세)이는 나에게 있어서 처음의 만남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만남으로 다가왔다.
1999년 3월, 첫 발령을 2학급의 분교로 받고 교사로서의 부푼 희망과 설렘, 시작이라는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보낸 것도 잠시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학교통폐합으로 인해 이 곳 학교에 오게 되었다. 어느 대가족의 식구처럼 지내던 분교 생활과는 달리 학급당 인원수가 40여명에 달하는 상황에 놓인 나로서는 첫 발령을 받은 학교 그 이상의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였다.
이곳 학교에서의 첫 출근, 그리고 5학년 아이들과의 첫 만남.
40여명의 아이들이 그들의 담임 선생님에 대한 호기심과 어색함, 기대감으로 모든 시선을 나에게 맞추고 있을 때, 그 속에서 나의 눈을 멈추게 하는 길동이가 있었다. 자기 자리에서 연신 몸을 휘두르며 무언가를 계속 만지작거리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교사와의 눈빛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연신 교실의 바닥만을 보고 있는 아이…….

Ⅱ. 새로운 만남에 있어서

며칠이 지나고 어느 정도 학급에 익숙해지면서 나는 길동이가 정서상의 문제가 있어서 학습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로 여겼다. 공부시간에 필기 등을 한다고 길동이에게 눈을 잠시 떼기라도 한다면 어느새 혼자 나가서 학교 주위를 돌아다니며 혼자 놀거나 다른 학년의 체육시간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손가락이나 연필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무언가에 빠진 사람처럼 집중해서 아무 의미 없는 행동에 집착하기도 한다. 공부시간에 음절단위의 상동어를 하는 등의 문제행동 만을 수정해 준다면 모든 것이 다 나아지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때로는 타이르기도 하고 때로는 혼을 내주기도 하였다. 내가 길동이를 혼내기라도 한다면 반 아이들은 “길동이는 원래 그래요”라고 했지만 길동이를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 생활을 하였으면 하는 나의 욕심으로 심하게 혼을 내주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길동이의 교우관계를 살펴보았다. 길동이는 비록 친구들과 같이 협동놀이를 할 수 없지만 청소를 열심히 하고 남에게 호의적이어서 친구들이 길동이를 배려하고 도와주는 등 교우관계에 있어서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길동이에게서 나오는 수줍은 듯한 웃음은 나로 하여금 그에게 긍정적인 관심을 높이게 해주었다. 또한 길동이에 대한 나의 접근 방식을 바꾸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Ⅲ. 또 다른 만남에 있어

어느 날 길동이와 또 다른 만남을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 본교는 학습도움학급(특수학급)이 있어서 많은 시간을 학습도움학급에서 보내는 관계로 길동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 날은 우리 반 아이들이 축구를 한다고 정신이 팔려있고 나는 아이들의 심판을 보고 있는데 길동이가 다가왔다. 늘 평상시에 잘해주지 못하고 관심을 많이 보여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길동이에게 다른 방법으로 다가가 보기로 하였다.
“길동아, 선생님 안마 좀 해줘”라고 이야기했을 때, 길동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다가와서 나에게 안마를 해 주기 시작했다.
“여기도 저기도”, “두드리지 말고 주물러봐”, “좀 살살해 아프다.” 등의 나의 주문을 잘 따라 주었다. 그리고 자기의 행동에 내가 아파하고 좋아하는 반응을 보여주자 열심히 나의 등을 두드려 주기도 하였다. 또한 안마를 하면서 나는 일상적인 질문을 계속했다. 길동이는 질문을 어느 정도 이해는 하는 것 같았지만 의미 없는 상동어나 음절로 대답했고 나는 그런 행동을 따라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간이 계속되고 횟수 또한 점차 많아지면서 길동이는 언제부터 내게 먼저 다가와 툭 치며 “어어” 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고 안마 또한 자발적으로 하기도 하였다. 이런 행동을 보면서 나와 길동이와의 사이에 전과는 전혀 다른 레포가 형성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관계를 형성하고 난 후부터는 방과후에 남아서 학습해 보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눈과 손의 협응 능력이 없어서인지 그림이나 글씨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학습능력의 부족으로 1-10까지의 숫자도 따라 쓰지 못하며, 한글을 전혀 받아쓰고 읽지도 못하던 아이가 어느 때부터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읽지도 그리고 이해도 하지 못하지만 그대로 따라 쓰려고 앉아서 연필을 쥐는 길동이의 행동을 보면서 내 스스로의 희망과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또 시험을 보면 백지로 내던 아이가 이상한 글자를 써서 제출하는 등의 모습을 보며, 컷 만화를 그리면서 “이게 뭐야?”라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은 못하지만 그래도 울음소리나 소리를 흉내내기도 하고 단어로 대답하는 아이를 보면서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길동이가 일상의 사회 생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이들의 가정통신문과 시험지 등을 나누어주고 걷어오고, 6학년 아이들의 우유를 찾아오기도 하고, 간단한 심부름 등의 비록 하찮은 것일지는 모르지만 길동이의 혼자 힘으로 해내는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기도 하였다.
한달 전 수학여행에서 비록 내가 써준 몇 줄의 편지를 그대로 받아 적어 부모님의 마음과 나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었던 길동이.

Ⅳ. 헤어짐에 앞서

6학년 초등학교의 마지막이라는 아쉬움과 몇 달 남지 않았다는 아쉬움에 길동이를 더 붙잡아 두고 싶은 나의 지나친 욕심이 문득 들곤 한다.
일반 초등학교에서는 일상적인 만남을 가질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나에게 길동이는 또 다른 만남으로 다가왔다. 길동이로 인해 나는 특수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게 되면서, 나 스스로 ‘이론을 실천하는 전문가’로서 나와 만나는 일반적인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사랑으로...

매지 초등학교
교사 임 정 미

“내가 살~아 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아니라니깐... 거기서 손을 코에 갖다 대야지! 그리고 ‘살~아 가~는’할 때도 ‘가다’는 동작이 빠졌잖아!”
요즘 우리 아이들은 얼마 남지 않은 학예회 준비로 바쁘다. 8명밖에 되지 않는 학생들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근처 대학교 봉사 동아리의 도움으로 수화를 배우게 되었다. 학예회까지는 얼마간의 여유가 있건만 아이들은 마음이 조급한지, 내가 교실을 비운 동안에도 자기들끼리 연습이 한창이다... 잘 따라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나누어서 가르치기도 하고 총 감독에 오디션 책임자까지 정해놓고 참 열심이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마음이 훈훈해 진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내 시선을 잡아끄는 아이가 있다.
진00이...
우리 학교 같은 작은 학교 전입생 중에는 시내에 있는 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전학 온 학생들이 더러 있다.
진00이도 비슷한 이유에서 우리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진00이는 경미한 자폐증세를 보이는 학생이다.
우연이었는지 선생님들 중에 예전에 진영이를 담임하셨던 분이 계셨다. 만약 사전에 그 분이 진영이의 증세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무척이나 당황했을 것이다.
진00이는 수업 중에 다른 친구들이 함께 교과서를 읽는 동안 의자 위에 올라간다든지 교실을 뛰어다니고 괴상한 소리를 내는 등의 이상 행동을 보였다. 또한 수학 시간 등에 다른 친구들이 문제를 다 풀고 그 다음 문제로 넘어갈 때 자신이 다 풀지 못하면 소리를 지르며 학용품을 던지고 주위 친구들을 때리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매 경우 정상적인 수업 진행을 포기해야 할 정도였다. 다른 친구들과 상호 작용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사인 나와도 눈이 마주치는 것조차 피하였다.
다른 아이들은 매우 당황스러워했다. 나 역시도 앞으로 이 아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막막했다.
일단은 진00이 어머니와 상담을 해보았지만 많은 정보를 얻어내진 못했다.
진00이는 어릴 때부터 경미한 자폐 증상을 보였고, 자폐의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며 한동안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거기에 한가지만 더 하자면 미술 교과의 색의 혼합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 외에는...
자폐 증상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너무나 적었다. 일단은 여러 책이나 인터넷 등을 통하여 얻어진 여러 가지 정보를 나름대로 정리하고 치료방법 등을 숙고한 뒤 반 아이들에게 이해를 구했다. 그리고 나서 우리 모두는 이러한 약속을 정해 보았다.

하나, 가까이에서 속삭이기
자폐 아동에게 이와 같이 해 주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라고 한다. 신체 접촉을 강화시키고 말을 듣는 습관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이제 멀리서 소리치기보다는 가까이 다가가서 친밀감을 느끼며 속삭이게 되었다.

둘, 행동을 이해하기
자폐 아동은 특이한 행동 특성을 보이거나 자주 화를 내기도 하는데 이는 그들이 원하는 바를 요구하려 하여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진00이의 그러한 행동에 대해 당황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셋, 어려운 일 함께 하기
이것은 우리 반 어느 친구에게나 해당되는 내용이지만 특히 진00이의 경우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하는 것에 서툴더라도 먼저 다가가서 함께 하기로 약속하였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아이들은 아주 세심한 것까지 챙겨주고 서로 먼저가서 도움을 주려했다. 단. 진00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자주적으로 해결하도록 하였으며 학급의 역할 분담에 있어서도 빼놓지 않고 책임을 지워주었다.
이것 외에도 진00이네 근처에 사는 아이들에게 주일에 함께 교회를 가게 한다든지 방과후 함께 숙제를 하게 하고 공부를 도와주는 친구도 돌아가면서 정해주었다.
내 경우는 진00이와의 의사소통과 친밀감 형성에 가장 중점을 두었다.
처음에 진00이는 말을 걸었을 때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응,아니” 정도로 밖에 대답하지 않았다. 1학기 중반 정도에 진00이는 제한된 몇 개의 낱말을 가지고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이 경우에 다시 그 상황에 맞도록 문장으로 정리를 해 주고 반복하도록 하였다. 다음은 진00이와의 대화 내용 중 일부이다.
진00 : “늦었어, 태권도 어떻게 해?”
교사 : “태권도에 늦기 전에 지금 가도 되나요?”
진00 : (바지 가랑이를 잡으며) “오줌...”
교사 :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물론 진00이의 반복은 기계적이었고 그 순간뿐이었지만 이러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또한 말을 할 때에도 머리를 쓰다듬거나 손을 잡아주는 등의 신체적 접촉을 계속해서 시도하였더니 나중에는 나에게 와서 안기기도 하고 무릎에도 자연스럽게 앉았다.
얼마 전에 진00이는 제법 그럴듯한 문장으로 의사소통을 해왔으며 내 볼에 뽀뽀까지 해 줄 정도로 친밀감이 생긴 것 같았다.
진00 : (도복으로 갈아입으며)“나 태권도 늦었으니까 선생님이 옷 접어서 눠줘.”
교사 : “넣어주세요 해야지”
진00 : “넣어주세요”
교사 : “대신 볼에 뽀뽀해주면 넣어줄게”
진00 : (볼에 뽀뽀)

학예회가 이제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은 교실 앞에 죽 늘어서서 ‘사랑으로’ 노래에 맞추어 수화 동작에 열심이다.
여러 아이들 중에서도 내 시선을 끝까지 잡아 두었던 진00이...
뒤에서 가만히 바라보다 가슴이 벅차 올라서 노래가 끝난 뒤 진00이에게 달려가 꼭 안아주었다.
진00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낸 것이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겨우겨우 동작 몇 개만 따라했었는데... 옆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조근조근 가르쳐 주었을 우리 아이들도... 남들보다 몇 배 더 노력해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은 진00이도...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아이들도 모두 기뻐서 서로를 감싸안았다.
진00이는 다음에 어떤 모습으로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 선물을 줄까?
서로에게 진정한 사랑으로 느껴지는 존재가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의 소중한 만남으로 어른이 되어서도 더 큰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 본다.
“아아, 영~원히 변치 아~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운 아이

신림 초등학교
교사 신 동 원

Ⅰ. 내담자를 만나게 된 동기

5월의 햇살이 따뜻한 어느 날 퇴근 길 차안에서 4학년 선생님의 고민을 듣게 되었다. 하소연한 내용은 담임하고 있는 아이들의 생활지도에 관한 문제였다. 몇몇남자 아이들이 학급 분위기를 흐트러뜨리고 친구들을 괴롭혀서 골머리를 앓는다고 하였다. 경력이 2년 밖에 안 되는 햇병아리 교사로서 그래도 경력이 많은 선배교사에게 하는 하소연이었다. 특히 문제가 되는 아이가 ‘○○○‘인데 지도하는데 대책이 서질 않는다고 하였다.
그 후 교과전담 교사로서 4학년 교실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수업 중에 선생님을 전혀 보지 않고 밑만 내려다보며 무엇인가 열심히 그리는 아이가 있었다. 교사의 우스운 이야기에도 웃지 않고 눈길이 마주쳐도 애써 피하며 눈빛이 날카롭고 분노에 찬 모습이었다. 후에 이 아이가 담임 선생님이 겪는 문제가 가장 심각한 아이라는 것을 알고 내담자로 정하게 되었다.

2. 내담자 대한 개요
- 성격 -
눈이 작고 눈빛이 날카로우면서도 분노에 찬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키는 왜소하지만 당차고, 야무지며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공차기를 좋아하고 말이 거의 없으며 내성적이라 속마음을 거의 표출하지 않으며 드물게 까불 때도 있다. 친구들과 골고루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보다 기운이 약한 몇 아이하고만 놀면서 약자를 집요하게 괴롭히며 선생님께 반항하는 경우도 있다.
- 내담자의 희망 -
담임교사의 공식적인 장래희망 조사 때 ‘경찰’ 이라고 답하였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을 다 패버리고 죽여버리겠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나를 괴롭히는 나쁜 놈들을 모두 감옥에 보내고 싶다고 하였다.
- 장점 -
칭찬에 매우 긍정적 효과를 나타낸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주며 지도하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
- 특기-
그림 그리기로 잘 그린다기 보다는 즐거워한다고 볼 수 있다.
- 가족 현황 -
현재 아버지, 할머니, 누나, 내담자 4식구가 살고 있다. 내담자가 3세 때 어머니의 가출 이후 할머니가 양육하였고 아버지를 아주 무서워하며 나머지 가족에 대해서도 애정이 깊지 않다.

3. 내담자의 문제
내담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억압된 분노를 아무런 관련도 없는 불특정 약자에게 표출하는 것이다. 즉 자기보다 힘이 약한 아이들을 때리거나 집요하게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 외 숙제를 전혀 안 해오며 성적이 나쁘고 특히 수학을 아주 싫어하고 가끔 거짓말도 하였다.

4. 원인분석
처음에는 상담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 난감하였다. 담임선생님의 이야기만으로는 아이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누나인 본교의 6학년 ‘◇◇◇‘ 도 만나보았다. 그리고 상담 참고서를 구해 보면서 양호실에서 월 2회씩 면담하며 면담기록부를 작성하였다. 더 정확한 원인을 알기 위하여 1차적으로 그림을 통한 심리검사를 실시하였다.

1) 심리검사
< HTP검사>
집은 창문을 4개로 그려 가족 수와 같게 그렸으며, 자기 방을 갖고 싶어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내담자는 대문 앞에서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화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고 지키는 모습으로 그려 외부세계와 단절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무는 기둥에 딱따구리가 구멍을 판 모습을 나타내 나무에게 고마운 느낌이 별로 없어 이는 곧 주위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경우보다는 분노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은 아주 작게 한 구석에 그려 내담자의 움츠러진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린 순서는 할머니, 본인, 아빠, 순이었고 누나를 빼고 그렸으며 그 이유는 누나가 집안 일을 자기에게만 시켜서라고 대답하였다. 그림 내용을 보면 본인이 책상 앞에서 책을 보고 있으며, 그 뒤에 할머니가 인자한 얼굴로 서 있고 제일 뒤에는 아빠가 무서운 얼굴로 커피를 마시며 내담자를 감시하고 있어 역시 아버지의 심리적 거리가 제일 먼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학교의 중심적인 일 그리기>
친구 ‘□□□‘과 공 차는 모습, 싸우는 모습을 그렸다.
<자유낙서>
머리털을 삐죽 세우고 싸우는 모습을 종이 한 구석에 작게 나타내어 심리적 불안감을 표시하고 있다.

2) 가정방문
더 확실한 원인을 알아내기 위하여 가정방문을 하게 되었다.
과거와 현재의 가정환경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장마비가 장대같이 내리던 7월 20일 아침 07시에 내담자의 집을 방문하였다.
마침 가족이 모두 있어 아버지와 아침상을 하면서 면담하게 되었다.
면담 결과 과거에는 남들처럼 행복하게 살았으나 사기 당함으로 인한 재산을 탕진하여 가세가 기울자 엄마가 가출하였으며 과거 관광버스를 운전하며 귀가 시간이 늦고 아이들과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적어서 아버지에 대한 정이 적었던 데에다 아내 가출 후 심리적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간접적으로 화풀이하며 야단치거나 때렸던 관계로 아버지를 무서워하게 되었다고 느껴졌다.
아버지는 자녀가 숙제를 안 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TV에 놓인 돈을 아이들이 가져다 사 먹는 경우 가차없이 때렸다고 하였다.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일의 전후와 원인 등을 이해하며 교육적으로 다루기 않고 무조건 폭력적으로 다루는 바람에 아이들의 아버지와의 대화의 벽이 완전히 막히게 되었다고 판단되었다. 아버지의 목소리도 크고 날카로와 처음 대하는 상담자도 무지막지하고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이날도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내담자가 물을 한 그릇만 떠오자 버럭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물을 온통 쏟고 말았다.
전체적으로 종합하면 집에서 숙제를 봐주는 사람이 없이 아빠와 대화가 안되고 할머니는 농사일과 취사 일을 전담하며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관계로 손주들의 학습상황을 챙겨주지 못하고 방치되어 아이들이 홀로 남은 채 TV만 보거나, 노는 관계로 학습 결손이 누적되었다고 생각되었다. 아울러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애정결핍)이 여성이나 약자에 대한 분풀이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여졌다.
아버지와 면담을 마치고 두 남매를 차에 태우고 학교로 오면서 대화를 하게 되었다. 엄마 얼굴이 기억이 안 나고 1학년 입학도 할머니가 시켰다고 하였다.
‘무엇이 제일 부러우냐?’ 는 질문에 소풍 때나 운동회 때 남들처럼 엄마가 오지 못해서 제일 부럽다고 하였다. 학교 생활이 아주 즐겁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집보다는 낫다고 하였다. 학교에서는 컴퓨터실에서 게임도 할 수 있고 공을 차며 친구들과 놀 수 있으나 집에는 그렇지 못하고 아버지의 호령만 있기 때문이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자녀들의 욕구 해소나 용돈이 주어지지 않고 엄하기만 하기 때문에 마음이 억눌리고 불안한 상태로 생활한다고 보여졌다.

- 종합적 원인 -

심리검사와 가정방문을 통해 나타난 것을 토대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았다.
오랜 기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분노로 폭발하고 아버지에게서 받는 억압된 감정을 타인에게 함부로 표현하다 맞게 되면 찍어놓은 약자에게 분풀이하여 대리 만족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내담자가 3세 때 (가장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랄 나이인데 가출함)부터 그 원인이 시작되었다고 보여진다. 이것이 모성애에 대한 그리움과 분노로 폭발하였으며 현재까지도 이런 경과 사이클은 변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고 보아진다. 또 다른 문제는 숙제를 전혀 하지 않고 공부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인데 이는 오랜 기간 아이들만의 방치로 학습 결손이 누적되어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고 할 수 있다.

5. 상담 및 처치

담임 선생님과 협력하면서 협동치료를 시도하였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사랑으로 감싸 격려를 하도록 하였다.
부적응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환경자극을 알아내고 이를 수정하기 위한 행동 수정 기법(ABC기법)을 적용하였다. 아울러 바람직한 행동을 정하고 내담자와 행동계약을 맺고 실천하도록 했으며, 토큰 시상제를 실시하도록 하였다. 즉 정적 강화를 하고 상반행동을 감소시키는 과제를 부과하였다. 아울러 매일 과제 이행상황을 체크하고 보상을 하며 칭찬을 하도록 하였다.
아울러 능력에 맞는 양의 숙제를 점진적으로 부과하고(주 1회부터 ) 안 해왔을 시에는 학교에서 교사의 도움 하에 하도록 하며 칭찬과 보상, 특별한 관심 등 긍정적 강화를 많이 주었다. 특히 숙제는 안 해와도 절대로 벌을 주지 않았으며 학교에서 상담자에게 모든 고민을 터 놓을 수 있도록 친근감을 주도록 노력하였다.
약속과제 지키기, 숙제하기와 기운이 약한 친구 괴롭히지 않기 중에서 약속과제 지키기, 숙제해오기는 점점 지켜졌으나, 기운이 약한 친구 괴롭히지 않기는 더디게 진행되었다.



6. 제언

어렸을 때의 어머니의 애정이 아동의 성장에 미치는 효과가 막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으며 내담자의 문제점 - 즉 약자를 괴롭히고 대리 만족하는 이상 행동이 아주 오래 전부터 복합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상담효과가 금방 나타나기는 불가능하였다. 치료적 접근은 가정적으로는 엄마의 귀환, 할머니, 누나, 아빠가 따뜻하게 애정을 베풀며 대화를 마음놓고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하고 학교에서는 담임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예를 들면 어머니로서의 애정과 선생님으로서의 자애가 동시에 투사되어야 하며 반 친구들의 적극적인 포용, 상담자의 효율적인 처치법이 종합적으로 강구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아버지와의 더 많은 상담을 통하여 가정에서의 허용적인 분위기가 되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2학기 들어 점점 웃음을 띄워 가는 ○○이를 보며 어른들의 책임, 교사로서의 책임을 무겁게 느끼며 학년말에는 반 친구들로부터 제일 좋아하는 아이가 되어있을 것을 성급하게 기대해 본다.

점점 커져 가는 사랑

신평 초등학교
교사 정 규 남

학교는 서쪽으로 쪽빛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고개를 들면 노르스름하게 익어 가는 은행나무들이 감싸고 있는 들길에 있었다.
꼭 껴안고 싶은 귀여운 아이들이 그 곳에 사는 아이들은 벌레를 물어다 주는 어미를 기다리는 노오란 제비들이었다. 낮이면 흰 구름 하늘이 드넓고, 밤이면 별들이 이슬처럼 반짝이듯, 아이들의 함박 웃음이 떠나지 않는 곳이었다. 그 곳에 몇 명 안 되는 아이들 속에서도 몸집이 너무 작아 가슴을 아프게 하는 세창이가 있었다. 스스로 깊은 벽에 묻혀 들어가 또래들이 배우고 있는 사회 적응 능력이나 기초 학력은 멀리 한 채, 자기만의 성을 굳고 높게 쌓아가고 있었다. 깔끔하지 못한 옷맵시와 자아를 교류시키지 못하는 데서 오는 따돌림 속에 그 세창이는 고독한 수행자처럼 말도 없이 하루하루 학교 생활을 지워 나가고 있었다.
눈곱 낀 흐릿한 눈매에 기우뚱한 걸음걸이, 깔끔하지 못한 옷차림, 자신의 이름 석자 외에는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이 남과의 어울림을 거절하는 행동 때문에 또래들은 짝이 되는 것은 물론 한 공간에 있는 것조차 거부했다. 그래서 아이는 항상 외로웠고 선생님을 두려워했다.
세창이를 통해 그 아이는 물론 다른 어린이들의 해맑은 동심까지도 깨어질까 봐 또는 작은 아이들의 예쁜 마음이 자라기도 전에 타인을 멸시하고 업신여기며 미워하는 이기심을 배우게 되기 전에 학교 생활을 지워 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아름답고 밝게 돌려놓아야 했다. 그래서 세창이에게는 침묵 속에서 자주 칭찬을 하고 아이의 능력에 맞도록 과제를 주었다. 누런 코가 묻어 있는 볼에 뽀뽀를 해 주며
“넌 잘 할 수 있을 꺼야, 지금도 잘 하는데 먼 훗날 어른이 되면 굉장히 멋진 아빠가 될 거야”
다른 아이들 앞에서 의도적인 칭찬과 선생님과의 친밀한 행동에서 세창이는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세창이는 또래들에게도 하나, 둘씩 관심의 시선을 받게 되면서 정상적인 학교생활로 읽고, 말하고 쓰면서 또 그리기 시작했다.
세창이는 선생님의 작은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교실바닥의 작은 휴지조각들을 한 두개씩 주워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생님을 위해서 또래들을 위해서 무언가 보여 주려고 무척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일들이 그에게는 자기를 인정해 주는 또래나 선생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교과 학습의 발달은 짧은 기간 내에 이루어지기가 힘들겠지만 세창이와 우리에게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따뜻한 1학년 교실 속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또 눈을 감으면 무지개 빛 햇살이 비춰 와서 오늘도 마냥 행복하다.
칭찬 한 마디

우산 초등학교
교사 김 승 연

10월의 마지막, 창문 밖으로 보이는 단풍을 보면서 ‘벌써 올 한해되 다 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된다. 이런 일 저런 일.... 하루라도 그냥 조용히 지나가면 무슨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문제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래서 웬만해선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1년이 지나가고 있다. 학기초가 생각이 난다. 몇 학년을 맡게 될까? 어떤 아이들을 맡을까? 혹시 우리 반에 문제아는 없을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이 학교에 처음 오던 날, 학년과 반을 배정 받고 새로 맡게 될 교실 구경을 갔다. 전년도에 그 교실을 쓰시던 선생님을 만났다. 이런 말 저런 말을 물으면서 “이번 5학년 애들은 어때요?” 라고 물었을 때, “애들이 좀 극성스럽긴 한데 그래도 ○○, □□ 이런 애들만 안 걸리면 괜찮을 거예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설마 그런 애들이 우리 반이 되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학생 배정이 있던 날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 다 우리 반이었다. 걱정이 되긴 했지만 ‘별일은 없겠지. 그래봤자 아직 5학년 밖에 안된 애들인데... ’ 라고 생각하며 시작했던 3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돌이켜 보면, 얼마 되지 않는 경험에서 나온 용감무쌍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3월부터 우리 반에 발생했던 문제들을 요약하면 왕따와 폭력으로 귀결된다. 3월 중순을 넘기면서부터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 문제는 다름 아닌 폭력이었다. 단순한 친구들끼리의 싸움이 아닌 어떤 한 학생의 일방적인 폭력. 그것도 한 명만 그런 게 아니라 남학생 1명, 여학생 1명이 일방적으로 자기 보다 약한 학생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때리는 것이었다. 말로 타이르고 벌을 주기도 하고, 심할 경우 체벌을 가하기도 하였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반 선생님으로부터도 종종 그 반 학생이 우리 반 학생에게 맞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때리는 학생과 아주 친한 몇 명을 제외하고는 다른 아이들은 그 학생들을 싫어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무리를 지어 때리는 아이를 왕따 시키는 현상이 대두되었다. 그렇지만 폭력의 양상은 수그러드는 것이 아니라 더 폭력적이고 더 빈번하여졌다. 학생들 중에 약하거나 왕따 시키는 그룹에도 속하지 못한 학생들은 때리는 학생의 심부름을 하기도 하고,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는 그 학생이 시키는 일을 하는 일도 늘어갔다. 문제는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들이 교사인 나의 통제를 전혀 따르려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교사에게 강한 적대감과 반항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두 학생의 양상이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학년 초에는 수업과 관련 없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해서 교사의 주의를 끌려고 하려는 것과 자기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끌어들이는 점, 약간씩 다른 점이 있긴 하였지만, 어쨌든 두 명의 학생 때문에 어쩔 때에는 수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적도 많았다. 바쁜 업무, 환경미화다 뭐다 뭐 하나 익숙한 것이 없어서 쩔쩔매던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점점 더 심각해 가는 교실에서의 문제. 그냥 지나가려고도 해 보았지만 도저히 그냥 덮고 지나칠 수 없는 문제였다. 열 일을 뒤로하고 한 명씩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상담이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그런 이야기 과정에서 우리 반에서 있었던 일들과 몇 가지 학생들과 활동했던 일들, 그에 따른 나의 생각과 느낀 점을 중심으로 다음의 글을 소개하기로 한다.

1. 반 전체를 대상으로 한 활동
실시 시기는 주로 반분위기(학생들간의 관계)가 전체적으로 안 좋다고 느꼈을 때이다. 도덕시간이나 아침활동 시간, 학급회의 시간을 이용하였다. 실시 결과, 실시 전보다 좀 더 이해하는 분위기로 바뀌었고 처음 보다 횟수가 거듭 될 수록 그 효과가 지속적이고 얻기까지의 소요시간이나 노력이 단축되었다.

1) 먼저 하였던 것은 역할극이었다. 때리는 학생도 문제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시시비비를 가려가며 그냥 지나칠 것도 하나 하나 확대해서 말하면서 왕따 시키는 학생들도 문제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때리는 학생들에게 그 상황을 3자의 눈으로 보면서 맞는 사람의 심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또 이렇게 함으로써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 속에 생활하는 일원임을 그래서 서로 조금씩 더 이해하고 양보해야함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주제를 ‘때리는 학생과 맞는 학생’, ‘왕따’라는 두 개의 주제를 주어서 모둠별로 역할극을 준비하게 하였다. 특별한 단서는 없었지만, 문제가 되는 학생들에게는 역할을 맞는 역할로 고정시켜 주었다. 처음에는 모둠별로 잘 한 모둠에게 스티커를 준다고 하였기 때문에 재미로 시작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모둠별 역할극 발표가 끝난 뒤 준비한 종이에 느낀 점과 다짐의 글을 적게 하여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한마디라도 모두 발표하게 하였다. 한 명 두 명 느낀 점을 이야기하면서 처음의 장난스러웠던 분위기는 점차 엄숙한 분위기로 바뀌었고 더 이상 장난삼아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교사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들은 스스로 ‘왕따’의 문제점을 지식이 아닌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때리는 역할을 한 학생과 맞는 역할을 한 학생들도 교실에서 폭력이 없어져야 함을 느끼고 있었고, 문제가 되었던 학생 두 명도 구두로는 하지 않았지만, 글을 통하여 폭력은 나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행동 개선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2) rolling paper - 칭찬 한마디
1학기말에 했던 활동이다. 방학식 전 날 책상을 둥그렇게 전체 하나의 원이 되게 배열한 후 각 사람에게 A4종이 한 장씩을 주고 자기 이름을 적은 후 종이를 돌려가며 자기가 받은 종이 주인에게 칭찬의 말 한마디씩을 적게 했었다. 요즘도 약간 그런 현상이 남아있긴 하지만 1학기말 무렵에 우리 반은 크게는 남학생 / 여학생, 작게는 몇 명씩 패가 생겨서 자기 편이 아닌 친구들에게 함부로 말을 하거나 심할 경우 욕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방법은 절대 상대방을 헐뜯거나 기분 나쁜 말을 쓰지 말 것과 그 친구의 장점이나 칭찬의 말을 반드시 하나 이상 적는 것이었다. 몇 명을 제외하고는 그런 대로 잘 지켜졌고 받은 사람 모두 기분이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3) 기타
그밖에 가끔 아침 활동시간에 설문조사를 한다. 양식은 인터넷에서 다운받아서 활용하고, 설문 내용은 싫어하는 사람이나 그 이유 혹은 socialgram을 활용한 친구지도로 할 때도 있다. 싫어하는 사람을 할 때는 싫어하는 학생의 이름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이유를 쓰게 하여 아이들의 그 때 그 때의 경향을 파악하는 데 활용한다. 설문 조사할 때 다른 때와는 달리 평소 장난스럽던 아이들도 진지하게 임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갖고 결과를 통계 내어 알려줌으로써 간접적 fedback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

2. 집단 ( 5명~ 최대 10명) 상담 활동
집단으로 했던 것은 모두 여학생이 대상이었고, 시기는 주로 집단끼리 서로 싸운 후 혹은 왕따 문제 발생 후이다. (우리 반에서는 남학생의 왕따보다는 여학생의 왕따가 더 정도와 횟수에서 두드러졌었다.) 실시 결과, 문제가 생기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생길 때 스스로 서로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려는 문화가 형성되었고, 문제친구를 이해하려는 마음의 폭이 넓어졌다.

1) 집단끼리 혹은 집단/개인 대면하게 하여 같이 대화한다.
▶ 우리 반 여학생들은 집단행동의 성향이 매우 강한 편이다. 명랑하고 밝아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반면 경쟁심이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 성향을 갖은 학생들이 많다. 작년에는 서로 다른 반에서 리더의 역할을 한 학생들이 몰리다 보니 서로가 집단의 리더를 차지하려는 경향이 학년초에는 두드러졌다. 그 과정에서 상대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주로 다른 집단의 친구) 왕따 시키는 일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집단의 잘못을 교사에게 이르는 일들이 빈번하였다. 크게 두 집단이 있었는데 이 두 집단 간의 괴리현상과 집단 구성원의 변동, 집단에서는 너무(?) 강한 유대감, 두 집단에도 끼지 못하는 학생들에 대한 왕따와 왕따 당하는 사람이 바뀌는 문제였다. 여학생들의 경우는 남학생과는 달리 사춘기 초기에 들어선 학생들이 많다. 아직 사고의 폭은 좁으면서 감정적인 변화가 많은 양상을 나타낸다. 또 남학생들은 혼자서도 잘 행동을 하는 반면 여학생들은 몰려다니는 경향이 더 크고, 혼자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 집단으로 행동한다. 그런데 학기초부터 형성된 두 집단이 서로 잘 융화가 되지 않았다. 또 리더격인 학생이 ◎◎를 왕따 시키자고 하면 다른 학생들은 자신의 주관적 생각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를 따른다. 이들은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왕따를 경험하였거나 가까이서 본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왕따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왕따의 원인은 부모님에 대한 것부터, 외모, 옷, 잘난 척, 폭력, 욕, 교사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는 것 등이다.
▶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학생의 경우 자신이 왕따를 당하면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 먼저 교사에게 말해주는 학생이 많다. 이럴 경우 개인과 먼저 이야기를 한 후 왕따 시키는 학생들 중 몇 사람과도 이야기를 하여 문제가 무엇인지 들어본다. 따로 따로 상담을 마친 후 적당한 시기에 다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집단과 집단끼리 싸웠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원인은 오해이거나 사소한 것이 대부분이다. 주로 상담실을 이용하였고, 서로 자기의 입장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었다. 교사는 중재의 역할만 하였고, 해결방안을 학생들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발문을 통해 유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잘못한 점도 스스로 발견하게 되고, 교사의 일방적 처방이 아닌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오해도 풀리고 학생들은 화해한다. (화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지만 꼭 하게 하였다.) 처음에는 상담실에 오는 것을 싫어하였지만, 1학기 말 정도부터는 문제가 생기면 서로 상담실에 가서 이야기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2) 간단한 프로그램을 이용
가치관 경매, 10년 뒤 모습, 인생나무 등 소요시간 1시간 미만의 간단한 프로그램을 이용하였었다. 폭력여학생에 대한 다른 여학생들의 왕따가 심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게임 식이지만, 하면서 상징적인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전에 교회에서 했던 프로그램이었고, 프로그램 설명을 먼저 한 후 서면으로 작성한 후 자기가 작성한 그림이나 글에 대해 설명하는 형식이다. 프로그램 내용이 혼자가 아닌 우리의 중요성과 물질적이고 형이하학적인 것보다는 형이상학적인 것(행복, 사랑 등) 의 가치발견, 이해, 우정의 필요성 등에 관련된 것이었다. 폭력학생을 제외한 왕따를 주도한 6명 정도를 데리고 하였다. 나름대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 공감대를 펴는 데 시간이 소요되기는 했지만, 끝났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을 이해해 주자고 모두 말할 수 있었다.

3. 개인
가장 문제시되었던 두 학생의 경우를 사례로 제시한다. 이들의 경우 주로 면담을 통한 활동이었고, 면담시기는 수시이다. 문제 행동의 수정을 위해 학부모 면담과 상표, 심한 경우(교사에게 욕설 등) 체벌을 병행하였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두 학생의 공통점은 적대감, 반항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공격성, 거부성이 두드러지며, 내면에 분노감, 적대감이 많으며 주변환경에 대해 거부적, 냉소적, 부정적인 경향이 강하다. 지나치게 자기정당성을 주장하며 관습적인 방식대로 행동하기가 어렵고 자신의 실수나 문제행동은 관대하면서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이해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누구에게나 쉽게 분노하고 적개심을 나타내다. 그리고 또래들을 놀리거나 때리고 괴롭히는 등의 행동을 많이 한다.
두 아동 모두 정도가 심해 학부모와도 2~3회 가량에 걸쳐 면담을 하였다. 학부모와의 면담은 주로 문제 행동 뒤의 면담이었지만, 학부모의 관심정도의 차이로 지금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문제 행동의 원인을 부모와의 면담을 통해 나름대로 정리하면
▶ 남학생의 경우 위로 고등학교 3학년 누나가 있고, 외적인 가정요건으로는 특별한 문제가 없으나, 아버지가 매우 엄하시고, 아동이 잘못했을 경우 어려서부터 심하게 체벌을 받아왔다. 잘못을 했을 경우 심하게 매를 맞아 3학년 대에는 다리 부상을 입은 적도 있다. 이 학생은 부모 모두 아동에게 관심이 많고 잘 대하나, 아버지의 심한 체벌이 학습되어 다른 친구들에게 거친 행동으로 나온다고 판단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어머니에게는 순종적이나 아버지에게는 반항적, 문제 행동으로 부모와의 연락 시 아버지가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함. 또 친구들을 때리는 것을 장난 친 것이라고 생각함 등이다. 또 문제 학생이라는 인식으로 입학 후 담임 선생님들로부터 야단을 많이 맞아왔던 것도 원인이 된다. 학습력이 우수하고,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며 특히 운동을 좋아하는 특성을 보이는 점을 감안, 이에 대한 칭찬과 상표, 학급에서 활동 할 수 있는 역할을 주고 문제 행동이 발생했을 때 자신이 잘못한 것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을 병행하였다. 잘 한 행동에 대해 상표를 부여하고, 매를 들기보다는 운동장 쓰레기 줍기 등으로 대신 하였다. 체벌을 할 경우 체벌을 받는 이유를 스스로 인식하기 위한 시간을 주고 왜 체벌을 받아야만 하는지 설명하였다. 또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에 축구 등을 할 수 있도록 하여 다른 친구들과 운동을 통해 에너지를 분출 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주었다. 2학기가 되어서는 특별한 문제 행동을 보이지 않으며 친구와 다투더라도 때리는 행동이 줄어들었다. 요즘은 교실에서 친구들을 아유 없이 때리는 행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상표를 받는 것을 무척 좋아하며, 숙제도 1학기와는 달리 열심히 해 온다. 많은 면에서 호전되었으며 요즘은 야단맞는 일보다 칭찬 받는 일이 더 많다.
▶ 여학생의 경우는 형제가 없고, 아버지가 아기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와 외조부, 외조모와 살고 있는 데, 어머니는 바쁘셔서 학생을 잘 돌보지 못한다. 어머니와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학생의 일탈 행동의 원인이 가정과 성장 과정, 사춘기 초기증상이 복합적으로 기인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영유아기시기부터 아버지의 간병으로 어머니와 떨어져 있었고, 외조부모 슬하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이 학생은 자신의 것에 대한 강한 집착과 소유욕, 혼자 있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고, 상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소란을 일으키거나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한다. 사춘기 초기에 들어서서 기본 제도나 어른에 대한 반항심이 상당히 크다. 하지만,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고, 특히 악기(타악기)를 다루는 것과 캠코더로 사물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가 다른 사람과 더 가깝게 지내거나 친구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학생의 경우도 상을 받는 것을 무척 좋아하며 신체 발달 면에서는 성장이 빠른 편이나 정신연령은 3~4학년 정도이다. 한가지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여학생이지만 남학생과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외모, 행동 모두 그렇기 때문에 다른 여학생들이 꺼리는 요소가 많다. 어머니에 대한 소유욕이 상당하나 사업상 바쁜 어머니와 시간을 같이 하는 것이 부족한 것도 문제 행동의 큰 원인이 된다. 이 학생을 통해 생활지도는 학교만의 노력보다는 가정과의 연계지도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게임 중독이 주는 영향

원주 초등학교
교사 박 경 희

1. 상담하게 된 동기
오늘날 우리는 컴퓨터의 빠른 보급으로 통신이 보편화되어 익명의 사람들끼리 대화 할 수 있고 원하는 정보를 수초 내에 찾아내 주는 그야말로 정보?통신의 천국에 살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인터넷의 확산으로 편리한 생활 속에서 점점 더 외로움을 느끼고 나만의 높은 담을 쌓고 ‘나만이 행복하면 그만이다.’라는 사고가 더욱 팽배해 가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우리 아이들의 생활을 각박하게 하여 점점 자기 중심적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며, 자기 표현에도 소극적인 아이들로 변화하게 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처음에 내담자인 안경수 학생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눈에 띄는 어떠한 문제도 찾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같이 점심을 먹다가 우연히 내가 던진 질문으로 상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하루에 컴퓨터를 얼마나 하니?” 라는 나의 질문에 대해 “5시간 이상은 하는데요. 어떤 때는 10시간 할 때도 있어요.”라고 아무 거리낌 없이 말했다. 이 아이를 가까이에서 관찰해 보았다. 자주 아이들을 놀려 아이들이 자주 울었고, 진실된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늘 결과를 부정적으로 상상하고 최악의 상황을 얘기하곤 했다.
나는 그 아이가 그런 극단적인 사고를 하고 이기적인 성격의 원인을 찾으려고 세심히 관찰한 결과 게임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 그런 성향을 가지게 한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우리 반 학급 신문을 만들 때 그 아이가 설문 대상이 되었다. 설문 내용 결과를 보니 취미도, 특기도, 심지어 공부 시간에도 게임 생각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2. 상담 대상
1) 내담자의 인적사항
남, 13세 초등학교 6학년, 안경수(가명)

2) 내담자의 성격과 생활 모습
◎ 자기 중심적임.
주변 친구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고 친구들이 주는 도움에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짜증을 내고 그 일에 참여하려 하지 않았다.
◎ 친구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자주 함.
친구들의 약점을 놀리고 그 약점으로 상처를 주는 말을 했다. 예를 들면, 누가 누구를 좋아해서 누구만 따라 다닌다, 또는 성폭력이야, 또는 칼로 푹 찔러서 맛나게... 이런 식이었다. 특히 여자 친구들에게 더 심했는데 우는 아이들이 많았다.
◎ 남자 친구들과는 원만하게 지냄.
자기 주변에 몇 명의 친한 친구들과는 원만하게 어울렸다.
◎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음.
◎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음
교사에게도 거침없는 말을 함
◎ 수학을 좋아함
◎ 과제나 준비물을 자기가 하고싶은 것만 해 옴
◎ 마음은 여린 편으로 교사의 말에 가끔 눈물을 보임

3. 상담의 실제
▶ 1차 상담
학생들에게 게임 관련 설문을 조사하였다.
<게임 관련 설문지>
- 어떤 게임을 하나요?
- 어느 시간대에 하며 하루 평균 몇 시간 정도 하나요?
- 어느 때에 게임 생각을 하게 되나요?
- 게임을 하고 싶을 때 못하면 나타나는 증상이 있나요?
- 게임이 좋은 이유를 적어 보세요.
<설문 결과>
- 많이 하는 게임으로는 리니지 게임 45.7%, 디아블로 37.1%, 포트리스 42.9%
- 게임은 하루 평균 1시간 이내 37.1%, 1~2시간 14.3%, 2~3시간 14.3%이고 5~6시간을 하는 학생이 3명으로 8.6%(☞이 학생들을 1차 상담 대상으로 선정)나 됨
- 심심할 때 45.7%, 아무 때나 늘 17.1%(☞1차 상담 대상인 3명 모두 아무 때나 늘 게임 생각이 난다는 학생들임)
- 게임을 못하게 되면 컴퓨터를 만지작거리거나 꿈속에서 게임을 하고 상상의 화면이 펼쳐지고 환청이 들린다고 함
그래서 하루 평균 3시간 이상을 하고 있으며 중독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 3명을 대상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게임이나 컴퓨터 관련 기사를 스크랩을 하도록 했다. 스크랩된 기사 내용에 대한 자기 의견을 쓰도록 했다. 그런데 별로 게임 중독이 주는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 2차 상담
스스로 통제를 못한다면 일단 강제로라도 통제를 하고 계속적인 대화로 설득시키기로 하였다. 그래서 가정 통신문을 만들어 부모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하루에 2 시간까지만 할 수 있도록 했고 초과되는 시간만큼 학교에서 책을 읽고 가도록 했다. 처음 느낀 점에는 ‘심심하다.’ ‘2 시간이 너무 짧다.’ 등의 내용이 많았다. 두 달 정도 가정 통신문을 활용했다. 동시에 내담자에게 게임 시간을 왜 줄이도록 하는지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에 대해 1시간씩 네 번의 대화를 했다.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기사를 직접 뽑아 가지고 와서 보여 주고 지난 기사라도 실례를 들어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4 주쯤 지날 무렵 장근이라는 아이가 ‘“선생님, 리니지 접었어요. 대신 건축물 짓는 게임으로 바꿨어요.” 라고 했다. 게임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지만 폭력적이거나 사행심을 조장하는 게임을 접고 좀 더 건설적인 게임으로 바꾼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주에 민우도 리니지를 접었다고 했다. 그런데 경수는 들인 돈이 아깝다고 리니지를 계속 했다. 물론 시간은 좀 줄었다. 경수의 이기적이고 난폭한 성격이 게임 때문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면서 경수와의 대화를 계속 했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위해 조금은 베풀어야하고 따뜻한 말을 해 주어야 끝까지 친구들이 주변에 남아 있을 거라는 것과 지금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폭력에 무디어지고 있다는 내용의 대화를 계속했다. 친구의 이야기를 할 때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3차 상담
경수와의 계속되는 대화로 경수가 게임하는 시간이 조금씩 줄고 봉사 활동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상처 주는 말의 횟수도 조금은 줄었고 큰 변화는 자기가 상처되는 말을 하고 나서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었다.
마침 경수와의 3차 상담을 실시하고 있을 때쯤 고등학생이 영화를 흉내내 친구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그 사건과 관련하여 폭력적인 게임이 폭력에 대해 무어지게 하며 폭력을 가볍게 생각하게 하여 시간이 지나면 경수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를 하였다. 다섯 차례에 걸쳐 모방 범죄 사건을 찾아내 경수의 게임에 대한 의식을 좀 강하게 부정하도록 했다.
지금 경수는 ‘넷마블’ 이라고 하는 건전한 게임을 한다. 또 친구를 위해 봉사도 하고 칭찬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4. 상담을 마친 후
게임 중독에 대해 전문적인 처방을 내릴 수 없는 한계를 느꼈지만 조금씩 변해 가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최고의 상담은 문제를 공감하며 하는 ‘진실한 대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담자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서 같이 느끼고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면 전문가가 아니어도 어떠한 문제도 그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계란 한 판의 깨달음

태장 초등학교
교사 황 승 욱

‘빰빠라밤 빰빠라밤 빠빠라빰빰 빰빠라밤’
조회를 알리는 노래가 스피커로 울려 퍼지고, 아이들이 ‘우당탕’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로 온 복도가 시끌벅적했다.
3월 2일. 새학기가 시작되는 첫날이며, 아이들은 모두 새로 배정될 반과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설레는 날이다. 조회에 나간 선생님들도 아이들 못지 않게 흥분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소란함과 술렁거림 속에 학년 반 배정이 끝나고 난 6학년 3반 교실로 발길을 향했다.
‘6학년이라..’
초등학교의 최고 학년이라 그에 따른 업무도 많아지고 아이들도 속썩이는 학년. 하지만 그만큼 보람이 많은 학년이라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짧은 교직 경력이지만 2번째 6학년 담임 업무였기 때문이었다. 교실로 가는 계단을 오르면서 내 머리 속에는 한 아이의 이름이 맴돌고 있었다.
‘장 영 근’
영근이는 지금은 중학교 2학년이 된 잊지 못할 제자이다.
교사라고 불리운 지 3년째 되던 해에 정선군 신동읍에 있는 예미 초등학교라는 곳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 해 6학년 담임을 배정 받게 되었다.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아이들에 대한 자신감을 슬슬 갖기 시작하던 때였으므로 6학년이라 해도 부담은 별로 갖지 않았다. 단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면 결손 가정아가 많은 6학년이라는 것이었고 그 중에서도 마음을 무겁게 하는 ‘영근이’라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는 7학급의 아담한 학교로 한 학년 당 1학급을 구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식으로 영근이의 담임이 되기 전부터 잘 알고 있던 아이였다.
4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우고 도둑질을 하던 아이.
영근이는 결손 가정의 아이였다. 부모는 인천에서 살다가 실패하고 늙은 노모에게 영근이와 그 형을 맡겨 놓고 갔으며, 그나마 부모도 이혼을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인천에서 노무자로 생활을 해 일정한 연락처도 없는 상태로 1년에 한두 번 예미로 발걸음을 하는 모양이었다. 직업도 일정하지 않아 아이들의 생활비는 할머니가 품을 팔아 그 일당으로 충당하였다. 게다가 영근이 형은 그 좁은 예미 바닥에서 소문이 자자한 이른바 ‘불량 청소년’으로 중학교 3년을 모두 마치지 못하고 퇴학을 당한 상태였다. 어째든 이런 가정환경을 가진데다 또 그 아이에 대한 선입감이 심한 상태로 담임을 맡게 되니 자연스레 걱정이 앞섰다. 그저 별 문제 없이 1년을 잘 보내 주기만을 마음 속으로 은근히 바라고 있었던 터였다. 그 당시만 해도 상담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거창하고 큰 준비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형식적인 상담보다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것이야말로 어떤 이론보다도 잘 통한다고 믿었기에 그렇게 실천하려고 애썼다. 될 수 있으면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하려 했고, 그들에 대한 사랑을 수 없이 말하고 상기시켜 주었다. 그래서인지 6학년에 올라온 영근이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운동을 잘 하고 춤도 잘 추는 아이라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았고 머리도 좋아서 특별히 공부를 하거나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교과 성적도 괜찮은 편이었다. 도둑질을 하는 일도 없었으며, 금연도 실천하는 것 같았다. 1학기가 그럭저럭 지나고 불안했던 마음은 노파심일 뿐이었다고 단정짓고 있었다. 그러던 영근이가 변한 건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아침에 출근해서부터 1교시 수업이 끝나가도록 교실 한 자리가 계속 비어 있는 것이 보였다. 영근이의 자리였다. 몇 명 안 되는 아이들이다 보니 누가 있고 없고가 금새 표가 났으므로 무척 신경이 쓰였다. 아니 노파심이었다고 생각했던 불안이 현실로 나타나는 건 아닐까 두려워졌다. 영근이네 집에 여러 번 전화했지만 계속 결번이라고만 되풀이 될 뿐이었다.
‘한 학기가 지나도록 집 전화번호가 결번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나 자신이 얼마나 답답하고 한심했었나 하는 자책에 수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사실 나는 영근이가 변한 줄 눈치채지도 못했었다. 학교 생활은 그전과 다를 바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쉬는 시간에 의자에 앉아 한숨을 내쉬고 있으려니 인혁이가 다가왔다.
“선생님, 영근이 농협 창고 뒤 빈 집에 있을지도 몰라요.”
인혁이의 말은 영근이가 가끔 그 곳에서 중학교 형들과 어울리며 여름방학 동안은 거의 형들과 놀며 집에도 안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여기저기서 ‘저도 본 적 있어요.’ ‘영근이 집에 잘 안 들어 간데요.’를 외쳐댔다. 순간 아이들도 저리 잘 아는 사실을 담임인 나만 까맣게 몰랐다는 사실에 머리가 띵해 지는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리는 빈 집으로 향했고 나는 거기서 영근이가 지난 여름 방학동안 어찌 생활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술병과 부탄 가스 그리고 지저분한 이불들.... 차마 그 자리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그 날 우리 반은 수업을 뒤로 한 채 영근이를 찾아서 그 좁은 동네를 이 잡듯 뒤졌지만 결국 영근이는 찾을 수 없었다. 이z날 아침 영근이는 할머니 손에 이끌려 학교로 왔다. 전날 하루 종일 학교에 다니지 않는 형들과 어울려 영월 시내를 헤매고 돌아다니다 늦게서야 할머니에게 붙들려 집에 들어 왔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그 굽은 허리를 꾸벅거리셨다. 할머니 뒤 편에 서 있는 영근이도 반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아이에게 뭐라고 꾸짖기도 안됐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날 오후 나는 영근이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받았다. 그리고는 영근이가 불량한 형들과 만나지 않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중학생과의 접촉을 피할 수 있을지는 난감했다. 학교가 끝나면 여느 아이들은 학원을 가느라 같이 놀 친구도 없고 집에 가봐야 아무도 없으니, 그 형들과 어울리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린 것이 퇴근할 때까지 영근이를 학교에 데리고 있어 보자는 것이었다. 무엇을 하든지 학교에서 늦게 끝나면 아무래도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처음 며칠은 아무 준비 없이 내린 결정이라 그저 숙제를 하게 하거나 문제집을 풀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시간을 때우기 위한 것 밖에는 아니었다. 그렇게 무의미한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띄게 지루해 하는 영근이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이러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무엇을 하면서 남아있게 해야 지루해 하지 않고 정을 붙일까?’
고민을 하다가 우선은 영근이와 친해지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영근이와 마음과 마음을 터놓을 수 있을 정도로 친해지는게 좋은 해결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부터는 아이들이 집에 간 방과후가 나와 영근이에게는 더욱 바쁜 시간이 되었다. 둘이 함께 하는 배드민턴, 축구, 요리, 퀴즈내기, 환경정리, 그리기, 봉숭아 물들이기, 십자수하기 등등 시간을 내기 쉽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을 쪼개가며 영근이의 마음을 열어보려고 노력했다. 처음엔 쑥스러워하고 잘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나보다도 열성적으로 준비하고 활동했다. 차차 영근이의 표정과 행동이 밝아졌다. 아무래도 선생님의 관심을 특별히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고, 꾸지람을 들었을 때는 즉시 고치곤 했다. 주말에 있었던 일은 월요일에 출근하기가 무섭게 신이 나서 나에게 말하곤 했다. 사실 주중에는 내가 학교에 있으니까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주말엔 춘천으로 오르내렸으므로, 과제를 주었고 월요일에는 주말의 이야기를 상세히 나누곤 했었다. 그제서야 영근이의 마음이 풀어져 가는구나하고 느껴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영근이가 진심으로 변한 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 다시 가출을 했고 이틀씩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첫 번째 가출 때 알게된 할머니의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서 예미와 영월을 온통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 날은 영근이를 만나볼 수 없었다. 11월의 매서운 저녁바람을 맞으며 저녁 거리를 헤맬 영근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 동안 보여주었던 행동의 변화가 어쩌면 선전효과를 내려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가출한지 삼일 째 되는 날 학교로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형들과 함께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주인에게 잡혀 경찰서로 넘겨진 모양이었다. 부리나케 경찰서에 가보니 할머니는 벌써 와 계셨고, 구석 소파에서 꼬질꼬질한 모습의 영근이를 볼 수 있었다. 내 정성도 몰라준 채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영근이가 괘씸해 절대 용서해 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마음이 까칠해진 영근이 얼굴을 보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주인에게 선처를 부탁하고 영근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 날 저녁 관사(시골 학교라 관사에서 생활하였음)에 돌아와서도 정체 모를 답답함에 휩싸여 있었다. 한 8시쯤 넘었을까.
“선생님.. 선생님.”
희미하게 인기척이 느껴지며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그 시간엔 찾아 올 사람이 없는 게 당연한데 나를 부르는 소리 같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한 번 나가보기로 했다.
“누구세요?”
현관문을 여니 어둠 속에서 한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영근이 할머니였다.
“우리 영근이 때문에 속상하시죠? 죄송해요. 지금 애들 삼겹살 구워주고 왔어요. 하도 죄송스러워서..”
하면서 내미시는 손에는 까만 비닐 봉투에 든 귤과 계란 한 판이었다. 그리곤 얼른 내 손에 쥐어주시고 어두운 운동장 속으로 총총히 걸어가시는 것이었다. 내가 사양할 틈도 없이 부리나케 뒷모습을 보이시고는 금새 사라져 버리시는 것이었다. 아니, 사양할 틈이 없었다기보다는 절대 사양해서는 안될 것 같은 영근이를 아끼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할머니 마음을 건네 받은 것 같아 그 자리에서 한참이나 마냥 서 있었다. 삼일씩이나 집을 나가 연락을 안 했어도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더라도 자식이기에 없는 살림에 삼겹살을 구워 먹이시는 정성! 담임에게 혼이라도 날까봐 차디찬 바람을 가르며 계란 한 판 사들고 깜깜한 운동장을 헤쳐 오실 수밖에 없었던 마음! 그 큰사랑에 코끝이 찡해지고 머리가 아득해져왔다.
‘할머니..’
그제서야 나는 내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자만에 차 있었는지 깨달았다. 입으로만 읊어대는 사랑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고 가슴으로 느껴지는 사랑이야말로 참 사랑이라는 것. 그런 사랑이 있어야만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
이z날부터 영근이는 다시 학교에 나오기 시작했고, 그 전과 같은 생활이 다시 반복 되었다. 다만 바뀐 것이 있다면 영근이에 대한 내 마음가짐과 태도였다. 진정으로 더욱 이해하려 노력했고 사랑을 주려고 애썼다. 영근이도 지난번 일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실수였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나에 대한 미안함인지 뉘우침인지 더 잘 해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우리 둘 사이에는 그 전보다도 더 끈끈한 무언가가 나와 영근이 사이에 형성된 듯 싶었다. 그렇게 겨울방학이 다가왔고, 방학 중에도 전화, 그리고 편지로 끊임없는 대화는 계속되었다. 기나긴 겨울 방학이 끝나고 무사히 졸업식을 맞게 되었다. 그 날 난 무척 담담할 줄 알았는데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하고 싶은 말도 다 못 전한 채로 아이들을 중학교로 떠나 보냈다. 그렇게 영근이도 떠나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그로부터 2년 후..
지금도 그 때의 제자들과 메일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지만, 영근이만은 전화로도 메일로도 연락이 오지 않고 있다. 아이들 말에 의하면 중학교 진학하고 형들과 오토바이를 타다가 다쳤다고도 하고, 말썽을 부려 아버지가 있는 인천으로 전학을 갔고 그 곳에서 중학교를 중퇴했다고 했다.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영근이가 뚜렷한 자의식이 생길 때까지 만이라도 가까이에 있어주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했다.
올 해 6학년 아이들은 별 탈 없이 이제 1년을 마무리할 시기에 와 있다. 결손 가정의 아이도 없고 모두 순하고 착한 아이들. 이 아이들을 보면서 주변의 관심과 사랑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었다. 또 한번 졸업식을 맞으며 제2의 영근이를 만들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다짐하며 영근이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사죄해 본다.



진실이는 만능 해결사

학성 초등학교
교사 신 차 석

첫 번째 만나던 날
??선생님 샤프가 없어졌어요.???? 필통이 없어 졌어요.??
우리 반에서 처음으로 생긴 사건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생활하다 보니 여러 일들이 생기는 그러한 사건이라 생각하고
??내가 찾아 볼 테니 너무 걱정 말아라.?? 안심시키며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찾아준다는 약속을 하고 지나가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 날 잊혀졌던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진실이에게 없어진 물건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진실이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름 최 진실(가명) 나이 11살 여자아이 가족사항 어머니, 아버지, 남동생 이렇게 네 식구가 전부였다. 가정형편은 중하 정도로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진실아! 너는 능력이 뛰어난 아이야 그렇지???
??다른 아이들이 잃어버린 물건을 다 찾아주는 능력이 있으니까.??
진실이는 그 물건들을 주웠다고 말했다. 만약에 주웠다면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도리라고 하자 자신은 억울하다고 하며 울었다. 다음에는 혹시 물건을 주우면 주인을 꼭 찾아주라는 부탁을 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진실이의 행동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평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친구들과의 대화가 단절되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늘 혼자였다. 외로움을 이기려고 했을까? 관심을 끌기 위함일까? 앞으로 진실이의 행동이 바뀌어지리라는 믿고 싶었다.

두 번째 만나던 날
교실에서 돈이 자꾸 없어진다는 아이가 점차 늘고 있었다.
100원 200원 300원 정도가 없어진다는 아이들의 민원이었다. 물론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그런데 잃어버린 100원짜리 돈을 찾아낼 길이 없는 것이었다. 몇몇 아이들이 용돈을 갖고 다니기 때문이었다. 주머니를 검사해서 돈이 나오면 그 돈이 잃어버린 돈인지 용돈인지 확인할 길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생각해낸 예방책으로 돈을 갖고 오지 말아라 꼭 필요한 돈은 가져 와서 선생님께 보관하라고 하였고, 너도나도 100원 200원 맡기는 바람에 내가 머리가 아팠지만 효과는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일이 없겠지 하면서 자신의 돈은 자기가 잘 관리하라는 부탁과 함께 돈을 갖고 다녀도 좋다고 하였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돈이 또 없어지기 시작했다.
전체 어린이를 대상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예화 자료를 들려주며 남의 금품을 허락 없이 가져와도 안 된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 등 여러 가지 내용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 역시 내가 말한 것이 효과가 있구나 하고 자만심에 빠질 무렵, 이번에는 거금 700원을 잃어버렸다는 아이가 나오는가 싶더니 난 900원, 난 800원 서너 명의 아이들이 도난 신고를 하였다. 그런데 진실이가 매일 군것질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군것질을 할 수도 있지 하고 있는데 결정적인 단서는 진실이 옆에 앉았거나 주변의 이이들 돈이 주로 없어진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두 번째 자리를 마련했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니???
??요즘학교 생활 어때???
긍정적인 대답이었다. 고개만 끄덕일 뿐 별다른 대답은 없었다.
??재미있게 보는 프로그램은 뭐니???
기타 등등을 물어 보아도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요즈음 우리 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예를 들면서 얼굴을 살펴보았다.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혹시 관련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애서 피하는 것일까? 다시 한번 주의 깊게 살펴보니 나의 시선을 피하는 것이었다. 아동들의 행동 특성상 자신이 저지른 것을 숨기기 위한 무관심이었다.
??솔직하게 대답하면 용서해 줄게??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니 안심하렴 그러자 망설이는 듯 하더니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돈을 가져갔다는 것이었다.
얼마를 가져갔느냐? 묻자 300원만 가져갔다고 완강하게 부인하였다.
진실이는 자기의 진실을 선생님이 믿어주지 않으면 누가 믿어주겠는가 하는 애원이었다. 여기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잘못을 가려 나쁜 습관을 바로 잡아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이 스스로 행동을 수정하여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어야 하는가? 효과로 따지자면 엄하게 꾸짖어 사실을 말하게 하고 따끔하게 야단치면 효과가 빠를 텐데 하지만, 그것은 진실에게 처방할 내용이 아니었다. 한번 더 진실이의 진실된 마음을 믿고 싶었다. 그래 한번만 더 믿어보자 진실이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남의 것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라 말하고 앞으로는 물질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충고하며 어려운 일이나 괴롭고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선생님과 대화를 하자며 마무리지었다.
세 번째의 대화
이번에는 학원의 교재비를 잃어버린 사건이 발생했고 아이들의 시선이 두 곳으로 쏠렸다. 하나는 학원의 교재비를 잃어버려 엉엉 우는 아이였고 또 하나는 체육시간에 남았던 아이, 즉 진실에게로 집중되었다. 체육시간에 진실이가 몸이 불편하다고 남겠다고 해서 남으라 했었는데 체육시간이 끝나고 들어오니 돈을 잃어버렸다고 어쩌면 좋으냐고 한 아이가 엉엉 울고 있었다.
20,000원은 아이들에게 상당히 큰 액수였기 때문에 소지품 검사를 실시하였다. 결과는 진실이에게서 7,000원이 나왔다. 무슨 돈이지 묻자 할아버지께서 주신 돈이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믿지 않았다. 3학년 때에도 진실이 손버릇이 좋지 않다고 했다. 이제 진실이가 누명을 벗어나기가 힘들 것 같았다. 어린이 세계에서 도둑으로 한번 인식되면 비슷한 사건이 생기면 그 아이를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동안 나쁜 기억으로 남게된다.??그 아이는 도둑이다??라고 말이다. 사건은 수습이 매우 중요했다. 혹시 진실이의 소행이 아닐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곳에서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찾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또 한번 연설을 시작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욕심이 있는데 그것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또한 지금 가져간 돈은 지금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평생동안 죄인의 마음으로 남게되니 후회하지 말라고 충고하면서 혹시 돈에 욕심이 나서 나도 모르게 돈을 가져갔다면 선생님 책상에 다시 갖다놓으라는 당부를 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을 하교시킨 후 조용히 진실이를 따로 불렀다.
??7,000원이면 큰돈인데 어디서 났지???
??이거요 할아버지께서 주셨어요.??그래 더 이상 할말이 없었다.
할아버지를 모셔라고 하자 진실이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었다. 돈을 왜 가져왔느냐 질문에 진실이는 예쁜 수첩을 사고 싶은 마음에서 돈을 가져갔다고 대답했다. 부모님께 사달라고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묻자 진실이는 아버지는 일하시다 사고로 병원에 계시고 어머니도 병간호하시느라 바쁘시다는 것이었다. 진실이도 돈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지 하고 묻자 있었다고 했다. 그때 심정이 어떠했느냐는 질문에 마음이 굉장히 아팠다고 했다. 진실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반성의 표시였다.
사람은 누구나 그릇된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고치지 않고 계속 하면 습관으로 굳어져 자신의 행동이 나쁜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행동하게 된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돈을 가져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였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렇게 또 지나갔다.


네 번째의 대화
진실이의 얼굴이 밝아지고 행동도 명랑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였 다. 그래 이제는 진실이가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지냈다. 그런데 진실이가 수업시간에 참여하는 모습이 이상했다. 우두커니 먼 산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다, 곰곰이 생각하다 손으로 장단을 치는 것이었다.
진실이의 공부하는 모습이 특이하구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질문을 하면 전혀 대답을 못하는 것이었다. 질문 자체를 모르는 것이다.
??진실아 요즘 고민 있니???
??아무 일도 없어요.??
??요즘 오락은 하지 않니???
대답이 없다. 진실이의 자신의 행동이 발각되었을 때는 말을 잘 하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긍정한다는 뜻이었다. 아침에 늦게 오고 저녁에 집으로 늦게 가는 이유가 오락을 하기 때문이었다.
??오락이 그렇게 재미있니???
??매일 오락을 해도 그렇게 하고 싶니???
오락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1차적으로 오락의 횟수를 줄이도록 유도했다. 매일에서 3회로 줄이고 집 근처에 사는 아이와 같이 등교와 하교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아침에는 학교에 오자마자 친구들과 같이 놀이를 하도록 모둠에 있는 아이들에게 부탁을 했다.
점차 오락을 하는 횟수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고 이제는 그림을 그리거나 책읽기를 매우 좋아하고 있다. 특별한 처방을 한 것도 아니고 친구들과 놀이하는 것으로 안내를 해주었는데도 오락의 중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상담을 마치며
학교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핑계로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아이들이기에 좋은 습관을 형성하여 자신의 꿈을 키우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유혹에 빠져 잘못된 행동을 하는 아이도 있다. 그 아이들의 행동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실이의 경우에서 보듯이 작은 키에 외모에 대한 열등감 친구간의 소외감 등이 남의 물건과 돈을 갖고 오는 것으로 욕구 불만을 충족시켰으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오락게임에 빠져들게 되었다. 오락으로 인하여 남의 돈에 손을 대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었다. 그 연결고리를 누가 끊어주어야 한다. 부모님이던 선생님이던 간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상담이다.
또한 대화는 의사소통의 기능뿐만 아니라 모든 것들을 예방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을 갖고 아이들과의 대화를 이어나간다면 고통받는 아이들이 점차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와 대화를 솔직하게 말하고 나의 요구에 열심히 따라준 진실이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선생님은 진실이가 지금과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진실아 힘을 내렴!
얘들아, 미안하다

흥양 초등학교
교사 김 현 정

입학식을 끝내고 엄마 손에 이끌려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은 참 귀여웠다.
‘이 아이들과 일 년을 같이 보내야 하는 구나. 내 말귀를 잘 알아듣는 고학년이라면 더 좋을 텐데.’
나는 20년 전 엄마 같았던, 아니 자애로운 할머니 같으셨던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떠올리며 긴장하고 있었다.
3월에 1학년 아이들은 정말 어리기만 했다. 쉬는 시간에 갑자기 엄마가 생각나서 우는 아이도 있었고, 아무리 뛰지 말라고 주의를 주어도 교실과 복도에서 깡충깡충 뛰어다니기 일쑤였다.
혼을 내봐도, 소리를 질러 보아도 별 소용이 없었다. 정말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이런 아이들을 데리고 학급을 어떻게 운영할까 정말 걱정이었다.
학기초에 제일 먼저 한 일은 이름 외우기였다. 그리고 나서 결손 가정을 파악하기 위해 가정 환경을 조사했다. 결손 가정이 네 가정이나 됐다. 전체 인원에 비해 많은 편이었다. 어린 아이들인데 큰 아픔을 겪었구나 생각하니 그 아이들에게는 특별히 더 잘 해 주고 싶었다. 3월 한 달은 학교 생활 적응 기간이어서 ‘우리들은 신나는 1학년’교과로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배웠고, 본격적인 교과 학습은 4월부터 시작되었다. 3월에는 이름만 쓸 줄 알면 문제 될 것이 없었기 때문에,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특별히 신경을 써 주지 못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가나다라’를 읽지 못하는 아이가 네 다섯쯤 되었다. 이름만 간신히 그리듯 쓰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었다. 고학년이 되고도 맞춤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 그게 다 저학년 담임 책임이라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라 막중한 책임감에 가슴이 답답했다.
신규 발령에 학기초라 정신 없이 3,4월을 보내고 5월쯤이 되어서야 그 아이들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규 수업을 끝내고 보충 지도를 시작했다. 낱말 카드를 보고 읽고 써 보게도 하고, 자석 칠판에 글자를 만들어 붙여보기도 하고, 읽기 책을 조금씩 읽어보기도 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답답했다. 그 아이들을 보며 한숨짓는 내게 이 아이들도 2학기가 되고 찬바람 불 때면 괜찮아진다고 좀 느긋하게 기다려 보라는 이도 있었다. 조금 위안이 되었다. 이런 아이들이 없으면 내가 뭘 필요하겠나 생각하며 보충 지도를 계속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업 시간 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 ○○집인데요, 우리 아이 일찍 집에 보내주세요. 저희는 아이가 공부 잘하는 것보다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을 원해요.”
전화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원망이 섞여있는 목소리였다. 아이가 집에 가서 남아서 공부하기 싫다고 했던가 보다. 전화를 끊고 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뭐 시간이 남아 돌아서 그러고 있는 줄 아나? 하지 말라면 말지 뭐.’
특히 그 아이는 엄마가 없어서 집에서 아이를 지도해 줄 형편이 못되었다. 그런데 내 열심과 성의를 몰라주고 오히려 항의를 해 오다니...
그 날부터 전화한 집의 그 아이는 남기지 않았다. 공부 시간에도 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다. 고백하건대 아마 미워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섭섭한 마음에 화가 많이 나 있었다. 그 아이는 그냥 놔두면 수업을 따라 올 수 없는 아이였기에 그 아이에게 수업 시간은 무의미했다.
그렇게 여러 날이 흘렀다.
그런데 그 아이가 친구들에게 엄마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엄마가 없다더니 새엄마가 들어왔나?’
그러다가 문서상의 조사로는 알 수 없는 사실을, 아이 할머니와의 우연한 전화 통화로 알게 되었다. 그 아이는 할머니 댁에서 살고 있는데, 아빠 나이 열여덟에 그 아이를 낳았고, 엄마는 아이만 낳고 갔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빠도 다른데 나가 산다고 했다. 아이는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고, 증조할머니를 할머니라 부르는 것이었다.
그 만큼 알고 나니 아이나 그 가정이 이해가 되었다. 아이의 부족한 점도 이해가 되고, 그 가정의 바람과 요구도 이해되었다. 선생이라는 자가 그 동안 속 좁게 굴었던 것이 무척 부끄럽고 후회스러웠다. 선생이라는 말 앞에 참(眞)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려면 아직 멀었구나!
그 날부터 아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바꾸었다. 쳐다보는 눈빛이 바뀌었고, 말투가 바뀌었다. 방과후에 남겨서는 아니어도, 틈틈이 보충 지도도 해 주었다. 작은 진보가 있을 때마다 많이 칭찬해 주었다.
찬바람은 벌써 나기 시작했고, 2학기가 반쯤 지나가는 지금에도 그 아이는 글을 잘 못 읽는다. 그렇지만 짧을 글 한 편을 네 다섯 번 함께 읽고 나면 이제 혼자서 떠듬떠듬 읽어낸다. 반쯤은 외워서 읽는 것이겠지만 몇 달 전과 비교하면 마냥 신통하다.
내가 바지 정장을 입은 모습을 보고 그 아이는 “선생님, 꼭 아빠 같아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아빠라는 말에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뭔지 잘 모르는 아이, 할머니와 엄마를 혼동하는 아이. 내가 그 아이에게 엄마 같은 선생님이 되어야겠다.
상담 사례라 하였으니 상담 또는 교사의 관심 있는 지도를 통해 아이가 변화된 것을 내용으로 담아야 하겠으나 교사가 변해야 아이가 변한다는 생각을 하며 나를 되돌아보는 글을 써 본다.
선생님, 배가 아파요

흥업 초등학교
교사 김 향 숙

아이들이 가버린 빈 교실...
아이들은 가고 없지만 그들이 흘리고 간 많은 이야기들은 아직도 여기저기서 피어오른다.
교실 저 쪽 구석에 수정이 자리가 보인다.
수정이...생각나는 일이 있다.
“선생님, 배가 아파요”
“정말로 많이 아파요”
처음 갓 입학한 1학년 아이들, 처음엔 놀라서 옆에 데리고 앉아서 배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무릎에 앉혀서 대화도 나누고 하다보면 금새 배 아픈 것을 잊어버리고, 밝은 표정으로 툭툭 털고 돌아가던 수정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 일이 늘상 반복되고, 왜 일까하는 의구심으로 관찰하게 되었다.
수정이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선생님, 배가 아파요”
를 반복하고, 그러면 또 다시 관심을 갖고 배를 쓸어 주고, 그러다 보면 잠시 후 멀쩡해지는 수정이...
뭔가 심리적인 요인일까 아님 진짜 신체적으로 이상이 있는 것일까, 고민하다가 먼저 가정환경을 알아보기로 하였다.
수정이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로서 수정이는 동생과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라고 있었다.
어머니는 밤 늦게야 오시고, 아버지는 토요일에나 뵐 수 있는 주말 부부였다.
사랑이 그리운 아이...
그러면, 학교 생활에서는 문제가 없을까?
수정이는 반에서도 학업성적이 우수한 편이고, 글씨도 바르게 잘 쓰며, 학습 준비물이나 숙제도 잊지 않고 챙겨오는 아이였고, 교사의 지시에는 숨막힐 정도로 따라하는 그야말로 모범생에 들어가는 아이이다.
그러고 보니, 모든 것을 너무 완벽하게 해내는 아이었다.
그 날에 다하지 못한 과제는 교사의 지시가 없어도 끝까지 해놓고 가는 아이...
한번도 교과서를 빠뜨린 적이 없었던 아이...
그래서 더 무심히 흘려보내고 관심 밖이었던 아이였다
조금은 이해가 갈 듯 했지만, 그래도 부모님께 수정이의 상황을 가정통신으로 알려 드리는 것이 순서일 것 같아서 연락을 드린 후, 수 일 후에 수정이 어머니에게서 전화 연락이 왔다.
수정이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수정이는 어려서부터 늘 잘 해보려고 하는 마음이 강해서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려고 하며, 눈에 띄게 잘 해 왔으며 또한 누구에게 관심을 끌고 싶을 때는 늘 배가 아프다는 호소를 해왔다고 한다.
그것이 이젠 습관화가 된 것 같다고 하며, 병원에서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사랑결핍과 관심호소 그리고 잘해보려는 강한 마음’이 그동안 수정이를 압박했던 것이었을 거란 짐작을 하기에 충분했다.
교사로서 나 역시 맞벌이이고 보면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이 겪어야할 심적 부담감을 십분 이해하면서 수정이를 특별한 관심 속에 넣어 두기로 하였다.
그 후부터는 시간을 마련해서 수정이와 단 둘만의 시간을 꾸며보았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난 후 따로 남겨서 사탕을 먹으며 그 날 있었던 학교생활의 이야기도 들어 보기도 하고, 특별히 할 일을 주어 교사와 함께 교실 정리정돈의 기회도 주었다.
그리고, 무릎에 앉혀서 교사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기라도 하면 깔깔거리고 웃는 모습이 정말 천진하고 귀엽기 그지 없었다.
또한, 꼭 잘 해야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 있도록, 편하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수정이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강박관념을 풀어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특히, 수정이가 실수를 하거나 잘 못했을 때 오히려 그냥 무신경하게 지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어 실수에 대한 의식을 크게 하지 않도록 하였다.
수정이는 정말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었다.
재잘거리며 자신의 이야기나 생각을 그대로 쏟아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돌아갈 즈음엔,
“수정아, 오늘은 배가 안 아팠니?”
하고 지나가는 어투로 슬쩍 물어보면,
“선생님, 오늘은 배가 하나도 안 아팠어요. 정말 신기해요.”
하면서 자기 자신도 놀라는 표정으로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선생님이 자신에게 관심과 사랑을 갖고 있다는 것, 특별한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 수정이는 배앓이를 잊어가고 있었다.
처음엔 그렇게 자주 아프던 배앓이가 일주일쯤 지나자,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이럴 수가...이랬었구나...”
정말 신기한 생각이 들 정도로 배앓이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1학년 갓 입학한 어린이들의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부담감과 부모로부터 오는 사랑과 관심요구는 이렇게 실제적인 아픔을 호소하는 사례가 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신경성 배앓이나 신경성으로 일어나는 질환의 고통을 호소하는 아이가 있을 경우 무엇보다 발단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원인에 따른 치료가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치료의 과정에서 너무 신중한 자세로 대화하고 행동하다보면 아이는 더욱 겁을 먹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치료제를 제안해야 한다.
신경성은 무엇보다 관심과 사랑의 인내로 꾸준히 이끌어 주어야 효과를 볼 수가 있으며 스스로 아프다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 최면과도 같은 것이기에 스스로 걸어놓은 최면에서 스스로 빠져 나오도록 유도해 주어야 할 것이다.
하얀 도화지!
교사가 그리는 대로 그림이 그려지는 하얀 도화지와 같은 아이들, 어떻게 그릴 것인가와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선택하여 결정하는 것은 교사의 몫이란 것을 새삼 깨닫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독특한 말투가 불러온 친구사이의 단절

남원주 중학교
교사 김 명 성

3월 초. 황당하게 넓은 교실의 맨 뒷자리를 꽉 찬 듯한 느낌을 주는 반듯한 자세의 남학생이 학급의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수업시간에 반듯하고 어려운 내용에도 대답을 잘하며 성적도 우수한 이 학생은 다른 교사들 눈에도 바람직한 학생인 것처럼 비춰지고 있었으나, 실제의 생활과 지식의 괴리에서 오는 친구관계에서의 대화에 단절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이 남학생이 전부인 가족관계. 어려서 외국에서 생활을 하고 돌아온 이 학생은 어머니의 적극적인 보호 아래 자라난 전형적인 마마보이 스타일이었다. 모든 것을 어머니께 의존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하는 것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학기초에 짝이었던 여학생과 5월 초까지는 너무나 다정하였고 어떠한 방법으로 짝을 바꾸어도 짝이 되는 천생연분이라고 할 정도의 친한 사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이 둘의 사이에 문제가 발생되기 시작했다. 학생들 모두가 e-mail을 갖는 운동을 시작하면서 컴퓨터를 잘 하는 남학생이 여학생을 대신하여 가입해 주면서부터 이들 사이에는 오해가 시작되었다. 남학생의 이니셜을 딴 폭탄메일이 여학생에게 전달되면서 여학생과 남학생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일어난 것이다. 여학생은 자신의 메일 주소를 아는 남학생은 오로지 이 남학생뿐이라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에 남학생에게 몰아 부쳤고, 남학생은 자신이 아니라고 해명을 하였으나 이니셜로 보내진 그 전자우편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여학생에게 e-mail 계정을 다시 하기를 권하였으나 2학기가 되도록 바꾸지 않고 계속 사용하였다.
그러던 중 또 다시 여름 방학 때 폭탄 메일이 이 여학생의 친한 친구인 또 다른 여학생에게 똑같은 이니셜로 된 전자우편 주소로 배달이 되면서 이들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여학생들은 그 남학생이라고 단정을 지은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학생의 행동이라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고, 남학생은 자신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고 펄쩍뛰고, 난감한 상태가 또 한 번 이들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여학생들은 남학생을 괴롭히고 남학생은 학교에 오는 것조차 거부할 정도의 심각한 정도에 빠진 상태이었다.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해명을 해야하는데 이니셜의 주소는 영락없는 이 남학생의 이니셜에 학번을 붙인 것이었다. 그러니 누가 보아도 이 남학생이라고 지목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남학생의 괴로움은 심했고 그러나 말투의 특이함으로 인하여 학급에서도 친구를 제대로 사귈 수 없는 이 학생은 그러한 이야기를 남에게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여학생들에게 그 메일의 내용을 알아보기 위하여 물어보았으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로 남학생의 행동이라면 그 학생의 특이한 말투가 문장에 들어 있으리라는 짐작으로 내용을 물었지만 그것도 허사였다.
남학생은 아니라고 하고 여학생은 남학생을 지목하고 이들의 관계는 너무나 나빠졌다. 여학생들이 처음 폭탄메일을 받았을 때, 메일주소를 바꾸지 않았다는 데 착안을 두고 3명의 여학생 모두에게 메일 계정을 다시 해 주었고, 먼저 사용하던 것은 무시하기로 했다. 그 이후 폭탄메일에 대한 이야기는 잠잠해졌다.
그 후 여학생들이 남학생에게 그동안 괴롭힌 것을 사과하였고, 다시 사이가 좋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문제는 또 다시 그 남학생의 말투가 사이를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까지 몰고 갔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이 남학생의 말투는 같은 또래의 학생들 사이에서는 잘난 척 하는 것으로 보여졌고, 무시하는 행동으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학생이었다.
최근의 한 수업시간에 앞 친구의 의자 옆으로 다리를 뻗은 것 때문에 앞 친구로부터 볼펜으로 찔림을 당했다. 그러자 이 남학생은 앞 친구의 등에 볼펜으로 두어 번 찔렀고, 다시 앞 친구가 볼펜으로 찔렀다. 그 때 정말로 그러한 친구의 행동이 싫었다면 수업교사에게 상황을 설명하던가 그만하기를 제지했어야 하는데 이 남학생은 수학시간에 사용하는 콤파스의 날카로운 부분으로 앞 친구의 등을 찔러버렸다.
친구의 장난을 받아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친구와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 이 남학생은 그 날도 어김없이 친구들이 괴롭혀서 못살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오래도록 앉아서 이야기를 하면서 그 남학생이 사용하는 언어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그 때 이 남학생이 사용하는 말 속에는 상당한 과장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히 수업시간에 볼펜으로 찌른 학생은 한 명이었는데 반 학생 모두가 자기를 괴롭힌다고 하였고, ‘그렇지요 뭐, 모두가 구제불능이라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자기는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는 데 다른 학생들은 구제불능이라서 여러 교사나 담임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행동에 교정이 없다는 투로 말을 하면서 마치 남의 이야기인 양하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그 전날 남학생의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학생의 교우문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고민을 하기에 이제는 아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바라고 학생을 대신해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학생들 사이에 어가서 그들이 대화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면서 행동유형을 관찰하고 그들의 방식을 이해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면서 가까워질 수는 없다고.
그리고 학생에게도 여러 번 아이들이 어떻게 장난을 하고 노는지, 어떻게 대화를 나누는지 등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어울리기를 권하였지만, 이러한 것은 머릿속에 내재되어 있을 뿐 실제의 행동에서는 여전히 다른 학생들을 무시하고 자신이 최상이라는 우월감이 가득 찬 말을 한 것이다.
상담이 진행되는 도중 e-mail 사건과 관련이 깊은 두 여학생이 상담실로 들어왔다. 출입구와 등지고 않았던 나에게 여학생들이 미처 보이기도 전, 이 남학생의 입에서는 ‘저기 나의 원수들이 들어왔군요.’하는 것이었다.
여학생들은 황당해하면서 돌아갔다. 남학생은 이 말에 대해 자신의 뇌를 거쳐서 나온 말이 아니라는 식으로 변명을 하였다. 여학생들과의 사이가 호전된 지 얼마되지 않는 살얼음 같은 사이였는데 이 말을 하는 순간 그들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말았다.
남학생은 자기가 남에게 함부로 대하고 생각 없이 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고, 남이 자기에게 대하는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자기를 괴롭히는 구제불능의 학급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여학생은 남학생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였지만, 남학생은 그것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좋은 의미로 보여주는 행위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이었다. 그러다가 친구들 사이에 툭툭 치거나 하는 장난행위도 자기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언어적 무시행위는 정당한 것이고 다른 학생들이 자기에게 대하는 행위는 괴롭힘으로 다가오니 당연히 교우관계가 개선되어질 수도 없었고, 그나마 나아지고 있던 친구사이도 엇나가는 말로 인해서 고초를 겪게 되는 것이다.
다음날 마침 여학생의 생일이어서 사과하기도 좋은 날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이 여학생에게 선물도 하는 등 친구들이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었지만 정말로 사과를 해야 하는 이 남학생은 무심하게 하루를 보냈고 그나마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도 없이 하교 시간을 맞이하였다. 감정이 좋을 리 없는 이 여학생에게 남학생이 생일 다음 날부터 편지와 함께 선물을 여러 차례 건네주었지만 여학생은 상처가 너무나 심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남학생의 선물과 편지를 거부했고, 자신이 잘못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알게 된 지금 여학생에게 사과를 하려 하지만 여학생들은 더 이상의 상처받고 싶지 않아 거부가 계속되고 있는 상태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자신의 언어적 행동에 문제가 많아 친구를 사귀지 못하던 이 남학생은 자신이 최고이고 나머지는 구제불능의 문제아라고만 생각하던 것이 잘못이며 자신이 친구들에게 어떻게 잘못을 했는가를 깨우치는 좋은 일로 자리잡았다. 한 번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학생이 자신의 말이 남에게 어떻게 상처를 주는가를 알게되었고, 자신이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것이 다른 학생이 자신을 괴롭혀서가 아니라 자신이 상대방에게 어떤 식으로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인가를 알게 된 것이다.
남보다 독서량도 많고 학교 성적도 우수한 이 학생은 수업시간에는 모자람이 없는 모범 학생이었고 그래서 교사들로부터 똑똑한 학생이라는 칭찬을 받기만 했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에게 말을 함부로 하였고 그런 것이 싫었던 친구들은 결국 그를 멀리하였던 것이다.
부분적인 것을 전체로 확대하여 말하기도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남의 이야기하듯 하는 행위 등을 객관적으로 차분히 되짚어 보고 자신의 언어 행동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하며, 다른 친구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먼저 다가가서 사과하는 습관을 지속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풍물 가락으로 맺은 사랑

문막 중학교 교사 정 재 성

Ⅰ. 들어가며

우리 속담에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어렸 을 때의 인성이 장래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를 단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나는 본교에 부임하여 학생부에서 문제학생들과 상담하면서 그 학생들 대부분이 상당히 오랫동안 결손가정 및 맞벌이 가정환경으로 인해 이른 시기부터 방치되어 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교사로서 그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차에 ‘동아리 활동’을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좀 더 가까워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학생지도가 좀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Ⅱ. 상담사례

1. 상담의 동기

새 학년이 시작되는 첫날엔 교사도 학생도 새로운 기대로 가슴이 부풀어오르기 마련이다. 마치 달리기 출발선에 서 있는 주자의 가슴처럼 두근거린다.
학생들은 새 학년 학급 담임 교사가 누구일까? 각 교과 담임교사는 누구일까? 또 누가 옆에 앉게 될까?
교사는 어느 학년 어느 학급의 담임이 될 것인가? 또, 내가 맡은 학생들이 속을 썩이지는 않을까? 그리고 그런 궁금증이 풀리면서 희비의 얘기로 개학식 날은 화살처럼 지나간다.
나는 ?학년?반의 학급 담임으로 임명되었다.
새 학년 첫 시간 새 학급 담임의 첫 훈화가 얼마나 중요하던가? 나도 미리 준비해온 훈화를 자못 무게 있게 시작했다.
첫째, ‘인생의 목표를 가져라.’ 목표가 없는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특히, 청소년기의 목표는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것이다.
둘째,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배워라.’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양보와 배려가 필요한 것이 사회생활이고, 그 축소판이 교실인 만큼 사회생활 연습의 장으로써 교실을 활용하도록 하자.
셋째, ‘실력이 있어야 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학생은 배우러 학교에 오는 것이다. 많이 배우고 올바르게 배워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미래에 가정, 사회, 국가를 이끌어갈 훌륭한 일꾼이 되어라.
넷째, ‘개근하라.’ 모든 학생은 하루도 빠지지 말고 학교에 나와야 한다. 부지런히 학교에 나오는 학생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 부지런히 씨앗을 뿌리는 농부라야 가을에 많은 수확을 할 수 있다.
위의 네 가지를 칠판에 판서하면서 학급 담임이 원하는 학생 상을 외쳤다.
훈화를 하는 도중에 눈에 들어온 학생은 전 학년 담임교사가 포기했다던 학생으로 나 역시 학생부에서 교칙위반으로 자주 벌을 주어 얼굴이 익은 학생이었다. 특히 그 학생의 잦은 외박으로 인해 나는 그 학생처리로 심각한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바로 그 학생(이하 K군)이 우리 반이 된 것이었다.

2. 상담과정

아니나 다를까 개학식이 지난 몇 일부터 수시로 지각하고, 눈이 붉게 상기된 채로 학교에 등교했다. 급기야 결석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훈화와 체벌로 지도하다가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방법을 바꾸기로 결정하고 학부형에게 상담을 청했다.
아버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현재 계모 밑에서 성장하고 있고, 몇 년 전 학교를 자퇴했던 K모 군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외박하는 장소는 주로 Y군의 집이며, 컴퓨터게임을 하다가 늦어지면 아예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먼저, 집에서 잠을 자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아무리 늦어도 반드시 집에는 들어간다’는 약속을 하고, 귀가 여부를 2주일동안 매일 확인했다. 문제가 없어 보여 안심하고 있던 중, 부모와 연락이 되어 확인해보니 집에 들어가지 않고 등교한지가 10일 이상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신감에 화가 치밀었고 ‘어쩔 수 없는 녀석이구나’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포기가 너무 이른 것은 아닌가 싶었다. 전학년 담임이 포기한 아이라는 이야기에 너무 쉽게 손을 놓아버리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우선 학부형을 설득하여 담임인 나에게 모든 것을 전적으로 맡기고, 따라줄 것을 당부했다. 아버님은 학생이 집에서 계모와 적응하지 못하여 방황하고, 자신의 말도 잘 듣지 않던 터였으므로 흔쾌히 나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겠노라 하셨다.
일단은 K군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중요했다. 어떻게 하면 K군과 친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동아리 활동으로 이제 막 시작하려던 ‘사물놀이’가 떠올랐다.
“너 방과후에 동아리 활동으로 사물놀이 한번 해 보지 않으련?” “……”
물론 아무 대답이 없었다.
“선생님이 올해 1년 동안 사물놀이 동아리를 육성하려고 해. 특히 이번에는 선반으로 팀을 구성하려고 하는데 상모를 돌릴 수 있는 남학생들이 많이 있어야 하는데 1반의 J학생은 이미 동아리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어. 너도 같이 하면 재미있을 텐데.”
“선생님… 저는 음악은 싫어요. 더구나 사물놀이라면 더 재미없을 것 같은데요. ……꼭 해야한다면 하지요 뭐.” 결국 마지못해 동의를 하게 되었다. 기존의 사물놀이 동아리 회원들에게 K군의 가입 사실을 알리고, 특히 동아리 회장에게는 K군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특별히 부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특기적성 교육시간에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사물놀이 반을 맡아오던 강사님이 오셔서 “저 더 이상 이 학생들을 가르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상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K군이 들어와서 처음에는 잘 배우더니, 조금 힘들어지니 기존의 학생들을 꼬여내서 함께 연습에 빠지곤 하고 거기다가 말대답까지 해 자존심이 상해 가르치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큰일이구나. 잘 하려다가 오히려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 학생들을 불러 조사해 K군을 포함한 주동격의 학생들을 혼내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K군을 따로이 불러 물었다.
“ 너 사물놀이 배우 것 어렵니?”
“ ……”
“지금까지 잘해왔잖아. 네가 지금에 와서 빠져버리면 우리 사물놀이 구성에 크게 문제가 생기는데... 그렇게 사물놀이가 재미없니?”
“……”
정말 이제는 그만 두려나 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한참의 정적이 흐른 후
“…아니예요.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아요. 하지만, 쉬지 않고 서서 계속해야 하니 힘들어요.”
“그래 힘들거야. 그럼 그만둘래? ”
“…… ”
“그만둘 생각은 없는 것 같은데.... 그지?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선생님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쉬는 시간 좀 충분히 달라는 것과 연습은 되도록 앉아서 하게 해달라고 강사선생님께 부탁드리는 것밖에는 없구나. 그렇지만 우리 사물놀이가 서서 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도 잠깐씩밖에는 안될 거야. 어때 그래도 계속할 수 있겠니?”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다가 한참 후에야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네.” 그리고 상모돌리기 단계에 들어가면 무척 재미있어질 거라며 K군을 격려하고 돌려보냈다.
그렇게 3?4월이 지났다. 동아리 활동으로 바빠지다 보니, 학교에서 속칭 ‘문제아로 불리는 아이들과 돌아다니는 시간이 줄어들어 학기초 있던 지각?결석이 없어졌다. 내가 기대했던 효과였다. 또, 동아리반의 건전한 친구들과 친하게 되어 자율학습시간에는 책을 가지고 숙제하는 모습조차 종종 볼 수 있었다.
5월부터는 상모돌리기 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다른 학생들보다 많이 떨어졌지만, 재미있어하면서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재미있니?”
“선생님. 재미는 있는데 외사?사사?나비상 등 장난이 아닌데요.”
이렇게 동아리 활동을 하다보니 나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자퇴한 형 이야기?동생을 편애하는 엄마이야기 등 여러 가지 주변상황들을 들을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서 나는 K군을 더욱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K군도 나를 신뢰하기 시작한 듯 했다.
6월. 원주시 예능실기대회 ‘사물놀이’ 부문에 참가하기 위해서 동아리회원 중 부득이 10명을 선발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했다. 나는 고민했다.
‘K군을 집어넣으면 분명히 점수에는 -(마이너스)변수로 작용할텐데...’
일주일 정도 고민한 끝에 대회에서의 입상도 좋지만 K군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K군은 나의 이런 배려를 알기나 했다는 듯이 아침 연습시간에 다른 학생들보다 일찍 나와서 상모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구경하시던 여러 선생님들이 K학생 때문에 상모가 잘 맞지 않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했을 때, 조금 후회도 했었다. 그러나 항상 선생님 몰래 도망가고 눈치만 살피던 학생이 무언가를 위해 아침 일찍부터 열심히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차츰 원주시 실기대회에서의 입상 욕심을 포기하면서도 마음은 흐뭇해져갔다.
드디어 7월 원주시 실기대회에 참가했다. 하루가 다르게 향상된 K군의 실력 때문인지 우리는 사물놀이 동아리 결성 1년이라는 짧은 시간임에도 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모든 동아리회원들은 감격했고, 특히 K군 태어나서 처음 타는 상이어서인지 기쁨이 넘쳐 얼굴마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개학 후 시상식에서 나는 K군을 대표로 단상에 오르게 했다. 어머니가 계모라는 사실로, 문제아라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으로 항상 주눅들어야 했던 그에게 모든 학생들 앞에 자랑스럽게 설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후 계속되는 사물놀이 대회 참가와 수상으로 작년과는 너무나도 달라진 K군의 모습을 보면서, 교사로서 학생에게 어떤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K군은 3월초 결석 이틀밖에 없다. 사물놀이 반에서 활동한 이후 K군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되면서 학교생활에 나름대로의 재미를 갖게 된 것이다.

Ⅲ. 나오며

아무리 물을 주어도 꽃을 피우지 않는 나무가 있었다. 나무 주인은 이상하게 생각되어 그 나무를 준 친구를 O아 갔다. 그러자 친구는 나무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무에 물만 준다고 하여 할 바를 다했다고 생각하지 말게, 나무도 사람처럼 사랑과 애정을 느낄 줄 안다네. 애정과 관심을 갖고 나무를 키워보게”며칠 후 나무는 매우 크고 화려한 꽃을 피웠다고 한다.
나무도 사랑과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하물며 학생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이지 않는다면 올바르게 자라나지 못 할 것이다. 요즘은 결손가정이 많아서 학생지도에 있어 애정 어린 관심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처벌 위주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물론 엄격함으로 학생을 지도해야 하지만, 그 안에는 깊은 사랑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학생들이 그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학생지도에 있어서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는 분명 변모해야한다. 교과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열린 공간의 장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각자의 개성과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고, 그러한 성공과 성취의 경험이 학생들을 보다 올바르게 성장시키는데 필요한 것이다.
시대는 변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학생들의 사정과 사안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것을 풀기 위한 해법은 바로 학교문화의 변화에 있다. 어두운 곳에 서 있는 학생들에게 작지만 따뜻한 불씨를 마련해 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일은 교사의 몫이 아닌가 싶다.

고교 입시 스트레스

북원여자 중학교
교사 이 영 란

1. 내담자의 인적 사항
중학교 3학년 여학생 , 16세

2. 문제의 연혁
중학교 3학년이 되어 어느 고등학교에 가야 하나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꼭 가야 하는데.... 학기초가 되어 긴장하고 그런 날이 계속 반복되었다. 엄마는 “공부해라” “TV보지 마라” 하며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성격은 소심하고 자아가 약하고 약간 내성적인 성격에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었다. 집에는 부모님이 과수원을 하여 봄철이면 너무 바쁘고, 늦게 두 분이 들어오셨다. 집에서도 말할 대상이 없었다. 단지 할머니와 같이 자면서 많은 얘기를 했으나 얼마전 할머니가 큰아버지 댁으로 가셨다. 허전했다. 그리고 밤에 공포나 야한 소설을 보면 더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지나다 1학기 중간고사 때 시험 중 소리를 지르고 시험지 글자가 안 보인다며 여러 번 바꾸고 문제가 다 틀렸다고 소리쳤다. 물끄러미 앉아 있다 백지를 냈다. 그 다음 시간에는 괜찮고 그 다음 시간에는 또 그랬다. 얼마 후 소풍을 가는데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들한테 나쁜 짓을 많이 했다며 내 본심이 아니라며 친구들이 내 마음을 알아줄까요! 하며 몇 번이고 반복했다. (환청이 들림) 그리고 신경 정신과에 가게 되고 상담실에 오게 되었다.

3. 가족관계
아버지: 과수원을 하시고 이해심이 많고 외향적이나 내담자는 왠지 무섭다고 했다.
어머니: 과수원과 부업을 하시고, 성격이 밝으시고 내담자와 친구, 선생님 등 의 얘기를 가장 많이 함. 좋은 고등학교에 가야 한다고 늘 강조
나: 우발적이고,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며 마음이 약함. 컴퓨터로 채팅이나 음 악을 듣고 하루에 2시간 정도 함. 돈 잘 쓰는 것은 아빠닮음. 공부가 안될 때 잘 집어 던지고 동생에게 욕 잘함. 학교 성적 중간 이하
남동생: 밝고 쾌활하며 장난꾸러기
4. 상담 내용

<제 1차 상담>
아침 담임 선생님과 함께 상담실에 왔다. 몹시 불안한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 하고 피하는 태도를 취했다. “선생님 아이들이 절 이상하게 봐요!” “친구들에게 소풍 날 못된 짓을 많이 했는데 그건 내 본심이 아니라 연기였는데 내 마음을 알아줄까요?" 하며 그 소리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리고 한숨을 쉬고 심호흡을 여러 번 했다. “어휴 선생님 내가 나쁜 아이라는 걸 전교생이 다 알고 있는데 어떡해요?” “들리잖아요. 그래가지고 어떡해 학교에 다니니?”하며 상담실 복도에서 아이들이 그런다고 자꾸 헛소리를 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눈 마주치기 싫고, 모든 학생들이 보기 싫고, 학교에 오기 싫다고 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였다. 상담자는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며 마음의 위안을 줄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가족들의 이야기와 들어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대한 갈망을 이야기했다.
점심 시간이 지난 후 친구를 상담실에 데리고 왔다. 친구와 여러 가지 이야기 할 시간을 주었다. 그 후 표정이 더 밝아지고 마음이 편안하다며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상담자는 또래상담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내담자는 선생님, 친구, 부모님 이야기를 털어 놓으니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고 했다. 신경 정신과에 치료를 받으러 감. 본인이 입원을 원하지 않아 되돌아 왔다.

<제2차 상담>
아침에 아버지가 상담실로 찾아오셨다. 과수원을 하시랴 바쁘시고 대화가 별로 없고 무섭다고 했다. 어머니도 과수원 일로 늦게 오시고, 그 동안 주로 할머니와 밤새 조잘거리며 얘기를 나누었는데 얼마 전 큰댁으로 가신 후 며칠 후 우울, 침울, 혼란, 헛소리가 시작되었다. 학기초 중3이 되면서 엄마는 사촌 언니처럼 꼭 그 학교에 가야 한다고 강조하시고, 내담자도 긴장 되여 열심히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집에 오면 얘기 할 사람이 없고, 밤에는 무서워 문고리를 잠그고 잤다. 아버지와의 상담으로 학교 생활이 어려워 쉬게 해야 할까하고 생각했지만 일단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기로 했다. 집에서 엄마와 얘기를 많이 할 수 있는 분위기로 편안하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해줄 것을 당부하고, 신경 정신과를 다니며 약을 먹고, 친한 친구가 상담실로 와 둘만이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웃으며 둘이서 방과 후 친구가 집까지 바래다 주며 배려해 주었다.


<제 3차 상담>
밝은 표정으로 친구와 손을 잡고 상담실로 왔다.
친구는 내담자에게 새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중요 역할를 하였다. 집에서는 아버지가 부드럽게 대해주시고, 어제는 엄마와 같이 자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자랑하였다. 이제는 반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고 교실로 가겠다고 하였다. 반 친구들은 내담자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해 주고 많은 관심을 보여 주었다. 또래 상담의 필요성을 재인식했다

<그 이후>
그 후 마음의 평안을 찾아가며 학교 생활에 간신히 적응하고 있었다. 그 몇 달 후 기말 고사 도중 다시 긴장하면서 머리의 혼란으로 시험을 치지 못하고 백지 답안지를 냈다. 그리고 시험이 중단된 채 결국 결석으로 이어졌다. 여름 방학으로 이어졌다. 다행이기도 하였다.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그 당시는 내년에 복학하고 학교를 그만 둘까 했는데.... 여름방학이 지나 9월이 되자 밝은 표정으로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제4차 상담>
상담실에 온 내담자는 1학기와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 미소를 띠며 즐겁게 이야기를 하였다. 끈끈한 친구는 없지만 집에 같이 가고 놀고 하는 친구도 3명이나 생기고, 2학기 중간고사도 무사히 치르고 소풍도 잘 갔다 왔다고 했다. 장래의 직업은 경호원이나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의 고민은 여전히 고등학교 진학이지만 1학기처럼 초조하지 않고 여유 있게 성적에 맞춰 실업계로 가기로 정하니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상담실 밖에서 친구들이 기다린다며 빨리 간다고 서둘렀다. 복도에 나와 보니 2명의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친구는 진실한 친구, 도움을 주는 친구라는 느낌이 들었다.

<제 5차 상담>
이젠 편안한 내담자의 얼굴을 보며 언제 그랬더냐 싶게 웃고 있었다. 어머니도 집에서 신경을 많이 쓰고 편안하게 해 주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엄마가 집에서 기다려주고 대화도 제일 많이 한다고 자랑했다. 2달 전부터 학원을 다니면서 학원 친구도 6명이나 생겼다. 이젠 잠도 혼자 자거나, 가끔 엄마와 함께 잔다. 엄마와 누워서 얘기를 많이 하고 그것이 허전한 마음에 큰 위안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폭풍이 지나간 고요함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학원을 간다며 상담실 문을 나서는 발걸음에 웃음이 묻어났다.
5. 상담 결과
맨 처음 내담자를 대했을 때 상담의 수준을 지나 정신 치료의 과정에 있었다. 입시 불안 긴장 초조 등이 유발한 스트레스이고, 심리적으로 타격을 주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청소년기에 학업과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 놀이의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과잉학습으로 오는 압박감과 불안감 등이 주 요인이 된 것이다. 우선은 내담자에게 온화하게, 또 모든 것을 수용해 주고, 이해해 주었으며, 긴장을 풀 수 있도록 깊은 심호흡하며 이완을 도와주었다. 부모와 함께 시험이나 과제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기로 했다. 내담자가 시험과 반 친구들에 대한 심한 불안감을 가지기에 마음이 맞는 친구를 통해 불안해하는 내담자를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 능력 있는 학생과 짝 지워 주었다. 담임 선생님과 협조하여 사람은 실패할 수도 있고, 남보다 뛰어나려는 압박, 완벽해지려는 압박을 없애도록 하였다. 꾸준히 학교 생활을 관찰하였다. 친구가 생기고 시험 목표의 재 설정으로 긴장감과 불안감이 해소되었고, 얼굴에 웃음을 되찾고 현재 밝게 생활해 나가고 있다.

아름답게 변화되길 기대하며

상지여자 중학교 교 사 원 길 순

3월 첫날 새로운 아이들과의 만남, 그것도 1학년과의 만남은 나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였다. 중학교에 첫 발을 내딛는 신입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바라볼 때 참으로 기뻤고 어떻게 한 해를 잘 가꾸어갈까 기도로 시작되었다.
내가 민희를 만난 것은 그 첫날이었다. 아이들이 다 돌아간 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인사를 하였다. 경기도에서 이사를 하였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엄마의 당부와 함께 옆에 서 있는 민희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밝은 미소의 첫인상이었다.
3월 첫 상담에서 민희는 초등학교 때 전국 발명품대회에서 전국 3위를 수상한 바 있고 육상대회 장거리 800m에서 1등을 한 적이 있으며 매번 달리기를 할 때마다 1등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 공부도 학급에서 제일 잘 하였고 교우관계도 원만하여 선생님께도 칭찬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민희는 중학교 입학을 위해 여자중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어 여학생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설레는 마음에(성격상 남학생들과 잘 어울렸다) 며칠 밤을 잘 못 잤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이기에 잘 적응하리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수업이 시작되면서 며칠 후 민희는 산만하고 수업태도가 바르지 못하다고 여러 선생님들께 지적을 받았다. 수업태도에 대해 상담을 하는 중 왼손잡이기에 글씨를 쓸 때 자세가 바르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할 수 있었으나 노력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 후 본인이 수업시간에 자세를 바르게 하기 위해, 또한 집중하여 듣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음을 느꼈다.
또 어느 날인가는 분홍색을 넣은 안경을 쓰고 왔다. 색이 잘 빠지지 않아 몇 번인가 안경점을 다녀와야 했으며 휴대폰을 소지하여 상담을 하기도 했다.
민희는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발명품 제작에 유달리 애착이 많았고 한달 내내 좋은 아이디어 생각에 몰두하였다. 중간고사와 발명품 제출 일이 겹치자 고민이 되었으나 발명품에 더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발명품은 우리 학교 대표로 뽑혔으나 도 대회에는 나가보지 못하고 시 대회 입상으로 그쳤다. 발명품 때문에 시험공부에 소홀하여 시험에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여 본인 스스로 많이 실망한 모습이었다.
민희가 늘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공부와는 관심이 먼 아이들이었다. 몇 번 주의를 주었으나 늘 그 아이들과 몰려 다녔다. 교환일기를 쓰는 3학년 선배 언니는 공부와는 전혀 관심이 없는 소위 노는 아이였다. 교우관계에 대해 상담하면서 좋은 친구들과 사귀어야 한다는 말에 민희는 친구들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고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작은 폭력사건이 있었다. 한 아이가 맞았다며 사건은 시작되었다. 때린 아이 중에 민희가 있었다. 이유는 그 아이가 자기의 욕을 하고 다녔다는 거였다. 그러지 말라고 몇 번 얘기를 했었으나 날이 갈수록 심한 소문이 퍼졌기에 만나서 얘기하기로 했었다. 친구들이 걱정이 되어 그 장소에 같이 갔었고 얘기하다가 말을 함부로 하는 것에 화가 나 함께 간 친구도 같이 몇 대 때렸다고 한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었고 충동적으로 한 일에 대한 결과는 학생과로 불려가고 부모님까지도 학교에 불리어 가도록 했다. 본인이 한 일에 대한 충분한 반성이 있었으나 민희는 그 이후로 의욕이 없어진 듯하여 바라보기에 안타까웠다.
그 후 민희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늘 머리와 배가 아팠다. 초등학교 때와 비교하여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 따라주지 못하는 성적, 모든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으나 초등학교 때와는 다른 교우들의 모습 등이 민희를 힘들게 했다.
숙제를 안 해와서 일어나는 학생들 속에 늘 끼어 있었으며 학급에서 아침에 오기로 약속한 시간을 지키지 못해 화장실 청소하는 일이 잦았다. 늘 배가 아픔을 호소하여 지각, 또는 조퇴를 해야했다. 그래도 결석을 하지 않는 모습에 만족해야했다. 꾸중으로 때로는 격려로 계속되는 상담에도 변화가 없어서 나를 지치게 하였다.
어느 날은 친구들과의 갈등으로 상담을 하게 되었다. 친구간에 서로 오해가 생기다 보니 점점 오해가 쌓여가고 한 친구를 따돌림 시키는 일이 생겼던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불러 상담을 하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차츰 오해가 풀리게 되었다.
2학기에 들어와서 민희의 태도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학교에 일찍 오는 날이 많아졌다. 친구와의 다툼도 줄어들고 많이 참고 이겨내고 있었다.
어머니와의 계속되는 상담을 통해 기독교 신자인 것을 알게 되었고 함께 기도하자고 하였다. 민희는 어머니와 늘 친구처럼 솔직한 대화로 열려 있어서 그래도 다행이었다. 나와도 1주일에 한번씩 솔직한 대화를 나누기로 약속하였고 점점 마음의 문이 열려 짐을 느낀다. 자신의 가치를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아름다운 변화였다. 아주 조금씩의 변화지만 조급해하지 않으며 기도하며 기다리리라. 아름답게 변화되어있을 그 날을 위해!
민희야, 화이팅!
호영이의 가뿐 숨소리

육민관 중학교
교사 최 상 준

우리 교사들은 늘 자신의 학생 지도 방법이 최선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나 또한 호영이를 알기 전까지는 그랬었다.
호영이는 1학년이 거의 끝날 무렵 인천에서 전학을 온 학생이다. 2학년 1학기까지는 그럭저럭 잘 지냈지만 2학기가 되면서 학교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일에는 항상 호영이가 관련되어 있었고 2학년 끝날 무렵에는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나는 호영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지만 ‘왜 저런 녀석을 전입 받았지? 학교 시끄럽게’ 라고 내심 불만 섞인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새로운 2001학년도가 시작되면서 나는 3학년 1반 담임으로 확정되었고 반 아이들의 명단을 전달받았을 때 다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호영이가 우리 반이 된 것이다.
‘이런 녀석은 처음부터 휘어잡아야 해! ’
호영이는 우리 반의 담 제 1호가 되었고 그 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잘못을 낱낱이 열거하면서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 또 다짐을 받아 놓았다. 조용히 몇 일이 지났을까... 호영이가 무단 결석을 한 것이다. 연락을 하기 위해 교무수첩을 펼쳤으나 호영이네 집에는 전화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하루를 답답하게 보내고 일과를 마친 후 물어서 호영이네 집을 찾아갔으나 허탕을 치고 말았다. 다음날 출근과 동시에 학급에 들어가 호영이가 왔는지 확인을 하였으나 호영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1교시 시작을 알리는 차임 벨이 울리자 교문 앞을 뛰어오고 있는 호영이가 보였다. 나는 그런 호영이를 불러 숨도 돌리기 전에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너 어제 뭐 하느라고 학교 안 나왔어. 또 사고 친 것 아냐?” 고개를 숙인 체 “선생님 죄송합니다. 늦잠을 자서...” 라고 말하는 호영이에게 오후에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고 말하며 일단 수업부터 들여보냈다. 그러나 학기초가 일도 많고 바쁘다는 이유로 호영이와의 대화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아뿔사! 또 몇 일이 지났을까 호영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던 것이다. 헐레벌떡 호영이네 집으로 달려가 수십 차례 대문을 두드리자 잠에 취한 호영이가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빠와 단 둘이 살고 있다는 건 오래 전에 알고 있었지만 여기저기 널려있는 빨랫감들, 몇 일째 설거지를 하지 않아 썩어 가고 있는 음식물 찌꺼기들, 담배꽁초가 가득한 소주병이 여러 개. 그러나 구입한지 얼마 안돼 보이는 컴퓨터는 여전히 켜져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호영이를 데리고 학교로 돌아왔다. 호영이의 삶을 처음 본 것이다. 오히려 호영이가 학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대견스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호영이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내 자신부터 마음의 문을 열고 호영이의 모든 것을 수용하면서 상담을 시작하였다. 2학년 때부터 호영이는 중점적으로 생활지도를 필요로 하는 학생이었으므로 호영이의 환경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였던 것이다.
호영이가 우리학교로 전학을 온 이후 2학년 중반이 되면서 가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빠와 엄마가 헤어지고 난 후 아빠와 같이 생활을 하는 호영이는 엄마가 자기를 버리고 간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호영이의 마음 속에는 엄마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것이 2학년 2학기 때 문제를 일으켰던 원인이 된 것이다. 아빠는 농산물 판매업을 하는데 몇 일 간격으로 집에 들어오지 않아 호영이 혼자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또한 대부분의 가사를 호영이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호영이에게 유일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컴퓨터. 바로 그 컴퓨터가 호영이의 친구였다. 호영이는 엄마를 잊기 위해 컴퓨터 게임을 하였고, 아빠가 없는 날에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밤을 지새며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지각을 하거나 결석을 하는 것이었다. 호영이에게는 학교를 다니는 이유도 없었고 목표도 없었다.
나는 그런 호영이에게 컴퓨터 게임을 못하게 할 수는 없었다. 단지, 조금씩 게임 시간을 줄이고, 지각을 하더라도 반드시 학교에 나올 수 있도록 당위성을 부여하는 수밖에 없었다. 학교와 친구, 그리고 선생님의 의미를 심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데리러 갔고, 어떨 때에는 아예 출근길에 호영이를 데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호영이와 대화를 시도하였고 호영이도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내 말을 수용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ID로부터 E-Mail이 날아왔다. 다름 아닌 호영이가 보낸 것이었다. “선생님 저 호영인데요. 앞으로 결석 안하구요 학교 잘 다닐게요. 컴퓨터도 12시까지만 할게요.” 호영이의 짧은 메일은 나에게 긴 여운을 남겨 주었다.
그렇지만 호영이의 지각은 계속 되었다. 우리 반의 1교시 수업은 호영이의 가쁜 숨소리를 들으며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어쩌다 제시간에 호영이가 학교에 오면 우리 반은 무슨 경사라도 난 것처럼 아이들이 좋아했다.
언젠가 호영이는 4일을 연속해서 아무 연락 없이 결석을 한 적이 있었는데, 반 아이들은 호영이를 데리러 가지 않는 담임이 이상해서인지 “선생님 호영이 어떻게 해요?”라고 은근히 압력을 넣기도 하였다. 나는 호영이를 믿었다. 분명히 호영이는 스스로 학교에 나올 것이다. 아니 스스로 학교에 나와야 한다! 나의 믿음이 점차 약해지던 5일째 되던 날 아침 호영이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숨을 몰아쉬며 잠이 부족한 몸을 이끌고 학교에 나온 것이다. 내심 얼마나 기쁘고 반갑던지...
호영이와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특별한 상담 기법을 적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사람 사는 평범한 이야기였다. 그 이후 지금까지 호영이는 아무 문제없이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더욱 놀란 것은 2학기 중간고사에서 성적 향상자에게 주는 상을 호영이가 받게 된 것이다. 호영이는 컴퓨터 사용 시간을 줄여가면서 서서히 공부를 시작했던 것이다. 학교를 다니는 이유도 목표도 없었던 호영이가 공부를 시작했고 성적 향상자 상을 받은 것이다. 아직도 호영이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지만, 호영이는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교문 밖 저 멀리서 뛰어오는 호영이의 가뿐 숨소리가 하루빨리 없어지기를 기원한다.
민정이의 방황은 이제 끝

지정 중학교
교사 원 순 자

1. 지도의 동기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50명밖에 안 되는 시내 변두리의 작은 학교이다. 새로 입학한 1학년 학생들의 들뜨고 어수선하던 모습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던 4월 어느 날. 수업을 갖다 나오자 교무실 선생님들이 술렁였다. 이웃 학교에서 전학 의뢰가 왔다는 것이다. 3학년이고, 바로 이웃학교에서 전학 오려는 학생이라면??틀림없이 문제를 일으킨 학생이구나??하는 생각에 착하고 순진한 우리 학생들이 영향을 받을 것 같아서 내심 안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앞섰다. 잘 아는 선생님을 통해 알아보니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고 안 계신 집에서 가출학생 5명과 숙식을 제공하며 어울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주민등록을 옮긴 상태이고 전학 서류상 문제가 없기 때문에 전학을 오게 되었다.
첫인상은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풀어헤친 자켓, 길게 늘어진 머리, 헤진 바짓부리가 바닥까지 끌리고, 고집스런 모습이 한 눈에 말썽꾸러기처럼 보였다. 함께 온 어머니는 허리디스크로 장기간 입원 치료를 받다가 딸자식 때문에 잠시 외출을 하셨다는 데 초췌한 얼굴에 기력이 없어 보이고 앉아 있기조차도 힘에 겨워 보였다. 어머니가 저렇게 편찮으신 데 딸자식은 말썽만 피우고…… 정말 한심해 보였다.
우리 학교 학생이 지켜야 할 일, 고쳐야 할 점, 복장규정 등 30여분 동안 상담을 하고 다시는 전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착실히 학교에 다니겠다는 각서를 받고 나서 반으로 들여 보냈다. 어머니는??딸아이 때문에 속상해 죽겠다, 잘 부탁 드린다??며 연방 고개를 꾸벅이며 부탁하시던 모습이 오래 남았다.

2. 상담의 실제

가. 인적사항
о 학생이름 : 이민정(가명)
о 학 년 : 중학교 3학년
о 성 적 : 최하위
о 영양 및 건강: 비만
о 인 상 : 표정이 어둡고 가만히 있어도 화가 난 듯한 표정임.
о 성 격 : - 자기중심적이다.
- 대인 기피증이 있다.
- 자신의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간섭하는 것에 대해 지나친 반응을 한다.
- 잔소리를 무척 싫어한다.

나. 가족 상황 : 어머니, 오빠1
아버지는 민정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이혼하여 연락이 끊긴 상태이고, 어머니가 소형 트럭에 야채와 부식을 싣고 시골 장을 찾아다니며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 오다가 허리디스크로 장기간 입원 중에 있고 오빠는 비교적 성실하고 모범 학생으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다.

다. 문제
1) 가출한 친구들과 어울리다 권고 전학을 옴
2) 기초학력 부진으로 학습의욕 상실
3) 모친의 장기 입원으로 가정 형편이 어렵고 방과 후 보살펴 줄 사람이 없음.

라. 분석
기초학력 부진으로 학습의욕이 없고, 오빠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열등감에 빠져 있는 데다가 모친의 장기입원으로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됨

마. 지도 방향
1) 내담자가 편안하고 수용적인 태도가 되도록 유도한다.
2) 대인관계에서 신뢰의 회복을 위해 상담관계에서 지속적인 지지와 공감을 보낸다.
3) 내담자가 처한 어려움을 알아주고 내담자의 작은 노력에도 칭찬과 격려를 해주며 내담자가 지금까지 느꼈을 열등감을 씻어준다.
4) 모친과 면담을 통해 가정에서도 수용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혼자 있지 않 게 한다.
5) 자신의 존재가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3. 상담활동

가. 상담1 과제
- 학교 적응상태, 가정에서의 변화, 신뢰 있는 분위기 조성 -
신뢰 있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휴게실로 조용히 불러 민정이의 학교생활과 가정 생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더니 반 친구들도 잘 대해 주고, 담임선생님의 자상한 지도로 변화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었고, 친한 친구도 사귀었다며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소지는 전학을 시키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옮긴 것이고 전학 오고 2-3일 후부터는 다시 먼저 살던 곳에서 장거리 통학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병원에 계시고 민정이가 혼자 있으면 전학 오기 전 친구들과 어울리게 될 것을 염려하여 전화상담을 통해 어머니께 당분간 민정이가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퇴원하실 때까지 병원에서 함께 지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씀 드렸더니 어머니도 흔쾌히 승낙 하셨다.
보름 후에 어머니가 퇴원하셨고, 지금까지 아침, 저녁으로 민정이를 학교까 태워 주시고 있다.

나. 상담2 과제
- 공감을 통해 내담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내담자의 마음을 알아본다. - 가끔 불러서 학교 적응상태를 알아보고, 힘들거나 무슨 문제가 있으면 항상 엄마같이 생각하고 상담해 달라고 당부했다. 반 친구들도 잘 대해주고 주변에 함께 휩쓸릴 친구가 없어서인지 표정도 밝아지고 성격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와의 전화상담을 통해 가정에서도 잘 지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민정이가 비만관리 대상자여서 어머니와 저녁마다 손잡고 산책을 하고 있다는 말씀도 해 주셨다. 민정이 어머니는 퇴원하셔서 하시던 일을 계속하고 계셨고, 민정이도 홀어머니가 고생하시는 걸 알고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기초학력이 부족하여 좀처럼 성적 향상이 안되고 매 수업 시간마다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다. 상담3 과제
- 내담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편안하게 마음속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공감하고, 수용한다.
- 여름 방학이 끝나고 민정이는 더욱 밝아진 모습으로 다가왔고, 체중을 잰다며 일주일에 한 두 번씩 교무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와 입구에 놓여진 체중계로 자신의 체중을 확인해 보곤 하는 모습에서 성격이 활달해 지고 두려움이나 나서기를 꺼려하던 성격이 많이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라. 상담4 과제
- 내담자의 적성, 취미에 맞는 진로선택을 해줌으로써 자신감을 심어주고 목표의식을 갖게 한다.
- 여름방학에 어머니와 상의하여 친구와 함께 미용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미용학원을 다녔단다. 다니다 말면 아무소용이 없을 것 같아 어머니와 전화상담을 하고 학교에서도 특기?적성교육 차원에서 방과후에 원주 미용학원에 다니는 것을 허락해 주기로 하였다. 얼마 전 1차 필기시험을 보고 합격여부를 인터넷으로 알아봐 달라고 찾아와서 검색을 했더니 안타깝게도 떨어졌다. 어떻게 위로해 줄까 망설이는 데 민정이는??괜찮아요, 다음에 또 보면 되지요??하며 밝게 웃는 모습을 보고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편도선 수술을 하고,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에 맞추어 충농증 수술도 예약해 놓았다고 한다. 민정이가 정신적, 신체적으로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4. 상담 소감 및 제언
민정이가 전학 올 때 가졌던 내 생각은 기우였다. 이제 민정이는 더 이상 문제아가 아니다. 장래 유능한 미용사의 꿈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는 밝고 건강한 웃음을 가진 학생이다. 민정이가 전학 온 지 5-6개월만에 이렇게 눈에 띄게 달라질 수 있었던 건 작은 규모라 모든 학생들을 친자식 같이 생각해 주었던 여러 선생님들의 관심도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좋지 않은 소문을 안고 나타난 민정이를 우정으로 감싸주고 받아 주었던 반 친구들이 민정이를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을 것이다. 얼마 전 편도선 수술을 받기 위해 민정이를 조퇴시키러 음료수를 사들고 오신 민정 어머니께서??민정이가 친구들도 좋고 선생님들도 잘 대해 주셔서 학교생활이 즐겁다??고 한다며 연신 감사하다고 허리를 굽히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처음부터 문제를 일으키고자 태어난 아이는 없을 것이다. 가정환경, 학교생활, 교우관계 등이 잘 맞물려 제대로 돌아가야 아이들은 제자리를 찾고,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또한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 칭찬과 격려는 아이에게 자신감과 신뢰감을 갖게 하여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래 상담 운영계획서

평원 중학교
상 담 실

Ⅰ. 서론
여론조사에 의하면 요즈음 학생들의 상담 대상자가 교사나 학부모(10%내외) 보다는 친구들(50% 이상) 이란 점에 착안하여 또래인 학생들에게 일정한 상담 교육을 하여 활동시킴으로써 학교 내에서의 집단 따돌림을 예방하고 문제학생을 조기에 발견하여 사고 예방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본교는 또래상담을 실시한다.

Ⅱ. 본론

1. 교재
청소년 대화의 광장(현 청소년 상담원)이 펴낸 「또래 상담 훈련 프로그램 Ⅳ」 -??친구 되기??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2. 운영
본교는 전일제 특활 시간을 활용하여, 1학기 동안 매주 토요일 2-3교시에 특활 부서로 또래 상담반을 편성하여 교육한다.

3. 학생의 선발
1학년 중에서 한 학급에 1명씩 또래 상담원을 선발하며, 선발은 담임 교사의 협조를 얻어서 성적이 상위권이고 성격이 활달하고 친구들 사이에 신망이 좋은 모범생으로 선발한다.

4. 교육
특활 시간을 이용하여 1학기 동안 상담실에서, 6부 11회기로 1회기를 60분씩으로 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별지 프로그램 구성 참조)

5. 또래상담요원 임명장 수여
또래 상담자 교육이 끝나면 전교생이 모이는 조회 시간에 학교장 명의로 「또래 상담요원」이라는 임명장을 수여하여 여러 학생들 앞에서 활동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진다.

6 . 추수지도
또래상담요원 임명장을 받은 학생은 그때부터 또래상담활동을 하게 되고 매 월 말에 또래상담 활동 보고서를 제출하게 하며, 월초에 전체 모임을 갖고 지난 달의 활동에 대한 반성과 다짐 시간을 갖는 추수지도 시간이 필요하다.

7. 결과처리
매월 받아둔 또래상담 보고서를 11월 말에 집계하여 한 명의 피상담자에 대하여 15분간의 봉사활동 점수를 부여한다.

Ⅲ. 각종 양식 첨부

▷ 친구되기 프로그램 구성
▷ 임명장
▷ ( )월 또래상담 활동일지
▷ ( )월 또래상담 활동 실적
▷ 또래상담요원 봉사활동 시간 부여
▷ 봉사활동 확인서



임 명 장

제 학년 반
성 명


위 학생은 청소년 상담원이 계발한 또래상담 훈련 프로그램을 성실히 이수하였으므로 본교 또래 상담요원으로 임명함.



2001 . 9 . 3 .




평원중학교 교장 이 봉 자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 방안들
-교실에 들어가면서 앞뒤의 친구에게 인사한다.
-결석한 친구에게는 밤에 전화를 걸어 숙제나 학교소식을 전해준다.
-체육시간이나 실습시간에 혼자 있는 아이를 찾아서 친구가 되어 준다.
-점심시간에 혼자 밥 먹는 아이와 같이 먹어 준다.
-우울한 표정을 짖고있는 친구를 찾아서 말동무가 되어준다.
-용돈을 아껴 두었다가 한 달에 한 번은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사먹는다.
-친구들과 공통적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을 택해 일주일에 한 번씩 한다.
( )월 또래상담 활동실적

평원중학교 상담실






또래상담요원 봉사활동시간 부여 현황

평원중학교 상담실







봉 사 활 동 확 인 서






위와 같이 활동하였으므로 봉사 활동 시간을 부여함


2001 . 11 . 8



평 원 중 학 교 장 이 봉 자

지나치게 내성적인 규 ( G: 가명 )

학성 중학교
교사 김 문 희

1. 연구 동기
2001년 6월경에 일직이라 출근을 하였다. 누구인지 모르는 아주머님 한 분이 교무실에 찾아오셨다. 수수한 옷차림에 화장기가 없는 얼굴엔 근심이 가득하게 보였다. 그분은 다행스럽게도 내가 수업을 맡고 있는 2학년의 학부모이셨다. 이유는 아들이 갑자기 고열로 “학교 가기가 무섭다고...” 헛소리를 하면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담임 선생님께 결석계를 내러 오셨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계속 눈물을 닦았다.
담임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연결시켜드리고 난 후 학생의 성격과 가정환경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2. 연구기간
2001 7월 9일 - 9월

3. 자료 소집
< 가정 환경>
* 아버지 ( 49세 )
대학을 졸업하시고 유능한 동시통역관으로 군에 근무하시다가
6년 전 전신 마비가 되는 병명도 모르는 병에 걸려 3년 전에 사망하시고
3년 간의 투병으로 인한 병원 비에 모아 두었던 재산을 모두 써버렸다고 함

* 어머니 ( 48세 )
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경기도에 위치한 미술관에서 그림을 전시하는 갤러리 에 남편 친구가 소개해 주셔서 일을 하고 계셨다.

* 형 ( 21세)
두뇌가 명석하여 중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매우 우수하였는데 가정환경이 어 려워져 전문대학에 진학하여 장학생으로 학교 생활을 함.

* 누나 (18세)
고등 학생으로 공부도 잘하고 매우 영리하다. 책임감이 강하고 어머니를 대신 하여 가사 일을 돌보고 있으며 근면하고 성실하다

* 규 ( 15세)
아버지의 죽음으로 명랑하고 쾌활하던 성격이 점점 내성적으로 변하고
친구들과 잘 대화도 하지 않고 조용하게 있기를 좋아함.
독서를 무척 즐김.

< 학교 생활 >
성적은 상위에 속하고 지능도 높은 편임.
다양하게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한가지 일에 집착하며
책임감은 강하나 융통성이 부족하고 온순한 성품임.

4. 문제 분석
부유했던 가정이 갑자기 어려워지고 아버지의 죽음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머니도 같이 살지 못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형처럼 장학금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감과 집에서는 거의 혼자서 지내야하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이런 것들이 삶의 활력을 잃게 하였고 말수가 적어지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여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5. 지도 과정
수업시간에 자연스럽게 옆에 다가가서 작은 소리로 “ 아픈 것 괜찮니? ”하고 말을 붙였다. 그리고 오후에 책을 빌려줄게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접촉을 시도하였음.

< 1차 접촉 >
T : 오랜만이네. 컨디션이 어떠니 ?
G : (미소를 띠고) 침묵
T : 너 책읽기 좋아하지?
G : (고개를 끄덕인다.)
T : 요즈음 무슨 책 읽니?
G : 병원에 있을 때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1”을 읽었어요
T : 재미있지?
G : (끄덕이고) 침묵
T : 내가 2권 빌려줄까?
G : 네

(나는 어머니로부터 돈이 없어 “황무지가...... ” 3권을 모두 못 사주고 1권만 사주었다는 정보를 알고 미리 2권을 준비했던 것이다. 그리고 2권을 다 읽으면 상담실에 와서 3권을 가져가라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2일 후 G 는 상담실로 책을 들고 왔다.)

< 2차 접촉 >
T : 책을 읽은 소감이 어떠니 ?
G : 목사님이 대단히 훌륭했어요
T : 요즈음도 학교오기 싫으니?
G : ( 침묵 ) 얼굴이 빨개진다
T : 너 2일 입원했잖아.
G: 네. 학교가 싫었어요
T : 왜 싫을까?
G : 공부를 해야되는데 잘 안 돼요.
T : 왜 안 되는지 말할 수 있을까?
G : 다른 아이들은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하고 책도 많이 사서 공부하는데
전 혼자서 해야되고 시험을 치르면 가난한 우리 집이 원망스러워요.
그리고 형처럼 잘해야되는데 차라리 학교 그만두고 돈벌고 싶어요.
엄마하고 같이 살고 싶구요
T : 그랬구나. 1학기말 고사 치르느라고 스트레스 많이 받았구나.
하지만 부자들이 모두 다 공부 잘하는 것은 아니잖니?
방학동안에 내가 빌려주는 책 모두 읽고 듣기 평가 테이프도 빌려 줄께.
G : 감사합니다.

(G와 나는 방학을 즐겁게 보내자고 약속하고 서진규 씨의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싶다” 와 “오두막 잡 편지” 그리고 “ 한반도 1,2 ” 와 “가시고기 ”를 빌려주었다. 영어 듣기평가 테이프도 빌려주었다. 그리고 개학 후 책을 들고 상담실에 G가 찾아 왔다.)


< 3차 접촉 >
T : 방학 잘 보냈니 ? 아프지 않았니?
G : 예. 선생님 덕에 책도 많이 읽고 힘도 났어요.
T : 어떤 책이 도움이 많이 되었니 ?
G : 다 좋은데 ... “가시고기”는 아빠 생각이 나서 내가 잘해야겠다고 느끼고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에서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어요.
듣기평가 연습도 많이 했어요.
T : 표정이 밝아지고 말도 잘하고 또 다른 좋은 일 있니?
G : 엄마가 내려오셔서 같이 살아요.
T : 그럼 이젠 그립던 엄마와 같이 살게되어 맘이 안정이 되겠네
G : 네 . 하지만 조금은 성적 때문에 두려워요.
T :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선생님께 오렴.
혼자 앓지 말고 그리고 좋은 책도 빌려가고 말야.
G : 감사합니다.

< 대화에서 표현된 문제 >
1) 내성적인 성격이다.
2) 외롭고 가난한 것이 싫다.
3) 공부에 대한 강박감에 차있다.
4) 늘 가족이 그리웠다.

6. 소감
다행히도 학생의 취미를 알 수 있어서 접근 방법이 쉬웠다. 권해준 책을 흥미 있어하면서 읽었고 선생님도 본인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공부만이 학교생활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고 학교 생활에서는 교우관계도 중요하고
사회 생활도 익히므로 밝은 생활을 하도록 상담을 했다. 무엇보다도 엄마와 같이 생활 할 수 있어서 안정을 찾은 것 같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담자 자신의 억압된 감정을 잘 표현 할 수 있도록 타이르고 상담자로서의 많은 지식과 경험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넌 혼자가 아니란다

황둔 중학교
교사 김 영 희

1. 들어가며
우리 학교는 시내에서 50분 거리에 있는 곳이며 치악산 줄기에 휩싸인 아름답고 자그마한 농촌학교이다. 담임과 부담임이 있지만 학생 수가 적다 보니 모든 교사가 학생들에게 담임 역할을 할 정도로 서로 친밀한 관계에 있다.
이러한 자연적 조건 때문인지 대부분 학생들에게 특별한 문제가 없는 편이다. 그런데, 본인이 부담임을 맡은 1학년 ○○○학생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며 어느 순간부터인가 유독 급우들과 교사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2. 상담대상
?성명 및 성별 : 김민아(가명), 여
?생 년 월 일 : 1988. 10. 2
?상 담 일 자 : 2001. 4. 9 ~11.
?가 족 관 계 : 아버지, 오빠, 본인(3명)

3. 가정 환경
< 가족구성 및 태도>
? 아버지 :
?연령은 43세로, 중학교를 중퇴한 후,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21세에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으나 심한 음주와 폭력을 휘둘러 아내를 둘째 민아를 낳은지, 2살이 되던 해 가출을 하게 함.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되어 원만한 가정을 꾸려나가기에 문제가 많은 편임.
? 오 빠 : 부모와의 불화를 몸소 겪으며 자란 탓에 자연히 반비행 청소년으로 성장, 여동생에게도 폭력과 욕설을 하여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어려움을 여러 번 호소할 정도로 심한 정신적 황폐함의 원인을 제공하는 장본인임.

4. 상담동기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음악수업을 준비하기 위하여 음악실로 들어서자, 어디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듯해서 주위를 살펴보니, 1학년 여학생이 피아노 뒤에 숨어 울고 있다가 나를 보자 당황하여 후닥닥 뛰어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동안 학급에서 급우들과 겉도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힘들 때마다 음악실에 한구석으로 들어가 울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아이의 심적 변화 및 태도에 대하여 상담의 필요성을 자각, 대화하기 시작함.

5. 상담내용
?1차 상담 (4월 30일)
이 날은 내담자가 먼저 상담할 것을 요청해 와서 점심을 함께 먹으며 말문을 열기 시작함

상담자 : 민아야! 주말 잘 보냈니? 시험기간인데 공부 좀 했어? 그런데 얼굴이 어떻게 좀 상한 것 같네?
내담자 : (…머뭇거리며) 사실, 어제 좀 그럴 일이 있었어요. 너무 속상해요. 선생 님. 저 혼자서 밥하고 빨래도 하고 집안청소도 해야 하는데 오빠는 집안 일을 전혀 도와주지 않아요. 게다가 툭하면 욕하고 때리니 정말 힘들어 요.
상담자 : 그렇구나. 많이 힘들겠구나. 민아는 생긴 것처럼 참 착하구나!
그런데 오빠가 민아를 많이 괴롭히나보구나. 오빠가 기분 좋을 때 언제 나에게 오도록 말해 줄래?
내담자 : 아마 안 올 걸요? 어제 오빠가 아빠께 맞았는데, 툭하면 나에게 화풀이 나하고(알아들을 수 없는 욕설을 사용한다)
상담자 : (내담자의 욕설에 깜짝 놀라나, 태연한 척 웃으며)
와, 민아가 욕을 하네. 민아야, 그런 거친 말을 하면 민아의 얼굴이 예쁠 까?
내담자 : 히~ 작년에도 욕을 많이 해서 선생님께 혼났는데......
상담자 : 그랬구나. 습관이 되면 고치기가 힘드는데.... 그렇지만 안 할 수도 있 지? 우리 민아 얼마나 오랫동안 욕을 안 하는지 선생님과 약속할 수 있 을까?
내담자 : (머뭇거리며 눈치를 본다) 네~
상담자 :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착하구나! 민아, 다 컸네. 다음에 또 놀러 와 그 때도 같이 점심 먹자. 응?

그 후 수업시간 중이나, 쉬는 시간에 관심을 가지고 민아를 지켜보니, 여전히 쉴새없이 떠들기는 하나 가끔씩 터져 나오는 욕을 흠칫하며 스스로 억제하려는 모습을 보고 기특하여 몇 번 눈을 마주치며 웃음. 1차 상담 후 내담자의 개선하려는 의욕을 발견하고 앞으로의 상담에 희망을 가짐.

?2차 상담 ( 5월 25일)
이 날 오후 학교내의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이 떠도는데 내용은 그 동안 차분하게 지내는 줄 알았던 민아가 뜻밖의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람. 내용은 민아가 학교 홈페이지에 여러 편의 글을 올렸는데, 그 내용이 급우와 선배들을 비방하는 좋지 못한 글로 학교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함.

상담자 : (눈치를 보며 주눅이 든 내담자에게) 민아야, 인터넷 잘하니?
하루에 컴퓨터는 몇 시간씩 하니? 그런데, 이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것이 너의 글이니?
내담자 : (아무 말 없이) ......
상담자 : 지난번에 민아와 점심 먹은 후 민아가 참 예쁜 얼굴로 친구들에게 욕을 안하고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런 나쁜 글을 모든 사람이 보는 홈페이지에 올렸지? 민아는 선생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렸나봐.
내담자 : 저.... 저는 친구들이 싫어요. 저만 보면 뒤에서 흉보고. 그리고 우리 오빠 욕도 하고.... 저도 오빠가 싫지만 오빠 욕을 하는 아이들이 미워요.
상담자 : 그래, 그랬었구나.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는 홈페이지에 공개적으 로 욕을 하는 것은 민아가 좀 지나친 행동이라고 생각해.
내담자 : 죄송해요. 선배들이 나만 가지고 뭐라 하는 것 같아서....
상담자 : 민아야, ‘왜 모두들 나를 힘들게 할까’라는 것보다 이제부터는 ‘내가 친구 를 위하여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라고 말이야. 먼저 베푸는 태도를 가 져보면 어떨까? 그리고 화가 나고 견디기 힘들 땐 속으로 10을 세어봐, 그래서 마음을 천천히 진정시켜보면 어떨까, 선생님 생각에는 그 방법이 도움이 될 것 같구나.
내담자 : 네, 선생님.

이 날 이후 상담자는 학생들에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의 입장을 생각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키우자는 이야기와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볼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민아의 어려운 처지를 말하고 아이들에게 좀 더 따뜻하게 대해 줄 것을 간곡히 설득하여 민아와 아이들과의 거리감을 없애려 애썼다. 원래 순박한 시골 아이들이라, 그 동안 좋지 못한 민아의 행동으로 은근히 따돌림을 놓던 아이들은 어느 새 마음이 풀어져 외로운 친구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기로 약속을 함.

?3차 상담 ( 7월 3일)
민아 반 여학생이 민아 문제로 상담을 원함. 이유는 민아가 남학생들 한데 분별없는 말과 거친 행동을 일삼아 싸움으로 번질 때가 많으며 그래서인지 민아가 무슨 말이라도 하면 남학생들은 유독 민아에게 꼬투리를 잡고 못살게 군다고 함.
그 동안 별 문제없이 학교생활을 하는 줄 알고 있던 중 다시 민아와 상담을 하게 됨.

상담자 : 민아야, 그 동안 나쁜 욕도 안하고 해서 선생님은 ‘우리 민아 참 예쁘다’ 하고 생각했는데, 수업시간에 왜 또 아이들을 괴롭혔니?
담자 : (상담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애들이 그래요?
상담자 : 그래. 무슨 생각으로 그랬니?
내담자 : 아이들이 저랑 안 놀아줘서요.
상담자 : 마음이 많이 아팠겠구나. 내가 보기에는 아이들이 민아를 좋아하던데?
내담자 : 아니요. 이제는 욕을 안 하지만
자기들끼리 노는 것 같고 따돌려지는 것 같아 속상해요. 저는 참을성이 없어서인지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건드린다 싶으면 화가 나고 때려주고 싶어요.
상담자 : 그럼, 민아야. 얘들아, 나도 좀 끼워 줘. 하지 그랬어.
내담자 : 치~ 그래도....
상담자 : 알았어, 민아야. 아이들이 미처 생각을 못했나보구나. 다음부터는 아이들 보다 생각이 깊은 민아가 먼저 놀자고 그러렴. 알았지?
그리고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을 멀리하지 못 한단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태도로 대하면 친구들도 달라질 것이야.

이 날 상담으로 민아가 심하게 외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 즉시 급우들에게 문제의 원인이 모두의 마음이 민아에게 열려있지 않음을 지적하고 좀 더 민아를 이해하도록 마음을 모으게 하였다. 이 후 민아에 대한 좋지 못한 말이 거의 들려오질 않아 상담자는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

?4차 상담(9월 14일)
학교에 등교하는 민아의 단정하지 못한 복장에서 정서적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고 상담을 시작함.
상담자 : 민아, 안녕. 방학을 지내고 나서 아주 의젓해졌구나!
내담자 : (무언가 두리번거리며 손만 만지작거린다.) .....
상담자 : 민아야, 요즈음 오빠는 집에서 자니?
내담자 :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아니요... 집에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저도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 무섭기도 하구요.
상담자 : (뜻밖의 이야기에 놀라나 차분하게) 집에 아무도 없어?
아빠, 오빠는 어디 갔지?
내담자 : 저번에 아빠와 오빠가 싸워서 오빠가 집에 잘 안 들어와요.
근데, 아빠도 멀리 일 가셨다가 안 계셔요. 아니 사실은 어제 오셨는데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
상담자 : (너무나 충격적인 말에 놀라 민아의 얼굴을 본다.) 그랬구나! 정말 민아 가 무서웠겠네. 민아는 학생이니 학교에 제대로 다니려면 집에서의 생활 이 중요하잖아. 그럴 때일수록 힘들겠지만 두 배의 노력을 해야 해.
내담자 : 예. 알겠어요. 이제부터는 집에서 꼭 잘께요. 선생님께 상담하면 마음이 편해요.
상담자 : 고맙구나! 민아야, 누구든 자신이 어려울 때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자 체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단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한데 메일을 보내렴.

민아와의 상담 후 음식을 먹고 곧 상담자는 민아의 아빠가 계실 만한 곳을 골라 수소문을 하기 시작했다. 워낙 좁은 동네라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 식당에서 엎드려 자고 있는 민아의 아빠를 발견하고 동료 남교사와 함께 찾아 뵘. 이 자리에서 상담자는 그 동안 민아와의 상담 내용을 말씀드리고 지금 민아에게 필요한 것은 안정된 가정임을 간곡히 호소하며 민아를 위해서 술을 삼가 해줄 것을 말씀드림. 천성이 착한 민아의 아버지는 깊이 뉘우치는 자세로 앞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함.
아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민아의 뒷모습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어느 때보다도 밝고 가벼워 보였다.

6. 상담을 마치며
어느덧 11월이다. 그 동안 민아와 상담하며, 그리고 민아를 바라볼 때마다 이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고민하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자기의 불만을 교사에게 얘기함으로써 가슴속에 응어리진 것들을 풀어버리게 하고 ‘자기 스스로 해야 되겠다.’ 하는 의지를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하여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했으나 어느 정도 달성했는지에 대해 반성이 앞선다. 어떤 획기적인 변화보다는 거의 매일 대하면서 조금씩 변화되어 밝은 마음을 갖는 모습을 기대하며 지금도 상담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앞으로 민아가 성장하는 데 보탬이 되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에게 배려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 나아가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되기를 손모아 간절히 희망한다.

작은 보람 큰 기쁨

단계 초등학교
상담자원봉사자 권 문 경

올해 초 신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담 자원 봉사 일을 해 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계셨다.
처음으로 해 보는 일이라서 낯설고 번거로울 것 같아 조금은 망설이다
직장을 갖고 있지 않은 내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기에 내 아이와 비슷한 또래아이들의 情緖的 心理的으로, 고민과 각자의 생각을 엿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해 시작하게 되었다.
상담시간이 그리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만나는 소중한 시간임에 아이들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하면서 임한다.
그 간의 상담 사례를 몇 가지 적어 보았다.
엄마가 지금의 아빠와 재혼을 하였는데 아버지와 성이 다르다는 것을 안 반 친구들이 놀려 그 아이는 마음의 상처가 커 상담실을 찾아왔다.
그 아이는 이미 크나큰 상처를 받은 것 같아 난 순간 어떤 말로 격려를 해 주어야 할지, 무슨 말로 위로와 상처를 씻어 줘야 할지, 막상 그 아이와 대화를 하려고 하니 말문이 막혔다.
따뜻한 가정이 있고, 그야말로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언제까지나 영원히 살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설령 그렇지 못하다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悲運의 아이라고, 불행하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격려를 해 줬던 아이.
다행히 그 아이에겐 주위의 사랑하는 부모님과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저런 앙금을 씻어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다. 열심히 공부는 하고 있건만. 여전히 성적은 올라가지 않고 하위권을 맴돌아 세상 고민 다 자기 몫인 양 울부짖는 아이... 학원에 가기 싫은데 엄마가 자꾸 가라고 강요해 어쩔 수 없이 가방만 메고 왔다 갔다 한다는 아이.
상담 내용은 다양하다.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괴롭다는 소위자기가 왕따라 자처하는 아이...
이 모든 내용들이 어른들의 시선으로 보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내용들이지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사례도 있지만) 사랑과 관심을 갖고 들어주었으면 한다. 나 역시도 그때의 시절이 있었기에 그 나이엔 적어도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상담이 있는 화요일이 돌아오면 더욱 아이들과의 대화가 진지하고, 그 시간이 더 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교육계에 헌신하고 있는 여러 훌륭한 선생님들께 부탁드리고자, 힘들고 바쁘시겠지만 아이들 각자의 학교 생활, 交友관계에 좀더 관심 있게 지켜 봐 주시고 학교 생활에 의욕을 갖고, 생활할 수 있도록 개개인 일일이 귀 기울여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학생 심성수련, 나의 심성수련

북원여자 중학교
상담자원봉사자 김정희

2001.
새 학기가 시작되는 첫 번 어머니회에서, 2학년 우리 딸의 담임선생님께 어머니 자원봉사 신청을 해놓고 집으로 돌아와 우리 딸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엄마! 남의 딸 상담 자원봉사 하지말고 나에게 해주세요!’
‘알았어!, 엄마 잘 배워 가지고 너 상담해 줄께!‘
그리고 얼마 지나 학교에서 심성수련을 부탁한다는 연락을 받고 처음에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초급, 중급, 고급 교육과정을 거쳐 심성수련 봉사자로 봉사를 한다는데,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우선 타는 속마음을 가슴에 안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어려움이 많은 아이들을 접하게 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 부탁한 애들을 대하고 보니 눈망울은 초롱초롱 한데,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보육원) 기관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쩜, 이렇게 나 어릴 때를 닮은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을까?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가슴을 쓸어 내리며 이 심성 수련을 하는 동안 나는, 나의 최선을 다해 잘해주어야지, 그리고 별칭 짓기부터 공동 작품 만들기와 소감문을 쓸 때까지 정말 푸근한 마음으로 이 프로그램을 잘 마치고 얼마를 지나게 되었다.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오니 우리 아이가
‘엄마 보육원 언니들이 왔다갔어요‘,
‘응 그랬어‘?
‘뭐 좀 먹여 보내지, 언니들‘........
‘그렇지 않아도 아빠가 빵 하고 음료수 사다가 줬어‘.
그리고 어느 날 한번은 내가 있을 때 두 아이가 나를 찾아왔다.
약간 도벽이 있다는 아이와 한글을 모르는 아이가,
‘○○이가요, 오늘부터 한글을 배우고 싶데요.‘
‘어머 그러니?’
‘그러면 좋지 무슨 요일 날 할까?’
심성수련 하는 동안 몇 번을 권했지만 친구들 앞에서 글씨 모르는 것을 자존심 상해서 권하고 타이르다가 그만뒀는데 들리는 얘기로는 학교에서 어떤 안경을 쓴 선생님하고 한글공부를 한다고 해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렇게 찾아와서 하겠다고 해서 날짜를 토요일 2시로 정하고 가다가 뭐 사먹고 가라고 약간의 용돈을 줘서 보냈다. 그런데 토요일이 돌아와 점심을 준비해 놓고 한글공부를 하기 위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주 토요일도.......
그런데 어느 날 불쑥 찾아와
‘아줌마 목이 말라서요!’
그래서 우리 집의 배달 온 우유를 줬더니,
‘그래도 목이 말라요‘ 했다.
그래서 돈 얼마를 꺼내다가
‘뭐 마실 거 사먹어라 그럼‘.
‘그리고, ‘토요일 날 올래‘? 더니
‘꼭 올게요’, 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오지 않아서 보육원에 전화를 했더니 부모님이 전화를 받으시면서
‘그런 얘기는 처음인데요‘?
‘그 애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물어보고 보낼게요‘ 했다.
그리고 소식이 없었지만 못 나올 형편인가 보구나 생각하며 내 마음을 완전히 접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가을 소풍 전 날, 또 그 아이가 왔다갔다고 우리 아이가 전해줬다.
내일이 소풍이니 용돈이 궁해서 왔구나, 생각하면서 그 동안 나의 잘못된 행동을 깊이 반성해 보았다.
‘나는 그 애들을 우리 아이처럼 온전한 인격대우를 하지 않고 구걸 온 것처럼 혹시 대하지는 않았나..., 아니야! 그냥 용돈이 궁해하니까, 그 애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한달 쓸 만큼의 약간의 용돈이 아닐까? 그런데 그 많은 아이들에게 약간의 용돈을 주려고 해도 현재 나의 형편으로는 좀 곤란하지 않는가!....’ 가슴이 답답해지고 목에 뭐가 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에이! 내가 왜 감당하지도 못할 거면서 아이들에서 생각 없이 행동했을까? 하는 자책과 함께 앞으로 자원봉사를 하면서 내 능력 밖의 일로 갈등하며 아이들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내 아이를 대하듯이 심사숙고하며 조심해야지! 조심해야지!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해 보았다.
따뜻하게 안아주는 환경을 희구하며

서원주 초등학교
상담자원봉사자 박성만

1. 상담이 요청되는 상황
인간의 뇌는 좌뇌와 우뇌로 나뉜다. 좌뇌는 논리적이고 지적인 면을 담당하고 우뇌는 직관적이고 정서적인 측면을 발달시킨다. 과학적인 사고관이 강조되면서 좌뇌의 사용은 많아지지만 우뇌는 그 중요성이 뒤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유아의 뇌는 우뇌가 먼저 구조화되고 자연스럽게 좌뇌가 제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 정상적인 발달 과정이다. 그래야만 한 인간으로서 건강한 성품을 가지게 되고 개성화를 이룰 수 있다. 만일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면 소위 ‘머리 잘 돌리는 사람’을 만들어 경쟁사회에서 선두그룹을 차지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의 내면은 황폐화되어 이룬 것만큼 행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룬 그것에 의하여 소외되거나 내적 세계가 파편화 될 소지가 있다. 마치 기초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곳에 건물을 짓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요즈음 현실적인 교육환경은 병리적인 현상이 보일 정도이다. 초등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학원가방을 싸들고 저녁 늦게 승합차에 실려오는 우리의 아이들을 보면 장래가 기대되는 것이 아니라, 슬픈 마음이 들기조차 한다. 그 많은 과업을 해내는 아이들이 너무나도 대견스럽다. 그러나 어쩌랴. 너도나도 과열인데 나만 교육철학 운운하며 뒷짐지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인격의 기초를 형성해야 할 우리의 아이들이 속으로 병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유한 개성을 가진 정감이 넘치는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사회가 원하는 정형화된 구조를 만들기 위해 분주한 것 같다. 또래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정서적 분위기들이 침해를 받고 있는 듯 하다. 우리 아이들의 인격이 왜곡된다. 머리를 잘 써서 경쟁에 승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집단적 의식을 넘어서 따뜻하게 안아주는 환경이 필요하다. 반드시 외적으로 어떤 증상이 있어야만 상담이 요청되는 것은 아니다. 한 인간으로 올바른 가치의 구조를 이루도록 배려하는 관심에서도 상담이 요청된다고 본다.

2. 어떻게 상담에 임해야 하는가?
상담에는 다양한 기법들이 있다. 각 심리학에 따른 인간이해가 그 방법들을 결정짓는다. 그러나 학교상담이 가지는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 심각한 증상이나, 장기적인 상담이 필요한 경우는 전문가에게 위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언어나 행동으로 무엇을 지시하거나 행동하게 하는 방법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당장에는 어떤 효과가 보이는 것 같지만 피상적인 접근은 일회적인 효과만 있을 뿐이다. 상담자는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 내담자와 만나는 것이 아니다. 초기 상담에 임하는 사람들이 내담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한다는 강박증을 가질 수 있다. 이론상으로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상담 현장에서는 지시적이거나 권위적인 언어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
우선 ‘따뜻하게 안아주고 수용해 주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음은 상담 봉사자로서 최고의 보람이다. 말을 안 해도 좋다. 따뜻한 미소면 족할 수도 있다. 내가 당신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만이 아니라 수용하고 당신의 고민에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인식을 내담자에게 주어야 한다. 아니 실제로 함께 고통스러워 해야한다. 어린이는 비교적 방어기재가 약하다. 자기가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는 자연스럽게, 당연히 따뜻한 물에 목욕이라도 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때 이미 어린이 존재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창조의 에너지가 나와 스스로가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얻는다. 그를 한 인격자로 인정하고 공명(empathy)해 주는 일은 비전문가 상담자로서는 전부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다. 물론 전문 분석과정에서는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문제의 근본 원인을 추적하고 밝혀 내야만 어린이는 자신의 열등한 부분을 통합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 상담소에서는 어린이가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자체가 새로운 가능성으로의 초대이다.

3. 어린이 상담이 왜 중요한가?
황폐해진 어른의 영혼은 쉽게 회복되는 것 같지 않다. 특히 그가 사회의 지도층에 있다면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련을 당하게 되는지 우리의 가까운 역사 안에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또한 어른은 이미 고정관념과 선입견, 굳어진 경험들로 인해서 창조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심각한 정신병리도 장년들에게 있어서는 치료의 과정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어린이들에게는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다. 아직 정신 구조가 공고화되지 않았기에 자아가 약한 반면, 변화의 움직임에 매우 유동적이다. 어떤 증상을 가졌거나 인성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회복의 가능성은 낙관적이다. 현대 정신분석학의 거장인 멜라니 클라인이나 도날드 위니캇 등이 어린이 심리치료에 전념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요즈음 집단상담이 많이 행해지고 있는데, 집단상담은 비교적 문제가 없는 아이에게는 때때로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상담실을 찾아야 할 정도로 문제가 있는 경우는 별 의미가 없다. 따라서 학교 상담소가 가능한 한 좀더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병든 한 인격을 위해서 ‘따뜻하게 안아주는 환경’은 ‘무거운 학원 가방’보다도 어린이 자신은 물론 나라의 앞날을 밝게 할 것이다.

하루의 보람

원주 중학교
상담자원봉사자 이상옥

내 아이가 3학년 졸업반에 들어서면서 남다른 감회에 젖어 있던 어느 날, 나에게 걸려온 전화는 학교에서였다. 순간 철렁 내려앉는 가슴에 ‘내 아이는 학교에서 전화가 올 만큼의 큰 잘못을 할 아이가 아닌데......’ 하며 놀란 가슴을 누르고 어쩐 일이시냐고 되물었더니 내 걱정과는 달리 학교에서 상담요원을 선발하는데 할 의사가 없으시냐고 부탁을 하시는 전화를 받고서 부족한 나를 믿고 추천하신 선생님과 학교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리고 학생들을 짧은 시간이나마 나에게 맡겨 준다면 내 자식처럼 생각하며 사랑으로 지도해 보리라 마음을 먹고 흔쾌히 승낙을 했다.
학교를 대표하는 것이라 남다른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는 춘천에서 일일교육을 받게 되었다. 외부 강사의 교육도 알차고 나름대로의 실천사례 발표를 들으며 ‘아, 오길 잘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끔 했으며 상담에 대한 자신을 조금 갖게 되었다.
교육을 마치고 난 며칠 후, 예정된 날짜에 상담실에 가보니 작은 방에는 깨끗하게 정리된 책과 사례집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주어진 시간에 오는 전화도 없어서 먼저 한 사람들의 일과를 읽고 있는데 내 마음을 아는지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건 엄마는 식당에서 일하며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는데 고민 끝에 전화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 엄마는 식당에 나가니 일찍 집에 들어가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일이 끝나 집에 가면 몸이 천근이어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힘조차 없다고 한다. 그럴수록 중학생인 아이는 나쁜 길로 빠져들게 되고 날마다 학교에 갈 때에는 교복을 안 입고 가는 날이라며 사복을 입고 휑 하니 나간다고 했다. 그나마 아버지 역할을 하던 누나도 생활을 돕고자 고교졸업 후 취업을 하기로 했는데 너무 멀리 가야 되기에 엄마는 말리고 싶지만 말릴 수는 없다고 하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엄마의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10여분간 그 엄마의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듣고 나자 그 엄마는 나에게 죄송하다며 이렇게라도 마음을 털어놓고 보니 가슴이 후련하단다.
아마도 그 엄마는 내가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끼는 듯 싶었다.
먼저 아이의 불만이 무엇인가 시간을 가지고 진지하게 마음을 열어 대화를 해보고 담임선생님과의 상담도 해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사랑은 물질적인 욕구의 충족보다는 정말 따뜻한 엄마의 사랑을 항상 느끼게 하는 마음이 들게끔 이해와 사랑의 대화시간을 매일 갖는 것이 문제아의 발생을 없애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아이의 입장에 서서 고민과 아픔을 같이 나누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얘기들을 그 엄마와 함께 나누며, 부탁하며 아이를 너무 나무라기만 하지말고 믿고 다독거려 주면 아이도 제 길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해준 뒤 전화를 끊었다.
오늘은 나처럼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연 그 상황에서 내 모습은 어떨까 하는 생각과 함께 다시 한번 내 자신을 반성할 수 었던 소중한 하루였다. 요즈음 같이 복잡한 세상에 청소년들의 탈선을 부채질하는 사회 환경이나 가정의 결손, 부모의 과잉보호 기초질서 결여로 이어지는 도덕성 상실이 얼마나 큰 문제인가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며 가정에서의 사랑과 이해가 어느것 보다도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무리 세상이 탁해도 제 할 탓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이 튼튼하고 건강한 사랑의 뿌리로서 잘 자란다면 학생들은 탈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끝으로 나에게 이런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리며 나는 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청소년들의 어머니로서 따뜻한 사랑의 상담자로서 고민하고 탈선하려는 학생들의 상담자로서 더욱 봉사하리라는 마음의 각오를 하고 상담기술은 연마하여 남은 기간 동안 상담 자원 봉사자 역할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
컴퓨터에 묶여 사는 아이들

평원 초등학교
상담자원봉사자 강성윤

다른 사람과 대화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내가 그런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다만 내 아이 또래의 학생들은 요즘 무엇에 관심이 많고 무엇을 즐기는지 알고 싶기도 하고 한편 어려움을 느끼고 고민하고 있는 어떤 아이에게 작은 보탬이 될 수 만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나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상담 자원 봉사를 시작했다. 이런 자원 봉사를 하면서 느끼게 된 것은 상담의 기술이란 말을 잘하고 못하는 것이 아니고 얼마나 상담자에게 따스한 감정을 전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소위 말하는 문제아라는 아이들에게 모든 사람들이 외면할 때 ‘여기 너를 지켜보는 내가 있단다’라는 암시만 주어도 그들은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상담실 수리 관계로 많은 상담활동을 할 수 는 없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어서 소개해 보려고 한다.

햇볕이 유난히 따스하던 어느 봄날 오후 상담실 문을 두드리며 들어오는 영수(가명)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경쾌한 목소리로 꾸벅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밝고 순진해 보이는 아이는 대화를 나누어보니 횡설수설하고 산만하며 자기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첫 인상과 달리 몹시 산만하고 불안해 보였으며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별로 다를 게 없는데 왜 상담실에 와 있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거부의 몸짓을 심하게 했다. 그래서 우리는 1차 상담은 영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마무리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그러나 나는 뭔가 영수에게 도와 줄 일이 없을까하여 일 주일 후 영수의 담임선생님을 만나 양해를 구하고 2차 상담을 해보았다. 먼저 하루의 일과를 물어보니 영수는 처음에는 말을 안 하려고 하더니 남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나서 드디어 시원스레 말을 하기 시작했다.
IMF 때 실직한 아빠는 특별히 하는 일없이 거의 매일 술과 함께 일과를 시작하고 어머니는 식당에 일을 나가는데 밤까지 일을 하고 늦게 집에 돌아오거나 너무 늦어지면 식당에서 그냥 주무시기도 한다고 하였다. 위로 누나가 있기는 한데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중학교 3학년이라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밤 10시가 되어야 집에 들어온다. 영수가 잘은 모르지만 어디 분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늦게 들어오는 것 같다고 말한다. 영수는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오후에는 계속 집에서 혼자 컴퓨터 오락을 하거나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오락과 화투를 하며 지낸다고 했다. 컴퓨터 게임이나 고스톱을 하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고 지루하지도 않고 재미있다고 한다. 당연히 학교에서 부과하는 숙제는 한번도 해 본적이 없고 준비물을 잘 챙겨 가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이웃에 살고 있는 사촌들과 함께 영수 집에서 고스톱을 쳐서 과자내기도 하고 컴퓨터 게임도 한다고 한다. 고스톱을 어떻게 잘 할 수 있냐고 물으니 어릴 적부터 어른들이 하는 것을 많이 보아서 잘 할 수 있다고 뽐내며 이야기를 한다. 영수의 방과후 생활을 부모가 아느냐고 하니 “우리 부모는 그런 것에 관심도 없어요” 라고 말한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은 실내에서 놀이하는 것보다는 넓은 운동장에서 제 또래들과 뛰놀고 몸을 활발하게 움직이며 육체적, 정서적으로 성장해 나가야 할텐데 영수는 오로지 방안에서 친구도 별로 없이 컴퓨터와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대인관계도 좋지 않고 친구도 잘 사귈 줄 모르고 자꾸만 집으로 갈려고 하는 생활이 반복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면 나중에는 대인 기피현상이 있을 수도 있고 사회생활이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 후 영수와 만나 상담할 때는 영수에게 컴퓨터 게임이 아닌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장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알려주기도 하고 친구들이 모여있으면 어떻게 친구에게 가까이 가서 말을 건네고 친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내 생각을 조금씩 전해주었다. 친구와 함께 축구도 하고 재미있는 동화책을 읽기도 하고 여럿과 함께 어울리라고 여러 번 조언하고 상담했지만 실제로 눈에 띄게 좋아지지는 않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자기 몸에 배인 생활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려운 듯 하였다. 그래도 꾸준히 상담을 하다보니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많이 좋아지는 것 같아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요즘 집집마다 컴퓨터가 있어 아이들은 바깥 놀이 보다 집안에서 컴퓨터 게임에 관심이 많다. 컴퓨터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장점도 있지만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그런 유익함보다는 오로지 재미에만 빠져들어 하루의 대부분을 게임으로 보내게 되는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게임방이란 곳에서는 청소년들이 담배와 쉽게 가까워지기도 하고 성인의 눈에도 난잡하게 느껴지는 포르노적인 게임도 있어 정서적으로 해악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다른 모든 것은 하기 싫어지니 공부도 숙제도 하기 싫어지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싫어지니 이런 아이들을 우리 부모는 아이들이 하는 데로 방임하지 말고 교육적인 판단아래 아이들의 컴퓨터 게임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수의 경우는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가 거의 단절된 상태이고 아버지는 매일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고 있고 어머니는 가정일 보다 식당에 나가있는 시간이 길어서 영수를 제대로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영수와 같은 아이들을 방치하게 되면 결국 이 사회가 병들어 가는 것이고 그것은 잘 자라고 있는 건강한 아이들에게도 매우 어려운 문제로 다가올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부모들은 집에서 고치지 못하는 아이들의 버릇을 학교에서 고쳐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가정에서 바르게 가르치지 않은 아이가 학교에서 바르게 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한 아이들이 단순히 학교에 빠지지 않고 다니는 것만으로 아이의 학교생활을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든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은 결국 아이들이 조금씩 빗나가서 나중에 매우 심각한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때늦은 후회를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자녀교육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 할 것도 없이 부모의 교육이다. 부모의 말과 행동은 아이들의 눈에 좋은 시청각 자료이며 이 자료를 통해 사회를 배우고 가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 부모들의 행동이 너무 크게 아이들에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들이 하는 충고나 교훈은 아이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격언은 우리 부모들이 가정에서 자식을 어떻게 가르쳐야하는지를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매일같이 술이나 마시고 담배를 피워대며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들이 탈선하지 않기를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은 부모의 횡포요, 폭력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한 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선천적인 장애보다 후천적인 장애가 더 많다고 들었다. 산모가 아기를 잉태하여 뱃속에 있는 10개월 동안 그 생명이 잘 자라도록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산모의 무지함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장애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태어난 후에도 아이들은 무지한 부모들로 인해서 바른 가정교육을 받지 못하여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장애아를 만들고 있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녀교육을 위해서는 어른들의 오만과 욕심을 버려야 할 것이며 항상 아이들이 어떻게 부모를 바라볼까 하는 것에 대해 우리 부모는 신중히 생각해 봐야 한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부모가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어디까지 수용해주고, 나무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의 아이들이 밝고 명랑하게 자랄 수 있게 되어 우리의 사회가 더욱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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