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마리나 아브라모빅/울라이(네덜란드), 앤트 팜, 존 발데사리, 요셉 보이스(독일), 빅터 버긴(영국), 한스 하케, 조셉 코주스, 레스 레빈, 톰 마리오니, 데니스 오펜하임
1960년대 중반 - 1970년대 지역 국제적
내용 ꡐ개념미술ꡑ이란 용어는 1967년 여름호 <아트포럼>에 미니멀리즘 작가인 솔 르윗이 기고한 <개념미술소고>가 실린 뒤 널리 통용되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이미 헨리 플린트와 에드워드 키엔홀츠 같은 미술가들의 저술에서 유사한 주장이 개진되어 왔었다.) 개념미술과 가장 가까운 동의어는 ꡐ아이디어미술ꡑ 이다. 개념미술에서는 아이디어가 대상(the object)보다 훨씬 중요하다. 개념미술은 1960년대에 들어 더욱 상업화되어 가던 미술계와 특히 동시대 미술이었던 미니멀리즘의 비인간성으로 대표되는 전후(戰後)미술의 형식주의에 대한 반대를 기치로 나타나 것이었다. 개념미술가들은 그때까지의 미술이 좁은 범위의 개념 미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그 한계에서 탈피하게 위해 페미니즘, 대중문화, 기호학 등을 이용해 전통적인 미술작품과 닮은 구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 냈다. 말의 형태를 취하는 언어적 작품(linguistic works)이 벽에 걸린 개념 미술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미술가의 생각이 담긴 참고기록뿐이다. 개념주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퍼포먼스 아트나 비디오 아트처럼 회화도 아니고 조각도 아닌 새로운 미술형태와 대지미술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직 드로잉이나 사진으로 불 수 밖에 없는 미술형태를 포함시키는 포괄적 용어가 되었다. 개념미술의 기원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20세기초의 다다미술가인 마르셀 뒤샹의 기성품을 들 수 있는데, 이 작품들은 미술가의 재료 조작보다는 미술가의 아이디어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개념미술에 영향을 준 다른 미술은 이브 클랭과 피에로 만조니의 철학적 액션과 제스퍼 존스의 채색된 수수께끼 같은 작품들로 모두 ꡐ미술작품이란 무엇인가?ꡑ라는 의문을 던진다. 개념미술이 최초로 대중에게 선보인 것은 1970년대에 뉴욕에서 열린 두 개의 대규모 전시회를 통해서였다. 하나는 카이내스턴 맥샤인이 기획한 뉴욕 근대미술관의 전시회 <정보>였고 또 다른 전시회는 잭 번햄이 큐레이터로 기획한 유태미술관의<소프트웨어>였다. 개념미술에서 보여주는 미술가의 사고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다. 예를 들면 모건 호하라가 자신이 매일 잠에서 깰 때 무었을 하는지에 대해 기록한 강박적인 기록에서부터 로버트 모리스가 작품제작 당시의 소음을 녹음한 뒤 상자 안에서 녹음된 소음이 나오도록 만든 상자, 캘리포니아란 글자를 구성하는 알파벳(C-A-L-I-F-O-R-N-A)을 지도 위의 캘리포니아 주를 나타내는 인쇄된 글자들과 일치되게 배치한 존 발데사리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회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인 개념주의 미술로는 한스 하케가 미술관 관람객을 대상으로 넬슨 록펠러 주지사의 월남전 지지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일, 레스 레빈이 뉴욕에 자리잡은 캐나다식 유태식당을 손님들 몰래 미술작품으로 운영한 것, 톰 마리오니가 1970년대에 자신이 설립한 샌프란시스코의 개념미술관에서 살롱식의 사교모임과 전시회를 개최한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개념미술이 미술가의 사고를 강조함으로써 어떤 활동이나 아이디어가 회화나 조각형태로 구체화되어 나타날 필요없이 그 자체를 잠재적인 미술작품으로 보려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렇게 미술품의 존재가치를 팽개쳐 버리는 개념미술의 태도는 미술가, 관람객, 평론가 사이에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미술가이며 이론가인 앨런 캐프로우는, 미국우주선이 달착륙에 성공해 인간이 달표면을 걷은 사건같이 미술이 아니면서도 대단한 장관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각적 경쟁시대에는 개념주의야말로 관람객들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미술형태라고 옹호했다. 평론가이며 <타임>의 미술란을 맡고 있는 로버트 휴즈와<뉴욕타임즈>에 미술평론을 실었던 힐튼 크레이머는 개념미술을 ꡐ벌거벗은 임금님ꡑ으로 보았다. 1970년대 말경 다시 활기를 띠며 나타난 전통적인 형식의 회화와 조각들은 개념미술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개념미술의 이야기 전달과 정치에 대한 관심 그리고 미술사와 대중문화에서 따온 이미지에 대한 관심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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