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놀이 월월이청청 맥 이어요”
대보름 맞아 포항·영덕 등 해안마을서 전승돼 교사 등 참여 연구팀 구성
…자료수집·개발
...소리CD 제작
…축제 등서 시연·보급‘결실’
경북일보 진용숙기자 2005/01/04
포항정보여고 이월희씨.
지금의 사회를 일컬어 최우수 문화만 살아남는 문화 전쟁 시대라 하기도 한다.
이러한 때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그 분야에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이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단순히 계승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분야를 집중 권장.장려하고 있어 지역전통문화의 지킴이로 불리는 사람 이월희씨(47).
조상의 삶속에서 이어받고, 배우고, 발전시킨 포항지역 전통문화 ‘월월이 청청’을 계승발전시키고 있는 포항정보여고 이월희씨(47)를 만나보았다.
한때 병마에 시달리는 이씨를 보며 ‘월월이 청청’이 사라지는게 아닌가 하는 주위의 안타까움을 불러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조금씩 활동을 재개하고있어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며 월월이 청청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본다.
“월월이청청’은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는 가무 형식의 놀이로 남해안 지방의 강강수월래나 안동 지방의 놋다리 밟기와 비슷한 내용을 지닙니다.”
달놀이 월월이청청
월월이 청청은 주로 정월 대보름과 팔월 대보름 저녁 고운옷으로 단장한 열 대 여섯 살 처녀서부터 갓 시집온 새댁들이 주동이 돼 동네의 공터나 마당이 넓은 집에서 공유한 달놀이였다.
그것이 지역적으로 다르게 전승, 발전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이월희씨는 “이 놀이는 구미와 군위 등 경북의 일부 내륙지방에서도 전승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으나, 포항과 영덕 등 주로 경북의 동해안에 전해져 포항 지역에서는 청하면, 흥해읍, 동해면 등지의 해안 마을에서 주로 전승됐다”고 한다.
발생시기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현존하는 90세 이상의 노인들이 어린 시절부터 보았다는 증언으로 미루어 최소한 조선 중엽까지는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대까지는 우리지방에서 성행했으나 일제말기부터 중단됐고 현재는 60대 이상의 노인들 사이에 기억으로만 그 명백이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씨가 월월이 청청을 발굴하게 된 것은 포항정보여고가 1996년 포항시 전통문화지정학교로 선정되면서 부터다. 월월이 청청의 자료수집을 위해 1996년 포항시 문화원으로 찾아갔으나 사전적인 내용뿐이어서 당시 문화원장 이종순씨를 포항정보여고로 초빙, 점심시간에 학생 5-6명과 지도교사가 간단한 동작을 배우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 후 1997년 공연을 위해 연습을 하던 중 당시‘월월이청청’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던 남상익씨(청하초등)를 만난 것이 인연이 돼 동해면 흥환리 노인회를 알게 됐던 것.
이씨는 학생 6-7명 데리고 흥환리 노인정에 수시로 드나들며 노인들의 어깨를 주물러 주면서 소리와 가사를 채보한 후 음악과 윤재덕씨가 악보를 만들었고 만든 악보를 다시 소리연구가에게 맡기면서 월월이 청청이 탄생하게 됐다.
‘월월이청청’에 대한 소리 테이프는 흥환노인정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목소리와 소리연구가의 목소리 두 종류로 만들었다. 이 후 다시 학생들이 그것을 배운 후 학생들의 소리테이프도 제작, 1997년부터 비디오를 제작한 후 수 차례 시연을 거치면서 제대로 된 CD를 제작했다.
CD제작은 포항시 문화공보과가 후원하고 소리지향국악예술단(단장 유수복), 해동국악예술원(원장 우무이 스님), 포항정보여고 합창단이 수고를 했다.
각종 자료는 동해면 흥환리 노인회 김재선(75세), 이경란(78세) 최금선씨(78세)와 당시 포항문화원 이종순 원장, 남상익 교사, 황인 교사의 도움을 받았다.
이들은 다시 연구팀을 구성했고, 이월희 강필숙 윤재덕 교사들에 의해 계속 연구되면서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후 연구팀을 보강하면서 신훈 교사까지 합세해 매년 시연은 물론 ‘월월이 청청’에 대한 자료 수집과 개발, 학생지도에 전념해 오고 있다.
그동안 영일만 축제 시연 3회와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시연 2회, 2001년 5월 전국 청소년 민속 예술제 경상북도 대표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게 됐다.
또 지난 2001년 10월 청소년 민속 예술제에서 대상(문화관광부장관상)을 획득, 학교의 명예는 물론 월월이청청을 전국에 널리 홍보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월월이 청청과 함께 발굴해야 할 ‘실꾸리 풀기’ ‘외(참외)따기’등도 포항에서만 행해지던 전통 놀이였다는 이월희씨는 “더 많은 우리의 전통 놀이 문화를 재 발굴, 전승 보급한다면 서구의 놀이 문화만 쫓아가는 삭막한 현실에서 우리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정신문화를 심어주어 세계속의 한국인으로 자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음은 남인수 카페지기님의 말씀입니다.
제가 '월월이 청청'이라는 전통 민속놀이의 맥을 이어가게 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7,8 년 전 쯤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관리하기 전에 정보 여자 고등학교에 근무하고 계신 이월희 선생님이
이 전통 민속놀이를 보존해 오셨습니다.
하지만 보존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힘든 점이 있어
저를 찾아오신 것이 제가 맥을 잇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저를 찾아오실 때
그 분은 지병이 있으셔서
보존해 오시던 이 고장의 민속놀이 '월월이 청청'을
누군가에게 맡길 것인가를 모색하고 계셨습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그 분이 '월월이 청청'을 학생들에게 전수하면서
전수받은 학생들이 졸업하게 되면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하는 문제점도 토로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이월희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월월이 청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저 또한 전통문화와 전통악기에 남다른 관심을 늘 갖고 있었기에
심사숙고 끝에 그 분의 뜻을 이어가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경상북도 도청 주관 '경상북도 자원 봉사자' 행사를
포항실내체육관에서 개최한 적이 있었습니다.
경상북도 23개 각 시,군 자원 봉사자 포상식 행사에
'월월이 청청' 공연을 올리게 되었는데
최경미 국악 학원의 최경미 선생님과 협의를 하고,
이월희 선생님과 최경미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이영옥 선생 등 여러 국악인들과 함께
'월월이 청청' 민속작품을 연습하게 하여 처음으로 시작하였으며
도청으로부터 아주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월희 선생님이 위암으로 젊은나이에 애석하게도 돌아 가시고
2006년부터 해도동 형산강 달집 태우기 행사에
처음으로 일반 주민들로 구성된 '월월이 청청'팀을 구성하여
달집 태우기 행사에 접목하기 시작하였고
같은 해 포항 문화원 주최 단오절 행사에
보경사에서도 시민들 앞에서 선보임으로
당시 윤용섭 부시장님이 감탄하셨고 칭찬도 받게 되었습니다.
같은 해 포항 문화원의 지원아래
흥해읍 북송마을 솔밭에서
청하중학교 등 여러학교에서 여름방학을 맞아
현장학습을 온 청소년들 앞에서도 공연을 하여
지역 학생들에게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청소년들에게도 아름다운 우리 지역 문화 '월월이 청청'에 대해
인식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지역민속작품인 '월월이 청청'의 맥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포항시의 29개 읍면동 중 제가 살고 있는 해도동에서
'월월이 청청'이라는 이 지역 민속작품이
해마다 정월 대보름을 기점으로 실시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포스코 섭외부와 제선부, 환경에너지부
장경식 도의원님,
조선내화 BMS 최종락 사장님,
에스엠 이석면 사장님과
그 외 많은분들께
도움 주심을 카페를 통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 또한 아름다운 이 민속놀이의 보존에 심혈을 기울여
지금은 고인이 된 이월희 선생님 생전의 그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6월 9일 청청이 남인수
다음은 고인이 되신 이월희 선생님을 생각하며 쓰신 글입니다.
이월희 선생님이 운명을 달리 하시고
시간이 흘러
제가 카페를 개설하고 보니까
선생님이 제게 맡겨주신 신발과 옷이 무척 생각납니다.
보관하지 못하고 없어진 것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선생님에게 죄송한 마음이 자꾸만 듭니다.
선생님 유품으로 잘 보관을 했더라면
우리 월월이 청청 회원분들께
소개도 하고...
더욱 보람있었을것 같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이월희 선생님 생각을 하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제가 식사 대접을 하려고 말씀을 드리면
집에 가셔서 별도의 음식을 드신다고 말씀하시며
미안해하시면서 늘 거절 하셨는데...
식사대접 한 번 해 드리지 못하고...
돌아가신것도 세월이 흐른 후에 뒤늦게 알았으니...
그동안에 내 자신이 얼마나 무관심 하였는가를 반성하며
그 슬픔이 월월이 청청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이렇게 곱절로 슬퍼질 줄이야~~~
2009년 7월 22일 청청이 남인수
첫댓글 우리에 전통민속놀이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과 수고를 하시는 남인수 회장님 감사 드립니다
예쁜여우님 이번행사에 고생도하시고 감사하고 있읍니다
맥을 이어가는 것이 그렇게 쉬운일은 아닐텐데, 휼륭하신 청청 총재님 존경합니다.
하얀공주님은 민속 전통문화에 특한 관심이 있는것 갔읍니다 관심을 가져 주신분이 계시기에 청청이도 이렇에 미처 가는가 봅니다
월월이 청청의 유래가 정말 유서깊네요. 도와주신분들도 고맙지만 월월이 청청을 지키고자 애써시는 위원장님의 노고에 해도동민으로서 노고에 値下드립니다. 동민화합! 수고하셨습니다.
소국님 감사합니다 저는 이런기사가 이월희 선생님 살아계실때 있섯는 것 조차 몰랐읍니다 글로버님이 관심을 가지다 보니 찾아서 올렸는대 저도깜작 놀랏어며 지금기분이 너무좋아서 식사도 한번 대접하지못한 이월희선생님이 생각이나서 눈시울이이월희선생님이 보내주신 같아서
이월희 선생님 살아계실때 식사 하려 가자고 하면 집에가서도에 음식을자신다고 하시면서 늘 사양하시든 선생님이 돌아가신후 한참 되 에야 알았으니 무심했든 지금의 내마음은
수고많이하세습니다 건강하시고 축하습니다
감사합니다 황동주님
수고하습니다 민간인으로 이렇게큰일을하세서 감동받앗습니다 존경합니다
관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어느지방이든 그지방의 전해오는 민속이 계승발전시킴 뒤에는 그것을 보존하려 애쓰시는분이 필히계신다`그런분의 희생없이는 이런것이 지속적인 발전내지는 보존되기가 어렵다고나할까"우리는 단순히 구경하면되지만 우리가 흥겹게 관람할수있기까지는 이분들의 많은 물적 시간적소요가 있었기에 가능한것이다 우린 이들에게 감사의 박수를보내야 할것이며 늘 이들을 안고 아낌없이 지원을 하시는 민속진흥회 남인수포항지부장에게도 고마워 해야할것이다`
아마데우스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청청님의 좋은 협력자로 오래오래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보면 볼수록 힘이나는 카페입니다.
감사합니다. 팔미도님 많은 활동 부탁드려요
글불량은 많으나 도보고갑니다.
그렇네요! 많이 홍보해야겠습니다.^^ 이렇게 좋은카페가 있다니......^^
감사합니다. 행복으로초대펜션님 펜션 주인장님이세요 본것도 같은데....
눈시울이 젖네요..한여인 아니 예술인의 혼이 아직도 남아있네요...'인생은 짥고 예술은 ...
정말 예술은 영원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듯 싶습니다
진심으로 마음이 동하니 뜻을 이루시리라 믿습니다. 월월이 청청이 민속문화의 혼이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겠습니다. 월월이 청청님입니다.
희망날개님 힘실어주신말씀 감사합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분들이 계시기에 우리의 가락 우리의 전통문화가 맥을 이어온 것임을 소중히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청청님의 이러한 계승발전을 위해 애쓰심에 존경을 드립니다. 더욱 열심히 울 회원님들이 홍보와 행정적인 절차를 밟아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저 또한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대장군포럼님 천군만마 를 얻은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하셨읍니다. 월월이 청청을 보존하시러는 남인수 회장님의 큰 뜻에 감사드리며 무궁한 발전 기원합니다.
은방울님 격려 감사드림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청청님! 정말 큰 일을 맡으셨군요..계속 이 좋은 일 굿굿이 잘 해 나가시리라 믿습니다.
송이님이 다녀가셨군요 감사감사합니다 우리에민속 다갗이 보존과함게 널리 홍보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일 하시는 청청님 존경 합니다
쵸이멘님이 보고 가셨네요 과분한 칭찬 감사하구요 쵸이멘님의 각한사랑 항상
감사하고있습니다
깊은 사연 남인수 회장님 고개가 숙여지네요.
회장님의 깊은 뜻 새삼 너무 훌륭한 발자취를 남기시네요.
존경합니다.
소야님 다녀 가셨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