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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산 가는 길
가 본 사람 말로는 참으로 아름답다 한다.
서울에서 출발하기에는 고흥까지가 참으로 멀기에 선 뜻 간다는 결정이 입으로만 맵돈다.
호방에 들러 가는사람 몇명인가 세어 보아도 내 마음과 같은지라 꼬리를잡는이가 뛰엄뛰엄이라
보채는 강도는 힘을 더 한다. 요 몇일 날씨는 왜그리 더운지 심술이 더하여 정기산행을 접는다는
소식을 기다리게 한다. 서로 간다 다투어야 기획한 운영진에 힘도 나고 할텐데 참 이상타 속마음은
발목을 잡다니.. 그 놈 마음 보 한 번 고약타.
운영진의 눈물겨운 노력은 9일 사당역 1번출구쪽에서 29명(여산휴게소에서 한명 탑승)의 산행자를
만나게 했다.
시작이야 어쨋든 서로의 표정들이 대견해 하는 모습이다. 종성이는 하얀 유니폼에 면도까지
깨끗이 하고 만두 보따리를 갖고 반갑게 찾아왔다. 임대장이 왜 왔는지 잘은 모르지만 이번
정기산행에 잔잔한 힘이 되었다. 독산동 친구는 치긴 두세마리에 17년산 호프를 출발선물로
사당벌에 내놓았다. 호방에서 하는 처음 무박산행이라 표현키 어려운 걱정은서로를 뭉치게 했다.
영익대장의 인사를 시작으로 무박산행의 시동을 걸었다. 중간저음, 단문, 폭팔음은 일 순간
버스안을 긴장시켰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양, 빈틈없음, 에프엠, 딱딱함이 그 이후의 인사소개로 희석되면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희순대장, 보상, 정임, 영순, 귀현... 버스 좌석순으로 인사가 계속되면서 어떻게
정기산행이 출발 할 수 있었는지 팔영산의 봉오리 만큼이나 아름답게 펼쳐졌다. 서로가 전화하고,
나 가면 너도 가야 되, 걱정이 꼭 가겠다는 의지로, 안면도를 찍고 사당으로, 참여가 무박산행의
궁굼증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며 우리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데웠다. 그간의 사정이야 어이둔둥
99퍼세트를 버리고 1퍼센트 가능성으로 왔다는 누구의 다짐은 가히 압권 이었다. 팔영산이 어쩌라고 ?
댁들을 오라 했오, 버스안의 윙윙거림은 아마 팔영산의 애교 같았다.
팬더의 공연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 까? 호방의 꼬리말이나,
그를 봐 왔던 그간의 경험으로 유추하듯이 생각하기에 참으로 난감하다.
무슨 실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여일곱시간이나 몸부림 쳐야 할 불쾌함을
그의 공연으로 잠시나마 잠재 울 수 있었기에 말 하는 것이다.
첫 성이 일등으로 입금을 시킨 것으로 맘 졸인 그간의 일은 이번 산행의 일등공신 이라나,
마땅이 줄 선물도 없는데 일정한 톤의 목소리는 감기는 눈꺼플을 계속 찌른다.
어렵게 잡은 기회를 잠만자고 가기에는 넘 무미건조한 것이 아니니 말이다.
잠깐의 취침시간까지 그는 계속해서 화두를 붙들고 버스안 토론의사회자로서 기여를 톡톡히 해주었다.
다섯시가 좀 못 되어 팔영산 공영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어스름 검은 어둠은 아직 얼굴을
분간 할 수 없었고 누군가 헤드랜턴 찾기도 하지만 좀 있으면 밝아진다는 주장에 김밥만 입에
서둘러 넣었다.
요즘들어 지방이 생촌이라는 선입견과는 다르게 산행입구 주차장들이 크고, 화장실은 현대식으로
잘 지어져 있어 등산객을 여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어서 계속 놀라고 있다. 고대산 갔을 때도
그렇고 지방의 획기적인 발전에 고마움을 전한다.
설 들었던 잠을 서둘러 깨운지라 행동거지가 다들 느리다. 일부는 버스 밖에서 꼼지락 거리고,
대다수는 안에서 준비에 열중 이었다. 달은 보이지 않고 바람은 새벽일지라도 차갑지다 않다.
청량한 공기만이 무박의 찌부둥함을 씻어준다.
귀현대장의 발걸음은 따르는 선두그룹을 재촉하여 능가사 가는 쪽으로 급하게 줄달음 친다.
생소함, 어두움, 재촉, 새벽녘, 등은 여유를 빼앗는다. 앞 선 동행을 따라 습관처럼 발을
옮기는 것이고 길따라 심어진 고추가 생뚱맞게 느껴진다.
새벽산행에서는 부지불식간에 주위 풍광이 들어온다. 멀리 숲이 보이고 길 주위에는 공사중이다.
굴삭기도 한 대 보이고 아마 산행입구를 관광지로써 모양을 준비 하는 것 같았다. 능가사 문을
예의를 갖추어 들어가는 데 앞 몇몇은 합장의 예를 갖춘다.
절을 빠져나오며 본격적인 산행 길이다.
팔영산은 고흥군 점암면에 있으며 608미터의 나즈막한 8개의 봉우리로 솟아 난 암릉산이란다.
우리네 육감으로 느껴지는 것들로는 참 모든 것이 웰빙스럽다. 붉은 빛깔의
황토색 토양을 눈으로 먹고, 바람에 사각거리는 대나무 숲의 잎들이 계속 이어지니 영혼으로 먹고,
빨려 들 듯한 등산로는 몸으로 먹고, 느껴지는 기가 예사롭지가 않다. 대나무 숲이 특히 정겹다.
바람에 흔들리는 보드라움, 선비 같은 절개, 흔하지 않는 고결함이 산행의 품격을 높인다.
고요함 속에서 밤새 이슬을 머금은 돌에서 나는 다닥, 다닥 탁, 도독, 도도톡, 계속해서 인간의 밟음에
경쾌한 효과음을 낸다.
사람이 가는 길에 작은 돌들이 모여져 있어 신기한데 진흙길이어야 함에도 밟아야 할 바닥이 유독
작은 돌들로 차있다. 돌들이 인간의 몸땡이를 지고 아우성 치는 듯, 작은 몸짓으로 어쩔수 없는 듯,
하지만 예쁘다. 이슬을 머금어 싱그러운 돌. 지금도 눈에 그려진다.
오를 때 풍광을 보는 눈 보다는 귀로 많이 듣는다. 지금이 어느 땐고하니, 유월 초라 오르는 내내
오묘한 새의 지저귐은 청량산의 오케스트라라, 새종류도 악기 만큼이나 다양타. 짝하여 부르는
소리는 숲의 역사를 가르친다. 서울근교 산행에서 이렇게 다양한 새소리를 들어 본적이 없다.
살아있는 숲, 세월의 무게와 깊이를 함께 지켜야 된다고 선생이 따로 없다. 남도에 숲은 포근하다.
삼사십분 오르니 흔들바위라는 쉼터이자 갈림 길 표지가 있다. 1령의 유영봉과 2령의 성주봉의
중간 이라 날씨가 사나우면 1령을 건너뛰어 2령으로 바로 가야 한다고 귀현대장이 귀뜸을 한다.
오늘은 유영봉으로 고우고우다.
남도와 접해있어 바람이 쎌 때는 몸도 날려 위험 하다는 것이었다. 바다에 접한 산들의 공통점인
모양이다. 시키는 이는 없어도 베낭을 풀러 오이를 꺼낸다. 폭탄이 누구고, 셔터도 터지고,
119를 불러달라고
구여움도 떨고, 줄달음쳐 온 조급함을 이제야 내려놓으니 땀을 씻으며 미소를 보인다. 정님이왔다
가자 !. 참 야속타. 이 것이 산행본능이다. 여기까지 경험적으로 볼 때 팔영산이 암릉산이라고
하는 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고 절규 하지만 10분정도 전진하여 마당바위에서 1령인 유영봉을 본 후로는 사정이
다르다. 옳다. 팔영산은 암릉산이다. 내가 보기에 너무나 가파른 암봉이어서 우회로 뿐이
없는 줄 알았는데 올라야 할 1봉인 것이었다.
마당바위에서 아름답다는 다도해의 남도 풍광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팔영산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날씨가 좋으면 대마도까지 보인다지만 우리의 시력은 남의 나라까지 욕심을 낼 수가 없다.
저멀리 구름과 섞인 바다를 뒤로하고 아름다운 다도해의 검은 숲, 섬을 세었다. 다섯.여섯...
세다 흥미를 잃는다. 흐릿한 구름때문이다.
모내기가 끝난 상큼한 논들이 얼굴에 들어온다. 내 온몸을 비출 듯 맑은 논바닥은 바다와
대조적으로 싱그럽다.
마당바위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과일 도시락을 내민다. 방울토마토, 포도, 오이, 수박, 모양도
사람따라 다양타. 꼭지가 따진 예쁜 모습을, 주렁주렁 달린 그대로의 모습으로, 얼음으로 모양내고,
직사각형의 세련된 미끈함으로, 산행에 없어서는 아니될 필수품으로 자리잡아 간다. 준비한
분들의 수고와 나눔을 베푸는 액션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잠시 식탐을 하는 사이앞에 보이는
도저히 올라 갈 수 없겠다는 유영봉으로 출발을 외친다. 어떻게? .....
비빌은 여기에 있었다. 위험 구간구간 마다 사다리, 로프, 철제난간이 있어 바위 오를 때 외치던 든든한
확보를 해준다. 부랴보!
유영봉의 7부능선에서 잠시 다도해 풍광을 보았다. 흐릿한 시야가 피곤을 불러 소용돌이치는
구름의 스피드함에 잠시 황홀을 내준다
바닥에서 솟구치며 능선 꼭지점을 때리고 사라졌다. 어느새 가느다란 긴 광목천으로
산길을 놓고 엎어 버린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수많은 그림들을 산세에 물들인다.
그 구름에 몸을 싣고 날아보자, 현란한 스피드에 눈멀고, 다양한 모양에 정신 혼미 하니,
땅이 그립구나..
단발마 성으로 아낙좀 챙기라 날리다. 사력을 다해 올라야 할 봉이다. 강원도의 팔봉이나, 관악산의
팔봉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보통 오르며 정상이 보이는데 이 곳은 두단계를 전진하고서야 이게
정상인가 할 정도로 보이지가 안는다.
사람은 모를때 더욱 긴장 한다지만 짧게 주는 암벽에서의 엔돌핀이다.
정상에 오르니 구름이 어느새 산세를 점령하여 봉만 띄웠다. 가까이에 있는 것들이 소중타.
보이지가 안으니 옹기종기 모여 곡차로 안부를 전하니 보람이라..
우리는 이렇게 1봉을 시작으로 8봉까지 전진에 전진을 계속 했다. 구름과 벗하여 목소리로 전하고
팬더와 총무는 볼륨을 높였다. 대한민국.. 왠 산에서.. 그러나 그곳에서는 어울렸다. 오를 때 긴장하고 정상에서 잠시 풀고..
이렇게 소리치고 까불며 끝봉인 적취봉을 마지막으로 하산길에 올랐다.
봉 하나하나 마다 같음과 다름은 운무의 차이다. 새벽 다섯시에 시작하여 오전 10시 정도에
공영주차장에 도착했으니 4시간 반가량이 소요되었다. 하산길이 좀 지루 하다는데
잠깐 거리를 보니 3.9 킬로미터로 한시간 가량 소요 된다고 한다. 길게 길게 내려 온다. 내려 온다고만
한다면 무박의 피곤과 겹쳐 지루함이 더하다. 나무가 울창하여 숲의 통로가 계속되고 시멘트 길을
두번 가로 지르고 왼편으로 휴양림 표지판도 보였지만 버스로의 회기 본능이 강하여 건성건성이다.
하산의 서두름은 동행한 벗들도 뒤로하고 앞으로 내 빼게 된다. 대우도 졸려서
줄달음 쳤다는데 지루함의 핑게 이리라. 사진을 보니 창계와 짝하여 우는 듯 잠자는 듯 헤깔 릴
정도의 작품사진 하나 있던데..
기분전환을 위하여 가까이 살펴보자. 바닥은 진흙길에 동그란 돌이 함께 있어 미끄럽기가 몸을 밀치고
밀친다. 어디서 쫓아 왔는지 오를 때와 다른 새들의 군무와 연주가 계속되고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감싼다. 이름모를 키작은 나뭇잎들이 오솔길을 에워싸고 키큰 측백나무 숲은 작은
시베리아 숲을 연상시킨다. 담을 대신하던 담장나무는 옆으로 엮기던데 이곳 측백나무는
하늘을 찌른다. 종자가 다른지 환경이 다른지, 측백나무 숲을 지나니 작은 개울과 함께 계속 내려온다.
앞에 가는이 불러 홍삼사탕 하나 나누니 말 길을 트고 뒤에 오는이 짝하자고 또 나누고 지루함도
순간이라. 막바지 고여있는 작은 물에 발 담그고 대우표 조껍데기 샤브트 한잔에 긴장을 녹인다.
어느 덧 산길을 끝으로 갑자기 뻥뚫린 하늘이 시원하고 대나무 숲이 받긴다. 깨끗한 시멘트 길 옆으로
복분자, 칡넝쿨, 찔레꽃이 키를 다투니 열매 또 한 풍성함으로 길가는 이들에 선물한다. 땅풀인 뱀딸기
빨갛게 길숲을 가득 채우니 너나 없이 맛 보았나보다.
시골집이 그렇듯이 앞마당 귀퉁이에 똥개 집 정다이 있고, 하품하는 진돗개는 희고 꼬랑지를 세운다.
허름한 단층의 스레트 기와집은 태양보며 자란 상추 키에 어울린다. 멍우대 아담히 군집을 이루고,
허물어지는 담장에 기댄 촌부의 아버지는 선한 눈에 허리춤의 바지가 풍성하다. 아..
살아계시면 나의 아버지가 저러하건데 눈시울이 울컥한다. 앞마당 작은 비닐하우스 비새고,
서너개 버려진 양파는 주인을 잃어 딩구는구나. 농번기 집안의 무료함이 절절하다.
녹도항 가는 길 - 1
시원한 센달과 반바지, 어느새 여인의 향기가 느껴지는 벗들이 소풍기념으로 버스에서 소란스럽다.
잘 지어진 화장실 덕분에 패션을 바꾸고, 여유를 만끽한다. 항구가 있고,
적당한 배고픔은 시장이 반찬이라고 버스안을 춤추게 한다. 쨘. 쨘. 쨘짜라---
뽕짝의 경쾌함이 발 흔들고, 몸 달구고, 잔을 든다.
스피드하게 스피드하게 버스는 남도의 풍광을 몸으로 밀치며 손살같이 달렸다. 하늘은 파랗고 들판은
초록으로 시원하다. 아, 시골의 정취를 가르는 이 스피드함, 죽인다. 산 밑으로 저수지가 보인다.
집을 에워싼 대나무를 지나니 방금 갈아 정리한 비옥한 밭은 이불과 같다. 또 저수지를 지나치고,
물이 풍족하면 농사에 최고가 아닌가! 먹지도 안았는데 배부름이라. 고추나무 열병하듯 줄지어 있고,
양파와 마늘이 길가를 채운다. 달리며 보여지는 모 낸 논의 시원함이 농부의 삶을 부럽게 한다.
멀리보면 동산을 지나 단층집 군락이 아늑하고, 키큰 미루나무 구름을 낚는다.
남도의 전체가 풍족해 보인다. 저곳에 어머니 살 던 집이 그림처럼 느껴진다. 형, 누나, 모기불에
수제비 먹고, 밤 깊은 이슬이 피부에 스며 들 때까지 한없이 한없이 앞 마당을 지켰던 순수함이
지금 몸서리치게 그립다.
빵하는 소리에 시선을 일으키니 녹도항의 시장이라, 사람들이 분주하다. 고기 비늘벗겨 말려놓고,
구리빛 얼굴의 할머니가 눈짓을 한다. 한바구니 만원, 이만원 받던거 만원이란다. 차에는
붕어빵장수가 생뚱맞게한다. 왠 항구에 붕어빵이라! 서대,잔대, 가오리, 농어, 붕장어, 낙지가 있고,
갑오징어 물이 검다.
장어탕이 준비되었다 하여 서둘러 들어서니 벌써 자리를 잡고 있다. 꼬막이 먼저 나오는데
달랑 하얀 조개다. 까보니 물이 새고 시커멍타, 자연그대로가 좋다지만 현지에서 먹는 맛으로
먹어볼까나, 까서 얌념간장 살짝 언져놓고 실파 한두개 놓이면 그게 꼬막 맛 아니야! 투정을
하다보니 꼬막이 다 비었네, 입맛을 다시며 저쪽에 있나 탐하려는데 탕이 놓였다. 아나고탕인
모양이다. 붕장어, 참장어, 뭐 이렇게 말하는데 내 상식으로는 그냥 아나고 탕인 것이다.
빨갛고추 몇개있어 혀에 불내고 채썰은 아기배추는 씹는 맛을 더하고, 동그란 장어는 살이 녹는다.
바로 이맛이야,
여기저기 리필리필 하는것을 보니 남도의 음심맛이 꽤나 소문대로다. 총무의 익살이 깨소금이다.
걸죽한 남도 사투리가 주방을 넘나들며 웃움이 만발한다.
소록도 가는 길 - 1배부르니 소록도 행이라.
어린시절 우리에게 다가온 문둥병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 했던가, 울면 문둥이가 잡아간다고
그런 부모님들의 말씀에 혹시라도 얼마나 노심초사 하며 그런 사람들과의 조우가 없기를 바라며
눈물을 그쳤는가, 빠삐용에서 보았던 그 기억이 지금까지 각인되어 몸서리 쳐지는데,
앞 서서 귀현대장이 나를 따르라 부른다. 이런 것 들을 미리 알고 꼭 관광시키어
소록도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섬의 아늑함이 여느섬과 같다고 태양이 내려쬐는
아스팔트 길에 우리를 떠민다.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녹도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소록도에 내리니 소백산 입구와 단촐하기가 흡사하다. 바다물이
출렁리는 것만 빼고는 경비초소에 몇명이 들어가는 차를 정리하고 일반인의 출입은 자유롭다.
들어서며 섬 산길을 아스팔트가 깔려있어 올라가는 길이고 열대풍의 야자수나무가 제법 크게
자라있다. 집들이 길따라 요소요소에 자리잡고 있으며 돌로 쌓은 받침대에 길게 늘어진 이끼가 세월의
두께를 말해준다. 집마다 텅 빈것이 이방인에 감추는 것인지 이네들의 삶을 알 길이 없다.
울타리에 활발한 닭들만이 살아있음을 웅변한다. 세월에 씻기어 다듬어진 가로수며, 길가의 풀들이
가지런하다. 처음 소록도를 밟는 손님들의 움직임 말고는 모든 것이 감추어 진 듯 침묵이 흐른다.
나중에 들은 얘기 지만 비어있는 집은 이 곳 병원 종사자 가족들의 집이라 낮에는 비어있다하여
이해가 되었다.
초입의 조그마한 언덕을 넘으니 병원건물 입구로 해안을 따라 아스팔트 길이 계속 이어졌다.
원불교 교당을 지나치고, 알수없는 집들을 지나치고, 경비초소를 넘으며 바다가 보인다. 시골의
읍내같은 아담 하지만 쓸쓸한 해변, 어디서 떠밀려 왔는지 농약치는 농기계 바지선 하나만이 방치되어 있다.
소록도를 경유하여 거금도를 잇는다는 덩치 큰 다리의 골격만이 오른 편 바다저쪽으로 웅장하다.
찌는듯한 태양열과 산행후의 춘곤증은 발걸음을 천근만근으로 붙들고 정신은 혼미하다.
앞 쪽에서 조그만 노인용 전기스쿠터를 타고 할머니들 셋이 자신있는 표정으로 쌩하고 지나간다.
표정이 밝다.
핸들을 잡은 손마디는 없지만 삶에 욕심이 없고 현실에 잘 적응하여 살아 왔노라고 살며시 말한다.
병원 본건물을 지나치면 환자들이 사는 동네로 일반인 출입이 제한 되었고 멀리 큰 성당이 보인다.
끼고 우회전하니 공원이라 한다. 수억원짜리 정원수가 럭셔리 하게 있다는 공원을 끝으로
소록도 여행을 마감 했다. 1917년 일제시대때부터 조성하여 대만과 일본에서 나무들을 공수하여
가꾸었다고 하니 환자나 그 관계자분들의 노고와 고생에 새삼 명복을 빈다. 세월이 흘러
현재 환자와 병원관계자 합쳐 약 2천여명이 소록도에서 생활한다고 하며 마늘, 유자를 생산하고,
물고기는 잡지 않는다고 한다. 다리가 경유하는 중이니 섬인 운명도 수명이 꺼져 가겠다. 공원을
구경하는 벗들을 두고 몇몇은 아래 쉼터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한 20분 쉬었다. 봉사하러 오는 분들,
학생들, 일반인들, 병원 관계자들이 분주히 방문하는 모습들이 투영된다.
1신간 반정도를 내어 소록도를 경험했다.
혹시나 하는 께름찍으로 길의 경계를 쉬 넘지 않았는데 귀현대장의 의무감은 소록도도 함께 할 수있는
소중한 우리의 이웃이라는 마무리로 떠나는 배에 몸을 실었다.
녹도항의 맛 - 1
미경씨가 녹도항 수산집 여주인과 열씸히 작업 중이다. 해삼. 흑삼, 갑오징어, 간재미, 도다리, 낙지,
꽃게, 박하지, 광어, 소라, 기타 큰 물고기들, 희순과 그 일행은 세발낙지 사냥에 열중이다.
검지 손가락에 낙지를 말아 입술로 ?m는다. 아.. 쩍쩍 달라 붙는 빨판을 이빨로 제압하며
혀로 정리한다. 달려 들어 나도 다리 한마리 얻어 물었다. 찝질한 것이 입 안 볼에 달라 붙는다.
짜식, 힘도 쎄지 하는데 영순은 소리없이 강하게 계속 살찐 다리 잘라 입에 넣는다. 소리없이 강하다.
와! 만원에 낙지 네마리, 하옇튼 메인은 낙지다. 미경이는 홍삼을 찍어 오도독 오도독 호랑이가 녹도항을 씹게 했다.
나는 처음으로 간재미에 목숨을 걸었다. 맛나니까. 밖은 세찬 바닷바람에 먼지가 날리고 우리
일행들은 아지트를 찾느라항구를 휘 젓는다. 방파제 시멘트 계단에 옹기종기 자리잡고,
일부는 앉을 자리를 찾아 헤메이는데 둘셋 짝하여 피곤한 몸을 잠시 다스린다. 간재미 만원에 세마리,
주인이 투정거린다. 이문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떼서 큰 것으로 세마리 주세요
호기를 부리는데 미경이가 홍삼은 내가 써비스 하려고 해 한다. 참 이쁘다. 기부한다는데
난 집에 가져 가려나 그렇게 정성스럽게 눈썰미를 부리나 했는데 다 우리 벗들을 먹이려
했다니 감사감사.
귀경
6시간 올라 갈 길이다.
석양이지면 가슴이 애리 듯 형용 할 수 없는 마술이 가슴을 감싼다.
노래방 소리가 몸을 흔들지라도 귀경길의 속마음은 누구나 그러하리, 할머니가 왜 서둘러 싸리문을 닫았는지... 어제 서둘러 나왔던 집이 마술과 연결이 된다.
부산갈매기 집나가 계속 노래해도 마술과 견줄 수 는 없는 것이다.
야화, 숨어우는 바람소리, 7080의 노래를 중음으로 까는 이 있다. 누굴까?
희끗희끗한 머리 섞여 있고, 꼭 두 세 곡 시키는 이 없어도 부른다. 내 멋이니까! 컬러가 일정하여 들을수록 된장 맛이다.
암벽에서 멋부리고...
긴시간이다.
밤비는 계속 내리고, 집에서 급한 호출이 마음 불안 하지만 이미 업질러진 물, 숨을 곳이 없다.
귀경의 풍속도는 이렇게 혼돈이다. 뛰는게 뛰는것이 아닌 것이다.
그림자 드리운 얼굴들이 나의 얼굴인 것이다.
호랑이에서 처음 무막산행을 큰 탈없이 마쳤다.
마음졸여 리딩한 희순,귀현,영익,영순,보상대장님들과
항께한 스물넷 벗들에게 선물해요. 500 한 여름밤 축제에서 만나길....
6.15. 서울에서 팔영산 후기..
장정 스물 아홉이 먹어야 할 양으로 5-6만원이면 써도 넘 하지, 그런중에 희순과 정님이가 조우
하더니 경비의 차대를 셈하고, 좀 더 쓰지 한다. 총무가 덩치값을 하는가 보다. 그래서
갑오징어가 더해지고 해서 십이삼마원으로 방파제 계단 게릴라 횟집에서 호산의 건아들이
잔을 들었다. 홍삼, 낙지, 갑오징어, 간재미, 초고추장, 바닷바람, 앨콜,게눈 감추듯 비우고
입맛을 다시며 버스로 갔다. 맛으로 치면 꿀맛이다. 초고추장의 빨갛 침을 흥분시키고,
오도독 오도독 해삼이 씹히고, 낙지가 이빨사이에 끼이고, 간재미가 잘근잘근 볼륨을 준다.
갑오징어 이빨을 팅기고, 오가피의 향이 목젖을 애무한다.
첫댓글 좋은곳을 다녀왔네요. 그리고 좋은 산행후기 글 까지 내가 다녀온듯 생감있는 글 감사드립니다.
팔자들어가는 산이 많이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