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 )( )씨는 이비인후과에서 수술을 받고 우리 과로 오신 남자분이었다. 후두암으로 성대를 제거하고 작은 관을 하나 목에 갖고 계셨다. 후두암 말기로 이미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분이셨다. 오랜 병마와의 싸움으로 짜증도 많이 나실 텐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으니 더 화가 나시는 것 같았다. 물과 공기는 꼭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늘 사용할 수 있어서 소중함을 잊기 쉽다. 목소리도 그와 같다. 말이란 정말 편한 도구이다. 말의 내용을 일일이 써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신세대들은 인터넷 채팅이나 문자메시지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니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환자분은 작은 수첩을 옆에 두고 필요한 말을 적어서 보여주는 필담을 하고 계셨다. 볼펜으로 크게 써서 보여주고, 반응을 확인하고 하다보니 2-3분이면 할 말이 적어도 10분은 걸리는 것 같았다. 중간중간 말을 하던 때의 습관으로 입술을 움직이면서 상대방을 쳐다보시는데 이쪽은 들리지 않으니 서로 답답해하였다. 1인실이라 작은 TV가 병실에 있었다. 회진을 가면 대개 보호자들은 켜 놓았던 TV나 라디오를 줄이고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 분의 부인은 무심하게 TV를 계속 보고 계셨다. 내가 환자 상태에 대해 설명을 하면, 마치 남의 이야기 듣듯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목에 꽂힌 작은 관은 숨쉬는 기도를 확보하기 위해 중요하였다. 관을 오랫동안 빼 두면 그 부위가 막힐 수가 있어서 소독을 위해 빼더라도, 바로 여분의 관으로 교체하였다. 그런데 이 분은 무언가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이 관을 손으로 잡아 빼시곤 하였다. 밤에는 당직의사 팀이 우루루 달려와서 비상사태를 해결하였다. 이 분이 관을 빼는 시간은 주로 밤이었다. 나는 환자 분이 좀 그러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큰 병원에서 야간당직을 하면서 일차적으로 환자와 만나는 의사들은 인턴, 레지던트 선생님이다. 미국처럼 다음 날 근무를 면제해주면 좋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응급실 근무가 아니면 대개 그렇지 못하다. 정말 상황이 좋지 않아서 가 보아야 할 환자도 많은데 이렇게 화풀이로 비상사태를 만들면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환자 분에게 무심한 보호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쨌든 호스피스 의사이므로 무언가 환자 분에게 정서적인 지지를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담당 레지던트 선생님에게 나보다는 시간이 있으니 필담을 자주 나누어달라고 부탁했다. 레지던트 선생님이 시간을 많이 보내주었던 것 같았다.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회진 때 보면 수첩이 많이 넘어가 있었다. 그리고 레지던트 선생님이 알려 준 바에 따르면 자신하고 필담한 것 말고 별로 수첩이 넘어가는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일인실에서 경제적 풍요는 누리고 계셨지만 정작 주위의 관심은 부족하신 것 같았다.
어느 날 오후 회진이었다. 기분이 좋아보이셔서, 무슨 좋은 일 있으시냐고 물어보았다. 이 분은 수첩에다 크게 “젊은 친구들이 내 기분을 이해해주니 행복하다”고 쓰셨다. 행복... 사실 이 분을 뵈면서 행복이란 단어를 연결시켜 보지 못했다. 말기 암에, 목소리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상황, 행복을 어디에서 찾으셨을까? 그리고 젊은 친구들이란 누구일까? 환자 분께서는 나와 레지던트 선생을 가리키면서 젊은 친구란 우리들임을 알려주셨다. 행복하시다니 다행이었다. 그리고 모처럼 그 분의 미소를 보면서,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다. 담당 레지던트 선생님의 정성 덕분에 나까지 덩달아 그 분의 친구로 불려서 기분이 좋았고, 무언가 해 드린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분은 호흡곤란이 심해져서 진정제를 투여한 상태에서 주무시듯이 마지막을 맞으셨다. 후에 이 환자분의 치료를 담당하였던 다른 과 선생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병도 늦게 발견되었지만 중간에 치료도 한 번 누락되었다고 한다. 그때만 잘 다니셨어도 좀 더 사셨을 것이라며 안타까와하셨다. 왜 그렇게 치료를 받으러 오시지 않았냐고 묻자 부인과 그 환자분이 사이가 너무나 좋지 않다고 하였다. 환자분의 누님에게 들은 이야기이니, 부인의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부인이 환자분 재산을 부인 앞으로 명의를 다 돌려놓고, 얼른 돌아가시기만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가장 많이 도와주고 같은 편이 되어주어야 할 부부사이가 남보다도 못한 배신과 반목으로 얼룩져 있었다. 의사는 아무래도 자신이 돌보던 환자 분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부인에게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무관심 속에서 외롭게 죽어가던 환자 분을 생각하니 참으로 안됐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마저도 그 분을 그저 그런 신경질적인 환자로 취급하였더라면 그 분은 어땠을까. 모두 잠든 밤에 그 분이 관을 뺀 것이 주위의 관심을 끌어보겠다는 행동이 아니라, 정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자포자기의 심정 표현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분은 자신에게 시간을 할애하고 관심을 보여주었던 의료진에게서 작은 행복을 찾으셨고, 그 행복은 그 분이 삶의 마지막에서 느꼈던 유일한 즐거움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 이후로 환자 분이 부정적인 감정 표현을 많이 하시더라도 원래 그런 분이라는 마음 속의 꼬리표를 달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첫댓글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픈 환자들은 더욱 쓸쓸하고 외로운 모양입니다. 그들에게 따뜻한 관심은 작은 행복이 아니라 정말 큰 행복으로 다가 왔을듯 싶습니다. 서교수님의 따뜻한 관심이 참으로 감동있게 다가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