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림논단. 제861호, 2010. 6. 4(금)
아버지의 오래된 미래
말단 공무원 월급쟁이로 퇴임하셨던 아버지는 참 가난하게 사셨다. 허리가 휘어져라 농사지어도 허기를 면하기 힘든 집안 형편에 결혼을 하고 객지로 나와 살림을 난들 나눠줄 살림이라고는 이불 한 채와 솥단지가 고작이었단다. 오히려 봉급은 남은 부모형제들 배곯지 말라고 대부분 고향으로 보내고, 당신 먹을 양식은 몇 고개 산을 넘어 지고 오시곤 하셨단다.
살아계시면 일흔이 넘은 연세신데, 학교공부 마치고 결혼해서 늦게사 철들기 전까지는 아버지와 변변하게 대화라고는 없었다. 젊은 시절부터 겪은 고생담을 읊조리시면 그것은 단지 모두가 배곯았던 옛날이야기로 들릴 뿐이었다. 아버지께서 아들과의 대화에 서투신 이유도 있었겠지만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서 내 인생의 소중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지 않았던 탓이 컸다. 평생 일만 하고 고생만 하신 그런 아버지의 삶을 닮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 고생담의 귀결은 언제나 당신께서 한평생 몸으로 보여주신 검약이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삶을 꾸려오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였을 것이지만, 나에게는 가난과 싸우는 하나의 방법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가난하지 않다면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 아닌가? 누가 가난한 미래를 대비해서 검약을 몸에 익히라고 한다면 미래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있는 이가 어디 귀담아 들을 법한 소리인가. 단지 현실적 삶의 방편이라면 처지에 따라 당연히 그리될 일이다.
아버지의 검약습관이 새로운 눈으로 보이기 시작한 건 직장에서 퇴임한 후 사업을 시작하시고 난 후의 일이다. 업장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모두 아버지의 손을 일일이 거쳐 분류되었다. 병은 병대로, 캔은 캔대로 종이팩이며 작은 플라스틱 병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나누어 묶었다. 그렇게 묶인 재활용 쓰레기들이 자루에 담겨 차곡차곡 쌓였다. 화장실 쓰레기부터 모든 쓰레기가 한데 섞여 큰 통에 담겨지는데, 그것을 구분하고 재활용품을 가려내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지만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었다.
재활용품을 그렇게 모아둔 데서 돈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아두면 고물상에서 대가 없이 가져갔다. 물론 수거하는 고물상은 최소한 아버지의 호감을 얻어야 했다. 그날 그날 모아서 배출해도 분리수거되지 않느냐고 하면 정말 재활용이 될지 알 수 없으니 그렇게는 못 하시겠단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가 얻는 경제적인 이익이래야 종량제봉투 값을 얼마간 절약하는 것이었는데, 사람을 고용해서 해야 할 일이 허다한 업장에서 그 시간에 당신께서 움직이면 절약될 인건비를 생각하면 종량제봉투 가격을 절약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는 타산이 맞지 않는 일임이 분명했다.
아버지의 고생이 안타깝지만 필요한 일이기에 별 말을 않고 있다가 추운 겨울날 얼어서 엉겨붙은 쓰레기를 두고 씨름하시는 모습을 보고서야 말씀드렸다. 이런 날은 그냥 분리하지 마시라고.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종량제봉투 값이 문제가 아니다. 아깝지 않느냐. 이게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 줄 아느냐. 양심 없는 짓이다. 이렇게 아까운 것들을 그냥 버리는 세상은 망한다.”
눈이 번쩍 뜨였다. 이 말씀은 가난한 시대를 살아오신 분이 몸에 익힌 단순한 검약습관이 아니었다. 세계적 석학들이 책에서 어려운 용어로 산업문명의 위기를 통찰한 핵심에 닿아 있는 것이었다. 물질적 풍요의 부메랑으로 돌아온 오늘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인윤리를 넘어 대물윤리로까지 사회적 가치의 지평을 확장하는 데 있어 우리 부모님 세대들의 직관적 통찰이야말로 우리 세대의 오래된 미래다.
유영재(푸른산내들 정책국장)
첫댓글 공감합니다, 아버님의 오래된 미래에.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업장에서 나온 쓰레기 정리할 때 아버지가 제일 생각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