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에 이어서 계속됩니다-
6절,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지난주 말씀 요약> 지난주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보는 시각으로 나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외적으로는 세상에 살기 때문에 죄로 인하여 거무스럼할 수 있지만, 우리 마음의 중심, 영은 항상 주님을 찾고 갈망하고 회개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주님은 그 속사람으로 인하여 아름답게 보신다고 했습니다. 술람미는 자신에 대하여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뭐라고 해도 무너지지 않고 결국 솔로몬 왕의 신부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사탄이 검다고 검다고 하는 정죄에 계속 흔들리면 안됩니다. 그러면 우울증 걸립니다. 주님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신부 단장을 하고 있을 때 마침내 주님의 왕비와 같은 신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실제로 어머니의 아들들의 포도원에서 포도원지기를 하면서 강한 햇볕에 쬐여서 외모를 가꾸지 못하고 거무스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세상의 일들로 자기의 영적인 몸을 가꾸지 못하여 세상 것들로, 죄로 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신을 예루살렘 딸들에게 흘겨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흘겨보다” (히, 라아)는 보다, 바라보다, 조사하다의 뜻이 있으므로 거무스름하게 된 그를 자세히 조사하듯이 계속 바라본 것입니다 (미완료형). 영적으로는 무슨 죄를 지어 검게된 것인지 자세히 바라본 것입니다. 영어번역은 “stare at, look upon, gaze at”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사실 남들이 계속 쳐다보는 것은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한글성경은 대체로 “깔보다, 흘겨보다” 등의 해석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번역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세히 조사하듯 바라본 것은 정죄하고 판단하기 위함일 수 있습니다. 남을 그렇게 정죄하고 판단하기 위하여 조사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과 마찬가지로 아직 우리들은 모두 다 예비신부들입니다. 단장이 아직 덜된 상태입니다. 성숙되지 못한 어린 신부들인 것입니다. 그런 예비신부들에게 이것저것 문제를 삼아 티를 빼라, 들보를 빼라고 하면 안됩니다(마 7:5).
그렇게 바라보는 그들에게 술람미 여자는 거무스럼하게 된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① 포도원지기가 되었는데, 햇볕에 쬐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쬐다(히, 샤자프)라는 원어적 의미는 “보다, 응시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흘겨보다”와 단어는 다르지만 뜻은 같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너희들이 나를 계속 응시하여 보는 것처럼 햇볕에 계속 쬐였다는 뜻입니다.
조금 더 깊게 나아가면, 너희들이 나를 조사하듯이 계속 쳐다보면 내가 더 검게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계속 죄 있다고 검다고 한다면 정말로 그의 속사람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 흘겨보지 마! 이런 의미가 이 단어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언어유희입니다. 남을 계속 정죄하는 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속사람이 무너지면 정말 죄인되게 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두 번은 권면하지만 그 이후에는 제발 그냥 두세요. 그의 속사람이 살아있는 한 결국에는 주님의 신부가 됩니다 (레아, 라헬 예시)
[창세기 29: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② 포도원지기가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노하다” (히,니하루)는 불타다, 마르다의 뜻이 있으며 수동태이므로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불같이 노한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런 분노에 대하여 “열받았다”고 합니다. 남비 뚜껑이 열리듯이 “뚜껑이 열렸다”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분노의 영”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술람미 여인의 남자 형제들이 가진 영인 것입니다.
이 분노를 다스릴 줄 아는 자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자들은 수준이 낮은 자들인 것입니다.
▶ 그럼 왜, 그들이 그렇게 분노해서 술람미 여인을 포도원지기로 삼았을까요?
많은 추측이 있습니다.
옥스포드 주석을 참조해 본다면, “내 아버지의 아들들”이라고 하지 않고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마리아의 아들 목수“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막 6:3). 부친 요셉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그래서 술람미 여자의 친 아버지는 죽었고, 어머니는 같지만 다른 아버지가 낳은 아들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다른 아들 형제들이 노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술람미 여인에게 자기의 포도원이 있다(아 1:6, 8:12)는 사실에 근거하여, 당시에는 딸은 땅을 물려받지 못하는데 술람미는 아들이 없이 죽은 친 아버지로부터 포도원을 물려받았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기업을 물려받을 아버지의 아들들이 없으므로 기업을 분배받은 것과 같습니다 (민 27:7) 그래서 포도원 때문에 노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아무튼 어떤 이유로든 간에 술람미 여인은 어머니의 노한 아들들로 인하여 그들의 포도원을 지키는 포도원지기가 된 것입니다.
③ 이런 이유들로 그녀는 자기의 포도원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거무스럼하게 된 것입니다.
”포도원“은 아가서 전반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교회이며, 가꾸어야 할 마음의 포도원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을 ”포도원“으로 비유한 바 있습니다 (사 5:7)
술람미 여인은 신부인 교회를 상징하므로, 그녀는 마르다처럼 일만 하여 자신의 교회를 가꾸지 못한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의 포도원을 가꾸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성전을 가꾸는 것이 자기 사명인데,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에 것들로 검게 물든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 등을 통하여 자기의 영성을 기르지 못하고 남들에 의해서 세상 일의 영성 만을 따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붙잡아 죽도록 일만 시키고자 하는 바로의 영에 잡힌 것입니다. 야곱을 붙잡아 일만 시키고자 하는 라반의 영에 잡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일만 하면 안됩니다. 애굽 고센 땅에서 죽도록 일을 한 이스라엘이 되면 안됩니다. 여기서 출애굽해야 합니다.
술람미 여자도 이것을 알고 7절, 8절에서 개인적인 출애굽을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자기의 포도원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남에게 탓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라고 노래합니다. 원인은 남에게 있었지만 지키지 못한 책임을 자기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포도원을 지키지 못할 이유는 누구나 다가옵니다. 그러나 지키는 것은 자기의 일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영적인 일보다도 세상의 것에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달콤한 물을 먹게 하여 빠지게 합니다.
우리가 일도 세상속에서 사는 이상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포도원이 무너지는 것도 모르고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신을 영적으로 가꾸면서 일을 해야 합니다.
남이 나의 포도원을 다 가꾸도록 맡겨서도 안됩니다. 술람미 여인의 남자 형제들처럼 말입니다. 아가서에서 그들의 노래는 없습니다. 이것은 그들은 신부가 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속량함을 받은 자가 새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계 14:3)
반대로 종처럼 되어 내가 남의 것만 가꾸어서도 안됩니다. 남에게 불려 다니다 보면 자기 포도원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일만 쫓아 다니면 안됩니다.
유명한 부흥강사가 있습니다. 날마다 여기 저기 불려다니다보니 정작 자기가 맡은 교회는 돌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날 부흥회를 참석했던 다른 목사님이 그 부흥사의 교회를 방문했는데, 몇 명의 성도만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 했답니다. ”목사님의 교회부터 먼저 돌보세요!“
영적으로 무너지는 것은 자신도 잘 깨닫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조금씩 무너지는 것입니다. 마치 아 2:15절에 기록된 것처럼 작은 여우가 허는 것 같이 말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이것을 깨닫고,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이렇게 자신을 발견하는 것부터 출애굽은 시작됩니다.
물론 반드시 일을 안한다고 포도원이 그냥 지켜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일을 한다고 포도원을 못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모습이든 간에, 어디에 있든 간에 말씀과 기도, 찬송이 병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과의 교제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과의 교제가 일어나지 않았기에 영적으로 갈급한 심령이 된 것입니다. 이제 솔로몬을 찾아 나서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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