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맛있게 잘 만드는 식당은 도심에 있다. 그것도 큰 회사나 관공서가 밀집해 있는 곳 가까운 이면도로에 위치해 있다. 이게 평소 좋은 식당에 관한 나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값싸고 맛 좋은 음식을 점심으로 골라 먹는 직장인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고려해야 하는 식당의 주인들은 단골 손님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별 수 없이 맛있게, 그리고 비싸지 않은 음식을 내놓아야 장사가 될 건 정한 이치다. 서울의 충무로 뒷골목, 종로의 청진동 골목을 한번 생각해 보라.
그런데 내가 근무하는 직장에서 전체 직원의 회식 자리를 마련하고 장소를 알려줄 때마다 나는 짜증이 앞선다. 으레 '××가든'이기 때문이다. 직장이 도심에서 뚝 떨어진 곳에 있다는 핑계로 내남없이 다들 승용차로 출퇴근을 하는 터라(나는 차가 없다.), 전 직원의 회식 자리로 꼽는 첫 번째 조건이 주차 공간이 얼마나 넓으냐에 따른다. 그 집의 음식 맛이나 솜씨는 별개의 문제로 뒤쳐진다.
가든. 언제부터 정원이라는 이 단어가 '교외의 식당'이라는 의미로 전용되기 시작한 건지 알 수 없다. 하기야 경치도 좋고 공기도 맑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들며 정담을 나눌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리라. 그런데 대개 '가든'의 음식이란 게 청둥오리나 토종닭을 삶아내는 게 고작이다. 열에 아홉은 다 싸디싼 중국산 청둥오리요 수상한 토종닭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붕어 즙이 위장병에 효험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아내가 한번은 전남 화순의, 어느 수원지 가까운 곳에 있는 '곳집(푹 고아서 즙을 만드는 집이란 뜻)'에 부탁하여 붕어 즙 한 솥 십 오만 원어치를 주문하여 먹은 적이 있다. 항상 위궤양을 안고 사는 나를 위한 아내의 정성을 생각하여 나는 그걸 열심히 먹었지만, 그다지 효험이 있는 눈치가 아니었다.
수원지의 깨끗한 물에서 노는 붕어니 얼마나 그게 신선할 것이며, 따라서 몸에 이롭지 않겠는가 하는 내 믿음은 수필가인 낚시 도사 김 선생의 이야길 듣고 나서 허망하게 무너져 버렸다.
"그 붕어에 어디 수원지 출신이란 호적초본이라도 붙었나? 허허 참, 내가 알기론 여기저기 저수지나 댐에서 낚시꾼들이 마구잡이로 잡아온 붕어들을 한밤중에 그 수원지의 양식망 안에 하숙시켰다가, 수원지 붕어랍시고 손님들 눈앞에서 건져내는 그런 식이라네."
요즘 밀물처럼 수입되는 중국산 농산물, 수산물이 정신없이 넘쳐나는 판에 산수 좋고 공기 좋은 '가든'에서 순 국산 청둥오리나 토종닭이라고 믿는 사람이 바보일시 틀림없겠다. 양계장에서 가져온 중병아리들을 잠시 '가든' 근처의 닭장에다 가두고 기르면 그게 토종닭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는 아니지만 나는 '가든'의 그 질긴 오리고기·닭고기가 싫다. 찢어발기고, 씹고, 깨물어야 할 이가 부실하고 보니 도무지 질긴 그런 종류의 고기란 아예 고무줄을 씹는 맛이다. 우리 나라의 음식들은 하나같이 이가 차돌같이 단단한 사람들을 위한 것들뿐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 때마다 나는 스스로가 측은해진다.
가든. 이 말뜻은 이제 국어사전에 "교외에 있는, 질긴 닭·오리고기를 파는 식당"이라는 뜻이 새로이 첨가되어야 할 것 같다.
말의 오용(誤用)도 그게 계속 유행처럼 번지고 급기야 대중화하면 버젓한 정식 통용으로 변질될까 우려된다.
몇 해 전 티브이에서 본 일이다. 고등학생들이 어떤 연예 기획팀의 백댄서 모집에 응모하여 오디션을 통과하고 나자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득의 양양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너무너무 기뻐요. 이제 '공인'으로 인정받은 셈이니까요."
그들은 햇병아리 연예인으로 출발할 수 있게 된 기쁨을 그와 같이 당당하게 밝혔다. 연예인이 곧 공인이란다.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대마초를 상습적으로 피우다가 적발되거나, 자동차 운전 면허를 부정한 방법으로 발급 받다 들통나거나, 심지어 가수가 매니저와 은밀하게 찍은 낯뜨거운 비디오가 유출되어 온 세상이 시끄러워져서 문제의 가수가 기자회견을 할 때, 그들은 고개 숙여 말한다.
"공인으로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점… 국민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작년에는 오 양이 그랬고, 금년에는 백 양이 그랬다. 어떤 네티즌은 그 사건 이후 오 양 덕분에 우리 나라 인터넷 보급률이 급격히 높아졌고, 백 양 덕분에 우리 나라의 IT(information technology) 기술이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향상되었노라고 하였다. 인터넷을 통하여 문제의 비디오를 볼 수 있고, 또한 미국의 유료 사이트를 공짜로 열 수 있는 암호를 한국의 젊은 대학생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기어이 풀어내 전 국민에게 볼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이므로, 우리 나라를 인터넷 강국으로 만들어준 장본인은 사실 문제의 두 가수들이라는 논리였다.
하여튼 가수나 탤런트, 개그맨 같은 이들― 연예인들은 말썽을 일으키고 난 뒤 자책할 때만 '공인'을 절감하며 잘못을 눈물로 뉘우친다. 그들이 과연 공인(公人)일 것인가. 아마 그들은 "공(公)개적으로 대중 앞에서 활동하는 인(人)간"을 줄여서 공인이라고 자처하는 모양이다. 그러면 미국에서 돈방석에 앉은 코리안 특급이라 불리는 투수 박찬호도, 대도(大盜) 조세형도, 요즘 선정 일변도의 매스컴에서 여자보다 아름답다고 떠들어대는 트랜스젠더 하리수도 공인의 반열에 올려줌 직하다. 몇 해 전 <크라잉 게임>이란 영화에서 본 트랜스젠더의 실체에 관한 내 기억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가수란 본디 노래를 부르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최근에 이은미라는 진짜 실력 있는 라이브 가수가 우리 가요계의 비뚤어진 현실을 폭로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어느 방송국의 시사 프로그램에 가수 대 매니저와의 계약 서류라는 것이 노비 문서라고 표현되어 가수들의 분노를 산 일이 있다. 그들은 "우리는 동등한 관계다!"고 입을 모아 외쳤지만 그렇게 말해야 하는 자체가 왠지 공허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아닌게아니라 요즘의 젊은 가수들은 이은미의 지적대로 노래하기보다는 방송국의 구성작가가 써 준 대로 시시한 잡담이나 지껄이고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는 게 가수 고유의 활동인 것처럼 보여진다. 가수로서 정작 입으로 노래해야 할 자리에 서면, 마이크만 형식적으로 머리에 매달고 녹음된 자기 노래에 맞춰서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리며 보릿대 춤만 출 뿐인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인가. 바로 돈벌이를 위해서이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일 뿐이다.
본디 '공인'이란 그런 자들이 아니다. "국가 또는 사회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 공직(公職)에 있는 사람"이 공인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검사, 판사, 하다못해 시의원, 교통질서를 바로잡는 경찰, 우체국의 집배원, 전선을 지키는 우리의 젊은 병사들― 그들이야말로 참다운 공인이 아닐까.
하긴 모를 일이다. 오래 전에 '인사를 한다'는 말이 인사 청탁과 관련하여 상사에게 뇌물을 바친다는 뜻으로 쓰였듯이, 말의 오용이 보편화되고 대중화하여 공인의 개념이 나중에는 "범죄 혹은 비행을 저지른 연예인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로 바뀌게 될는지도.
첫댓글 국어사전에 "교외에 있는, 질긴 닭·오리고기를 파는 식당"이라는 뜻이 새로이 첨가되어야 할 것 같다.
죄지은 연예인이 나와 고개 숙이며 공인이라고 말할 때마다 아이코 싶었어요
선생님 글은 속이 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