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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우리 동네 소리꾼을 찾아라>를 찍으러 진도 소포리를 처음 갔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정말 '이런 동네도 있구나' 싶었다. 대파밭에서 <흥타령>을 멋지게 뽑아내는 하귀심씨, 장구를 뺏어들고 바로 장단을 넣는 그녀의 남편 조열환씨. 장보고 오다 길가에서 촬영팀을 만난 한 어머니는 <진도아리랑>을 몇 순배 돌리고 나서야 "워매 식구들 밥해줘야겄네" 하고 뛰어가는 풍경. 하도 '한 소리'하는 사람들이 많아 동네에 '계보'를 만들어야 할 지경이었다. <어머니 민요방>을 운영하는 한남례 할머니, 강강술래 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김연호 회장, 소포 걸군농악을 이끄는 조열환 회장. 그네들은 참 풍족한 자산을 갖고 있었다. 기회만 있으면 "우리 동네하고 굿 한번 하잔 말이요" 하면서 꼬시는 김병철 이장까지.
*지난주에 소포리 강강술래를 녹화했다. 공연하는 걸 보고 놀랐다. 장난이 아니었다. 빈 구석이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뀌미고 단장한 어머니들을 분장실에서 만났다. "일이 바쁠 것인디 언제 연습을 그렇게 하셨대요?" "하룻내 죽고살고 일하고 뻗쳐 죽겄는디 강강술래 연습하자고 모태자고 하먼 솔직히 머리 무겁제. 그란디 저녁내 연습하고 놀고 그라먼 집에 가기 싫어진당께" 하신다. "강강술래 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더 정이 깊제. 암만해도 한번이라도 더 보고 몸부대끼고 그라먼 안 그라겄어?" 하신다.
*농촌도 '情의 공동체'을 이야기하기 어렵게 돼 있다. 노인들만 남아있고, 놉 구하기 어렵고, 일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서 TV로 소일하고, 이래저래 감가상각비가 늘어나는 몸뚱어리 지키려면 병원도 드나들어야 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줄 공동 관심사나 마을의 이슈가 없다면 농촌 마을에 무슨 낙이 있을 터인가. 그런 마을에서 <남도문화제>에 출전한다거나 <신얼씨구학당>이나 <6시 내고향>이 찾아온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마을 공동의 관심사가 시작되고, 마을 일꾼들은 바빠진다.
*어제 <우리 동네 소리꾼을 찾아라> 촬영을 간 장흥 용산면 운주리(2005년 환경부 지정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일명 '쇠똥구리 마을')에서도 그런 희망을 보았다. 마을 어른들이 놀고 있는 동안 고한석 이장은 이리저리 부지런히 움직였다. 쇠똥구리를 최초 발견해 이렇게 '유명한' 마을이 되는데 일조한 이영동 어르신도, 부녀회장님의 움직임도 빨랐다. 거기에 강강술래 같은 공동체 놀이가 있으면 안성마춤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달된 모양은 아니었지만 강강술래 앞소리와 뒷소리가 제대로 살아있었다. 정맹순(68세) 어머니의 앞소리는 거미 똥꼬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거미줄 같았다. 뒷소리를 받는 어머니들도 충분히 '작품'이 될 것 같았다.
*우리가 뭔가 해주고 와야 하는데, 그런 마을에 가면 오히려 손님 대접을 받고 오기 일쑤다. 돼지머리에, 손수 만든 떡에, 상추쌈에, 수박에, 재래식 된장과 김치에, 푸지게 얻어먹고 왔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자연스레 마을 잔치가 펼쳐진다. 공동체라고 하는 것이 별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일어나 "아리아리랑"으로 엮이는 순간, 마을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미 '관계의 역전'도 시작되었다. 마을분들이 주체고 방송 촬영팀이 구경꾼이 돼 있는 그 '관계의 역전' 말이다. 주민들이 '굿보는 객체'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즐기는 주체'가 되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진정한 축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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