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가면)이란 한자로거짓 '가(假)' 낯 '면(面)'이니 가짜 얼굴이란 뜻인데 우리말로는 탈, 탈바가지, 초라니라 불려왔으나 현재는 일반적으로 '탈'이라 통칭되고 있다. 탈이란 말은 가면을 뜻할 뿐만아니라 [탈나다]의 말에서처럼 '뜻밖에 일어난 궂은일(변고), 몸에 생긴 병'을 뜻하기도 한다. 탈이란 또한 제 본디 얼굴과는 다른 형상의 '얼굴 가리개'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저 제 얼굴을 가리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니다. 탈을 씀으로써 본디의 얼굴과는 다른 인물이나 동물 또는 초자연적인 신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의 인격 내지는 신격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실상 우리 민족은 탈이란 것을 주변에 가까이 두기를 꺼려했었다. 장례식에서 쓴 방상씨는 물론이고 한 마을의 지킴이로 모셨던 탈들도 마을에서 좀 떨어진 당집 안에 둘 뿐 절대로 방안에 걸어 놓는다든가 하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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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다. 탈놀이가 끝나게 되면 어느 고장에서나 탈을 불태워 없앴는데 이것이 놀이의 마무리인 양 꼭 지켜져 왔다. 또한 탈에는 갖가지 액살이 잘 붙는 것이니 태워 버려야 한다는 것이 오랜 속신이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오래된 민족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기도하다. 현대인이 탈을 생각할 때는 장식적 조형물로서의 가치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민간 연극으로 어렵게 보존되고 있는 몇군데의 탈놀이들도 과거 지향적 문화유산으로 박제화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연극, 무용, 영화 사전"(한국예술사전IV, 편찬위원회, 대한민국예술원,1985)의 '가면(假面)' 항목이 탈에 대한 국내외의해석을 적절하게 요약하였다. 가면은 얼굴을 가려 변장이나 방호, 호신등의 특정한 목적과 용도로 쓰이며 또한 동물, 초자연적인 존재를 표현하는 가장성을 갖는다. 넓은 의미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방한, 방독, 방호적인 측면까지 포함시키고는 있으나 대개의 경우는 토속적, 연극적 가면을 뜻하며 상징과 표정 두가지 요소로 환원되는 조형 예술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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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탈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해학'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탈들이 대개 무서운 표정을 한 신이나 토템을 표현해 공포감과 경외감을 주는 반면, 우리나라 탈의 경우는 전반적으로 웃거나 놀란 표정을 짓고 있어 인간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우리 탈은 한국적인 표정과 용모가 잘 나타나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역(役)에 따른 인물의 개성도 잘 표현되어 있으며, 특히 하회탈의 선비, 양반, 각시, 중, 백정 등에 나타난 조각수법은 우리나라 나무 탈 중 걸작에 속한다. 탈은 그 자체가 훌륭한 조형미술품일 뿐 아니라 여러가지 상징성을 지닌 역사적 유물이다. 옛날 사람들은 탈을 씀으로써 진짜 그 힘과 영(靈)이 자신에게 깃든다고 믿어, 재앙과 병을 가져오는 악신이나 역신(疫神)을 쫓으려 할 때는 그보다 더 무섭고 힘이 있는 가면을 쓰고 쫓아 버려야 한다고 여겼다. 한국탈은 몇몇 신성시되는 탈(창귀씨탈, 놋도리탈, 장군탈, 소미씨)을 제외하고는 놀이에 사용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전국에 골고루 퍼져 있는 탈놀이들은 예능적인 면이 두드러지지만 액을 막고 복을 기원하는 민간 신앙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한국탈은 놀이를 하는데 편하게 제작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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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바가지나 종이, 나무 등으로 만들어 가볍고, 탈보(헝겁)와 노끈을 탈 뒤쪽에 붙여 놀이꾼의 머리 뒤쪽을 가리고, 쉽게 쓰고 벗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 눈을 크게 뚫어 놀이꾼의 시야를 넓혔고, 천을 두툼하게 이마에 대고 탈을 씀으로써 놀이를 할 때 탈이 벗겨지는 것을 막고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런 탈 자체의 특징은 탈놀이의 춤사위 폭이 크고, 껑충 뛰어오르는 등 역동적이고 신명나는 탈놀이를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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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탈은 과장되어, 코는 삐딱하고 눈꼬리는 사납게 찢어져 있는가 하면, 입이 비뚤어져 있는 경우가 흔하다. 언청이탈, 문둥이탈, 옴탈과 같이 얼굴이 특이하거나, 혹이 나 있고, 이가 드러나 있으며, 이마가 넓고 주름이 많아서 각 부위의 비례가 맞지 않는 탈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도 사자탈이나 원숭이탈이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듯이 모든 탈은 인간적이다. 탈은 거의 타원형이지만, 바가지탈은 원형에 가깝고 나무탈과 종이탈에는 장방형, 역사다리꼴, 역삼각형도 있으며, 가죽탈처럼 모가 난 경우도 있다. 우리 조각품이 평면적인 것과는 달리 가죽탈을 제외하면 입체감이 두드러진다. 눈은 대체로 크고 동그랗거나 치켜 뜨고 있으며, 코의 경우 젊은 남성탈은 지나치게 크게 과장 되어 있고, 여성탈은 콧대가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거나 굽어 있다. 입꼬리가 위로 치켜져 해학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밑으로 축 처져 불만스러운 모습을 짓는 것도 있다. 언청이와 입비뚤이 등 병신스러운 모양을 하거나, 아랫입술이 윗입술을 덮고 있어 심술궂은 모양을 하고 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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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탈도 있다. 귀는 대부분 없지만 산대탈이나 오광대탈에는 귀가 있다. 동래와 수영의 들놀음[야류]탈에는 귀가 특히 과장 되어 있다. 통영오광대의 양반탈은 턱이 없고, 하회탈은 턱이 분리되어 있어 움직임에 따라 턱이 열리고 닫히며 웃는 표정과 화난 표정을 나타낼 수 있다. 탈의 고정성을 뛰어넘은 것이라고 하겠다. 한편, 색상은 대체로 원색적이고 강렬하다. 탈놀이가 야간에 장작불 아래에서 행해지므로 강렬한 색채가 아니면 표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탈의 원색들은 신분계층에 따라 인물의 성격을 규정하기도 하지만, 남녀노소에 따라서 성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늙은이 탈은 검고 어두우며, 젊은이 탈은 붉고 밝으며, 젊은 여성의 탈은 흰색이 많다. 색상은 방위와 계절을 나타내기도 한다. 검은색은 죽음의 계절인 겨울과 북쪽을, 붉은색은 생산의 계절인 여름과 남쪽을 뜻한다. 늙은이 탈이 검은색이고 젊은이 탈이 붉은색인 것은 겨울과 여름의 계절적 상징과 관련되어 있다. 탈춤에서 보이는 노소의 극중 싸움에서 늙은이가 지고 젊은이가 이기는 것은, 싸움굿에서 여름이 겨울을 물리치고 승리함으로써 풍요를 비는 주술적 의미이기도 하다. 탈의 성격 표현은, 인물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만들어 놓고 극중 행동을 통하여 어긋난 면을 폭로하는 경우와, 처음부터 인물의 부정적 성격을 형상화하여 풍자하는 경우가 있다. 하회의 양반탈은 반듯한 양반의 인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나, 극중 행위와 말은 양반답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 허위를 폭로한다. 반대로 입이 비뚤어지고 턱이 뾰족하며 얼굴색이 검붉은 초랭이탈에는 신분적 한계가 드러나 있지만, 그 한계와 제약을 뛰어넘어 양반의 허위를 비판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하회탈은 용모 행위를 어긋나게 함으로써 인물의 성격을 풍자하는 효과를 올리는 것이다. 기타 대부분의 탈은 생김새가 극중 성격을 드러낸다. 양반의 바보스러움과 병신스러움을 우스꽝스럽게 나타내기 위하여 언청이와 문둥이 등으로 형상화하고, 노승의 허위를 풍자하기 위하여 검은 얼굴에 파리똥이 덕지덕지 앉은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탈의 형상에 이미 극중인물의 성격이 희화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들놀음의 말뚝이탈은 남성의 성기모양의 코가 이마에서 입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이는 건강한 성생활을 즐기는 민중의식의 반영이자 풍요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 표현이기도 하다. 탈의 색상에도 인물의 성격이 나타난다. 붉고 짙은 색은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누런 색은 바보스럽고 무능한 성격, 그리고 검고 어두운 색은 찌들리고 소외당한 인물의 성격을 나타낸다. 고성오광대의 홍백양반탈은 얼굴 좌우에 붉은색과 흰색을 칠하여 인물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하회탈은 보는 각도와 움직임에 따라서 표정이 바뀐다. 양반탈은 눈두덩과 광대뼈 등을 갈매기 모양으로 파서 아래위의 움직임에 따라, 초랭이탈은 입매를 좌우 상반되게 그려 좌우 움직임에 따라 화난 표정과 웃는 표정으로 바뀐다. 그리고 각시탈은 내려깐 눈과 정면을 응시하는 눈을 함께 조각함으로써 각시에 대한 사회적 제약과 이를 극복하려는 내면적인 의식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 탈에는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다. 사회가 변하면서 새로운 탈이생겨나기도 하고, 같은 탈이 다르게 형상화되기도 한다. 고려탈인 하회의 중탈은 색상이 밝고 호방한데, 조선의 중탈은 어둡고 찌들려 보인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와 불교를 탄압하던 조선의 시대상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