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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을 축복하며 죽음도 고뇌해야만 하는 야누스의 인생
인간 오정구
나는 어려부터 속된 기풍에 적합하지 않은 성품으로 세속적인 기풍이나
분위기에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 타고난 본성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억지
로 고칠 수가 없었다.
먹고 살기위해 공직의 조직생활에 뛰어 들었지만 사회생활이 내 뜻이나
성품과는 맞지 않았다. 마음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육신은 사회생활
속에 몸 닫고 있었지만 정신은 언제나 자연인으로 고집스럽게 숨 가쁘게
열심히 살아 왔다.
양심껏, 소신껏, 인간적인 교지(巧智)나 간교(奸巧), 권모술수를 쓰지 않
고 자연의 순수한 덕성을 지키며 깨끗하게, 속과 겉이 다르지 않게, 거짓
없이, 뻔뻔스럽지 않게, 최대한 자연 속에서 자연의 길을 따라, 그러나
더러운 속물의 사회에, 자연에 거스르지 않는 삶에 죽도록 고집스럽게 살
아 왔다. 그 결과 더 얻어야 할 것들을 얻지 못하고 조금 더 높은 지위에
올라 갈 수도 있었는데 올라가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는 결과물이 나의 인
생 성적표로 사회생활은 낙제와 실패인생이다.
그렇지만 나 자신은 부자연, 거짓, 위선, 간교, 표리부동, 쥐뿔만한 지위
를 차지하려고 조직 내의 경쟁자를 야비한 방법으로 죽여 자리를 차지 하
려는 더러운 속물, 돈 몇 푼에 개만도 못한 개에게 달라붙어 이득을 얻고
자 살아가는 개 이하의 犬生을 살아가고 있는 개만도 못한 불쌍한 죽음
앞에서조차 개 같은 삶을 지독하게 싫어했기 때문에 내 이름의 곧을 貞자
처럼 곧게 살아 왔다.
불확실하게 남아있는 코앞의 인생 앞에서까지 개 같은 꼴로, 개 인생으로
종치고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아서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아가
야지 어디 개같이 살아서야 사람이란 말인가. 그건 그냥 개다.
개는 개요, 사람은 사람이니 말이다.
개는 살아생전 주인을 위해 개의 할일을 다하고 사후에도 때론 다른 생명
체를 살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동물로 어떤 경우에는 웬만한 사람보다
나은 훌륭한 개도 있다.
어쩌다 주인 잘 못 만난 재수 없는 개는 주인의 배신으로 개죽음을 당하
여 못쓸 주인인간에게 음식이 되어버리는 재수 없는 개도 있지만 주인 잘
만난 개는 웬만한 사람보다도 호의호식하며 죽을 때도 사치스럽게 죽는
개도 있다.
어떤 인간은 생전에도, 죽어서도 인간은 인간 자신들만을 위한 너무도 복
잡한 인간들만의 의식, 격식을 꾀하다가 가혹한 세월 속에, 자연 속에 무
의미하게 인간다운 점하나 찍지 못하고 그냥 자연의 無로 돌아가기도 한
다.
그래도 개는 죽어 有化하게 마련이지만 인간은 살아생전에 뭐 그리 다른
생명체에게 잔인하고 도도하게 거들먹거리며 까불어 대는지, 그리하다 죽
으면 그 죽음이 자연 앞에 뭐 그리 위대한 즉음이라고 왜 그리도 죽음의
의식은 사람이 정해 놓은 사람만의 의식과 틀에 복잡하고 요란 야단법석
들인지.....
사람들은 주어진 남은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한다.
하늘이 준 정해 진 시간과 존재는 어느 한 시점에선, 또한 나/宇宙=미물
의 스케일 면에서 볼 때 그저 작은 점일 뿐이다.
또한 아주 오랜 후일에 먼발치에서 바라볼 때 그렇단 얘기이다.
아무리 살아생전에 위대한 인간이라도,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도 사람의
죽음은 하늘아래 그저 똑 같은 사람의 죽음 그 자체이지 특별한 죽음은
없다. 특별한 죽음이라고 떠들어 대는 인간은 그건 인간이 아니거나 미친
놈이다.
대통령을 지내고 종교인이며 노벨평화상까지 타고 죽은 김대중의 장례
비용이 국가 돈 20억 원이 들었다 한다. 장례식장에는 엄청난 양의 국화
들로 장례식장을 도배되었고 5일 동안 전국에서 국화 송이를 들고 모여
드는 조문객들의 숫자는 얼마나 많은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국민들이
조문하였다.
그런데 서울역 노숙자는 죽어 장례 치를 돈이 없어 역시 김대중 대통령의
장례비용처럼 국가가 대신 장례를 치러 주었다.
결국 노숙자에겐 죽어서도 국가의 빚을 남기고 죽은 쓸쓸한 노숙자의 죽
음도 있다.
대통령도 다 같은 대한민국사람의 죽음이고 똑 같은 국비로 모든 국민들
이 애도하는 국장으로 치러 죽은 육신은 국립묘지에 묻어 후세 사람들
에게 애국자의 이름으로 영원하게 기억되도록 하였으나 불쌍한 노숙자의
시신 앞에는 연고자 누구 하나 찾아오거나 슬퍼 해 주는 사람 하나 없는
쓸쓸한 장례식은 장례 치를 돈도 없어 국가에서 화장으로 태워 자연의 無
로 깨끗하고 조용하게 돌아가게 해 주는 장례식도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생전에 모든 인간의 욕구인 돈, 최고의 권력, 명예,
자존감, 자아실현까지 모두 다 인간이 갖고자 하는 모든 욕구를 다 성취
하고 죽은 사람은 과연 완벽, 초인이라고 할 것인가?
그렇다면 죽음을 앞 둔 마음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100%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완벽한 인간, 초인이었을까?
그렇게 인간으로 완벽하게 살다 죽음을 감지하고 죽음의 문턱에서, 곧 저
승의 세계로 떠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생각은 과연 어떠하였
을까?
이승에서의 가진 돈, 이승에서 누렸던 막강한 권력, 명예, 세인의 존경심
을 다 버리고 훌훌 털고 떠나고자 하는 마음은 정말 떠나기가 몸부림치게
싫었을 것이며 말 그대로 죽기보다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똑같은 죽음 앞에 선 노숙자의 죽기 전 마음의 심정은 어
떠하였을까? 살아생전에 돈 한 푼 없는 세상에서 헐벗고 굶주려 부자 집
개만도 못하게 살아가며 명예나 권력은 커녕 남들에게 인간 이하의 멸시
를 받으며 살아 왔던 이승을 하직하고 저승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그
노숙자의 마음은 과연 어떠하였을까? 가진 것 하나 없고 버릴 것 하나 없
으며 헐벗고 굶주리며 살아생전의 인간들의 멸시에 종을 치고 저승으로
가야하는 마음은 가진 자가 떠나는 마음과는 정 반대의 마음이었을 것이
다.
쥐뿔도 가진 것도 미련도 명예도 권력도 없었으니 죽음으로 가는 길은 차
라리 행복에 가까워 말 그대로 살기보다 싫었으니 저승세계로의 가는 길
은 행복의 꿈을 꾸며 가는 길이었으며 또한 가진 것 하나 없으니 남길 것
도 없어 억울하지도 않았으며 미련 없는 이승이었으니 뭐 그리 이승에의
미련이 있었을까?
힘들었던 이승보다는 차라리 저승세계가 더 낳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며
가진 자의 이승세계로 하직하는 마음과는 정 반대로 그 죽음은 하늘과 땅
의 차이이었으리라.
신은 비록 살아생전에 앞의 兩者를 불공평한 삶을 주셨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정반대의 공평의 지혜를 내려 주셨다.
참으로 이승에서의 삶은 가혹하였지만 저승으로 가는 길만큼은 신은 평등
한 배려를 하신 것 같다.
하늘은 대공무사(大公無私)하여 하늘은 모든 조화의 힘을 사사롭게 쓰지
않으며 또한 하늘의 원리가 만사만물(萬事萬物)에 스스로 엄연하게 나타
나게 마련이다.
인간의 잘 낮거나 못 낮거나 가진 자나 없는 자와 벌레든 식물이건 모든
생명체는 죽도록 창조하였으니 신은 위대하고 공평하다.
그렇다면 김대중 대통령과 노숙자의 살아생전의 삶 그리고 사후의 죽음은
어떤 의미와 차이가 있을까?
과연 살아생전의 대통령은 신의 잣대에 의한 하늘아래 부끄럼 한 점 없이
똑 바로 인간의 삶을 살았던 인간 대통령인가?
또한 신의 뜻에 반하지 아니하였고 하늘 아래 양심은 부끄럽지 아니하였
으며 얼마나 국민 앞에 깨끗하였는가?
답은 하늘과 본인의 양심만이 안다.
그리고 노벨평화상을 타고 대통령을 지냈으며 한 종교인이기도 했던 김대
중은 과연 하늘과 하느님 앞에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 하였고 최고의 정치
인으로서 하늘을 속이지 않았으며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며 자
기 양심에 거리낌 없이 당당한 사람이었던가?
몇 년 전 대통령 되기 전의 김대중은 2번의 대통령 선거에 떨어져 T.V
생중계로 전 국민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는 정치를 안 하겠다고 정
계 은퇴를 선언하는 방송을 전 국민은 지켜봤는데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정치판으로 돌아와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는 전 국민을 상대로 두 가지 거짓말(거짓말 정계은퇴와 거짓 눈물)을
하였는데도 국민들은 대통령으로 뽑아 주었다.
몇 년 전 미국에 Water Gate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의 장본인은
Nixon 대통령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큰 사건이었다. 대통령직에서 물
러 나야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닉슨이 거짓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도청
하였다고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고 도청 안 했다고 거짓말을 하였기 때문
이다.
미국사람들은 거짓말을 제일 싫어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많고 눈
물에 약하며 거짓말을 나쁘거나 큰 문제로 생각을 하지 않는 국민성 때문
에 쉽게 잊어버려 대통령으로 뽑아 준 것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짓말을 뭐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죄악 시 하지 않는 의식구조를 갖고 있는 것 같다.
폭행, 사기, 도둑질은 범죄로 생각하지만 거짓말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
는다는 의식구조다. 이는 동서양인 들의 의식구조 차이로 대통령이나 국
회의원 선거에서 거짓말 잘 하는 정치인을 뽑아 주면 국가와 국민에게 어
떤 결과로 이어 지는지 선거역사를 돌이켜 보면 그 폐해를 수도 없이 겪
어 봐서 알 텐데 거짓말을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잊어 버
린다. 예나 지금이나 얄팍한 거짓정치인의 감언이설, 조삼모사에 속아 뽑
아 주는데 결과는 부정, 부패, 온갖 비리로 국정을 망치고 국민을 힘들게
만드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계속 반복되고 있으니 이제는 국민들이 정신
반짝 차려 참 된 일꾼을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이건 노숙자건 하늘이 달아 준 양심의 기계가 있다.
지나간 역사도 못 밝히는 것을 하늘은 알고 인간의 양심은 속일 순 없다.
그렇다면 노숙자의 살아생전의 삶 그리고 사후의 죽음은 만인이 생각하는
말종의 개 같은 인생인가?
그것 역시 하늘이 알고 노숙자의 양심은 안다.
살아생전 무엇이 그렇게 길게 잡아 한평생의 불과 짧은 100년의 삶을 살
다 죽은 사람들인데 20억 원을 들인 화려한 장례식과 쓸쓸한 화장의 장
례비는 하늘과 땅의 차이를 만들어 놓았단 말인가?
그 당사자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 모두 그리고 나 역시 한 시대를
같이했던 것 하나만으로도 지독한 인연이 아닐 수 없어 한번 고뇌 해 본
다.
하늘과 땅은 영원히 존재하고 산천도 바뀌지 않는다. 산천의 풀과 나무는
하늘의 도리를 따라 서리나 이슬과 더불어 피어나고 시들기도 한다. 그러
나 만물의 영장인 사람만큼은 영원하지 않아 풀이나 나무처럼 시들었다가
다시 피어나질 않는다. 사람들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외쳐대고 인간 스스
로 주장하지만 한없이 약한 것이 인간으로서 따지고 보면 인간은 만물의
약장이요 허장이다.
신은 인간에게 너무 높은 지능과 지혜를 주셨다. 많은 지능과 지혜는 결
코 좋은 것만은 아니다. 높은 지능은 인간을 생각하게 만들어 인간은 죽
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즉 인지능력까지도 내려 주셨다. 그러나
다 죽어야 할 동식물들 중에 인간을 제외한 동물, 식물, 벌레들은 죽어야
한다는 인지능력을 내려 주지 않아 인간을 제외한 동식물들은 죽어야 한
다는 사실을 모르게(=인지 능력) 살도록 창조하셨다.
인간과 인간이하의 모든 생명체들의 길과 화의 양면성을 내포한 신의 공
평하고 위대한 천지창조의 원리이다.
게다가 인간들은 한술 더 떠서 신이 인간에게 내려 준 많은 지능과 지혜
를 신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고 오직 인간만을 위하고 인간에게 편리한 기
계, 물질, 약품을 멋대로 만들어버려 결과는 어느 한 면은 문명의 이기가
되어 인간에게 편리한 면도 있지만 다른 한 면은 그 문명의 이기가 사람
을 죽이는 문명의 해기가 됨은 물론이고 인간의 편리함을 방해하는 모든
생명체들까지도 무차별로 죽여 지구와 인간의 자연 생태계를 파괴와 교란
으로 천지를 오염시키며 지구의 대자연을 무너뜨려 결국은 지구의 종말을
고할 수도 있게 만들어 버렸다.
결국 인간은 인간자신을 위하여 꾀를 부린 모든 행위가 결과적으로 得도
있지만 失은 더 많아 인간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꼴이 되었음을 뻔히 알
면서도 그래도 우리 인간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인간은 신이 내려 주
신 쥐뿔만한 지능으로 계속 줄기차게 꾀를 부려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 지
구의 종말을 향하여 노력하는 모순과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천재 시인 이상은 말하였다. ·어느 시대에도 절망한다. 절망은 기교를 낳
고 기교는 다시 절망을 낳는다· 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지구의 탄생은 인간이 한 것이 아니며 신의 뜻에 의해 탄생하였건만 인간
은 끊임없이 머리를 써 인간 소유물이 아닌 지구를 파괴시켜 나간다.
신의 뜻에 내려준 인간의 높은 지능과 지혜로 인간은 죽어야 한다는 사실
과 미래는 불확실하다는 불안감의 인지력까지 내어 주어 공포와 불안에
떨게 만들어 놓아 인간은 한없이 약한 동물이기에 인간들은 별의 별 종교
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모자라 종교의 파까지도 요란 복잡하게
만들어 각자의 자기 입맛에 맡는 종교를 갖으면서 종교의 높은 자리를 차
지 하려 경쟁하는 그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종교가 없어 알 길이 없다.
정교이든 사이비든 정신을 종교에 의지하여 매달려 빠져 살아생전엔 잘
살게 해달라며 빌고 죽은 후에 까지도 좋은 세상에 가게 해 달라고 비는
것도 모자라 아예 永生해 달라고 빌면서 안위의 목표가 되어버린 게 종교
의 현실이다.
그러나 자기가 믿는 종교가 지 아무리 자기가 생각하기에 위대하고 훌륭
한 종교라고 착각하거나 말거나 하늘과 신은 신경도 안 쓰고 하늘과 신의
아래이다. 하늘과 신의 뜻에 벗어남은 어떤 종교이든 잘못 된 종교이다.
법률이 상위의 헌법에 위배되면 위헌이 되듯이 지 아무리 자기 종교가 신
성하고 위대하다고 떠들어대도 대자연의 하늘과 신의 뜻을 벗어 날 수 없
으며 벗어나면 사이비이다.
종교를 갖고 있는 믿는 자들이 상대적으로 종교가 없거나 믿음이 없는 자
에 대하여 종교를 갖고 있고 믿는 것 자체로 위대하거나 우월 할 순 없으
며 모든 종교의 윗 단계인 하늘은 보호 해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을 하늘 아래 신의 뜻에 따라 대공무사(大公無私) 하
게 창조하여 신은 개인의 이기주의만을 위해 힘을 쓰지 않는다.
예기(禮記)에도 나와 있다. 하늘이나 땅, 해나 달은 절대로 사사롭게 있
지 않다. 하늘은 지공무사(至公無私)하며 말없이 만물을 生, 育, 化, 成
하고 또 영원히 운행. 섭리 한다. 논어에서 공자가 말 하였다 `하늘은 말
이 없다. 그러면서도 사시(四時)를 운행하고, 만물을 낳아 키운다` 이러
한 경지가 바로 지성무식(至誠無息)이고 지성은 하늘의 도(天之道)이기도
하다.
종교가 있든 없든 잘 살게 해 달라고 빌든 말든 신은 절대 관여하지 않는
다.
하늘과 신은 하늘과 하느님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사랑한
다.
성철스님은 절에 찾아와 잘 되게 기도 해 달라고 하는 사람은 만나주지도
않고 절대 기도 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진실한 종교와 종교인은 욕심에
가득 찬 쓰레기 속물의 인간과는 절대 결탁하지 않는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한 점 없이 인간 양심껏 살아가고 행함은 어느 종
교 이상이다. 겉으로 시끄럽고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것은 알맹이가 없고
사실은 속과 다르다. 그리고 진실에 반(反)하는 믿음, 그리고 요란하게
박수치고 찬송하는 것이 사실과 다를 때는 하늘은 알아 벌을 내리고 사이
비 판정을 내린다.
인간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은 모두 다 하늘 아래이며 하늘이
모든 것을 다 정확하게 알고 내려다보며 진실대로 판단하고 처리한다.
속과 겉이 다른 외형의 사실의 틀은 위선이다.
요즘 들어 국내는 물론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살인
사건과 성(性)과 관련된 범죄가 발생하는데 살인사건은 더욱 잔인하고 흉
폭 해지고 있으며 성범죄는 동물들에게도 찾아 볼 수 없는 근친상간은 물
론이고 부모자식 간의 폐륜의 성범죄행위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런 살인과 성범죄의 시작과 원인은 모두 돈과 女性으로 이 둘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그 주체는 모두 남자라는 것이다.
오늘은 마침 부활절로 공교롭게도 오늘 국제뉴스에 밀라노의 대주교가 아
동과 성관계 혐의로 사제 직무정지 되었다고 하니 性문제는 聖職者도 예
외가 없으니 이 세상이 막장으로 달려가는 것 같아 서글프다.
몇 년 전 뉴스에 속과 겉이 다르게 우아한 미소를 지으면서, 인간의 탈을
쓴 어느 한 목사는 오 갈 데 없는 어린소녀를 집으로 유인하여 수년간
성폭행을 한 목사가 있었으니 그는 인간세계의 지구의 종말이 왔음을
그 목사는 스스로 몸소 증명도 하였건만 자기 자신의 인간종말론을 속
으로 감춘 채 그럴듯한 종말론을 떠들어 대는 인간 말종으로 벌레만도 못
하거늘 이는 희대의 똥파리이며 차라리 죽어 쓰레기 더미에 묻혀 다른 생
명체를 살리는 거름이라도 되는 것이 살아생전의 지은 죄를 속죄하는 길
이 아닐까 한다.
차라리 신앙이 없거나 노숙자이었으면 덜 분노 하였을 것을.
하늘의 Black Box는 인간 세상의 모든 사실을 하늘 위에서 다 내려다
보고 정확하게 녹화하고 기록한다.
하늘과 하느님을 속일 순 없으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하늘과 하나님을 상
대로 거짓말과 사기를 치고 인간적인 교지(巧智)나 간교(奸巧)로 살아가
는 불쌍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이 이 세상에는 참으로 무지하게 널려 있음
은 인간세계 최고의 비극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어리석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이라면 나으련만. 쯧쯧쯧 혀를 몇 번을, 언
제까지 차야 할지, 차는 혀 바닥은 어느 세상에서 언제나 멈추려나.
Bob Dylan의 Blow`in the wind 라는 노래가 바람 속에 들려오는 것
같다.
차라리 속의 양심이 자신 없으면 바깥 외형의 지랄이라도 하지 말 것을
왜 그리 겉은 그럴듯하게 투드려 대는 혓바닥은 시끄럽고 낮 짝은 뻔뻔한
가? 도가 튼 도사의 수준이니 그는 고급 사기꾼이다.
뻔뻔한 탈 쓴 인간의 철면피의 낮 가죽은 몇 겹이고 얼마나 깊은지 측량
이라도 해 보고 싶다.
우리 인생은 이승에서 단 한 번의 기껏해야 100년 세월의 쇼 인생 초대
장을 받고 살아간다. 그 초대장은 1인 1매이며 딱 1번이며 2번 발급하지
않으며 재수는 절대 없다. 하지만 100년 세월 동안의 살아생전의 모든 인
간의 행위는 2번이고 1000 번이건 할 수 있지만 이승에서의 초대는 앵콜
이 없는 단 1번으로 이루어는 인생의 결과물(結果物)이다.
이승의 초대권의 암표는 신에게 부탁해도 절대 못 구한다.
인간이 만들어 낸 부활이란 말은 인간만의 사전에 수록되어 있으며 또한
부활은 실체가 없으며 부활한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 부활한 인간은 그저
인간이 만들어 낸 말일 수밖에 없다.
하늘의 뜻에 반(反)하고 벗어나는 말과 뜻은 말이 아니며 사기행위이다.
그리고 하늘을 노엽게 한다.
예수든 석가든 모든 것이 무조건 하늘 아래이며 하늘의 지시사항이다.
그리고 사후 세계는 왕복차표가 없어 아무도 갔다 온 사람이 없으므로 당
연이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 사후세계를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사람은 사기꾼이며 하늘의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有生必有死. 생명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 즉 모든 생명체는 반드
시 죽게 마련이며 살아 숨 쉬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는 뜻이다. 이는 무서
운 신의 뜻이고 명령이며 모든 생명체들 중 인간에게만 느끼고 알 수 있
도록 신은 창조하였으니 인간만이 가장 큰 공포심을 느끼는 인지력으로서
어느 누구도 해결 할 수 없으며 비껴 갈 수 없는 영겁의 공포다.
모든 인간들은 물론 동물이건 식물이건 간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죽
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태어나서 살아 있는 생명체는 반드시 죽어야만 하
고 또 인간에게만 죽음의 인지력까지 내어 주어 인간의 생과 사는 참으로
골치가 아프다.
죽음은 인간에게 내려진 가장 무섭고 공포스럽지만 꼭 치러야 할 가장 큰
운명이며 숙제이다.
도연명(陶淵明-歸去來辭의 저자)은 이미 천오백년 전에 냉철하게 죽음과
대결했다.
우선 도연명은 죽음을 본연의 實在로 보았다. 따라서 삶은 잠시 현상계
(現象界-감각으로 느낄 수 있거나 경험 할 수 있는 세계, 형이하의 세계.
객체계)인 이승에 몸담고 나그네로 기우(寄寓)하고 다시 본집(=眞宅)인
無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참삶(眞生)은 영원한 죽음의 세계이고, 현상계
는 속세의 역여(逆旅=여관)이다. 모든 사람은 속세를 영원한 곳으로 착각
하고 오직 이승의 삶을 탐내고 또 나아가서는 이승의 名利榮達을 얻고자
아귀다툼을 한다. 또 만물은 도를 따라 物化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인
간은 현실적 속세, 이욕과 추악(醜惡)에 엉킨 타락세계에서 악착같이 발
버둥 칠 것이 아니라 무위자연이라고 하는 참 세상에 몸을 맡기고 유유자
적(悠悠自適)하면 된다.
나그네가 객지에서 묵었다가 일을 다 보고 떠나듯, 사람들도 길어야 백
년 잠시 이승에 들렀다가 다시 본집(本宅)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으로 陶淵
明 은 63세 나이의 죽기 전에 마지막 작품으로 자기 손으로 지은 自祭文
에 그런 내용으로 지어놓고 이승을 떴다. 자제문 맨 끝에서 그는 너무나
솔직히 털어 놓았다.
살기 힘들었던 나의 삶 이었다!
앞으로의 죽음의 세상은 어떨런지?·(死後之何 嗚呼哀哉)
우리는 솔직히 끝말에서 약한 인간!
역시 죽음 앞에 겁을 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절규와 공포를 공감하리라.
그처럼 도연명은 약한 인간적 시인이었다. 약한 인간은 도연명시인만이
아니고 살아 숨 쉬고 있는 모든 인간들이다.
인생을 보고 느끼고 삶을 겪은 그대로 적는 시인이었다.
더욱이 모순을 모순대로 털어놓는 문학가였다.
영원히 눈을 감으며 나는 참으로 해탈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고 신일 것이다. 도연명은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솔직히 죽음
앞에 겁을 냈던 것이다.
인간들이여! 시작의 인간탄생으로 지금 이승에서의 살아 숨을 쉬지만 인
간의 끝은 이승에서의 초대장을 반납하고 숨을 거두는 운명의 야누스
(Janus)이거늘 어찌 할 것인가? 그렇다고 지금까지 실컷 살아온 인생을
반납하고 취소할 건가?
이미 태어난 인생취소는 없다. 인생은 지금까지 살아 온 인생 + 나머지
마저 살다 죽으면 완성된다.
살아 숨 쉴 때의 Well Being도 중요하지만 언젠가는 가야 할 Well
Dying도 또한 중요하다. 앞으로 나의 죽음의 운명은 과연 순탄 할 것이지
그리고 언제 도래 할 것이며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때의 마음은 어떠하며
무슨 생각을 하며 눈을 감을는지?
Sisyphus는 제우스신의 노여움을 사서 그 벌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
까지 밀어 올려야만 했다. 그런데 정상에 바위를 올리자마자 바위는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시지프스는 바위를 다시 정상으로 올리는 일을 끝
없이 반복해야만 했다. 인간의 운명은 Sisyphus의 운명과도 같은 것 이
거늘 신은 우리 인간을 이마에 땀을 흘리고 부지런히 손발을 움직이면서
일을 하여야만 하고 또한 다른 생명체나 동식물에게는 부여하지 않은 오
직 인간에게만 두뇌를 끊임없이 쓰도록 하여 무병장수하도록 창조하셨다
(이를 어기면 치매에 걸리고 치매에 걸리는 동물은 오직 인간뿐).
신은 식물은 땅에 뿌리를 박고(=植物) 움직이면 죽게 창조하였고 동물은
움직이도록 만들어(=動物) 움직이지 않으면 병들고 죽게 창조하였다.
그런 간단한 원리를 무시하고 인간들은 신이 내려주신 지능으로 신의 뜻
에 어긋나게 꾀를 부려 기계를 만들어 기계가 인간의 움직임을 대신하도
록 하여 편리함을 추구하지만 결과적으로 인간은 動物이 되지 못해 不動
物이 되어 병들고 죽음에 이를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그 기계에
의해 병들고 죽어가고 있다(=自業自得). 그뿐 아니라 아무 죄 없는 다른
생명체들마저 죽여 생태계는 파괴되고 생명의 근원인 하늘, 공기, 땅, 지
하까지 오염되게 만들어 인간 스스로 공기를 오염 시켜 마시면서 병에 걸
리니 오염된 공기를 전기로 하는 공기청정기를 만들고 물도 인간 스스로
오염시켜 병에 걸리니 오염된 물을 정수하는 정수기를 만들고 그래도 병
에 걸리면 병을 치료하는 약까지도 만드는 어리석은 우(遇)를 반복한다.
이는 인간 스스로가 자연을 오염시켜 오염된 자연에 병에 들어 인간이 만
든 기기에 노예가 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얽혀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간들
의 행태다.
요즘 젊은 가정주부들에게는 옛날에 없던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하는 가
하면 그것도 모자라 아무 죄 없는 어린자식들까지 데리고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끔직한 사건들이 종종 일어나는 뉴스가 들려온다.
감기처럼 생기는 우울증의 이유는 뻔하다.
첫 번째 이유는 현대인은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여 스스로 모든 의식주를
편리위주로 살아가고 있다.
태초에 우리 인류는 자연의 숲에서 태어나 모든 衣食住를 자연의 숲에서
해결하였다.
依는 필요한 부분만 가리거나 추우면 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입고 살았으
며 食은 불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生것을 통째로 먹었는데 불을 발견
후서부터 火食을 하여 수명이 200년 이하로 급 전락하고 의사가 존재하게
되었다. 불로 익혀서 먹지 않으면 적어도 125년 이상을 살 수가 있다.
125살의 한계 수명의 근거는 인간 뇌의 발육기간을 근거로 산출한 수치로
인간의 뇌는 25살 까지 성장한다. 일반적으로 한계수명은 성장기의
5배이므로 25 x 5 =125년 이라는 기간이 산출되는 것으로 척추동물 모두
가 이 등식의 적용을 받는다.(하루야미 시게오의 뇌 내 혁명 중에서)
住는 동굴 속이나 숲 속에서 생활하며 맨발로 걷고 뛰어 다녀 발바닥의
경혈을 자극하는데 손발의 경혈을 자극하면 내장이 강해져 병이 없는 건
강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대인들의 의식주는 어떤가?
인간은 자연을 떠나 산업화와 도시화로 지금의 衣食住는 인간의 편리성에
적합하게 진화과정을 통하여 편리한 생활만을 추구하여 편리 위주의 의식
주 속에서 안주(安住)하며 살아가고 있다.
依는 통풍이 잘 되는 면직물이나 모직물의 옷은 불편하여 입지 않고 빨래
나 다림질이 필요 없는 화학제품의 옷으로 피부를 통한 산소흡입과 노폐
물의 배설을 충분히 할 수가 없는데다 화학섬유의 옷은 피부를 약하게 하
여 조금만 찬바람을 쐬어도 감기에 잘 걸리게 되어있다.
食은 생것에 100%의 영양분이 들어 있는데 인간은 불로 익혀 생명을 없
애버린 양식(糧食)을 火食으로 만들어 먹는데 자연건강의 제1철칙이 `생
명이 없는 먹이는 생명의 양식이 될 수가 없다` 이다. 그리고 빨리 간편
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발암물질인 화학성분인 방부제, 식품첨가제, 착색제
를 넣어 만든 가공식을 만들어 먹는 것도 부족하여 더 맛있게 먹으려고
고열의 기름에 튀겨 스스로 발암물질의 음식으로 만들어 먹고 아예 그것
도 귀찮으면 간단하게 외식을 해버려 편리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住는 편리위주로 만들어진 아파트에는 냉난방 시설이 잘 되어있어 버튼
하나만 누르면 추위 더위 걱정 없는 세상에서 편하게 살게 되어있고 외출
할 때는 현관문 열고 엘리베이터 버튼 눌러 타고 내려가 주차장의 차를
몰고 나가는 편리한 생활을 하니 이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청소 빨래
설거지는 기계가 대신 해 주니 밥 먹고 하루 종일 할 일이 없게 되니 몸
뚱이는 살이 찌고 정신은 할 일이 없으니 자연 잡념이나 쓸데없는 부정적
인 생각에 사로잡혀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요즘 젊은 여자들은 편리한 세상에 물들어져 있어 힘든
고생을 안 하고 살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참아내는 인내력이 부족
하여 어렵고 힘든 시련이 닥치면 헤쳐 나갈 지혜는 물론 견뎌내는 힘도
부족하다. 모든 세상을 현관문을 닫아 버리고 폐쇄성의 아파트 속에서 한
세상을 살다보니 모든 일이 우울하기만 하여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어
뛰어 내리는 이유이다.
우울증에 걸린 젊은 주부들이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과를 찾는 우
울증환자들에게 의사들이 하는 첫 마디는 `일 하세요. 바쁘게 일하면 우
울증에 안 걸립니다` 라며 혼을 낸다.
바쁜 꿀벌은 슬퍼 할 시간이 없다. 꿀벌처럼 바쁘게 일하면 우울증에 걸
릴 시간조차 없다. 우울증은 너무 등 따뜻하고 배불러서 생기는 병이다.
세 번째 이유는 우리나라 국민의 주거형태인 아파트는 편하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사람의 70%가 사는 주거형태로 특히 젊은 주부들이 선호하는 아
파트는 건강을 심각하게 해친다는 연구결과를 일본의 시마네대학의 나카
오 데쯔야 교수가 발표하였다.
콘크리트에 사는 사람은 억압된 상태의 고통과 불평불만을 느끼고 불안
징후, 불안 초조하여 안절부절못하여 신경질적이고 분노를 느끼고 화를
내며 기력감퇴로 즐겁지 못하며 육체피로로 잠이 오지 않고 잠자리가 불
편하고 피로가 가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그러니 그와 같은 시
멘트의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귀찮고 불편하더라도 걷고 움직이고, 맛없더라도 자연식하고, 교통이 불
편하더라도 산과 숲 근처의 집에 살면서 산책, 등산하거나 땀 흘리고 바
쁘게 살면 몸과 마음에 아플 틈이 없어 건강해지고 우울증에 생길 겨를이
없다.
신은 動物인 우리 인간을 몸과 마음을 움직이라고 창조하여 땀을 흘려 일
하도록 명하였거늘 현대인들은 귀찮아하여 꾀를 무려 기계를 만들어 기계
가 사람의 몸을 움직이도록 하였다. 몸도 편하니 자연 마음도 편하여 질
수 밖에 없어 전에 없던 우울증에 걸리는 自業自得의 결과가 되었다.
신의 뜻을 거역하면 우리 인간은 시지프스의 운명과도 같은 것으로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 무거운 바위를 정상으로 올리는 일을 끝
없이 반복하는 영겁(永劫)의 형벌을 받는 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 나 자신은 살아 숨 쉬는 삶의 여유가 너무 많아 삶과 죽
음에 너무 깊숙하게 고뇌하지는 않았나 싶다. 또한 나의 그 고뇌어린 생
각의 글은 과연 보편성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으며 아니면 궤변이나
Paradox한 면은 없는지?
하늘의 운수로 이 세상의 한 시대를 같이 태어난 우리들은 지독한 인연으
로 함께 살아 숨 쉬면서 한번쯤 죽음을 고뇌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
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과연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도연명의 자제문은 저승으로 가는 죽음 앞에 겁을 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절규와 공포를 공감한 시였지만 그의 인류의 가장 위대한 불후의 명시인
歸去來辭에서 無爲自然, 安貧樂道, 悠悠自適의 세계를 노래하였다.
끝으로 귀거래사의 맨 끝말을 음미 해 보면서 이 글을 마친다.
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모름지기 천지조화의 원칙을 따라 죽음의
나라로 돌아가자! 또 천명을 감수 해 즐긴다면 그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
일 것이냐? 끝.
첫댓글 글 잘 읽었네 건강하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