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권에서 북쪽으로 약 250㎞ 떨어진 그린란드 일룰리사트 서해에서 한 남성이 빙산이 녹은 바닷길을 보트로 건너고 있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북극해의 해빙 속도가 빨라지면서 북극권 자원 개발과 항로 개척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매경DB]
"2050년의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막대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을 자랑하는 북극을 둘러싼 자원 쟁탈전이 열병처럼 번져가고, 줄어드는 얼음으로 새로운 항로가 열린다. 동토의 도로와 해협을 통한 운송 수단도 증가한다. 북극에 인접한 8개 국가는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 미국, 캐나다, 러시아, 덴마크,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에는 새로운 대도시가 생겨난다. 북극권은 기회의 땅이 된다." 미국 UCLA 로런스 C 스미스 교수가 예측한 미래 세상의 모습이다. 그가 처음 이 같은 주장을 내놓은 2010년대 초만 해도 '공상과학 소설'로 치부됐던 내용이지만 지금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항로가 열리고 있고, 북극 자원 개발도 본격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북극의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안보적인 가치도 조명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열강들의 패권 다툼도 본격화할 조짐이다. 오늘날 북극에 대한 관심은 거대한 빙산도 녹일 정도로 뜨겁다.
사진 확대
지난달 22일 노르웨이 북부 도시 트롬쇠에서 열린 북극 콘퍼런스 '2018년 북극 프런티어'는 북극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북위 69도에 위치해 '북극의 관문'으로 불리는 트롬쇠에 세계 35여 개국에서 3000여 명이 몰려들었다. 북극 프런티어는 '북극 서클(아이슬란드)' '로바니에미 프로세스(핀란드)'와 함께 세계 3대 북극 콘퍼런스 중 하나로 꼽힌다. 올해는 '북극의 연결성(Connecting to arctic)'을 주제로 북극과 비북극 국가를 긴밀하게 이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카렌 엘레만 덴마크 노르딕협력부 장관은 "북극은 더 연결될 필요가 있다"면서 "연결은 북극권 경제 발전의 중추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유럽 토착민인 사미족도 북극 개방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사미이사회 대표인 아사 라르손 블라인드는 "(북극을 둘러싸고) 국경을 초월한 협력은 북극의 성장과 결속을 가져올 것"이라며 "참가자가 늘어날수록 신뢰도가 높아지고 연결성이 향상되고 환경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미국, 러시아, 캐나다 등 북극 인접국과 함께 북극이사회(Arctic Council·AC)를 구성해 북극의 지속 가능한 개발을 모색해왔지만 비북극권 국가들에는 폐쇄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석유, 가스, 광물 등 북극 지역 내 천연자원 개발 가능성이 커지기 시작했고 북극해의 해빙과 함께 자원을 운송할 수 있는 북극항로도 열리면서 이제는 비북극권 국가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북극에는 전 세계 천연가스의 30%, 석유 13%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막대한 자원에 관심을 갖는 비북극권 국가들과 협력해 대규모 투자를 얻어내면 자연스럽게 인프라스트럭처가 구축되면서 북극권 주민들의 생활 수준도 향상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처럼 북극이 열리는 속도에 가장 빠르게 발맞추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다. 미국 민간연구기관 CNA연구소는 2005~2017년 중국이 북극권 국가에 투자한 금액이 1조4000억달러(약 1521조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이 중 인프라 투자에는 892억달러(약 97조원)가 투입됐다. 미국 구겐하임파트너스가 2030년까지 북극 지방 전체의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비용으로 추산한 1조달러(약 1087조원)의 약 10분의 1을 이미 중국의 원조로 충당한 것이다. 중국이 지금까지의 투자 규모를 유지한다면 북극에서 가장 큰 투자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 확대
중국의 북극 투자는 단기적으로 북극항로 개척을 통해 북미·유럽시장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장기적으로는 인프라 구축을 통해 석유, 천연가스 등 자원 확보와 관광사업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은 2013년 한국, 일본과 함께 북극이사회 옵서버 국가 지위를 획득하면서 북극 정책 결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중국의 포부는 북극 프런티어가 끝난 지 사흘 만에 공개된 중국의 북극정책 백서(북극백서)에서 가감 없이 드러났다. 중국이 지금까지 공공연히 현대판 실크로드 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북극권을 포함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적은 있지만 국가 차원의 구체적인 북극 전략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극백서에서 중국은 자신이 북극 문제의 이해당사자로서 북극권 국가들과 함께 '빙상 실크로드'를 구축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북극을 자신들의 세력권 안에 넣겠다는 야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최근에는 북극해를 관통하는 해저 데이터 케이블 건설 사업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북극 해저 데이터 케이블 사업은 현재 핀란드를 주축으로 러시아, 일본, 노르웨이가 참가해 진행하고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2020년 완공되면 유럽~도쿄 간 데이터 전송 속도가 현재보다 3배 이상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데이터 케이블 사업으로 물류 등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에서도 유럽과의 연결성을 향상시켜 일대일로를 안착시키려 하고 있다. 이처럼 직선거리상 3000㎞ 이상 떨어져 있음에도 중국이 북극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북극권 국가들의 숨겨진 계산이 있었다. 그중 가장 적극적으로 중국을 받아들인 국가는 러시아다. 러시아가 중국과 손잡은 가장 큰 이유는 북극에서의 영향력 확대다.
러시아는 북극이사회 회원국 8개 중 하나로 북극해에서의 자국 영유권을 강하게 주장해왔다. 그러나 캐나다, 덴마크 등 다른 회원국들이 러시아와 중첩되는 지역에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대립이 커졌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북극해 연안국들의 의사 결정을 제한해야만 자국의 북극해 영유권 크기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2008년 러시아는 북극정책 협력 대상국에서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북극이사회 주요 회원국을 제외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미국, 유럽연합(EU)의 대러 경제제재가 심화되면서 비북극권 국가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려는 러시아의 북극 개방정책은 더욱 강화됐다. 러시아는 2015년 북극 경제 프로젝트 발표에서 한국, 일본 등 북극이사회 옵서버 국가들과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중에서도 중국은 '우선 파트너'로 선정해 북극이사회 범위 내에서뿐만 아니라 양국 간 협력도 강화하겠다며 특별대우했다.
다른 북극권 국가들도 중국에 손을 내밀고 있다. 특히 자원이 풍부하지만 경제적으로 개발 여건이 부족한 국가들이 중국에 원조를 요청하고 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원개발로 경제 회복을 시도한 아이슬란드와 모국인 덴마크로부터의 자치권을 확대하려는 그린란드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아이슬란드에 중국인 상주 직원 수백 명을 파견하고 있으며 그린란드의 광산을 인수하는 등 이들의 요청에 다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과 무역, 안보 등 다른 분야에서 갈등을 빚는 미국도 중국의 북극 참여에는 유연한 입장이었다. 2013년 중국을 북극이사회 옵서버로 선정할 당시 찬성했던 유럽 국가들과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캐나다, 러시아가 대립하는 사이에서 미국은 조건부로 이를 용인했다. 대신 미국은 중국이 북극의 지속 가능한 개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처럼 중국에 우호적이기만 한 상황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의 북극백서 발표로 북극이 공공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빠르게 전환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과 북극 개발에 보조를 맞춰온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북극해 연안 군비를 강화하면서 북극 장악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옛 소련 시절 배치된 12개의 공군기지를 기반으로 14개 비행장과 16개 항만을 추가로 건설했다. 2015년 북방함대와 제1공군 방공사령부 등을 통합해 북부합동전략사령부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러시아는 북극해 항로에 반드시 필요한 쇄빙선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로도 유명하다. 미국 해안경비대에 따르면 러시아는 현재 41척의 쇄빙선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미국(5척)의 8배에 달한다. 이 중 6척은 원자력 추진 쇄빙선이다. 원자력 추진 쇄빙선을 가진 국가는 러시아가 유일하다.
현재 소수의 해양경비대만 운영하면서 북극의 평화적 이용을 촉구해온 미국도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약 40년 만에 알래스카 유전 개발을 허용할 뜻을 내비치면서 개발과 함께 안보 문제에 대한 논의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무부 국제안보자문위원회(ISAB)는 "북극 개발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이 미국 정부의 충분한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미래의 잠재적인 안보 위기에 맞서기 위해 쇄빙선 건조 등 인프라 투자를 통해 북극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키워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 '북극권 쟁탈전' 공세 퍼붓는 中·日…존재감 없는 韓
세계의 관심이 북극에 쏠리면서 한국도 대응책을 마련해 이곳 공략에 나서고 있다. 북극 항로가 개발되면 한국의 물류비용이 크게 줄어들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한국은 존재감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의 북극 정책은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대통령 직속 위원회인 북방경제협력위원회가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 몽골 등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유라시아 진출 교두보를 구축해 극동아시아까지 성장 발판을 마련하는 '신(新)북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구체적인 북방 경제협력 확대 방안은 '9브릿지'로 명명된 사업이다. 지난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 측에 제안한 협력 사업으로 가스, 철도, 항만, 전력, 북극항로, 조선, 농업, 수산, 산업단지 등 9개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북극항로 개척은 이 사업의 핵심이다. 북극항로를 새로운 물류 루트로 개척해 상업적 이용을 활성화하는 것이 미래 북극해 시장을 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북극항로 개척을 위한 쇄빙선 건조에도 집중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쇄빙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제조하고 있다. 최대 2.1m의 얼음을 가를 수 있으며 영하 52도에서도 안정적으로 장비를 가동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제작사인 대우조선해양은 2014년 러시아에서 총 15척의 주문을 받아 현재 4척을 인도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건조 현장을 방문해 북극항로 개척에 쇄빙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처럼 정부는 북극항로가 위기를 맞은 한국 조선산업을 되살릴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북극항로가 개척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기후변화와 더불어 야말 공장에서 생산된 LNG 운송이 가능해지면 안정적인 물동량 확보로 이용률이 늘 것으로 예상된다. 북극항로가 수에즈운하를 경유하는 기존 아시아~유럽 항로보다 약 7000㎞ 짧아 운송 기간이 열흘 가까이 줄어든다.
하지만 아직까지 손에 잡힐 만한 성과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주력으로 하고 있던 쇄빙선 사업도 최대 수입국인 러시아가 자체 개발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타격이 예상된다. 북극에 다각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김종덕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정책동향연구본부장은 "LNG는 아직 도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대형 조선사업을 제외하면 직접적으로 북극에만 초점을 맞춘 사업은 없다"면서 "가스유전 사업은 전략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인 만큼 정책 기관을 만들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아직까지 손에 잡히는 금융 재원 투자활동은 없지만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며 "북극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축소된 한국의 입지는 올해 주최된 북극 프런티어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일본은 고위급 외교관을 파견해 북극에서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자세를 보였다. 이데 게이지 일본 북극담당대사는 노르웨이 외교부가 주최한 북극 협약 관련 원탁 토론에 직접 참여해 북극에 대한 관심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특히 일본이 북극항로와 LNG 사업 등 새로운 개발 사업에 관심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데 대사는 "북극항로 이용 방안과 야말 LNG 사업을 모색하려는 일본 기업이 많다"면서 "위험과 수익성을 평가해 참가를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대부분의 세션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대부분의 정책 세션에서 중국의 경제적인 원조와 안보적 위협을 동시에 다루면서 관심과 경계를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중국은 아시아 연계 사업에 관한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서 북극항로의 균형적인 이용법을 모색하는 세션에서는 아시아 대표국으로 직접 참가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반면 한국은 북극 프런티어에 외교부와 국내 연구기관에서 소수 인력을 파견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김찬우 전 기후변화대사 겸 북극협력대표를 단장으로 하는 정부 대표단이 파견된 것과 큰 차이를 보였다. 당시 외교부는 한국이 노르웨이, 캐나다 등과 양자 북극협의는 물론 한·미·일 3자 협의를 통해 북극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또 노르웨이 노드국립대 북극물류센터와 부산 영산대 북극물류연구소의 북극항로 공동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별도 세션이 마련되기도 했으나 올해 한국을 테마로 한 세션은 단 하나도 없었다.
[트롬쇠(노르웨이) = 박대의 기자]
북극항로 개발 어디까지 왔나 물류기업 ‘수익성 확보’가 진출 전제조건
신정부가 출범하며 ‘꿈의 항로’로 불리는 북극항로가 재조명 받고 있다. 특사 신분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송영길 의원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직접 만나 북극항로 공동 개척 등을 논의했다.
이달 초에는 세계 1위 조선사인 대우조선해양이 러시아에서 세계 첫 쇄빙LNG선 명명식을 가졌다. 액화천연가스(LNG)의 본격적인 북극 운송 시대를 알린 이번 행사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참석해 북극항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지구 온난화로 얼음이 녹아내리며 북극을 향한 지구촌의 관심도 뜨겁다. 특히 중국과 일본 등 주변 강대국들이 북극항로를 주목하고 있어 우리나라와의 선점 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러시아 정부, 북극개발에 100조 쏟아붓는다
북극항로는 러시아 북쪽 북극해 연안을 따라 무르만스크에서 동쪽의 베링해협까지 연결하는 해상 수송로다. 기업들이 이용해온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 등의 철도나 수에즈운하를 경유하는 원양항로-내륙운송 조합방식을 대체할 수 있어 해운물류업계의 관심을 꾸준히 받고 있다. 2011년 통행료도 t당 4~5달러로 인하되면서 이 항로를 이용하는 화물은 증가하고 있다. 이 수송로의 최대 강점은 아시아-유럽항로-내륙운송 방식보다 20일 이상 운송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도양과 수에즈운하를 통하는 기존 남부 경로보다 이동시간도 크게 줄어든다. 부산-로테르담의 경우 거리는 32%(2만2200km→1만5000km), 일수로는 10일(40일→30일)이나 단축된다. 현재 약 4개월(7~10월)만 운항이 가능하지만, 얼음이 완전히 녹는 2030년에는 아시아-유럽 간 물동량 및 북극에서 생산된 자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경제적, 전략적 활용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미지의 세계인 북극항로에는 미래 먹거리도 가득하다. 막대한 규모의 지하 자원과 세계 물류의 중심을 북쪽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북극항로는 러시아 국가발전 전략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 매장돼 있는 천연가스의 90% 이상이 북극에 집중돼 있으며, 니켈과 금속 매장량도 상당하다.
특히 야말지방에는 가스유전이 집중돼 있다. 1년 내내 LNG 운송이 이뤄지는 이 지역의 LNG 터미널은 빠른 시일 안에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러시아의 야말LNG 프로젝트 등 북극의 자원개발이 활발해지면서 플랜트 설비와 석유, 가스 등의 운송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항로 활성화를 위한 러시아 정부의 북극개발 프로젝트도 중점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한화로 따지면 100조원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금액이 북극개발에 투입된다. 코트라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2025년 러시아 극지방 사회경제 개발 정책’ 추진을 위해 150개 프로젝트를 지정하고 향후 5조루블(약 98조원)을 투자한다. 5조루블 중 1조루블은 정부 예산으로 지원되며, 4조루블은 외부 투자 등에 의해 조달한다.
러시아가 가장 공을 들여 추진 중인 물류 프로젝트는 벨코머(White Sea-Komi-Ural)와 북 위도 루트다. 이 프로젝트에는 17개 북극개발 핵심 사업이 포함돼 있으며 약 2500억루블(약 4조9000억원)이 투입된다. 벨코머는 페름에서 코미를 통해 아르한셀스크항까지 이동이 가능하다. 북 위도 루트는 러시아 북극에서 북부 철로와 스베르들롭스크 철로를 연결하고 화물을 야말 지역에 새로 건설된 사베타항을 통해 전 세계로 운송할 수 있는 물류 네트워크다. 특히 북 위도 루트가 구축되면 수백만t의 화물이 우랄과 볼가지역에서 이동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시베리아 지역이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 연결되는 한편, 야말-네네츠 자치 구역 중앙에서의 탄화수소 개발도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사베타항은 야말 LNG개발 사업의 일부이며 북극항로 물량의 급격한 성장을 도와줄 항만으로 떠오르고 있다.
물류기업 관계자는 “사베타항을 연결하는 철로가 놓인 것을 보고 이 항만의 성장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사베타를 통한 자원 운송을 활성화하겠다는 러시아의 의지가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극동 3국 북극항로 선점경쟁 가열
북극항로의 미래는 밝다.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열강들은 북극해 선점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로 서쪽으로 진출하고 있는 중국은 동진(東進) 전략으로 북극항로를 점찍었다. 우리나라를 통과하는 일도(一道) 개발을 통해 또하나의 초강대국인 미국에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여기서 일도는 북극항로 개발을 의미한다. 일대일로와 마찬가지로 일도를 이용해도 로테르담까지 갈 수 있다. 일대일로 주변국들 역시 일도를 통해 아시아, 북미, 유럽과 교역할 수 있다.
이밖에 에너지시장의 판을 뒤흔들고 있는 미국 셰일혁명이 주목되고 있어 러시아를 통한 LNG 수송도 중국의 향후 북극해 진출 전략 중 하나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국의 북극항로 진출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과 러시아가 중국의 북극항로 진출을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신에 따르면 일본과 러시아는 중국의 북극해 진출을 막기 위해 방위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도 북극항로 진출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쓰이상선은 2018년부터 북극항로에서 정기운항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업계 일각에서는 일본 북부섬과 러시아를 연결한 해저터널 개발에 관한 양국간 협력이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북극해 진출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일본에서 북극 운송경험이 전무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한국과 협력방안을 논의 중”이라며 “북극진출을 위한 일본 재계의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정부도 북극항로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기울이고 있다. 2013년 5월 북극 이사회 옵서버국으로 가입하면서 북극해 진출을 알렸다. 2014년 출범한 이래 매년 2회 북극항로 활용지원 협의회를 개최, 항로 이용을 활성화하고 정보 공유를 촉진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북극항로 이용 횟수도 차츰 늘어나고 있다. 2013년 시범사업을 포함해 지난해까지 총 5건의 운항실적을 기록했다. 2013년 현대글로비스가 스웨덴 스테나해운의 내빙선을 용선, 러시아 노바텍의 나프타 4만4000t을 운송하는 내용의 시험운항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2년 뒤에는 첫 상업운항에 나선 CJ대한통운이 자사 중량물운반선을 투입, UAE(무사파항)-러시아(카메니항·야말반도) 노선에서 해상 하역설비를 운송했다. 지난해 7월15일에는 SLK국보가 북극항로-러시아 내륙수로를 연계한 새로운 수송로를 활용했다. 팬오션도 같은 해 자사 중량운반선을 이용, 야말프로젝트 LNG 플랜트 설비운송에 나선 바 있다.
해운물류업계 “북극항로 진출시 경제성 확보 우선돼야”
미지의 세계를 열었던 물류기업들은 북극항로를 ‘아직은 먼 블루오션’이라 불렀다. 미래 먹거리는 분명하지만 기업들의 마음을 뒤흔들 만큼 대외환경이 아직까지 조성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기업들은 이 항로를 통한 운송량이 매우 적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나라에서 북유럽으로 향하는 물량이 많지 않을 뿐더러, 북극 자원개발에 투입되는 단발성 화물이 고작이라는 것. 북극항로를 선호하는 화주가 적다는 것도 운송 저하를 일으키고 있다.
이밖에 유가하락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기업들의 진출을 늦추고 있는 원인 중 하나다. 해수부에 따르면 올해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우리나라 물류기업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들 입장에서 섣부른 북극항로 취항은 자칫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러시아가 대부분 보유 중인 쇄빙선 확보는 북극항로의 안전운항을 책임질 필수 요소다. 선박이 북극해를 통항하려면 얼음을 부숴야 할 쇄빙선을 확보해야 한다. 쇄빙선 이용료는 북극항로 통항 시 가장 높은 물류비에 속한다. 해상운임은 쇄빙선 용선료에 포함되며 별도로 도선료가 발생한다.
이밖에 운항 선박을 극지에 버틸 수 있게 개조시켜야 한다. 아이스 브래이커 단계가 높아질수록 갑판이 두꺼워져 극지에서 버티는 게 쉬워진다. 물류사들은 수에즈운하 통항료와 해적 보험, 무장요원 탑승 등의 종합적인 비용을 산출, 북극 운항 물류비를 비교한다. 대체로 비용은 큰 차이가 없지만 러시아에서 비싼 쇄빙선 사용료를 요구할 경우 수에즈운하를 이용하는 것보다 비효율적일 수 밖에 없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대량수송이 가능한 해상을 통한 중국발 물량이 발생할 수 있겠지만 굳이 북극해로 끌고 와 화물을 운송할 이유가 없다”며 “기업들 입장에서는 운항하기 위한 경제성 확보가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물류업계는 결국 민간기업이 북극항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데 입을 모았다. 하지만 투자 리스크가 커 정부에서 지원이 이뤄져야함에도 불구하고 이마저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북극항로 운항을 이유로 기획재정부로부터 자금을 끌어와 민간기업에 지원한다는 명분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팬오션은 우리나라 해운물류기업 중 가장 최근 북극항로를 이용했다. 이 선사 관계자는 우선적으로 우리 정부가 러시아와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 기업들의 경제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팬오션 특수선영업본부 김정진 팀장은 “우리나라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중국 일본 등에서 화물을 끌어와야만 한다”며 “전 세계 해상항로는 이미 오픈돼 있어 경쟁력이 없다. 경험 있는 자가 먼저 북극항로를 선점한다면 국가적인 비즈니스 사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극항로를 이용한 기업들의 발걸음도 곳곳에 포착되고 있다. 한 물류사는 빠르면 내년 북극항로를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이 기업 관계자는 “컨테이너만으로 수익을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만의 독자 영업으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트라 김하민 모스크바무역관은 “북극지역의 프로젝트는 선점효과가 커 우리 기업이 프로젝트로 참가시 장기적으로 높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자원개발 외에도 조선 항공 정보통신 분야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설비공급, 시스템 구축 등의 형태로 진출할 수 있는 틈새시장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지난달 말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 호의 좌초 사고로 수에즈운하 운항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대체항로로 북극항로(NSR)가 주목받고 있다. NSR을 이용할 경우 수에즈운하와 비교해 아시아~유럽 운항 거리가 40%나 줄어들기 때문이다.
12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발간한 '북방물류리포트(166호)'에 따르면 러시아는 최근 수에즈운하 좌초사고를 계기로 NSR을 수에즈운하 대체 항로로 적극 홍보하고 있다. 러시아 북극 국제협력 대사 니콜라이 코르추노브는 “수에즈운하 사고를 계기로 모두 전략적인 해상로를 다변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NSR은 지리적으로 수에즈운하보다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운항시간이 덜 소요된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세계 1위 선사인 덴마크 머스크는 2018년 8월 세계 최초로 컨테이너선 시험운항을 마쳤고, 일본과 중국 등도 북극항로 거점 확보를 위해 북극해를 가장 많이 접한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3년 글로비스가 첫 유조선 시범운항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다.
다만 수에즈운하보다 3배가량 많은 운항 비용 등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러시아는 NSR 운송비용을 인위적으로 낮춰 이용 빈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유리 트룻네프 러시아 부총리는 장기적으로 NSR를 통한 운송 비용이 수에즈운하보다 더 낮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앞으로 별도의 연방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 지역을 운항하는 선박을 지원할 계획을 밝혔다.
최근 핀란드 아커 악틱사는 쇄빙 컨테이너 선박을 선보였다. NSR을 이용하려면 쇄빙 지원선이 필요해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는데 이 선박은 단독으로 북극항로 운항이 가능해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 또 겨울철에 적절한 속력으로 운항할 수 있어 운항 일정이 안정화 되면 NSR 운항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 아울러 지구 온난화의 역설로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2030년 북극해 연중 운항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물류업계와 학계에서 나온다.
전문가들은 에버기븐 호의 좌초 사고가 단기적으로는 NSR의 매력도를 높일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 NSR가 얼마나 매력 있는 운송 옵션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민간기업의 물류 전문가는 "실제로 북극항로가 열린다면 LNG선과 유조선 등 특수한 화물을 운송할 때는 물류비가 절감될 수 있다"면서도 "러시아가 선사들에게 높은 통행료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현재는 경제성 있는 항로가 아니므로 물량이 있을 때만 운항하는 정도지만 향후 여건이 되면 바로 운항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북극 항로의 문턱을 높이려는 배경에는 북극에 매장된 막대한 천연자원이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북극 항로가 원유·가스 등 자원을 수출하는 수송로인데 러시아 자원을, 그것도 자국 영해에서 외국 선박들만 실어나르며 이득을 보는 꼴을 더이상 보기 싫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북극 항로 이용 선박을 제한하려는 데는 해운·조선업을 육성하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의도도 숨어 있다고 분석한다.
●유엔 해양법엔 영해라도 타국 선박 통행 보장
이날 해양수산부와 북방경제협력위원회에 따르면 러시아가 북극 항로 이용 선박을 러시아 등록 및 건조 선박으로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단 북극 지역에서 생산된 원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을 수송하는 배가 대상이다. 컨테이너선 등 상선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법안은 향후 개발할 북극 지역 자원 개발 프로젝트에 적용된다. 시베리아 최북단 야말 반도에 매장된 천연가스를 개발하는 ‘야말 프로젝트’ 등 기존 자원 개발 사업은 대상이 아니다. 해수부는 러시아가 ‘북극 LNG2’ 프로젝트를 타깃으로 삼은 것으로 보고 있다. 북극권 기단 반도에 연간 생산 용량 1830만t 규모의 액화 플랜트를 짓는 사업으로 러시아는 2023년 가동을 목표로 삼았다.
신북방정책을 총괄하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는 러시아의 이번 법안이 실제로 시행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한다. 북방경제협력위원회 관계자는 “일단 선박 등록의 경우 러시아 국적으로 바꾸는 데 큰 문제가 없고, 러시아 건조 선박으로 제한하는 방안은 러시아가 천연가스 수송선을 만들 기술력이 없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면서 “만약 러시아가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 배의 북극 항로 이용을 실제로 차단한다고 해도 유엔 해양법을 어기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러시아가 북극 항로 대부분이 자국 영해를 지나기 때문에 지배권을 주장해 왔지만 유엔 해양법에서는 영해라고 할지라도 배의 통항을 보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향후 상선으로 법 적용을 확대하는 등 북극 항로에 대한 기득권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잇따라 발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해수부 관계자는 “러시아가 북극 항로를 지나는 선박에 대한 규제를 더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번 법안은 그 첫 단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러에 선박 등록 가능하나 취득·등록세는 비싸
해수부에 따르면 이 법안이 시행되면 북극 항로를 지나려는 우리 선박들은 당장 러시아로 국적을 바꿔야 한다. 선박 등록은 어느 나라에서든 할 수 있어서 등록 자체에 문제는 없다. 그러나 취득·등록세 등 비용이 늘어난다. 한국과 다른 해운 선진국의 원양 선박들은 세금 등 비용이 거의 없는 파나마나 몰타 등에 등록돼 있다. 러시아는 이들 국가보다 등록비가 비싸다.
현재도 북극 항로를 공짜로 지날 수 없다. 북극 항로를 이용하려는 선박은 러시아 교통부 북극항로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쇄빙선이 없는 경우 러시아에 돈을 내고 쇄빙선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쇄빙선을 갖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어서 사실상 ‘통행료’인 셈이다. 계절에 따라 북극 얼음의 상태가 달라 쇄빙선 서비스를 받으려 해도 러시아에 한참 전에 요청해야 하는 등 준비 과정도 복잡하다.
전문가들도 이번 법안을 북극 항로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러시아의 상징적 조치로 보고 있다. 홍성원 영산대 북극물류연구소장은 “북극 지역에 매장된 자원이 많기 때문에 러시아는 북극 항로를 더 지키려 할 것”이라면서 “한국과 러시아가 북극 항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서 우리가 북극 항로를 이용하려면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테르담까지 수에즈운하 뱃길보다 10일 단축
북극 항로 개척은 정부의 국정 과제인 신북방정책과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의 핵심 사업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부터 러시아와 북극 항로 공동 개척과 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경제 협력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남북 경협의 로드맵인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으로 이어진다. 동해권 에너지·자원벨트를 중장기적으로 구축하고 금강산, 원산·단천, 청진·나선을 남북이 공동 개발한 뒤에 우리 동해안과 러시아를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신북방정책을 구체화한 ‘9브릿지’ 사업에서도 북극 항로가 중요하다. 9브릿지 사업은 지난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문 대통령이 러시아 측에 제안한 것이다. 가스, 철도, 항만, 전력, 북극 항로, 조선, 농업, 수산, 산업 단지 등 9개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협력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북극 항로를 새로운 물류 루트로 개척해 상업적 이용을 활성화해야 미래 북극해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
또 북극 항로는 한국~유럽을 잇는 ‘신(新)실크로드’이기도 하다.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기존 바닷길보다 운송 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수에즈운하를 거치면 40일(2만 2000㎞)이 걸리지만 북극 항로를 따라가면 30일(1만 5000㎞) 만에 주파한다. 최근 수에즈운하를 운영하는 이집트 정부가 통행세 할인에 나선 이유도 북극 항로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북극 항로는 현재는 북극의 얼음이 녹는 7~11월 사이 5개월가량만 이용할 수 있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지만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2030년에는 연중 운항이 가능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북극 항로 개척·이용을 위해 러시아와 해운·조선 분야까지 경제 협력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홍 소장은 “러시아가 잠수함 등 군함 건조 기술은 뛰어나지만 가스 수송선과 상선 등을 만드는 기술력은 부족해서 현재 북극 지역에서 나오는 자원을 수출하는 데 외국 선박과 조선 기술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한국이 러시아의 북극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 자원 장기 운송 계약과 수송선 건조 수주 등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쇄빙선 수주하면 한국 조선업 새 먹거리 될 듯
정부도 북극 항로를 통해 침체된 해운·조선업을 부활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해운 분야에서는 북극 지역 화물을 확보하고 운송에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해수부를 중심으로 2030년 이후 북극 항로의 연중 운항이 가능해질 때를 대비해 북극 항로로 수송할 정기 화물을 조사해 발굴하고 경제성을 분석할 계획이다. 북극 얼음이 녹는 정도 등을 고려해 2023년 이후 컨테이너선도 시범 운항하기로 했다.
조선 분야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 주도로 기존의 발주(러시아)-수주(한국) 중심의 한·러 협력을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킨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러시아의 건조 능력 확보를 위해 기술 협력을 추진하고 러시아의 조선업 인프라를 확충하는 방안이다. 한·러 조선 협력을 통해 한국가스공사의 북극 에너지 프로젝트 참여도 모색한다.
고부가가치 선박인 쇄빙선을 우리 조선사들이 수주할 경우 한국 조선업의 새 먹거리가 될 전망이다. 중국 조선사들의 저가 수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조선사들이 러시아 쇄빙선 수주를 선점한다면 당장의 유동성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미 대우조선해양이 세계 최초로 쇄빙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만들어 2014년 러시아로부터 총 15척의 주문을 받았고 현재까지 4척을 인도해 수주 전망도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