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3일 같은 당 의원 12명과 함께 '민주화운동보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전 의원은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가 민주화 운동으로 결정한 사건 가운데 사실 왜곡 소지가 있었는지를 철저히 재심의할 필요가 있다"며 1989년 5·3 동의대 사건을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전 의원은 이 사건을 "진압하러 들어간 경찰관 7명이 학생들에 의해 무참하게 불태워져 처참하게 살해된 극악한 사건"이라고 주장했고,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이 그의 주장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사건의 모든 책임을 학생들에게만 물을 수 없다는 주장이 당시 관련자 및 변호인단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20년 전 동의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오마이뉴스>는 현장 취재 및 20년 전의 기록(법정 진술 및 수사기관 발표문, 국회 속기록, 언론보도 등)을 토대로 4회에 걸쳐 1989년 동의대 사건의 진상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동의대 사건 당시 학생들의 행동을 왜곡해서 말하고 다니는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5·3항쟁 동지회 회장을 맡고 있는 고범산씨는 9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한 통화에서 최근 전 의원이 행한 일련의 발언에 대해 이같이 의견을 밝혔다.
전 의원은 3일 민주화운동보상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동아일보>에 "동료를 구하려는 경찰에게 시너를 뿌리고 화염병을 던진 것은 일종의 화형식이었다고 본다"는 말을 해 당시 관련 학생들을 격앙케 했다. 5·3항쟁 동지회는 10일 내부회의를 열어 언론중재위원회 제소를 포함해 전 의원에 대한 법적 대응을 논의하기로 했다.
20년 전 법정에서도 학생이 던진 화염병과 경찰관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화재의 상관관계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던 만큼 전 의원의 발언이 사실을 왜곡한 것은 분명하다. "학생들이 경찰에 시너를 뿌렸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살의가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검찰도 이 부분을 입증하려고 애썼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년 전 <동아일보> 기사가 전 의원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게 아이러니컬하다.
<동아> 1990년 2월 21일자 사회면 기사에 따르면, 동의대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는 그동안 쟁점이 돼왔던 화인 부분에 대해 이렇게 썼다.
"세미나실 복도바닥에 시너가 없었으며 바닥에 붙어 있던 화염병의 불꽃을 경찰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나머지 이를 제대로 끄지 않은 채 학생들의 체포 검거에만 열을 올려 우왕좌왕하던 경찰의 작전수행과정의 과실 등 제3의 요인에 의해 발생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대법원은 4개월 뒤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전 의원에게만 사실왜곡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노릇이다. 사건 직후부터 학생들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는 언론보도가 쏟아졌기 때문에 '동의대 시위학생 = 패륜아'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인터넷도 누리꾼도 없었던 20년 전의 국민들이 이 사건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는 언론뿐이었고, 그중에서도 신문·방송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언론은 동의대 사건과 관련해 진실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까? 아니면 경찰과 검찰의 발표 내용을 받아쓰기에 급급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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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5월3일 MBC <뉴스데스크>의 한 장면. 검찰과 경찰을 인용해 "학생회장이 피랍전경들의 옷을 벗겨 불을 붙였다"고 보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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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언론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겠지만, 경찰이 흘린 정보를 곧이곧대로 읊은 몇몇 신문·방송은 "대중의 눈과 귀를 가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재인 변호사는 "사건 초기의 언론보도가 이후의 여론을 결정지었다"고 개탄했다.
사건 당일과 이튿날 이들 언론은 "학생들이 전경들의 옷을 벗겨 불을 붙인 후 시너가 뿌려진 바닥에 불을 붙였다"고 보도했다.
경찰의 수사결과를 그대로 옮긴 보도였는데, 이는 학생들이 피랍 전경들에게 비인간적인 대우를 했거나 심지어 학생들이 전경들을 의도적으로 불살라 죽였다는 오해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권력의 시녀'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MBC <뉴스데스크>는 1989년 5월 3일 밤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검찰과 경찰에 따르면 학생회장 이군은 경찰이 진입하자 도서관 7층에 감금하고 있던 안성연 일병 등 전경들의 옷을 벗겨 불을 붙인 후 미리 시너를 뿌려놓은 바닥에 던져 불이 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또 나머지 9명의 학생들은 농성에 들어가면서 시너를 100m 뿌려 가면서 도서관의 계단과 주위에 뿌렸다는 것입니다."
<뉴스데스크>는 다음날에도 '경찰의 중간수사 설명'이라며 "총학생회 인솔부장 김OO군 등이 시너를 뿌린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사건 다음날 일부 신문의 보도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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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질의경 옷 벗겨 시너 불붙여"라는 소제목이 붙은 89년 5월4일자 <조선일보> 사회면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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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자 <조선일보> 사회면 기사에는 "인질의경 옷 벗겨 시너 불붙여"라는 소제목이 붙었다.
<조선>은 "경찰에 따르면, 학생회장 이군 등은 3일 새벽 5시 20분쯤 도서관 4층에 있다가 인질구출을 위해 경찰이 진입하자 인질로 잡고 있던 안OO 일경 등 의경들의 옷을 벗겨 옷에 시너를 뿌려 불을 붙인 뒤 미리 계단 등지에 뿌려놓았던 시너에다 던져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고 전했다.
같은 날 <서울신문> 보도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의 <서울신문>은 정부가 최대주주였기 때문에 정부의 기조를 거스르는 기사는 거의 실리지 않았다.
<서울신문>의 경우 <조선>보다 한술 더 떴다.
경찰을 인용해 "(학생이) 인질경관의 옷 저고리를 벗겨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인 뒤 시너 위에 던져 불을 질렀다"는 것을 넘어 다음과 같이 '추가범행' 사실을 적시했다.
"경찰은 연행학생들을 수사한 결과, 7층 세미나실에 경찰병력이 진입할 때 학생들이 불을 지르고 비상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달아나면서 세미나실과 비상계단을 연결하는 철제문을 잠가버린 것으로 밝혀냈다. 이 때문에 불이 나자 경찰관들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쉽게 질식해 희생이 컸다는 것이다."
그러나 7층에서 화염병을 던진 윤모씨는 9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화염병을 던진 후 비상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간 것은 맞지만,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잠근 사실은 없다. 이 부분은 경찰 조사과정에서도 일관되게 주장한 것"이라고 당시 언론보도를 부인했다. 현장검증을 통해 충분히 확인될 수 있는 사항이었지만, 검경도 이 부분을 문제 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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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수사발표 내용을 그대로 전한 1989년 5월 4일자 <서울신문> 사회면 머리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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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모 유력일간지 5월 4일자에는 "학생들이 시너에 불을 지르는 바람에 온몸에 2~3도의 화상을 입어 달아날 곳이 없어 창틀에 매달린 경찰 두 명을 학생들이 손등을 밟아 추락했다"는 기사까지 실렸다고 한다.
이러한 오보가 학생들에 대한 여론을 호도한 것도 문제이지만, 경찰이 오보를 사실로 확정하기 위해 가혹행위를 저질렀다는 주장도 있다.
동의대 5·3 동지회에 따르면, 부산 북부경찰서에 연행된 대학생 최OO씨는 언론보도가 나간 뒤 이런 일을 당했다.
"최OO씨는 '7층에 기름을 누가 뿌렸는가?', '화염병을 던진 사람이 누구냐?', '창틀에 매달린 경찰의 손목을 각목으로 때려 떨어지게 한 놈이 누구냐?'라는 진OO 경찰관의 심문에 '7층에 있지 않아서 그것을 보지 못했다'고 대답하자 (진 경관이) '이 새끼 안 되겠어, 맞고 시작해야 되겠어'라며 발길로 무차별 구타했으며 그가 엎드린 상태에서 두 명의 수사관이 양 다리를 꽉 눌러 잡고 한 명이 걸터앉고 두 손으로 깍지를 끼어 목에다 걸어 뒤로 힘껏 잡아당기는 고문을 당했다. 최씨는 갈비뼈에 금이 가고 피를 토하는 중상을 입었다."
모든 언론이 학생들에게 덤터기를 씌우는 보도를 한 것은 아니다. <한겨레>와 <말> 등의 일부 매체가 검찰의 기소 이후에도 진실을 다투는 기사를 계속 내보냈지만, 주류언론이 주도한 '침묵의 카르텔'을 깨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한편, 김대중 정부와 사이가 틀어지며 보수색이 강해졌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진보적인 색채가 많이 남아 있던 <동아>의 1989년 5월 4일자 사설은 지금까지도 비교적 균형 잡힌 글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 같은 상황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질서와 안정의 확립이다...(중략) 아울러 우리는 학원과 노동현장에서 들려오는 정당화될 수 있는 주장들을 경청하는 자세를 모든 관계자들이 가져주기를 촉구한다. 단순한 폭력으로 몰아치기만 하면 된다는 불순하고 비양심적인 의식과 자세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을 것임을 우리는 단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