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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6일 목요일, Xela, Familia Siliezar Gonzales 민박집
(환율 US $1 = 8 quetzal)
아침에 일어나니 6시 반이었다. 알람을 6시에 맞추어놓았는데 울리지 않았다. 알람을 체크해보니 오전 6시가 아니고 오후 6시에 맞추어놓았다. 진짜 알람시계는 작은 배낭과 함께 잃어버렸고 손목시계 알람을 쓰고 있는데 실수를 한 것이다. 이번엔 확실하게 오전 6시에 마쳐놓았으니 내일부터는 제대로 울릴 것이다. 내 손목시계는 등산과 트레킹을 위한 기능성 시계인데 일반적인 기능 외에 컴퍼스, 온도계, 기압계, 고도계 기능이 더 있다. 기압계는 12시간정도 앞 기후를 제법 정확히 예보해주기 때문에 등산이나 트레킹을 할 때 갑작스런 기후 변화에 대비할 수 있게 해준다.
아침 식사시간은 7시 15분이다. 오늘 뉴질랜드에서 온 Karen은 떠나고 나와 영국에서 온 Ana와 둘이서만 식사를 했다. 민박집 여주인 Cleo도 함께 아침을 들었다. 남편 Cesar, 아들 Dorian, 딸 Ligia는 벌써 식사를 끝내고 출근을 한 모양이다. 어제 가족들과 인사를 했는데 남편 Cesar는 거의 백인같이 보이고 부인 Cleo는 원주민 쪽에 가까운 mestizo이고 아들과 딸은 아버지보다는 덜 백인이고 어머니보다는 덜 mestizo인 중간 정도였다.
아침식사는 커피 한잔, 빵, 그리고 계란부침이 전부였다. 식사 시간은 회화 연습시간으로 이용된다. 영국 여자 Ana는 좀 떠듬거리지만 제법 통하는 스페인어로 Cleo와 쉬지 않고 얘기를 한다. 나는 스페인어를 전혀 못하니 듣기만 했다. Ana에게는 기막힌 스페인어 회화 연습 시간이다. 나도 두 달 공부하면 Ana 정도 될 수 있을까? Ana는 2주 더 공부한 다음에 3개월 정도 자원봉사 일을 할 계획이란다. Maya 유적지 Tikal 근처에 있는 국립공원에서 환경 보존에 관계되는 일을 할 예정이라는데 숙식비로 하루에 $5 정도를 내야한단다. 일은 무보수로 해주는 것인가 모르겠다. 어쨌든 싼값으로 정글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다. 나도 해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그러나 우선해야 할 일은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이다. 당분간 딴 생각하지 말고 스페인어 공부나 열심히 하자.
이번 주는 나는 오후반이라 강의가 오후 2시부터 7시까지다. 오전에 학교에 가서 등록금을 냈다. 어제 등록은 했지만 직원들이 너무 바빠서 등록금은 못 냈다. 오늘도 한참 걸려서 이번 주 등록금 $125을 냈다. 학원이 잘 되는 모양이다.
등록금을 낸 후에 한참 동안 오전반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정원 구석구석에 조그만 책상을 놓고 교사와 학생이 1대 1로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다. 50분 공부하고 10분 쉬는데 그 동안에 탁구를 치는 학생들도 있었다. 날씨가 항상 좋아서 학생들은 실내보다는 정원에서 공부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모양이다.
숙소로 돌아오기 전에 인터넷 룸에 가서 집에 이메일을 보냈다. 이틀 전 Guatemala City 버스 터미널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보충하기 위해서 미국에서 사서 보낼 물건 리스트를 보냈다. 1, 2주 후에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고교 동창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친구들이 올린 글을 읽었다. 나도 소식을 보내려면 한글 입력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곳 인터넷 룸에 있는 컴퓨터에 한국어를 설치하는 작업이 잘 안 된다. 작업 도중에 스페인어 메시지가 뜨는데 무슨 내용인지 알 도리가 없다. 당장 물어 볼 사람이 없고 점심시간이 가까워져서 작업을 중단하고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걸어서 7분 거리다. 점심을 먹고 오후 2시까지 학교로 돌아와서 공부를 시작해야한다.
이곳 아침과 저녁 온도는 16도 정도로 제법 쌀쌀하고 대낮에는 27도 정도로 약간 더우나 건조한 기후라 견딜 만하다. 점심에는 소고기 요리, 수프, 볶음밥, 삶은 감자가 나왔는데 모두 맛이 좋았다. 주인 여자 요리 솜씨가 좋은 것 같다. 그런데 양이 약간 적었다. 영국 여자 Ana와 집주인 Cleo는 또 말이 많다. 오늘은 Ana가 자기만 떠드는 것이 미안했던지 가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에게 간단히 알려준다. 그러나 자세한 내용은 모르니 답답하다. 그래도 간간이 아는 단어들이 들리니 다행이다. 중국어를 배울 때는 들리는 것이 잘 안 되어서 애를 먹었는데 스페인어는 중국어보다는 잘 들리는 것 같다.
점심을 끝낸 후 학교에 가기 전에 빨래를 간단히 하려고 했는데 수도 물이 안 나온다. Cleo에게 물어보니 가끔 그렇다는 것이었다. 수도 물이 나올 때도 시원스럽게는 안 나오고 조금씩 나오는 게 고작이다. 집이 언덕에 있어서 수압이 낮아서 그렇단다.
오후 2시에 등교를 해서 수업을 시작했다. 선생 Pedro는 거의 100% 인디오인데 영어를 제법 잘 한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공부하다가 현재 휴학 중인데 4년 여행가이드 경험이 있단다. 어떻게 영어를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학교에서 배운 것은 별로 없고 여행 가이드를 하기 위해서 독학을 해서 배웠는데 정말 배운 것은 여행 가이드를 하는 동안에 배웠단다. 이 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는 것보다는 쉬울지 모르지만 피나는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Pedro 얘기가 전혀 배운 적이 없는 포르투갈어는 90%, 이탈리아어는 70%, 프랑스어는 50% 정도 알아들을 수 있단다. 이들 언어는 라틴어 계통 언어라 많이 비슷한 모양이다. 우리가 일본어나 중국어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것과는 큰 비교가 된다. 한국어는 우랄알타이 어족에 속한다고 배웠는데 언젠가부터 한국어는 어느 어족에도 속하지 않는 고립어라는 것이 정설 비슷하게 되었다 한다. 한국어가 고립어인 것이 맞는다면 우리가 배우지 않고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는 세상에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일본어도 마찬가지로 고립어란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영어에 서툰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일본어는 한국 사람이 비교적 쉽게 배우는 언어이기는 하지만 배운 적이 없으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따라서 한국어와 일본어는 같은 어족에 속하지 않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오후 2시에 강의를 시작해서 6시가 되니 어둑어둑해지며 날씨도 쌀쌀해지고 배고 고파온다. 지쳐서 더 이상 공부를 못하겠다. Pedro에게 그만 하자고 했더니 좋다고 하면서 숙제를 내준다. 강의 듣고 예습 복습하고 숙제를 하고 나면 하루가 금방 간다. 주중에는 전혀 한가한 시간이 없을 것 같다. 주말에도 등산 등 프로그램이 있으니 그렇게 한가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남는 시간이 좀 있을 것이다.
집에 있을 때는 하루에 한 캔 정도 마시던 맥주가 이곳에 와서는 아직 한 번도 못 마셨다. 주말에 캐나다 3인방과 함께 어디 가서 한잔해야겠다. 같은 민박집에 있는 영국 여자 Ana는 딸 같은 나이라 어울리기가 힘들고 나이가 비슷한 캐나다 3인방과 자주 어울릴 수 있을 것 같다.
저녁식사 시간은 7시 15분이다. 음식이 점심때보다 간단하다. 볶음밥, 계란, 홍차, 옥수수 떡, 삶은 감자 등이다. 이렇게 해서 학교 첫날을 마쳤다. 샤워를 하는데 물이 미지근해서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왔다. 전기로 즉석에서 물이 데워지는 식인데 기계가 작동이 잘 안 되는지 내가 사용법을 잘 모르는지 모르겠다. 내일 주인 남자 Cesar에게 물어봐야겠다.
주인 여자 Cleo는 모든 것을 무척 아낀다. 오늘 실수로 침실에 있는 전등을 켜놓은 채로 학교에 갔다 왔다가 지적을 받았다. 이곳은 전기 요금이 비싼 모양이다.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전기나 수돗물을 아껴 쓰도록 협조를 해주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에게 하루 숙식을 제공하고 받는 돈이 고작 $4 정도다. 우리가 낭비를 한다면 남을 돈이 없을 것이다.
Celas Maya 학원 정원에 책상을 놓고 공부를 하고 있다
휴식 시간에 탁구를 치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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