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푸른청원생명축제 전국 백일장 대회
대학.일반부 입상작품
<일반부 산문- 장원작>
밥 상
송 재 연
가을이다.
바뀌는 계절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은 무딘 날들을 색다르게 살아 보고 싶어서 일 것이다.
일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다 보니 무슨 일든 미뤄 놓고는 좀이 쑤셔서 안절부절 이다. 딱히 어떤 일을 유별나게 잘 한다든가 그런 게 아니고 건강 체질이다 보니 잡다한 일도 꾀피우지 않고 한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인데 주위사람들에게 일을 잘한다는 칭찬을 들을라치면 기분이 퍽 좋아진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며칠 동안을 맘속으로 전전긍긍했다. ‘푸른 청원 생명축제 전국백일장대회’ 신문에 실린 내용을 흩어보고 오려서 책갈피에 끼워 놓고 날짜와 시간을 체크해 놓았다.
백일장대회에 출전해 본경험이 없는 터라 서점에 들러 당선작품이 실려 있는 책을 구입하여 읽고 습작의 시간을 참참이 갖으며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책읽기에 썩좋은 가을이라서 마음을 활짝 열기도 했던 것이다. 이 모두가 활력을 계절이 공짜로 가져다주는 선물이기에 새롭게 신비로움을 느껴보기도 했지만 ,설레 임으로 점점 날짜는 가고 밤잠까지 설쳐가며 고민을 했다.
솔직히 어제까지도 결정을 하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었다. 눈치를 안 신랑이 넌지시 용기를 줬다.
‘뭐든 잘하면서 뭘 그래’ 엄살하지 말고 나가보라며 멋쩍게 말한다.
아무리 일을 척척 잘하기로 소문났지만 글을 짓는 머리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꼭 입상을 해야만 하는 것보다 실력을 알고 싶은 것이 더 솔직한 마음인데 나가보라는 신랑의 말이 더 부담되기도 했지만 포기하면 바보라고 할 것 같기도 했다. 정말 안 나가면 후회할 것 같고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이 들기도 해서 단단히 마음먹고 참가하기로 했다.
10월4일 오늘새벽6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둥댔다. 평소 같으면 아직 일어날 시간이 멀었는데 아침밥을 지어야 준비가 될 것 같아 서둘러 쌀을 꺼냈다.
‘오늘 아침은 내가 할 테니 들어가서 백일장 나갈 준비하셔, 어느 틈에 뒤따라 일어났는지 신랑이 등 뒤에서 얼굴가득 미소를 띠며 성큼 쌀바가지를 빼앗아든다. 쌀을 벅벅 닦으며 어서 들어가라고 눈웃음까지 보낸다. 자꾸만 베푸는 친절에 어색하기도하고 마치 전쟁터에 나가서 꼭 이기고 돌아와야 한다는 명령 받은 수행원 이 된 것처럼 더럭 겁이 났다. 세수를 하면서도 온통머릿속엔 원고지 칸에 써 넣어야할 글이 무엇인지 먼 하늘의 별들이 깜빡거리듯이 글자들이 오락가락한다. 공연히 소문을 낸 것에 순간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으리,
솔솔 된장찌개냄새가 풍겨왔다. 몸단장을 하느라고했는데 자꾸 마음이 편치 않아 수만리 가는 양 채비가 길어진다.
간혹 음식솜씨를 부리는 신랑은 아침이 아닌 저녁식탁을 책임지기도 하는데 오늘 아침상을 준비하는 신랑의 선심이 평소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어서 먹으라며 수저까지 집어주는 인정에 된장찌개와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는데도 건성으로 먹어서인지 허전하게 집을 나섰다. ‘잘 하고 와’ 한마디 더 던지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백일장 장소까지 왔다.
오고 보니 이런 산골짜기에 아름다운 자연예술이 펼쳐지고 있었다. 영근 벼들이 가을바람에 출렁이고 이제 막 한 뼘 정도로 자라는 작은 벼들에게 나이가 써져있다. 친환경 축제에 걸맞게 푸르른 자연 식물들이 가득하다. 우리 농업기술로 재배된 신선한 자연식 먹거리들의 묘미에 관심이 커진다.
어서 써내고 맘 편히 돌아보련다.
‘밥상’ 이란 제목에서 보리밥 시절이 떠올려진다. 그 옛날 아버지의 까다로우셨던 식성으로 때마다 식구들은 곤혹을 치뤄야만 했다. 유난히 보리쌀을 싫어하셨던 아버지는 쌀밥만 드셨다. 아들손자 며느리 딸들이 다섯이나 줄줄이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으니, 쌀은 드문드문 머리에 새치 나듯 섞여져 꺼칠꺼칠한 보리밥을 온 식구들은 먹어야 했지만 아버지 밥은 눈송이처럼 뽀얀 쌀밥이 소복하게 놋그릇위로 올라왔다. 딸의 마음을 잘 아시는 아버진 한 숟가락정도의 밥을 남겨놓으신다. 쫀득거리는 쌀밥을 먹으며 어린마음에도 이담에 부잣집으로 시집가면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쌀밥을 실컷 해드려야지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졌으나, 이루지 못함이 늘 한쪽 가슴을 아프게 한다. 왜 그리도 일찍 가셨는지 효도를 할 시간을 주지 않으셨다.
가설무대에서 풍악이 울려댄다. 마치 시름을 달래주려는 위로의 연주로 들려와 가슴이 뭉클해진다.
점점 원고지 칸 안에 서툴게 써지고 있는 올망졸망한 글자들이 애지중지 여겨진다. 이 좋은 가을 날 평화롭게 축제장을 찾아 모여드는 축복인들 속에 나도 끼어 한 몫 한다고 생각하니 태산 같았던 걱정이 슬금슬금 물러나고 평온한 기분 전환이된다.
맑은 산공기가 연륜의 무게를 다소 감소 해주는 듯 두둥실 마음이 부푼다.
논의 벼들이 사그락 사그락 소리를 내며 살아 있다는 신호를 한다. 마지막장을 쓰는 이 순간 신랑이 해준 아침밥상이 따뜻하게 행복감으로 밀려온다.
끝. 2008년 10월4일
<일반부 운문-차상>
강산
심재희
솔향기 번지는 소로를 에돌면
할머니 숨 베어나는
널지막한 뜰 위로
근사한 밥상이 차려진다.
구름한점 기대지 낳은 하늘속
고운 빛 받아 잔을 채우고
한세월 달아난 시간 붙잡아
그리움을 앉힌다.
소나무껍질같던 할머니 손은
어느새
어머니 손 되어
들숙날쑥 솟아버린 수풀
허리를 자르고
간간이 휘젓는 손사래
바람을 가른다
털어도 털어도 한줌뿐인 가슴
목메어 부르는 그 이름
메아리로 돌아와
가슴에 앉는다.
그렇게 산자락은
어머니의 우주가 되었다.
<운문-차상>
강산
최미향
봄부터 알알이 맺힌 땀방울 시나브로 영글어
자식들 손마다 그득하게 들려진 보따리
해마다 소신공양 마친 잔잔한 미소 넘실대는
돋을 볕이 눈 비비며 살몃살몃 찾아 들고
고추바람이 쭈뼛거리며 엉덩이 들이미는 곳
가진 것 다 내어주고 도리어 가득 차는.
<일반부 산문-차상>
밥상
한주형
“할머니, 할머니 저희 왔어요”
동생과 둘이서 찾아간 흙마당 초가집은 텅 비어 아늑함만이 서성대었다.
추석이 지난 며칠 후는 달은 더욱 휘둥글해져 맑은 호수를 집어 삼킨듯도 하다. 달빛에 어른거리는 외할머니의 모습이 다가오는 가을을 더욱 쓸쓸하게 한다.
한쪽 눈을 지긋 감고 구멍 뚫린 창호지를 연신 들여다보다가 부엌으로 달려가 보았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걷느라 지친 우리는 찬장을 열고 샅샅이 뒤져 보지만 간장에 찌든 내만 배어 부엌을 지키고 있었다. 아궁이 속에 혹여 익다 만 감자라도 있을까하며 부지깽이 집어들고 재를 톡톡 쳐 보아도 검은 먼지만이 휘날리며 목젖을 호령하듯 했다. 뒷마루에 걸터 앉아 서산으로 넘어가는 햇살을 간신히 붙잡고 있을 때, “이게 누구냐, 우리 이쁜 강아지들” 하며 둘을 한 품에 안아 주시고는 광에 감추어 놓았던 과일을 꺼내놓으셨다. 그리고 재빨리 무쇠솥에 쌀을 앉혀 아궁이을 달구시던 모습이 둥근 달 표면에서 구름에 가려 조금씩 사라진다.
집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햅쌀밥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며 외할머니의 마음을 전해주었다. 찬이야 뭐 그리 있었던가! 고춧가루만 수북한 듯한 배추김치 한 가지가 왕후장상이지... 매워서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할까봐 쪽쪽 찢어서 수저 위에 올려 주시면 큰 입을 벌려 입맛을 쩝쩝 다시며 허기진 배를 채웠다. 사발 가득 밥을 다 먹도록 김치만 찢으시고 당신은 밥상만 지키셨음에도 왜 같이 안 드시느냐고 묻지도 않고 게걸스레 먹기만 했다. 뚝딱 해 치워버린 설렁한 밥상에 할머니의 쓰린 가슴도 올려져 있었지만 철이 미처 들지 않은 어린 눈엔 그것이 보이질 않았다. 맛나게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 왔을 때 엄마에게 야단만 맞아야 했다.
외할머니의 포근한 정이 그리워 찾아 갔건만 찢어지도록 가난했던 외가집에 허락도 없이 다녀왔다는 이유로 꾸중을 듣고는 억울함에 울다 지쳐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손주들을 아끼시던 외할머니가 돌아 가신지는 한참된다. 이제 내 아들이 그대로 돌아가 추석이면 외가집을 찾는다. 내가 어릴적 받았던 그 밥상이 친정 엄마의 정성으로 아들에게 나올 땐 살기 어려웠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 그 시절보다 색깔도 화려하고 맛도 다양한 진수성찬의 밥상이지만 아들의 수저엔 김치가 자주 오른다. 외할머니의 내리사랑이 우리 아들에게도 그대로 꽂혔나보다. 스스로 김치를 찾아 먹으니 기득하기가 그지없다.
효는 실로 때가 있는 것 인가싶다. 외할머니가 조금만 더 사셨더라도 따뜻한 밥 한번 지어드릴 수 있을텐데... 후회하며 아쉬워 하지만 이미 고인이 되셨으니 가슴 아파하며 가을을 서글피 보낸다. 이제 외할머니가 되신 친정엄마에게 잊을 수 없는 따듯한 밥알이 되어야겠다.
곧은 소나무같던 친정엄마의 등도 굽어만 가신다. 흐르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굽은 허리 움켜쥐고 수묵화에 열중이신 엄마를 위해 연극 「염쟁이 유씨」 티켓을 예매해 놓았다. 효를 행하지 못했던 마음에 이제 내 가슴이 서늘해진다. 이 달엔 일흔 중반의 엄마 손을 잡고 연극을 보려한다. 불효를 너무 늦게 깨달음에 안타깝기만 하다. 부모님 젊으실 땐 속만 바그바글 썩이더니 마흔 중반이 되어 뒤늦게 철이 드니 거동이 불편하신 부모님과 동행하는 것도 맘만치 않다. 송대공원 옆 누런 들판에서 바람이 흔들리며 고개 숙인 벼이삭을 내려다보니 나 또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내 가슴도 황금빛으로 출렁이다가 누군가의 밥상에 오르고 싶다.
미침 오늘은 주말이니 부모님께 따뜻한 밥상을 올리러 가 봐야지.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 가득히 담아 올리려 한다. 그 무게에 상다리가 휘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