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 목사 (인천제2교회)
"너는 마땅히 매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예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이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내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 14:22-29)
"목사님, 앞으로 친손자를 보시면 외손자는 눈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정말요? 지금 같아서는 절대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제가 장담하건대요. 나중에 친손자와 외손자가 싸우면 목사님도 외손자를 아래에 놓고 친손자를 위에다 놓으실 걸요!"
이 이야기는 어느 날 외손자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나에게 연세 드신 장로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주위에 있는 어느 어린아이보다도 자기 손자에게 더 마음과 사랑이 가듯이 사람들에게는 왠지 더 끌리는 대상이 있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많은 성도 중에 하나님께서도 왠지 더 사랑하고 싶은 성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성도일까? 그 대상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즉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의 몸 된 교회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더 사랑하여 실천하는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구원은 예수님의 일방적인 은혜이지만 그 후 그 주님을 사랑하는 것만큼 현제와 내세에 더 큰 사랑과 복을 받는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찾는 성도의 모습 중 한 가지 표현은 마음을 다해 주님의 역사를 위해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헌금일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헌금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실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신약 성도들의 그림자인 구약 선민들은 1년 소출의 십 분의 일을 십일조로 하나님께 드렸다. "너는 마땅히 매년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신 14:22). 성경을 보면 '너희는'이라고 하지 않고 '너는'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십일조 혹은 헌금은 가족 전체로 하는 것보다 가족 개인별로 하는 것이 더 성경적이다. 구약뿐 아니라 신약에서도 갈라디아 및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헌금 드리는 기준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고전 16:2). '너희 각 사람'이라는 말씀에 따라 정기적인 수입이 없는 가정주부라도 어쩌다 하나님께서 예상치 못했던 물질을 주시면 그것의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아직은 돈을 벌지 못하는 아들, 딸이라도 용돈을 주면서 그것의 십일조를 드리는 경건을 일찍이 가르쳐야 한다. 어렸을 때 그런 신앙 훈련을 받으면 늙어서도 십일조 신앙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며 그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떠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마땅히' 드릴 것이란 의미는 십일조 신앙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상대적인 명령이 아니라 절대적인 명령이며 성도의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인 것을 의미한다. 그 당시 예루살렘 중앙 성전에서 거리상으로 멀리 사는 선민들은 자신이 추수한 무거운 곡식의 십일조를 가져올 수 없었다. 그런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팔아 돈으로 환전하여 중앙 성소에 와서 제물로 드릴 동물이나 필요한 물품을 사서라도 여호와께 십일조 드릴 것을 명령하셨다.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성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신 14:24-26상)
이렇게 십일조를 마땅히 드려야 할 이유는 첫째, 자신의 땅과 모든 소유의 주인은 아버지 하나님이시요 자신은 그의 자녀임을 고백하는 것이 십일조이기 때문이다. 둘째, 십일조는 자신에게 있는 유무형의 복과 소유한 모든 소산은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 결과라는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 셋째, 현세와 내세의 구원 받음과 자신의 생사화복이 자기 자신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동시에 사랑하는 표시로 십일조로 보여 드리면 그 성도들을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피할 길로 인도해 주시며 결국 아버지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을 실생활 속에서 배우게 될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신 14:23). 그러므로 선민들에게는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번민과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축제였다. 그 이유는 자신이 이미 받았고 또한 받고 있는 복이 하나님께로 왔음에 대한 감사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임할 그분의 은총에 대한 선제적 감사가 십일조와 헌금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신앙 생활을 하는 성도라면 십일조와 헌금 드리는 시간이 마음의 축제요, 드림으로 자신의 앞날을 긍적적으로 담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소망의 축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헌금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자신의 물질뿐 아니라 인생까지도 맡기는 순간이 되므로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평안함을 얻게 하는 축제로 변하는 현장이 되는 것이다.
십일조를 드림에 있어서 십일조 가운데 일부를 부활절, 맥추절, 감사절 및 성탄절 헌금을 드리거나 구제와 사회복지 혹은 전도와 선교헌금으로 드리는 것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특히 십일조를 가지고 건축헌금이나 각종 감사헌금으로 사용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또한, 한달에 집일조를 포함해 모든 헌금액수를 총 합쳐서 십의 일만 드리면 된다는 판단이나, 심지어 분명 그 성도의 생활과 수입이 크게 향상되었는데도 약 10여 년이 지나도록 십일조 액수가 거의 변함이 없는 것도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이다.
십일조는 십일조로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 한다. 미국의 멘소레담 회사의 사장인 알부렛트 알렉산더 하이드씨는 사업에 실패하고도 작정한 십일조를 변함없이 드렸다. 물론 채권자들이 십일조를 바칠 돈이 있으면 우리에게 진 빚을 갚으라고 야단을 치는 거은 당연한 일잉었다. 그러나 그는 그 상황에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하나님을 향한 신용을 지키느냐, 아니면 사람과의 신용을 지키느냐 양자택일할 수밖에 없을 때 저는 하나님께 신용을 지켜 드리는 것이 더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십일조는 내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합니다." 욕을 먹으며 빚을 내어 십일조를 드린 것이다. 하나님의 응답의 때가 되자, 하나님은 하이들의 친구인 피부과 병원을 하는 의사를 사용하셨다.
그 친구 의사가 처방하여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이 사용하는 멘소래담을 소비자들에게 판매해 보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후 멘소래담은 히트 상품이 되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과 한국사람들까지 애용하는 상품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 그는 빚도 다 갚았으며, 나중에는 십의 일조가 아니라 십의 구조까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드렸다. 이같이 십일조는 축복의 결과이지만 동시의 축복의 원인이 됨을 절대 잊지 말고 믿음으로 드리며 소망 속에 기대하고 체험하기를 소망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