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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로
대패 삼겹살 외
불판 위의 아이스크림 수북한 대패 삼겹살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새끼를 일곱 번 이상 뺀 종돈의 살이란다 엑기스 다 내준 가장 맛없는 살로 대패 삼겹살을 만든단다 어떤 이가 살을 얼려 슬라이스로 팔아먹을 생각을 했을까 자본주의의 탐욕에 놀라면서도 요즘 대세인 대패의 상상력이 부럽다 눈앞에서 녹고 입안에서도 녹는, 즉석의 취향을 대패는 읽은 것인가 무릎을 꿇듯 자세를 낮추는 살얼음을 보며 내 앞에서도 저렇게 허물어지는 것이 있다니, 돈 몇 푼에 서글픈 갑질의 상상력을 채워 주는 것인가 혹은 부풀었다가 꺼져버린 지난날 저의 한때를 바라보는 자학 때문인가 뽕 가발, 뽕 브라, 뽕 근육들처럼 뽕이 설치는 세상에 큰 접시 가득 담은, 멀쩡한 허우대를 한 번 자랑하고 싶은 것인가 속절없이 빠질 거품에 취기를 투기하고 싶은 건가 저 알량한 대팻밥이 바닥에 깔리는 시대 정서를 다 읽어 버렸다 꽃이 피고 지는 저 말초적 화류, 그것을 대패는 제 몸에 아프게 새긴 것이다 잘려 나간 것이 잘려 나온 사람을 마주 하는 어둑한 선술집 세상에 깎여 나간 못난 대팻밥들이 허름한 하룻밤을 말고 있다 대패 앞에 굵은 고개를 처박고
사막의 신
다른 곳은 몰라도 사막에서만큼은 분명 신이 있는 것 같다
생명이 있을까 싶은 그곳에 신은 한 동물을 그의 설계대로 살게 하셨다 여닫이 콧구멍과 지방을 저장하는 등의 혹, 널찍한 발바닥에 별을 읽는 천리안과 가시마저 씹는 맷돌 같은 혀와 입
신은 고행의 수도자를 고해의 사막에 살게 하셨지만
낙타는 원망 대신 무릎을 땅에 매일 꿇는다 그것도 고마운 목숨이라고
누군가가 저 자신을 만든 후 저를 위해 저 끝없는 사막을 펼쳐 주셨다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낙타 앞에서 나는 겸손한 유신론을 읽는다
*경남 창원 출생. *부산대 경제학과 졸 *2017년 《시와표현》 *201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