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옛집' 찾아가보니… 통인동 이상 집, 등록문화재에서 해지될 위기,, 김수영 살던 종로6가 한옥은 집터만 남아
글·사진=신정선 기자
서울시가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의 서울 관악구 남현동 집을 복원하기 위해 사들인 지 4년이 넘도록 방치돼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미당이 30년 간 살았던 이 집은 처마가 허물어지고 벽은 낙서투성이다. 방치된 문화예술인의 고택(古宅)은 서울에만도 10곳이 넘는다. 2003년에는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 빙허 현진건(1900~1943)의 집이 철거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러자 2004년 9월 문화재청은 시인 이상과 화가 이중섭의 집 등 8건을 등록문화재에 올렸다. 그 뒤 이 집들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신정선 기자가 이틀 동안 문화예술인의 옛집 12곳을 찾아가봤다.
소설가 현진건 집터 1930년대 한옥 2003년 철거...“예술인 옛집 보존” 기폭제 지금까지 바뀐 것 없어 ▲ 소설가 현진건 집터
종로구 부암동 동사무소와 보은마트 사이 무계정사1길을 따라가면 커다란 공터가 나온다. '빈처' 'B사감과 러브레터' '운수 좋은 날'을 쓴 현진건의 집터다. 현진건은 1930년대 지어진 한옥에서 결핵으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살았다. 당시 문화유산 보존을 두고 큰 논란이 일었으나, 4년이 지난 지금도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집터를 에워싼 가림막은 군데군데 뚫려있고 출입을 막는 가로막이 놓여있다. 집터 오른편에는 '현진건 집터'라는 표지석이 있다. 돌에는 '근대문학 후기 단편소설의 형식을 개척하고 사실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소설가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문화재청은 "공터·비(碑)·묘(墓)는 문화재 등록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흉가(凶家)된 '1호 서양화가' 고희동 자택 ‘1호 서양화가’ 고희동 집
▲ '1호 서양화가' 고희동 자택
최초의 서양화가였던 춘곡 고희동(1886~1965)이 41년간 머무르며 작품 활동을 하던 종로구 원서동 자택(등록문화재 84호)도 흉가로 변했다. 1918년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화가가 대지 529㎡(160평)에 ㄱ자형 한옥을 직접 설계해 지었던 곳이다. 철문 너머로는 낡은 기와 지붕이 보였다. 안채도 일부만 남아있고 사랑채도 절반 이상 형태를 잃었다. "근대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고택의 멸실을 막아야 한다"는 문화연대와 한옥사랑시민모임의 반대에 부닥쳤다. 서울시가 뒤늦게 매입에 나섰으나 한샘 측과 가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샘 측에서는 "매입 이후 문화재로 지정돼 재산권 행사를 못 하고 있다"며 "서울시에서 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주민 서상달(77)씨는 "몇 년째 폐가로 방치돼 있으니 보기 흉하다"면서 "하루빨리 예전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이상 가옥, 등록문화재 해지될 위기 시인 이상 집
천재 시인 이상(1910~1937)이 20년 넘게 살았던 통인동 집(등록문화재 88호)은 상가로 변했다. 기와 지붕만 일부 남은 건물에는 '명품수선, 양장'이라고 간판을 단 수선집과 한문을 가르치는 '효자서당'이 입주해 있다. "안쪽에도 한옥 모습은 남아있지 않고 창고로만 쓴다"고 말했다. 김원 김수근 문화재단 이사장은 "당시 집이 헐리는 것을 막으려고 재단 기금으로 어렵게 구입했다" "뜻있는 시민이나 문화단체가 이상기념관 등으로 살리기 위해 나설 줄 알았는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고 시에서도 지원이 없다"고 말했다. 재단 내부에서는 집을 매각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집터는 이상이 살던 곳이 맞지만 건물 원형이 거의 사라져 이상이 살던 집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 폭삭 주저앉은 김수영 집 시인 김수영 집터 2004년 폭설때 무너져,,등록문화재 추진 없던 일로,,집터는 전시공간으로 사용중
▲ 시인 김수영 집터
한국 시문학사의 큰 별 김수영(1921~1968)이 젊은 날을 보낸 종로 6가 한옥은 2004년 3월 초 폭설에 기둥이 무너지면서 폭삭 주저앉았다. 문화재청이 2004년 2월 현장조사에 들어갔으나, 4월 평가 회의를 앞두고 무너져버려 논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됐다. 키 낮은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골목 끄트머리에 하얀 벽이 보였다. 원래 72㎡(22평) 단층 한옥이 있던 자리다. 2004년 4월 김수영 집터와 옆집을 함께 매입한 박건희문화재단이 두 집을 터서 '대안공간 건희'라는 전시공간으로 쓴다. 박영미 학예실장은 "(김수영 집터는) 매입 당시 쓰레기장이었고, 옆집은 원단 창고였다"고 말했다. 3면을 막고 있는 흰 벽에는 여러 가지 표정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주민들은 "가끔 전시를 하는 것은 알았지만, 유명한 시인이 살던 곳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동화작가 마해송(1905~1966)의 명륜동 3가 자택은 현재 김 모씨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먼지가 내려앉은 기와를 얹은 한옥은 벨을 눌러도 응답이 없었다. 동화작가 마해송 집 집주인 반대로 문화재 등록 안돼
▲ 동화작가 마해송 집 소유주의 자발적인 보호노력을 이끌어 낸다는 취지에 따라 건축물 보수나 개조에도 법적인 구속이 없다.
국세와 지방세 50% 감면 등 혜택을 주지만,
그것만으로 건물 보존에 대한 인센티브로 작용하기에는 약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누상동, 누하동, 통인동의 문인들 화가 이중섭 집 누상동 골목길에… 등록문화재 86호
▲ 화가 이중섭 집
조선 중·후반기 중인들이 살던 누상·누하동 일대에도 문인들의 옛집이 많다. 자동차가 지나가기 힘든 좁고 꾸불꾸불한 골목을 지나 시멘트 계단으로 이어지는 누상동 언덕길에 화가 이중섭(1915~1956)이 살던 집(등록문화재 86호)이 있다. 어른 두 명이 간신히 지나갈 골목길 오른쪽의 초록 대문이다. 현재 정 모씨가 산다. 화가 이상범 집 서울시에서 매입… 수리 필요한 상태
▲ 화가 이상범 집 누하동에는 화가 청전 이상범(1897~1972)이 30년간 작품 활동을 하던 화실과 집이 있다. 집은 시에서, 화실은 종로구에서 각각 2006년과 2004년에 사들였다. 동네가 재건축 바람을 타면서 집값이 갑자기 뛰어, 시에서 어렵게 매입했다는 후문이다. "종로구 누하동 182는 이상범 선생이 작고할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하였던 곳으로 그 역사성을 기념하여 여기에 표석을 세운다." 서까래 하부가 일부 무너져 수리가 필요한 상태로 알려져 있다. ◆ 관리 잘 된 박종화, 홍난파 자택 작곡가 홍난파 집 살던 당시 집 모습 훼손 안돼
▲ 작곡가 홍난파 집 '금삼의 피'와 '양녕대군'를 쓴 소설가 월탄 박종화(1901~1981)의 평창동 고택(등록문화재 89호)은 평창동사무소 건너편 길로 800m를 더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가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한옥도 비교적 원형을 지니고 있다. '100미터 앞 홍난파 자택'이라는 친절한 표지판이 서있다. 담쟁이넝쿨이 벽을 따라 올라간 벽돌집은 종로구가 2004년 사들였다. 관리를 맡은 곳은 사단법인 음악사랑운동본부. 대문에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홍파동 홍난파 가옥 문화재청'이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앞으로 연주회와 음악 교육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동양화가 배렴 집
▲ 동양화가 배렴 집 동양화가 배렴(1911~1968)의 계동 한옥(등록문화재 85호)은 '북촌 게스트하우스'로 단장하고 손님을 맞는다. 서울시 산하 도시개발공사에서 매입해 주민에게 위탁 관리를 맡겼다. 방 5개 'ㅁ'자 아담한 한옥은 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다. 이달 둘째 주에는 미국인 10명이 단체예약을 했다. 2박에 6만원 정도. 관리를 맡고 있는 고선정(33)씨는 "남편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일본인 관광객이 평균 70% 정도"라고 말했다. ◆ 시민 모금으로 살아난 최순우 옛집 미술사학자 최순우 집
▲ 미술사학자 최순우 집
보존과 활용이 잘 되고 있는 가옥으로는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성북구 동선동 화실(등록문화재 134호)과 미술사학자 최순우(1916~1984)의 성북 2동 고택(등록문화재 268호)를 들 수 있다. 두 곳 다 비영리 재단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관리한다. 동네 주민에게 "권진규 선생댁을 아느냐"고 묻자 "아, 조각가요?" 하면서 곧바로 위치를 알려줬다. 주택가 뒤쪽으로 나있는 가파른 계단을 지나니 최근 개보수를 마친 한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각가 권진규 집
▲ 조각가 권진규 집 가옥은 41.92㎡(12.7평), 작업실은 36.91㎡(11.2평) 규모.
군청색 대문에는 지난 1일 열린 심포지엄의 포스터가 석 장 붙어 주인을 알려주고 있다.
화가의 붓과 선풍기 등 유품을 전시하고, 미술가들의 작업 공간으로도 임대할 예정이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등의 저서를 남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혜곡 최순우가 살던 1930년대 한옥은 시민들의 정성으로 사들였다.
2002년 8월 당시 소유주가 집을 내놨다는 소식에 내셔널트러스트가
모금에 나서 그해 12월 8억을 모아 매입에 성공했다.
대지 395.042㎡(120평), 한옥 101.92㎡(31평) 규모로, 복원 및 보수공사를 마치고 2004년 문을 열었다.
4~11월 무료 개방한다. 입구 20m 앞에 관람객을 위한 표지판이 찾기 쉽게 서있다.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의 김영수 선임연구원은 "문화유산은 지나치게 활용에만 치중해서는 안 된다"며 "본래의 가치를 지키려는 사회적 공감대가 먼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
출처: 好雨知時節 원문보기 글쓴이: 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