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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자 시집 발문
빛을 찾아 나서는 부채의식
강 영 환(시인)
한 사람의 생이 건너온 삶의 깊이와 넓이는 쉽사리 가늠되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의 가치는 무엇으로도 비교 불가능하다. 그것을 또한 글로 풀어내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더구나 산문이 아닌 운문의 형태로 형상화하여 보여 주기란 대단히 힘든 일이다. 시는 특별한 모습을 지닌 형태의 글이다. 그냥 쓰여진 산문에 비하여 절제된 감정이나 특별한 표현방법을 동원해야만 가능한 글쓰기 형태다.
박윤자 시인은 2014년 시 엔솔로지 《그림나무 시》 창간호에 작품 「모자」 외 4편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등단하였다. 신춘문예나 월간지 혹은 계간지 등을 통한 등단은 아니지만 시를 쓰고 있기에 시인이라 불러도 그렇게 흠 될 것은 없다. 본인은 쑥스러워하고 부끄러워 여기지만 그의 시들을 들여다 볼 때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높은 정신적 깊이와 아름다운 형상화를 이뤄내고 있고 충분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음을 본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기에 그리고 등단이 져야 할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등단을 권유해도 그런 허명에는 스스로 외면해 왔음을 이번 작품집을 통해 여실히 증명되고 있음을 느낀다.
박 시인이 2013년 영광예술문화원 시창작반 문을 처음 두드렸을 때 매우 조심스러웠고 겸손해서 등록하라는 말을 선뜻 해줄 수가 없었다. 시는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그러나 시적인 마음을 소유한 이는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겸손함과 함께 시를 경외하는 마음을 지닌 박윤자 시인은 시를 대하는 기본자세가 되어 있었다. 시를 장식품처럼 몸에 달고 다니며 과시하는 그런 시인이 아닌 혹은 시를 출세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그런 시인도 아닌 진정으로 시를 사랑하고 절실하게 시를 쓰고자하는 열의로 가득 차 있는 분이었다. 스스로 시 창작 교실의 문을 두드렸던 그 용기가 시인이 될 자격을 충분히 지녔다고 생각되어 수강생으로 받아 들였던 것이다. 박 시인은 처음에는 더뎠지만 꾸준한 습작을 통해 시가 무엇이라는 것을 차츰 터득하게 되었고 어떻게 표현해야 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 시인의 기량과 시적 감수성이 차츰 확대 되면서 어느덧 꾸밈없고 장식없는 담백한 시를 뽑아내는 방직기가 되어 있음을 알았다. 숱한 언어들 중에서 적합한 언어를 골라 베를 짜듯이 씨실과 날실을 직조하는 솜씨가 고우면서도 매서웠다. 시는 결국 언어에 의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해 내는 것이다. 그 언어에 ‘낯설게 하기’란 기법을 이해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의 언어영역을 넓혀 가곤 했다. 이제는 어떤 제재가 주어지더라도 그것을 시로 형상화해 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목표가 길이다
소통이 없는 길은 허수아비다
가다가 멈춰버린 길이 나를 부른다
은행나무가 거리에서 운다
무자비하게 떨어뜨린 열매
깨금발로 피해 가는 사람들
은행나무를 향해 젊은 피가 신호를 보낸다
언제까지 벼랑 끝에서 아래만 볼 수는 없다
숨을 고르고 젖은 눈 치뜨자
“취하여라…*
술이든 시든 또는 도덕이든 무엇에고
그대 좋도록 그러나 다만 취하여라”
몸에서 악취가 나지 않도록
무엇에고 취하고 싶은 가을이다
―「고독사」 전문
클로드 베르나르는 ‘만약 내가 한 마디로 삶의 정의를 내려야 한다면 ’삶은 창조이다‘라고 말할 것이다’고 했다. 박윤자 시인의 삶은 창조적이다. 노래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쓴다. 삶의 바쁜 일정에 쫓겨 제대로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 못하고 젊은 날을 보내버렸다. 이제 자신이 쓸 시간이 많아지자 숨겨 놓았던 창조적 에너지가 차고 넘친다. 그러나 아직도 박시인은 어떤 부담감을 안고 살아간다. 그 부담감은 사별한 부군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로움을 부여 받지 못하고 생전에 잘해 주지 못한 안타까움이 낳은 트라우마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먼저 떠나보낸 부군에 대한 안타까움이 잘해 주지 못한 부분만 남아 부채의식으로 작용된다는 것이다. 여행을 가서 좋은 곳을 보아도 맛 나는 음식을 마주 해도 함께 지내왔던 생활공간 속에서 부채의식은 문득문득 솟아나 의식을 지배한다.
시는 마음에 갖는 부담을 풀어낸다고 하였다. 그것을 시인들은 카타르시스라고 말한다.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부담을 풀어냄으로써 부담으로부터 벗어나는 방식이다. 이 시집에서 5년간의 정진의 결과물로서 그동안 고심의 흔적을 세상에 내놓는 박윤자 시인의 언어는 결코 가볍지 않는 무게감을 갖고 있다. 그동안 삶의 깊이와 넓이를 아우르는 폭넓은 언어이기에 그렇게 느껴진다. 부군을 사별한 뒤에 찾아오는 빈자리의 허전함과 많은 시간들의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고교 학창시절 때 활동했던 합창반의 기억을 살려 노래를 불러왔고, 오랜 취미생활로 이어져 온 그림을 그렸고, 자신의 내면에 타오르는 열정을 시로 풀어냈던 것이다. 이 시집의 4부에 수록된 작품들 중에 실명으로 된 작품 하나가 있다. 먼저 떠난 부군에 대한 애틋한 사부가인듯 보여지는 작품이다. 벗어날 수 없는 부군에 대한 트라우마를 짊어지고 모든 사물과 만나는 박 시인은 도처에서 그 흔적들이 발견된다.
장안읍 오리 농원에 심은 나무
모과 향기로 집에 왔다
설거지 끝내기 전에 대문을 넘고
차 옆자리 앉으면 담배 꺼낸다
가는 길에 비료포대 트렁크에 실린다
농약 안친 나무들 몇 년 못간다
당신 생각에 발바닥이 밭고랑에 빠진다
바람 퍼 나르는 언덕배기에
반짝이는 억새꽃 물든 감잎 떨어져
켜켜이 쌓이는데…
콧노래 흥얼대며 뿌린 도라지 씨
황토밭에서 꽃으로 웃어주던 그날들
산토끼, 고라니가 갉아먹은 고구마
당신의 발은 싸움터였고
손은 방패였다
신바람 일으키며 저 비탈에 키운 나무
벌레 먹은 모과향 되어
온 집안을 돌아다닌다
―「차귀준」 전문
박시인은 시집의 앞머리에 ‘차귀준을 아끼고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이 책으로 감사 인사를 드린다/이제, 제 짐을 조금 내려놓아도 될까요?’라고 쓰고 있다. 짐작컨대 먼저 떠나보낸 부군의 함자가 ‘차귀준’으로 여겨진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 어디에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텃밭을 가꾸러 부군과 함께 다니면서 있었던 추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부군의 손길이 구석구석 스며있는 전원주택에서 나무를 가꾸고 텃밭을 일구던 모습을 그려내면서 화자는 회한에 잠긴다. 살펴보면 이 시집은 차귀준이라 이름하는 부군의 자서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여행지에서의 풍광들도 함께 바라보던 풍경들로 그려진 것들이 아닌가. 떠난 이에게는 잘 해 주었던 기억은 나지 않고 부족하고 해주지 못한 일들만 가슴에 남아 회한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런 것들이 이 시집을 묶게 되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강을 건너다」에서는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심경을 풀어내고 있다. 아마도 부군과의 이별을 염두에 두고 떠나는 부군의 마음을 헤아려 그려낸 것이라 생각된다. 서문에 ‘그가 자서전을 쓰고 싶어 했다/시간은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았고/나는 지금에야 숙제를 하고 있다/이 책을 당신에게 올린다’라고 하며 이 시집을 부군에게 바친다. 시에 그려진 내용들도 어쩌면 유명을 달리한 부군의 가피력에 힘입어 쓰여진 것들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갈림길을 마주 했네/영육이 나뉘는 순간을 맞이했네/손에서 놓기 싫은 내 새끼들/애지중지한 내 집 내 책들/내 것은 아무 것도 가질 것이 없구나/여보 울지마라’(「강을 건너다」)며 이별의 순간을 회상하는 부군의 독백으로 채워진다. 이런 마음에 쌓인 응어리들을 시원하게 풀어냄으로써 부군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소회를 담아냈다고도 볼 수 있다. 어쩌면 이 시집은 부군을 완전히 떠나보내고 내 삶의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찾기 위한 선언서 같기도 한 것이라고 한다면 너무 앞서간 추측일까. 그것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널려있다.
거실 가득 조여 오는 젖은 공기
온몸을 안개 가운데로 불러 모은다
시월 마지막 날
커피 두 잔을 티테이블 위에 올렸다
성질 받아 주던 이 지금은 없다
잔소리해도 그러려니 넘어가던
‘그대도 한잔 하시게’
생일 선물 가죽의자에 파묻혀
끝없이 생각에 끝을 따라가는 시간
구름 따러 올라갈 사다리는 없다
해가 먹는 식탁에 초대 받을 수는 없는
방안에서 구름을 먹고 있는
화장기 없는 여자가 아름답다.
―「가습기」 전문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부담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획득하는 일이다. 시인이 가져야 할 정신은 바로 자유로운 영혼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영혼이 자유롭지 못하다면 어떤 편협한 사고에 묻혀 사물의 본질을 왜곡해 표현할 수도 있다. ‘시월 마지막 날/커피 두 잔을 티테이블 위에 올렸다/성질 받아 주던 이 지금은 없’는 거실에서 이제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방안에서 구름을 먹고 있는/화장기 없는 여자가 아름답다.’ 누구를 위해 화장을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자유로운 영혼을 갖게 된 것이다. 평생을 함께 살아오며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써야했던 지난 시간들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부군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 이제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태양은 천천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먼지로 변한 내 눈물도 서둘러 따라 나선다
이제 나는 자유다
백사장에 긴 그림자
어둠속에 사라진다
―「나는 자유다」 뒷 부분
이 작품 뒷부분에서 자유를 얻은 모습을 보여 준다. 나를 지배하던 태양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사라진다. 그에 따라 먼지로 변한 내 눈물도 함께 따라가서 소멸한다. 그런 뒤 선언한다. ‘이제 나는 자유다’ 나를 지배하던 것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자유를 얻게 되고 백사장에 드리워진 내 검은 그림자도 어둠에 묻혀 사라진다. 사별한 부군에 대한 부채의식이 사라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떤 작은 일에서부터 늘 따라다니며 내 영혼을 간섭하던 그림자가 사라지고 이제는 빛을 찾아 내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그 길 위에서는 혼돈이 있을 수 없다.
벽을 사랑하는 나는 내 귀를
자주 그대에게 주었다
무엇이든지 들어보라고
벽을 사랑하는 나는 내 눈을
종종 그대에게 주었다
환하게 세상 구경하라고
벽을 사랑하는 나는 입도
가끔 내어 주었다
마음껏 노래 부르라고
벽을 사랑하는 나는
하루 종일 그가 불러 주는 노래를 듣고
창밖에 풍광을 그가 보는 대로 보며
한 시절이 행복했다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벽」 전문
벽이라 지칭되는 이 사물에서도 시인은 그대를 느끼고 있다. 벽을 사랑하여 귀와 눈과 입과 마음을 온통 줄 수 있는 것은 시인 아니라면 누가 할 수 있을까. 벽과도 대화를 할 수 있고 벽이 가진 장벽을 뚫고 나아갈 수 있는 오감을 드러내 보여 주는 시인의 혜안이 깊이 있게 느껴진다. 이것이 시인이 가지는 사물과의 대화법이다. 오랜 삶의 경륜을 지니지 않다면 이런 벽과의 대화법을 찾아 낼 수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세상에 산재하는 사물들과의 대화와 관계를 유지하면서 시인은 삶의 의미를 솎아낸다. 그것은 시인이 찾아낸 사물과의 새로운 관계설정이 아닐까.
박윤자 시인은 혼자 남겨진 고적감을 이기기 위한 방법으로 여행을 택했다. 낯선 곳에 가서 낯선 풍경과 마주함으로써 내면에 이는 갈증을 풀어내는 것인지 모른다. 시인의 여행지는 다양하게 산과 바다를 안고 있다. 치악산, 토함산, 제주 혼인지, 태백산 고랭지, 다대포, 화왕산, 곡성 가정역, 구례 사성암, 남해도 다랭이 마을, 양구 두타연, 오어사, 백련사, 울릉도, 울주 배내골, 여수 금오도, 스페인 세비야 등 많은 곳을 다녔다. 다니면서 한 편의 시를 찾아오곤 한다. 여행을 다니면서 시와 만날 수 있음은 항시 시심으로 여행을 다닌다는 증거가 된다. 시에 대한 깊은 생각과 열려진 시심 없이는 시가 찾아오지 않는다. 시는 발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여행 중에 시를 발견한 것이다. 여행에서 시인이 발견한 것은 빛이다. 마음 안에 자리 잡은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었고 해방을 맞이하는 길이었다.
햇살에 그림자를 말리는 시간
아이들은 오늘 받은 시간을 채우러 갔다
한가한 대문들과 수다를 떨고 싶지만
꽉 다문 입술에서는 바랄게 없다
“김영선씨”“ 최경화씨” 우체부가 이름들을 외쳐도
빈집은 혼자서 감당하기 어렵다
손수레 끌고 시장에들 몰려 갔나보다
편지도, 택배도 담을 살짝 넘는다
낙하하는 소리가 가볍다
담 너머 비파나무 열매가 몸을 흔든다
허기진 골목이 웃는다
비 개인 아침 말간 바닥에
낙과 밥상이 차려진다
골목은 하늘 바깥세상이 늘 궁금하다
―「골목길 연가」 전문
박시인의 작품은 사물을 그려내는 즉물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도 쉽게 만날 수가 있다. 택배상자를 쌓아 올리다 죽은 휴학생을 통해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삶들을 캐낸 「탑」이나 작업기계의 밑바닥을 청소하다 기계에 깔려 죽은 아르바이트 청년의 죽음을 일깨워 주고 있는 「극한직업」, 신종 풀루가 유행할 때 구할 수 없었던 약 타미풀루에 관한 시 「마네킹」, 남북 정상회담 때 식탁에 올려진 독도새우에 관한 한일간의 미묘한 이야기를 담은 「독도새우」, 재개발지의 철거민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는 「재개발구역」, 이런 사회적인 이슈를 담은 작품들을 통해 살기 좋은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시인의 간절한 바램이 담겨져 있다.
‘죽기는 쉬워도 비키기는 어렵다’
도로변 삼층집은 현수막이 울고 있고
금정산 남은 자락마저 숨겨버릴 참인가
산보다 높아만 가는 새 아파트
각혈한 흰 피가
사라져가는 골목을 쓸고 다닌다
“현시가로 보상하라”
―「재개발구역」 부분
이 작품에서는 거대 기업들에 피해를 당한 처절한 철거민들이 각혈한 피가 골목을 휩쓸고 다닌다고 했다. 불합리한 현실을 대하는 시인의 분명한 태도가 드러난다. 사회정의란 무엇인가를 일깨우는 작품이다. 시인의 사회적 인식이 공동체적 의식으로 확장되고 있음이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 보다는 인간성에 대한 침탈이 시인을 분노하게 만든다. 시인으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태도이리라. 이런 사회를 향한 발언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도 주변의 작은 문제에서부터 출발한다. 외로운 노인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며 어떤 목표를 잃고 헤매다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상황을 그려내고 있는 「고독사」, 지구 환경오염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는 「향유고래가 아프다」 스마트 폰에 빠져 있는 세태를 그려낸 「스마트 폰」 그 외에도 「커피사랑」, 「종이컵」 등의 작품들은 현재 지금 이 시대의 우리 삶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 주는 작품들이 아닐 수 없다.
왼쪽 가슴에 손수건 매달고
맨 처음 배운‘ 앞으로 나란히’
나란히도 모르는 무지외반증 엄지는
아우들이 아프다고 아우성쳐도
바깥쪽으로만 밀어 부친다
가짜뉴스를 외면하고
평화를 바램은 한 줄 꿈일까
움켜 쥔 게 너무 많은 책상
정신줄을 거미줄에 건다
놓아야 할 우선순위가 안개 속에서
새벽을 뚫는다
풍성한 시간을 배당 받은 묵은 책상
뼈아프게 살아낸 발자국이 상을 탔다
뛰는 자리가 모두 정원이다
할 수 있는 꿈은 다 가져라
이 세기에나 있을 그림들을 모두 그려라
지구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고
어린 천리향은 식구를 늘리기가 벅차다
키 큰 만리향아 어깨 빌려 주어라
모든 향이 있는 나무들아
거리에 넘쳐나라
그래 지금은 무엇이든 그려야 할 때다
―「혼돈을 비켜가다」 전문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교실까지 인솔해가던 담임 선생님의 인도처럼 스스로에게 빛을 선물한다. 혼돈을 비켜 가기란 쉽지 않다. 온갖 시련과 보이지 않는 어둠들의 저항에 맞서서 일어서기란 혼자서 감당이 어렵다. ‘뼈아프게 살아낸 발자국이 상을 탔다/뛰는 자리가 모두 정원이다/할 수 있는 꿈은 다 가져라/이 세기에나 있을 그림들을 모두 그려라’고 세상을 향해 부르짖는다. 언어로 그림을 그리거나 형상으로 그리거나 자신의 그림을 그려야 할 때라고 한다. 그림으로 세상을 그려낸다는 것은 확실한 인식을 뜻한다. 추상성으로부터 벗어나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져지는 형상인 그림은 혼돈을 비켜가게 하는 확실한 방법론이다. 부담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신이 품고 왔던 아름다운 세상을 붓으로나 펜으로나 노래로써 맘껏 그려낼 일만 남은 것이다. 이 시집은 그동안 힘들게 짊어지고 왔던 부채의식이 지배하던 어둠에서 벗어나 세상과 사물을 새롭게 인식하는 빛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출발점이다. 새로운 세계를 향한 박 시인의 정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