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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은 중앙아시아 고원지대 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우리나라의 남북한을 합친 면적의 28배 정도 입니다. 국경의 길이는 8158km인데 이중 3485km는 러시아와, 4673km는 중국과 맞닿아 있습니다.
13세기 초 칭기스칸이 등장해 역사 상 최대의 몽골 대제국을 건설했으며, 몽골제국이 멸망하고 남은 내륙 중앙부가 1688년 청(淸)에 복속되어 ‘외몽골’로 불렸습니다. 1911년 제1차 혁명을 일으켜 자치를 인정받았으나 1920년 철폐되었고 1921년 제 2차 혁명을 일으켜 독립하였습니다.
몽골 이란 본래 “용감한” 이란 뜻을 지닌 부족어로, 칭기스칸이 통솔하는 몽골부(部) 발전에 따라 민족의 이름 “Mongol” 및 지역의 이름 “Mongolia"로 변화하였습니다.
현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타르는 36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도시이며 T몽골어로 "Ulaan"은 "붉다"라는 뜻이고 "Baatar"는 영웅이라는 뜻입니다.
현재 몽골에는 약 3,000여명의 재몽교포들이 살고 있으며, 기업인, 선교사, 교육 및 의료인, 대사관 및 여러 봉사단체의 봉사단원, 유학생 등 다양한 계층들로 구성된 교민들이 주로 울란바타르시를 중심으로 모여 생활하고 있습니다.
▶ 기후
몽골의 기후는 극도의 대륙성기후로서 겨울이 길고 건조하고 여름은 따뜻하고 짧습니다. 6~8월까지 여름의 2~3개월은 쾌적하면서 따뜻하지만 남쪽 Gobi 지역은 상대적으로 덥습니다. 겨울은 보통 10월 중순부터 4월까지인데, 12월 중순부터 2월 말이나 3월 중순이 제일 추운 때로 40°C나 영하50°C 까지 내려갑니다. 눈은 보통 10월 중순에서 4월 중순 사이에 내립니다.
습도는 낮은 편인데(47-73%), 특히 겨울에는 더 낮고 날씨의 건조함 때문에 추위가 덜 느껴집니다. 낮과 밤의 기온 차와 연교차가 크며, 봄에는 모래폭풍이 발생합니다.
▶ 몽골의 이해
몽골이 정식국명이며, 영어로는 몽골리아(Mongolia)입니다. 중국식 표기는 몽고(蒙古)인데 몽매한 야만인이라는 뜻으로 몽골인들이 싫어합니다. 1990년도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전환됨에 따라 빈부의 차가 심해져 생활고에 따른 범죄(강도, 절도 등)가 증가추세에 있습니다. 시장, 백화점 등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은 소매치기가 많아 혼자 행동하는 것을 삼가고 조심해야 합니다. 몽골 유목민은 도살할 가축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때문에 사람을 손가락으로 지목하면 큰 실례입니다. 식탁을 두드리는 것은 생사를 결정하는 싸움을 신청하는 것이고 어린 아이의 엉덩이나 어깨를 두드리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의미이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치안은 안정된 편이나 야간에 외국인이 돌아다니는 것은 아직도 조심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12명의 정탐대 몽골로 …
▢ 울란바토르의 에피소드
대민교회가 주축이 되어 준비한 몽골선교기념품은 14박스나 되었습니다. 김해산성교회와 김해주사랑교회 등에서 3박스를 준비하였고 고사리들까지 정성을 모은 기념품이어서 선교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산노회북방선교회 소속 대민교회 김성득목사님과 이순희사모님, 김해산성교회 이명희목사님과 이순현사모님, 김해안해교회 김정석목사님, 부산능소교회 임정혁목사님, 김해주하나교회 박희진목사님, 김해반석교회 성경석 목사님 등 6개 교회 목사님 부부와 우리부부가 우리대민교회차량으로 15: 00분 김해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하였으나, 김해주하나교회 박희진목사님 일행이 길을 잘못 들어 헤매는 바람에 예정보다 40분이나 늦게 출발하였습니다.
김해공항에 도착하니 김해감전교회 김성권목사님과 정용순사모님이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다행히 출입국수속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고, 항공편은 대한항공이 김해에서 인천공항 몽골까지 연계해 운행하기 때문에 많은 짐을 운반하는 데는 참 편리하였습니다.
인천공항에서 20: 30분에 출발하는 몽골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비행시간은 3시간 소요되나 몽골과 1시간 시차가 있어 몽골시간으로는 22: 30분에 몽골 울란바토르 칭키스칸공항에 정시 도착하였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입국서류를 작성하여야 하기 때문에 사전 준비를 하면 편리합니다. 선교기념품들을 대표회장이신 성목사님 명의로 해 국내에서는 중량초과를 인정받고 경비도 절감하고 출국수속도 간편하여 좋은 점도 있었지만, 칭키스칸공항에서는 장사꾼으로 오인하여 통관을 시켜주지 않아 애를 태웠습니다. 언어도 모르고 의사소통이 안 돼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중 나온 신다르항대학교 이사장 정영동목사님을 만나 대책을 논의 했으나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공항에 근무하는 정목사님의 제자를 만나 도움으로 1시간 이상 지연하다가, 추가경비를 물고 무사히 입국하였습니다. 힘들게 나와 가로등이 없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터덜터덜 달리니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절로 나와 속으로 읊조리며 갔습니다. 한참을 달려 울란바토르 드림호텔에 도착하니 24: 30분이었습니다. 힘든 일정을 소화하며 녹초가 되어 하루의 일정을 무사히 마쳐 감사하며……
▢ 몽골 선교 소식을 들으며
오전 9시 출발할 때에는 화창하였으나 오후에는 흐리고 잠시 비가 왔습니다. 몽골은 하루에도 이렇게 변화무쌍한 날씨가 계속되는 날이 많다고 합니다. 아침햇살이 우리는 눈이 부신데 몽골인들은 선그라스를 쓰지 않고 비도 그대로 맞고 다녔습니다. 물이 귀한 나라이기 때문에 비 맞으면 머리가 난다고 하여 김목사님 머리 비 좀 맞으심이 …… (믿거나 말거나) 여하튼 비 맞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즐기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신다르항으로 떠나기 전에 울란바토르에 있는 아멘교회 등 선교현장을 방문하고 격려를 했습니다. 아멘교회에 도착하여 도착예배를 드린 후 담임목사님이신 양 재철선교사님의 몽골현지 선교실태보고를 들었습니다.
몽골에는 400여 기독교 교회가 있고, 우리 한국이 개척한 교회가 200여개 된다고 합니다. 울란바토르의 선교는 울란바토르대학이 중심이 되어 안정이 되어 가고 있었고 이제는 선교 2세대로 현지인 전문교육에 힘쓰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부터 자연태양신을 숭배하는 샤마니즘 종교에 라마불교가 성하여 20C 초에 몽골은 수 백 개에 이르는 불교 사원이 있었으며 남자의 25%가 수도승이었다고 합니다. 1930년대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수도원들이 문을 닫고, 1945년에서부터 1990년까지 오로지 한 수도원 (Gandan in Ulaanbaatar)만이 운영되도록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페레스트로이카 물결이 강하게 불어 닥친 후 몽골은 지난 1990년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민주주의의 재건이 종교의 자유를 가져와 100개 이상의 불교수도원이 다시 문을 열었으며 Qazaq Muslims에서도 이슬람 종교 행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라마불교가 사실상 국교처럼 인정되고 기독교회당의 수를 제한하고 있으며 정부의 허가를 받은 선교인 외에는 법으로 금하기 때문에 외국인이 이를 어기면 추방을 당하는 실정입니다.
다행히 하나님의 섭리로 하바드대학 출신인 민주당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후 법으로 강제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러한 현지사정으로 안타깝게 아멘교회는 어디에도 예배당 표식이 없었습니다. 아멘교회는 밖에서 보면 어스름한 건물처럼 보였으나, 내부시설은 아담한 예배실과 출판사무소 등을 갖춘 규모가 있는 2층 건물이었습니다. 매주 교민과 몽골인들 200여명이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1층은 주차장인데 왜 주차시설이 필요한지 의문을 가졌는데 선교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겨울철에는 날씨가 영하 40도이하로 떨어지기 때문에 차량은 난방시설을 갖춘 주차장에 주차하여야 차량의 동파를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난방시설을 갖춘 주차장이 절대로 부족한 형편이어서 겨울철 주차는 월 15만원 정도의 주차비를 받는다고 하며 70대정도 주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수입으로 5명의 장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어 선교사역을 하는데 지장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음 방문지는 현지인 교회인 갈보리교회에 도착하였습니다. 김성득 목사님의 기도 후 현지인 목사님의 현지 목회의 애로 사항을 들었습니다. 갈보리교회는 서울 갈보리교회의 지원으로 지어졌고, 생계는 목사님이 자동차수리와 사모님이 울란바토르대학의 출판 일을 보면서 교회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몽골은 영하 40도로 내려가는 겨울철이 가장 살기 어렵습니다. 추위 때문에 난방비가 많이 드는데 교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150만원 정도 드는 난방비를 마련하기 어려운 모양이었고, 외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선교의 어려움 가운데에도 목사님 자녀가 산아제한을 하지 않아 10명이나 된다고 하여 한바탕 웃었습니다. 자연의 흐름을 중시하는 몽고사상과 어울려 한편으로는 몽고의 미래와 선교의 미래가 밝게 보여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