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와 주자에 비견되는 현자 형식·의례의 이슬람을 수행 종교로 환원
이슬람 영성문학 백미 ‘행복 연금술’ 저술 이 세상은 허상…하느님만이 궁극적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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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가잘리 초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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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죽은 다음 이슬람은 곧 아라비아 경계를 넘어 635년 다마스쿠스를 함락시키고, 636년 페르시아(지금의 이란)를 무너뜨리고, 637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640년 거사리아를 손에 넣고, 641년 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를 접수하는 등 이슬람 제국은 그야말로 파죽지세(破竹之勢)로 확대되어 갔다.
8세기에 들어오고도 이슬람 제국은 계속 팽창하여 711년 스페인까지 점령하는 등 13세기 몽골군이 나타나 이슬람을 제압할 때까지 그야말로 승승장구(乘勝長驅)였다.
이처럼 거대한 세력이 된 이슬람은 필연적으로 분열될 수밖에 없었다.
크게 나누어 세 가지 파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가 수니(Sunni)파로서 ‘전통주의파’라는 뜻이다. 전 세계 이슬람교도의 85 퍼센트 정도가 이 파에 속한다.
이집트, 시리아, 인도, 말레시아, 인도네시아에 퍼져 있다.
둘째, 시아(Shi’ite)파로서 ‘분리파’라는 뜻이다.
세계 이슬람교도의 10∼15 퍼센트로 본다.
지금 이란은 시아파를 공식 종교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이고,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인도, 파키스탄, 아프리카 동쪽 등에 소수가 산재해 있다.
셋째, 수피(Sufi)파로서 ‘수피’라는 말은 ‘양털 옷을 입은 자’라는 뜻이다.
염색하지 않은 조야(粗野)한 옷을 입고 다녔기 때문이다.
이슬람 세계에서 수적으로는 미약하지만 그들의 특별한 가르침 때문에 영향력이 크고, 특히 외부 세계에 아주 많이 알려져 있다.
이들은 율법을 잘 지켜 그 보상으로 내세를 바라보는 형식주의적 이슬람에 반대하고 지금 이 삶에서 얻을 수 있는 내적 체험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자들(mystics)이었다.
네오 플라톤주의,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힌두와 불교 신비주의 등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산업화 등의 이유로 19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하고 현재 주로 페르시아, 인도 부근에 퍼져 있다.
일반적으로 이슬람은 하느님과 인간의 질적 차이를 강조하고, 신과 인간을 ‘연결’시키는 죄를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인정하여 신인합일을 강조하는 신비주의가 들어갈 틈이 별로 없는 것으로 알기 쉽지만, 이들은 ‘꾸란’에 하느님이 ‘우리의 핏줄보다도 우리에게 더 가까운’ 분으로 묘사되어 있기에 이 말에 근거하여 신인합일의 체험을 주장한다.
이런 체험을 갖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 중에는 한 자리에 서서 빙글빙글 도는 춤을 추는 것, 또는 신을 깊이 사랑하는 것, 명상에 잠기는 것 등이다.
수피파들 중 훌륭한 스승들이 많지만 그 중 이론적 집성자인 알 가잘리(1058-1111)와 시인 루미(1207-1273) 둘만을 거론하기로 한다.
이번 회에는 우선 알 가잘리를 소개한다.
‘아부 하미드 무함마드 이븐 무함마드 알 가잘리’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보통 간단히 ‘알 가잘리(al-Ghazali)’ 혹은 그냥 ‘가잘리’라 불린다.
여기서는 가잘리라 부르기로 한다.
그는 1058년 지금의 이란 북서쪽 투스(Tus)라는 곳 교외에 있던 가잘레(Ghazaleh)라는 마을에서 태어나서 1111년 투스에서 5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학문적 성취나 공헌으로 보아 이슬람 전통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는 마치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나, 유교 전통에서 주자(朱子, 1130-1200)가 차지하는 위치와 맞먹을 정도로 중요하다.
30대 초반에 이미 바그다드 니자미야 대학 이슬람 법학 교수라는 명예로운 지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36세 그의 지성이 최고봉에 달했을 때, 일종의 정신적 위기를 경험해야만 했다.
우리가 이성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 정말로 확실한 것인가 확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이유로 가잘리는 우리의 감각이 제공하는 증거가 확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육안으로 보면 하늘의 별이 아주 작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이 지구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 같은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꿈을 꿀 때는 모든 것이 실재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꿈을 깨고 나면 그런 것이 실재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우리가 지금 이성적 사고를 통해 실재하는 것으로 믿고 있는 이 세계도 결국 한 번 더 크게 깬 상태에서 보면 이것도 허구에 불과한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마치 ‘장자’에 나오는 ‘나비의 꿈’에 나오는 이야기를 연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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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가잘리 일대기를 다룬 영화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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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잘리는 수피 신비주의자들이 자기들의 더 높은 의식 상태에서 보면 일상적 이성이라는 것이 무용지물이라고 하던 말을 기억했다.
또 예언자 무함마드가 “사람들은 자고 있다. 죽으면서 깨어난다.”고 한 말을 상기했다.
허상의 베일이 벗어지고 비로소 진리를 보게 되는 것은 오로지 죽을 때나 이성적인 마음을 뒤로 할 때 가능하다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가잘리가 이런 문제들을 놓고 심각하게 고뇌하고 있을 때, 그는 갑자기 일종의 신비적 경험을 하게 된다.
밝은 빛줄기가 자기의 심장으로 꿰뚫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이처럼 진리를 직접 체험하는 순간 지금까지 자기가 진리를 확증하기 위해 사용하던 이성적 ‘논증’들이라는 것이 전혀 무용지물임을 깨달았다.
마치 중세 그리스도교 스콜라 신학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비 체험을 하고 나서 그 때까지 자기가 집대성한 방대한 저술이 하나의 지푸라기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다고 하는 말과 비슷하다.
가잘리는 이런 경험 자체만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는 혼신을 다해 독서에 몰두했다.
자기가 목격한 그 진리에 가장 잘 어울릴 수 있는 철학, 종교, 신비주의 등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이런 연구 결과가 ‘종교학의 부흥’이라는 기념비적 저술로 나타났다.
여기에서 그는 수피 사상 이외의 모든 철학 체계의 허구를 하나하나 폭로하고, 수피 사상만이 이슬람이 잃어버린 직접적인 신체험으로 나가는 길임을 제시했다.
가잘리는 이런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무리한 결과 신경쇠약에 걸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이로 인해 강의를 계속하기 곤란해졌다.
결국 교수직을 사임하고 가족을 남겨둔 채 10년간을 수피들이 입는 조야한 양털 옷을 입고, 이집트, 시리아, 메카, 마디나 등으로 순례 여행을 다니며 영적 수행에 전념했다.
그 후 이슬람을 부흥시키려는 가잘리의 노력이 인정을 받아 그는 ‘하자트-엘-이슬람’ 곧 ‘이슬람의 증거’라는 특별한 칭호를 얻었다.
수피 신비주의자로서 그가 이슬람 주류 밖에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것은 상당한 영예였다.
그러나 그가 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종교학의 부흥’을 요약하여 더 많은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그의 책 중 가장 유명한 ‘행복의 연금술’이다.
이 책은 지난 9백 년 동안 이슬람 전통에서 가장 위대한 영성 문학 중 하나로 꼽히는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을 통해 가잘리의 사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마침 필자가 최근 번역한 톰 버틀러-보든의 ‘50 Spiritual Classic’(London: Nicolas Brealey, 2005)에 가잘리 편이 있기에 그것을 토대로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한다.
가잘리는 평균적인 사람이 ‘동물로부터 천사로’ 탈바꿈하는데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 네 가지 요소란: 1) 나 자신을 아는 것, 2) 신을 아는 것, 3) 이생을 아는 것, 4) 내생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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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행복의 연금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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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잘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뭔가 알지 못하면 인간으로서 우리가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세상일과 근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은 우리의 참된 근원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한편 우리 자신의 마음을 알면 우리가 누구이고 왜 여기 있는가를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마치 쇠를 잘 닦으면 거울이 되듯이, 마음도 훈련을 통해 잘 다스리면 그 속에 있는 지적·영적 녹을 없애고 거룩한 빛을 참되게 비출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마치 북종선의 개조 신수(神秀)의 게송, “몸은 보리수, 마음은 거울 대, 부지런히 털고 닦아 티끌이 없게 하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2) 가잘리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존재하게 한 참된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찾아보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현상 세계만을 인정하는 것은 마치 글씨가 쓰인 종이 위를 기어 다니면서 그 글씨가 펜 하나만으로 쓰여진 것이라 믿는 개미와 같다고 했다.
밖으로 드러난 원인 뒤에는 언제나 참된 원인이 있는데, 그 참된 원인이 바로 신이라는 궁극 실재임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3) 가잘리는 우리의 몸이란 우리의 영혼이 삶의 여정을 지나가면서 타고 가는 말이나 낙타와 같다고 했다.
영혼은 마치 메카로 가는 순례자가 그가 타고 가는 낙타를 보살피듯 몸을 잘 돌보아야 한다.
그러나 순례자가 낙타를 먹이고 꾸미고 하는 등 낙타 자체를 보살피는 데 너무 시간을 많이 보내면 순례자도 낙타도 목적지에 이르지 못한 채 사막에서 죽고 만다.
4) ‘쿠란’에 의하면 영혼은 스스로 원하지 않았지만 이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는데, 이것은 좀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영혼은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가 신의 지시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이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영혼은 지상에서의 삶이 일종의 지옥이라 생각할 것이다.
가잘리는 땅에 사는 동물들과 하늘에 있는 천사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계급이나 위치를 바꿀 수 없다고 한다.
인간들만이 자기들의 행동을 통해 동물 수준으로 내려가거나 마찬가지로 천사들의 높이로 올라갈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마치 불교에서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만 열반에 이를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하는 말과 같다.
인간으로 가질 수 있는 이런 선택권은 일종의 짐이기도 하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 가는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잘리의 ‘행복의 연금술’은 사실 어느 종교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
이슬람교도이든 아니든 진정한 행복은 현재의 ‘나’가 궁극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따라서 현재의 물질적 삶 자체가 최종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 평화는 결국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영원한 비물질적 경지를 깨닫는 데서 온다는 것 등은 거의 모든 종교인들이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메시지가 아닌가.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법보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