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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세(世)부터 세대별 항렬별(行列別)로 기록(記錄)
32세 휘(諱) 종윤(鍾潤) 자(字) 광윤(光潤) (1900년 - 1985년)
남양군파 징(徵)후 척(陟)계 경림(景霖)계 휘 재석(在錫)의 큰아드님이시고 어머님은 경주 김재숙 이다 1900년 10월 10일 음력 윤 8월 17일에 안감내 지금에 용두2동 762호의 6호 (현재; 곰보 추탕집)에서 출생하시었다.
공께서는 어린 시절 안암 3가 지금에 삼익(三益) 아파트 자리에 고종황제(高宗皇帝)의 6촌이 서당(書堂)을 운영하면서 다른 대 보다도 수업료를 비싸게 밭았으나 그 서당에 다니셨으며, 흥인학교(興仁學校) (파란 눈에 머리가 노랑사람이 가끔 왔다 가는 것 을 보았다고 하니, 교회에서 운영 한 것으로 추측함 ;지금은 이대부속병원옆 동대문 교회)에도 다니셨다.
학동(學童)시절 선생님의 손님이 오셔서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선생님의 갓을 보고 있던 아이 하나가 발로 갓을 차니 이 아이가 차고 저 아이가 차서 갓이 찌그러지자 선생님이 들어오시오 보고서 누구 지시냐 하니 전부 잠자코 있자 선생님은 모두 종아리를 때려 혼을 내었다고 한다, 그만큼 옛날에도 아이들에 장난은 심하였던 것이다.
공은 소리를 좋아 하시여 나무를 하려 가시면 친구들과 소리를 잘 불러서 친구들의 인기가 대단하였다고 한다. 또한 17세 때에는 집 앞마당에 남생이가 기어 들어오는 것을 아버님께서 보시고 뚝섬 강나루에다 놓아 주라 하시여 공께서는 자루에다 넣어서 강나루에 가서 놓아주면서 잘 가라고 하니 남생이는 물위를 가면서 뒤를 3번이나 바라도 보더니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그후 15년 후 1932년 음력 4월 13일에 첫아들을 낳으시니 신기하게도 볼기에 남생이 같이 생긴 점이 있어 공께서는 혹시 남생이에 인연(因緣)이 아닌가 하여 정월 보름날과 음력 4월 13일에는 조밥을 하여 남생이를 놓아주던 강나루에다가 천수(天壽)를 다하기 1년 전까지도 매년 강(江)물에다 고기밥을 주었다고 한다.
공께서는 인정(人情)이 많으시어 늘 없는 자를 도우시고 또한 기도(祈禱)고개 (지금 고대 이공대 후문 병원쪽)에 있는 옹달샘에다가 길가는 행인을 위하여 바가지를 놓으시고 파손이 되면 다시 갈아 놓아 목마른 사람에게 편리(便利)하도록 도움을 주시고 늘 약자(弱者)를 도우라는 말씀을 자손들에게 강조(强調)를 하시여 돌아가신 후에는 비석(碑石)에다가 항상 부지런하고 서로 화목하며 약한 자를 도우시라는 말씀을 항상 기억하게 사오니 편안히 잠드소서 라고 묘비(墓碑)를 세워 놓고 자손들은 아버님에 유지(遺志)를 받들고 있다.
공께서는 1930년 때에 남들은 생각지도 않는 야구(野球)를 좋아하시어 시합이 있으면 구경도 자주 가시는 시대(時代)를 앞서가시는 분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경전(京電) (전차(電車) 운송부)에 다니시고 전매청(專賣廳)에도 다니시고 인천에 있는 양조장(釀造場)에도 다니시고 경성부(지금은 시청)에 다니시다가 해방 후에는 수도극장(首都劇場)에도 다니었으며 전주인 이진갑(全州人 李辰甲)과 결혼하여 8남 1여를 두셨으나 8남 순진(淳鎭)이가 낳은 지 삼칠 만에 6, 25 사변이 일어나 1, 4 후퇴시 피난(避難)길에 고생하다가 집에 돌아와서 1953년 3월 13일에 사망하였고 끝으로 고명딸을 낳으셔 현재 7남 1여가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형제간에 우애가 두텁게 열심히 살아 가고있다.
공께서는 국악(國樂)에도 관심이 있어 소리도 잘 하시여 행사(行事)에서도 여러 번 입상도 하시고 안암동 5가에 사시면서 제기동(祭基洞) 시립 노인정에서 초빙(招聘)하여 노인회장을 수년을 보시다가 1977년 7월 17일에 안암노인정이 창설되면서 초대(初代) 회장이 되시니 노인정은 없고 마침 안암1동사무소가 통합으로 비우게되자 지부회장님과 합심하여 구청에다 수차에 걸쳐 노인정의 필요성을 건의하여 동사무소 자리에 이층에는 성북노인지부회가 되고 뒤채에다 안암동 노인분회가 되어 2,001년 현재까지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배위(配位)께서는 동네 부인(婦人) 20여명이 수도계(水道契)를 하여 신설동(新設洞)에서 수도관을 연결(連結)하여 안암5가 86번지 일부와 93번지에 수도가 들어오게 되니 안암동 5가 쪽에 처음으로 수도가 들어오게 되었다.
공께서는 개운사(開運寺) 뒤 산에서 돌아가시기 10일전까지도 소리도 하시고 또한 소리도 가리키시다가 1985년 음력 3월 6일 86세(歲) 일기로 안암5가 86의5호에서 천수(天壽)를 다하시었다.
배위(配位)께서는 1910년 음력 2월 8일 생이며 공(公)보다 9년 먼저 1976년 음력 7월 6일 돌아 가시여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묘지에 쌍분(雙墳)으로 모셔져있다, 전주 이진갑(全州 李辰甲) 부(父) 이경혁(李慶赫) 모(母) 파평 윤성여(坡平 尹姓女)이시다.
자(子) 7남 1녀중 장남(長男) 순원, 2남 순영, 3남 순택, 4남 순남, 5남 순효,
6남 순창, 7남 순기, 딸 순자가 있으며 자손들은 안암동 4세대 정능 1세대 목동 1세대 창동 1세대 수원 1세대 인천 2세대 삼봉 1세대 모두 11세대가 안암동을 중심으로 살고있다.
2000년 10월 10일은 공께서 탄생(誕生) 100주년이 되는 날이기에 자손들이
숭조돈목(崇祖敦睦)(뜻; 조상님을 숭배하고 정이 투텁고 화목하게)으로 기념(紀念)하기 위하여 33회(삼삼회란 33세(世) 형제들의 친목회)에서 주관하여 100주년 탄생 추모행사(追慕行事)를 모란공원 묘지 앞에서 거행하였다.
공의 아들, 딸, 며느리, 손자, 손녀, 손 며느리, 손 사위, 증손녀, 모두 무려 62명의 홍씨네 대가족이 참석률 90% 참가하였다. 그날 날씨는 하늘에 축복을 받아서인지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어 행사하는데 좋은 날씨였다, 순기가 사회를 맡아 오후 1시에 개회사로 숭조돈목(崇祖敦睦) 하자고 하고 이어 제(祭)를 올리고 장손(長孫) 덕표가 탄생 100주년 추모사를 낭독(朗讀)하고 이어 2남 순영 6남, 순창, 7남 순기도, 탄생 100주년 추모사를 낭독하고 일신인쇄주식회사(一信印刷柱式會社)에서 홍순원(洪淳元), 김 옥(金 玉)에게 기념패(紀念牌)를 전달하고 식사를 하였다.
식사가 끝나고 삼행시 발표회를 하여 당선자에게는 시상을 하고 손자 손녀들에 장기 자랑을 하여 상품을 주고 보물찾기도 하여 즐겁게 놀고 모란공원관리사무실 앞에서 기념사진(紀念寫眞)을 찍고 공의 묘 아래 자부(子婦)님 묘소에도 들려 제(祭)을 올리고 그날 행사를 끝맞쳤다..
공의 탄생 100주년 기념 추모사를 낭독한 것을 33회에서 조상님을 숭배하고 형제 친척간에 우애(友愛)가 두텁다는 것을 후손들의 에게 즉; 숭조돈목(崇祖敦睦)을 교육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장손 덕표가 낭독(朗讀)한 추모사(追慕辭)는 전기(前記)한 것과 거의 같아 생략(省略)하고 2남 순영, 6남 순창, 7남 순기가 낭독한 것과 삼행시 당선작 손자 일표, 준표, 합작문과 외증손녀 이지민 당선작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탄생 백주년 기념사
1900년 10월 10일 춥지도 않은 좋은 계절에 태어나 젊어서 고생은 하셨지만 그래도 무난한 여생을 보내신 아버님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기 위해 여기 모란 공원에 아들, 딸, 며느리, 손자, 손녀, 사위, 증손 등 60여 명의 홍씨네 대가족이 모이게 된 것 감회가 깊습니다.
아버님께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수많은 직장과 직업을 전전하시면 서도 내 가족 보다 더 어렵고 가난한 사람을 보시면 작은 정성 이나마 도와주는 마음을 가지신 아버지 이셨습니다. 아들이 8명인데도 막내로 딸을 낳았을 때 그래도 아들이 아니라 서운해하신 아버님, 그 중 하나를 실패했지만, 7남 1녀 모두가 건강하고 화목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저 세상에서 우리에게 무언의 도움을 주고 계신 덕이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많은 고생을 하시면 서도 자식들만을 위해 애쓰시던 어머님 생각이 떠올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조그만 더 오래 사셨으면 조금이나마 효도들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 형제들은 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면 자랐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어렸을 때 어려움을 생각하여 우애 있고 화목하게 살게된 원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홍씨 가족 여러분에게 당부 드리고 싶은 말은 어디를 가든지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물론 가족을 위하고 남을 위해 도움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길 부탁합니다.
바라건대, 사랑과 화목, 형제간의 우애를 잘 지켜 부모님들을 기쁘게 해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건강하고 행복하고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면서 두서 없는 글로 적어 보았습니다.
2000년 10월 10일
홍 순 영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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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탄생하신 지 100주년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아버지 모습은 1950년도 6, 25 사변 때 추운 겨울날 털모자를 쓰시고 우리 어린 자식들을 짐수레에 태우고 피난 가시던 그 모습 피난 시절에 그 어려웠던 생활을 어린 나에게는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 몇 년 후 내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극장에서 야간 숙직업무로 근무 하실 때 추운 겨울날 기침을 많이 하시면서 도시락을 가지고 저녁때 출근 하셨다가 아침에 기침을 하시면서 귀가하시던 모습을 그 어린 나의 마음에도 아버님에 대한 존경심과 더욱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있었습니다.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서 노력하시는 것은 부모님들의 다 같은 공통점이겠지만 그 어려운 생활여건 속에서도 아버님은 항상 여유가 있으셨고 어려운 이웃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시면서 자신의 건강 관리를 위해서 등산과 국악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시고 건강관리를 잘 유지하신 것도 우리 자손들을 위해서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던가를 우리는 본 받아야 할 것입니다.
아버님은 평소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자하시고 덕망이 높으신 분으로 인정 받으셨고 우리 자손들의 발전과 우애도 아버님의 평소 철저한 가정교육 덕택이라고 단정합니다.
우리 모두 아버님의 너그럽고 인자하신 마음을 본받아 항상 즐거운 인생을 살아갑시다.
그리고 아버님 저 세상에서나마 우리 자손들의 무궁 발전을 기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0년 10월 10일
홍 순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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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 하셨던 아버지 홍 종윤
존경하옵고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님이 이 세상에 태여 나신지가 벌써 1세기인 100년이 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여도 강산이 10번이나 변했을지 모르지만 저희들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여전히 오늘날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당신이 이 땅 한반도 삼천리 금수강산에 태어나셨기에 당신이 있었기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손들이 장남 홍순원부터 외손주 옥규까지 합하면 무려 62명이나 된답니다. 얼마나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까?
모든 자손들이 당신의 우수한 혈통을 이어받아 모두가 착하고 성실하며 건전한 신체를 가지고 사회에 필요한 일꾼이 되어 열심히 살아가고 또 손주들은 내일에 미래를 짊어지고 이 민족과 나라를 이끌어 가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신체를 단련하고 있습니다.
자손들이 하나같이 착하고 진실 되며 건강하게 성실히 살아가는 것은 아버지의 살아 생전에 부자보다는 가난한자를 강한 자보다는 약한 자 편에 서서 돌보며 무수히 쌓은 공덕과 하늘나라에서도 자손들을 챙기고 돌보아 주는 것이라고 자손들은 굳게 믿고 있습니다.
평소 아버님이 배고픈 사람을 보면 본인도 넉넉하지 않음에도 밥 한끼 대접 할 줄 알고, 목마른 사람들을 위하여 제기동 샘물 터에 항상 물바가지를 갖다 놓았던 일이며 왜정 시대 때 일본인이 아현동에 있는 토지를 불하하여 준다고 하여도 불하만 받으며 큰 부자가 될 수 있음에도 정당하지 못하다고 거절하시며 정직하계 사신 삶을 어렸을 때인 저로서는 당신이 어리석다고 생각하였습니다만 지금은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의 이런 정직한 심성 때문에 우리가 착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됩니다.
어렵고 힘든 6, 25사변을 만나 두 이데올로기의 갈등 속에서도 이 많은 10식구가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하였다는 것은 평소 아버님의 처세가 원만하여 누구에게도 모나지 않게 행동 하셨고 덕을 베풀었기에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아버님은 해마다 거북이를 뚝섬 강변에 방생을 하신 것은 모든 사물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라는 교육적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들이 유달리 많아 8남매나 되니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남보다도 더욱더 어려울 것이라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나이 어린 8남매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을 끼니가 없을 때에 부모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남자로서의 심정은 오죽 하였을까? 그럼에도 교육열이 높으셔 아들들을 고등 교육까지 시키신 아버님의 높으신 뜻과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며 존경합니다.
제기동 노인정에서 아버지를 노인정 회장으로 초대하여 회장으로서 노인정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으시고 안암동 노인정을 창설하여 초대 회장으로 지낼 만큼 지도력과 포용력도 있었습니다.
노래도 잘 하시여 주위에 인기가 대단하였을 뿐만 아니라 방송국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서 대상도 타시고 시대만 잘 타고 나셨다면 가수 서태지 같은 인기도 얻었으리라 상상하여 봅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개운산에서 노래 지도를 할 만큼 열성적 이였습니다.
등산도 잘 하시여 등산길이 없던 시절 백운대도 여러 번 등정하였고 동네 여행을 갈 때에는 안내원을 하실 만큼 여든 나이에도 50대 이상의 걸음으로 정정하였으며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 6째형과 같이 아버지를 따라 진달래꽃을 따러 정릉으로 가서 개울가에 송사리 물고기를 잡으면 돈 10원을 주신다고 하여 열심히 잡는 행동거지를 보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모습을 지금도 생각하면 아버지도 엄하시면 서도 자상한 면도 있었구나 생각됩니다.
스포츠도 좋아 하셔서 왜정 시대에 야구 구경도 잘 가시고 경마구경도 잘 다닌 것은 그 당시 인텔리 층이나 가능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아버님은 외국어도 능통하셔 일본말도 잘하시고 한자도 잘 하셨습니다. 그러나 군대에서 편지를 받아보고는 주위 동료들이 할아버지가 편지 보내 것으로 알만큼 한글은 맞춤법이 많이 틀리신 것은 옛날 한글 문법이라 이해가 갑니다,
아버님은 1900년에 태어나서 국가에 크고 작은 사건들이 너무나 많은 세월 이었습니다. 아마도 5,000년 역사에 당신이 태어난 후 100년이 가장 많은 역사와 시련 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항상 명랑 하셨고 씩씩하셨고 당당하셨던 것은 든든한 아들들을 가지셨기에 자부심을 가지신 것은 아닌지요?
그러나 당당하셨던 아버님, 당신을 정말로 존경하옵고 사랑합니다.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당신의 자손들이 한자리에 모여 당신의 지나간 삶과 역사를 이야기하고, 당신이 가르친 어렵고 약한 이웃을 돕고 주위 사람과는 화목하게 지내고 형제간에 우애 있이 지내라는 평범하면서도 현실성 있는 가르침을 자손들에게 늘 이야기하겠습니다.
하늘 나라에서도 내 자손들이 내 생일을 잊지 않고 이렇게 성대하게 잔치를 벌렸노라고 마음껏 자랑하시고 내 자손이 이렇게 많은 62명이나 된다고 자랑하십시오.
우리를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여주시고 자랑스러운 당신의 아들로 키워주신 당신을 추모하면서 당신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생을 정말 멋지고 당당하게 살다간 휘 홍 종윤을 자손들에게 두고두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렵니다. 부디 편안히 안녕히 계십시오.
2000년 10월 10일
막내아들 홍 순 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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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행시 글짓기 당선작
홍(洪) = 홍씨 가문에 32대 손으로 태어나신 할아버지
종(鍾) = 종윤공은 어떤 분이셨나요? 강직하고 덕망 있고
윤(潤) = 윤리의식이 강한 훌륭한 할아버지 이셨다
삼(三) = 삼삼회와 표친회가 다름 점은
삼(三) = 삼삼회는 회식을 자주하고 표친회는
회(會) = 회의만 자주 하는 차이란다
안(安) = 안암동은 아버지와 형제들이 함께 살던 고향
암(岩) = 암만 생각하여도
동(洞) = 동서남북을 다 다녀보아도 제일 좋은 고향 이에요
삼행시 지은이
손자 홍 일표, 홍 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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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행시 글짓기 당선작
홍(洪) = 홍순영 할아버지 머리에는
광(光) = 광이 번쩍번쩍
윤(潤) = 윤이 나는 빠다를 바르셨나?
홍(洪) = 홍씨 집안에 둘째. 그 이름 순영이.
순(淳) = 순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영(英) = 영어는 기똥차게 잘해!
삼(三) = 삼삼한 홍씨 집안
삼(三) = 삼다도에 꽃 소식 들려올 때쯤이면,
회(會) = 회갑잔치 한둘이 아니겠네 ... ...
삼행시 지은이
증외손녀 이 지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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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世) 순원(淳元) (1932년 5월 22일생) 음력 임신 4월 13일 (오전 4시16분)
종윤(鍾潤)의 장남 어머니 전주 이진갑(全州 李辰甲)
배위(配位) 전주 이길순(全州 李吉順) 1937년 11월 11일생
음력 정축 9월 22 생, 1998년 음력 1월 24일 졸(卒)
묘(墓)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2지구 1980호 자녀 2남 1녀
부(父) 이홍식(李洪植) 모(母) 경주 김용이(慶州 金龍伊)
처(妻) 금녕 김옥연(金寧 金玉連) 음력 1940년 경진 7월 2일생
부(父) 김윤식(金允植) 모(母) 전주 이간난(全州 李干蘭)
순원의 자(子) 2남 1녀 장남 덕표, 딸, 금숙, 2남 인표,
33세(世) 순영(淳英) (1935년 2월 19일생) 음력 을해 1월 16일 (진시(辰時)
종윤의 2남 어머니 전주 이진갑
처(妻) 김해 김 옥(金海 金 玉) 1940년 11월 6일
음력 경진 10월 20일 (술시(戌時)
부(父) 김병학(金炳學) 모(母) 동래 정복동(東萊 鄭福童)
순영의 자(子) 3녀, 장녀 경미, 2녀 혜정, 3녀 영란,
33세(世) 순택(淳澤) (1937년 3월 7일생) 음력 정축 1월 25일 (오전 10시30분)
종윤의 3남 어머니 전주 이진갑
처(妻) 밀양 손창자(密陽 孫昌子) 1944년 7월 8일
실 생일(1941년 음력 신사(辛巳) 6월 26일
부(父) 손상준(孫相俊) 모 밀양 박금순(朴今順)
순택의 자(子) 2남 1녀 장남 한표, 2남 도표, 딸 은미,
33세(世) 순남(淳南) (1940년 2월 18일생) 음력 경진 1월 11일 (오전 7시 20분) 종윤의 4남 어머니 전주 이진갑
처(妻) 김해 김종선(金海 金鍾善) 1944년 8월 21일
음력 갑신(甲申) 5월 16일 (오후 8시-9시)
부(父) 김금수(金今守) 모(母) 진주 강석업(晉州 姜錫業)
순남의 자(子) 2남 1녀 딸 정민, 장남 익표, 2남 흥표,
33세(世) 순효(淳孝) (1942년 6월 19일생) 음력 임오 5월 6일 (오후 7시15분)
2005년 음 11월 17일 졸(卒)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2지구 1976호 종윤의 5남 어머니 전주 이진갑
처(妻) 나주 임순애(羅州 林順愛) 1946년 10월 10일
음력 병술 9월 16일 (자시 밤12시)
부(父) 임대종(林大鍾) 모(母) 강릉 최희성(江陵 崔姬星)
순효의 자(子) 1남 1녀 딸 세미, 아들 장표
33세(世) 순창(淳昌) (1945년 12월 2일생) 음력 을유 10월 28일 (오전 6시 30분)
종윤의 6남 어머니 전주 이진갑
처(妻) 밀양 손순일 (密陽 孫順一) 1953년 3월 20일생
음력 신묘(辛卯) 10 월 14일 (오전 7시)
부(父) 손장세(孫章世) 모(母) 경주 최갑례(慶州 崔甲禮)
순창의 자(子) 2남, 장남 경표, 2남 진표,
33세(世) 순기(淳基) (1947년 11월 24일생)음력 정해 10월 12일(오후 10시-11시)
종윤의 7남 어머니 전주 이진갑
처(妻) 온양 정란영(溫陽 鄭蘭永) 1953년 5월 20일생
음력 임진 11월10일 (술시(戌時)
부(父) 정영호(鄭永好) 모(母) 금령 김칠례(金寧 金七禮)
순기의 자(子) 2남 장남 일표, 2남 준표,
33세(世) 순자(淳子) (1953년 6월 10일생) 음력 계사 4월 29일 (자시(子時)
종윤의 딸 어머니 이진갑 부군(夫君) 전주 이광재(全州 李光宰)
1948년 1월 19일생 음력 기축(己丑) 1월 29일 (자시(子時)
부(父) 이강수(李康洙) 모(母) 해주 오정순(海州 吳貞順)
순자의 자(子) 2녀 장녀 연화(蓮花) 아명(兒名)선영 2녀 지향(枝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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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세(世) 덕표(德杓) (1957년 9월 22일생) 음력 정유 8월 29일 (오전 4시40분)
순원의 장남 덕표 어머니 전주 이길순
처(妻) 전주 이은숙(全州 李銀淑)1958년 4월 27일생
음력 무술(戊戌) 4월 27일 (오전 4시-5시)
부(父) 이동구(李東九) 모(母) 경주 김순례(慶州 金順禮)
덕표의 자(子) 1남 1녀 딸 세리 별명(別名) 정현(禎晛) 아들 성욱
34세(世) 금숙(錦淑) (1960년 3월 6일생) 음력 경자 2월 9일 (오전 4시 5분)
순원의 딸 어머니 전주 이길순
부군(夫君) 밀양 손길남(密陽 孫吉男) 주민등록에는 1956년 12월 21일생이고 음력으로 병신(丙申) 1956년 12월 21일생
시부(媤父) 손갑출(孫甲出) 시모(媤母) 회진 임문례(回津 林文禮)
금숙의 자(子) 1남 1녀 딸 주희(周希) 아들 호연(晧連)
34세(世) 인표(仁杓) (1963년 1월 9 일생) 음력 임인 12월 14일 (오전 2시40분)
순원의 2남 어머니 전주 이길순
처(妻) 영월 신옥현(寧越 辛玉賢) 1962년 7월 3일생이고 주민등록에는 음력으로 임인 6월 2일 (오전 5시-6시)
부(父) 신광묵(辛光黙) 모(母) 장흥 마순이(長興 馬順伊)
인표의 자(子) 2남 장남 성빈 2남 성현
34세(世) 경미(炅美) (1964년 2월 27일생) 음력 갑진 1월 16일 (15일밤 11시 )
순영의 장녀 어머니 김해 김 옥
부군(夫君) 전주 이형주(全州 李瀅柱) (1962년 7월 14일생)
음력 임인 6월 3일(오전 11시) 시부 이해선 경미의 딸 지민(知玟)
34세(世) 혜정(蕙廷) (1967년 3월 2일생) 음력 정미 1월 22일 (오전 1시 50분)
순영의 2녀 어머니 김해 김 옥
부군(夫君) 전의 이창수(全義 李昌洙) 1967년 6월 17일생
음력 정미 5월 8일 (유시(酉時)
시부(媤父) 이훈노(李勳魯) 시모(媤母) 김정례(金貞禮)
34세(世) 영란(瑛爛) (1970년 8월 5일생) 음력 경술 7월 4일 (오후 9시 22분)
순영의 3년 어머니 김해 김 옥
부군(夫君) 의령 옥승권(玉承權) 1970년 5월 10일생
음력 경술 3월 12일 (오전 12시 45분)
시부(媤父) 옥시청(玉是淸) 시모(媤母) 강년향(姜年馨)
영란의 자(子) 장남 규호(圭鎬) 2남 규현(圭炫)
34세(世) 한표(漢杓) (1963년 2월 22일생) 음력 계묘(癸卯) 1월 29일
순택의 장남 어머니 밀양 손창자
처(妻) 문화 유애희(文化 柳愛姬) (1963년 8월 17일생)
음력 계묘(癸卯) 8월 18일
부(父) 유인수(柳寅壽) 모(母) 김해 김정숙(金海 金貞淑)
한표의 자(子) 1남 2녀 딸 세영 장남 성규 2남 성준
34세(世) 도표(道杓) (1965년 9월 25일생) 음력 을사(乙巳) 7월 14일
순택의 2남 어머니 밀양 손창자
처(妻) 무안 박연숙(務安 朴連淑) (1966년 3월 20일생)
음력 을사(乙巳) 11월 17일
부(父) 박원환(朴元煥) 모(母) 광주 이용기(廣州 李容基)
도표의 자(子) 2녀 장녀 세진 2녀 세원
34세(世) 은미(銀美) (1971년 4월 22일생) 음력 신해(辛亥) 3월 27일
순택의 딸 어머니 밀양 손창자
부군(夫君) 제주 고영택(濟州 高榮澤) (1967년 12월 8일생)
음력 병오(丙午) 12월 22일생
은미의 2남 1녀 장남 지찬(志燦) 장녀 지윤(志潤) 2남 지원(志源)
34세(世) 정민(廷旼) (1966년 11월 6일생) 음력 병오 9월 24일 (오전 5시-6시)
순남의 딸 어머니 김해 김종선
부군(夫君) 청송 심형석(靑松 沈炯錫) (1962년 6월 12일생)
음력 임인(壬寅) 5월 11일생 정민의 딸 연지(娟知)
34세(世) 익표(益杓) (1968년 9월 11일생) 음력 무신 7월 19일 (자시 0시 10분)
순남의 장남 어머니 김해 김종선
처(妻) 김해 김여정(金海 金如貞) (1972년 3월 15일생)
음력 임자(壬子) 2월 1일생 부(父) 김영술 모(母) 이영순
익표의 자(子) 2녀 장녀 서희(서희) 2녀 서연(서연)
34세(世) 흥표(興杓) (1970년 11월 23일생) 음력 경술 10월25일 (자시 0시10분)
34세(世) 세미(世美) (1970년 6월 26일생) 음력 경술 5월 23일 (오후 11시20분)
순효의 딸 어머니 나주 임순애
부군(夫君) 김해 김동욱(金海 金東旭) (1970년 1월 3일생)
시부(媤父) 김유수(金酉洙) 시모(媤母) 장수현(張壽鉉)
34세(世) 장표(壯杓) (1973년 10월 29일생) 음력 계축 10월 4일 (오후8시40분)
순효의 아들 어머니 나주 임순애
처(妻) 경주 김성현(慶州 金星鉉) (1972년 8월 4일)
음력 임자(壬子) 7월 16일 부(父) 김만길 모(母) 신현희
장표의 자(子) 1남 성윤
34세(世) 경표(慶杓) (1974년 12월 10일생) 음력 갑인 10월 27일 (오후9시30분)
순창의 장남 어머니 밀양 손순일
처(妻) 기성 반효주(岐城 潘爻珠) (1978년 12월 24일)
음력 정사(丁巳) 11월 25일생 부(父) 박재원, 모(母) 김진란
경표의 자 1남 성호
34세(世) 진표(辰杓) (1977년 8월 20일생) 음력 정사 7월 7일 (오전 10시30분)
순창의 2남 어머니 밀양 손순일
처(妻) 문화 유지연(文化 柳知延) 1981년 10월 6일 음력 9월 9일
부(父) 유세열(柳世列) 모(母) 남상월
34세(世) 일표(一杓) (1977년 8월 19일생) 음력 정사 7월 5일 (오후 8시 45분)
순기의 장남 어머니 온양 정란영
34세(世) 준표(俊杓) (1979년 10월 31일생) 음력 기미 9월 11일(오전 10시10분)
순기의 2남 어머니 온양 정란영
35세(世) 승연(昇延) 2010년 개명 아명 세리(世利) (1983년 8월 15일생)
음력 계해(癸亥) 7월 7일 (오후 10시 2분)
덕표의 딸 어머니 전주 이은숙
35세(世) 서욱(性旭) (1986년 4월 29일생) 음력 병인 3월 21일 (오후 6시)
덕표의 아들 어머니 전주 이은숙
35세(世) 성빈(性彬) (1990년 5월 13일생) 음력 경오 4월 19일 (오후 4시50분)
인표의 장남 어머니 영월 신옥현
35세(世) 성현(性賢) (1994년 9월 22일생) 음력 갑술 8월 17일 (오후 4시30분)
인표의 2남 어머니 영월 신옥현
35세(世) 세영(世昤) (1990년 7월 18일생) 음력 경오(庚午) 윤(閏) 5월 26일
한표의 딸 어머니 문화 유애희
35세(世) 성규(性奎) (1994년 10월 7일생) 음력 갑술(甲戌) 9월 3일
한표의 아들 어머니 문화 유애희
35세(世) 성준(性俊) (2003년 1월 31일) 음력 임오(壬午) 12월 29일
한표의 아들 어머니 문화 유애희
35세(世) 세진(世眞) (1992년 10월 20일생) 음력 임신(壬申) 9월 25일
도표의 장녀 어머니 밀양 박연숙
35세(世) 세원(世願) (1994년 12월 26일생) 음력 갑술(甲戌) 11월 24일
도표의 2녀 어머니 밀양 박연숙
35세(世) 서희(서희) (2003년 11월
익표의 장녀 어머니 김해 김여정
35세(世) 서연(서연) (2004년 11월 23일) 음력 갑신(甲申) 10월 12일생
익표의 2녀 어머니 김해 김여정
35세(世) 성윤(性允) (2006년 5월 22일) 음력 병술(병술) 4월 25일
장표의 장남 어머니 경주 김성현
35세(世) 성호(性浩) (2004년 11월 24일) 음력 갑신(甲申) 10월 13일생
경표의 장남 어머니 기성 반효주
35세(世) 성민(性珉) (2007년 7월 11일 (음력 정해(丁亥) 5월 27일생
경표의 2남 어머니 기성 반효주
35세(世) 나희(奈希) (2010년 3월 15일) 음역 경인 1월 30일 (오후 9시 45분)
진표의 장녀(長女) 어머니 문화 유지연 (2010년 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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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세(世) 휘(諱) 종춘(鍾春) 자(字) 광춘(光春) (1906년 - 1986년)
남양군파 징(徵)후 척(陟)계 경림(景霖)계 휘 재석(在錫)의 2남이고 어머님은 경주 김재숙이시다. 1906년 4월 4일생이고 1986년 1월 27일 졸(卒) 하시고 배위(配位)께서는 여양 진재성(驪陽 陳再成) (1913년 10월 20일생이고 공보다 9년 먼저 1977년 7월 14일 졸(卒)하시여 경기도 송추 운경공원 묘지에 쌍분(雙墳)으로 모셔져있다.
부(父) 진문하(陳文夏) 모(母) 소귀동(蘇貴童)
자(子) 4남 1녀 딸 순정 장남 순태, 2남 순만, 3남 순경, 4남 순범,
33세(世) 순정(順貞) (1932년 10월 20일생) 종춘의 딸 어머니 여양 진재성
부군(夫君) 평산 신중곤(平山 申重坤) 순정의 아들 성호(盛皓)
33세(世) 순태(淳泰) (1934년 12 월 5일생) 종춘의 장남 어머니 여양 진재성
처(妻) 김해 김우순(金海 金又順) (1941년 6월 12일생) 부 김성근(金成根) 어머니 최월이(崔月伊) 순태의 자 1남 2녀 장녀 덕숙, 2녀 승연 아들 동표
33세(世) 순만(淳萬) (1945년 5월 31일생) 종춘의 2남 어머니 여양 진재성
처(妻) 경주 이행우(慶州 李杏雨) (1947년 7월 23일생) 부(父) 이종언(李鍾彦)
어머니 김봉선(金鳳仙) 순만의 자(子) 1남 1녀 딸 수정, 아들 종표,
33세(世) 순경(淳慶) (1947년 12월 24일생 종춘의 3남 어머니 여양 진재성 1983년 12월 17일 졸(卒) 배위(配位) 안동 김송자(安東 金松子) 1946년 3월 10일생 - 1997년 12월 14일 졸(卒) 경기도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
부(父) 김흥태(金興太)
순경의 자(子) 1남 1녀 아들 창표, 딸 승희
33세(世) 순범(淳範) (1957년 5월 2일생) 종춘의 4남 어머니 여양 진재성
처(妻) 연안 차숙경(延安 車淑敬) (1956년 6월 18일생) 순범의 딸 소연(素然
34세(世) 덕숙(德淑) (1960년 9월 30일생) 순태의 장녀 어머니 김응환
부군(夫君) 김기문
34세(世) 승연(承娟) (1966년 6월 18일생) 순태의 2녀 어머니 김해 김우순
34세(世) 동표(東杓) (1967년 12월 16일생) 순태의 아들 어머니 김해 김우순
처(妻) 성산 이연자(星山 李蓮子) (1971년 1월 17일생) 부 이용구 모 이정자, 동표의 자(子) 1남 아들 성재
34세(世) 수정(受廷) (1970년 12월 3일생) 순만의 딸 어머니 경주 이행우
부군(夫君) 양승정
34세(世) 종표(宗杓) (1972년 8월 7일생) 순만의 아들 어머니 경주 이행우
처(妻) 남평 문호순(南平 文虎順) (1974년 1월 15일생)
부 문충남 모 박순자 종표의 자(子) 1녀 딸 선주
34세(世) 창표(昌杓) (1974년 3월 24일생) 순경의 아들 어머니 안동 김송자
34세(世) 승희(承希) (1975년 6월 6일생) 순경의 딸 어머니 안동 김송자
34세(世) 소연(素然) (1983년 10월 22일생) 순범의 딸 어머니 연안 신숙경
35세(世) 성재(性宰) (1997년 11월 20일생) 동표의 아들 어머니 성산 이연자
35세(世) 선주(善珠) (1998년 10월 26일생) 종표의 딸 어머니 남평 문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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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세(世) 휘(諱) 종수(鍾壽) 자(字) 광수(光壽) (1909년 - 1956)
남양군파 징(徵)후 척(陟)계 경림(景霖)계 휘 재석(在錫)의 3남 어머니 경주 김재숙 1909년 1월 11일생 1956년 8월 24일 졸(卒) 배위(配位) 광산 김기순 (光山 金奇順) (1911년 9월 23일생) 1974년 9월 13일 졸(卒) 부(父) 김경순(金景順) 모(母) 박씨(朴氏), 종수의 자(子) 1남
33세(世) 순용(淳鎔) (1935년 5월 17일생) 종수의 아들 어머니 광산 김기순
처(妻) 전주 이영숙(全州 李榮淑) (1940년 3월 19일생) 1996년 7월 8일졸(卒)
묘(墓) 충청북도 중원군 진달래 공원 부 이병철(李炳哲) 모 박광희(朴匡姬)
순용의 자(子) 2남 2녀 장남 득표 장녀 옥순, 2녀 은주, 2남 승표,
34세(世) 득표(得杓) (1961년 1월 30일생) 순용의 장남 어머니 전주 이영숙
처(妻) 하음 봉향순(河陰 奉香順) (1965년 12월 17일생) 부 봉필은 모 김금자
득표의 자(子) 1남 성현
34세(世) 옥순(玉順) (1962년 10월 22일생) 순용의 장녀 어머니 전주 이영숙
부군(夫君) 경주 김기복(慶州 金基福) (1958년 5월 8일생) 부 김종환(金宗煥)
옥순의 자(子) 1남 1녀 아들 명호(明鎬) 딸 슬기(한자 없음)
34세(世) 은주(垠朱) (1965년 5월 20일생) 순용의 2녀 어머니 전주 이영숙
부군(夫君) 연일 정연곤(延日 鄭然坤) (1965년 1월 5일생) 부 정영식(鄭英植)
은주의 자(子) 아들 정목희(鄭木稀)
34세(世) 승표(承杓) (1971년 4월 18일생) 순용의 2남 어머니 전주 이영숙
35세(世) 성현(性賢) (1999년 3월 13일생) 득표의 아들 어머니 하음 봉향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