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 에세이 ⑥
아흔아홉 명의 사람들
홍일표
김미옥 서평가
퇴원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여러 권의 책들이 도착해 있었다. 김미옥의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미오기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미 독서계에 소문이 자자하여 알고 있었지만 요즘 김미옥 열풍은 가히 ‘김미옥 현상’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미오기전』부터 집어 들었다. 그의 문장은 경쾌하고 날렵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쉬운 내용을 어렵게 말하는 고약한 버릇을 가진 문장가들과 달리 그는 어려운 것을 쉽게 말하는 법을 안다. 이리저리 꼬인 문장이 아니라 간결하게 툭툭 치고 나가는 활달한 문장의 글맛이 매력적이다.
그의 손끝에서 거침없이 까발려지는 일상 속에는 곳곳에 폭소 지뢰밭이 설치돼 있어 깔깔, 낄낄 웃게 된다. 책의 숨소리, 책의 맥박까지 섬세하게 감지하는 책 귀신 김미옥. 입담 걸쭉한 문장 ‘깡패’는 오늘도 어디선가 큰소리로 외치고 있을 것 같다.
“어머니, 저승에선 뻥치지 마세요.”
“씨발, 내 사랑은 사랑이 아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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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과 동시에 영결식을 치르는 책이 많은데 김미옥 책은 예외다. 그럴만한 이유가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에 있다. 서평 전문지도 있고, 서평 중심의 문학지도 있지만 독자들에게 잘 읽히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심지어 서평 독자는 책의 주인과 평자 딱 두 명뿐이라는 말이 있다.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면 지나치게 전문적인 이론, 논문 티를 벗지 못한, 일반 독자가 접근하기에는 어려운 문학 비평 용어들과 현학적 수사 등이 독서를 방해하는 요인이 아닌가 싶다.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동진 평론가는 모 잡지에서 시에 대한 접근성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평론’이 필요하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독자가 비평을 멀리하는 것은 오늘날의 시가 그렇듯 기존의 비평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들만의 리그에 갇혀 고립된 장르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었다.
김미옥의 서평집은 기존의 서평집과는 많이 다르다. 꼼꼼하게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알기 쉽게 옆의 친구에게 조곤조곤 들려주듯 한다. 게다가 거기에는 책과 관련된 일화가 양념처럼 곁들여져 있다. 그의 글은 독자가 저절로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기이한 매력을 지녔다.
서효인 시인
6년 전에 나온 책을 뒤늦게 읽으면서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은재 아빠 서효인 시인이 쓴 산문집 『잘 왔어 우리 딸』을 단숨에 반 정도를 읽고, 나머지를 다음날 완독했다. 다운증후군 아이로 태어난 딸의 출생과 육아 과정을 기록한 책인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저릿한 아픔이 이어졌다. 너무 먹먹하여 한동안 숨을 돌리고 다시 읽기를 반복해야 했다. “마음에서 피가 새는데 지혈이 되지 않는” 순간들이었다.
젊은 부부가 한 아이의 부모가 되는 힘든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안쓰럽고 안타까웠지만 그들이 고통을 극복하는 모습은 아름답고 숭고하게 보였다. 이 책은 솜사탕 같은 가벼운 감성 에세이가 아니고, 어설픈 철학적 잠언으로 현실을 잊게 하는 도피성 책도 아니다. 다운증후군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가 겪는 애틋하고 절실한 사연들이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삶에 대한 용기를 얻게 되고, ‘은재’ 아빠의 “단단한 근육을 지닌”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 같다. 아무쪼록 세상의 모든 부모와 자녀들이 『잘 왔어 우리 딸』을 읽고 시간의 침식을 받지 않는 좋은 책은 세월이 흘러도 빛과 향기를 잃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서효인 시인은 2011년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며 눈 밝은 편집자이다. 출판사 투고함에서 『82년생 김지영』 원고를 발견하여 베스트셀러로 만든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는 『안온북스』라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시집으로는 『소년 파르티잔 행동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등이 있다.
정병근 시인
그는 새로운 조합을 통해 새로운 그림 언어를 보여준다. 박제된 과거에 새 숨을 불어넣고, 고정관념의 역능을 흔드는 낯선 텍스트. 마그리트와 통화하고 모딜리아니와 통화하는 시인. 그 내용이 궁금하여 지인들과 함께 갤러리를 찾고자 했으나 통원 일정 때문에 리플릿 사진으로 대신해야 했다.
화가로 변신한 시인은 ‘놀이’를 하고 있다. 놀이는 기존의 기표를 일탈시켜 낯선 장소, 낯선 시간으로 옮겨놓는 작용을 한다. ‘여기 있음’을 과거의 반복이 아니라 도래할 있음으로 슬쩍 자리바꿈해 놓은 작품들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미 존재하는 것에 균열을 가하여 타자가 선점한 자리를 주체의 영역으로 변화시키는 작업. 이러한 시도는 마르셀 뒤샹의 ‘수염 난 모나리자’처럼 과거의 기준으로 대상을 감각하지 않고, 일종의 비틀기와 도발적 변용으로 본질 자체를 바꾸어놓는 시적 행위에 가깝다.
미술은 언제나 현존하는 규범을 부수고 새로움의 도래를 환영하는 장르임을 잘 알고 있는 정병근 시인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그림 작업을 이어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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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역까지 가는 동안 지하철에서 시집을 반쯤 읽고 돌아오는 길에 마저 다 읽었다. 재밌는 시집을 읽느라 한 정거장 지나서 내릴 뻔했다. 정병근 시집 『우리 동네 아저씨들』은 장삼이사들의 삶을 그린 풍경화다. 관념산수를 건너 뛰어 진경산수를 보는 것 같다. 김홍도의 산수인물화쯤 되겠다. 등장인물 50여 명의 삶의 실경을 따듯한 시선으로 살피고 세밀화로 그려내는 시인의 솜씨가 놀랍다. 『우리 동네 아저씨들』은 비린내 없는 인생의 허전함을 생각하는 「싱싱수산 한 씨」, 실패와 좌절, 성공과 행복을 가볍게 독파하는 「화분 아저씨」, 지켜보는 사람 하나 없이 초개의 생을 마감한 「박스리어카 장 씨」 등 가까운 이웃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펼쳐 보여준다. ‘세파여행자’이며 ‘빛나는 실패자’ 인 그들의 이야기는 곧 우리들의 삶의 풍경이었다. 모처럼 재밌는 시집 한 권을 읽는 즐거움이 컸다.
김전한 감독
다큐 영화 『시인들의 창』에는 대사가 없다. 허섭스레기 같은 언어의 공해에 오래 시달린 탓인지 김전한 감독은 영화에서 대사를 지워버렸다. 풍경과 소리만 화면 속에서 율동하고 있다. 언어의 바깥에서 살아 움직이는 풍경들이 직접 발언케 한다. 사물에 빌붙어 기생하는 문자나 언어가 없다. 언어화되지 않은 생물의 풍경을 만난 관객은, 특히 문자숭배주의자들은 70여분 동안 지루할 수도 있겠으나 풍경이 알몸으로 술렁거리는 장면, 장면에 숨어 있는 비의를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
『시인들의 창』은 언어야말로 알맹이 없는 껍데기일 뿐이어서 의미의 하물을 언어에 적재하지 않는다. 일부 시인들이 언어의 수레를 타고 언어가 없는 곳에 닿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김전한 감독은 아예 언어라는 소통의 수단을 버리고 직접 풍경을 만나 대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생동하는 풍경의 언어를 영상에 고스란히 담아 관객이 함께 호흡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금몽암(禁夢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어의 무상성, 세계의 덧없음을 성찰한 감독의 시선에 포착된 장소 같다. 한낱 헛것에 지나지 않는 언어에 대한 꿈, 의미에 대한 집착과 욕망의 덧없음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김전한 감독이 관객들을 배려해 영상 속에 설정한 안내 표지 같기도 하다. 오늘날 보기 드문 희귀한 작품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시인들의 창』은 왜곡과 착각의 언어가 범람하는 시대를 향해 새로운 화두를 던진 영화라 하겠다.
김개미 시인
언젠가부터 우리 문학에서 자취를 감춘 ‘웃음’이 동시에서 활짝 부활한 것 같다. 과중한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온 해학과 유희성, 웃음의 미학을 아름답게 복원한 것이 동시가 아닌가 싶다. 몇몇 젊은 동시인들의 고투가 일궈낸 업적이라 할 수 있다. 문학의 변방에 머물러 있던 동시를 문학의 중심부로 견인한 것은 온전히 그들의 노력 덕분이다.
그중 시단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김개미 시인의 역할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부단한 자기 혁신을 통해 동시문학에 새로운 피를 수혈한 시인이다. 과거의 동시를 바라보던 눈으로 오늘의 동시를 바라보면 초점이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김개미 시인은 정형화된 동시 문법을 파괴하여 기발하고 천진한 상상력으로 동시 시단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그가 펴낸 동시집 『오줌이 온다』 『어이없는 놈』 『커다란 빵 생각』 등을 재밌게 읽으면서 그의 작품을 신뢰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갓 도착한 그의 신간 동시집 『선생님도 졸지 모른다』를 한 편 한 편 아껴가면서 읽었다.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언제든 믿고 읽을 수 있는 동시집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도 동시를 먼발치에 놓고 경원시하는 분이 있다면 이번에 김개미 시인의 동시집을 읽어 볼 필요가 있겠다.
이병철 시인
이병철 사진 에세이 『사랑의 무늬들』은 맛있다. 맛있는 음식은 아껴 먹게 된다. 사나흘 쫄깃한 재미를 느끼며 읽었다. 이병철은 시인이며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거기까지가 그에 대해 내가 아는 전부다.
그의 삶의 무늬와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산문집을 읽으면서 이병철 시인의 새로운 면면을 알게 되었다. 이번 산문집은 사진 에세이라는 부제답게 여행 중 찍은 아름다운 사진들과 유려하고 감각적인 글들이 글의 맛을 한껏 돋운다. 글이 재미있어서 읽는 동안은 글만 읽고 사진은 그냥 지나쳤다. 책을 다 읽고 다시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면서 사진을 보았다. 책을 두 번 들여다보게 하는, 그만큼 흡인력이 강하고 매력적인 책이었다. 그의 시와 평론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매혹이 있었다. 특히 그가 세계 각처를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다양한 삶의 풍경을 섬세한 눈길로 들여다보는 장면들, 사랑에 대한 어두운 기억과 아픔을 견뎌내는 지독한 시간들, 도처에서 상처 입은 마음들을 따듯하게 끌어안는 모습 등은 아름답고, 쓰리고, 애틋하다.
이병철 시인에게 여행은 “감각적 도취와 만끽으로 기울어지는 축제 행위” 이며 “일상의 상투성에 길들여진 영혼을 낯선 세계로 내모는 일”이다. 그는 앞으로도 쉼 없는 여행을 통해 “황폐할수록 사막은 내밀한 곳에서 아름답다는 것”을 시와 산문으로 풀어낼 것 같다. 책의 후반부에 오래 시선을 머물게 하는 문장이 있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갈 수만 있다면, 나는 그날 그 쪽방으로 다시 오토바이를 몰고 싶다. 잘 찾아갈 수 있다.” ‘쪽방’과 ‘오토바이’의 사연이 궁금하신 분은 이병철 사진 에세이 『사랑의 무늬들』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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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집 『매혹의 지도』, 『밀서』,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 『중세를 적다』, 『조금 전의 심장』 청소년시집 『우리는 어딨지?』 평설집 『홀림의 풍경들』 산문집 『사물어 사전』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