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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8월 중동으로 나눔문화 세계답사를 다녀온 양승국 변호사입니다.
벌써 2달이 다 되어가는군요. 그 사이 뜨겁던 여름의 해도 가을의 햇살로 옷을 바꾸고요.
저는 몇 년 전부터 여행갔다 오면 꼭 기록을 남기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계속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서야 다 썼네요.
틈틈이 쓴 여행기라 서투르지만
시간 나실 때 한번 읽어보시면서 뜨거운 중동의 바람을 떠올려보시길 바랍니다.
양 승국 올림
십자가의 길,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
예루살렘
오늘은 드디어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하는 날. 번잡한 시간을 피해 십자가의 길을 걷기 위하여 아침식사 전 예루살렘 성 동문 앞에 도착하였다. 성문 위에는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기에 사자문이라고도 하고, 스데반이 이 문을 통해 나가 처형당하였기에(사도행전 7장) 스데반문이라고도 한다. 사자문이라고 한 데에는 사연이 있다. 어느 날 오스만 터어키의 슐레이만 1세는 사자가 자기를 잡아먹는 꿈을 꿨다고 한다. 잠자리가 뒤숭숭했던 그는 해몽을 의뢰하였는데, 꿈풀이는 예루살렘성이 파괴된 채 방치되어 있는 것에 대한 분노가 표출된 것이라며 성을 다시 쌓아야 사자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 당연히 슐레이만 1세는 부지런히 성벽을 다시 쌓았고, 그 성벽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성벽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성벽이나, 예수님 당시의 성벽과도 다른 것이네.
(1) 십자가의 길
이제 성문 안으로 들어가 십자가의 길을 걸어보자. 십자가의 길이란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시고 간 길이 약 1,000m, 너비 3-5m의 길이다. 예수님이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이라 슬픔의 길이라고도 하고 고난의 길(Via Dolorosa)이라고도 한다. A.D. 4세기경엔 겟세마네 동산에서 시작하여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 대사제 가야바의 집을 거쳐 골고다로 이르는 길로 순례를 하였다고 하는데, A.D. 12세기인 십자군 시대에 지금의 고난의 길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1540년께 프란시스코 수도회 때 오늘날의 길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길을 따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 때의 에피소드가 담긴 14군데의 지점이 있고, 매주 금요일 오후 3시마다 프란시스코회의 신부가 십자가를 지고 행진을 한다고 한다. 우리도 이제 그 길을 따라 가려 한다. 비록 이 길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던 바로 그 길은 아니더라도 마음속으로 느끼며 가려한다.
첫 번째 지점은 예수님이 빌라도 총독으로부터 십자가 처형을 언도받았던 빌라도의 법정이 있던 곳이다. 뜰 안으로 들어가니 빌라도가 예수님께 사형 언도를 내리기 전에 자기는 예수님 사형과 무관하다며 손을 씻었다는 전설의 돌그릇이 있다.]자신은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예수님의 처형을 강력히 요구하는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킬까봐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증거로 당시의 관례대로 손을 씻었다는 것인대... 비겁한 짓 아닌가?
안으로 더 들어가니 10m나 깊이 파 들어간 곳에 건축 구조물이 있고, 그곳에 물이 고여 있다. 바로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다는 베데스다 연못이다(요한 5:1-9). 당시 이곳 베데스다 연못에서는 천사가 가끔 물을 움직였다고 하는데, 이 때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병이 낫게 된다고 하여 연못 주위에는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병자들이 죽치고 있었던 것. 그러나, 이 사람은 다리를 쓰지 못하는지라 물이 움직여도 번번이 기회를 놓치곤 했다. 예수님께서 그 사정을 아시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하셨지.
그런데, 저 연못이 왜 저렇게 깊은 곳에 있을까? 깊은 연못에 물이 마른 것일까? 그게 아니었다. 예수님 당시에는 바로 저 밑이 지표면이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땅이 높아지고, 사람들이 폐허 위에 집을 짓고, 다시 폐허 위에 집을 지어 이렇게 높아진 것이다. 팔미라에서도 그렇고, 이렇게 역사 오랜 이곳 중동에서는 과거의 유적들이 이렇게 세월의 깊이가 더해가면서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성 안나교회도 있었다. 성모 마리아가 탄생한 마리아 부모 집이 이곳에 있었다는데, 마리아 어머니 이름 안나를 따서 성 안나교회라고 한 것. 교회 안에서는 한창 미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찬송 소리가 천장의 둥근 돔에서 공명되며 아름다운 소리로 퍼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탄생한 바로 그 옆에서 예수님은 사형을 언도받으셨구나.
두 번째 지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곳. 이곳에서 예수님은 로마 병정들에게 채찍질을 당한 후 가시면류관을 쓰고 십자가를 지고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하였다. 멜 깁슨이 감독한 영화 ‘Passion of Christ'에서 예수님께서 채찍질 당하시고 비틀거리며 십자가를 지시는 장면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렸던가? 더구나 그 채찍은 단순한 가죽 채찍이 아니라, 쇠구슬들을 박아넣은 채찍이라 한 번 맞을 때마다 살점이 뜯겨 나가는 잔혹한 채찍이었다는데... 영화도 바로 이곳에서 촬영을 하였나? 계속 골목길을 걸어가면서 3처, 4처, 5처가 나타난다. 골목길 양옆으로 오래된 집들이 2층, 3층으로 서있으니까 골목이 더욱 좁게 느껴진다. 예수님은 겨우 겨우 십자가를 지고 걸으시다가 결국 3번째 지점에서 쓰러지셨지. 4번째 지점에서 예수님은 어머니를 만나는데, 영화에서 마리아가 얼마나 안타까운 눈으로 예수를 바라보던가.
5번째 지점에 왔을 때 예수님이 도저히 십자가를 지시지 못하자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도록 하였지(막 15:21). 비록 시몬은 유월절을 맞이하여 모처럼 고향에 돌아왔다가 생각지도 않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을 지켜보면서 그의 가족들은 안디옥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지(행 13:1). 그렇기에 사도 바울도 로마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시몬의 아들 루포와 시몬의 아내에게 문안하라고(롬 16:13) 당부하기도 하였고... 5처부터 길은 더욱 좁아지고 위를 향해 오르는데, 양옆의 집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어 햇빛을 가리고 있다.
6번째 지점에서는 12년간 혈루증을 앓다가 예수님의 옷깃을 만지고 고침을 받은 여인 베로니카가(막 5: 25-34) 예수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주었다지. 그 수건에 예수님의 얼굴 흔적이 남아 있었다는데, 이 수건은 로마의 산 피에트르 사원에 보존되어 있다고 하고... 지금은 양옆에 있는 집들이 문을 닫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 문을 열고 관광상품을 늘어놓으면 이 좁은 길이 얼마나 더욱 혼잡스러울까? 혼잡한 시간을 피할 수 있었던 우리 회원들은 조용히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며 길을 오른다. 예수님은 7번째 지점에 오셔서 두 번째 쓰러지시고, 8번째 지점에 오셔서는 슬피 울며 예수님을 따라오는 여자들에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누 23: 28-31)’고 말씀하셨고, - 이곳에는 벽에 예수 승리하셨다는 문구가 쓰여있다. - 9번째 지점에 와서는 3번째 쓰러지시고... 비록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정된 길을 걸어가시는 것이지만 그 고통, 그 외로움이 얼마나 크셨을까?
(2) 성묘교회
10번째 지점부터는 골고다산위에 세워진 성묘(Holy Tomb) 교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골고다란 해골 언덕을 의미하는데, 하필이면 왜 해골인가? 이곳의 언덕의 둥근 모양이 해골을 닮아서라고도 하고, 또 여기에 아담의 해골이 매장되었다라는 전설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성묘교회 안에는 아담의 예배당도 있다. 성묘교회는 로마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성지 순례를 왔다가 예수님이 못 박히셨던 십자가를 발견하고 감격하여 대제에게 부탁하여 주후 355년에 세운 교회라 한다. 며칠 전 시리아 태클라 수도원을 방문하였을 때 산 위의 바위가 꺼멓게 변색되어 있던 것을 보았었는데, 헬레나가 이 기쁜 소식을 콘스탄티노플로 전달하기 위해 봉화로 올린 것을 중개하였던 곳이 아니었던가? 지금 나는 그 봉화의 처음 발생지에 와있는 것이다. 성묘교회는 그 동안의 역사를 보여주는 듯 교회에는 비잔틴 양식의 교회가 일부 남아있고, 왼편으론 이슬람 사원이 덧대어져 있는데, 한창 수리 공사중이다.
교회 앞에는 벌써 세계 여러 곳에서 성지 순례를 온 관광객들이 끼리끼리 모여있는데, 여기에서도 한국에서 온 성지순례단을 만날 수 있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예수님의 옷을 벗기던 곳(10처)과, 예수님을 십자가에 눕혀놓고 못을 받던 곳(11처)이 나온다. 신앙심이 투철한 사람들은 직접 십자가에 누워 자신의 손바닥에 대못을 박는 고통을 감내하며 예수님의 고통을 직접 느끼기도 한다는데...
드디어 12처에서 예수님을 못 받은 십자가가 세워지고... 한 여인이 무릎 꿇고 머리를 안으로 들이밀고 그 지점에 손을 대고 조금씩 미동(微動)하고 있다. 13번째 지점에는 사람 하나 누일만한 돌판을 아름다운 테두리로 둘러싸고 있다. 바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누이신 곳이다. 인도 사람으로 보이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부부가 돌판 앞에 꿇어 앉아 머리를 돌판에 대며 기도를 하고 있다. 나도 돌판 앞에 꿇어 앉아 두 손바닥을 돌판 위에 올려놓고 조용히 이곳에 누이셨던 예수님을 생각해본다. 마지막 지점은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했던 돌무덤. 그 앞에선 한창 미사가 진행중이었다. 이곳 성묘교회를 천주교,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주로 관리하고, 그 외에 시리아 정교회, 이집트 콥틱교회, 에디오피아 정교회가 관리하고 있기에 서로 시간을 나누어 예배를 드리고, 또 세계 곳곳에서 와서 예배를 드리기에 잠시도 예배가 그치는 때가 없다고 한다.
시리아나 이집트, 에디오피아, 아르메니아 모두 지금은 이슬람 국가가 되었지만, 이곳에 복음의 씨앗이 심겨진 후 교회가 면면히 내려오면서 예전부터 예루살렘에 교회를 세우고 관리하여 왔기에 지금까지도 이곳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을 돌면서 개신교 교회를 별로 볼 수 없었던 것도 이미 이들이 옛날부터 예수님과 관련된 곳이면 모두 옛날부터 차지하고 있기에 개신교 교회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던 것이리라. 돌무덤 안을 들여다보노라니 사람들이 자기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종이쪽지를 안에다 밀어 넣은 것도 보인다.
(3) 통곡의 벽
십자가의 길 순례를 마치고 우리는 통곡의 벽으로 향한다.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고 난 로마인들은 성전을 철저히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추방시키는데 이 벽만이 파괴되지 않고 남았다. 그리고 로마인들은 1년에 한번 유대인들이 이곳을 출입하도록 허가하였는데, 유대인들은 유일하게 남은 이 성전의 벽에 몰려와 통곡을 하였기에 통곡의 벽이다. 통곡의 벽 너머로는 엘 아크사 사원과 금 600kg으로 만든 황금돔이 태양빛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오마르 사원이 있다. 저 황금돔이 반짝이는 곳이 바로 이스라엘의 솔로몬 성전이 있던 곳이지만 지금 저 사원은 유대 성전이 아니라 이슬람 사원이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려 하던 모리아산으로 이스라엘에게는 여기에 솔로몬 성전을 지을 만큼 거룩한 곳이지만, 이곳 또한 마호메트가 백마를 타고 승천한 곳이라 이슬람에서도 메카, 메디나와 함께 3대 성지로 추앙받는 곳이다. 저 황금돔 아래에는 마호메트가 하늘로 올라갈 때의 성스러운 바위가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네 거룩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이슬람 사원이 눈에 곱지 않아서인지 이스라엘은 1주일에 1회 예배시만 - 그것도 좀 치안이 불안하다 싶으면 NO! - 이곳을 아랍인들에게 개방할 뿐 평상시에는 굳게 문을 닫아걸고 있다고 한다.
통곡의 벽으로 들어감에 있어서도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벽 앞으로 다가가니 2구획으로 나뉘어 있다. 오른쪽은 여자들의 구획이고, 남자들은 왼쪽의 구획으로 가야한다. 전통 유대교는 이슬람처럼 남녀 구별을 하는구나. 남자 구획으로 들어가는데 관광객들도 유대인처럼 머리에 써야 하기에 나도 키파(Kipah)라는 머리덮개를 썼다. 키파는 하나님에 대한 겸손과 순종의 표시로 정수리를 가리는 것이라나? 유대인들은 아랍인들처럼 하얀 천을 머리에서부터 엉덩이까지 이르도록 쓰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검은 옷에 검은 중절모를 쓰거나 나처럼 키파를 머리에 쓰고 있다. 그런데, 더욱 보수적인 유대인들은 양 귀 옆으로 머리를 길러 땋고 있고, - 나실인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라고 한다. - 머리에는 ‘메루자’라는 성경을 넣는 곽을 머리에 두르고 있다. 저 메루자라는 것이 구약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오래전의 전통뿐인줄 알았는데, 그 전통이 지금 살아서 내 눈앞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다. 통곡의 벽 앞에 선 유대인들은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기도를 하며 때론 성벽에 입을 맞추고 있고, 돌벽돌을 쌓아올린 틈새에는 예수님 무덤에서처럼 사람들의 소원을 적은 종이들이 여기저기 꽂혀 있는데, 머리 위 한 곳 돌 틈에선 하얀 비둘기가 앉아 밑에 모여든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혹시 이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전달하려는 가브리엘 천사의 화신? 이곳에도 벽 한켠에는 깊게 파놓은 곳이 있는데, 이곳 역시 원래 성전의 벽은 저 밑에서부터라는구나.
(4) 감람산
통곡의 벽을 물러나온 우리는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 건너편 감람산으로 올라갔다. 예루살렘성의 전경이 다 보인다. 이곳에서 보니 예루살렘성은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 골짜기가 만나는 사이의 V자 산지 위에 세워져 양쪽 골짜기가 천연의 해자(垓子)를 이루어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방비하기에도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다윗이 이곳의 선주민 여부스 사람들을 공격할 때에도 여부스족들은 이러한 천연의 해자만 믿고 큰소리를 쳤지만(삼하 5:6), 다윗은 기드론 골짜기의 기혼샘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파놓은 수로(水路)를 통하여 성 안으로 쳐들어갔다고 하던가(삼하 5:8)?
기드론 골짜기의 이쪽과 저쪽 사면에는 많은 무덤들이 자리하고 있다. 왜 이 성스러운 곳에 공동묘지가 있을까? 전통적으로 온 세계의 부활이 이루어질 때 기드론 골짜기에 트럼펫이 울릴 것이며 심판의 날이 올 것이라고 하여, 또 무슬림은 지금은 벽돌로 막혀있는 황금문을 통해 메시야가 온다고 믿어 유대인과 무슬림, 기독교인이 이곳에 무덤을 많이 쓴 것이라고 하는데, 건너편 예루살렘성 황금문 밑으로는 주로 아랍인들의 무덤이, 이쪽편으로는 유대인들의 무덤이 많다. 저 무덤들 중에는 압살롬, 여호사밧, 야고보, 스가랴 등의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무덤도 있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 들어가 확인해보지는 못하였다.
압살롬! 지 아비 다윗왕에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차지하고는 다윗이 혼비백산하여 후궁들을 놔두고 감람산으로 도망가자(삼하 15:30) 건물 옥상에서 여보란듯이 아버지의 후궁들을 범하였던 놈(삼하 16:21-22). 하긴 다윗이 밧새바를 범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죽였으니, 그의 아들 압살롬이 무엇을 배웠겠는가? 다윗이 저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 이곳 감람산으로 도망칠 때에 다윗은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로 시작하는 시편 3편의 탄식을 늘어놓았었지.
(5) 눈물 교회
감람산에는 예수님이 이곳에서 예루살렘성을 바라보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하며 눈물을 흘리며 한탄하시던 것(마태 23:37-39)을 기념한 ‘눈물 교회’가 있다. 눈물교회로 내려가는 길에 한 나귀가 등에 짐을 지고 피곤한 듯 벽에 머리를 대고 졸고 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타시던 나귀도 저와 같은 종류의 나귀였을까? 눈물교회는 돔을 둘러싼 네 군데에 단지가 올려져 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하였으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다고 하셨는데, 교회 안에는 암탉이 날개를 펴고 병아리를 모으는 모습이 모자이크 벽화로 그려져 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우시는 모습이 이곳과 나사로가 죽었을 때,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등 3군데가 나오는데, 다른 곳에서는 흐느껴 우는 울음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통곡을 하셨다. 그렇게 이들의 회개를 위해 애쓰셨건만 돌아오지 않는 그들이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
(6) 겟세마네 교회
감람산(올리브산)에서 뭐니 뭐니 해도 가보아야 할 곳은 겟세마네 교회. 겟세마네란 ‘기름을 짜다’라는 뜻인데, 이곳 감람산에 올리브나무가 많았기에 이곳에서 올리브 기름도 짜내었겠지. 예수님께서는 잡히시기 전날 밤 감람산의 발밑 께인 이곳 겟세마네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지(마태 26:37-46). ‘아버지여!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그러나,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 뜻대로 하옵소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였지만, 예수님의 세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졸음을 참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그런데, 이 교회 앞에서 정진선 회원의 남편 이승재 대표와의 상봉이 이루어졌다. 바쁜 일정에 겨우 시간을 내어 뒤늦게 달려온 이승재 대표가 여기서 가족들과 상봉한 것이다. 이 대표가 아내와 아들, 딸과 차례로 포옹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대학 3학년 때인가? 유신 정권이 말기로 치닫던 때, 사회 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교회 어른들에 실망하여 교회를 뛰쳐나가려다, 마지막으로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려고 신약부터 읽어내려갔었지. 그러다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우리 인간의 고통과 압제와는 무관하게 저 하늘 위에서 경배만 받으시는 분이 아닌, 예수님도 우리 인간처럼 철저한 고통과 외로움에 몸부림도 치셨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순간 그토록 멀리만 뵈던 예수님께서 바로 옆에서 빙그레 웃으시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었지. 그러면서 이런 예수님이야말로 믿을만하다 생각하고 그 해 크리스마스 때 세례를 받았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니 예수님이 엎드려 기도하시던 바위 터를 그대로 보존해놓았는데, 사람들이 그 주위를 빙 둘러 앉아 묵상하고 있다. 나도 가만히 눈 감고 그때를 그려보자니, 예수님의 외로움이 강하게 밀려오면서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교회 밖에는 아주 오래된 감람나무들이 그대로 살아있다. 예수님도 이런 감람나무 사이에서 기도를 하셨을까?
겟세마네 교회를 나오는데 갑자기 폭죽 소리가 여러 차례 들린다. 팔레스타인과의 분쟁때문에 많은 테러가 일어나는 곳이라 순간 다들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한데, 다행히 이스라엘 청소년들이 대학 입학시험이 끝났다고 시험에서의 해방에 기뻐 폭죽을 빵빵 쏘아댄 것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7) 마가의 다락방
우리는 여기서 마가의 다락방과 베드로 부인 교회를 보기 위해 차를 타고 다시 예루살렘성 서편쪽으로 오른다. 오르다보니 이스라엘 군인들이 줄지어 가고 있는데 여군들도 많이 보인다. 이스라엘은 여자들도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한다지? 예루살렘성 서문(시온문)에는 여기저기 무수한 총탄 자국이 역력하다. 6일 전쟁 때의 상처다. 이곳에서 보니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 골짜기가 합쳐져 꾸불꾸불 요단강 골짜기를 향하여 가는 것이 보인다. 힌놈 골짜기 하면 예루살렘 성읍민들의 쓰레기 소각장이 생각나고, 또 이방신 몰록신에게 아이들을 산 제사로 바치던(역대하 28:3) 제물터가 생각난다. 그래서 신약시대에는 이곳을 지옥을 뜻하는 게헨나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마가의 다락방 건물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우린 2층으로 올라갔다. 바로 이곳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신 곳이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제자들이 오순절에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이 임하셨던 곳(행 2:1-13)이란 말인가? 나는 처음 성경을 읽을 때는 다락방이라고 하여 조그마한 우리네 다락방을 연상하고는 그 조그만 다락방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 기도하였나 하였더니, 우리네 다락방이 아니라 제대로 된 건물 2층이다. 이곳 역시 세월을 거쳐 오면서 이슬람 시절의 흔적이 남아있다. 1층으로 내려오니 예상치 않게 이곳은 다윗의 무덤이라고 한다. 방에는 다윗이 안치되어 있다는 관이 푸른 천에 덮여져 있고,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다. 실제 다윗의 묘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유대인들에겐 다윗은 크나큰 존재인지라 유대인들은 이곳을 다윗의 묘로 믿고 중요한 믿음의 거처로 삼고 있다.
(8) 베드로 부인 교회
다음에 들른 곳은 베드로 부인교회. 일명 닭 울음 교회 또는 베드로 통곡교회. 가이드는 베드로 부인교회라고 하니 어떤 사람이 베드로 부인을 위한 교회라고 묻더라는데, 부인(夫人)이 아니라 부인(否認)이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체포되었을 때 다른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지만 베드로는 그래도 수제자라고 뒤를 따라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뜰 안에까지 이르른다. 그런데, 베드로를 알아본 대제사장 하녀가 자꾸 추궁하니 계속 부인하면서 3번째는 맹세까지 하며 모른다고 하였지(마태 26:69-75).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겨우 따라온 예수님의 수제자마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였으니, 예수님의 그 처절한 외로움이란...
이 때 새벽녘이 다가오면서 닭이 울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건축가는 교회 지붕 꼭대기에 닭을 올려놓았다. 또, 교회 앞에는 하녀가 베드로를 추궁하는데 베드로가 모른다며 부인하는 장면을 인물 군상(群像)으로 조각해놓은 조각상도 있는데, 베드로와 하녀 앞에는 모닥불도 있다. 그날 밤 추위에 베드로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닥불가로 갔다가 불빛에 하녀가 베드로의 얼굴을 알아본 것이지. 교회 밑으로는 예수님 당시의 계단길이 복원되어 있다. 그날 밤 예수님은 바로 이 길을 통하여 겟세마네로 기도를 하러 가셨고, 바로 이 길을 통하여 묶여서 가야바에게 끌려왔던가?
이곳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터 위에 세워진 교회이기에 지하로 내려가니 그날 밤 예수님께서 투옥되었던 지하토굴도 있다. 우리는 계단을 따라 그리로 들어갔지만 예수님이 이곳에 갇히실 때는 외부와 연결된 곳이라고는 머리 위 천장의 구멍밖에 없었다. 우리 일행밖에 없어 우리는 최교수님의 제안으로 불을 끄고 암흑 속으로 빠져든다. 이 깜깜한 토굴에서 예수님은 인자(人子)로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셨나? 모두들 예수님의 지독한 외로움에 전염되는 것 같다. 숨소리마저 죽어가는 순간 최교수님이 조용히 마무리 기도를 하신다...
9부에서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