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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무엇인가?
히브리서 11장 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모든 길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본문 말씀을
주의 깊게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나아가며 그 분을 찾는 것을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상을 예비하시면서 우리가 믿음을 갖도록 애쓰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어떻게 믿음을 소유하는가: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는 것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오.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9-10, 13, 14, 17.)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믿음은 여러분을 사랑하신 하나님과 그 보내신 이 예수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생겨납니다.
1)고넬료의 예
사도행전11장 13-1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청하여 구원 받을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는데, 고넬료는 로마군대의 백부장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선을 많이 베푼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복음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천사를 통해 복음을 들려주지 않으시고 굳이 베드로를 부르라 하신 까닭은, 복음의 말씀은 믿음으로 구원을 먼저 경험한 사람을 통해서만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사 11:14)는 구절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롬10:17)
2)바울에게 말씀을 듣고 고침받은 자의 예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행14:7~10)
이 말씀을 살펴보면 이 사람을 치유한 것은 바울 그 자체이기보다는 바울이 전해준 말씀을 듣고서 그 사람의 마음에 생겨난 믿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을 바울이 발견했고, “네 발로 일어서라”고 말해 줌으로서 치유가 일어난 것입니다. 바울이 한 일은 ①복음을 전했고 ②그 사람에게 믿음이 생겨난 것을 알아차렸으며 ③그 사람에게 “일어나 걸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사람도 세 가지 일을 했습니다. ①바울이 전파하는 복음을 들었고 ②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졌으며 ③일어나 걸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 구원을 받고, 또 병 고침을 받는 믿음의 역사가 나타난 것은 누군가 그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또 말씀을 들은 자가 그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그 믿음을 입으로 시인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2.믿음이란 무엇인가: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말씀을 믿음으로써 실제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것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것입니다.(쉬운 성경)
믿음은 우리가 바라던 것이 마침내 우리의 것이 되게 하는 보증서입니다.(다른번역)
믿음은 우리가 얻기를 바라지만 아직은 존재하지 않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것이 이미 내 것이 되었다고 하시므로 말씀을 믿음으로써 실제로 이루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어떤 형제에게 감당키 어려운 막중한 사명이 주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두려웠고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경청의 시간에 주님은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오(시27:1)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그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시고, 주님은 내 생명의 능력이시므로 내가 능히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가 생겨나서 담대하게 직장에 나갔고 그의 건강은 놀랍게 좋아져 그 일을 넉넉히 감당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가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할 때, 그의 믿음이 그가 바라던 그것을 실제로 얻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1)지적 동의 vs 진짜 믿음
머리에 있는 믿음과 심령에 있는 믿음이 어떻게 다른지를 아셔야 합니다. 요한 웨슬리는 마귀가 교회에 믿음 대신에, 믿음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믿음이 아닌, 아주 극소수만이 구별해 낼 수 있는 믿음의 대용품을 주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대용품은 ‘지적 동의’ 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이 진리라는 것에 지적으로 동의하지만 이런 지적 믿음은 역사하는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을 수 있는 믿음은 심령에 있는 믿음뿐인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 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3~24)
지적 동의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병 고침을 약속하셨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나는 병을 나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것을 이해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아멘, 그것은 내 것입니다. 나는 지금, 그것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응답의 단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믿음의 발을 내딛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응답받았다는 것을 기도의 바람이 실제로 이루어진 후에야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이 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믿어야 하는 겁니다. 그 때 그 응답이 실제적으로 나타납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우리가 믿으면 그대로 됩니다. 저는 자신이 치유함을 받았다고 믿지 않고서 질병의 치유를 받은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직 치유되지 않은듯한 우리 몸의 증상들에 눈을 두지 말고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이 내 병 고침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에 눈을 고정 시키고 “나는 치료함을 받았다.”라고 선포하십시오. 자신의 증상이 사라지거나 자기 믿음으로부터 어떤 느낌이 올 것을 기다리며 괴로워한다면 치유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2)도마의 믿음 vs 아브라함의 믿음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롬4:17~21)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져야 할 때 도마의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눈으로 예수님이 못 박히신 것과 그의 옆구리에 창에 찔려 죽으신 것을 보았던 도마는, 심령의 믿음을 사용하지 않고 머리의 지식과 육체의 감각을 의지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죽은 것 같은 자기 몸의 감각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으며 믿음으로 견고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심’을 믿었기 때문에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겁니다.
제 아내는 갑상선 항진증, 두통, 빈혈, 소화불량, 영양실조가 겹쳐 몹시 아팠습니다. 그녀가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장)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자기 것으로 취했을 때 즉각적인 치유가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 시점부터 투병이 시작되었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고통을 호소할 때마다 손을 얻고 기도하면 두통이 일시적으로 사라지지만 얼마 후에 그 증상이 다시 나타나곤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반복해서 그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여보, 몸의 증상에 따라 움직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합시다. ‘그가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는 말씀을 의지합시다.” 많은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기보다는 우리 상황과 육체의 증상들에 주의를 집중하게 됩니다. 보이는 상황과 증상에 굴복하지 말고 말씀을 의지하여 삽시다. 하나님께서 그렇다고 말씀하셨으면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얻었다’고 말씀하셨으면 나는 이미 나은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너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말씀하셨다면 그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 겁니다. 저는 지금까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 말씀을 의지하여 살아 왔습니다. 주님은 신실하게 제 모든 필요와 교회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아멘!
3.진짜 믿음을 구사하는 방법: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는 훈련 & 하나님이 그렇다고 하신 것을 그렇다고 믿고 말하기
진짜 믿음은 단순히 말씀이 말하는 것만을 자신에게 말합니다. 진짜 믿음은 말씀 위에 세워지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는 훈련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마음속 깊이 간직된 그 말씀이 영의 양식으로 우리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잠4:20~22)
하나님께서는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권하고 있는데 ‘그것’은 주께서 친히 말씀해 주신 레마의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실패를 바라봄으로써 그 실패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병든 사람이 자신을 죽어가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도다.(마8:17)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눈을 떠나지 않게 하면 반드시 병과 연약함이 떠나갈 것입니다. 22절 말씀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 보약을 먹는 것처럼 건강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묵상해야 합니다. 아침 경청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그 말씀을 삶의 지표를 삼으십시오. 그 말씀대로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지속적으로 바라보십시오. 기도를 해도 실제로 기도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심지어 상황이 악화되는 많은 경우가, 자신의 기도가 이미 응답받았다는 것에 눈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믿지 않고 상황이나 증상을 바라보며 의심을 키우는 것은 기도의 효과를 무너뜨립니다. 비록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고 말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반복하여 선포하십시오. 그것을 얻기 전에 그것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을 먼저 믿을 때 실제로 이뤄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1:6~8)
“주님이 나를 버린 것 같아요. 제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끝까지 신실하게 견딜 수 있도록 기도나 해 주세요”라고 패배를 선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오 (히13:6)담대하게 ‘주님은 나를 돕는 자’라고 말해야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고 말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계속 옳은 것만을 말하십시오. 계속 옳은 것만을 믿으십시오. 잘못 생각하는 것! 잘못 믿는 것! 잘못 말하는 것이 우리를 실패하게 만듭니다. 마귀는 이미 그 머리가 십자가에서 부셔졌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실패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실패하게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인 것입니다.
만일 사단이 나를 넘어지게 했다면, 그것은 내가 사단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경계하십시오. 의심을 허용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바른 믿음을 위해서 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말씀에서 눈을 떼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짜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렇다고 말씀하시면 그런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네가 나음을 얻었다’고(벧전2:24) 말씀하셨으면 우리는 나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하셨으면 그 분이 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님은 내 생명의 능력이시다’(시27:1)라고 말씀하셨으면 그 분은 나의 생명이시며 나의 능력이십니다. 말씀이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한 것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가리켜 누구라고 말 한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인 것입니다.
4.우리를 중보하시는 예수님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4:14)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시므로 우리는 구한 것들을 지금 응답으로 가질 수 있습니다.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란 말씀이 표준 새 번역에는 ‘우리의 신앙고백을 굳게 지킵시다.’로 되어있습니다. 응답은 우리의 믿는 바를 고백할 때 이뤄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내가 저들 대신에 저들을 위해 죽었습니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가져가셨습니다.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를 위해 죽음에서 일어나셔서 우리를 위해 승천하셨습니다. 주님은 그곳에서 “내가 그들을 위해 이 모든 일을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동일한 고백으로 우리의 믿는 바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 그리스도가 이루신 일을 내 것으로 취하게 합니다. 마음에 있는 믿음만으로는 구원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으로 믿을 뿐 아니라 입으로 시인하십시오.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병고침 받았음을, 기도 응답되었음을 입술로 시인하십시오.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할 수 있을 때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타는 겁니다. 이것이 참 믿음인 것입니다.
(박희본 목사님 주일 말씀/노유경 자매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