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그 놈/자운 이천희
어둠이 채 걷히기도 전
느닷없이 거센놈이
기다렸다는 듯이
단숨에 나를 덮친다
어찌나 거센 놈이던지
잡을수도 없이 파도치듯
거세게 밀려든다
해마다 한두번씩 꼭 그맘때만 되면
약속이나 한듯 찿아와 바람을 피운다
쎈놈이 한번 다녀가면 모두가
슬픔에 잠기고 상처에 쓰라려 몸부린치는 그 거센 나쁜놈아
소리내지 말고 조용히 다가오면 반겨주련만 미워할 수 밖에 없는 회오리 태풍의 정점은 어디에 있으려나
잡초도 찌르면 아프다 / 자운 이천희
하찮은 존재로 우습게 보지마라
함부로 짖밟고 도려내어
죽여버려도 되는 풀잎이 아니니까
살아가기 위해서 어둡고 추운
땅속에서 시간을 기다려
입춘을 맞이하고
피터지게 뚫고 나와 실핏줄로 지탱하며 꽃을피우고
나물반찬으로 밥상위에
오를때까지 존재하거늘
잡초라고 함부로 죽이지 마라
얄미운 너 /자운 이천희
서둘러 흉내라도 내듯
급한걸음으로 밤새 땅위에
내려앉온 찬서리
아직 들녘에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가을걷이들이 널비하게
놓여져 있는데
자연의 섭리이거늘
올것이 온거인데
미쳐 준비하지 못하고
한 순간에 만나게되니
바짝 긴장하고 따사로운 해빛을
기다리며 숨을 쉰다
수필
좁쌀의 전설/ 자운 이천희
길모퉁이에 피어난 핑크빛 들국화는 향기로 아침 인사하면 옆에있는 하얀 구절초는 더 짙은 향기로 으쓱한다. 조금을 지나다 보면 누렇게 물들은 콩잎들이 살랑살랑 춤을추면 나는 음악을 틀어 어깨위에 흥을 올리며 발걸음이 빨라지는데 저만치 앞에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다 고개를 늘어트린 억새풀이 너울너울 손짓하고 길가에 심어놓은 좁쌀나무가 뭐가 그리 무거워서 죄인인양 푹 숙인 고개를 들지 못한채 천석만석 매달고 있다
좁쌀나무를 볼때마다 동화처럼 귓전으로 전해듣던 좁쌀이야기가 떠오른다
옛날옛날 한 옛날에 친정 고조모께서 양주시 회암리에서 포천 가산면 마전리 가재울 이씨 집안으로 시집을 오셨다
5대조면 어언 400년이 넘은 옛날 이야기지만 친정어머니한테 어제의 일처럼 동화책 읽어주듯 전설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자랐고 시집을 가서 다른 가문의 여인으로 살고 있지만 친정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좁쌀이야기가 생각난다
회암리에서 부잣집으로 소문난 가문에서 가난한 집으로 시집 온 새댁은 시집살이가 고되고 가난한 살림살이에 층층시하 어르신들을 모시기란 눈물빠지게 서글프고 힘이들던 어느날 새댁은 시어르신들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친정에좀 다녀오게 해달라고 고개를 숙여 말씀드리자 시 어머니는 무슨 친정이냐 시집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친정이냐며 불호령을 떨어지자 시아버지께서 다녀오너라 이삼일후에 오너라며 너그러우신 말씀에 뚝뚝 떨어지던 눈물을 닦고 부지런히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해야니까 서둘러 친정을 가셨다
새댁은 친정에가서 하소연을 하고 양식거리라도 좀 달라고 했는지 친정을 다녀온 새댁은 올망졸망 보따리를 풀어놓으며 친정에서 어머니가 양식하라고 주셨다고 허리춤에서 보자기를 풀어 놓고 머리위에 이고 온 서너되박 남짓한 보따리를 내려놓았다
두 보따리를 다 합쳐도 쌀 한말이 안되는 곡물이었다
허리춤에 매달고 온 것은 수수쌀이고 머리위에 얹고 온 곡물은 메좁쌀이었는데 시댁으로 오는길이 왜이리도 멀고 무거운지 안간힘을 다해 시댁으로 돌아왔다 친정할머니가 딸에게 당부한것은 가다가 힘들어도 절대로 머리위에 보따리를 내려놓지 말거라 곧장 집으로 가야한다는 친정조모의 말씀을 지키며 시댁으로 돌아와 대청마루에 내려놓고 보따리를 풀어헤치자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새댁과 시어르신들은 모두들 깜짝놀라서 어머어머 이게뭐야 . 이게 어떡해된거야. 하시며 다들 놀라서 뒤로 물러섰지만 새댁은 친정에서 늘상 할머니가 위하고 정성드리던 것을 보며 자랐고 그 덕에 친정이 부자로 살고 있는걸 알기 때문이라 그다지 놀라는 기세는 아니었다
천근만근 처럼 무거웠던 그 좁쌀보따리 안에는 다름아닌 하얀 백사였다 손녀딸이 가난한 시댁으로 시집간게 할머니 마음에 가엽고 불쌍해서 였을까 할머니가 신주단지 처럼 애지중지 모시고 공들이던 업이 따라오신거다
늘상 할머니가 하시던대로 두손을 싹싹 비비며 빌었다
어이하여 이곳까지 따라오셨는지요
저를 살려주려고 오셨으면 편한 곳으로 찿아 들어가세요 라고 중얼거리자 백사는 대청마루 가운데 있는 뒤주 쪽으로 가더니 숨어버렸다
새댁은 친정으로 급히 전보를 보냈고 친정에서 파발이 왔다
친정에서 업을 보내는 굿과 시댁에서 업을 맞이하는 굿을 해야 한다며 벼락치기로 양가에서 굿을 거행하게 되었다 .회암리에서 투바위 고개는 넘어오기란 옛날 비탈진 산길이라 험하고 먼길을 친정할머니가 앞장을서고 당시 만들박수들이 행렬을 서서 징.장고와 호적을 불며 산길을 넘어서 새댁이 살고있는 집으로 오고 풍악소리가 들려오자 시댁에서는 대청마루에 차려놓은 굿상과 업맞이 준비에 온동네 사람들과 시댁 어른들 그리고 만들들이 모여서 엄중하게 배웅을 맞이하여 굿판을 벌이고 업이 자리잡고 있는 곳에 흰죽을 쑤어서 놓고 단지에 쌀을 담아 앉히고 굿을 마친뒤 모두들 돌아가고 남은 친정 할머니는 손녀딸에게 당부를 한다
할머니가 보자기에 담아서 준 수수와 조를 밭에다 심으시라고 해라
이 곡물 한되박이 열섬백섬 천섬으로 늘고 불어서 부자가 될거이다
그 후로 시댁에서는 좁쌀을 여기저기 심어서 가을이면 수확을 하게되고 친정조모의 말씀대로 가마니섬이 늘어나고 노적가리를 쌓고 곡물을 팔아 땅을 사기 시작했고 그 땅에다가 조를 심어서 재산을 늘리고 불리어서 대물림을 하며 삼대를 떵떵거리며 일대의 땅을 사들이고 노비를 거느리며 삼대가 잘 살았건만 세대가 바뀌고 빌고 공들이던 업은 주인을 만나지 못한건지 아니면 재산관리를 못한 탓인지 어느 순간에 업은 스르륵 살아져 버리고 후손들의 겁없는 탕진으로 지금은 몰락되었다
믿기지 않고 그럴리가 있냐고들 하겠지만 그 전설속에 새댁은 나의 친정 고조모시며 신적인 존재로 평생을 사시고 집안을 일으켜 세우셨던 가장이며 재물을 모으셨던 쫍쌀 장사꾼이고 조선의 CEO셨다 그런 재산을 내 조부께서는 동네방네 어려운 사람들 또는 여인네들한테 땅을 한떼기씩 뚝뚝 떼어주며 호의호식 하다가 이세상을 등지고 모두 떠나셨다
친정 가세가 기울고 쓰러진 가문 다시 일으켜 세울수는 없지만 가문에 먹칠은 하지 말고 살다가리라고 다짐하며 고조할머니의 기운을 받은 나는 지금 두손을 모아 비비고 빌며 속세에서 어우적거리며 업장소멸을 하고 이웃들과 더불어 사는 세상에 밀알의 싹을 튀우고 있다
가을이 오고 추수의 시기가 다가오면 막내오빠와 나는 삼밭골 밭으로 냄비뚜껑과 꾕가리를 들고 가서 원두막에 앉아서 새를 쫓곤했다
훠어이~~훠어이 하며 밭고랑에 아버지가 세워놓은 허수아비 친구가되어서 좁쌀 쪼아 먹을까봐 어두워지는줄 모르고
밭고랑 뛰어다니던 기억이 아련하다
좁쌀의 전설은 나의 친정어머니께서 열여섯살에 시집와서 층층시하 어르신들을 모시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전해들으셨던 실화를 딸에게 잊지말라고 수십번을 구전으로 역사책을 만들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