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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는 말
선교학을 전공하는 신학생이나, 예비선교사들은 구약선교신학, 신약선교신학, 바울선교신학, 선교 역사, 교회 성장학, 전도학개론, 에큐메닉스, 세계선교운동사, 종교와 문화, 문화인류학, 타문화권선교, 현대선교신학,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 등의 과목을 공부한다. 물론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 과목은 선교사들이 타문화권 선교현장에서 어떻게 삶의 자리를 매김 해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논한다. 또한 복음 전도의 대상인 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며, 그들과 함께 어떻게 하나님의 선교 사역을 이루어가야 할지에 대해서 공부한다. 선교사들이 선교현장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곳에서의 삶을 적어도 6개월 이상은 살아야 한다. 물론 3년 이상 살아도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선교현장에서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이해하고, 그 문화를 받아들이고, 복음을 상황화 해 가기 위해서는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이라는 과목이 매우 현실적이며, 실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이 단지 선교현장만을 강조하다 보면 비성서적일 수도 있게 된다. 그래서 본 과목은 성서, 신학, 선교현장이 조화를 이룬 가운데 진행되어야 한다.
1. ‘선교’에 대한 성서적 개념 정의
선교신학자들마다 나름대로 선교에 대한 정의를 내리곤 한다. 학자들뿐만 아니라 평신도들까지도 “선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적어도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린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나타난 주님의 대위임령에 기초해서 “선교란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선교란 제자를 삼는 것이다.”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좀 더 나아가 “선교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선교란 국경을 넘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피터 바이엘하우스(Peter Beyerhaus)도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것이다.”고 정의했다. 그리고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은 그의 책 Understanding Church Growth에서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 “선교란 잃어버린 남자와 여자를 찾아서 하나님과 화해시켜 그들을 기독교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게 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챨스 밴 앵겐(Charles Van Engen)은 “선교는 경계를 넘어가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이처럼 선교에 대한 정의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변화되어 왔다. 필자는 육하원칙에 준하여 21세기 시대에 적합한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선교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본다.
태초부터 현재, 주님 오실 때까지(언제) 하나님으로부터, 즉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누가) 그가 창조하신 세상에서, 5대양 6대륙에서1(어디서), 구원의 빛을, 그리스도의 복음을(무엇을), 보냄을 받은 자, 증인된 자, 사도들, 전달자, 하나님의 대사들에게 위임하여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을, 타종교나 불신앙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어떻게)구원의 자리로 인도하기 위해서 행하는 행위가 선교이다(왜).
2. ‘선교사’의 개념 정의 : 보내심을 받는 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 3:16) 그의 영원하신 유일한 아들을 이 땅 위에 파송하셨고, 성령을 파송하셨다(요 14:16; 15:26). ‘선교(mission)’란 파송을 뜻하는데, 그 근원이 성부의 성자 파송과 성령 파송에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께서는 이 땅 위에 파송된 첫 선교사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요 17:18)
3. 선교사 사역에 대한 정의
선교사는 자신을 파송한 선교단체, 선교부의 선교신학에 준하여 생활하고, 사역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선교신학을 숙지해야 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오늘날 선교신학의 핵심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다. 이 하나님의 선교는 경건주의 전통의 선교와 삼자 선교정책 등 19세기적 선교개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선교개념이다. 이것은 선교신학의 바탕 위에서 복음을 통한 화해와 새 창조를 이루어가는 것이 선교이다. 화해와 새 창조(선교의 근원이시오, 추진자시오, 완성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를 이루어가는 과정, 즉 성령께서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를 이 땅에 세워가는 것이 선교의 목표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협력, 연합 그리고 일치를 추구하는 선교를 해야 한다. 위의 세 가지 개념 정의가 분명할 때 선교사로서의 사역과 생활에 대한 방향과 그 형태와 범위를 설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II.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에 대한 선교 신학적 이해
1. 선교사 생활과 사역에 대한 신학적 배경에 대한 선 이해
선교신학에서 최초의 선교사는 하나님이시다(Our God is Missionary God)라고 말한다. 이 주장의 성서적 근거는 성육신 선교(Incarnational Mission)의 본문으로 널리 알려진 빌립보서 2장 6-11절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2. 그리스도의 생활과 사역
선교사이신 주님의 모습은 선교사의 삶과 사역의 본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된 성서 구절은 마태복음 8장 19-20절(cf. 눅 9:57-58)이다.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C. 선교사 생활과 사역에 대한 선교적 배경에 대한 선 이해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을 위한 선교 신학적 배경으로는 복음주의 선교와 에큐메니칼 선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복음주의 선교(Evangelical Mission)의 특징으로는 선교의 출발점이 성경이며, 선교의 중심사고는 교회 중심적인 사고이다. 그리고 인간구원을 중시하고, 과거와 종말을 중시한다. 이에 반해 에큐메니칼 선교(Ecumenical Mission)의 특징은 선교의 출발점이 상황(Context)이며, 선교의 중심사고는 세계 중심적인 사고이다. 그리고 사회구원, 사회의 변화, 인간의 책임을 중시하며, 현실에 대한 능동적인 참여를 강조한다. 선교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인 관점은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의 형태와 범위를 설정할 수 있게 해 준다.두 번째 배경으로는 모달리티(Modality) 선교와 소달리티(Sodality) 선교에 대한 이해이다. 모달리티 선교는 교회적인 배경을 가지고 선교를 한다. 그러다 보니 다양성과 전문성이 소달리티에 비해 많이 결여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고정적인 후원회 확보로 인한 후원의 안정성, 장기적인 조직의 안정성이 특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달리티 조직의 선교사는 80-90%가 목회자 중심이다. 그들의 사역을 보면 대부분 신학교 설립, 목회자 양성, 지역 교회 설립, 교단 설립 등이 중심사역이다. 모달리티 선교는 건전한 교회 중심의 선교로 인한 건강성(상호 견제)을 가진다. 모달리티 선교의 특징과는 달리 소달리티 선교는 선교회적 배경을 가지고 선교를 한다. 또한, 전문성을 보유함으로 인해 선교 동원과 기도 운동, 캠퍼스 사역, NGO, 성경번역, 미전도 종족 정탐 등이 소달리티 선교의 중심 사역이다. 그리고 믿음 선교(Faith Mission)에 따른 과감한 헌신의 역동성, 젊은이와 평신도 동원에 대해 집중력이 뛰어난 반면 후원 구조가 빈약하다.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에 대한 일반적 이해와 선교 신학적 이해를 분명히 가질 때 선교 현장의 삶의 자리로 들어가서 온전히 사역을 잘 감당 할 수 있게 된다.
III. 선교사로서의 준비
1. 선교사의 소명
소명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표현에 의하면 소명이란 ‘임금이 신하를 부르는 명령’이고, 기독교에서는 ‘수도자, 사제 등의 특수한 신분으로 신에게 봉사하도록 하는 신의 부름’을 뜻한다. 이것은 부름, 외침, 천직,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영어로는 ‘Calling’이라고 표현한다. 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 사무엘,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요나, 사도 바울 등이 있는데, 이 외에도 우리는 성경 속에서 소명 받은 이들의 이름을 무수히 많이 찾을 수 있다. 소명은 부르심을 인식하는 지적, 감성적 확신이며, 부르심을 인식하는 시점은 몇 가지 과정과 단계 속에서 인지될 수 있다. 허버트 케인은 이것을 세 과정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첫 번째 과정은 호기심(curiosity), 관심(interest), 이해(understanding)의 3단계로 구분된다. 이것은 주로 지적인 생각과 관계가 된다고 보았다.
두 번째 과정도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확신(assurance), 신념(conviction), 그리고 서약(commitment)의 단계이다. 이러한 단계는 정적인 마음과 관계된다.
세 번째 과정에서는 행동(action)이 수반된다. 즉, 이것은 의지와 관계되는 것이다. 이러한 세 과정의 일곱 단계 가운데 어느 부분에서건 부르심을 인식할 때 비로소 소명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 선교지로 출발하기 전에
선교지로 출발한다는 것은 ‘떠남’을 의미한다. 평생 살아왔던 삶을 접어 두고 복음전파를 위하여 그 자리를 떠난다는 것은 중대한 결단과 함께 희생이 요구된다. 창세기 12장 1~3절에는 아브라함의 떠남이 잘 묘사되어 있다.“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1-3).
아브라함의 떠남은 성경말씀 그대로 고향과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는 것이었다. 이것은 바로 순례자의 삶을 사는 것이요, 유랑 선교사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적인 관점에서의 떠남은 외로움과 두려움과 미지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러나 여호와의 부름에 따라 떠나는 삶은 스가랴 2장 5절의 말씀처럼 여호와께서 불성곽이 되어 주시는 축복이 전제된다. 그리고 그 삶을 통해 여호와의 영광이 드러남을 보여 준다.“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슥 2:5).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의 영광이 함께하는 ‘떠남’이 될 수 있도록 믿음 안에서 잘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3. 준비에 관하여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기 위해서 선교사는 잘 훈련된 군사가 되어야 한다. 훈련받지 않고 투입된 군사는 백전백패의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사실 잘 훈련된 군사라 할지라도 전쟁에서 승리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한국교회가 “선교사를 후원하고 싶어도 훈련된 선교사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선교지로 가기 전에 준비된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선교사로서의 헌신과 결단을 한 후에는 사역을 위한 준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영적, 정서적, 심리적, 학문적으로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에 관한 분야에서 준비된 예비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선교는 이런 준비된 선교사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한 명의 선교사를 위해 정성 어린 선교헌금과 중보 기도가 지원된다는 것을 늘 인식할 수 있는 정선된 선교사가 아니면 재정과 사역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해도 선교지에서의 영적 전투는 그리 만만치 않다.
IV. 선교사의 생활
선교사의 생활을 포괄적으로 살펴보면 사회적인 면, 가정적인 면, 건강적인 면, 생활적인 면(의식주), 종교적인 면, 언어적인 면 등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여기서 분류된 큰 항목들은 각각 세부적인 항목을 포함하고 있다. 즉, 사회적인 면은 사회라는 큰 범주 안에서의 현지인과의 만남과 한국인과의 만남, 그리고 외국인과의 만남 등이 있다. 가정적인 면에서는 선교사 본인이 남편 또는 아내로서, 그리고 자녀와 함께하는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요인이 내재하여 있다. 건강적인 면에서는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이 선교사역에 있어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 준다. 특별히 정신적인 면에서는 자기 관리가 매우 중요함을 보여준다. 또한 인간의 삶에 가장 기초가 되는 의식주는 선교사의 생활에 있어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선교사의 삶이 현지문화, 종교문화와 깊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종교적인 면을 언급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다른 문화, 다른 언어권에서 생활하는 선교사에게 있어서 언어 습득은 기본 과제이다.
1. 선교사와 영성
선교사의 삶이 살아 있느냐, 죽었느냐의 답은 하나님과 동행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달려있다. 이 말은 선교사뿐만 아니라 선교적 삶을 살기를 원하는 모든 신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은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어 걷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지만,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질 때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어 걷는다는 것은 나약한 인간으로서 그리 쉬운 길이 아니다. 특별히 선교사가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어 걷는다는 것은 타종교 문화권 아래에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한 고통의 길을 걷는 것이며, 수치와 멸시를 받는 길이기도 하다. 복음을 전하러 가는 발걸음은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승리의 발걸음이 아닌, 무겁고도 두려운 발걸음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의 비전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에 있기에 오늘도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한 걸음씩 내디디는 것이다.선교사에게 있어서 가장 큰 도전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신앙을 버린 자들을 다시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보다 선교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를 끊임없이 유지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데 있는 것이다. 선교사는 늘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성을 갖고 영성이 깨어 있어야 한다. 살아 있는 영성을 가진 선교사는 역사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며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빛을 전하는 자이다. 이런 영성 위에 서 있는 선교사가 뿌리 깊은 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2. 선교적 묵상(QT)
선교사에게 있어서 말씀 묵상은 전쟁에 나가 있는 병사들이 실탄을 공급받는 일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선교지에서 장기 사역을 부끄러움 없이 해낸 선교사들의 고백에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까지 십수 년이 넘도록 해외에서 무슨 힘으로 버텼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들 안에 이렇게 버틸 힘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본인들이 잘 알고 있고, 그렇다고 세상적인 잡다한 고민을 하지 않고도 선교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전적으로 뒤를 봐준 후원 교회가 든든히 버텨준 것도 아니었다. 선교사도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며, 자녀들 교육도 해야 한다. 또 사역을 위한 자원도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부족하면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상호 개선될 소지가 보이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면 인격의 밑바닥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쯤 되면 선교 사역은 둘째 문제고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기에도 급급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성경 일기와 말씀 묵상으로 영적인 힘을 공급받은 것이다.
3. 자신과의 관계 및 자기 계발
자신에 대해서 엄격하고 타자에 대해서 너그러운 사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배려에 있어서는 끝이 없다. 선교사도 사역에 몰입하다 보면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어진다. 그러나 늘 기억해야 할 것은 타자의 관점 속에서 자신과 사역을 평가하고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외적인 모습이야 남루할지 몰라도 영적인 사고와 지적인 사고, 더 나아가 선교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스마트해야 할 것이다.
4. 자료 정리
선교 사역 일지를 적는 것 외에 현장에서 경험하고 축적한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는 것도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선교사들이 타문화권에서 경험한 내용과 정보 자료를 기록하고 정리하여 다른 선교사들이 공유하게 될 때 그 자료는 개인지(personal knowledge)에서 조직지(organizational knowledge)로 변환된다. 노나카 교수는 이러한 프로세스가 변증법의 과정을 거쳐서 발전한다고 보았다. 그는 ‘지식 창조의 프로세스’를 인용문처럼 설명했는데, 필자는 선교지의 정보와 경험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서 다음 세대 선교사들에게 전해져야 한다고 본다.노나카는 지식창조과정3은 ‘나선형 프로세스’(spiral process)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암묵지와 형식지라는 두 종류의 지식이 공동화(암묵지가 또 다른 암묵지로 변하는 과정), 표출화(암묵지가 형식지로 변환하는 과정), 연결화(형식지가 또 다른 형식지로 변하는 과정), 내면화(형식지가 암묵지로 변환하는 과정)라는 네 가지 변환 과정을 거쳐 지식이 창출된다는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변환과정이 직선적으로 이루어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복합 상승작용이 나타나는 ‘나선형 프로세스’로 다이나믹하게 계속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타문화권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의 존재 가치와 그들이 경험하는 내용과 사건, 정보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그런 면에 있어서 자료 정리는 선교 3 지식 간의 변환에서 4가지 기본적인 지식변환 유형을 도출할 수 있다.
① 암묵지에서 암묵지로 → 공동화, 사회화(社會化: socialization 신체로 지를 얻는다)
② 암묵지에서 형식지로 → 표출화, 외부화(外部化: externalization 생각이나 노하우를 말이나 형태로 표현한다)
③ 형식지에서 형식지로 → 연결화, 종합화(綜合化: combination 말이나 형태를 조합한다)
④ 형식지에서 암묵지로 → 내면화(內面化: internalization 말이나 형태를 체득한다) 사역에 있어서 매우 의미가 있다.
5. 생활 관계
선교지는 선교사가 자랐던 곳과 많은 차이가 난다. 다른 문화와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긴장감을 동반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내적 평안을 빼앗는 요인이 된다. 선교지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을 만한 사건을 경험하는 경우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에서도 우리는 내적 평안을 잃을 수 있다. 선교사의 생활 가운데서 언급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문화충격이다. 이것은 선교사가 넘어야 할 두 번째 경계에 해당한다. 지금은 세계화 혹은 지구촌 단일 문화권이라는 사회적 변화의 현상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혼합문화를 형성해 가고 있다. 그러나 외형적인 변화의 추세에도 불구하고 타문화권에서 살아갈 때는 누구나 크고 작은 문화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남자 선교사보다는 감정적으로 예민한 여자 선교사가 더 크게 받는다. 문화충격을 극복하지 못하면 소외감, 우울증, 향수병 등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한국인은 유색 인종이다. 해외에 나가 보면 아시아 지역을 제외하고 거의 예외 없이 많은 나라가 유색 인종을 멸시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단기간에 선교지를 방문할 경우에는 그곳의 문화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경험하는 것들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도미니카공화국을 잠시 방문한 자매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가 버렸다. 자매는 사방이 순식간에 깜깜해지니까 너무나 인상적이고 낭만적이라며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닌가!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전기를 달라고 거리에서 목숨을 걸고 데모를 하는 것을 그 자매가 어떻게 알겠는가! 선교사들이여, 새로운 문화에 노출될 때 오는 긴장감과 문화충격은 자신만 받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낮고 천한 마구간에서 선교사의 삶을 시작하신 주님이야말로 죄악된 세상의 문화충격 경계를 넘으신 분이다. 그분이 영적 평안을 잃은 우리들을 이해와 사랑으로 감싸 주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6. 선교와 가정
중세시대 때 선교의 중심축을 이루었던 유랑 선교사는 주로 독신이었다. 그들은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가족과 함께 선교지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사역을 하는 동안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교사와 가정의 관점에서 문제가 되는 선교사 유형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사역 중심의 선교사이다. 가정에는 늘 아내와 아이들만 남겨놓고 여러 가지 이유로 사역에만 빠져있는 선교사이다. 그들은 가족의 희생이야말로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사랑을 나타내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고 믿고 있다.
둘째는 가족 중심의 선교사이다. 사역에는 관심이 없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일에 하루의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또한 가족이 원한다면 당장 사역을 접고 고국으로 직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건강한 선교사 가정은 사역과 가정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선교사 가정이 건강한 상태일 때 사역도 건강해진다. 더 나아가 사역이 건강해야 하나님께서 그 가정도 책임져 주신다. 그러기에 선교사는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함과 동시에 가정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든든한 가정의 기초 위에서 선교사역이 가능하다. 아무리 사역이 과중하게 밀려올지라도 가족을 위한 시간을 따로 떼어 놓는 것이 좋다.
7. 선교사의 건강
‘건강’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특별히 선교사의 건강은 선교사 자신뿐만 아니라 후원하는 교회, 본부, 선교지의 영혼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선교사의 건강은 단지 육체적 건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사의 영적, 정서적, 심리적, 가정적일 뿐 아니라 선교 정책, 선교 신학, 선교 사역 등 전반적인 면에 있어서 건강해야 한다. 선교사는 받은 소명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순교를 각오하고 열심히 사역에 임한다. 그러나 불사르는 정열과 과로는 열악한 선교지의 환경과 날씨로 인해 선교사의 몸을 빨리 손상시킨다. 그러기에 효과적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선교사는 자신의 건강을 돌보며 사역에 임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V. 선교사의 사역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이다. 이 관점에서 벗어나면 늘 교회와 선교사는 ‘선교들’을 위해 애쓸 때가 많게 된다. 선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행하는 행위이고, 그 선교를 행하는 선교사는 하나님의 대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선교들’을 행하는 선교사는 분명 선교 사업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선교는 다양하게 이루어지지만, 이것 또한 하나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선교의 목적이 분명 하나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선교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또한 선교 사역을 하는 교회들과 선교사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진정한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하면서 사역해야 할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성품을 전하는 것이고, 그 하나님의 성품은 인간들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1. 선교사역의 원칙
선교사역의 원칙과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성서에서 찾을 수 있다. 성서는 선교사역의 목표가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와 하나님의 통치, 샬롬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님은 이러한 목표 아래에서 원칙을 정하고 사역하셨다. 이것을 네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집중’(Concentration)이다. 주님은 소수에게 집중하셨다. 둘째, ‘인격의 변화’(Character Change)이다. 주님은 인간의 성격, 특성을 변화시키고자 하셨다. 셋째, ‘인격적 관계’(Contact)이다. 주님은 제자들과 늘 접촉하면서 가르치셨다. 넷째, ‘상황’(Context)이다. 주님은 늘 복음이 전해져야 하는 상황 속에서 제자들을 훈련하셨다. 예수님의 선교방법을 필자는 ‘연약함의 선교’라고 정의하고 싶다. 고난의 종으로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신 주님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선교사의 모습이다. 연약함의 선교를 통해서 주님은 기적을 베푸시고, 말씀을 선포하셨던 것이다.
2. 선교비전 및 사역 계획 준비
선교사는 비전이 분명해도 사역지에서 사역하다 보면 비전이 흔들릴 때가 있고, 그 비전이 하나님의 선교 비전이 아닌 선교사 자신의 비전인 경우가 많다. 흔히 세상의 정치, 경제, 사회, 환경운동, 시민운동, 사회봉사, 교회 정치 등에 뛰어든 많은 사람이 깨끗한, 투명한, 국민을 대표하는, 서민을 위한 동반자, 혹은 섬기는 자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목적은 간데 없고 결국 자신을 위한 투쟁, 싸움, 노력, 변명, 주장에 대한 변호 등만 남게 됨을 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의 선교 현장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붙잡고 선교에 헌신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목적을 상실하고 선교지에서 단지 살아가는 데 급급해지고, 자녀 양육에 올인하거나 프로젝트, 현지 부동산의 노예가 되어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선교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주객전도 현상이 보편화 되어 있는 선교현장에서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끝까지 그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선교사, 선교 헌신자들이 평생 기도하며 사역할 자신의 선교 현장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연구하지 않는다면 복음의 접촉점을 발견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신임 선교사 훈련 시 선교 현장에 관한 연구를 누구보다도 강조해 왔다.
3. 언어훈련
윌리엄 케리가 언어의 장벽에 대해서 걱정했듯이 여기에서 제2의 경계인 언어의 장벽을 넘어가지 못하면 복음을 제대로 제시할 수 없는 것이다. 현지 언어 습득은 선교에 있어서 필수다. 유창하게 현지어를 사용하면서도 선교지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선교사가 종종 있듯이 언어를 잘한다고 선교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지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결단코 선교를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 현지어는 현장에 도착해서 2년 안에 정복해야 하며, 적어도 첫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자유롭게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신임 선교사가 정착 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사항으로 선교 초기에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언어 습득은 사회적 활동이기에 말은 아이들처럼 배워야 한다. 먼저 들어야 한다. 수없이 듣고, 흉내 내고, 읽고, 쓰기를 해야 한다. 현지인의 문화와 함께 배워야 한다. 언어는 문화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지 신문을 매일 읽어야 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기 쉽다.
4. 선교사, 현지인, 현지 교회와의 관계
앤드류 월스(Andrew Walls)는 선교의 역사를 문화적인 측면에서 정리했다. 그는 복음은 처음에는 유대인의 옷을, 그 후에는 그리이스와 헬레니즘의 옷을, 그리고 이어서 바바리안(Barbarians)의 옷을 입었고, 종교개혁 이후에는 서유럽의 옷을 입었다. 그 후 유럽의 확장에 맞추어 계몽주의와 모더니즘의 옷을 입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오늘날에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사상에 맞추어 크로스 컬츄럴(Cross- cultural)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한다.4 이 선교관은 현지인과 현지 목회자, 현지 교회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게 해 주고, 협력적이며 복음적인 동역관계 형성을 가능하게 해 준다. 선교지에 간 선교사가 그들이 입고 있는 문화의 옷을 입지 않을 때는 이방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선교에 있어서 복음은 늘 상황화되어야 한다.
5. 현지 동역 교단, 선교단체, 외국인 선교사와의 관계
1910년 에든버러(Edinburgh)에서 세계선교대회가 열렸다. 그때 인도 교회를 대표해서 온 아자리아(V. S. Azariah)5는 이렇게 말했다. “인도에서는 선교사와 현지 인도 사역자들의 관계가 4 Andrew F. Walls, The Missionary movement in Christian history (New York: Orbis Books, 1997).5 도르니칼의 주교 아자리아는 그가 처음 그 교구에 취임했을 때 공공연한 간음을 이유로 6백 명 이상의 교인을 제명하였다. 성공회 교회들은 이 일로 성장을 멈추기는커녕 수천 명을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징계 행위는 자극이 되었다. 제명된 많은 사람들은 회개를 하고 복직되었다. [Donald A. McGavran, 전재옥, 이요한, 김종일 역, 『교회성장이해』264 세계선교의 길라잡이주인과 종의 관계와 같다.” 그는 이어서 참석한 이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요청했고 친구들을 달라고 호소했다(You have given your goods to feed the poor. You have given your bodies to be burned. We also ask for love. Give us Friends).지금도 선교지에 있는 현지 교회 지도자들의 생각은 이와 동일하다. 그들은 지배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를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원하는 것이다. 더욱이 21세기 선교현장에서는 현지 선교기관, 선교단체, 그리고 교단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제는 서구 선교사나 한국 선교사들이 선교사역 초기의 시행착오를 딛고 현지 교단과 협력하면서 그들을 돕는 사역으로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선교사들 가운데는 자신의 영역 안에서 자기만의 사역을 펼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랄프 윈터(Ralph. D. Winter)의 선교사역 4단계를 살펴보아도 필자의 의견과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제1단계: Pioneer(개척자)-선교사들이 주도권을 가짐.
제2단계: Parent(양육자)-선교사에게 아직까지 주도권이 있음.
제3단계: Partner(동역자)-동역 단계로서 동등한 주권을 가짐.
제4단계: Participant(참여자)-선교사는 돕는 자이며 현지 교회가 주도권을 가짐.
6. 사회봉사를 통한 선교
하나님의 선교에 있어서 복음전파와 사회봉사, 이 두 영역에 대한 균형은 매우 중요하다. 복음 진영을 대표하는 로잔 운동은 이 두 가지 영역 중에서 복음 전도의 우선성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선교신학에서 우선순위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복음주의에 속한 많은 선교사의 사역 대부분이 사회봉사를 통한 복음전도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선교지에서 사회봉사를 통한 사역은 기독교를 떠나서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봉사를 통한 많은 사역이 자신들의 종교와 단체를 홍보하는 차원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
7. 선교 사역의 다양한 원칙
선교 사역에 대한 한 가지 원칙을 말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바로 사역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사역과 절대로 비교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경은 갈라디아서 6장 4절에서 우리에게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다. Understanding Church Growth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출판국, 1987),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갈 6:4) 사역의 결과를 놓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안 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우리가 판단하기에 우리보다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데, 그럴 때 낙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우리보다 일을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날 경우에 그들 앞에서 자신을 내세우고 우쭐해지고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마음 자세 모두 우리가 올바른 사역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꾼임을 기억하자. H. 디아스포라 사역한인 디아스포라 800여만 명이 현재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 한인 디아스포라를 중심으로 세워진 디아스포라 교회가 선교의 현장이 되는 이유로
첫째는 선교지의 중추(Hub), 베이스 캠프(Base Camp)의 역할을 한다.
둘째는 오랜 기간 다져 온 현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국수주의(Nationalism), 인종차별(Racialism)을 깰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풍부한 선교적 자원들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8. 팀 선교
일반적으로 팀은 두세 사람 이상의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만든 유연한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조직을 통해 개인보다 더 큰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공동의 목표를 가진 구성원들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간의 격려 및 책임의식이 있어야 한다. 팀은 다수의 사람보다는 소수의 사람들로 구성해야 하며, 보완적인 은사와 기능, 능력을 갖춘 사람들로 구성해야 한다. 더 나아가 공동의 목표에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해야 한다. 팀원은 팀의 분명한 목표와 가치를 이해해야 하며, 서로를 신뢰하고 도와야 하며, 커뮤니케이션의 장은 늘 개방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팀원들이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해야 한다. 그럴 경우 목표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인지할 수 있다.
9. 선교보고, 재정 및 안식년
선교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선교사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자신의 눈에 비치는 현지인들의 생활모습, 거리의 풍경, 상점, 대중교통, 재래시장, 음식, 그 어느 것도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다. 새롭게 시작하는 삶 속에서의 경험도 그냥 넘길 수 없다. 신기한 곳에 와서 경험하는 것들을 혼자서 간직하기에는 너무 아까워 보인다. 선교소식을 보낼 소재들이 넘쳐난다. 처음 1년 동안은 너무나 신기한 많은 사건이 매일매일 눈 앞에 펼쳐지기 때문에 선교 소식을 자주 보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새로웠던 문화충격의 사건들에 익숙해져서 어느새 흥미를 잃게 되고, 뜨거운 선교열정도 차츰 식으면서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들이 오히려 생활의 불편함을 주는 요소가 되고 넘어가야 할 험난한 장벽이라는 현실 앞에 주눅이 든다. 소식을 보낼 때가 다가오면 긴장이 된다. 이번에는 무엇을 쓸까? 선교사는 개인이 아니라 공인임에도 불구하고 영적, 물질적, 성적, 사회적 문제 등으로 선교사의 정체성, 신뢰성, 책임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오늘날 선교 현실의 어두운 면들이다. 선교비는 과부가 주님께 드린 귀한 헌금이라고 늘 생각하고, 선교비 관리를 잘해야 한다.안식년은 선교사에게 쉼을 주는 성서적인 휴식시간이다. 이 안식년을 효과적으로 잘 보내면 선교는 극대화될 수 있다. 안식년은 선교사에게 여러 가지 유익한 점을 가져다준다.
10. 사역지에서의 위기관리
우리는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하나님은 내일 혹은 그 이후에 어떤 일을 행하실지 우리에게 미리 말씀해 주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행동 결과에 대해 미리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 살고 행동하도록 하신다. 이와 같이 사역지에 놓여있는 선교사도 보통사람과 같이 모든 위험에 노출되어있다. 선교사라고 예외는 아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송하시면서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위기상황 속에서도 냉철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말씀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위기상황에 노출되는 모든 상황을 점검함으로서 위기를 예방해야 한다.
11. 선교 사역의 이양 및 은퇴
최근 한국 선교계에서 유행하는 단어가 입구 전략과 출구 전략이다. 이양 및 은퇴라는 단어는 선교의 출구 전략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출구 전략은 선교의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과정에 속한다. 교단 선교부, 선교단체, 후원 교회 등이 선교사의 입구 전략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출구 전략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출구 전략에 실패하여 어려움을 겪는 시니어 선교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필자가 30년 이상 사역을 한 후 은퇴를 앞둔 시니어 선교사가 그 가정과 사역을 위해서 평생 기도해 온 후원 교회와 갈등을 겪는 걸 보면서, 한국 교회가 앞으로 이 영역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갖고 방안을 모색해야 함을 실감했다. 출구 전략은 첫 번째 기한을 마치고 철수해야 하는 경우부터 은퇴하는 시기까지 모든 선교사에게 맞춤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
VI. 나가는 말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한국 전쟁 당시 최전방에서 전투한 병사의 모습에 비유할 수 있겠다. 전쟁 이후 우리가 모두 분단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전투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들의 가족들, 부상을 당한 병사들과 그 가족들이 일평생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잊고 지낼 때가 많이 있다. 마찬가지로 선교 현장에서 생명을 담보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의 아픔과 고통은 선교에 대한 학문적 이론이나 단기간 방문만으로는 결코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은 바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이며,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선교사가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사역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I. 들어가는 말
선교학을 전공하는 신학생이나, 예비선교사들은 구약선교신학, 신약선교신학, 바울선교신학, 선교 역사, 교회 성장학, 전도학개론, 에큐메닉스, 세계선교운동사, 종교와 문화, 문화인류학, 타문화권선교, 현대선교신학,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 등의 과목을 공부한다. 물론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 과목은 선교사들이 타문화권 선교현장에서 어떻게 삶의 자리를 매김 해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논한다. 또한 복음 전도의 대상인 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며, 그들과 함께 어떻게 하나님의 선교 사역을 이루어가야 할지에 대해서 공부한다. 선교사들이 선교현장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곳에서의 삶을 적어도 6개월 이상은 살아야 한다. 물론 3년 이상 살아도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선교현장에서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이해하고, 그 문화를 받아들이고, 복음을 상황화 해 가기 위해서는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이라는 과목이 매우 현실적이며, 실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이 단지 선교현장만을 강조하다 보면 비성서적일 수도 있게 된다. 그래서 본 과목은 성서, 신학, 선교현장이 조화를 이룬 가운데 진행되어야 한다.
1. ‘선교’에 대한 성서적 개념 정의
선교신학자들마다 나름대로 선교에 대한 정의를 내리곤 한다. 학자들뿐만 아니라 평신도들까지도 “선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적어도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린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나타난 주님의 대위임령에 기초해서 “선교란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선교란 제자를 삼는 것이다.”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좀 더 나아가 “선교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선교란 국경을 넘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피터 바이엘하우스(Peter Beyerhaus)도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것이다.”고 정의했다. 그리고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은 그의 책 Understanding Church Growth에서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 “선교란 잃어버린 남자와 여자를 찾아서 하나님과 화해시켜 그들을 기독교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게 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챨스 밴 앵겐(Charles Van Engen)은 “선교는 경계를 넘어가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이처럼 선교에 대한 정의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변화되어 왔다. 필자는 육하원칙에 준하여 21세기 시대에 적합한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선교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본다.
태초부터 현재, 주님 오실 때까지(언제) 하나님으로부터, 즉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누가) 그가 창조하신 세상에서, 5대양 6대륙에서1(어디서), 구원의 빛을, 그리스도의 복음을(무엇을), 보냄을 받은 자, 증인된 자, 사도들, 전달자, 하나님의 대사들에게 위임하여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을, 타종교나 불신앙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어떻게)구원의 자리로 인도하기 위해서 행하는 행위가 선교이다(왜).
2. ‘선교사’의 개념 정의 : 보내심을 받는 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 3:16) 그의 영원하신 유일한 아들을 이 땅 위에 파송하셨고, 성령을 파송하셨다(요 14:16; 15:26). ‘선교(mission)’란 파송을 뜻하는데, 그 근원이 성부의 성자 파송과 성령 파송에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께서는 이 땅 위에 파송된 첫 선교사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요 17:18)
3. 선교사 사역에 대한 정의
선교사는 자신을 파송한 선교단체, 선교부의 선교신학에 준하여 생활하고, 사역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선교신학을 숙지해야 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오늘날 선교신학의 핵심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다. 이 하나님의 선교는 경건주의 전통의 선교와 삼자 선교정책 등 19세기적 선교개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선교개념이다. 이것은 선교신학의 바탕 위에서 복음을 통한 화해와 새 창조를 이루어가는 것이 선교이다. 화해와 새 창조(선교의 근원이시오, 추진자시오, 완성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를 이루어가는 과정, 즉 성령께서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를 이 땅에 세워가는 것이 선교의 목표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협력, 연합 그리고 일치를 추구하는 선교를 해야 한다. 위의 세 가지 개념 정의가 분명할 때 선교사로서의 사역과 생활에 대한 방향과 그 형태와 범위를 설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II.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에 대한 선교 신학적 이해
1. 선교사 생활과 사역에 대한 신학적 배경에 대한 선 이해
선교신학에서 최초의 선교사는 하나님이시다(Our God is Missionary God)라고 말한다. 이 주장의 성서적 근거는 성육신 선교(Incarnational Mission)의 본문으로 널리 알려진 빌립보서 2장 6-11절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2. 그리스도의 생활과 사역
선교사이신 주님의 모습은 선교사의 삶과 사역의 본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된 성서 구절은 마태복음 8장 19-20절(cf. 눅 9:57-58)이다.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C. 선교사 생활과 사역에 대한 선교적 배경에 대한 선 이해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을 위한 선교 신학적 배경으로는 복음주의 선교와 에큐메니칼 선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복음주의 선교(Evangelical Mission)의 특징으로는 선교의 출발점이 성경이며, 선교의 중심사고는 교회 중심적인 사고이다. 그리고 인간구원을 중시하고, 과거와 종말을 중시한다. 이에 반해 에큐메니칼 선교(Ecumenical Mission)의 특징은 선교의 출발점이 상황(Context)이며, 선교의 중심사고는 세계 중심적인 사고이다. 그리고 사회구원, 사회의 변화, 인간의 책임을 중시하며, 현실에 대한 능동적인 참여를 강조한다. 선교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인 관점은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의 형태와 범위를 설정할 수 있게 해 준다.두 번째 배경으로는 모달리티(Modality) 선교와 소달리티(Sodality) 선교에 대한 이해이다. 모달리티 선교는 교회적인 배경을 가지고 선교를 한다. 그러다 보니 다양성과 전문성이 소달리티에 비해 많이 결여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고정적인 후원회 확보로 인한 후원의 안정성, 장기적인 조직의 안정성이 특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달리티 조직의 선교사는 80-90%가 목회자 중심이다. 그들의 사역을 보면 대부분 신학교 설립, 목회자 양성, 지역 교회 설립, 교단 설립 등이 중심사역이다. 모달리티 선교는 건전한 교회 중심의 선교로 인한 건강성(상호 견제)을 가진다. 모달리티 선교의 특징과는 달리 소달리티 선교는 선교회적 배경을 가지고 선교를 한다. 또한, 전문성을 보유함으로 인해 선교 동원과 기도 운동, 캠퍼스 사역, NGO, 성경번역, 미전도 종족 정탐 등이 소달리티 선교의 중심 사역이다. 그리고 믿음 선교(Faith Mission)에 따른 과감한 헌신의 역동성, 젊은이와 평신도 동원에 대해 집중력이 뛰어난 반면 후원 구조가 빈약하다.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에 대한 일반적 이해와 선교 신학적 이해를 분명히 가질 때 선교 현장의 삶의 자리로 들어가서 온전히 사역을 잘 감당 할 수 있게 된다.
III. 선교사로서의 준비
1. 선교사의 소명
소명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표현에 의하면 소명이란 ‘임금이 신하를 부르는 명령’이고, 기독교에서는 ‘수도자, 사제 등의 특수한 신분으로 신에게 봉사하도록 하는 신의 부름’을 뜻한다. 이것은 부름, 외침, 천직,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영어로는 ‘Calling’이라고 표현한다. 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 사무엘,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요나, 사도 바울 등이 있는데, 이 외에도 우리는 성경 속에서 소명 받은 이들의 이름을 무수히 많이 찾을 수 있다. 소명은 부르심을 인식하는 지적, 감성적 확신이며, 부르심을 인식하는 시점은 몇 가지 과정과 단계 속에서 인지될 수 있다. 허버트 케인은 이것을 세 과정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첫 번째 과정은 호기심(curiosity), 관심(interest), 이해(understanding)의 3단계로 구분된다. 이것은 주로 지적인 생각과 관계가 된다고 보았다.
두 번째 과정도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확신(assurance), 신념(conviction), 그리고 서약(commitment)의 단계이다. 이러한 단계는 정적인 마음과 관계된다.
세 번째 과정에서는 행동(action)이 수반된다. 즉, 이것은 의지와 관계되는 것이다. 이러한 세 과정의 일곱 단계 가운데 어느 부분에서건 부르심을 인식할 때 비로소 소명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 선교지로 출발하기 전에
선교지로 출발한다는 것은 ‘떠남’을 의미한다. 평생 살아왔던 삶을 접어 두고 복음전파를 위하여 그 자리를 떠난다는 것은 중대한 결단과 함께 희생이 요구된다. 창세기 12장 1~3절에는 아브라함의 떠남이 잘 묘사되어 있다.“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1-3).
아브라함의 떠남은 성경말씀 그대로 고향과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는 것이었다. 이것은 바로 순례자의 삶을 사는 것이요, 유랑 선교사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적인 관점에서의 떠남은 외로움과 두려움과 미지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러나 여호와의 부름에 따라 떠나는 삶은 스가랴 2장 5절의 말씀처럼 여호와께서 불성곽이 되어 주시는 축복이 전제된다. 그리고 그 삶을 통해 여호와의 영광이 드러남을 보여 준다.“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슥 2:5).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의 영광이 함께하는 ‘떠남’이 될 수 있도록 믿음 안에서 잘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3. 준비에 관하여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기 위해서 선교사는 잘 훈련된 군사가 되어야 한다. 훈련받지 않고 투입된 군사는 백전백패의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사실 잘 훈련된 군사라 할지라도 전쟁에서 승리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한국교회가 “선교사를 후원하고 싶어도 훈련된 선교사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선교지로 가기 전에 준비된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선교사로서의 헌신과 결단을 한 후에는 사역을 위한 준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영적, 정서적, 심리적, 학문적으로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에 관한 분야에서 준비된 예비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선교는 이런 준비된 선교사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한 명의 선교사를 위해 정성 어린 선교헌금과 중보 기도가 지원된다는 것을 늘 인식할 수 있는 정선된 선교사가 아니면 재정과 사역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해도 선교지에서의 영적 전투는 그리 만만치 않다.
IV. 선교사의 생활
선교사의 생활을 포괄적으로 살펴보면 사회적인 면, 가정적인 면, 건강적인 면, 생활적인 면(의식주), 종교적인 면, 언어적인 면 등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여기서 분류된 큰 항목들은 각각 세부적인 항목을 포함하고 있다. 즉, 사회적인 면은 사회라는 큰 범주 안에서의 현지인과의 만남과 한국인과의 만남, 그리고 외국인과의 만남 등이 있다. 가정적인 면에서는 선교사 본인이 남편 또는 아내로서, 그리고 자녀와 함께하는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요인이 내재하여 있다. 건강적인 면에서는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이 선교사역에 있어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 준다. 특별히 정신적인 면에서는 자기 관리가 매우 중요함을 보여준다. 또한 인간의 삶에 가장 기초가 되는 의식주는 선교사의 생활에 있어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선교사의 삶이 현지문화, 종교문화와 깊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종교적인 면을 언급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다른 문화, 다른 언어권에서 생활하는 선교사에게 있어서 언어 습득은 기본 과제이다.
1. 선교사와 영성
선교사의 삶이 살아 있느냐, 죽었느냐의 답은 하나님과 동행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달려있다. 이 말은 선교사뿐만 아니라 선교적 삶을 살기를 원하는 모든 신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은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어 걷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지만,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질 때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어 걷는다는 것은 나약한 인간으로서 그리 쉬운 길이 아니다. 특별히 선교사가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어 걷는다는 것은 타종교 문화권 아래에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한 고통의 길을 걷는 것이며, 수치와 멸시를 받는 길이기도 하다. 복음을 전하러 가는 발걸음은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승리의 발걸음이 아닌, 무겁고도 두려운 발걸음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의 비전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에 있기에 오늘도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한 걸음씩 내디디는 것이다.선교사에게 있어서 가장 큰 도전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신앙을 버린 자들을 다시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보다 선교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를 끊임없이 유지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데 있는 것이다. 선교사는 늘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성을 갖고 영성이 깨어 있어야 한다. 살아 있는 영성을 가진 선교사는 역사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며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빛을 전하는 자이다. 이런 영성 위에 서 있는 선교사가 뿌리 깊은 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2. 선교적 묵상(QT)
선교사에게 있어서 말씀 묵상은 전쟁에 나가 있는 병사들이 실탄을 공급받는 일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선교지에서 장기 사역을 부끄러움 없이 해낸 선교사들의 고백에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까지 십수 년이 넘도록 해외에서 무슨 힘으로 버텼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들 안에 이렇게 버틸 힘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본인들이 잘 알고 있고, 그렇다고 세상적인 잡다한 고민을 하지 않고도 선교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전적으로 뒤를 봐준 후원 교회가 든든히 버텨준 것도 아니었다. 선교사도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며, 자녀들 교육도 해야 한다. 또 사역을 위한 자원도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부족하면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상호 개선될 소지가 보이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면 인격의 밑바닥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쯤 되면 선교 사역은 둘째 문제고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기에도 급급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성경 일기와 말씀 묵상으로 영적인 힘을 공급받은 것이다.
3. 자신과의 관계 및 자기 계발
자신에 대해서 엄격하고 타자에 대해서 너그러운 사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배려에 있어서는 끝이 없다. 선교사도 사역에 몰입하다 보면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어진다. 그러나 늘 기억해야 할 것은 타자의 관점 속에서 자신과 사역을 평가하고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외적인 모습이야 남루할지 몰라도 영적인 사고와 지적인 사고, 더 나아가 선교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스마트해야 할 것이다.
4. 자료 정리
선교 사역 일지를 적는 것 외에 현장에서 경험하고 축적한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는 것도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선교사들이 타문화권에서 경험한 내용과 정보 자료를 기록하고 정리하여 다른 선교사들이 공유하게 될 때 그 자료는 개인지(personal knowledge)에서 조직지(organizational knowledge)로 변환된다. 노나카 교수는 이러한 프로세스가 변증법의 과정을 거쳐서 발전한다고 보았다. 그는 ‘지식 창조의 프로세스’를 인용문처럼 설명했는데, 필자는 선교지의 정보와 경험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서 다음 세대 선교사들에게 전해져야 한다고 본다.노나카는 지식창조과정3은 ‘나선형 프로세스’(spiral process)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암묵지와 형식지라는 두 종류의 지식이 공동화(암묵지가 또 다른 암묵지로 변하는 과정), 표출화(암묵지가 형식지로 변환하는 과정), 연결화(형식지가 또 다른 형식지로 변하는 과정), 내면화(형식지가 암묵지로 변환하는 과정)라는 네 가지 변환 과정을 거쳐 지식이 창출된다는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변환과정이 직선적으로 이루어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복합 상승작용이 나타나는 ‘나선형 프로세스’로 다이나믹하게 계속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타문화권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의 존재 가치와 그들이 경험하는 내용과 사건, 정보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그런 면에 있어서 자료 정리는 선교 3 지식 간의 변환에서 4가지 기본적인 지식변환 유형을 도출할 수 있다.
① 암묵지에서 암묵지로 → 공동화, 사회화(社會化: socialization 신체로 지를 얻는다)
② 암묵지에서 형식지로 → 표출화, 외부화(外部化: externalization 생각이나 노하우를 말이나 형태로 표현한다)
③ 형식지에서 형식지로 → 연결화, 종합화(綜合化: combination 말이나 형태를 조합한다)
④ 형식지에서 암묵지로 → 내면화(內面化: internalization 말이나 형태를 체득한다) 사역에 있어서 매우 의미가 있다.
5. 생활 관계
선교지는 선교사가 자랐던 곳과 많은 차이가 난다. 다른 문화와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긴장감을 동반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내적 평안을 빼앗는 요인이 된다. 선교지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을 만한 사건을 경험하는 경우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에서도 우리는 내적 평안을 잃을 수 있다. 선교사의 생활 가운데서 언급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문화충격이다. 이것은 선교사가 넘어야 할 두 번째 경계에 해당한다. 지금은 세계화 혹은 지구촌 단일 문화권이라는 사회적 변화의 현상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혼합문화를 형성해 가고 있다. 그러나 외형적인 변화의 추세에도 불구하고 타문화권에서 살아갈 때는 누구나 크고 작은 문화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남자 선교사보다는 감정적으로 예민한 여자 선교사가 더 크게 받는다. 문화충격을 극복하지 못하면 소외감, 우울증, 향수병 등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한국인은 유색 인종이다. 해외에 나가 보면 아시아 지역을 제외하고 거의 예외 없이 많은 나라가 유색 인종을 멸시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단기간에 선교지를 방문할 경우에는 그곳의 문화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경험하는 것들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도미니카공화국을 잠시 방문한 자매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가 버렸다. 자매는 사방이 순식간에 깜깜해지니까 너무나 인상적이고 낭만적이라며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닌가!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전기를 달라고 거리에서 목숨을 걸고 데모를 하는 것을 그 자매가 어떻게 알겠는가! 선교사들이여, 새로운 문화에 노출될 때 오는 긴장감과 문화충격은 자신만 받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낮고 천한 마구간에서 선교사의 삶을 시작하신 주님이야말로 죄악된 세상의 문화충격 경계를 넘으신 분이다. 그분이 영적 평안을 잃은 우리들을 이해와 사랑으로 감싸 주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6. 선교와 가정
중세시대 때 선교의 중심축을 이루었던 유랑 선교사는 주로 독신이었다. 그들은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가족과 함께 선교지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사역을 하는 동안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교사와 가정의 관점에서 문제가 되는 선교사 유형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사역 중심의 선교사이다. 가정에는 늘 아내와 아이들만 남겨놓고 여러 가지 이유로 사역에만 빠져있는 선교사이다. 그들은 가족의 희생이야말로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사랑을 나타내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고 믿고 있다.
둘째는 가족 중심의 선교사이다. 사역에는 관심이 없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일에 하루의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또한 가족이 원한다면 당장 사역을 접고 고국으로 직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건강한 선교사 가정은 사역과 가정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선교사 가정이 건강한 상태일 때 사역도 건강해진다. 더 나아가 사역이 건강해야 하나님께서 그 가정도 책임져 주신다. 그러기에 선교사는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함과 동시에 가정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든든한 가정의 기초 위에서 선교사역이 가능하다. 아무리 사역이 과중하게 밀려올지라도 가족을 위한 시간을 따로 떼어 놓는 것이 좋다.
7. 선교사의 건강
‘건강’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특별히 선교사의 건강은 선교사 자신뿐만 아니라 후원하는 교회, 본부, 선교지의 영혼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선교사의 건강은 단지 육체적 건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사의 영적, 정서적, 심리적, 가정적일 뿐 아니라 선교 정책, 선교 신학, 선교 사역 등 전반적인 면에 있어서 건강해야 한다. 선교사는 받은 소명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순교를 각오하고 열심히 사역에 임한다. 그러나 불사르는 정열과 과로는 열악한 선교지의 환경과 날씨로 인해 선교사의 몸을 빨리 손상시킨다. 그러기에 효과적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선교사는 자신의 건강을 돌보며 사역에 임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V. 선교사의 사역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이다. 이 관점에서 벗어나면 늘 교회와 선교사는 ‘선교들’을 위해 애쓸 때가 많게 된다. 선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행하는 행위이고, 그 선교를 행하는 선교사는 하나님의 대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선교들’을 행하는 선교사는 분명 선교 사업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선교는 다양하게 이루어지지만, 이것 또한 하나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선교의 목적이 분명 하나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선교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또한 선교 사역을 하는 교회들과 선교사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진정한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하면서 사역해야 할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성품을 전하는 것이고, 그 하나님의 성품은 인간들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1. 선교사역의 원칙
선교사역의 원칙과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성서에서 찾을 수 있다. 성서는 선교사역의 목표가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와 하나님의 통치, 샬롬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님은 이러한 목표 아래에서 원칙을 정하고 사역하셨다. 이것을 네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집중’(Concentration)이다. 주님은 소수에게 집중하셨다. 둘째, ‘인격의 변화’(Character Change)이다. 주님은 인간의 성격, 특성을 변화시키고자 하셨다. 셋째, ‘인격적 관계’(Contact)이다. 주님은 제자들과 늘 접촉하면서 가르치셨다. 넷째, ‘상황’(Context)이다. 주님은 늘 복음이 전해져야 하는 상황 속에서 제자들을 훈련하셨다. 예수님의 선교방법을 필자는 ‘연약함의 선교’라고 정의하고 싶다. 고난의 종으로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신 주님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선교사의 모습이다. 연약함의 선교를 통해서 주님은 기적을 베푸시고, 말씀을 선포하셨던 것이다.
2. 선교비전 및 사역 계획 준비
선교사는 비전이 분명해도 사역지에서 사역하다 보면 비전이 흔들릴 때가 있고, 그 비전이 하나님의 선교 비전이 아닌 선교사 자신의 비전인 경우가 많다. 흔히 세상의 정치, 경제, 사회, 환경운동, 시민운동, 사회봉사, 교회 정치 등에 뛰어든 많은 사람이 깨끗한, 투명한, 국민을 대표하는, 서민을 위한 동반자, 혹은 섬기는 자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목적은 간데 없고 결국 자신을 위한 투쟁, 싸움, 노력, 변명, 주장에 대한 변호 등만 남게 됨을 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의 선교 현장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붙잡고 선교에 헌신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목적을 상실하고 선교지에서 단지 살아가는 데 급급해지고, 자녀 양육에 올인하거나 프로젝트, 현지 부동산의 노예가 되어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선교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주객전도 현상이 보편화 되어 있는 선교현장에서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끝까지 그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선교사, 선교 헌신자들이 평생 기도하며 사역할 자신의 선교 현장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연구하지 않는다면 복음의 접촉점을 발견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신임 선교사 훈련 시 선교 현장에 관한 연구를 누구보다도 강조해 왔다.
3. 언어훈련
윌리엄 케리가 언어의 장벽에 대해서 걱정했듯이 여기에서 제2의 경계인 언어의 장벽을 넘어가지 못하면 복음을 제대로 제시할 수 없는 것이다. 현지 언어 습득은 선교에 있어서 필수다. 유창하게 현지어를 사용하면서도 선교지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선교사가 종종 있듯이 언어를 잘한다고 선교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지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결단코 선교를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 현지어는 현장에 도착해서 2년 안에 정복해야 하며, 적어도 첫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자유롭게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신임 선교사가 정착 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사항으로 선교 초기에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언어 습득은 사회적 활동이기에 말은 아이들처럼 배워야 한다. 먼저 들어야 한다. 수없이 듣고, 흉내 내고, 읽고, 쓰기를 해야 한다. 현지인의 문화와 함께 배워야 한다. 언어는 문화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지 신문을 매일 읽어야 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기 쉽다.
4. 선교사, 현지인, 현지 교회와의 관계
앤드류 월스(Andrew Walls)는 선교의 역사를 문화적인 측면에서 정리했다. 그는 복음은 처음에는 유대인의 옷을, 그 후에는 그리이스와 헬레니즘의 옷을, 그리고 이어서 바바리안(Barbarians)의 옷을 입었고, 종교개혁 이후에는 서유럽의 옷을 입었다. 그 후 유럽의 확장에 맞추어 계몽주의와 모더니즘의 옷을 입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오늘날에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사상에 맞추어 크로스 컬츄럴(Cross- cultural)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한다.4 이 선교관은 현지인과 현지 목회자, 현지 교회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게 해 주고, 협력적이며 복음적인 동역관계 형성을 가능하게 해 준다. 선교지에 간 선교사가 그들이 입고 있는 문화의 옷을 입지 않을 때는 이방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선교에 있어서 복음은 늘 상황화되어야 한다.
5. 현지 동역 교단, 선교단체, 외국인 선교사와의 관계
1910년 에든버러(Edinburgh)에서 세계선교대회가 열렸다. 그때 인도 교회를 대표해서 온 아자리아(V. S. Azariah)5는 이렇게 말했다. “인도에서는 선교사와 현지 인도 사역자들의 관계가 4 Andrew F. Walls, The Missionary movement in Christian history (New York: Orbis Books, 1997).5 도르니칼의 주교 아자리아는 그가 처음 그 교구에 취임했을 때 공공연한 간음을 이유로 6백 명 이상의 교인을 제명하였다. 성공회 교회들은 이 일로 성장을 멈추기는커녕 수천 명을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징계 행위는 자극이 되었다. 제명된 많은 사람들은 회개를 하고 복직되었다. [Donald A. McGavran, 전재옥, 이요한, 김종일 역, 『교회성장이해』264 세계선교의 길라잡이주인과 종의 관계와 같다.” 그는 이어서 참석한 이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요청했고 친구들을 달라고 호소했다(You have given your goods to feed the poor. You have given your bodies to be burned. We also ask for love. Give us Friends).지금도 선교지에 있는 현지 교회 지도자들의 생각은 이와 동일하다. 그들은 지배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를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원하는 것이다. 더욱이 21세기 선교현장에서는 현지 선교기관, 선교단체, 그리고 교단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제는 서구 선교사나 한국 선교사들이 선교사역 초기의 시행착오를 딛고 현지 교단과 협력하면서 그들을 돕는 사역으로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선교사들 가운데는 자신의 영역 안에서 자기만의 사역을 펼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랄프 윈터(Ralph. D. Winter)의 선교사역 4단계를 살펴보아도 필자의 의견과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제1단계: Pioneer(개척자)-선교사들이 주도권을 가짐.
제2단계: Parent(양육자)-선교사에게 아직까지 주도권이 있음.
제3단계: Partner(동역자)-동역 단계로서 동등한 주권을 가짐.
제4단계: Participant(참여자)-선교사는 돕는 자이며 현지 교회가 주도권을 가짐.
6. 사회봉사를 통한 선교
하나님의 선교에 있어서 복음전파와 사회봉사, 이 두 영역에 대한 균형은 매우 중요하다. 복음 진영을 대표하는 로잔 운동은 이 두 가지 영역 중에서 복음 전도의 우선성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선교신학에서 우선순위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복음주의에 속한 많은 선교사의 사역 대부분이 사회봉사를 통한 복음전도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선교지에서 사회봉사를 통한 사역은 기독교를 떠나서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봉사를 통한 많은 사역이 자신들의 종교와 단체를 홍보하는 차원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
7. 선교 사역의 다양한 원칙
선교 사역에 대한 한 가지 원칙을 말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바로 사역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사역과 절대로 비교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경은 갈라디아서 6장 4절에서 우리에게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다. Understanding Church Growth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출판국, 1987),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갈 6:4) 사역의 결과를 놓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안 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우리가 판단하기에 우리보다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데, 그럴 때 낙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우리보다 일을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날 경우에 그들 앞에서 자신을 내세우고 우쭐해지고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마음 자세 모두 우리가 올바른 사역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꾼임을 기억하자. H. 디아스포라 사역한인 디아스포라 800여만 명이 현재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 한인 디아스포라를 중심으로 세워진 디아스포라 교회가 선교의 현장이 되는 이유로
첫째는 선교지의 중추(Hub), 베이스 캠프(Base Camp)의 역할을 한다.
둘째는 오랜 기간 다져 온 현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국수주의(Nationalism), 인종차별(Racialism)을 깰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풍부한 선교적 자원들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8. 팀 선교
일반적으로 팀은 두세 사람 이상의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만든 유연한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조직을 통해 개인보다 더 큰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공동의 목표를 가진 구성원들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간의 격려 및 책임의식이 있어야 한다. 팀은 다수의 사람보다는 소수의 사람들로 구성해야 하며, 보완적인 은사와 기능, 능력을 갖춘 사람들로 구성해야 한다. 더 나아가 공동의 목표에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해야 한다. 팀원은 팀의 분명한 목표와 가치를 이해해야 하며, 서로를 신뢰하고 도와야 하며, 커뮤니케이션의 장은 늘 개방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팀원들이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해야 한다. 그럴 경우 목표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인지할 수 있다.
9. 선교보고, 재정 및 안식년
선교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선교사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자신의 눈에 비치는 현지인들의 생활모습, 거리의 풍경, 상점, 대중교통, 재래시장, 음식, 그 어느 것도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다. 새롭게 시작하는 삶 속에서의 경험도 그냥 넘길 수 없다. 신기한 곳에 와서 경험하는 것들을 혼자서 간직하기에는 너무 아까워 보인다. 선교소식을 보낼 소재들이 넘쳐난다. 처음 1년 동안은 너무나 신기한 많은 사건이 매일매일 눈 앞에 펼쳐지기 때문에 선교 소식을 자주 보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새로웠던 문화충격의 사건들에 익숙해져서 어느새 흥미를 잃게 되고, 뜨거운 선교열정도 차츰 식으면서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들이 오히려 생활의 불편함을 주는 요소가 되고 넘어가야 할 험난한 장벽이라는 현실 앞에 주눅이 든다. 소식을 보낼 때가 다가오면 긴장이 된다. 이번에는 무엇을 쓸까? 선교사는 개인이 아니라 공인임에도 불구하고 영적, 물질적, 성적, 사회적 문제 등으로 선교사의 정체성, 신뢰성, 책임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오늘날 선교 현실의 어두운 면들이다. 선교비는 과부가 주님께 드린 귀한 헌금이라고 늘 생각하고, 선교비 관리를 잘해야 한다.안식년은 선교사에게 쉼을 주는 성서적인 휴식시간이다. 이 안식년을 효과적으로 잘 보내면 선교는 극대화될 수 있다. 안식년은 선교사에게 여러 가지 유익한 점을 가져다준다.
10. 사역지에서의 위기관리
우리는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하나님은 내일 혹은 그 이후에 어떤 일을 행하실지 우리에게 미리 말씀해 주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행동 결과에 대해 미리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 살고 행동하도록 하신다. 이와 같이 사역지에 놓여있는 선교사도 보통사람과 같이 모든 위험에 노출되어있다. 선교사라고 예외는 아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송하시면서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위기상황 속에서도 냉철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말씀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위기상황에 노출되는 모든 상황을 점검함으로서 위기를 예방해야 한다.
11. 선교 사역의 이양 및 은퇴
최근 한국 선교계에서 유행하는 단어가 입구 전략과 출구 전략이다. 이양 및 은퇴라는 단어는 선교의 출구 전략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출구 전략은 선교의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과정에 속한다. 교단 선교부, 선교단체, 후원 교회 등이 선교사의 입구 전략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출구 전략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출구 전략에 실패하여 어려움을 겪는 시니어 선교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필자가 30년 이상 사역을 한 후 은퇴를 앞둔 시니어 선교사가 그 가정과 사역을 위해서 평생 기도해 온 후원 교회와 갈등을 겪는 걸 보면서, 한국 교회가 앞으로 이 영역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갖고 방안을 모색해야 함을 실감했다. 출구 전략은 첫 번째 기한을 마치고 철수해야 하는 경우부터 은퇴하는 시기까지 모든 선교사에게 맞춤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
VI. 나가는 말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한국 전쟁 당시 최전방에서 전투한 병사의 모습에 비유할 수 있겠다. 전쟁 이후 우리가 모두 분단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전투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들의 가족들, 부상을 당한 병사들과 그 가족들이 일평생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잊고 지낼 때가 많이 있다. 마찬가지로 선교 현장에서 생명을 담보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의 아픔과 고통은 선교에 대한 학문적 이론이나 단기간 방문만으로는 결코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은 바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이며,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선교사가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사역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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