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앙’과 ‘카사노바’를 논하다 -
혹시 카사노바를 아십니까?
역사 속에서 바람둥이는 많았다. 모차르트나 볼테르도 대단한 바람둥이였다. 루소, 톨스토이도 여자 편력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카사노바는 기록을 했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과 큰 차이가 있다. 자서전에는 100명이 넘는 여인들과의 사랑이 세세하게 기록돼 있다. 모녀·자매도 있고 수녀도 있다. 18세기 풍속사를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다.
'지아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 슈발리에 드생갈'이라는 긴 이름이 카사노바의 본명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지만 사람들이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단편적이다. 그저 희대의 바람둥이 정도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사노바는 단순히 바람둥이로 치부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생전에 가진 직업만 해도 법학박사, 철학자, 사제, 바이올리니스트, 연극배우, 도박꾼, 사업가, 외교관 등 수십 가지가 넘는다.
카사노바는 변화하는 유럽사회에 가장 먼저 눈을 뜬 사람이기도 하다. 타고난 방랑벽으로 각국을 돌아 다닌 그는 누구보다 세상의 변화를 먼저 읽어낸 아웃사이더 였다. 게다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가 남긴 책 <나의 인생 이야기>에 보면 유독 요리에 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감각적인 삶을 살았던 그에게 요리는 세상을 읽는 하나의 코드이기도 하다.
카사노바는 관능의 쾌락을 심화시키는 것을 자신의 중요한 임무로 삼아 '여성을 위해 태어났다고 자각한 나는 언제나 여자를 사랑할 뿐 아니라 그 여성들로부터 사랑받고자 최선을 다 했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호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또 자신의 회고록에서 '나는 여성을 사랑했다. 그러나 내가 진정 사랑한 것은 자유였다'고 말했다. 자신의 무절제한 행위를 당시 유럽에서 일어난 계몽주의 사상의 근간인 자유로 덮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카사노바는 분명 수많은 여인의 체취를 탐닉한 감각주의자였지만 그저 단순한 바람둥이는 아니었다.
그의 삶의 색깔은 무척이나 다양했다. 나이 열일곱 살 때 법학 박사학위를 받은 천재였으며, 자유와 평등의 철학을 추구했던 계몽주의자였고, 프랑스 혁명을 앞둔 격변기에 유럽을 누비면서 자유와 평등을 전파한 메신저였다.
또한 40여 권의 저서를 남긴 박식하고 위대한 저술가였으며, 예술과 풍류를 즐긴 낭만주의자였고, 탁월한 벤처 사업가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내가 행한 모든 일들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자유인으로서, 나의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했다'고 고백한 것처럼, 카사노바의 인생 여정을 관통한 것은 자유였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희극배우인 아버지와 구두수선공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맏이로 태어난 카사노바는, 여성을 유혹하는 남성들이 대개 그렇듯이 보통 남성 이상의 탁월한 능력을 몇가지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화학, 의학, 역사, 철학, 문학에 정통했고, 점성술, 연금술, 마술에도 솜씨를 지녔으며,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히브리어에 능통했고 영어와 스페인어도 조금은 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무용, 펜싱, 승마, 카드놀이에 빼어난 솜씨를 지닌 데다가 듣고 읽고 말한 것은 물론이고 한번 만난 얼굴도 반드시 기억하는 천재였다고 한다.
이렇듯 카사노바는 다방면에 걸쳐 정통했으나 어떤 직업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유럽 여러 나라들을 넘나들며 살았다.
신부(神父)수업에서 쫓겨나면서 방랑을 시작한 카사노바는 콘스탄티노플, 파리, 런던 등 유럽의 거의 모든 도시와 나라들을 떠돌면서 주로 '여자사냥'과 도박으로 투옥, 추방이 거듭되는 삶을 살았다.
세기의 바람둥이 카사노바. 그는 생을 마감하기까지 단 한명의 여자도 임신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완벽한 피임을 실행한 카사노바의 피임법의 비결은 무엇인가?
그 핵심엔 카사노바가 금(金)세공사에게 엄청난 돈을 주고 사들인 황금구슬에 있었다. 카사노바는 이 황금구슬에 유난히 애착을 가졌다고 한다. 이 구슬은 무게가 60g, 직경 18mm로 15년 동안 훌륭하게 제 역할을 다했다. 그는 이 구슬을 '상대하는 여성'에게 삽입시켰는데, 구슬이 정액을 밖으로 밀어내 절대로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아 임신을 피할 수 있었다. 카사노바의 친절한 설명에 의하면'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임신을 피하려고 할때 이 구슬을 사랑의 성지 그 밑부분에 밀어넣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한다.
카사노바는 다양한 피임법을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주로 그가 사용한 피임법은 콘돔 사용이었는데, 콘돔을 피임의 목적이 아니라 성병 예방의 차원에서 사용한 최초의 사람이기도 하다.
카사노바와 함께 바람둥이의 대명사를 꼽으라면, 카사노바보다 2세기 앞선 스페인의 “돈 주앙”을 들 수 있다.
돈 주앙 !! 100여명의 여성- 과부 유부녀 처녀 하녀 그리고 공주 까지도 그를 사랑하게 만든 역시 희대의 바람둥이. 그는 결혼 하라는 왕명도 거부한 채 애정유랑을 거듭한다. 그가 종교재판이 횡행하는 당시에 이런 엽기적인 행동이 가능했던 것은 그를 보호해주고 이를 적절히 이용해 자신의 권세와 부를 축적해 가는 페드로 후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돈 디에고 테노리오’ 꽤 명성있는 귀족이 세레나 라는 창녀에게 뿌린 씨앗. 그 생명이 수녀원의 마굿간에 버려지고 수녀들의 손에 자란 주앙은 테레사 라는 수녀와 사랑을 하게 된다. 당시엔 수녀가 사랑을 하는 건 죽음을 각오하는 모험이었다.
사생아이자 고아인 주앙에게 귀족수업을 시키고, 귀족의 칭호를 준 사람은 페드로 후작이었다. 그는 왕과 왕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넘 볼수 없는 권력의 화신이었다. ‘돈’ 이라는 칭호는 기사 신분을 가진 귀족에게 부치는 경어이다. 그는 왕의 인장까지도 위조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페드로 후작은 돈 주앙에게 귀부인 귀족처녀들과 정사를 하게 하고 그의 일기를 통해 상대방의 약점을 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 한다. 그의 눈 밖에 나는 사람은 종교재판관에게 명단이 쥐어지고 종교재판에 회부된 사람들은 사지가 갈라지고 음경이 잘리는 고문 속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화형에 처해진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돈주앙은 자신의 일기를 페드로 후작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장군의 딸 ‘아나’ 아가씨를 알게 된 후부터,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건 모험과 결투도 기꺼히 감내한다. 그녀에게 자신의 비참한 과거도 유일하게 고백한다.
진정한 정열적인 사랑을 꿈꾸는 아나 아가씨! 처음엔 돈 주앙의 접근을 그의 애정 행각의 한 부분으로 오해를 하지만 점점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불행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 녀의 미모가 문제였다. 페드로 후작이 그녀를 아내로 맞기를 원하고 장군의 약점을 파고 든다. 장군의 허락을 얻고 왕의 재가까지 받아 그녀를 아내로 맞아 들이려 하나 돈 주앙은 그의 스승이자 유일한 후견인 인 그를 배반한다.
돈 주앙의 진심을 알고 돈 주앙과 함께 도망을 가기로 한 날, 이를 장군에게 들키고 이를 제지하기 위해 결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장군이 사망하게 되고,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를 공격할 수 없어서 피하기만 하던 돈 주앙은 본의 아니게 그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
장군의 장례식장인 산프란치스코 수도원, 종교재판소의 재판관을 포함한 귀족 6명과의 결투, 돈주앙은 6:1의 결투에서 승리를 하지만 마지막 이를 조종한 페드로 후작이 ‘아나’ 에게 쏜 총을 몸으로 막다 돈주앙은 죽음을 맞는다. 페드로도 주앙의 편지- 왕권에 도전한 페드로의 반역적인 행동을 폭로한- 에 의해 모든 것이 드러나자 권총으로 자살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돈 주앙의 잃어버린 일기’ 라는 소설 내용이다. 뉴욕 출생인 더글라스 에이브람스 가 쓴 소설이다. 돈 주앙 에 대한 구상과 자료 조사에만 4년을 매달려 쓴 소설이니 돈 주앙에 대한 일대기 인 셈이다. 돈 주앙의 일기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가공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소설을 통해서 본 돈 주앙은 단순한 바람둥이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400 년전에 지구를 다녀간 한 자유주의자의 사상도 아직 따라잡지 못한 채 성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사로 잡혀 사는건 아닌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소설 중간중간에 주앙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눈여겨 볼만한 몇 구절을 소개 하고 돈 주앙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 욕망은 인간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신은 여섯째 날 동물들과 함께 욕망을 창조했다. 욕망은 그것을 통제 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보다 더 큰 힘을 가졌다”
“ 인간의 자연적인 욕구가 천국에서 추방되는 한, 지옥의 문은 늘 사람들로부터 발 디딜 틈도 없을 겁니다”
“여자가 최고의 기쁨을 느끼면, 그 녀의 영혼은 몸위로 떠오른다. 욕망을 충족한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모든 여자의 몸안에서 영혼의 빛보다 더 찬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수도원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 나온 것도 우리의 영혼을 육욕으로부터 구분 지으려는 교회의 태도 때문이었다.”
“ 사랑이라는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사랑을 받는 사람일까, 혹은 사랑을 주는 사람일까? 두가지 모두 의심할 나위 없이 진실이지 ”
“왜 고통을 통해서만 신을 알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우리는 쾌락을 통해서도 신을 알 수 있습니다. 부드럽게 애무하는 것보다 밧줄로 고문하는 것이 신을 더 즐겁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상에서 플레이 보이의 대명사 카사노바와 돈 주앙을 알아 보았다. 어쩌면 돈주앙의 후신이 카사노바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둘은 비슷한 면이 많다.
돈주앙 이 400년동안 , 그리고 카사노바가 200 여년동안 호색한이면서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재해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들 모든 인간의 마음 뒤켠에 ‘돈 주앙’적 ‘카사노바’적인 면모가 숨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의 본성에 충실하면서 진정한 사랑을 깨달은 돈 주앙에게 인간적 동지애를 느끼는 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