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안한 사회를 바로 지탱하는 보루로서의 자원봉사의 의미를 되새김’
-서해안 기름오염방제 자원봉사활동 사례를 통해서 생각함-
이 상 훈
여수YMCA사무총장
前 LG그룹유조선시프린스호 해양오염시민대책본부홍보부장
13년 전의 불행이
또 반복되었다
13년 전, 뜨거운 한여름을 온몸에 기름에 찌들인 기분으로 보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호남정유 원유수송 자회사인 호유해운의 시프린스호가 태풍을 피하다 좌초되면서 쏟아낸 5천여 톤의 벙커C유와 원유는 남해안을 시커멓게 멍 들였고, 연안사람들의 가슴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놓았다. 바다든 사람이든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아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 또 다시 서해안 바다가 그 고통을 뒤집어썼다니 망연자실한 절망이 먼저 다가온다.
당시 정부는 다시는 이와 같은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수도 없이 되풀이 했었다. 그러나 똑 같은 사고는 다시 일어났고, 당시 제기되었던 여러 가지 허술한 문제 역시 그대로 재연되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어쩌지 못한 애꿎은 국민들만 찬바람을 뚫고 방제자원봉사에 몰려들고 있다.
그래서 돌이켜 생각조차 하기 싫은 13년 전의 시프린스호 사고를 되돌아봐야하는 심정 또한 처연하다. 한 번의 불행으로는 세워지지 않는 근본적인 대책이라면 앞으로 또 이와 같은 사고가 얼마나 더 일어나야하는지 불길한 예감마저 엄습해온다.
불길한 예감을 지워버리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13년 전의 기억을 애써 되살려보고 오늘의 서해안 오염사고를 그에 견줘본다. 아울러 난리에 강한 우리 민족의 놀랍고 아름다운 자원봉사가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고 앞으로 우리 사회의 보루로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몇 가지 생각해볼 대목도 짚어본다.
가장 중요한 초동방제는
또 무너지고...
이 분야 전문가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피터알렌’은 해양기름유출사고는 초기 48시간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시간 안에 90% 이상을 회수하지 못하면 생태계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당시 사고회사인 호유해운은 48시간은커녕 1주일이 지나도록 확산하는 기름을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다.
수면 위로 불과 20~30센티미터 밖에 나오지 않는 오일펜스 위로 기름이 넘쳤고, 그나마 절대 부족하여 치나마나였다. 그나마 연일 밤9시뉴스로 생중계되다시피 한 기름띠만을 의식한 관계당국에 의해 유화제만이 무차별하게 살포되었을 뿐이다. 일부 전문가나 어민들이 유화제 살포하는 배 앞으로 쫓아가 ‘야, 이놈들아! 바다 다 죽이는 유화제 좀 그만 뿌려~’ 하는 외침도 외면되었다. 유화제는 계면활성제, 즉 빨래할 때 쓰는 합성세제 성분으로 그렇게 무차별하게 살포하면 기름을 분해하기보다는 기름과 함께 가라앉아 바다 밑바닥에 고착되어 두고두고 생태계 파괴의 원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태안의 스피리트호 사고는 여수사고와 달리 갯벌과 모래가 많은 연안인데다, 쏟아진 기름 양도 두 배가 넘는 점을 감안하면 초동방제를 잘했더라도 문제일 텐데 초동방제 시스템이 13년 전이나 다를 것이 없어서 그 피해가 여수사고보다도 몇 배에 이를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여수에서의 자원봉사의 힘은 구조적인 문제
노정을 하는 데에 기여했다
태안 사고가 규모가 훨씬 크고 복잡한 지형이라는 점에서 여수사고보다 훨씬 큰 불행이지만, 그나마 자원방제봉사단이 전국적으로, 대규모로 몰려들어 힘을 보탰다는 점은 심리적으로나, 실제 방제상황에도 매우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수의 경우에는 사고발발 1주일 동안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 채 기름띠 가라앉히기만 했고, 보다 못한 지역의 26개 시민환경단체들이 ‘LG그룹소속 유조선 시프린스호 여수여천해양오염 시민대책본부’를 결성하고 전국적으로 자원방제단을 모집하기 시작해 발발 후 2주일이 지난 8월5일(토)에서야 전국의 150명 자원방제단이 여수를 찾았을 뿐이다. 이 자원방제단은 수는 적었지만 그래도 이들을 통해 오염사고의 실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전국에 알려졌고, 그 이후 언론들도 기름띠가 아닌 갯가 오염, 어민들의 고통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 이전까지 여수는 그냥 큰 자연재해가 덮쳐 불행을 당한 불쌍한 곳이란 국민적 인식 속에서 상당히 고립감이나 소외의식에 빠져 허탈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당시 여수 앞바다 자원봉사자는 기름방제활동 그 자체보다는 당국과 사고기업, 그리고 언론에 의해 감춰진 현장의 참혹함과 진실을 직접 보고 전국에 알리는 역할과 의미를 더욱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에피소드이지만 호남정유는 이들이 현지 어민들이 닦아서 벌어야할 갯바위닦이 일당을 가로채갈 것이라는 악선전을 해서 주민들과 갈등을 조장하였다. 사고현장을 은폐하기 위해 피해자인 주민까지 이용한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자원봉사자들이 회사까지 몰려가 항의시위를 함으로써 호남정유는 의도치 않게 자원봉사단의 본연의 임무(?)를 더욱 도와주는 꼴이 되었다.
이번 스피리트호 사고가 당시와 다른 또 하나는 정부가 이번에는 비교적 신속히 서해안 지역을 특별재해구역으로 선포했다는 점이다. 1995년 당시 정부는 인명피해가 없다는 이유로 선포를 미루다가 훨씬 나중에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서야 관련법을 개정해 재해구역으로 선포한 바 있다.
사고회사에 대한 책임을
엄격히 물어야 한다
앞서 말한 시민환경단체들의 대책위원회 명칭이 꽤 길다고 느낄 것이다. 이 명칭에는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당시 사고배의 소유주는 호유해운으로 호남정유의 자회사였으며, 호남정유는 LG그룹 계열사였다.(그 후 호남정유는 LG정유로 이름을 바꿨다가 지금은 GS칼텍스로 다시 바꿨다.) 그런데 호남정유는 호유해운과 별개 회사로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였다. 회사등기를 떼다가 들이대니 나중에서야 자회사임을 인정하더니, 이제는 보험을 들어놨으니 보험회사가 조사 후에 4천억 원 범위 내에서 보상해줄 것이라고 변명하였다. 국민공유재산인 바다를 황폐화시켜놓고 법적 책임은 물론 도덕적인 미안함까지도 부정하는 후안무치에 여수시민들은 분노에 떨어야했다. 그래서 이는 호남정유도 아닌 LG그룹 차원에서 대책을 세우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판단으로 대책위 명칭에 굳이 LG그룹을 넣은 것이다. (태안사고대책위에 사고기업인 삼성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LG그룹은 여천군수, 여수해양경찰서장, 경남통영경찰서장, 여수경찰서장, 여수해운항만청장(여수지방해양수산청의 전신), 여천군지역구 국회의원 등에게 뇌물을 줘놓고 끝까지 사고책임을 부인하였다. 그러다가 같은 해 11월17일 ‘같은 바다, 같은 회사, 같은 사고’ 라는 별명을 얻은 호남사파이어호 해양유류오염사고를 일으키고서야 시민들에게 무릎을 꿇게 된다. 호남사파이어호 사고는 태풍 핑계도 대지 못할, 순전한 부두접안 실수로 선체를 찢긴 채 기름을 유출시킨 그야말로 인재였던 것이다. 분노가 극에 달한 여수시민들이 LG그룹 서울 본사 앞에 쫓아가 기름에 절어 죽은 물고기를 쏟아놓고 항의하고, 지역에서는 1천 명의 시민들이 LG불매운동 결의대회를 개최하자 비로소 LG그룹은 잘못을 시인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할 위원회 구성을 시민대책위에 제안해오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구성된 것이 ‘LG그룹유조선사고 환경조정위원회’로 그룹 전무, 상무급 임원 5인과 시민단체 경실련, 배달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환경과공해연구회, 여수시민대책본부대표 5인 등 10인으로 구성되어 피해공동조사, 생태계복원계획수립 등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위원회의 기능으로 그나마 피해조사가 활기를 띠었고, 향후10년 간 생태계모니터 및 그에 따른 방제활동들을 전액 LG그룹 부담으로 해나간다는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당시에 LG측은 10년이 너무 길다고 주장했지만, 10년이 지난 작년에 사고지역을 다시 조사해보니 몇 삽질에 기름이 고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기름오염으로 인한 생태계 복원은 최소 30년, 또는 50년이 걸린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입증된 것이다.
보험회사 뒤에 숨어 있는 삼성이
사태수습의 중심이 되어야
이번 태안 사고를 일으킨 그룹은 삼성이다. 95년도 교훈이 아니더라도 삼성 역시 아니나 다를까 철저히 보험회사 뒤로 숨으려 하고 있다. 국제유조선선박들은 대개 자기들끼리의 계 성격을 갖는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fund)이라는 데에 보험을 든다. 그리고 이 보험회사는 사고를 축소하고 은폐하여 최소의 보상액을 설정하는데 기발한 전문성과 민첩성을 발휘한다. 95년도의 경우에도 실제 사진촬영 등으로 증명이 되는 죽은 고기만을 피해로 인정하였고, 어떤 경우는 태풍으로 죽은 고기에 기름을 묻혀왔다며 어민들을 사기꾼으로 몰기까지 하였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 상상도 못하고 지난 3년간의 종패나 치어구입 자료를 꼼꼼히 챙기지 못한 어민들은 꼼짝없이 사기꾼으로 몰리기 십상이었다.
이런 이유로 실제 피해에 턱 없이 못 미치는 보상이 이뤄진 사례는 허다하다. 시프린스호 사고 2년 전인 93년 9월, 금동호라는 유조선의 기름유출사고로 광양지역 어민들은 930억 원의 피해를 신고하였다. 그러나 보험회사가 보상해준 금액은 불과 36억 원, 이 계통을 잘 아는 문가들에 따르면 대개 10분의 1 이상 보상한 사례가 전무하고 수십 분의 일, 또는 수백분의 일 수준에서 보험처리가 끝나곤 한다. 증거가 붙은 죽은 고기 숫자만을 피해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파괴된 어장과 생태계복원비용, 복원 때까지의 어획량감소로 인한 손해, 나아가 정신적 피해보상 등은 말도 못 붙인다. 하물며 무면허어업, 양식업 등 관행어업에 대한 보상도 어림없다. 이를 불법이라 하지 않고 관행이라 하는 것은 행정에서도 이들의 어업권을 생존권 보장 차원에서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보상 한 푼주지 않는 것이 보험회사이다. 해수욕장에서 장사하는 상인, 수산물 취급상인, 고기잡이 소형선주, 선원 등도 간접피해자들인데 역시 깡그리 무시당한다. 이런저런 피해액을 산출해보니 3천억 원에서 5천억 원에 이를 것이라 추정된 시스프린스호 피해액도 그나마 워낙 큰 사회적 파문을 의식한 탓인지 ‘덜 깎인’ 960억 원이 보상되었을 뿐이다.
특정개인의 신체 상해나 재산손해를 보상하는 일반보험과 달리 불특정다수에게 고통을 안기고 나아가 국가공유재산인 생태계 파괴를 유발한 해양오염유류사고와 같은 경우에는 1차적으로 사고회사가 그 책임을 명확히 지도록 해야 한다. 이는 보험회사의 장난으로부터 피해자들의 손해를 막는 효과도 있지만, 아무리 보험을 들었다하더라도 사고를 일으키면 막대한 손실과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관행을 만들어야 회사들은 보다 긴장하고 예방투자도 하여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해양오염사고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인식이 높아지는 가운데 선진국에서는 해양오염 사고에 대해서는 피해보상비와 환경복구비 외에 징벌 성격의 배상금까지 선고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미 20여 년 전인 1989년도 액손 발데즈호의 알래스카 기름유출사고 때만 해도 가해자인 액손 정유사는 우리 돈 1조원 정도를 방제비용과 환경오염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정부에 지급하고, 추후 환경피해가 발견될 경우 추가손해배상을 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또 주민 3만여 명에게 실제 손해배상 5천억 원과 징벌 손해배상 5조 원을 선고받았다가 항고 끝에 2조5천억 원을 선고받은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와 법원의 명령에 따라 액손 정유사는 자체적으로 2조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 지금도 사고지역 정화작업을 해오고 있다.
참고로 액슨 발데즈호 사고 시 유출기름양은 원유 1만3천 톤 가량으로 이번 스피리트호 사고와 비슷하다. 현재 사고로 인한 피해액도 약3조원 정도로 추정되는 것도 위 알래스카 피해복원에 들인 비용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삼성은 3천억 원 보험에 들어 보상에 문제가 없다는 짤막한 성명 한 장 냈다가 여론이 비등해지자 ‘피해지역 발전기금 1천억 원’이니 ‘생태계복원활동 적극 지원’이니 하는 마치 제3자가 시혜라도 베푸는 듯한 발표를 했다. 삼성이 이렇듯 오만하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는 데에는 사고 초동단계에서의 시민단체나 언론 등에도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아름답게 편집된 시민자원봉사단들의 수고가 있었다. 하다못해 TV 오락프로그램 촬영용으로 자원봉사에 참여한 모 개그맨도 책임자는 보이지 않고 시민들만 고생하고 있는 현장에 분노가 치민다고 했던 판인데...
지금이라도 사고회사인 삼성은 비겁한 사태 호도를 그치고 그룹 차원에서 이 사고에 대한 근본적 책임을 질 결단을 해야 한다. 우선 모든 피해를 삼성 자체적으로 성실히 조사해 어민과 피해당사자들에게 먼저 보상하고 나중에 보험회사와 협의해 처리해야 한다. 나아가 추후 적어도 30년 이상의 생태계모니터와 방제계획을 수립하는 기구를 전문가, 시민단체, 현지주민대표, 행정과 함께 컨소시엄을 이뤄 구성, 대책계획을 발표해야 한다.
정부 당국 역시 검찰이 삼성에 중과실 혐의를 적용하지 않고, 국회에서 만든 ‘태안지원특별법’ 역시 원인제공자 배상책임원칙을 빼버리는가 하면, 대책위원회 구성원도 피해자 단체가 추천하거나 전문성 있는 민간인을 넣도록 한 원안을 중앙행정기관의 장 또는 관계기관 단체의 장만을 위원에 임명 또는 위촉하도록 하는 등 삼성 봐주기 특별법으로 전락시킨 비판을 받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전국의 시민환경단체들은 이러한 사태 흐름을 예의주시하면서 정부와 삼성이 제대로 된 사고대책을 세우고 실행해갈 수 있도록 강력히 압박하고 국민들의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시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그것만이 삼성 스피리트호 사고로 인해 이미 망가져버린 우리 바다의 생태계 복원을 위한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법제도 개선과
선박이중선체화 등 시급한 문제
이러한 사고가 정말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법, 제도, 행정 등 전반적 사회시스템의 재점검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해양오염사고에 대응하는 정부시스템이 해수부, 환경부, 해양경찰, 시도 등으로 다양하게 분산되어있어서 특히 초동방제의 허술함을 드러낸 것은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를 통합 관리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
유조선 관련 기업들도 선박의 이중선체화를 서둘러야한다. 물론 법적으로 앞으로는 이중선체를 해야 하지만 이왕 할 것이라면 서둘러서 앞당길 필요가 있다. 사고가 언제라고 예고하면서 터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95년도 사고 후 호남정유(현 GS칼텍스)도 후속대책으로 이중선체를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100% 실천하고 있지는 않을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반해 액손발데즈호 기름유출사고로 혼쭐이 난 미국은 이중선체가 아닌 선박은 아예 자국 영해에 들여놓지를 않는다고 한다. 이중선체는 사고예방대책 다음으로 만의 하나의 경우를 대비한 최소한의 대책이다. 우리나라도 국제법이 아니더라도 시급히 이중선체만을 영해에 허가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최근 여수시의회가 2012세계해양박람회가 개최될 지역인 여수항에 이중선체가 아닌 유조선은 아예 입안하지 못하도록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막을 것임을 천명한 것은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다가치에 대한 우리의 인식
이런 시스템의 개선과 더불어 가장 근본적이고 생각하는 것은 바다와 그 가치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의 전환이라는 생각이다. 육지부에서는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수질오염 때문에 샴푸를 쓰지 말라고 요즘은 유치원에서도 교육한다. 법제도도 훨씬 엄격하다. 자동차세차장에 폐수처리는 엄격히 관리한다. 좀 더 큰 예로 몇 년 전 대구 낙동강 페놀오염사건을 되돌아보자. 대구는 물론 전 국민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낀 탓에 당시 사고그룹인 두산그룹은 환경친화기업으로 새로 태어날 것을 선언하고 수천억 원의 투자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의 환경에 대한 인식은 높은 수준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그러나 바다에 대한 환경인식은 육지부에 그것에 비하면 여전히 둔감하고 원시적이다. 농민들은 자기 밭에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어민들은 자기 밭이나 다름없는 바다에 폐그물이나 어구들을 아무 생각 없이 버리곤 한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언제든 치우면 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쓰레기는 두고두고 우리 삶을 오염시켜 종내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우리 목을 죌 것이다. 바다오염이 그렇다고 본다.
실례로 95년 사고 후 여수바다는 해마다 적조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적조는 있었지만 95년 사고 후에 그 심각성이 몇 배나 커져 양식어장의 물고기를 떼죽음으로 모는 일이 매해 반복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민들은 근본적인 예방과 대책수립을 요구하고 있지만 관계당국은 마치 적조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해둔 황토를 뿌리는 것으로 최선을 다한 양 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달나라를 오가는 세상에, 세계해양강국을 꿈꾸는 신흥해양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적조피해 하나 잡지 못하면서 무슨~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해양을 그저 저기 놓여있는 국토자원의 일부 하는 식의 가치인식은 곤란하다. 더욱이 지구온난화가 21세기 인류의 최대화두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 그 대안의 원천으로 자리하게 된 바다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다듬어 우리의 소중한 자산으로 꾸며야 한다. 그러기 위해 바다를 지키고 오염을 방제, 예방하는 일에 투자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국민들의 인식전환을 위해 바다에 관련된 국민적 공유의식과 정보를 교육하자. 매월15일 민방위훈련 시 연안에 위치한 지역들은 바다쓰레기를 청소하거나 오염방제활동훈련을 하도록 하면 어떨까. 그 외 국민들도 바다쓰레기 청소의 날, 해양보전활동 등을 대대적으로 실행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해양경찰청과 한국YMCA가 최초의 정부-시민단체 간 MOU를 체결해 청소년, 어민, 연안주민들과 함께 바다를 지키고 이해하는 프로그램을 공동 진행하는 사례도 보다 심도 있고 넓게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불행에 대한 일회성 대응이 아닌 일상적, 근원적 사회변화를 주도하는 자원봉사활동의 체계가 구축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원봉사활동의 아름다움을 다시 생각한다
‘삼성중공업 크레인이 저지른 유조선충돌로 아름다운 우리의 서해바다가 기름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백만 명이 넘는 우리 자원봉사자들이 추운 칼바람을 무릅쓰고 그 기름을 닦아냈다. 자원봉사자들은 직장별 직원, 계모임, 학생, 심지어 부모 손을 잡고 온 어린아이들까지 다양했다. 참으로 감동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노벨상 감이다.’
언론은 13년 전 남해안의 기름띠 대신 이번에는 서해안의 자원봉사자의 긴 띠에 초점을 맞췄다. 언론 덕분에 자원봉사자들은 ‘갯바위닦이 일당약탈자’의 오명 대신 숭고한 노벨상 감이 되었다. 사고회사인 호남정유는 본질 은폐를 위해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한 반면 삼성중공업은 자원봉사자의 아름다움 뒤에 꽁꽁 숨는 것으로 은폐의 수단을 삼았다.
앞서도 말했지만 시프린스호 유출기름은 5천 톤으로 대부분 벙커C유, 스피리트호 유출기름은 1만2천 톤이 넘는 무겁고 맹독성이 훨씬 강한 원유이다. 남해안에 비해 서해안은 갯벌에 모래가 훨씬 많은 특성이 있다. 눈에 보이는 피해도 문제지만 앞으로 생태계복원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시프린스호 사고지역은 13년이 지난 지금도 몇 삽만 파보면 기름이 고여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닦아내야할 것은 기름만이 아닌 생태계복원의 책임을 가급적 감추고 어물쩍 넘기려고 하는 정부당국과 삼성중공업의 은폐시도이다.
불타버린 숭례문을 국민성금으로 복원하자는 이명박 당시 당선인에게 국민들은 냉소를 보냈다. 아시아나항공기 추락 시 해남의 온 군민이 나서서 인명을 구조했고,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때도 너 나 없이 팔 걷어붙이고 나섰던 우리 국민들인데 왜 그랬을까. 당장 시름에 빠진 이웃의 고통은 함께 나누지만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까지 국민책임으로 떠넘기는 위정자의 천박함은 자원봉사자의 몫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봉사단체의 봉사활동
일선 경찰서 소년담당을 하는 경찰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거, 봉사단체 분들 봉사활동 하려거든 좀 똑바로 하라고 하쇼!” 요지는 이렇다. 국제봉사단체 회장님이 취임하면서 소년소녀가장 몇 불러다 장학금을 주었다. 휘황찬란한 조명과 화한이 둘러싸인 행사장에서 고급스런 뷔페음식으로 취임식을 하면서 장학금이라고 그에게 쥐어주고 사진까지 찍은 돈은 5만원. 불현듯 치솟는 반발심과 자신의 처지가 더 비참해진 그 소년가장은 그 돈으로 오락실과 소줏집에 갔다가 같은 또래와 시비가 붙어 싸움을 벌이다 경찰서에 잡혀간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앵벌이를 사례로 들 수도 있다. 이들 자신은 불쌍하지만 우리가 던져주는 한두 푼이 그 뒤에 숨어있는 조직을 유지시켜 새로운 앵벌이를 재생산하는 악순환의 기금이 된다는 것이다.
산업화에 혁신적인 전기를 목표로 만든 다이너마이트가 인명을 살상하는데 쓰이자 이를 사죄하고자 재산을 털어 노벨상을 만든 사례, 과학도로서의 학문적인 업적에만 몰두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원자물리학이 수백만 명의 인명을 살상한 원자폭탄 제조에 기여한 사례 등에서도 우리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의도가 늘 결과까지 관철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비유가 너무 극단적이거나 그다지 적절한 비유는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태안의 자원봉사자의 아름다움이 결과적으로 뭔가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만큼은 지울 길이 없다.
남들 다하는데 나도, 우리 조직도 함께 가서 기름 닦았다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자. 이제 사고회사인 삼성중공업의 사회적 책임과 정부의 생태계복원을 위한 공권력 집행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한다. 그것이 우리 자원봉사자들의 숭고한 정신에 조금치라도 미치지 못하는 어물쩍거림 정도라면 방제복과 장화 대신 불매피켓이라도 들고 나서야한다. 자원봉사는 아름다운 모습일 때도 있지만, 아름다움을 지키는 강력한 무기여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사회문제의 본질에
다가서는 자원봉사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로 어지러운 정치판, 불안한 기류의 세계정세, 이로 인한 경제와 안전한 생활에 대한 불안이 깊어지는 시기에, 서해안의 불행은 아이러니하지만 자원봉사라는 국민적 희망과 새로운 가치관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언론은 원유보다 가볍고 여름이기 때문에 기다란 띠를 형성한 유출기름띠를 사고의 본질로 보았고, 겨울이어서 형성되지 않은 기름띠 대신 추운 칼바람을 이기고 길게 늘어선 자원봉사자의 띠를 본질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본질은 무엇일까. 기름띠도 자원봉사자 띠도 아닌 우리 바다가 기름으로 인해 생태적으로 오염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원인과 대책을 근본적으로 파악해 최대한 방제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해야하며, 그 일을 책임지고 해야 할 주체 당사자를 가려내고 실천하는지 모니터하고 감시하는 일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우리 자원봉사자들이 그런 근본적인 본질을 드러내는 데 본의 아닌 장애가 되었거나 최소한 그런 데에 이용당했다는 느낌, 그래서 어떤 자괴감 같은 것을 누르기 힘든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이 아름다운 행렬에 삼성은 뒤로 숨었고 정부도 책임추궁으로부터 자유로웠으며 그렇다고 백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가 닦아낸 기름이 생태계파괴를 막을 정도로 절대적인 양이 아닌 때문이다. 이런 통에 삶의 고통을 못 이긴 애꿎은 어민들이 자살에 이르고 많은 주민들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힘겨워하고 있다.
다행이 근래 들어 피해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힘을 모아 삼성을 고발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거나 삼성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문제의 본질에 다가서는 시민운동이 전개되고 있으니 앞으로 추이를 더 지켜볼 일이다.
자원봉사는 불안한 사회를
지탱하는 보루
먹고 살기에 바쁜 시절, 자원봉사는 유한마담이나 하는 일인 줄 알았던 우리다. 여유가 좀 생기면서 봉사단체에 가입해 어깨띠를 매거나 모자를 쓰고 폼 나게 해야 하는 일로 인식하기도 했다. 세금을 걷는 정부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을 납세자에게 이중부담 지우는 일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산업사회, 공업화사회, 대량사회, 밀집사회, 경쟁사회, 양극화사회로 치달아가면서 우리사회는 매우 불안한 사회가 되었다. 가진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이나, 잘 사는 사회나 못 사는 사회나 서로가 서로를 위협하는 각박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이것은 공산주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자본주의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데올로기 밖의 문제가 되었다.
이것을 해결하는 일은 서로가 서로에 대한 작용을 건강하고 상생적이고 합리적 방식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최선이거나 최후의 방식이다. 나로 인해 발생한 트러블에 대해 진정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해결하는데 내가 가진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그것이다. 세상사람 모두가 트러블만 발생시키고 그 해결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극도로 혼란해지다가 결국 붕괴하고 말 것이다. 내가 일으킨 트러블 해결에 쓸 수 있는 아무런 힘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미안하지만 힘 있는 사람에게 미루되 나는 다른 트러블에 내가 가지고 있는 방식으로 기여해야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원봉사는 내가 남는 것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회에 진 빚을 갚는 지극히 의무적인 행사라 할 수 있다. 열 개 주고 열 개 받자는 얘기는 아니다. 백 개 받았지만 단 한 개라도 그만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가지고 베푼다면 자원봉사의 등식은 성립한다. 단 한 개 받았으면서도 백 개를 베푸는 사람이 또 있을 터이니 말이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지탱된다. 지속가능해진다. 아름다운 사회가 된다.
서해안 기름오염의 책임자인 삼성이 저지른 일에 백분의 일이라도 해야 한다. 그것을 하게 만드는 일은 삼성을 미워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다. 서해안을 기다랗게 수놓은 자원봉사자의 행렬은 그런 점에서 아름다운 광경이다. 나아가서 그 행렬은 반드시 생태계를 복원시켜 자연과 사람이 함께 다시 웃을 수 있는 힘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위 기고문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태안신문 2008.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