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뮤직
나른한 봄날의 커피 그리고 음악
낮잠과 기지개를 떠올리는 5월. 피곤함과 무기력함을 깨우고자 유난히 커피를 많이 찾게 되
는 계절이 봄이 아닐까 싶다. 어디선가 나른함이란 녀석이 겨울잠을 자다 깨어나 슬그머니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봄날의 따사로운 햇빛을 자석처럼 끌어당겨와 나를 노곤하게 만든다.
사막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고속도로가 보이고 뜨거운 대륙과 선인장 그리고 주유소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이 느껴지는 여름의 나른함과는 다른 강도가 조금은 약한 즐기고 싶은 자유가 느
껴지는 것이 5월의 나른함이다. 지금 바로 갓 내린 드립커피 한잔과 나른한 봄날의 음악을 듣
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봄날의 나른함과 잘 어울리는 한 여성 보컬이 있다. 언제부턴가 혜성처럼 나타난 코린 베일리
래(Corinne Bailey Rae)가 바로 그녀이다. 요즘에는 많이 알려져서 시트콤이나 CF음악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 처음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터프한 목소리의 소유자인 ‘노라존스’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미롭지만 힘과 깊이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이번에도 그녀의 노
래를 듣자마자 바로 앨범을 사 버렸다. 음반 전체가 편안해서 부담 없이 듣다보면 어느덧 한
장을 다 듣게 되는데, 물론 전체가 다 조용 하다거나 느린 음악은 아니다. 리듬이 있지만 나른
함이 묻어나는 그런 편안한 음악이다. ‘코린 베일리 래’의 목소리는 내가 있는 그 공간 전체를
착 감싸는 듯 한 묘한 힘이 있다. 그녀의 첫 앨범은 49회 그래미 어워즈 3개 부문 ‘올해의 노
래, 올해의 레코드, 최우수 신인상’ 후보로 올랐으며, 2007년 브릿 어워즈 3개 부문 ‘영국 최우
수 여성 아티스트, 영국 최우수 싱글, 영국 최우수 신인상’ 후보, Q 어워즈 & MOJO 어워즈 ‘최우수 신인상, MOBO 어워즈 최우수
신인상’과 ‘최우수 영국 여성 아티스트’ 수상, UK 앨범, 싱글 차트 1위! UK 에어플레이 차트 1위를 했을 정도로 수많은 어워즈에서
상을 휩쓸었으며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는 가수라 할 수 있다. ‘코린 베일리 래’는 1979년생 팝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교
회 성가대에서 노래 부르기를 시작하여 학교에서는 클래식 바이올린도 배웠으며 ‘레드 제플린’의 영향을 받아 15세에 ‘Helen’이란
인디밴드의 리드보컬로 활동 했다. 그 후에 몇 곡의 솔(Soul), 재즈(Jazz)곡을 녹음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첫 번째 EP의 타이틀곡
인 ‘Like a Star’가 라디오 공중파를 타면서 그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코린 베일리 래’의 음반 전체가 다 좋지만 그 중
에 나른한 봄날과 잘 어울리는 노래로는 ‘Like A Star’를 강력 추천한다. 그리고 ‘Till It Happens To You’나 ‘Choux Pastry
Heart’도 함께 추천 해 본다.
필자가 좋아하는 우리나라 음악인 중에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박학기’라는 가수가 있
다. 1989년 1집을 발매 했을 때 지금껏 듣지 못했던 새로운 보이스와 창법 그리고 생각이 담
겨있는 가사들이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했으며 필자가 좋아하던 ‘어떤날’(2월호에서 언급
한 팀) 의 ‘조동익’씨가 곡을 쓰고 편곡을 했기에, 그리고 그 둘의 작업이 너무 잘 맞았기에 더
더욱 좋아했었다. ‘박학기’는 서울예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미술전공 음악인(윤상, 조규찬,
이정선 등)들 중 한 명이며, 그 옛날 콘서트 장에 공연을 보러 가서 “선배님!”하면서 인사 했던
기억이 난다. 박학기의 음반은 2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너무 좋고 다시 듣고 싶은 앨범들이
기 때문에 전집을 모두 소장하고 있다. 그런 그의 음악 중 제목부터 나른한 봄날과 잘 어울리
는 음악이 있는데 1992년에 발매 된 3집에 실려 있는 ‘늦은 아침이면’이란 곡을 꼭 들어봤으면
한다. 동네 아이들의 소리에 잠을 깨서 느지막이 일어나 창밖의 아이들을 바라본다는 가사 내
용과 잘 어울리는 미니멀한 편곡, 곡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조규찬’의 코러스는 나른한 분위기
를 세련되게 표현한 봄날 음악이라 생각하며 강력히 추천 해 본다.
마지막으로 봄이랑 관련된 빌 에반스(Bill Evans)의 재즈 피아노 연주앨범을 소개하고자 한
다. ‘You Must Believe In Spring’이라는 프랑스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미쉘 르그랑(Michel
Legrand)의 곡을 타이틀로 한 ‘빌 에반스’의 앨범은 그가 죽기 3년 전 녹음 된 작품으로 발매
년도(사후 1년 후 발매됨)로 보면 거의 유작앨범이라 할 수 있다. ‘빌 에반스’ 에 대한 이야기
를 쓰자면 책 한권 족히 나오겠지만 이번에는 그 앨범과 관련된 짧은 이야기와 느낌에 대해서
소개를 하겠다. 그만큼 ‘빌 에반스’는 훌륭한 재즈연주자였으며 작곡가였고 수많은 재즈 뮤지
션에게 영향을 끼쳤고, 재즈를 모르는 사람도 ‘빌 에반스’라는 이름정도는 알 정도의 유명한
음악인이다. ‘빌 에반스’하면 생각나는 것은 백인 연주자(재즈 피아니스트는 거의 흑인이다)
그리고 트리오로 이뤄지는 긴밀한 인터플레이(서로 간에 주고받는 연주)가 유명하다. 그렇지
만 이번에 소개 할 ‘You Must Believe In Spring’이란 앨범은 서로간의 긴밀한 인터플레이 보
다는 ‘빌 에반스’가 주로 이끄는 독자적 플레이가 주를 이루며 그로인한 공간성 창조와 나른함 그리고 정적인 감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앨범의 처음 곡으로 나오는 ‘B Minor Waltz(For Ellaine)’는 3/4박자 곡으로 옛 애인인 ‘엘레인’을 위한 곡으로 봄날의 나
른함을 가장 잘 표현 해 낸 곡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가끔 이곡을 연주 하면서, 왼손잡이였던 ‘빌 에반스’만의 왈츠풍 주법으로 음
악 곳곳에서 드러나는 뛰어난 왼손 하모니 플레이를 느끼곤 한다. 중간 중간 연주되는 훌륭한 밀고 당김 그리고 중간에 잠시 바뀌
는 전조부분, 후반부에 나오는 하이 톤 영역에서의 솔로연주는 ‘빌 에반스’가 얼마나 위대한 연주자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4번 트랙에 ‘We Will Meet Again(For Harry)’이란 곡이 있는데, 이 곡은 1965년 사업가였으
나 알코올 중독으로 죽은 큰형을 위한 연주곡이다. ‘빌 에반스’가 죽기 1년 전에 둘째 형마저
우울증으로 자살로 죽음을 맞이하는데 -앙리 에반스 주니어(Harry Evans Junior) 자신도 재
즈 피아니스트 이였지만 늘 동생보다 못 한 콤플렉스가 그를 우울증으로 몰아갔을 것이라 추
정된다. ‘빌 에반스’ 본인도 오랜 약물 중독으로 인해 건강이 나빠졌다가 1980년 9월 15일 간
경화와 폐렴의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이러한 가족사 때문인지 말년에 만들어진 이 앨범 전
체가 쓸쓸함과 외로움의 큰 공간감 그리고 나른함과 정막감이 함께 어우러져 있으며 그의 고
뇌까지 담겨져 있는 듯하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흥미롭게도 ‘빌 에반스’ 가 1950년 초중반
군복무를 했는데 한국전쟁 당시 한국에 주둔 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표현력이 완벽한 그의 하모니와 말년에 느낀 그의 정서가 담긴 ‘You
Must Believe In Spring’이란 앨범을 걸어놓고 커피를 마신다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따스한
봄날 ‘빌 에반스’만의 선율에서 몽롱하면서도 기분 좋은 나른함에 젖어들어 커피가 주는 행복감을 더더욱 만끽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월간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