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교회 연합기구 <한교연>은 성공할까?
임 규일목사(만성교회)
우려와 곡절 끝에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김요셉목사) >이 드디어 연합기구다운 모습을 갖추고 대내외적으로 한국 기독교와 교회를 대표(?)하는 기구로 출현하게 된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아직은 시작이고 출발 단계이기 때문에 그 전망을 기대하거나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지켜보는 이들의 솔직한 판단이리라 본다.
그 까닭은 그 출발과 동기가 <한기총>의 폐단과 그 온갖 파행에 대한 강력한 이의와 반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한기총 개혁방안 7.7 선언>이행 여부와 그 선언 정신으로의 복귀 등등이 기구 태동의 취지였기에, 이는 가능성이며 한계성이 될 것이다. 아직은 그 울타리, 동그라미 안에 있다는 말이다. 지금의 <한기총>에 어떤 변혁이 일어날 수 있다면 <다시 한기총으로>의 기미가 엿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한국 교회 연합기구로서의 <한교연>에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첫째는 이미 각 교단이 과감하게 탈퇴를 결의하고 선언한 바에 따라 어떤 모양과 의미, 보여짐에 있어서든 <한기총>의 어떤 무엇이라도 모두 떨구어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사업과 활동 모든 면에서 환골탈퇴하여야 한다. 결코 그 아류(따로 한기총)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둘째는 어떤 권위의식에라도 사로잡히거나 집착하거나 내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한교연>은 교회 연합 기구(교단 연합)일 뿐이다.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어떤 조직체도 아니고, 그 조직체의 수장(?)인 듯 하여 한국 기독교의 최고지도자인 양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더 내놓고 이야기 하면 한국 교회 어느 누구도 거기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한국교회나 천만 성도의 대표자로 세운 일은 없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신들이 한국 교회의 큰 지도자인 양 행세하거나 처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허위의식과 어떤 거품 같은 권력의지가 오늘의 한국 교회 연합 활동의 폐해를 양산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합기구의 의장이나 대표회장을 교황이나 종정으로 받들거나 생각하고 있지 않은 데, 그 자리에 계신 분들이 혹 그런 입장을 취하려 한다면 그런 착각과 환상이 그동안의 모든 오산과 폐해를 낳은 것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실제 교회의 대표나 각 교단의 대표는 그 교단의 교단장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교단을 대표하는 상징이나 권위는 교단장들이 지니고 나타내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즉 <한교연>이 각 교단의 상위기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각 교단 총회는 <한교연>의 산하단체나 하위기관이 아니며, 교단장은 단순한 회원의 하나가 아니라는 말이다. 교단장의 권위와 교회의 대표성에 상응하는 정중함과 예전이 갖추어져야 함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는 “교회에 대한 상호존중”일 것이다. 연합기구는 말하자면 협의기구(협의적 과정)로서, 각 교단들이 저마다 주체가 되어 연합과 공동의 일치를 이루어 나아가야할 사업과 활동을 펼치면 될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새로 출범하는 <한교연>이 조직이나 기구 운영, 자리와 지위를 놓고 그동안의 이전투구나 이합집산, 야합과 경쟁, 흥정과 거래가 이루어지고 한다면 이는 더 심각한 한국 교회에 대한 배신과 일탈행위가 될 것이다. 그야말로 분골쇄신하기를 기대한다.
넷째는 <한교연>이 오늘의 시대와 사회에서 한국 기독교의 정신과 가치를 고양하고 선도하는 등불이 되고 횃불이 되어, “산 위의 빛”(마5:14) 처럼! 언제나 거기에 있어주기를 바란다. 무엇으로 어떻게 그리할 수 있을까? 그것이 <한교연>의 과제이고 역할이다. 교회와 성도들의 눈에서 눈물과 탄식이 흘러내리지 않게 해달라!
역사성을 발견하고 살려야 한다. “공교회의 협의적 과정”으로서의 교회 연합 활동에 대한 건강한 신학과 사상을 품고,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한국사회와 교회 앞에 설 수 있어야 한다. 의미없는 또 하나의 이합집산이 되어서는 역사 배신이 될 것이다. 과연 <한교연>은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해야 한다! 한국기독교 역사의 쓸쓸하고 허탈한 해프닝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만큼 책임감이 막중하다는 말이다. 맡은 님들이여, “시대적, 역사적 정의감”을 갖고 부디 충성하여 주시기를(고전4:1-2)!
/ 졸문에 불과하지만, 최근 신문에 올린 칼럼원고를 여기 올려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