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교회 헌당예배를 마치고 오후 일정에 들어갑니다.
점심식사는 옥류관.
유명한 곳이지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네이버 검색해보니,
북한의 대표적 음식점으로 광복 16주년을 기념하여 1961년 8월 15일에 문을 열었다.
초록색 기와를 얹은 2층짜리 전통 한옥에 연건축면적 1만 2500㎡이며, 좌석은 1,500석이다.
대동강 기슭의 옥류교(玉流橋) 옆에 지어졌으며, 명칭도 옥류교에서 따왔다.
대표적 음식인 평양냉면과 평양온반을 비롯하여 대동강 숭어국과 송어회 등이 있다.
이 가운데 41가지 재료로 만든 평양냉면은 남한의 냉면에 비하여 국숫발이 부드럽고 육수의 맛도 담백한 것이 특징으로,
하루에 1만 그릇이 소비될 정도로 유명하다.
평양직할시 중구역 창전동에 있으며, 금강산 관광구역과 중국의 베이징 등지에 분점이 있다.
원래,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평양냉면을 먹어보는 것도 기념이 될 만한 일이라서 기대하고 있는데...
들려오는 悲報.
오늘 공산당 행사 관계로 외부 손님은 안 받는다는군요.
그리고 예약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는군요.
여기는... 공산주의국가. ㅠㅠ
그래서 갑자기 중식 장소로 택함받은 곳이 대성식당.
나름대로 유명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옥류관은 한 번 꼭 들려보고 싶었었는데...
대성식당 입구입니다.

메뉴.
북한식 한정식집입니다.

대성식당표 평양냉면.
맛은... 그저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기념이 될 만하더군요.

아마 연회를 하거나 할 때 사용하는 공간인 듯 합니다.
동행하신 장로님 내외분의 기념 촬영.

밖에 나와서.

버스 타고 출발할 때 환송하는 종업원들.



점심식사 마치고 간 곳은 서해갑문.
서해갑문의 정확한 정보도 네이버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미림갑문(美林閘門)·봉화갑문(烽火閘門)과 함께 북한의 3대 갑문의 하나이다.
대동강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1981년 5월 4일 착공하였으며,
그해 10월 노동당 6기 4차 전원회의에서 '30만 정보 간석지 조성', '20만 정보 새땅찾기', '태천수력발전소' 등과 함께
'4대 자연개조사업'으로 결정,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북한은 당초 3년 내에 완공한다는 목표 아래 1개 군단 규모의 군병력과 각지에서 동원된 수만 명의 노동자를 투입하여 공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공사규모가 방대한 데다 작업지역의 유속이 초속 11m로 빠르고 수심 또한 최고 30m로 깊어 작업조건이 매우 나빴으며,
북한의 토목공사 기술수준이 낮았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되어 완공시기를 두 차례(1985년 4월 15일, 1985년 10월 10일)나 연기한 끝에 1986년 6월 24일 완공하였다.
일본인 건설기술자의 추산에 따르면 총 40억 달러가 투입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60억 달러의 거금이 들었다.
건설 목적은 27억 톤의 담수능력을 지닌 인공호를 조성하여 남포항의 접안능력을 2만 톤에서 5만 톤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을 비롯해,
서해안에 새로 조성하는 총 30만 정보의 간석지 가운데 평남·황남의 20만 정보에 농업용수 공급, 남포공업지구의 공업용수 확보,
수량조절로 대동강 하류지역의 홍수방지, 내륙 수상운수 확충, 남포와 황남 간의 육로수송 단축, 남포·대동강 지역의 풍치 조성, 인공호수에서의 양식업 개발 등이다.
영남리와 은율군 피도 사이에 폭 14m, 길이 7km의 제방(흙제방 5.2km, 콘크리트제방 1.8km)을 축조하고,
피도와 송관리 간 약 800m에 3개의 갑문(5000톤급, 2만 톤급, 5만 톤급)과 댐을 건설하는 등 총연장 8km의 방조제를 쌓았으며,
대형 선박의 통행이 가능하도록 90m 정도의 90° 회전교량을 설치하였다. 또 제방과 갑문 위에 4차선 도로와 철도를 부설하였다.
공사기간 중에는 남포갑문으로 불렸으나 완공 직후인 1986년 9월 서해갑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갑문이 건설됨으로써 미림·봉화·성천·순천 갑문과 함께 남포·평양·순천·덕천의 주요 공업·광업·농업 지역을 연결하는 운하망이 생겼으며,
남포는 이전보다 더 큰 비중을 지닌 국제항구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갑문공사에는 김일성·김정일 부자도 깊은 관심을 가져 공사기간 중 각 4차례씩 현지를 방문하였으며,
완공 후에는 이른바 ‘노동당시대의 대기념비’로 선전하면서 주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의 주요 참관코스로 활용해오고 있다.
한편 김일성 부자의 지시로 공사기일을 앞당기기 위해 부실시공을 한 결과 방파제에서 물이 세고 틈이 벌어져
인민군 1개 건설 사단이 항상 이곳에서 보충작업을 벌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 갑문의 건설로 주변의 어랑도를 비롯하여 9개의 섬이 사라졌으며, 인근 해안선의 길이가 20km 줄어들었다.
또한 대동강 유역의 기후가 변하면서 황남·황북·평남 일대의 농작물 생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평양에서 남포까지 가는 고속도로는 왕복 10차선의 규모였습니다.
사진을 좀 찍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직도 소심하여... ^^
그런데 그 넓은 고속도로에 차량 통행은 거의 없더군요.
북한의 경제난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
서해갑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모습.
사진을 좀 보시지요.




울산 전하교회 강인구목사와 기념촬영.
울산 전하교회는 우리 교회 윤노화전도사님이 우리 교회로 오기 전에 섬기던 교회랍니다. ^^

서해갑문 관리소입니다.

관리소 내부의 홍보물들.
서해갑문 미니어쳐입니다.


관리소 입구.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해갑문을 내려오면서 차창 밖 풍경.


오늘 여기까지입니다.
2010. 4. 30, 김영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