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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구입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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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00 |
하행 |
동서울~풍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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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0 |
상행 |
단양~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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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 |
승용차운행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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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0 |
식품구입비 |
풍기 |
삼겹살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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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70 |
고칫재 민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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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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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값 |
6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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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5인분 |
25,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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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3통 |
3,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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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운행비(죽령) |
3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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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령 2) |
3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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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기재) |
35,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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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비 |
풍기온천 |
4,500 |
5 |
22,500 |
저녁 매식 |
풍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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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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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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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870 |
⊙ 제12구간 지도(죽령~고치령~도래기재)
⊙ 참가대원
⊙ 산행후기
이번 제6차 백두대간 산행은 속리산 구간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이 구간이 대간 중에서도 가장
험한 구간으로 겨울철 안전사고에 무방비 상태인 점을 감안하여 부득이 하게 구간을 변경하게
되었다. 변경된 구간은 12구간의 소백산 구간으로 겨울 산행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건너 뛴 구간으로는 속리산국립공원과, 월악산국립공원이 되는데, 바로 이어지는 것이 소백산
국립공원이라 세 국립공원이 연이어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그만큼 수려한 지역이라는 뜻이겠지만, 이어 태백산 지역 까지 국립공원이 된다면 오대산,
설악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연속적으로 국립공원을 이어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소백산은 대표적인 육산으로 높기는 하지만 산세가 부드러워 험한 구간이 없는게 특징이다.
때문에 겨울철 최대의 등반지로 꼽히며 설화의 아름다움은 단연 최고라 평가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친 김에 다음번 산행일인 2월달엔 13구간 태백산지역을 이어 가면서 남한 최대의 눈밭
지역을 만끽할 예정이다.
겨울산행에 백미인 이 구간들을 지날수 있게 과감히 계획 변경을 단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구간 변경을 하면서 하나의 비젼이 사라지는 아쉬움을 느낀다.
처음부터 백두대간 산행을 계획하면서 나름대로는 몇가지 비젼을 가지고 추진 했었다.
예를들면 산행시간은 하루에 10시간 안팍으로 잡아, 산행을 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새겨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산행시간이 10시간은 되어야 마라톤으로 볼 때 풀코스 달리기를 한 느낌을 가지게 되며, 이는
하프를 달릴때의 느낌과는 사뭇 차원이 다르다.
이렇게 되면 보너스로 산행범위가 넓어져 대간 만을 오롯히 탈 수 있는 경제적인 산행이 가능하다.
그리고 한번 갈 때 적어도 2일 이상은 산행을 한다는 것이다.
산행도 이틀 이상이 되어야 다녀와서도 산에서 파묻혔던 기억이 오래 남는 법이고, 속세의 잡다한
번뇌들이 어느 정도 잊혀지는 법이다.
하루 산행을 위해서 움직이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지리산에서 진부령 까지 일사 불란하게 이어 가겠다는 것이다.
이번에 그러한 비젼의 하나가 깨졌지만, 안전과 계절의 맞는 산행을 위해서 나름대로 고육지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 백두대간 <제12구간> 죽령~소백산~고치령~선달산~도래기재
앞에서 밝혔듯이 소백산은 전형적인 육산이다. 너그럽고 넓고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산이다.
예부터 백두대간의 [밝은 산] 이라는 뜻의 소백산은 [십승지지] 나 [정감록] 등을 통해 [사람
살리는 산]으로 알려져 왔으며, 산삼이 많이 나기로도 유명하다.
풍기 지역에 인삼이 유명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소백산이 너그럽기는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춤을 추는 듯한 주목, 6월에야 피는 철쭉, 여름운무, 겨울철 설화가 이 산을 대표하는 아름다움
이기는 하지만, 사시사철 부는 바람에 영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그래서 설화가 더 아름답게 피기는 하지만…..
살인적인 바람으로 인한 피해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 산객들에게 한시라도 긴장을 늦추게
하지 않는다.
비록 부드러운 산세이기는 하나 휘몰아치는 바람으로 인한 저체온증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
이기도 한 것이다.
이 구간 주위의 명소로서는 충청북도 단양(丹陽)을 꼽을 수 있겠다.
산과 강 그리고 동굴이 한데 어우러진 비경(秘境)을 자랑하는 곳으로, 충주호로 흘러 들어가는
남한강의 큰 물줄기가 ‘물도리동’ 처럼 휘어져 흐르는 곳에 도담삼봉 등 기암절벽과 아름답기로
이름난 고수동굴 등 천혜의 관광명소가 산재한 곳이다.
또한 영주 부석면에 있는 ‘부석사’(浮石寺)와 순흥에 소수서원 등 문화재가 유명하며 의풍쪽 마대산
자락에는 김삿갓의 발자취가 서려있다.
풍기에서 순흥, 단산, 부석을 지나 춘양에 이르기까지 지방국도 931번, 915번이 내내 백두대간과
평행을 이루며 따라오고 있다.
그 중간지점인 고치령 밑에 좌석리 마을에는 우리가 묶을 [고칫재민박]이 있는 곳이다.
이번 대간 산행은 이곳을 베이스로 삼아 죽령에서부터 고치령을 거쳐 도래기재까지 장쾌하게
백두대간을 잇는 것이다.
계속 북진하던 백두대간은 10구간 마패봉부터 13구간 태백산까지 횡을 그으며 동진 또는
북동진을 하면서 이어 지는데, 본 구간 죽령~고치령~도래기재 에서도 거의 동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요즈음 날씨는 겨울답지 않게 포근했는데, 출발 이틀전부터 한파가 몰려와 기온이 뚝 떨어졌다.
겨울산행이 어느 정도는 추워야 제맛도 나고 눈꽃도 볼텐데 하는 심정이었는데, 마침 알맞은
추위가 온 것 같아 반갑기도 하다.
오후7시10분경 승용차에 짐을 그득히 실고 예정대로 출발했다.
때는 년말 분위기로 뒤숭숭하지만 밀림없이 고속도로를 잘 빠져 나간다.
남원주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들어서니 더욱 한산한 모습이다.
차는 풍기 i.c 에서 빠져나와 부석사 방면 지방국도로 들어섰다.
도로가 좋아져 예상보다는 빠른 시간에 도착된다.
풍기읍에서 잠시 돼지고기를 사고 곧바로 고칫재민박으로 향한다.
<백두12-01>
밤10시30분경 민박집에 도착하다.
고칫재민박.
고치령 아래 좌석리 마을에 위치한다.
방2개, 10명 이내로 숙박이 가능하다.
좌석리라는 지명은 집채만한 돌이 좌측에 있다하여 생겼다는 주인아저씨 설명이다.
첫날은 삼겹살에 [도라지주], [오가피주], [삼지구엽주]를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22소구간 (죽령~연화봉~비로봉~국망봉~마당치~고치령)
<구간 고도>
<백두12-02>
12월30일
주먹밥을 만들어 분배하고, 따뜻한 물을 끓여 보온병에 담는다.
아침 메뉴는 [미역국]이다.
6시10분경 아직 어두운 아침공기를 가르며 민박집 차로 죽령에 닿았다.
약 40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백두12-03>
竹領.
고구려와 신라를 잇는 소백산 고갯길.
신라 아달라왕 5년인 서기 158년에 [죽죽](竹竹)이라는 사람이 처음 길을 열었다는 죽령은 사연이
아주 많은 고개로, 옛날 노승 한 분이 고개를 넘다가 하도 힘들어 짚고 가던 대나무 지팡이를 땅에
꽂아놓고 갔는데 이것이 살아났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죽령은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를 잇는 5번 국도와 [또아리굴]로 유명한 중앙선 철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현재는 중앙고속도로의 터널이 뚫려 한적해진 고개 길은 구름도 쉬어가는 아흔아홉 굽이로
한때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이자 오랜 세월 영남과 기호 지방을 넘나드는 유서 깊고 이름난 관문이었다.
<백두12-04>
기상관측소로 오르는 길은 시멘트 포장도로다.
지금은 간간히 눈과 얼음으로 덮혀 있어 차량 통행은 어렵겠다.
멀리 해뜨는 모습이 장관이다.
<백두12-05>
중간 전망대에서….
새벽 일찍 한 가족이 올라와 있어 한 장 부탁했다.
아직 한파가 덜 풀리고 새벽이라 상당히 쌀쌀한 날씨다.
이른 새벽부터 가족을 데리고 이곳까지 올라 온 그들도 상당히 부지런한가 보다.
<백두12-06>
여명이 밝아오고 소백산 주위에 아름다운 산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뒤돌아보니 건너뛴 구간인 죽령 너머 도솔봉이 우람차게 솟아있다.
<백두12-07>
관측소를 지나니 바로 눈길에 시작이다.
눈이 녹다가 한파가 몰려와 그대로 얼어서 딱딱하고 미끄럽다.
예전에 산에 다닐 때 한창 부르던 산노래 중 이 노래를 유난히도 좋아하는 한 선배가 있었다.
오늘은 그 선배를 생각하면서 이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 하루의 산행 > - 산노래
하루의 산행을 시작하세 빨~간 배낭을 등에메고
저~기 저 산을 향하여 끊임없이 올라가세
그녀는 내곁을 떠났지만 나는야 진정코 외롭잖아
눈~에 덮힌 저~산이 오늘도 날 부른다.
찬이슬 맞아가며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피곤한 몸과 마음을 이산에서 풀어보세
통나무가 숯이되고 숯덩이가 재가되고
밤새도록 불러보는 연~인의 찬~가
설악의 설정이 휘날린다 파란 빙벽의 빨간 자일.
빨~간 배낭에 은빛 피켈 끊임없이 올라가세
<백두12-08>
이른 아침에 새벽 공기를 가르며 등산하는 맛은 가히 일품이다.
그것도 동네 뒷산이 아니라 풍광이 뛰어난 높은 곳은 말할 필요가 없이 신비로운 기운이 감돈다.
<백두12-09>
어느덧 제2연화봉을 지나 연화봉으로 오르는 길.
<백두12-10>
연화봉 오르면서 뒤를 보니 관측소와 천문대가 발 아래로 보인다.
소백산에는 산장이 없는 대신 비로봉의 주목관리소 겸 대피소가 있으며, 연화봉의 천문대 역시 지친
등산객들에게 잠시나마 휴식처를 제공한다. 해발 천미터가 넘는 고산의 날씨 변화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위험한 지경의 비상시에는 구조 요청도 가능하다.
<백두12-11>
주로 희방사 계곡을 통해 오르곤 했는데, 죽령 차도길로 오르긴 이번이 두번째다.
아직 시간이 이른건지 년말이라 그런건지 등산객은 한두명 보일 뿐이다.
<백두12-12>
연화봉에서 단양쪽을 바라보니 그림 같은 경치를 보여준다.
쌀쌀하지만 제대로 경관을 볼 수 있었다.
<백두12-13>
연화봉에서 내려서면 숲속 터널이 나온다.
이 지역이야말로 눈이 오면 눈꽃 터널이 되는 환상적인 곳이다.
지금은 바닥에만 깔려 있지만, 일단 눈이 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리라….
<백두12-14>
제1연화봉 오름길.
연화봉이라는 이름이 많다.
관측소에 있는 제2연화봉, 천문대에 있는 연화봉, 그리고 비로봉 가는 길목에 있는 이곳 제1연화
봉 등.
양지쪽은 따뜻하고 음지쪽엔 아직 잔설이 남아 있는 풍경이다.
<백두12-15>
소백산 바람이 유명함에도 오늘은 춥긴 하지만 그다지 바람이 불지를 않는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잠깐 잠깐씩 바람이 불때면 갑자기 추위가 엄습해 오고, 바람이 멈추면 햇살 덕에 따뜻함이 느껴지는
날씨다.
<백두12-16>
비로봉이 가까워 지면서 반대로 내려오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한결같이 대단한 복장들을 한 사람들이다.
상당히 값져 보이는 등산복에 프로급 산악인들에 냄새가 풍겼다.
그리 추운 것 같지 않은데도 모자를 뒤집어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얼굴을 거의 가렸다.
우리는 그렇게 추운 것 같지는 않은데, 정상 넘어 저쪽은 다른 것일까…
<백두12-17>
비로봉을 배경으로….
<백두12-18>
<백두12-19>
비로봉을 오르며 좌측으로는 주목 군락지이다.
천연기념물 제244호로 지정된 소백산 주목(朱木) 군락지에는 약 200~800년 수령의 주목들이
3,000그루 이상 자라고 있으며, 해발 1,2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겨울철 설경과 함께 원시적인
숲 속의 환상을 연출한다.
<백두12-20>
비로봉을 오르며 잠시 생각에 잠겨보는
<백두12-21>
소백산 정상 주위에 이렇게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주 특이한 현상이다.
<백두12-22>
죽령에서 3시간30분 정도 걸렸다.
보통 4시간~4시간30분 거리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빠른 걸음으로 온 것이다.
비로봉 표지석의 뒷면에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서거정이 썼다는 '소백산'이란 제목의 시가
음각되어 있다.
小白山連太白山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
他百里押雲間 백리에 구불구불 구름사이 솟았네
分明畵盡東南界 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
地設天成鬼破 하늘, 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
檀紀四三二六年(西紀一九六三) 十月 日
<백두12-23>
비로봉 넘어 국망봉을 향하는데 바람이 차갑다.
나도 덧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최대한 얼굴을 가려 주었다.
<백두12-24>
국망봉 가는 길에는 눈에 량도 제법 많았다.
12월 중순에 내린 눈이 계속적인 따뜻한 날씨로 녹다가 최근에 추워져 다시 얼어 붙은 상태라
설질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백두12-25>
비로봉~국망봉 능선은 시야가 트이고 풍광이 아름다워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적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바람이 별로 없고 맑은 날씨가 이어져 조망하기에는 최적이었다.
<백두12-26>
끝없이 펼쳐지는 능선에 파노라마가 압권이다.
<백두12-27>
해발 약700m 인 죽령에서 1,400m 고지인 연화봉까지 오르면서 내내 넓은 차도 길을 올라오고,
비로봉에서 부터는 더 높은 봉우리가 없이 내내 내려가는 길이라 산행이 무척 수월하다.
오르내리는 심한 굴곡이 있는 산이 아니라 부드럽게 넘어가는 그런 산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백두12-28>
<백두12-29>
<백두12-30>
<백두12-31>
국망봉에는 마의태자와 관련된 전설이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나라를 왕건에게 빼앗기고 나서 천년사직과 백성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명산대찰을 찾아 제천 백운면 방학리 궁뜰에 동경저[東京邸]라는 궁을 짓고 머물러 있었다.
왕자인 마의태자는 신라의 국권을 회복하려다가 실패하자 엄동설한에도 베옷 한 벌만 걸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이 곳에 올라 멀리 옛 도읍 경주를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이후 이 곳을
국망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백두12-32>
소백산맥의 영봉과 국망봉으로부터 흘러나온 개울이 순흥 땅을 감돌아 흐르며 아름드리 소나무와
산림이 하늘을 뒤덮고 옥이 구르는 듯한 물소리를 내며, 백운동으로 흘러 사천으로 이어지는 계곡이
바로 죽계천이다. 이황은 이 계곡의 아홉구비에 1곡은 백운동 취한대, 2곡은 금성반석, 3곡은 백우담,
4곡은 이화동, 5곡은 목욕담, 6곡은 청련동애, 7곡은 용추비폭, 8곡은 금당반석, 그리고 9곡은
중봉합류라 하여 죽계구곡이라 명명하였다.
소백산 줄기에서 흐르는 천으로 유명한 곳으로는, 북으로 흐르는 [천동계곡], [어의계곡] 등이 단양
팔경의 절경이 되며 [새밭계곡][남천계곡][죽령계곡][죽계구곡][희방계곡][금선계곡][다리안계곡]
[비로계곡] 등으로 하나같이 선경을 자랑한다.
<백두12-33>
국망봉을 지나 상월봉으로 능선은 계속 이어진다.
<백두12-34>
상월봉을 지나서 부터는 소백산의 능선도 한 풀 꺽이는지 밋밋한 산이 되며 아름다움이 갑자기
사라지고 만다.
<백두12-35>
바람이 심하게 부는 지역은 길이 눈속에 덮혀 푹푹 빠진다.
<백두12-36>
<백두12-37>
늦은맥이.
대간길과 구인사쪽 길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예전에 구인사에서 올라와 소백산 종주를 하던 생각이 난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미답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이곳에서 주먹밥, 떡, 빵을 먹고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마셨다.
쉴 때 마다 꺼내 놓으신다.
한모금씩 돌리니 달콤하다.
대구에서 혼자오신
희방사계곡으로 올라와 내내 산행중인데, 우리가 마구령까지 간다고 하니 자기도 그쪽으로
내려가 부석사를 들릴려고 한다고 한다.
대단한 젊은이다.
아내도 산에서 만나 결혼을 했는데, 지금은 임신중이라 혼자 왔다는 멋진 친구다.
<백두12-38>
민박집에 전화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통화불능 지역이라 할 수가 없었다.
<백두12-39>
고치령을 향하여….
겨울은 간데 없고, 완전 가을 분위기가 난다.
<백두12-40>
드디어 22소구간에 도착지인 고치령에 도착했다.
고치령은 영주시 단산면과 단양군 의풍을 잇는 길이다.
이곳은 세조의 동생이자 단종의 삼촌이었던 금성대군이 경북영주의 순흥 도호부 부사와 함께 단종
복위 운동을 벌이며 고개를 넘나들던 곳이다. 지금은 아스팔트가 정상까지 깔려 있어 옛 정취가 많이
사라졌지만,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 사이를 지나노라면 단종 복위를 꿈꾸던 선인들의 모습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백두12-41>
고치령은 야영하기에 그만이다.
고개마루에서 의풍 방면으로 약30m 지점에 있는 샘터에는 사계절 마르지 않는다는 시원한 약수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죽령에서 고치령까지 약9시간 산행을 했는데, 아직 시간이 일러 마구령까지 이어 가기로 했다.
고치령에서 바로 내려서면 묶었던 민박집이지만, 내일 여유있게 귀경하려면 더 가는게 좋을 것이다.
여기서 마구령까지는 약3시간 정도 소요된다.
결국 이번에도 하루 12시간 산행길이 되었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
◐…23소구간 (고치령~마구령~선달산~박달령~옥돌봉~도래기재)
<구간 고도>
<백두12-42>
<백두12-43>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편천사 조금씩 지치는지 털썩 주저앉아 마지막 남은 꿀물을
마시고 있다.
요즈음 갈수록 체력이 좋아지고 있다.
<백두12-44>
어두운 밤을 뚫고…
마구령 가는 길은 어둡고 눈과 얼음이 도사리고 있어 상당히 긴장되는 구간이었다.
헤드랜턴에 중요성이 새삼 느껴진다.
이런 장비는 안쓸때는 모르지만 필요할 경우 반드시 있어야 할 장비이기에, 가급적 쓸만한 고급
품을 구할 필요가 있다.
<백두12-45>
12시간을 꼬박 채운 산행이었는데, 고치령에서 마구령까지 오는 3시간이 상당히 힘들었다.
배도 고프고 지치기도 하고…
소백산을 넘는 고개로는 크게 3개가 있다.
제1의 고개는 구비구비 '죽령'고갯길. 국토의 대동맥으로서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사람들과 물류가
넘나드는 길이다. 그리고 소백산 동쪽,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옛 고갯길 두곳이 고즈넉히 자리하고
있는데, 그곳이 바로 마구령과 고치령이다. 현지 주민들은 메기재, 고치재라고 부른다.
마구령은 소백산 국립공원 경계 지역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고개로서 경북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
임곡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고갯마루의 높이는 해발 820m. 백두대간 상에 위치하여 수많은
대간 종주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하지만 마구령으로의 접근은 일반인들에게는 쉽지 않다.
대기중인 민박집 차량을 이용하여 마구령을 내려서서 다시 고칫재민박집으로 귀환했다.
<백두12-46>
민박집에 도착해서 간단히 옷을 갈아입고, 미리 준비된 상을 받았다.
[콩나물두부국]에 [돼지고기 두루치기] 를 했다.
우선 맥주, 막걸리를 시원하게 마시니 살 것 같다.
배가 고파 정신없이 먹고, 술은 완전히 뒷전이다.
상을 물리고 간단히 남은 술을 마져 마시고, 밤 10시경 비교적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은 올해 마지막날인 31일이다.
[북어국]과 어제 남은 돼지고기를 남김없이 먹었다.
식성들이 상당히 좋다.
주먹밥을 싸고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담아 준비를 마친다.
<백두12-47>
어제는 몰랐는데, 오늘 다시 올라와 보니 마구령이 상당히 가파르다.
민박집 아저씨 말로는 말이 오르다 굴러 마구령이 되었다고 하니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다.
어제 야영한 팀들이 있어 물을 가져다 주니 고마워 한다.
겨울철 야영에 약수가 얼고, 눈도 없어 식수 구하기가 만만찮은 모양이다.
그팀은 우리와 반대쪽인 죽령을 향해서 간다고 한다.
<백두12-48>
오늘은 여유있는 산행 길이다.
어제와는 다르게 천천히 움직였는데, 어제의 여파가 조금은 남아 있는것 같다.
<백두12-49>
오늘 날씨는 완전히 풀려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겨우살이가 나무에 걸려있다.
<백두12-50>
이곳에서 대간길 반대편으로 봉황산이 있는데, 이 산 밑에 바로 유명한 부석사가 있다.
‘부석사’(浮石寺)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無量壽殿)이 있는
곳이다. 신라시대인 서기 676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에는 중국 당나라 선묘(善妙)
낭자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와 ‘뜬 바위’ 전설이 깃들어 있으며, 고려 중기에 건축한 무량수전
(국보 제18호)의 ‘배흘림 기둥’인 머리지름 34cm, 가운데 부분 49cm, 밑둥 44cm의 절묘한
곡선미에 사람들은 찬탄해 마지않는다.
* '의상대사를 사랑한 선묘낭자'
<백두12-51>
여기까지가 소백산 국립공원 지역이다.
늦은목이 좌측으로는 의풍 남대리로 방랑시인 김삿갓의 무덤이 있는 마대산 자락이다.
<제목 부석사/ 지은이 김삿갓/ 출처 안양루 현판에서, 원문은 생략>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발이 된 오늘이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열려있고/ 천지는 부표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 마냥 헤엄치니/ 백 년 동안 이런 경치 몇 번이나 구경할꼬/ 세월은 무정
하여 나는 벌써 늙어있네//
말이 나온 김에 김삿갓 시를 하나 올려 본다.
蘭皐 平生詩 (난고 = 김삿갓의 호)
새도 둥지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건만
내 평생을 돌아보니 너무나 가슴 아파라.
짚신에 대지팡이로 천 리 길 다니며
물처럼 구름처럼 사방을 내 집으로 여겼지.
남을 탓할 수도 없고 하늘을 원망할수도 없어
섣달 그믐엔 서글픈 마음이 가슴에 넘쳤지.
초년엔 즐거운 세상 만났다 생각하고
한양이 내 생장한 고향인 줄 알았지.
집안은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렸고
꽃 피는 장안 명승지에 집이 있었지.
이웃 사람들이 아들 낳았다 축하하고
조만간 출세하기를 기대했었지.
머리가 차츰 자라며 팔자가 기박해져
뽕나무밭이 변해 바다가 되더니,
의지할 친척도 없이 세상 인심 박해지고
부모 상까지 마치자 집안이 쓸쓸해졌네.
남산 새벽 종소리 들으며 신끈을 맨 뒤에
동방 풍토를 돌아다니며 시름으로 가득 찼네.
마음은 아직 타향에서 고향 그리는 여우 같건만
울타리에 뿔 박은 양처럼 형세가 궁박해졌네.
남녘 지방은 예부터 나그네가 많았다지만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가 몇 년이나 되었던가.
머리 굽실거리는 행세가 어찌 내 본래 버릇이랴 만은
입 놀리며 살 길 찾는 솜씨만 가득 늘었네.
이 가운데 세월을 차츰 잊어 버려
삼각산 푸른 모습이 아득하기만 하여라.
강산 떠돌며 구걸한 집이 천만이나 되었건만
풍월시인 행장은 빈 자루 하나뿐일세.
천금 자제와 만석꾼 부자
후하고 박한 가풍을 고루 맛보았지.
신세가 궁박해져 늘 백안시 당하고
세월이 갈수록 머리 희어져 가슴 아프네.
돌아갈래도 어렵지만 그만둘래도 어려워
중도에 서서 며칠 동안 방황하네.
<백두12-52>
김삿갓을 생각하며 별 특징이 없는 길들을 지난다.
선달산 까지는 좌우 잡목도 많고 전망이 좋지를 않다.
여름 같으면 헤쳐 나가기 어려운 곳이리라.
<백두12-53>
선달산 오르는 길.
<백두12-54>
10시40분경, 선달산(1,236m)에 올랐다.
정상은 그 어느 산보다 주위 조망이 빼어나다.
온 사방에 파노라마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백두12-55>
뒤에는 지나온 소백산 비로봉이 고산답게 하얀 눈위에 떠있고…
<백두12-56>
<백두12-57>
<백두12-58>
앞으로는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이 아스라히 보인다.
<백두12-59>
<백두12-60>
박달령을 향하여 가다가, 중간에서 간식시간을 갖는다.
[산삼주]와 [솔잎주]를 마셨다.
행동식으로 대체하니 시간상으로는 상당히 유리하다.
겨울철이 아니고 여유만 있다면 느긋하게 쉬면서 먹는것도 좋으련만…
<백두12-61>
박달령은 백두대간 7개 구간중 태백산권과 소백산권을 가르는 기준지역이다.
박달령에는 산신각이 있고, 쉼터, 그리고 넓은 헬리곱터 장이 있다.
박달령 마루에 선 안내판에 따르면, 보부상들이 넘나들던 고개로, 마루에는 옛날부터 산령각이
있었는데, 매년 사월 초파일에 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백두12-62>
드디어 14시20분경 이번 산행에 마지막 봉우리인 옥돌봉(1,242m)에 올랐다.
오늘은 예상보다 조금 늦게 진행해서 한시간 정도 늦은 편이다.
<백두12-63>
8시간 산행으로 어제 12시간을 합하면 이번 산행도 총20시간에 고된 산행이었다.
옥돌봉에서 도래기재로 내려 오는 구간은 가파르고 눈과 얼음이 범벅이 되 상당히 긴장을
하며 내려섰다.
오늘은 등산객 단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백두12-64>
도래기재.
춘양에서 우구치리(牛口峙里) 상금정 마을로 이어지는 포장된 998번 지방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대간을 잘라 도로를 내면서 50m정도의 높이로 절개지가 만들어졌다. 도래기재 남쪽 아래로
100여m되는 곳에 두개의 장승과 정자가 있는 공터가 있으며 공터 안쪽으로는 금정터널이 있다.
금정터널은 일제 때 고개 북서쪽에 위치한 금정광산에서 캐낸 금을 실어 나르기 위해 대간을
뚫어 만든 터널이지만 지금은 입구 쪽이 폐쇄되어 있다. 이곳 공터를 야영지나 지원 장소로
이용하면 된다. 이 지점은 현동에서 33km, 춘양에서 17km 거리다.
도래기재는 오른쪽 도래기마을의 이름을 따서 이름지어졌다 한다.
또한 춘양은 전국에서도 제일 추운 곳으로 너무나 추워 따뜻함을 그리는 마음에 春陽 이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도래기재에서 고치령쪽으로 오는데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
우측 산길로는 대간길이 이어지고, 저 길로 어제 오늘 산행을 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주실령 험한 고개를 내려서서 약 50분만에 고칫재로 돌아왔다.
풍기로 나가 [풍기온천]에 들렸는데 년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다.
목욕 후 죽령 못 미쳐 [신대성휴게식당]에서 돼지갈비를 먹었다.
손님은 많은데 서빙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많이 기다렸다.
서울로 귀경하는 길은 아직 연휴 하루 전이라 그런지 막힘없이 수월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 산행도 보람있게 마치고, 더욱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인 만큼 상당히 의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2006년도 6차에 걸친 백두대간 산행을 성공리에 마칠 수가 있음에 감사한다.
또 한편으로 2007년도를 기약하며 이러한 보람이 계속 이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저 산 너머 (드라마 "산" 에서) > - 전 선 민
언제나 변함없는 저 푸른산과 같이
내 맘에 변함없는 꿈 푸르게 살아 있어
그리워 불러 볼 수 없는 그대의 이름같이
내 맘에 변함없는 사랑 영원히 살아 있네
왜 난 사는 건지 무엇이 삶의 목적인지
왜 난 걷는 건지 어디가 나의 쉴 곳인지
그리워 저 산을 바라봐 흘러가는 구름 위
내 맘에 남아 있는 모습 눈물로 가려지고
올라도 오를 수 없는 저 푸른 산과 하늘 위
무어라 내게 말하는데 나는 들리지 않네
왜 난 사는 건지 무엇이 삶의 목적인지
왜 난 걷는 건지 어디가 나의 쉴 곳인지
첫댓글 곽화진 이토록 훌륭하게 대간일정을 기록으로 남겨 주시니 그 기쁨이 배가됩니다. 실로 윤우로님이 있어 우리가 대간하는 보람도 느낀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되겠네요. 앞으로도 계속 수고해 주시고 다음 산행은 언제인지요? 기다려 집니다. 07.01.03 22:16
정진우 산행기 자체가 파노라마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07.01.04 00:52
박영준 고생은 되었지만 완벽한 진행으로 겨울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 감사했읍니다. 귀성하며 서울에서 뒤풀이를 함께 하지 못하고 죽전에서 내려 특히 편재일님께 미안했읍니다. 모두 수고 하셨읍니다. 07.01.04 10:52
김태식 백두대간16구간 구경 잘 했습니다. 겨울산사진들이 멋있고, 5인의 산사람들도 멋있고... 소백산 가본지가 10년은 된듯 합니다. 처음보는 '봉우리표지석'들도 많구요. 07.01.04 19:40
노재선 신선들의 겨울나들이,구경 잘 했습니다. 07.01.04 15:44
주옥같은 글...가고픈 사진들 잘 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