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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자료국명: 이란 회교 공화국(The Islamic Republic of Iran) 지리 및 기후이란 회교 공화국은, 북쪽으로 아르메니아(Armenia), 아제르바이잔(Azerbaijan), 투르크멘공화국(Turkmenistan)(모두 이전에는 구소련에 속했다) 그리고 카스피해와 접해있으며,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과 파키스탄(Pakistan), 남쪽으로는 오만(Oman)만과 페르시아 만 그리고 서쪽으로는 이라크(Iraq)와 터키(Turkey)를 마주하고있다. 이란의 국토면적은 한반도의 약 8배에 해당한다. 이란에는 3개의 산맥이 솟아있는데, 북서쪽의 비옥한 토양을 가진 화산대 사바란(Sabalan)과 타레쉬(Talesh) 산맥: 쥬라기에 형성되어 서쪽 국경 아랫부분 기다랗게 늘어서 있는 자그로스(Zagros)산맥; 그리고 이란에서 가장 높으며 만년설로 덮인 다마벤드(Damavand)산(5670m)이 속한 알보르즈(Alborz) 산맥 등이다. 북동쪽과 중앙평원 동쪽은 커다란 두 사막, 데쉬트-카비르(Dasht-et Kavir;200,999 sq km)와 데쉬트-룻(Dasht-e Lut)(166,000 sq km)으로 대부분 덮여 있다.
거칠 것 없는 대규모 도시개발과 산업발전 그리고 이란-이라크전쟁은 카스피해와 페르시아 만 주위의 자연환경, 특히 알보르즈(Alborz)산맥의 남부 능선에 돌이킬 수 없는 환경파괴를 초래하였다. 더 이상의 파괴를 막기 위해 이란정부는 몇 개의 국립공원을 설립하였다. 하지만 공원에 울타리와 산림감시원이 없으므로 이 국립공원이 파괴되는 것도 시간문제이다. 알보르즈 산맥의 북부능선은 낙엽수림으로 빽빽히 들어차 있고 이란에서 가장 방대하게 식물이 성장하는 지역이다. 아르다빌(Ardabil) 북쪽에 있는 칼칼(Khalkhal)과 고간(Gorgan) 남쪽 접경에 있는 나하르코란(Nahar Khoran)은 빼어난 관목 지대이다. 늑대, 자칼, 멧돼지, 하이에나, 흑곰, 스라소니 같은 포유동물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마잔다란(Mazandaran)지방의 깊은 숲 속에 많이 서식한다. 사막과 산에서는, 여유있는 페르시아 다람쥐와 몽구스, 빠르게 움직이는 페르시아 가젤(Gazelle), 호저(Porcupine), 오소리(Badger)와 토종의 야생 이란 당나귀도 볼 수 있다. 매력적인 동물로는, 검은 수염과 나선형 뿔을 가진 커다란 알보르즈 붉은사슴과 흰수염과 큰 뿔을 가진 오리얼(Oreal)양이 있다.
역사이란 지역에 등장한 최초의 인류는 엘라미티스(Elamites)로 추측되고 있다. BC2000년 경 아리아(Aryans)인들이 농업과 자급자족기술을 가지고 이 지역으로 왔다. 아케메니아 왕인 시리우스대왕(Cyrus the Great)이 이 지역을 침범했던 6세기 중반까지 페르시아의 역사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았다. 아케메니아(Achaemenian) 왕조가 페르시아 제국을 건국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결과적으로는 오늘날 이란의 탄생이 그 전통을 이어온 셈이다.
BC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알렉산더제국은, 마케도니아 셀레시드(Macedonian Seleucids)의 지배하에 있던 페르시아와 더불어 3개의 왕조로 분리되어 서로 싸웠다. 그러나 셀레시드는, AD 3세기까지 페르시아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던 유목민 파티안(Parthians)을 비롯해 상당수의 호전적인 소수민족을 지배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페르시아의 중부지역에서 온 사사니안(Sassanians)은 파티안의 직접적인 지배하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산업을 중요시하는 조로아스터교도(Zoroastrian)로 이루어진 집단으로서 도시개발과 무역을 추진하였으나 결국 싸움에 참여하게 되어 637년 아랍(Arabs)에 의해 패망하였다. 아랍은 1050년까지 이 지역을 통치하였고 이슬람교가 대부분 인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페르시아 문자와 이슬람 문화가 전파되었다. 아립인들은 1051년 에스파한(Esfahan)을 점령한 터키 왕조에 의해 패망했다.
많은 투쟁에도 불구하고 터키는 13세기초 징기스칸이 이끄는 용맹한 몽골에 의해 완전히 무릎 꿇기 전까지 계속해서 이곳에 군림하였다. 14세기 후반 몽골이 통치력을 상실하자 티무리드(Timurid) 왕조가 그 공백을 매웠으나, 투르크멘(Turkmen)족, 오토만 터키( Ottoman Turks)족, 그리고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식민지 등의 견제를 받았다.
가자의 왕들은 1921년까지 평화스럽게 이란을 지배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 동안에도 중립을 유지하였다. 마지막 가자(Ghajar)왕 중 한 명이 선거와 입법의회(마지리스;Majlis)를 소개하였으나, 이것은 1923년 페르시아의 레자 칸(Reza Khan)시대 전까진 활용되지 못했다.
레자(Reza)는 수상이 되었고 20세기로의 거대한 과업을 이끌기 시작하였다. 이란(이 국명은 1934년에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다시 한 번 중립을 지켰으나 영국과 구소련이 독일을 몰아내기 위해 이란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941년 레자(Reza)는 남아프리카로 추방당했고 그의 아들 모하메드레자(mohammed Reza)가 뒤를 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이 구소련의 철수를 설득하여, 젊은 왕(Shah)은 절대적 권력을 다시 얻었고 이란은 서방에 돈독한 우방이 되었다.
이란은 미국에 의해 수출입금지조치를 통고 받았는데, 이는 이란이 전세계에 있는 테러집단을 도왔고 중동지방의 평화유지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1997년 선거에서 온건파의 호잣올 에슬람 세이드 모하메드 카타미(Hojjat-ol-Eslam Seyed Mohammed Khatami)가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국민들은 다른 나라와의 관계가 호전되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이란과 독일을 비롯한 대부분 유럽국과의 관계는 1997년 최악의 상태가 되었는데, 수년 전 독일에 저항했던 이란의 쿠르드 족(Kurdish) 암살테러에 이란 정부가 연관되었다는 독일 법원의 판결 때문이었다.
경제GDP: US$3900억
이란의 광적인 신앙심은 가장 충격적인 문화적 특성이다. 이러한 종교 생활은 삶의 구석구석 퍼져있다. 이슬람 신앙의 근본은 유일신과 코란(Quran)에 적혀 있는 방법대로 신을 섬기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고 믿는 것이다. 아라비아어로 이슬람은 복종이란 뜻이고, 무슬림(Muslim)은 신의계시를 따르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란의 보수적인 시아파를 상징하며 일상 생활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것은 회교사원에서의 정숙한 의복과 행동이다.
이란의 국어는 인도유럽계의 언어로 파시(Farsi)라고 알려진 페르시아어이다. 다른 중요한 지역 언어로는 아자리(Azari), 쿠르드어(Kurdish), 아라비아어(Arabic), 로스어(Lori; 로스 Lors라고 발음됨)가 있고 26군데 지방에 걸쳐 길라키(Gilaki)와 바루치(Baluchi), 트루크맨의 몇 십가지 방언이 있다. 아랍 문자는 이슬람 문화가 소개된 후 쓰였으나 페르시아어를 영어로 옮기는 표준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페르시아 시는 AD9세기에 처음 나타났고, 서사시의 표준으로 서서히 자리잡아 오늘날 문화유산이 된, 운이 없는 이행연구(계속되는 2행의 싯구에서 같은 각운이 있고 같은 음절로 이루어진)형의 시가 발전하였다. 최근 이란의 영화가 눈에 띄게 발전하였는데, 가베(Gabbeh)의 제작자인 모센마크하말바프(Mohsen Markhamalbaf)는 영화제작자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란음식은 최고이며 매우 맛있다. 요리에는 쌀, 빵, 신선한 야채, 허브와 과일이 주재료로 쓰인다. 고기는 주로 잘게 썰거나 작은 덩어리로 자른 양고기가 사용되는데, 케밥(Kebab)에 넣는 것을 제외하고는 주재료로 쓰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여행자들에게는, 케밥이나 닭고기에 밥(혹은 야채나 빵)이 가장 일반적으로 대할 수 있는 음식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이란음식을 먹으려면 가정집에 초대되거나 고급호텔에서 비싼 음식을 사먹어야 한다.
이란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료는 의심할 바 없이 차이(Chy; 차)이며, 항상 검고 강한 맛의 차가 팔팔 끓여 나온다. 다양하고 신선한 과일주스, 밀크쉐이크와 발효음료는 이란 전역에서 마실 수 있다. 술은, 교회에서 성찬식할 때의 포도주같이 종교적 이유나 특별히 허용된 이슬람 교도가 아니면 이슬람교인들에겐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종교적인 휴일에는 문이 있는 모든 곳은 문을 닫는다. 따라서 휴일을 잘 체크해 두어야 한다. 이란의 종교적 휴일은 회교음력을 따르므로 양력에 맞춘 날짜들은 매년 바뀐다. 주요행사로는, 새벽에서 해질 때까지 단식하는 라마단(Ramadan)과 라마단(Ramadan)의 끝을 알리는 축제로서 하루동안 열리는 축제 Eid-e Fetr 그리고 교조 모하메드(Mohammed)가 그의 후계자로 이만알리(Eman Ali)를 지목한 날을 기념하는 Ghadir-e Khom와 모하메드(Mohammed) 탄신일이 있다.
비자: 이란을 방문하려면 누구나 비자가 필요하다. 비자에 요구되는 규칙이 많고 수수료도 비싼 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을 떠나기 전 비자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입국하면 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비자를 갖고 있다하더라도 나라 밖에서 얻는 것보다는 쉽다.
화폐기본단위 : 리알(rial)
이란은 국제적인 기준에서 볼 때 물가가 비싼 곳은 아니다. 저렴한 호텔, 이란전통음식과 육로교통에 드는 최소한 비용은 하루 US$ 10정도이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하루 US$ 20정도로 좀 여유로울 수 있는데, 쓸만한 숙박시설과 좀더 나은 음식, 일등급 버스와 공공택시를 이용할 수 있고 가볼 만한 모든 관광지를 돌아볼 수 있다. 이란을 여행하는데 불편한 것 중 하나는 외국인에게는 2배의 요금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요금을 US달러로 지불하는 국제공항편이나 선박편 그리고 이란 현지인들보다 15배 이상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 주요 관광지나 고급호텔에서도 적용된다.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여행자수표는 환전할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좋으며, 할 경우는 테헤란(Tehran)국제공항과 테헤란(Tehran)시내에 있는 멜리(Melli)은행에서만 가능하다. 신용카드를 받는 중급호텔들(모든 고급호텔들은 물론)이 늘어나고 있는데 비자(Visa)나 마스터(Master)카드가 사용되며, 아메리칸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는 역시나 취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이란에 대한 무역통상금지조치로, 미국에서 발급된 비자(Visa)나 마스터(Master)카드도 사용할 수 없다. 결론은 미달러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가격흥정이 일반적이지만, 상점에서는 시간낭비일 뿐이다. 개인택시도 요금 흥정이 가능하지만 다른 교통수단은 정부에서 정해진 요금이므로 불가능하며, 고급호텔을 제외하고는 호텔요금도 흥정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이란여행에 최고의 시기는 4월중순에서 6월초순까지와 9월하순에서 11월 초순까지이다. 이 기간은 길고 추운 북부지방의 겨울과 이란의 신년(3월말) 그리고 이란전역에 걸쳐 살인적인 더위를 기록하는 여름철을 피할 수 있는 때이다. 대부분 여행자가 단식기간인 회교도의 라마단(Ramadan)을 피해 여행하려하지만, 대부분 식당이 새벽에서 저녁까지 문을 닫는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라마단(Ramadan)기간에 여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주요 여행지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를 가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축복받았다고 할 수는 없다. 테헤란(Tehran)을 대도시로 만드는데 한 몫한 공해와 인구밀집, 무책임한 계획성 등은 여행사들조차도 이 곳을 홍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동양적인 화려함으로 가득한 이국적인 지역을 기대하고 이 곳을 방문했다면 매우 실망할 것이다.
테헤란(Tehran)은 매우 넓은 반면 교통사정은 상당히 나쁘며 관광지역도 분산되어있다. 그러나 호텔은 좋은 편이고 각양각색의 식당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어느 곳이든지 편의시설은 저 멀리 떨어져 있지만 테헤란(Tehran)시민들은 친절하다. 도시에서의 주요여행지는 훌륭한 박물관들이다.
유리 도자기박물관( The Glass & Ceremic Museum)은 테헤란(Tehran)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 중 하나인데, 전문가 수준으로 구성된 전시물뿐만 아니라 건물자체도 인상적인 곳이다. 또 다른 이상적인 곳은 레자 아베이시스(Reza Abbasis Museum)박물관으로 이슬람의 그림과 도기류 그리고 보석류가 전시되어있다. 국립왕궁(화이트)박물관(The National palace(white) Museum)은 마지막 샤(Shash)의 왕궁이었던 곳으로 지금은 종합박물관이 되었다.
잠쉬드(Jamshid)의 왕좌인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는, 약 BC512년 경 세워지기 시작하여 150년이 지난 후 복합건축물로서 완공된 거대하고 웅장한 왕궁이다.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는 BC331년 알렉산더대왕 시대에 불타버렸다. 이 사건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우연히 파괴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쪽과 아테네(Athen)를 파괴한 엑서스(Xerxes)에 보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유적지는 지나간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의 영광의 자취에 지나지 않는다.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에서 가장 큰 장소는 100개의 기둥을 가진 궁전(Palace of 100 Colums)으로서 아마도 아케메니아(Achaemenian)시대에 걸쳐 제일 거대한 건축물 중 하나일 것이다. 이곳은 한때 다리우스1세(Darius I)의 연회 장소로도 쓰였다.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는 시라즈(Shiraz)에서 57km(35mi)거리, 이스파한(Esfahan)도로에서 조금 벗어나 있으며 시라즈(Shiraz)에서 버스와 합승택시로 갈 수 있다. 이스파한(Esfahan)에 있는 이슬람 건축물의 차가운 푸른색 타일과 도시의 장엄한 다리들은 주변의 뜨겁고 건조한 이란풍의 시골과 대조적인 분위기를 이룬다. 이스파한(Esfahan)의 정경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화려한 건축물과 기분좋은 기후뿐만 아니라 다른 이란지방과 비교해 보았을 때 충분히 휴식을 취할만한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산책을 하거나 시장에서 헤매기도 하며, 아름다운 정원에서 졸거나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는 여유로운 도시이다.
사헬소툰(Chehel Sotun Museum & park)박물관과 공원은 17세기의 뛰어난 누각이며 피트닉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벤크(Vank)성당은 역사적으로 주목받는 이란의 아르메니아교회이다. 다리아래에 있는 찻집 중 한곳에서 차를 마셔보는 것도 이스파한(Esfahan)에서 꼭 해봐야 할 경험이다. 테헤란(Theran)남쪽에서 400km(250mi)거리에 있는 이스파한(Esfahan)에는 몇 개의 항공노선이 매일 운행되며, 버스는 테헤란(Theran), 시라즈(Shiraz) 및 이스탄불(Istanbul)로 야간 운행된다. 밤새 버스에 앉아있기가 힘들다면 이스파한(Esfahan)과 테헤란(Theran)사이의 고속전철을 이용해보자.
시라즈는 중동이슬람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많은 아름다운 건축물이 세워지고 재건되었던 잔드(Zand)왕조(1747-79)시대에 이란의 수도였다. 이곳의 많은 예술가와 학자들은 시라즈(Shiraz)를 학문과 나이팅게일 새들, 시, 장미 그리고 포도주로서 표현하였다.
테헤란(Theran)남쪽에서 900km(560mi)정도 떨어져 있는 시라즈(Shiraz)는 이란 여행의 시발점이나 종점으로 삼기에 좋은 장소이며, 국제선, 국내선 항공 이용도 용이하다. 공항은 도심에서8km(5mi)북동쪽에 위치해 있다. 버스가 시라즈(Shiraz)에서 테헤란(Theran)까지 운행되며 또한 다른 주요도시로도 운행된다. 때로 합승택시가 이스파한(Esfahan)까지 운행한다.
밤(Bam)은 흥겨운 마을로, 많은 유칼리나무가 있어 호주의 향수를 느끼게 해 주며 대추야자 나무는 사막의 오아시스가 있는 곳임을 확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고대도시이다. 지금까지 보존된 유적지 일부는 12세기 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대부분 유물은 사파비드(Safavid)(1502-1722)시대에 세워졌다.
1772년 아프가니스탄(Afghan)인이 침범하여 사람들이 이 도시를 떠나기 전까지는 6sq km(2 sq mi) 정도 넓이의 이 곳에 13,000명 이상이 살고 있었다 한다. 도시는 시라즈를 비롯한 피에 굶주린 침략자들의 공격을 받은 후 1810년경 다시 한번 버려졌다. 그리고 나서 1930년까지 군용 병영지로 쓰였다가 지금은 완전히 황폐화되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곰바드카부스(Gombad-e Kavus)는 웅장한 비석탑으로, 왕자, 시인, 학자, 예술가이며 예술의 후원자인 가부스(Ghabus)(카부스(Kavus)는 방언이다)를 기리기 위한 기념비이다. 그는 11세기 이전까지 주변 지역을 다스렸고 영원한 기념물을 계획하여이 탑을 착공하였는데, 55m(180ft)의 탑은 1006년에 완성되었고, 6년 후 가부스(Ghabus)는 암살당하였다.
데즈(Dez)강을 따라 눈에 띄는 피라미드형 사원 초가잠빌(Chogha Zambil)은 엘람(Elamite)건축물의 생생한 본보기로서 최고의 건물이며 유네스코(UNESCO)에 등록되어있다. 원래는 동심으로 된 층이 5개였으나 지금은 3개만 남아있다. 이것은 1939년 석유회사가 항공측량을 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회교사원이나 유적지, 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것에 싫증났다면, 이란서부 하마단(Hamadan)북쪽에서 100km지점에 있는 동굴로 한번 발길을 돌려보자. 이 동굴은 40년 전,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 헤매던 염소치기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높이가 40m(130ft)이상이고 크고 깊은 여러 개의 호수가 있다. 호수의 깨끗한 물에는 아무것도 살지 않고 박쥐조차 매달려 있지 않으며, 그 어떤 주거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다. 미니버스가 알리사드르(Ali Sadr)와 하마단(Hamadan)간을 자주 운행한다. 테헤란(Theran)에서 336km(208mi)북동쪽에 떨어져 있는 하마단(Hamadan)까지 버스가 운행된다.
레저스포츠스키는 부유한 이란사람과 세계에서 가장 싼 스키장소를 찾아오는 외국인들로 각광받고 있다. 테헤란(Theran)에서 2-3시간 걸리는 셈삭(Shemshak)은 활강스키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크로스컨트리(Cross-country)는 마잔다란(Mazandaran)지방의 카라다시트(Kalardasht)에서 즐길 수 있다.
이란으로 가는 길항공, 육로, 해로 교통편 모두 이란과 연결되어 있으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허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일반외국인이 열차로 터키와 이란국경을 쉽게 건널 수는 없다.
이란과 아시아, 중동, 유럽지역을 연결하는 항공노선은 상당히 많다. 이란혁명과 레바논 시민혁명으로 20년동안 사용되지 못했던 베이루트(Beirut)와 테헤란(Theran) 간 항공노선은 1999년 다시 운행 재개되었다. 베이루트(Beirut)공항은 도심에서 남쪽 5km지점에 잇다. 대부분 국제항공편은 테헤란(Tehran)의 메라베드(Mehrabed)공항에 착륙한다. 출국세는 US$30과 US$40사이로, 확실히 언급할 수 없다. 항공권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국내 교통편이란의 교통시설이 서양의 것처럼 발달되어 있지는 않지만 중동 지역에선 꽤 좋은 편이다. 대중 교통시설은 자주 운행되며, 믿을 만하고, 매우 안전하면서도 저렴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항공이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 멀리 떨어진 도시로 가기 위해 육로교통을 이용할 만큼 비자기간이 여유있지 못하다 ; 국내항공요금이 싸다 ; 지역이 너무 방대하다 ; 육로이동시 경치가 때로 지루하다 ; 비행기(특히 이란항공)가 안전하고 자주 운행되며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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