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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빛 바랜 사진첩[1] "학교 가는 길" 2. 빛 바랜 사진첩[2] "학교 교정" 3. 빛 바랜 사진첩[3] "후메끼리" 4. 빛 바랜 사진첩[4] "사과(청과물)시장" 5. 빛 바랜 사진첩[5] "칠성 시장" 6. 빛 바랜 사진첩[6] "방천(신천)길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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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연재물은 10회 동문이신 앵두(이창모)님이 10회 동기회 카페 "추억이야기" 게시판에 올리신 글입니다.
빛 바랜 사진첩[1] "학교 가는 길" ㅡ 글쓴이 : 앵두(이창모)
지금 나는 5, 6학년 때 살았던 우리 집에서 옥산초등학교로 출발하려고 한다.
미숙이 아빠 성함이 송필옥이라는 것을......쪼꼬만 미숙아! 넌 지금 어디 그렇게 꼭꼭 숨어있니? 부채도사 우정도 찾지 못하는 곳에...이제 숨박꼭질은 끝났어. 빨리 나와서 함께 다른 놀이하고 놀자!
2, 3학년 때는 이인원이와 한 동네서, 4학년 때는 이영목과 같은 골목에서 살았었는데, 지금 우리 동네에는 대문을 나서면 바로 왼쪽에 김희복(1반-졸업앨범에는 희보로 되어있음)
그 옆에 김장근(6반), 오른쪽에 이화경(3반), 정면으로는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박은실(9반), 왼쪽으로 나가면 백경숙(1반), 바로 그 옆집에 박용문(1반), 조금 더 가면 백경희(2반),
그 뒤 골목에는 짤짤이 정문수(7반), 그리고 우리 집 대문에서 오른쪽으로 나가면, 화경이 집 옆집 옆집이 손은숙(4반), 왼쪽으로 돌면 그 유명한 콩나물 도가 옆집에 하의순(2반), 그리고 그 다음 왼쪽 골목에 이경애(6반)가 살고 있었다.
또 있다. 대문이 그 쪽으로 나지 않아서 남의 동네이긴 하지만 담장 하나 사이로 번데기 공장을 했던 구본우(3반), 그 옆 부근에는 손귀자(1반)도 살고 있었다. 가히 옥산 10회 동네라 할 만 하다.
우리 집에서 학교로 가는 길은 왼쪽, 오른쪽 두 갈래 길이 있다. 난 주로 오른쪽으로 갔지만, 종종 왼쪽으로 가기도 했다. 그 땐 몰랐지만, 아마 그쪽으로 해피 맘 집이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먼저 왼쪽 길로 나가면 얼마 가지 않아서 큰 또랑이 나온다. 지금은 콩크리트로 다 덮었지만 그 때는 노출되어 있어서 여름이면 냄새가 무지 났었다.
주로 다녔던 오른쪽 길은 화경이 집, 은숙이 집, 그리고 왼쪽 골목을 돌면 의순이 집, 조금 더 가면 예외 없이 왼쪽 길에서 만났던 또랑을 또 만난다. 이 또랑은 칠성 시장까지 길게 이어진다.
또랑 오른쪽 길을 따라 가면 다리가 나오고 다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아스팔트 길을 조금만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그 때는 칠성시장 쪽으로는 도로 포장이 되지 않은, 골목길 수준의 몇 개의 길들 밖에 없었기 때문에 삼거리라고 표현했다).
왼쪽 편 코너(옛날에는 카도집이라고 불렀다)에 그 유명했던 아이스케키 공장 미성당이 있다. 처음에는 긴 스틱 모양의 아이스케키가 나중에 진화되어서 넓적한 직사각형 모양이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하드였다. 그때는 오로지 팥으로 만든 하드 밖에 없었다.
여름만 되면 우리 동기들 중에서도 가난했던 몇몇 친구들은 아이스케키 통을 메고 "잘만 찍으면 두 개, 세 개!" 하면서...... 물론 칠성동은 될 수 있으면 피해 가면서 아이스케키를 팔러 다녔었다.
그 때 돌림판을 보면 2개, 3개 금에 찍으면 1개, 그리고 10개, 100개도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밑에는 철판을 깔아서 바늘이 꽂히지 않게 만들었더라. 그 때 아마 100개를 찍을려고 눈이 벌겠던 친구들! 깜빡 속았던 친구들 많체?
그 맞은 편에는 칠성 파출소가 있었고, 그 옆에는 평안 의원(아마 칠성동에 있는 유일한 병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삼화당 약국, 약국 건너 편에는 일광 사진관(지금까지도 그 자리에 있다고 그 아저씨, 그 사진관이 그대로 있다고 함)이 있었다.
사진관 바로 옆에 이름 모를 제과점, 그리고 그 옆으로 북구 보건소가 있었고, 조금 더 가면 드디어 오른쪽에 학교로 들어가는 골목이 나온다.
학교 가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아침 등교시간에는 대 장관이 펼쳐진다. 물론 반대쪽으로 등교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전교생 4,500명(지금은 600 여명) 중 대부분이 이 길을 이용했고 경명여중고 학생 전부가 이 길을 이용했기 때문에(이 때까지만 해도 경명여중고 정문은 이 골목 중간 쯤에 있었다),
요즘에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학생들의 긴 대열! 가히 장관이 아닐 수 없는 광경이 아침마다 이 골목에서 연출되었다.
골목 입구 바로 오른쪽에는 전교생 거의 대부분이 이용했던 대구 문방구가 있었고, 조금 들어가다 보면 왼쪽으로 좁은 골목들이 거미줄처럼 펼쳐지는 소위 수용소 골목 집들이 있었고,
조금 더 가면 슬레이트 지붕, 유리(안쪽으로 검은 고무줄을 걸쳐 놓고 신간 만화 껍데기를 진열해 놓았음) 달린 누런 미닫이 문의 다 찌그러진 만화방이 나온다.
아, 이 곳에 얼마나 많이 들어가서 그림 공부를 했었던가! 우리 선배님들은 물론이고 우리 동기들, 그리고 아마 상당 기간 동안 우리 후배들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집이 바로 이 만화 가게일 것이다.
워낙 손님들이 많아서 신간 만화는 반으로 분리해서 앞 뒤로 나누어서 순서를 기다려 보아야만 했고, 5원을 주면 장판지를 오려서 만든, 도장이 찍혀 있는 만화표 3장!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서 가정집 마루에 앉아서 볼 때는 만화표 주지 않고 야매로 몰래 바꿔보는 재미도 솔솔 했었다.
그때 남학생들에게 인기 있었던 만화는, 권웅이 그린 만화들, 그리고 특히 이근철의 만화(조국을 등진 소년, 짱빠라, 카르타 등)는 폭팔적인 인기를 누렸었다.
또 남, 여학생, 어른들 모두에게 인기가 있었던 경인의 의사 까불이, 용가리 시리즈(왕가리, 개가리, 계가리...수없이 나왔었다) 등이 있었다.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이 뿐 아니었다. 포또 떼기(어떻게든 성공해서 설탕으로 만든 큰 선물..나비, 범선 등을 받아보려고 바늘에 침을 발라가며 열심히 포또를......),
또 당면 몇 자락 들어있지 않는 납작 만두, 얼마나 맛있었던지.... 지금 생각해 보면 소위 일본장이라고 하는 간장 맛 때문이었던 같다.
바삭 과자 재미 또한 일품이었다. 1원 주고 엄지 손톰만한 것 3개 받아서, 검은 솥같은 것에 참깨만한 수많은 까만 돌들,
그 안에 넣고 숟가락으로 휘저으면 열기 땜에 점점 부풀어 올라 큰 바삭과자가 되는.......먹는 것보다 부풀리는 재미가 더 좋았던....
여름이면 특히 잊을 수 없는...... 달걀 아이스케키! 길에 앉아서 둥근 나무통을 굴리면서 손님이 오면 그 통 속에서 달걀처럼 생긴 양철 모형을 꺼내서 고무 바킹을 벗기고 달걀 아이스케키를 꺼내주던 아저씨의 손.
덜 얼었으면, 어 아직 안익었네! 하면서 도로 통 속에 집어 넣었었지. 빨강, 노랑, 파랑...형형 색색(요즘 생각하면 모조리 불량식품인데...
또 그때 아저씨의 손은 얼마나 더러웠을까?)의 달걀 아이스케키! 어찌 그 기막혔던 맛을 잊을 수 있을까!
골목 중간 쯤 가면, 길이 약간 넓어지면서 경명 여중고 정문이 나온다. 하얀 교복의 누나들! 그 때 유독 안상복이는 누나들 뒤에 가서 앞가슴을 만지곤 도망하면서, 비명을 지르는 누나들에게 이런 말을 했었지. "거기 소다 얼마치 넣었는데?" 상복이는 그때 뭔가를 알았을까?
경명여중고 정문이 있는 넓은 공터 같은 길에는 오른쪽으로 기타 공장이 있었고(나중에 큰 불이 나서 문을 닫았지만...), 그 옆으로 두부공장들, 그리고 잘 안 어울리지만 그때까지 그 근방으로는 돼지 우리들도 많이 있었다.
좁아지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경명여중고 운동장 담벼락, 그리고 우리 학교 정문 가까이 오면 왼쪽으로 경명여중고 후문인 연두색의 작은 철대문과 뒤이어 강당 건물이 있었다.
우리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나 있는 옆 골목길로 가면 왼쪽으로 우리 학교 운동장 담벼락, 그리고 오른쪽으로 동광교회와 그 유명한 동광 보육원이 있었다.
원장님 딸은 손자경, 원생 중에 기억나는 동기 친구는 1반에 유지영이다. 늘 박박 깍은 머리에 검은 목 구레빠 교복을 입고 다녔고,
우울해 보이긴 했지만 빛나는 눈빛에 참 잘생기고 똑똑한 아이였었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부모님들은 다시 찾았는지.......아마 지금은 좋은 부모가 되어 있겠지.......
계속 가면 사거리! 오른쪽으로 가면 신천(그때는 방천이라고 불렀지)으로 가는 길(그 근방에 대구 전체를 정복했던 유명한 오복빵이라는 건빵 공장이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국일제과의 킹구빵 공장장이 만든 공장이라나....), 정면으로는 제일모직 사택들, 그리고 왼쪽으로 틀면 우리 학교 후문이 나온다.
지금은 옥산초등학교 정문이 되어 사라지고 없는 후문이지만....................................... |
첫댓글 앵두(이창모) 선배님우와 할말을 잃었습니다. 너무나도 생생한 그시절 추억들이 대부분 떠오릅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합니다
앵두님의 기억 무지 놀라워요 어린시절로 돌아가고픈 충동을 일으키게 합니다. 삼각 오렌지 공주가 즐겨 먹엇엇는디 ... 만화방 고독한유미를 즐겨보고 이근철의 카르타 "으잉 " 생각나요. ㅋㅋㅋ 추억의 칠성동 아! 옛날이여 ~~~
선배님도 만화 참 좋아하셨나봐요. 남자들이 주로 보는 카르타를 기억하시는 걸 보니요~~~
추억이 새롭네요...어떻게 그 시절을 다 기억하고 계신지...
대단하시네 아옛날이여 힘들고 고퍼든시절 들
앵두 넌 전교 어린이 회장다운 면모가실히 있어고마버
18회 후배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네요...어느 정도는 알뜻도 하고....모를 뜻도 하구요....쩝. 선배님 대단하셈.
우~와~~앵두(창모)의 추억이야기가 총동창회 카페에 까지 연재가 되다니~~우째 어린시절을 필름 돌리듯이 생생하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