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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없는 골에.. 여우가 설친다”.
나는 중등시절에 고향인 안동군 월곡면 삼현에 갔을 때(지금은 안동댐 건설로 월곡면 자체가 사라졌다), 할배들이 나를 대구 촌놈 왔다고 놀렸다. 말하는 투(입말)와 나랏말씀과 다르듯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할배들은 지나가듯이 “호랑이 없는 골에 삵괭이와 여우들이 설친다”고 한탄하듯이 말했다. 할배들은 학교에 안 보낼 수는 없고, 배워오는 것이 물이선소이불위(勿以善小而不爲) 물이악소이위지(勿以惡小而爲之)를 모른다는 것이다. 대구가 광복이후에 삵괭이가 쫒겨나가고 여우들이 설치는 꼴이다라는 것을 짐작하기에는 나이가 꾀나 들어서일 것이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초등학생에게 주식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애들을 삵괭이와 여우를 만들려고 하는구나. 투기와 탐욕을 가르치다니, 경제는 아끼는 것이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해야지. 할배들이 보기에 손자뻘이 신학교에 다니는 애들처럼 새로운 학문의 접근이 맘에 안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요즘 애들의 품성에 대해 아마도 할배처럼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내 심정이다. 누리소토(SNS) 시대에 주문을 키오스크라는 곳에서 해야 한다니... 참 난감하다. 내가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젊은이들이 나를 ‘뭣“으로 생각하겠는가. (57TKC)
이런 분열된 사유의 방식이 여전히 우리 속에 존속한다는 것이고, 나는 구식이고 새로운 세대는 신식이라 한다. 대한독립선언과 기미 [조선]독립 선언은 역사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지속하고 있는가는 나의 화두와 같았지만, 나는 가학(家學)과 연동된 동양철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 도학(道學)이라는 학문을 뒷전으로 밀쳐두었다.
# 참조1 : 지나간 이야기: 대한독립선언 대 기미[조선]독립선어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
“우리 대한 민족 남매 및 온 세상 우방국의 동포들이여! 우리 대한 민족은 완전한 자주 독립과 신성한 평등 복리를 우리 자손들에게 대대로 전하기 위하여 지금 이민족이 자행하고 있는 전제정치의 학대와 압박에서 벗어나 대한 민주국으로 자립할 것을 선포하노라. ...”
이 독립선언서에는 김교헌(金敎獻)·김동삼(金東三)·조용은(趙鏞殷)·신규식(申圭植)·정재관(鄭在寬)·여준(呂準)·이범윤(李範允)·박은식(朴殷植)·박찬익(朴贊翼)·이시영(李始榮)·이상룡(李相龍)·윤세복(尹世復)·문창범(文昌範)·이동녕(李東寧)·신채호(申采浩)·허혁(許혁(초두밑爀)·이세영(李世永)·유동열(柳東說)·이광(李光)·안정근(安定根)·김좌진(金佐鎭)·김학만(金學滿)·이대위(李大爲)·손일민(孫一民)·최병학(崔炳學)·박용만(朴容萬)·임방(林방(삼수변 邦))·김규식(金奎植)·이승만(李承晩)·조욱(曺煜)·김약연(金躍淵)·이종탁(李鍾倬)·이동휘(李東輝)·한흥(韓興)·이탁(李沰)·황상규(黃尙奎)·이봉우(李奉雨)·박성태(朴性泰)·안창호(安昌浩) 등이 서명하였다.
(가나다순) 金教獻(김교헌) 金奎植(김규식) 金東三(김동삼) 金躍淵(김약연) 金佐鎭(김좌진) 金學萬(김학만) 鄭在寬(정재관) 趙鏞殷(조용은) 呂凖(여준) 柳東說(류동설) 李光(이광) 李大爲(이대위) 李東寧(이동녕) 李東輝(이동휘) 李範允(이범윤) 李奉雨(이봉우) 李相龍(이상용) 李世永(이세영) 李承晩(이승만) 李始榮(이시영) 李鍾倬(이종탁), 李沰(이탁) 文昌範(문창범) 朴性泰(박성태) 朴容萬(박용만) 朴殷植(박은식) 朴贊翊(박찬익) 孫一民(손일민), 申檉(신정) 申采浩(신채호) 安定根(안정근) 安昌浩(안창호) 任삼수변 邦(임방) 尹世復(윤세복) 曹煜(조욱) 崔炳學(최병학) 韓興(한흥) 許KC05671 (許혁(초두밑爀) 黃尙奎(황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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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는 1919년 2월에 만주 길림에서 발표된 독립선언서이다. 3·1 운동 당시 발표된 독립선언서와 구별하기 위해서 무오독립선언서(戊午獨立宣言書) 라고도 한다. 조소앙(趙素昻)이 작성하였고 당시 해외에서 활동 중이던 독립운동가 39명이 서명하였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이 최초로 선포한 독립선언서이며 2·8 독립선언과 3·1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 2·8 독립 선언(二·八獨立宣言)은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조선 유학생들이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사건이다.
- 3·1독립선언서(3·1獨立宣言書)는 조선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임을 선언한 문서로 1919년 3월 1일의 3·1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을 선언한 글이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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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독립선언은 기미독립선언에 앞서 발표된, 최초의 독립선언이다.
무오독립선언 연서자들은 의병활동을 지원하고 항일독립운동의 서막을 연 연해주 지역의 인사들을 중심으로 해외의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뜻을 모은 독립선언이다.
무오독립선언을 통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본에 대해 결사항전과 강력한 무장투쟁을 선언했다.
무오독립선언 연서자들 대부분이 독립운동사에서 지대한 업적을 남긴, 핵심적 독립운동가들이다.
무오독립선언 연서자들 대부분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주도하였다.
무오독립선언 연서자들 중에는 이탁(李沰) 외에는 변절자가 없다.
독립의 선언에 그치지 않고, 연서자들이 중심이 되어 노령에서 대한국민의회,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성의 한성임시정부 등의 망명정부를 수립하는, 구체적 행동으로 연결되었다는 의미가 있다.
연호를 '단군기원' 4252년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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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오독립선언 연서자 39인 일람
아래 순서: 이름, 출신지, 종교, 정치이념, 운동계열, 당시활동지역, 건국훈장훈격, 서훈년도,
◦김교헌(金敎獻, 1868-1923) 경기수원, 대종교, 공화주의, 북로, 만주, 독립장, 1977
◦김규식(金奎植, 1882-1950) 경기양주, -- , 공화주의, 북로군정서, 만주, 독립장, 1963.
◦김동삼(金東三, 1878-1937) 경북안동, 대종교, 공화주의, 서로, 임정, 만주, 대통령장, 1962
◦김약연(金躍淵, 1868-1942) 함북회령, 기독교, --, 북간도국민회, 만주, 독립장, 1977.
◦김좌진(金佐鎭, 1889-1930) 충남홍성, 대종교, 공화주의, 북로, 만주, 대한민국장, 1962
◦김학만(金學萬, 1884-1931) 함남단천, - , - , 연해주, 노령, 애국장, 2012
◦정재관(鄭在寬, 1880-1930) 황해황주, 기독교, 공화주의, 미주:노령, 미주, 애국장, 1990
◦조용은(趙鏞殷, 1887-1958)[조소앙] 경기파주, -, 공화주의, 임정, 만주, 대한민국장, 1988
◦여준 (呂準, 1862-1932), 경기용인, 대종교, 공화주의, 서로 만주, 독립장, 1968.
◦류동열(柳東說, 1879-1950), 평북박천, -, 공화주의, 임정, 만주, 대통령장, 1989.
◦이광(李光, 1879-1966), 충북청주, -, 공화주의, 만주:상해, 중국 본토, 독립장, 1963]
◦이대위(李大爲, 1878-1928), 평남평양, 기독교, 공화주의, 미주, 중국 본토, 독립장, 1995.
◦이동녕(李東寧, 1869-1940), 충남천원, 대종교, 공화주의, 서로:임정, 노령(러시아), 대통령장, 1962.
◦이동휘(李東輝, 1872-1935), 함남단천, 기독교, 공화주의, 임정, 노령(러시아), 대통령장, 1995.
◦이범윤(李範允, 1856-1940), 경기고양, -, 복벽주의, 북로, 만주, 대통령장, 1962.
◦이봉우(李鳳雨, 1873-1921), 경남동래, -, 공화주의, 간도, 만주, 독립장, 1980.
◦이상룡(李相龍, 1858-1932), 경북안동, 대종교, 공화주의, 서로:임정, 만주, 독립장, 1962.
◦이세영(李世永, 1869-1938), 충남청양, -, 복벽주의, 만주, 만주, 독립장, 1963.
◦이승만(李承晩, 1875-1965), 황해평산, 기독교, 공화주의, 미국:임정, 미주, 대한민국장, 1949.
◦이시영(李始榮, 1869-1953), 한성, -, 공화주의, 서로:임정, 만주, 대한민국장, 1949.
◦이종탁(李鍾倬, ?-?), 경상도, -, -, 서로, 만주, -, -, [가명 추정]
◦이탁(李沰, 1872-?), 평북정주, - , 공화주의, 서로, 만주, -, -, 본명:이용화(李溶華),변절◦◦문창범(文昌範, 1872-1938) 함북경원, -, 공산주의, 만주:임정, 노령(러시아), 대통령장, 1990.
◦박성태(朴性泰, 1873-?) -, 한성, 대종교, 공화주의, 북로, 만주, -, -,
◦박용만(朴容萬, 1881-1928), 강원철원, 기독교, 공화주의, 미주, 미주, 대통령장, 1995.
◦박은식(朴殷植, 1859-1925), 황해황주, -, 공화주의, 임정, 중국 본토, 대통령장, 1962.
◦박찬익(朴贊翊, 1884-1949), 경기파주, 대종교, 공화주의, 임정, 만주 독립장, 1963.
◦손일민(孫逸民, 1884-1940), 경남밀양, -, 공화주의, 임정, 만주, 애국장, 1990.
◦신정(申檉, 1879-1922), 경북고령, 대종교, 공화주의, 임정, 중국본토,. 대통령장, 1962 .[신규식(申圭植)]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충남대덕, -, 공화주의, 연해주, 계몽, 중국본토,대통령장,1962. ◦안정근(安定根, 1885-1949), 황해신천, 카톨릭, 공화주의, 중로:임정, 만주, 독립장, 1987.
◦안창호(安昌浩, 1878-1938), 평남강서, 기독교, 공화주의, 연해주:미주, 미주, 대한민국장,1962.
◦임방(任邦, ?-?), - , - , - , - , 만주, -, -, 가명 추정
◦윤세복(尹世復, 1881-1960), 경남밀양, 대종교, 공화주의, 대종교, 만주, 독립장, 1962. [윤세린(尹世麟)]◦조욱(曺煜, 1875-1948), 한성, 대종교, 공화주의, 임정, 만주, 대통령장, 1962. [조성환(曺成煥)]
◦최병학(崔炳學, ?-?), -, -, -, 간도, 만주, -, -, 참조: 재만 한인 대지주
◦한흥(韓興, 1888-1959), 함남신흥, -, 공화주의, 신간회, 국내, 독립장, 1968.
◦허혁(許爀, 1851-1939), 경북선산, -, -, 부민단, 만주, 애국장, 1991. [허겸(許蒹)]
◦황상규(黃尙奎, 1890-1941), 경남밀양, -, 공화주의, 북로: 임정, 만주, 독립장, 1963.
# 참여자로 추정되는 사람
◦나우(羅愚, 1884-?), 평남 용강, -, -, -, -, -, -. [나순응(羅順膺)]
◦정안립(鄭安立, 1873-1948), 충북진천, -, -, 간도, 만주, -, -. [정영택]
◦정신(鄭信, 1898-1931), 함남홍원, 대종교, -, 북로:임정, 만주, 독립장, 1963.
◦서상용(徐相庸, 1873-1961), 함북길주, -, -, 노령, 노령, 독립장, 1977.
◦서일(徐一, 1881-1921), 함북경원, 대종교, -, 노령, 노령, 독립장, 1962. [서기학(徐夔學)]
◦신팔균(申八均, 1882-1924), 충북진천, -, -, 서로, 만주, 독립장, 1963.[일명 신동천(申東川)]
(57TKC)
## *덧글
3.1 기미 [조선]독립 선언문, 서명자 33인에 대해,
참조: 불교 2인, 천도교 15인, 개신교 16인이다. 여기에 유학자들이 없다.
불교: 한용운(1879~1944), 충남 홍성; 백용성(1864~1940) 전북 장수.
천도교: 손병희(1861~1922), 충북 청주; 권동진(1861~1947) 충북 괴산; 오세창(1864~1953); 한성; 임예환(1865~1949), 평남 평양; 나인협(1872~1951), 평남 성천; 홍기조(1865~1938), 평남남포; 박준승(1866~1927), 전북 임실; 양한묵(1862~1919), 전남 해남; 권병덕(1867~1944), 충북 청주; 김완규(1876~1949), 한성; 나용환(1864~1936), 평남 성천; 이종훈(1856~1931), 경기 광주; 홍병기(1869~1949), 경기 여주; 이종일(1858~1925), 충남 태안; 최린(1878~1958), 함남 함흥.
개신교: 이승훈(1864~1930), 평북 정주; 박희도(1889~1952), 황해 해주; 이갑성(1889~1981), 경북 대구; 오화영(1880~1960), 황해 평산; 최성모(1874~1937), 황해 해주; 이필주(1869~1942), 한성; 김창준(1889~1959), 평남 강서; 신석구(1875~1950), 충북 청주; 박동완(1885~1941), 경기 포천, 신홍식(1872~1939); 양전백(1869~1933), 평북 선천; 이명룡(1872~1956), 평북 철산; 길선주(1869~1935), 평남 안주; 유여대(1878~1937), 평북 의주; 김병조(1877~1948), 평북 정주; 정춘수(1873~1953), 충북 청주.
### 이 명단을 보면 유학자들이 없다. 많은 유학자들은 일본의 지배에 반대하여 일찍이 만주로 떠났다. 그렇다고 남아 있는 이들이 없지 않았을 것인데...
내가 들은 이야기로, 3.1운동의 영남 유학자들의 서명을 받기 위해, 한용운인가 불교 쪽에서(아마도 개신교 사람은 내려올 수 없을 것이다.) 유학 쪽에 좌도의 남명 계열과 우도의 퇴계 계열을 한 이틀 전에 접촉했다고 한다. 그런데 각 유가 집안들의 좌장 유학자들은 혼자서 결정할 수 없고, 통문을 돌려야 하니 말미를 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기일이라는 이틀 내 통기가 오지 않았다고 서울의 명단을 그대로 발표했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의 만세운동이 지방으로 전파되었을 때 각 지역의 유학자들은 적극적으로 만세 운동을 했다고 한다(유학자들은 독립운동에서는 좌파들과도 함께했다). 이에 겁을 먹은 일본 관리와 순사들이 진압하려 하였다고 한다. 대구에 자재단(自制團)이 만들어지고 전국으로 파급되면서 안동에도 지부가 있었던 모양이다.
## 조선 시대 선비들이 목숨을 내놓고, 군주가 백성 없이 있을 수 없다고, 유가의 원리대로 주장하다가, 사약을 받기도 하고, 멸문지화를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무오사회 이래로 지방의 학자들은 나라가 위태롭거나 적의 침략이 있을 때, 앞장서고 또 의병을 일으켰다. 그 기개와 학문은 조선조가 외세에 휘둘릴 때도 여전히 지속되었다.
일본제국주의가 동학을 처벌한다는 명목으로 2천의 군대가 왔다고 하는데, 설에 의하면 2만 명이나 들어왔다고 한다. 그 이후로 을사년, 경술년을 거치면서 조선은 일제의 하부로 전락한다. 그 전락에 유학자들이 아니라, 나라를 팔아먹은 법률가들 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불교 천년 이후에 유교 오백년의 흐름이, 일본의 침략으로, 수면(표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일본의 수모를 받지 않으려는 이는 만주로 독립운동을 떠났고, 이 나라의 새로운 지식인은 일본이 소련함대를 무찔렀다고, 일본의 탈아입구(脫亞入歐)론에 휩쓸려 서구사상을 일본을 통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대립구도는 미제의 도래에서도 한반도의 삶의 양태를 이분화 시켰다. 학자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박선생님의 말씀은 지금도 여전하다. 사적 이익에 따라 공부하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고시의 세종류가 있다고 한다. 사법행정고시, 의대고시, 언론고시: 이들은 공부가 무엇인지 모른다. 간단하게 말하면 암산을 잘하면 수학을 잘한다고 착각하는 이들이며, 시험에서 5지택1을 잘하면 돈을 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여기에 널뛰는 문학 예술인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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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민족적 자의식이 솟아나는 시기에 세 종교의 선각자들이 일본에 저항하는 방법을 잘 찾지 못한 것 같다. 중국은 우리나라 3.1운동에 놀라서, 두 달 후 북경으로부터 시작하는 5.4운동이 일어났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 중국은 왜 유럽을 일본을 통해 배워야 하느냐 우리가 직접가서 배워야지 라는 생각이었다. 듀이도 러셀도 중국을 방문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5.4운동 이전에는 벩송의 저술 네 권을 일본의 번역을 보앗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1920년에 네 권을 자기 방식으로 번역했다. 그 중에서 한 가지, 벩송의 침투인식(intuition)을 일본은 직관으로 중국은 직각으로 번역했다. 내가 고민한다면, 직감으로 번역했을 것이다.
미국이 일차대전이 끝날 무렵인 1918년 말인가? 소수민족의 민족 자결주의 원칙을 선언했다고 한다. 중국은 세계사에 들어서면서, 맑스-레닌을 알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은 맑스를 소화하여 맑스-마오 사상을 만들고 1949년 소비에트 연방과 다른 중화인민 공화국을 만들었다. - 우리 만주의 독립운동가들은 얼마나 설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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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 대한 독립선언문에 서명했던 독립운동가는, 내가 보기에 적어도 일본을 통해 개화하는 방식을 거부했다. 일본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세숫대야에 절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성의 33인중에 불교계를 제외하고, 불교는 일제 말기까지 일본 불교와 통합되는데 반대했는데, 우리가 일본에게 불교를 전했지, 일본이 우리를 가르치려 들다니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천도교와 개신교는 구라파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끌려들어갔다. 독일이든 영미든 그 속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일본의 수입품을 가공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이것은 자의식의 축소이며 퇴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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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의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의 참여자들은 중국의 지식인들처럼 일본을 통해 세계사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선언서 참여자들의 몇을 빼고(존왕주의 복벽운동가를 제외하고) 거의 공통적인 생각은 새로운 나라는 공화국이 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 했던 것이다. 이 1919년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성립은 우리 지식인들 사이에 적잖이 논쟁이 되었을 것이다. 중국은 이런 논쟁과 내전을 거의 30여년을 거쳐서 5성홍기를 상징으로 만들었다. 우리 남쪽은 만주의 활동을 이야기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독립운동 마져 지우고자하는 제국주의 주구들이 설치고 있다. 레닌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인민에게 독려했다. 일본제국이 물러나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겨를 도 없이, 새로운 참주(식민지 총독)가 도래 했다.
들뢰즈가 참주가 도래하면 수많은 자들이 갑자기 들이 닥친다고 했다. 나로서 이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게르만 족의 이동을 말하지만 실증적 역사에서 게르만인들이 대거 이동한 것이 아니라 몇몇 족장이 살기 좋은 파리 평원으로 왔다고 아날학파들이 실증적으로 무덤을 조사 탐구하여 제시했다. 식민지든 이동이든, 들뢰즈는 한 사건이 도래한다고 말했어야 했다. 미국의 도래는 새로운 참주의 도래는 중요한 문장이 있다.
우선,
제1조
북위 38도 이남의 지역과 주민에 대한 모든 행정권은 당분간 본관[참주]의 권한 하에서 실행함.
제5조
군정기간 중 영어를 가지고 모든 목적에 사용하는 공용어로 함. 영어와 조선어 또는 일본어간에 해석 및 정의가 불명확하거나 또는 같지 않을 때는 영어를 기본으로 함.
[왜 세종이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라고 했겠는가? 나랏말씀(입말)이 영어와 다르다. 여기서 자아의식의 발현이 있다. (57T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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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도래한 것은 참주, 그리고 말씀의 지배이다. 이것은 그 다음에 모든 것이 참주와 더불어 그 말씀(parole)과 억압이 물밀 듯이 도래 한다. 우리의 말모이의 입말(langue)이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 입말을 버리고 말씀을 따르는 자들이 남한 사회의 상류를 차지하였으나, 그 상류는 참주의 주구(走狗)일 따름이다. 이제 미국이란 제국이 힘이 딸리니, 남한을 일본의 복속하게 두고자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 3.1운동의 찌꺼기들과 대구의 자재단 같은 이들과 함께 독도조차 넘겨주려고 한다.
보이는 것, 현상만이 학문이 아니다. 볼 수 없는 것(보이지 않는 것)이 말씀과 문자는 미국을 기준으로 하고, 삶의 터전에서 기술과 자본은 일본의 것으로 한다는 미국과 일본의 잠정적 합의가 없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 서양학문을 제대로 깊이 공부한 이들이 거의 없고, 이식하기에 바빴다. 이제는 이 테두리를 벗어날 때이다. 서양학문의 깊이에서 흥미 있는 것이 있다. 그들의 철학자도 제국 또는 유일신과 끊임없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투쟁에서 철학자가 잊지 않고 다루는 것은 아마도 네 가지 일 것이다. 참주와 투쟁, 왕권과 투쟁, 종교권과 투쟁에서 끊임없이 길어 올리는 것이 “볼 수 없는 것(l’invisible)”에 대한 이의 제기이다. 그리스의 퀴니코스와 초기 스토아학파가 제기한 것이다. 네 가지, 즉 공간, 시간, 이데아, 원자이다. 이것이 신앙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유의 원천, 자연의 기원을 찾아서 과정과 계열을 다루는 것이 서양 철학자의 몫이었다. 이제 우리의 실학과 더불어 실증적으로 탐구하는 세대의 것이다.
돈, 자본을 신으로 받드는 것은 제국이다. 이 제국이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 신이기도 한다. 철학자들은 신은 이데아도, 원자도, 공간도, 시간도 아니라, ‘형용할 수 없는 것(l’ineffable)’이라 한다. 이 용어는 설명할 수 없는, 표현할 수 없는, 규정할 수 없는, 정의할 수 없는 것과 다르다. 이 용어가 아직도 논의 되는 한, ‘제국’의 철학은 철학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철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57TKC)
(6:22, 57TKE)
* 첨가:
일제 강점기 대구의 자재단의 인물들이란, 현재에 일제 부역하는 홍준표와 김문수 정도 비슷하지(상사구조) 않을까?
삵괭이들이 다시 들어온다고?
서울과 전국에 부역자들, 밀정(간첩)같은 자들, 말하면 뭣하겠나? 김준형 의원이 도표를 그렸으니~~
참조.
- 마실가: {친일파가 아니라 부일파라니깐https://cafe.daum.net/masilga/PotV/468} 참조
[젊라47261환역사24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