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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회원작품
귀여운 녀석들
나 영 옥
떠나버린 빈 둥지를 보며 순간 허탈하면서도, 혹시나 미숙한 날개 짓하다
바닥으로 떨어지지나 않았을까 살피고는 모두 무사히 떠나갔으리라, 안심하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어제까지도 4마리가 눈을 감고 노란 주둥이를 입구 쪽으로 향하고서 어미가 오기를 기다렸었는데......
지난해 봄. 행여 모깃불이라도 피울 일이 있을까 싶어 쑥을 말려서 쌓아둔 더미 속에 무당새가 작은 주먹크기의 둥지를 틀었었다.
참새 만 한 몸 크기의 무당새는 암컷은 갈색으로 언뜻 참새 색깔과 비슷하고 수컷은 날개에 하얀 점이 몇 개있고 가슴털이 황토 빛으로 더 곱다.
울음소리는 삐- 삐- 하며 동네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이곳 텃새일까?
매일 한 개씩 일곱 개의 알을 낳았었다. 그 작은 둥지에서 어떻게 일곱 마리나 키울 것 인지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잘도 품고는 부화시켜 엄마 아빠 둘이서 부지런히 들랑날랑 하는걸 자주 지켜보며 신기하고 어여쁘기 그지없었다.
새끼들이 자꾸 커 가니 자연히 집이 비좁을 수밖에.
일곱 마리의 새끼는 어미가 잘도 가르쳤는지 저희들끼리 터득 한 것 인지 꼬리를 둥지 안쪽으로 모으고 머리는 동그랗게 둥지 가장자리로 향하고 있는 그 모양새가 너무도 예쁘고 귀여웠다.
어느 날 떠날 때가 가까웠던지 날기 연습이 시작되었다.
두 마리가 발육부진으로 몇 번씩 바닥에 떨어지기에 둥지에 넣어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었다. 첫 알을 낳기 시작해서 둥지를 떠나기 까지는 약 한달 가량 걸렸다.
아! 놈들에게 이뿐 집을 선물해야지-
가을에 목조주택 3동을 손수 만들어 두개는 멋스럽게 지붕에 빨간 칠까지 해서 보기 좋은, 말하자면 우리 집 인테리어에 어울릴 만한 곳에 붙여두고, 하나는 공간도 조금 넉넉하고 지붕 한쪽 면을 열고 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해마다 새를 위하여 새로운 쑥을 넣어주며 청소를 하고는, 새가 아늑하게 살 수 있는 곳에 달아 놓았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봄
연한 쑥을 말려 부드러운 잎만 골라 세 개의 집속에 푹신하게 깔아주고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펴보던 어느 날 드디어 새가 다녀간 흔적이 있다.
“오! 새야 찾아와서 고마워.” 난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새는 역시 아름다움 보다는 아늑한 곳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무당새는 둥지를 틀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알 낳기가 시작되었다.
금년에는 4개의 알을 낳았다. 불안감을 주지 않으려고 들여 다 보는 것도 많이 참으며 조심했다. 어느 날은 너무도 궁금해서 한번 들여다보니 제법 컸다. 작년보다 숫자가 적다보니 잘 얻어먹은 모양이다.
이제 둥지를 떠나 어디론가 자유롭고 즐겁게 날아다닐 새들을 생각하며 내년에 또 찾아오기를 기대 해야지.
참 귀여운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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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말을 받아 적다
문부자
맹위를 떨치던 여름이 어쩌면 그렇게 처연하게 한 풀 숙이고 마는지 아침저녁 선선하기 이를데 없다.
어디 숙이는 건 더위뿐이랴 계절이 깊어지기 전에 세상에 왔던 존재의 흔적을 남기려고 공중에 나는 새나 숲을 지키는 나무나 바빠지긴 마찬가지이다.
현관문을 열고 앉았는데 할미새인지 유난히 흰빛이 많은 작은 새가 휙 날아 들어온다. 뒤이어 같은 종류의 새 두어 마리가 건너 전깃줄에 앉아 다급한 소리를 내며 안절부절이다. 내 집에 들어온 새는 여름에 부화된 새끼 새이고 아직 나는데 익숙지 못해 길을 잘못 들은 새임이 분명하다. 새끼 새는 나를 보자 더욱 공포를 느껴서인지 집안 깊숙이 이 방 저 방 서툰 날개 짓을 하며 빗자루로 좇는 나와 한참 실랑이를 벌렸다. 집안을 북새통을 일으킨 후 간신히 빠져나가 어미 새와 함께 너른 창공으로 날아가는 새를 향해 어이없어 속으로 한참 웃었다. 어미의 다급한 울부짖음은 "왜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하고 그곳까지 들어갔느냐! 너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가슴 놀랐는 줄 아느냐" 고 나무라는 소리였으리라.
이맘때면 둥지를 떠나 이소(離巢) 하는 새들이 날개를 길들이고 기름진 먹이로 몸을 윤택하게 가꿔 어미 품을 떠나 제 갈 길을 준비하느라 하늘 길은 분주하다. 문명의 다중화로 새들도 이젠 사람과 공생하느라 우리 가까이에서 낳고 자란다.
몇 해전 양지말에 사는 박씨네 봉고차 엔진 밑 어딘가에서 새끼를 부화하느라 굴뚝새가 들락거리는 모습을 알아차린 차 주인이 그 일을 알고 난 후론 차를 세워두고 다른 차를 빌려 타고 다닌다고 했다. 이 일을 몰랐을 땐 일하는 곳에 가서 하루 종일 차를 세워두고 저녁에야 귀가를 하곤 했는데 그동안 애태웠을 어미 새의 쓰린 마음을 생각하니 도저히 알고는 못 할 노릇이라는 이야기였다. 그야 말로 새의 머리로 집터를 잡아도 한참 잘못 잡은 둥지 였다.
우리 집 높은 벽에 뚫린 화장실 가스 배출기 구멍에서도 같은 새가 새끼를 낳아 길러 그렇게 떠나가 버렸다. 새들도 강변의 숲을 믿을 수 없어 사람의 곁으로 오는가 보다. 예전엔 오랜 자연의 운행으로 상전벽해의 변화가 있었지만 요즈음은 산간의 숲마저도 수시로 개발 변화되어 가슴에 고이 품었던 새끼들을 가끔 잃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떠나기 전 내집 마당가에서 며칠을 재잘거리던 새의 모습은 아마도 내게 하는 인사였으리라. "집을 빌려주어 새끼 잘 낳아 기르고 같이 떠나니 고마울 뿐이라고"...
어떤 나무사진 작가는 나무들도 말을 한다고 들은 것처럼 전한다. 혼자 있는 나무는 외롭다 말하고 여름 산에선 왁자지껄 나무들이 떠드느라 입이 되는 잎에 침이 흐르다 가을이 되면 낯이 붉어지며 침묵할 준비로 서로가 돌아선다는 것이다.
그들도 왜 말이 없겠는가, 즐거울 땐 웃고 떠들고 외로울 땐 눈물도 흘리리라. 골짜기에서 흐르는 철마다 바뀌는 물소리며 채근하는 바람소리를 듣고 몸을 불리는 나무들이 어찌 벙어리이겠는가, 다만 우리와 사는 세상이 다르니 못 듣고 못 이해 할 뿐이겠지.
우리 마을에서도 차를 타고 한참을 돌아 들어가면 서흥리 뒷골 골짜기엔 질 좋은 단수가 흐른다. 내 집에선 좀 거리가 멀어 불편하긴 하지만 휘둘어 구비진 깊은 산골에 들어서면 숲이 깊어 나무냄새가 폐부 깊숙이 얼얼하다. 그곳의 물맛은 오죽 좋으랴.
한참 여름이 깊어 초록의 잎들이 윤기로 풍만한 곳을 들어서면 나무들의 웃음소리가 진하다. 어깨를 사려 깊게 기댄 잎들의 모양이 형형색색 층층이다. 초록도 서로 다른 녹색이지만 그 정기의 맹렬함이 쟁쟁 울리는 듯 하다. 그 중에 흰 꽃잎을 뒤집어쓴 나무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저 큰 나무를 뒤덮은 꽃은 무슨 꽃일까 싶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나뭇잎 반쪽이 한 쪽은 짙은 초록이고 한 쪽은 흰 백색이다. 아기 손바닥만 한 둥근 잎이 서로의 색깔을 튕겨 내고 빨아드리며 싱싱함을 출렁이는 품이 장관이다.
그 이름하여 개다래나무이다. 혹 나무에 든 병이 아닐까 하여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보고는 나무의 지혜에 놀라웠다. 개다래 잎은 분명히 온 잎이 초록으로 돋아나 자라지만 나무에 비해 초라하고 작게 꽃이 피기 시작하면 꽃보다 큰 잎들은 반쪽이 서서히 흰 빛으로 변한다. 희게 바뀐 나뭇잎은 먼 곳에서 보면 마치 커다란 꽃잎으로 보여 곤충들이 잎의 위장에 속아 개다래에게다가 간다. 그러면 꽃은 향기를 내어 자신의 꽃 잎 안으로 곤충을 끌어 들여 방사한다.
꽃가루받이가 끝나면 꽃은 지고 흰색 잎은 연보라빛을 거쳐 서서히 녹색으로 되돌아가며 휴지기를 맞는 것이다. 이 생존의 순환을 끝까지 지켜본 나는 얼마나 경이로운 침묵의 대화인가 싶어 "너 참 대단하다" 하며 대답 없는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말없는 변화가 어찌 개다래나무뿐이겠는가 산에 빼곡이 들어찬 나무들 각자가 그렇게 소리 없는 애진 말을 나누며 해살이를 엮어 가는 풍화작용에 까닭 모를 슬픔이 숨어있는 것이다.
때로는 새의 소리 바람의 소리 나무의 소리와 말을 나누고 싶다. 어느 것이 고통이며 어느 것이 환희인지. 아직 내가 버리지 못한 것이 많은 사람의 마음인지라 그들이 무어라 말하는지 나에게 미치지 못한다.
얼마를 버리고 버려서 가벼워져야 그 생명의 미소한 부분이나마 들을 수 있을까?
어느 날은 나무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고 또 어떤 날은 새의 소리가 더 가까이 들리는 듯 하다.
새가 날아가며 한마디한다. "사람인 주제에 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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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도 리필 되나요?
문부자
물색 고운 단풍을 바라 볼 수 없는 건 순전히 나이 탓이다.
나의 가을은 언제부터 였는지 불타던 잎도 옷 벗은지 오래이다. 더 깊은 심연으로의 뚫린 가슴은 걸림없는 바람만 하냥 들락 거릴뿐 쓸데없는 상념의 자리만 더욱 넓혀간다.
오늘도 무겁디 무거운 생각 몇 점 지는 노을에 걸려 오도 가도 않고 내 몸은 어느새 고요에 들어 싯귀(詩句) 처럼 가버린 세월만 읊는다.
그 많던 내가 잃어버린 세월은 어디서 날보고 웃고 있을지 울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단풍이 한계령 정상에서 내려 달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미처 여미지 못한 마음은 점차 초조해지기 시작 한다. 한 여름 햇볕이 무기력해지기 무섭게 어떤 감각으로 느꼈음 인지 화단옆 풀숲에선 성량 좋은 귀뚜라미가 가을가을 외쳐대면 계절병의 증세는 부스럼처럼 자리를 잡는 것도 더해 간다.
평소 늘어질대로 늘어진 내 일상은 풀벌레조차 목청을 높히고 푸른 잎들이 붉어진다는 것에 대한 느닷없는 확인으로 가슴 속으로 부는 바람이 갈기를 세운다. 이맘때는 공연히 서성거리며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그리곤 석잠에드는 누에고치처럼 마음의 집을 짓기 시작한다. 시선을 멀리 둘수록 가슴이 더욱 허 해지는 그 것 조차도 안으로 거두어 드려야 하는 때가 되는 것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물색든
잎들을 오래오래 바라 볼 수 만 있다면 오죽 좋으랴, 지는 노을은 이렇게 힘차고 아름다운 것이라며...
어느 한 날 가을비 내리고 바람이 불면 그많은 나무와 숲들이 한꺼번에 옷을 벗어 버린다. 바람이 벗겼을까 비였을까, 누가 숲속에서 그들을 데려 갔을까.
가득해서 울창하고 씩씩하던 산들이 메마른 가슴팍을 내보이며 초라하게 주저 앉는다. 가릴것도 없는 내 모습처럼 남루하게 서서...
나는 이럴땐 친구에게 전화 를 한다. " 어쩜 한 마디 예고의 눈빛도 없이 순식간에 잎을 벗어버린 나무들이, 산들이, 섭섭하고 무정하다. "고 " 왜 말이 없었겠니, 잎에 물 들이며, 바람에 바래가며, 비오면 눈물로, 새벽 찬서리에 떨어가며 가는 길이 외롭다고 수도 없이 보낸 눈빛을 자네는 바쁘다는 핑게로 보아주지 않았을 뿐이라고",그 말도 역시 무의미 한것이다.
다 어디로 갔을까? 무한대로 용출될 것 만 같던 생명의 기는 어디로 간걸까, 자연도 시간의 변화 앞에서 무릅 꿇은 것일까.
연말이 되어 시 낭송회 겸 작품동인문학집 출판기념회를 했다. 모두 젊은 회원들은 자태도 아름답고 목소리 또 한 낭낭하다. 시어들의 감정 이입이 격정과 부드러움의 조화로 작품이 돋보인다. 날아 갈듯 차려입은 옷매무새도 산듯하다.
때로는 여사님처럼 바쁘게 활동하며 저무러 가고 싶다는 말에 나이에 초연한 척 한다. 늙음을 맹렬히 부정하고 싶어 겉치레에 더욱 신경을 쓰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해가는 모습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세월이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을 때는 나이를 의식하는 중년 이후 부터였다. 나이와 세월의 속도감은 반비례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요지음은 어질머리가 증폭되어 가끔 현기증이 인다. 결국 익숙한것과결별하며 맞는 노년의 불안함은 빈 쭉정이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거울속에 보이는 받아 드릴수밖에 없는 낮선 내가 거기 힘없이 보일 뿐이다.
가끔 내가 한 십 년만 되돌린다면 무엇을 더할까 생각해 본다. 몇 해 전 유명을 달리한 재벌 총수처럼 내 재산 반을 주고 한 십 년만 살 수 있다면 할 만큼의 가진것도 없는 언감생심의 말이나 부질없는 생각 한 번 가져 본다. 누구에게나 너무나 공평한 세월, 재벌 총수나 거리의 사람이나 인간으로서의 유한 한 세월은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내 젊어서 나이든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구차해 보였다. 나이든 사람은
무슨 재미로 살까? 웃을 일도 없고 마지못해 살아 가고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내게있을 나이듦에 대해 전혀 예감하고 싶지 않았나 한다. 그런 나이가 바로 지금이다. 그러나 나이 깊어 갈수록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아쉽고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해 붙잡고 싶다.
아직 배울 일도 많고 갈곳도 많다. 더 부지런하지 못하고 낭비로 소모한 지난 날이 아쉽다.
나이듦이란 개인적인 일이며 동시에 사회적인 일이기도 하다. 급속도로 늘어가는 노인 인구, 안일하게 나이 타령이나 하며 살아 갈 일은 아니다. 최소한의 사람답게 살기 위한 노력은 젊어서부터 계획있게 이루어 졌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노인 인구가 급증하는데 한 몫 하지않았나 하는 불안감도 내심 떨치지 못한다. 어느 누구인들 후회없는 삶이었다고 말 할 수 있을까마는 정중지와(井中之蛙)로 눈앞에 보이는 일에만 급급하여 미래를 설계하지 못한 회한은 어쩌지 못한다.
서두른 결혼에 못다한 학문을 완성하여 전문인으로 한 시대를 살고 싶어 했다. 그런 바램을 늦게나마 성취하려고 이것 저것 관심을 키우다 어느것 하나 완성의 기미도 보질 못하고 벌써 내려 달려 가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조금이라 말하는 남은 날들이 금쪽같다.
자꾸 슬픈 눈으로 뒤돌아 보며 떠난 세월, 어디선가 바람 되어 우는 매듭달의 날이 빠르게 가고있다.
늘 차고 넘칠것 같던 젊음의 나이도 가버린지 오래이고 세월의 퇴적층엔 결결의 무늬 마다 아름다운 추억만 남아 허전하다.
부러진 가지끝에 메어달린 마지막 잎새로 떨고 있는 이 깊은 가을 같은 내게, 누가 세월을 리필해 줄 수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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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기저귀
안태희
거실에 햇살이 눈부시다.
셋째 딸이 낳은 손녀, ‘햇살’이의 기저귀가 건조대에서 뽀얗게 마르고 있다. 마음이 환해진다. 젖먹이 샅에 붙어 배설물을 받아내는 것이어서 부드럽고 정결해야한다. 빨고, 삶고, 말려서 개는 일까지 하루가 걸린다. 요즘에는 1회용 기저귀가 있어 편리하지만, 우리 집에선 그것을 쓰지 않는다. 보송보송한 기저귀를 개다보니 문득 옛일이 생각난다.
‘햇살’이의 큰 이모인 난蘭이를 기를 때다. 어렵게 혼인해서 세 달도 넘지 못하고 남편은 병력 미필자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교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기 전, 땅이 꺼지는 듯 내려앉은 가슴. 서로의 힘이 되어 왔던 교직의 길이었는데 반쪽이 된 나는 운명으로 돌렸다.
그 와중에도 집안의 맏며느리라는 도리 때문 더 힘겹게 살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3년 만에 첫 아기를 임신했다. 초산이고 철이 없었던 때라 해산 일을 잘못 알고 있었다. 출산 휴가 1개월을 아기도 낳기 전에 다 썼으니 일이 참으로 당혹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어쩌랴, 휴가가 끝났으니 출근할 수밖에 출근 5일 만에 병원도 없는 시골 남의 집에서 첫 딸 난이를 그가 받아냈다.
아기를 기르는 일이 실로 난감했다. 해서 학교 가까운 곳에서 수유할 수 있도록 근무지를 바꾸었으면 했다. 그런 사정 이야기를 하기위해 교육청에 갔던 날이다. 생각대로 수유할 시간에 돌아오지 못하고 세 시간이나 지났다. 가슴에서 주체 못하게 흘러나오는 것이 블라우스를 흠뻑 적신다. 난이의 울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려 안절부절 못했다. 버스 기다릴 겨를도 없이 하이힐을 벗어 들고 이십 리가 넘는 자갈길을 뛰기 시작 한다. 오르고 내리는 고개가 셋이나 된다. 가끔 군용차들이 지나가고, 사람이 저편에서 올 때면 구두를 다시 신고 태연한 척 걷는다. 남의 시선이 부끄럽고 무서워서가 아니다. 교사라는 체면과 자긍심을 차마 바닥에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벗어나면 다시 구두를 벗어들고 숨이 차도록 달린다. 발바닥에 불이 난 듯 화끈거린다.
둘째 고갯마루에 오르니 맞은편 고갯마루가 빤히 건너다보인다. 맞은 편 산마루에 한 달도 안 된 난이를 안고 있는 아빠가 보인다. 젖을 기다리다 울다 지친 모습이 아른거리고,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1초가 아쉽다. 젖가슴을 떼어 보낼 수만 있다면! 하느님, 이렇게 다급할 때 쓰라고 한번 쓸 날개라도 달아주셨으면... , 신짝을 흔들며 뛰어도, 뛰어도, 아래로 휘어져 내린 길은 멀기만 하다.
달개비 꽃 빛 닮은 하늘이 고갯마루로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있다. 흰 구름자락처럼 너울거린다. 그가 흔드는 기저귀의 춤사위가 결승선을 재촉하듯 숨이 차고 가슴이 찢어진다. 난蘭이가 세상에 나와 처음 겪는 배 고품, 기다림 그리고 눈물이다. 그날 뜨겁게 달아오르던 몸과 마음이 8월의 태양도 나를 따라 잡지는 못했으리. 그때 깃발이 되어 날리던 기저귀,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새 학기가 되어 희망했던 곳으로 발령을 받아 학교 앞에다 방을 마련했다. 교실 창문에서 바라다보면 바로 난蘭이가 있는 방이 보인다. 아침 첫 출근을 하는 날이다. 난蘭이와 헤어져야 한다. 밤을 지새운 가슴. 엄마의 하루 소망을 난蘭이의 얼굴 여기저기에다 비빈다. 캥거루처럼 육아낭이라도 있으면,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닐 텐데, 미물마도 못한 가슴이 미안하고 애처로워 촛농처럼 녹아내린다. 하지만 다른 도리가 없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출근 시간 앞에, 울거나 보채면 기저귀기를 방문 앞 빨랫줄에 걸자고 그와 약속을 한다. 방문을 닫는다. ‘쩡’, 가슴에서 얼음장 갈라지는 소리. 출근길, 아래로 떨어뜨린 시선에 흙먼지는 왕모래 알이다.
교실로 들어서서 창밖을 내다본다. 난이가 그리운 것은 엄마의 작은 가슴일 텐데, 내 가슴은 텅 빈 가슴이다. ‘사는 것이 무엇이기에... .’ 마음은 수도 없이 달려가지만 문밖에서 멈추는 시선. 그래!, 잘 놀다 아빠 품에 안겨 잠 잘 자거라.
그러던 어느 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당 빨래 줄에 기저귀가 나부낀다. 잘 놀지 않고 심하게 보챈다는 신호다. 참을 수 없이 얼마나 보채고 있으면! 절박하다. 뼈가 녹는다. 하루 바람이 물거품이다. 하지만, 육십 여명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앞에 한 아기의 엄마임을 어쩔 수 없이 접는다. 오늘 또 난蘭이에게 죄를 졌다. 그와 나의 통신 메시지였던 빨랫줄의 슬픈 기저귀.
그뿐인가! 겨울철이면 물이 귀한 마을이다. 보통 우마차로 먼 곳에서 물을 길러다 먹지만 다행하게도 작은 산 중턱에 삼태기만한 샘물이 있다. 퇴근하여 올라가 보면 샘은 저녁거리 없는 뒤주 바닥 같다. 해서 우리 차례는 어느 때나 마을 사람들이 곤히 잠든 한 밤중이다. 눈 날리는 밤, 칼바람이 무섭게 몸을 휘감으며 목덜미를 치는 밤. 그런 밤이 아니면, 고요한 샘물에 달이 내려와 오들오들 떨고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밤이다. 달이 애처로워 선뜻 우물 속에 바가지를 넣을 수 없지만, 별들 총총한 하늘에서 자다 깨어난 난蘭이의 울음소리가 휘파람처럼 지나간다. 별똥별이 산 너머로 떨어진다. 허겁지겁 깨어진 달을 양동이에 퍼 담아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마냥 허둥지둥 내려온다. 등 뒤에서 목덜미를 잡는 듯한 무서움이 엄습해온다. 집으로 들면 빈방에 혼자 잠들어 있는 난蘭이가 가엽고 측은하다. 그리고, 고맙다.
그와 둘이서 별빛 달빛을 담아온 물에 기저귀를 비벼댄다. 아리디 아린 손끝에서 기저귀가 물 호사를 하고 하얗게 웃던 기저귀.
돌이켜보면 일인 사역(교사, 며느리, 아내, 엄마)의 몫을 지키며 살았던 삶. 우선 식구가 먹고 살아야하는 의무감도 있었지만, 엄마를 닮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자식에 대한 집념의 몸부림이었다. 아니, 솔개에 대응하는 새끼품은 어미닭의 괴력怪力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인생은 고행으로 시작되는 것. 참아내는 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진정한 나의 삶이요, 의무요, 업業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건조대에 널려있는 손녀의 기저귀가 새삼 고맙다. 묻어두고 살았던, 44년 전 큰딸 난蘭이의 빛바랜 기저귀들이 환한 기저귀속에서 안개처럼 피어나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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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짓 없는 이별
박 송 남
잘 가라는 손짓한번 주지 못하고 떠나보냈다. 그와의 만남은 지금도 설렘으로 가슴에 남아있다.
제법 쌀쌀한 초겨울 아침, 한쪽 발은 군화를 신고 다른 한쪽은 운동화를 신은 군인 아저씨가 도로 한 복판에 납작 엎드려있다. 차량의 하체를 올려다보고 있는 모양새가 어디가 고장났나보다. 지나가는 사람은 그렇게들 생각했을 것이다. 그 친구와 함께한 첫 출근길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멀리 타국에라도 출정하는 남편을 배웅하듯 밖에까지 쫒아 나온 아내와 아이들에게 여유만만하게 거수경례를 하고 출발을 했다. 무난하게 사거리를 지나 외곽도로에 접어들 때 쯤 이였다. 차 밑에서 투투퉁 하고 요란한 소리가 났다. 차를 세우고 고장여부를 확인하기위해 엎드린 것이다. 아무리 살펴봐도 부속 뭉치가 떨어진 흔적도 없고 멀쩡하다. 초보 실력으로 고장 진단은 불가능하다. 고장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출발했지만 또 소리가 났다. 그때마다 엎드렸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부대에 도착했다. 얼굴과 손등이 벌겋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부대원들의 반응이 궁금한 것이다. 그때 부대원들로부터 무슨 말을 기대하고 있었을까! 지난일이지만 조금은 유치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 분리선 대신에 철제 야광 판을 박아놓은 그 위를 달리면 소리가 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몰랐던 왕초보 시절의 추억이자 신고식이었다.
3일쯤 지나서 운전에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을 때였다. 야간적응 훈련이 필요했다. 아내를 옆자리에 태우고 안전벨트를 맺다. 출발 전 안전점검은 군인으로써 기본이다. 안전벨트를 손으로 잡아당겨 확인해 보았다. 벨트가 술술 풀려나오는 것이다. 어! 이거 고장이네! 아내 것도 당겨 보았다. 그것도 고장이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안전벨트는 생명줄이라고 했는데! 군인정신으로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국산품이 외면당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애국심 때문에 더는 탓할 수가 없었다. 기분은 상했어도 야간실습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시내를 빠져나가 외곽도로의 시속 40km 주행이다. 성질 급한 뒤차가 옆으로 바싹 부쳐 추월해 나가면서 겁을 팍 준다.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았다. 이게 무슨 조화야? 순간 안전벨트가 정상 작동한 것이다. 고장이 아니었다. 차를 옆으로 세우고 벨트를 당겨보았다. 또, 안 된다. 됐다 안됐다 한다. 비정상 작동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운행을 계속했다. 차량이 뜸한 한적한 길에서 60Km로 속도를 높였다. 이번에는 브레이크를 점검할 목적으로, 아내에게 꼭 잡으라 당부해놓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아주 양호하게 작동했다. 브레이크에 신경을 쓰다 보니 안전벨트가 정상 작동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언짢은 기분이 많이 풀렸다. 잠시 후에 다시 한 번 밟아보았다. 역시 양호하다. 거기다가 안전벨트까지 작동양호! 나는 기분 좋은 어조로 아내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마치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안전벨트는 발로 브레이크를 팍, 밟았을 때만 작동하는 거라고….
아내와 나는 시간이 한참지난 후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안전벨트의 작동 원리를 알게 되었다.
어느덧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집에까지 배송 하겠다는 것을 굳이 사양하고 인수지를 홍천으로 정했다. 포니2보다 한 단계 높은 르망 1500CC 새 차를 구입한 것이다. 44번 국도를 달려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인계자로부터 간단한 조작법을 배우고 출발했다. 포니와 르망의 차이는 대단했다. 한마디로 차는 너무 크고 도로는 좁아보였다. 굿이 비교해서 말하라면 아파트 15평과 32평의 차이다. 그 후로 나는 4번에 걸쳐 조금씩 좋은 차로 바꾸어 나갔다. 마치 삶의 질을 향상시켜 나가는 과정과도 같이 한 단계씩 높여 나갔다. 돌이켜 보면 배기량 2000CC 까지 오는데 무려 20년이 넘게 걸렸다. 병아리 종종 걸음이라 작은 봇도랑 하나 건너뛰지 못한 고지식한 삶의 결과일 것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한 달에 몇 백 만원하는 과외도 없었고, 아파트 한 평에 3천 만 원이나 하는 집도 없었을 때였다. 가난을 피부로 느끼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얕은 개울가 한 복판에 차를 세우고 온 가족이 매달려 바가지로 물을 퍼붓고 희희낙락 떠들며 세차를 해도 환경오염을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더 즐겁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 살면서 가난했던 시절이 지금보다 행복했었다고 말하면 이율배반적일지 모르지만, 즐거움이 곧 행복이기 때문이다.
현실에 만족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하는 것은, 삶의 질이 낮아서가 아니라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몫을 남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아파트 투기지역에서 하룻밤 줄섰다가 몇 천만 원씩 프리미엄을 손쉽게 챙기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추녀 끝에 떨어지는 물은 항상 제자리에 떨어진다."는 속담은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를 말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렇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론적으로, 사회와 사고방식 둘 다 문제인 것 같다.
초등학교시절 미국은 인구 4명중 1명꼴로 차를 소유하고 있다고 배웠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꿈같은 얘기지만 지금 우리는 국민 3명중에 1명꼴로 차를 가지고 있다. 그간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낸 우리가 받은 성적표다. 사회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변했다. 셀프세차장의 모습에서도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연령층은 30-40대에, 차 종도 다양 하다. 오히려 승용차 보다 훨씬 더 많다. RV(recreational vehicle) 차량은 여행하기에 편리한 다목적 차량을 말한다. 이와 같은 차량의 형태는 단순한 교통수단의 범위를 벗어나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의 작은 공간이며, 생활필수품이 된 것이다. 며칠 전 내린 빗길 운행에 엉망이 된 차를 세차해놓고, 물기가 가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지난날의 기억하나가 떠오른다.
어느 날 배터리 집에서 친구를 만났다. 얼굴이 죽상이 되어있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봤더니, 자기 차를 손으로 가리킨다. 차가 마치 군용트럭처럼 완전 무광택이다. 퇴근해서 집에 와보니 유난히 깔 끔을 떠는 아내가, 차가 기름때로 찌들었다면서 양동이에 하이타이를 풀어 수세미로 박박 문질렀다는 것이다. 그때 친구의 표정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깔 끔도 큰 병이네, 속으로 중얼 댓 지만 대놓고 웃지는 못했다. 지금 같으면 배꼽을 잡고 웃었을 텐데 웃지 못한 것이 아쉽다.
어느새 옆으로 비껴선 해가 먼 산 은령(銀嶺)을 아름답게 비춘다.
봄과 겨울의 동시 연출이다. 겨울의 끝자락이 아니라 이미 봄은 시작되어 있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던가!
차도 세월 따라 나이를 먹는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 인생의 동반자였다. 작열하는 태양에 녹아내리는 아스팔트의 열기를 마시고 헉헉대며 함께 달린 긴 세월이었다. 이제 그와 내가 이별해야할 시간이 왔다. 폐차장에 실려 온 그가, 이것저것 쓸 만한 부속 다 빼어주고 껍데기만 남는다. 장기기증을 하는 인간으로부터 숭고한 사랑의 실천을 보고 배운 것인가! 인간관계에서나 있을법한 슬픈 이별과도 같이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한낱 기계에 불과하지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함께한 사이였다.
잠시 후, 살아온 삶의 무게만큼이나 힘겹게 저울의 추를 들어 올린다. 그는 밤낮없이 핸들을 잡았던 내 손바닥위에 고철 값으로 15만원을 유산으로 넘겨주고 떠난다. 트럭에 실려 제철소로 떠나는 그를, 용광로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 불의 심판인가! 다시 태어나기 위한 아픔인가!
자꾸만 생각이 얽혀버린다.
생물과 무생물의 사이에도 인연과 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