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에서 웃음으로 새 희망을 품다
한국한센복지협회 연구원 간호과
선임간호사 이 관 희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싸늘한 바람이 불고, 한 낮의 맑은 향기는 곳곳에서 완연한 가을을 느끼게 한다. 해마다 가을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가슴앓이에 진이 빠져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우울 모드에서 헤매던 내가 웃음으로 인해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되었고......그렇게 좋은 웃음을 내 주위에 조금씩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물론 아주 작은 실천을 통해 얼마나 큰 행복이
되돌아오는지 전혀 모르고 시작한 일이다.
작년 이맘때 평생 막내딸밖에 모르시던(?) 친정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놓고...... 스스로 죄책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 하고
요양원에 대한 편견 때문에 참 많이 울었었다.
집에서 모신다고 해도 딱히 잘 해드리지도 못 하고, 명색 20년이 넘게 병원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간호사라는 딸이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퇴근해서 목욕시키고 산책을 시켜드리는 것 밖에 없었으면서도 뭐가 그리 서러운지 대책 없이 울음이
나오고 또 나왔었다.
내 나이 서른여덟에 결혼이라는 걸 했다. 서툴기만 한 주부로서의 생활이 안타깝고 걱정이 되셨는지 큰 오빠의 만류를 뿌리치고 우리 집으로 오신 엄마가 하신 첫마디는 꼭 네 손에서 죽게 해달라는 주문이셨다. 당신의 연세가 여든이 다 되셨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살림을 하기에는 무리이지만, 남은여생을 막내딸인 나를 도와주면서 우리와 함께 지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이셨다. 다행히 남편도 흔쾌히 어머니만 좋다면 대 환영이라며 좋아해 주었다. 그 연세에도 워낙 깔끔하고 부지런하신 분이라 살림을 얼마나 야무지게 잘 하시는지, 우리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특히 딸아이에게 풍선을 불어서 색깔을 알게 하고, 덧셈과 뺄셈을 가르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나뭇잎을 주어다 이름을 가르치고, 노트에 써보게 하는 등...... 어디서 그런 지혜가 나오는지, 실제 생활이
바로 공부여서 따로 학습지를 안 시켜도 될 정도였다.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엄마는 한글도 겨우 익힌, 그것도 혼자서 간판을 보고 땅에 나뭇가지로 똑같은 글씨를 써보면서 스스로 익혔다고 들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른 순박한 시골 할머니인줄만 알았는데...... 얼마나 현명하고 슬기로운지 엄마에 대한 환상이 하나, 둘씩 무너지고, 새롭게 재조명 되어서 기뻤다. 그동안 내 엄마를 부끄러워 한 내 자신이 도리어 부끄러워졌다. 마흔이 넘어서야 나를 낳아주신 엄마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된 점이 죄송했지만,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남은 날 동안 내 엄마를 많이 사랑하고, 존경하리라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흔을 눈앞에 둔 내 엄마는 이제야 철이 든, 못난 딸의 사랑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기억력이 점점 흐려지고, 급기야는 자신이 누군지 자꾸만 잊어가고 있었다. 평생 삶에서 익힌 모든 것을 순서 없이 다 잃어버리고, 심지어는 자신의 분신인 자식들까지도 몰라보게 된 것이다. 주위에서 치매 환자나 가족들의 고통을 많이 접하면서도 남의 일처럼 멀게만 생각했었는데...... 막상 내 엄마가 치매라고 진단을 받고 나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병이 점점 나빠지면서 치매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질환인지 뼈저리게 깨닫고 후회했지만 소용없었다.
대책 없이 울고만 있던 나에게 뜻밖에 찾아온 3일간의 웃음 치료 연수는 내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기 시작했고....
친절하게도 그 웃음은 유난히 낯가림이 심해 울타리 밖에서 기웃거리던 어쭙잖은 나를 요리조리 안내하기 시작했다.
웃음의 위력에 풍덩 빠져서 거침없이 수시 때때로 장소, 대상 구별 못 하고 박장대소를 날려 주위를 놀라게 했음은 물론이고,
어둡기만 하던 나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하루하루가 고맙고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나로 인하여 내 가족이 또한 내 이웃이 덩달아 환해지기 시작했고, 언제 어디서나 웃음꽃이 피었다.
노래를 하라고 하면 차라리 춤을 추겠다고 우기던 내가 남 앞에서 노래를 하게 되고, 레크레이션을 진행하면서 웃음치료를
하다니.....스스로 놀라고 신기할 뿐 이었다. 내 자신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에너지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마구 뿜어져 나왔다.
이렇게 좋은 웃음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너무나 속상하고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더 열심히 웃음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딸이랑 둘이서 간지럼을 태우며 하하~호호~ 웃기 시작했는데, 이제 우리 병원의 입원환자들이 나만 보면 한바탕 웃어야지요! 하면서 먼저 웃음치료를 청하게 되었다.
면회를 한번이라도 더 자주 가려고 시작한 수원시립노인전문요양원에서의 웃음치료 봉사가 어느덧 1년이 되었다.
내 엄마만큼은 언제나 수퍼우먼이기를 바랜 어리석고 못 난 딸이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웃음을 주고, 웃게 하는
일이였다. 다행히 잘 따라서 웃으셨고, 요양원에서는 하하 웃음 할머니로 통한다. 물론 지금은 상태가 많이 안 좋지만, 그래도
아직은 손뼉만 치면 자연스럽게 박수를 치며 웃으신다.
내 이웃부터 챙겨보자고 시작한 의왕시노인복지회관에서의 웃음치료 봉사도 12월이면 1년이 된다.
어쩌면 평생 짊어지고 갈 죄송스러움을 조금이나마 덜기위한 내 자신의 이기심인지도 모르지만......비록 엄마가 내 사랑을 모르고 떠날지라도 웃으면서 안녕을 하고 싶다. 부디 엄마랑 영원히 이별을 고하게 될 그 날! 절대로 울지 않고 웃을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치매에 걸려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그 들에게 마지막 생을 인간답게 마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고 시간을 나누고 있다. 예쁘게 익어가는 가을처럼 내 웃음도 오늘따라 더 풍성하고 향기롭다.
첫댓글 공감이 가는 글 이네요. 하루 하루 행복 하게 살아가시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