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음악 : Hilary Hahn - Mozart - Violin Concerto No 4 in D major, K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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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샘의 시창작 강의 (38)강: 시의 행과 연
김연아 선수가 아쉽게도 은매달을 획득함으로써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 언론, 국민들에게 편파판정 논란으로 인해 ‘더러운 올림픽’으로 낙인 찍히게 되었다. 피겨, 얼음의 여왕에서 여신으로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김연아 선수의 의연함을 보면서 또,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의 문제를 보면서 한국빙상연맹에 대해서도 참으로 착찹함을 금할 길이 없다. 세상은 더럽고 올림픽 정신은 죽었어도 정의와 진실의 별은 빛나게 마련이다. 매우 가슴이 답답하지만 러시아의 소치 올림픽을 보면서 우리는 앞으로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우리의 잘못을 바로잡고 정말 공정하고 품격있는 올림픽으로 세계 동계 스포츠의 축전을 준비해야 한다.
스포츠 선수들 뿐만 아니라 이를 제대로 준비하려면 우리의 정치, 경제는 물론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 품격있는 국민의 문화이며 정신이다. 그 문화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 문인들 또한 어떻게 하면 문화 국제무대에서 세계인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지 항상 우리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우리의 할 일에 최선을 다해 보시자 !
오늘은 시창작에서 행과 연 만들기에 대해 알아볼 것인데 사실 요즈음의 ‘자유시’는 별로 그리 시의 연과 행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산문시의 형태로 이어 진 자유시가 현대에 들어와 시의 의미를 매우 강조하게 된 ‘주지주의’의 영향이 매우 크고 시의 형태보다 의미가 강조되는 까닭에 행과 연을 써서 그 시의 맛이 더 떨어지거나 쓰는 것이 별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시든간에 이 ‘행과 연’에 대해서 모른다고 한다면 시와 연이 필요없는 최첨단 집을 짓는다고 해도 제대로 된 건축 설계사가 설계한 집 즉, 시가 아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 전통시인 정형시에서 여러 문학사조의 여러 시 창작 발전들을 거쳐 오늘날 논란이 많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에 이르기까지 시에서 연과 행은 그 구조물의 기초, 골격과 같은 것이기에 우리는 철저히 공부해 보시자! 필자는 시의 행과 연에 대하여 요즈음 그리 별 신경을 쓸 시를 잘 쓰지 않지만 어차피 시를 알아야 한다면 시의 행과 연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필자는 조태일 시인의 생각과 윤석산 교수의 이론을 혼합하여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산문이 아닌 산문시를 잘 쓰는 사람은 시의 행과 연이 있는 시도 잘 쓸 수 있어야 하며 시의 연과 행을 잘 쓰거나 너무 고집한다고 해도 행과 연이 없는 시를 아예 무시 한다면 그도 릴라 高? 突乭이 영감일 뿐이다. 우리의 정형시가 가진 율격, 그것이 무슨 세계문학사에 공인된 율격도 아니기에 어느 누구의 독자적 고집스러움만이 드넓고 다양한 글로벌 지구문단에서 과연 누가 그것을 우수하다고 인정할 것인가? 비교문학에 그 문화권의 독자성은 인정하더라도, 한 점 인식은 될지언정 그것이 지구 전체를 대표할만한 우수성을 가졌다?는 인식? 지나가는 월남의 뿔소와 저 아르헨티나의 이구아나 풀뜯어먹는 소리, 21세기 서울과 뉴욕, 파리에 갑자기 천막 노숙자 징그러스키 칸이 나타나 다 지나가며 비판받는 레비스트로스의 구조, 상대주의 딸딸이들 흉내내는 아프리카 코끼리 방귀뀌는 소리로 가래침 뱉는 일일 뿐이다.^*^
필자가 아는 어느 하버드 대학의 문학교수가 국내 국문학의 몇몇 좀 이름있는 이들을 모른다고 착각하지 말자! 그들은 말없이 빙그레 미소 지을 뿐이다. 왜? 레비 스트로스 아류로 그 돌머리 인식에 끼워 맞추어 설명하는 유치함을 알기 때문이다. 즉 저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말장난과 얕은 철학적 가식들이 뾰롱이 나서 이제 막 구미의 철학자들, 지성인들 사이에서 무지막지한 비판을 받듯(앨렌 소칼 저, 지적사기 참조), 철학적 비판능력이 한참 모자란다는 점을 안다 그말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무슨 일본의 하이쿠, 유럽의 소네트 빠 추종자냐? 그것도 아니다. 우리가 고민해야할 문제는 세계 문학인들, 세계 독자들과의 진솔한 소통이며 한국이 낳은 시인으로써 저들에게 무슨 의미와 감동을 줄 것인가? 노력해야 하는 점이다.
그러면 어떤 시에서 시의 연과 행을 쓸 것이며 쓰지 않을 것인가? 어렵게 말할 것 없이 그 기준은 시의 행과 연을 써서 그 시의 맛이 더 산다면 쓰는 것이 옳을 것이고 거꾸로 쓰는 것이 오히려 시의 맛이 살지 않는다면 쓰지 않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럼 또 그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의 행과 연이 가지고 있는 맛과 기능을 잘 알아 본다면 답이 나오지 않겠는가? 몇일 전 베토벤의 작품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느 일본의 작곡가의 작품이 수십년 동안 그의 작품이 아니라 어느 이름모를 음대 시간강사가 써 주었던 표절 거짓 작품임이 들통나 세계 문화계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참말로 행이나 연을 쓰던 쓰지 않던 슬픈 일이기는 한데 시도 음악과 마찬가지다. 무슨 말이냐? 현대의 세계적 음악 작품에 베토벤 시대의 작곡악곡 구성이든 그런 구성이 아닌 작품이든 현대인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다. 문제는 그 작품의 예술적 위대성이 베토벤 시대의 기준에 있지 않고 현대 세계인들의 미학적, 예술성에 어떤 악곡구성이든 얼마나 가치있고 의미있는 감동을 주느냐? 하는 점에 있다. 시는 또 별개인가? 아니다. 그런 인식은 음악이나 문학이나 공통적으로 매한가지라고 필자는 생각을 한다.
시에서 행과 연은 전통적으로는 시의 형태를 만들어 주는 구조의 기본골격이기도 하다. 즉 작은 마디의 가락, 작은 마디의 의미, 작은 마디의 이미지, 작은 마디의 강조는 행이 되고 큰 마디의 가락, 큰 마디의 의미, 큰 마디의 이미지, 큰 마디의 강조는 연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겉으로 드러난 시의 모습인 셈이다. 하이데거는 시를 가리켜 ‘언어의 건축물’이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 건축물을 이루는 기본골격이 바로 행과 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집을 지을 때 아무리 훌륭한 재료를 썼다 하더라도 구조가 좋지 못하고 형태가 온전하지 못하면 결코 아름답고 튼튼하고 실용적인 집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시 역시 이들을 써야 맛이 날 시에 행과 연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다면 좋은 시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습작기에 있는 학생들의 시를 보게 되면 아무런 필연성도 계산성도 없이 뗐다 붙였다 하면서 행과 연을 제멋대로 구분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어떤 경우, 불필요한 사족의 행과 연들을 늘어놓아서 기형적인 형태마저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아예 행과 연에 신경쓰지 말고 쓰는 것이 더 좋은 시를 탄생시킬 수 있기도 하다.
원래 정형시에서 시의 구조는 워낙 치밀한 것이어서 유기적인 생물체에 비유되느니만큼 시 구조의 바탕이 되는 이 행과 연들은 무엇보다도 긴밀성과 필연성이 동반되도록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 그럼, 지금부터 행과 연을 어떻게 만들어내는가. 그 방법에 대해서 알아 보도록 하자 !
1. 첫행은 어떻게 시작하는가.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시 창작에서도 이 첫 단추에 해당하는 첫 행이 매우 중요하다. 첫행은 독자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유도하는 길인 동시에, 다음에 이어지는 행들과 연들을 끌어올리며 시 전체의 내용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도록 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논리학이나 논술에서 두괄식이고 연역적 사고를 잘 하는 사람들이 좋아하기도 한다. 필자는 대게 행과 연이 있는 시를 쓸 때 이런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주욱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문장을 쓰거나 시를 쓰고 퇴고 과정에서 그 시의 가장 강조되는 부분을 다시 앞머리로 꾸며 쓰기도 하는데 이는 귀납적 사고를 잘하는 사람이 잘 쓸 것이다. 차치하고 첫행의 이 길이 제대로 열려 주지 않는다면 다음에 와야할 행들이,연들이 올 수가 없는 것이거나 매우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시의 첫행을 잘 찾아야만 다음행들은 물론 마지막에 오는 행까지 온전할 수 있기에, 대부분의 시인들은 이 첫행을 찾는데 상당한 시간과 공력과 정성을 들인다고 필자의 옛 스승들은 말했으나 십수년을 필자 나름대로 썼던 필자가 보기에 일단 써 놓고 첫행을 늘 퇴고하는 스타일이라면 꼭 그럴필요는 없다고도 하겠다. 또 어떤 때는 꽉 막혔던 첫행이 뚫리자 다음 행들이 줄줄 흘러나오기도 하는데 이처럼 첫행은 다음 행들을 몰고오는 강력한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독자들을 집중 시키고 강한 흡인력을 발휘하는 첫행은 어떻게 시작하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정답이 될 수 있는 모범답안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우리 시인들의 작품을 통해서 일반적인 유형들을 살펴본 후 시를 쓰고자 하는 지망생들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독창적인 방법을 이 위에 얹혀 보면 좋을 듯 싶다.
a. 특정한 시간이나 계절로써 첫 행을 시작할 수 있다.
시간과 계절은 생명의 생성, 성장, 성숙, 결실, 소멸과 관계가 깊으며, 인간만큼 이 시간성과 계절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존재도 없다. 따라서 특정한 시간과 계절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특정한 정서나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에 시의 첫행에 흔히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프라이(Frye Northrop)에 의하면 봄은 영웅의 탄생신화, 부활과 재생신화, 희극, 열광적 찬가, 광상곡의 원형이며, 여름은 인간의 신격화와 낙원에 관한 신화, 로맨스, 전원시, 목가의 원형이다. 가을은 신과 영웅의 사망에 관한 신화, 비극과 엘레지의 원형이며, 겨울은 대홍수와 혼돈의 신화, 영웅 패배의 신화 풍자와 아이러니의 원형이다.
늦은 밤
별밭을 찾아간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밤을
남몰래 울어 본다
내가 여기 서 있다는 것이
더욱 無意味로울 때
----(생략)---
---박봉우,<별밭을 찾아>부분---
하늘이 시퍼렇게 얼어붙은 겨울날
手話를 나누던
너와 나의 하얀 손이
까마득히 낙엽지던 날
마음속 깍아지른 벼랑을 떠나
온종일 허공을 맴도는
매 한 마리 ----김영석,<매> 全文 ----
언제부터
이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
텅 빈 가슴속에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
지난 여름 내내 앓던 몸살
-----
---이가림,<석류>부분---
b. 특정한 공간이나 불특정 공간을 시의 첫행으로 놓는다.
시간이나 계절 못지 않게 공간제시는 시의 첫행을 이루는가장 일반적인 유형이다. 그런데 이러한 특정한 공간이 제대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다음에 오는 행들이 그것을 구체적 의미로 형상화할 수 있도록 떠받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똑같은 공간을 한 시인이 너무 빈번하게 사용하면 상투적이기 쉽다.
호남선 터미널을 나가면
아직도 파김치 올라온다
고속버스 트렁크를 열 때마다
비닐봉지에 싼 파김치 냄새
텃밭에서 자라 우북하였지만
소금 몇 줌에 기죽은 파들이
----(생략)---- ----강형철,<사랑을 위한 각서8>부분----
‘호남선 터미널’은 만인이 이용하는 대중공간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장소이면서도 일반적인 성격이 짙다. 따라서 이 장소에 대한 체험을 보통사람이라면 쉽게 공유할 수 있기에 친숙하게 다가오게 마련이다.
빠알간 망사주머니 속에서
빠알갛게 언 알몸을 비벼대고 있는
빠알갛게 부어오른 눈으로 조심조심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일 킬로그램의 양파들에게
전해 주게 이 말을
지금 이 별엔 봄이 왔다, 고
--- 강은교,<빠알간 망사주머니 속에서>全文---
위 시에서 첫 행으로 자리잡은 “빠알간 망사주머니 속”이라는 특정 공간은 시인의 섬세한 관찰에 의하여 언어로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자아낸다.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양파를 담은 빨강색의 망사 주머니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흔해서 그냥 지나쳤던 이 대상이 시적 공간에서 첫행으로 장소를 옮겨오자 우리들의 호기심이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이러한 하찮은 공간들을 시인의 눈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시의 첫행에 끌여들여 새롭게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시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도록 만드는 것이다.
어디선가
原木 켜는 소리
夕陽에
原木 켜는 소리
같은
참매미
오동나무
잎새에나
스몄는가
골마다
끝에나
스몄는가
누님의
반짇고리
골무만한
참매미
----박용래,<참매미>全文---
첫행으로 제시되는 불특정 공간은 그 불확실성과 막연함으로 인하여 한정적인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분위기와 매력을 자아낸다. 그것은 정체가 확연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대하여 독자들이 호기심을 갖도록 하는 구실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첫 행은 다음에 오는 “두 번째 행이 더 극적이어야 한다는 부담을 준다”는 말처럼 다음 행은 필히 시적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 다음행이 첫행을 탄력적으로 떠받쳐 주지 못한다면 이 불특정 공간만이 자아낼 수 있는 시적 분위기나 여운은 사라지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위 시는 참매미 울음 소리를 ‘원목 켜는 소리“로 비유하여 다음 행을 연결시킴으로써 시적 긴장감을 충분히 살리고 있는 좋은 보기라고 할 수 있다.
c. 시간과 공간 또는 계절과 공간이 함께 어울려서 시의 첫 행을 만들 수 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계절과 공간이 어울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구체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쉽게 흡수된다.
새벽 노을 속
까마귀떼 잠 깨어 날아오른다
깃들인 자리 대숲
댓잎에 내린 된서리에
부리를 닦고
사나운 꿈자리
날개짓으로 훨훨
털어내며 날아오른다
눈녹이물 다시 논밭에서
서릿발로 일어선
텅 빈 들판 위로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칼날 바람 타고 잇따라
솟구쳐오른다
어느새 수백 수천의 까마귀
결빙의 하늘에서 만나
원무를 춘다
거친 숨결 하늘에 뿜어
드디어 능선 위로 불끈
해가 솟는다
---최두석, <샘터에서>全文---
첫 행이 된 ‘새벽 노을 속’은 ‘새벽’이라는 시간과 ‘노을 속’이라는 공간이 어울려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왜냐하면 ‘노을’이라는 대상은 대부분 저녁의 모습과 어울리고 있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에서는 새벽이라는 시간과 맞닿아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d. 자연물인 대상이나 기후현상 등이 시의 첫행으로 오는 경우도 흔하다.
자연대상은 시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중심 소재이며, 이 중심 소재가 시의 첫행에도 자주 나타난다. 기후현상 역시 거기에 따른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힘이 있으므로 시의 첫 행에 자주 제시된다.
봄 풀 꽃, 저 햇빛의 작은 지문들
5월 늦은 오후, 깨끗하게 늙어가는 선생을
만나고 돌아오는데, 민들레들 길섶에서
달구어져 있다. 햇살이 지그시
민들레를 누르고 있는 것이다
노오란 이 빛의 방울들
작은 소리를 터뜨리며 번져나간다
세상에 같은 지문은 없는 것이다
선생님은 아직도 문 밖에 계시다
언덕길 오르다 돌아다보니
선생님은 보이지 않는 눈길로 나를
떠밀고 계셨다
내 몸에 몇 개의 지문이 찍힌다
----이문재,<指紋>전문---
위 시의 첫행으로 등장한 풀 꽃, 햇빛을 비롯하여 나무, 강, 하늘, 별, 산, 새, 비, 바위, 바람, 동물 등은 단골손님처럼 다른 여러 시들 속에서도 자주 나타나는데, 이러한 소재들을 시의 첫행으로 삼는 것은 독자들 역시 이 자연 대상물에 친밀감이 강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정서의 폭이 넓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조로움이나 상투성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위의 시처럼 신선하고 참신한 모습으로 이 자연대상을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e. 하나의 평서형 문장으로 시의 첫행을 시작할 수 있다. 이 평서형 문장은 시의 의미나 시인의 개성 등에 따라 약간씩 형태의 변화를 보여 준다. 주어가 일인칭으로 시작되거나 아예 생략되는 경우도 있으며, 사람이 아닌 유정명사나 무정명사가 주어로 나타나기도 한다.
눈 덮인 철로는 더욱이 싸늘하였다
소반 귀퉁이 옆에 앉은 농군에게서는 송아지의 냄새가 난다
힘없이 웃으면서 차만 타면 북으로 간다고
어린애는 운다 철마구리 울 듯
차창이 고향을 지워버린다
어린애가 유리창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친다
---오장환,<북방의 길>全文
위 시에선 첫행을 이루고 있는 문장을 보면 주어가 사람이 아닌 ‘철로’라는 사물이다. 평서형 문장이 첫행으로 오는 경우, 특정한 사람의 이름이나 구체적 사물, 관념어들이 주어로 오는 예가 훨씬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f. 비유로써 첫 행을 시작할 수 있다. 비유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려 충격을 주기 때문에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도시는 거대한 솥,
펄펄 끓는다
반짝이며 수없이 떠오르는 고기떼들
썩은 고기들의 끝없는 악취
그래도 매운탕엔 향기가 나야 제맛이지
깻잎과 미나리와 쑥갓을 듬뿍 넣고
소주 한잔 카아악 !
어디에선가 무지막지한 큰 손이
자꾸만 장작을 가져와 불을 지핀다
---유용주,<매운탕>전문---
도시를 ‘거대한 솥’이라고 한 이 당돌한 은유 때문에 시의 첫 행은 독자에게 긴장감을 느끼게 하며, 시 속으로 독자를 끌어 들인다.
g. 시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의 한 부분이나 핵심내용을 첫행으로 내세울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시의 내용을 이루는데 있어서 첫 행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다른 행들은 이 첫 행을 향해 집중하게 된다. 첫행이 시상 전개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풀꽃은 풀꽃끼리 외롭지 않네.
가난이야 하느님이 주신 거
때로는 슬픔의 계곡까지 몰려갔다가
저리 흐르는게 어디 바람뿐이랴 싶어
다시금 터벅터벅 되돌아오긴 하지만
도회지 화려한 꽃집이 부러우랴
밤안개 아침 이슬 모두 함께이거늘
풀꽃은 풀꽃끼리 외롭지 않네.
외로움이야 하느님이 주신 거
사람 속에 귀염받는 화사한 꽃들은
사람처럼 대접받고 호강이나 하겠지만
때로는 모진 흙바람 속에
얼마나 시달리며 괴로워하리.
때로는 무심히 짓밟는 발에 뭉개져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리.
시르렁 시르렁 톱질할 박일랑
우리사 연분없어 맺지 못해도
궂은 날 갠 날도 우리 함께이거늘
풀꽃은 풀꽃끼리 외롭지 않네.
---허영만,<풀꽃은 풀꽃끼리>전문---
첫행을 이룬 “풀꽃은 풀꽃끼리 외롭지 않네”는 이 시의 핵심이 되고 있는 행이며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이 첫행을 바탕으로 다음행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하나의 시적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처럼 시의 중심적 의미나 핵심이 첫행에 자리잡으면, 이 첫행이 다음 행들을 풀어가는 데 단서가 되거나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시의 첫 행을 시작하는 방법은 많고 또 어떻게든 다양할 수가 있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h. 수식어와 그 수식을 받는 중심단어로 첫행을 시작할 수 있다.
I. 어떤 행동이나 사건의 제시를 통하여 시의 첫행을 시작할 수 있다.
J. 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감탄사 또는 의성어나 의태어 등 하나의 낱말로써 시의 첫행을 만들 수 있다.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피어 돌아오리란
댕기풀 안스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팔러 간다.
---김지하, <서울길>전문 ----
위의 시 역시 하나의 단어인 ‘간다’라는 동사가 첫행을 만들면서, 떠나는 행위에 대한 강조와 함께 시의 운율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명사나 동사에 비하여 형용사, 부사 등이 첫행을 만드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왜냐하면 형용사나 부사 등은 동사나 명사보다 첫행이 주는 긴장감이 덜하기 때문이다. 감탄사 또한 단독으로 시의 첫 행을 만드는 경우가 그리 흔치 않다. 감정의 직접적인 노출이 자칫 감상적으로 흐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의성어, 의태어 역시 가벼움이나 말장난으로 빠질 수가 있기 때문에 첫행으로 놓을 때는 언어를 다루는 기술이 더욱 요구된다.
여기에서 예시를 한 것 외에도 첫행을 청유형이나 명령법, 가정법 등으로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방법으로 시의 첫행을 만들든 간에 첫행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독자를 끌어 당기는 힘을 내장해야 하고, 다음에 오는 행은 물론 마지막 행까지 서로 긴밀하게 연결 되어서 유기적이 되어야 한다.
2. 행은 어떻게 만드는가
시의 형태를 이루는 데 기본 골격이 되는 행은 어떻게 만드는가, 즉 행 가름의 방법에 대하여 김춘수 시인은 세가지를 들었다. 행은 리듬의 한 단락이거나 의미의 한 단락이거나 또는 이미지의 한 단락이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리듬을 중요하게 여기면 리듬의 단락이 행을 만들어내는 근거가 되고, 의미를 중요시하게 되면 의미의 단락이 행을 만드는 근거가 되며, 이미지를 중요시할 경우에는 이미지의 단락이 행을 만들어내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강희근 시인은 한 가지를 덧붙여 강조가 되고 있는 ‘힘줌의 단락’을 행 구분의 근거로 보며 행 만드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네 경우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가락의 작은 마디를 하나의 행으로 놓는 경우, 둘째, 의미의 작은 마디를 하나의 행으로 놓는 경우, 셋째, 이미지의 작은 마디를 하나의 행으로 놓는 경우, 넷째, 힘줌의 작은 마디를 하나의 행으로 놓는 경우 등이 있다.
3. 행 나누기
아무리 요리를 잘 해도 상을 차릴 줄 모르는 사람은 뛰어난 요리사가 아니라 할 수 있다. 자, 이제 시의 행 공부에 대한 마지막이다. 그러나 방심하지 마시자. 시의 의미와 이미지와 리듬은 행 나누기에 따라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그 작품의 최종 성공 여부는 행 나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은 시의 행을 효과적으로 나누기 위해서는 먼저 <시행(詩行)>과 <율행(律行)>의 개념부터 알아야 한다. 시행이란 시인이 작품 속에 설정한 행을 말합니다. 그리고 율행은 이와 같은 시행을 무시하고, 독자가 낭송할 때 자연스럽게 끊어 읽는 단위를 말한다. 그로 인해 시행과 율행의 관계는 아래와 같이 세 개 유형이 생길 수 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양사언
ⓑ동해 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에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장만영(張萬榮), 「달, 포도, 잎사귀」에서
ⓒ누나의 손은 따뜻하다.
천지에 흰눈이 덮이던 날, 책보따리를 허리에 두르고 꽁꽁 얼어서 집으로 돌아오면 동구밖까지 나와서 기다리다가 눈투성이 코홀리개의 손을 잡아주던 누나의 손은 따뜻했었다. 공부를 한다고 초롱불 밑에서 코 밑이 까맣게 그을려 졸고 있으면 사탕이며 과자 몇 개를 살며시 쥐어주던 누나의 손은 따뜻했었다.
감나무 위에 까치가 울던 누나가 시집가던 날 아침, 잠꾸러기의 머리맡에 종이돈 몇 장을 손수건에 싸서 놓아두고 이불을 여며주던 누나의 손은 따뜻했었다.
이제는 장성한 딸을 시집보내는 누나의 장년
“먼 데서 뭐할라꼬 왔노?” 화들짝 놀라며 가방을 받아드는,
어느새 어머니를 빼닮은 누나의 손은 아직도 따뜻하다.
―유자효(柳子孝), 「누나의 손」 전문
ⓐ는 전체를〔시행=율행]으로 배치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배치하면 시행을 읽는 것이 곧 율행을 읽는 것이 되어 매우 원활한 리듬감이 형성된다. 전 시대의 시가들이 이런 배행법(配行法)을 택한 것은 의미보다 리듬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한 의미나 이미지를 강조하기 어렵다는 게 단점이다.
ⓑ의 전체 율격은 3보격이다. 그러나 둘째행부터는 [시행≦율행]으로 설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율행보다 시행을 같거나 짧게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짧게 설정하면 율행대로 읽을 때가 가장 안정적이라서 독자들은 다음 행의 일부를 끌어다 읽는다. 그로 인해 같은 길이의 작품도 매우 빠른 느낌을 준다. 그리고, 각 행의 어절들을 독립된 것으로 인식하여 의미와 이미지가 한결 강화된다. 현대로 접어들면서 행 나누기가 이런 방식으로 바뀐 것은 독자들이 낱낱의 의미와 이미지를 생각하며 받아들이도록 만들기 위해서이다.
ⓒ는 첫행을 제외하고 모두〔시행>율행]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율행보다 길게 시행을 설정하면 율행의 길이만큼 읽고 나머지는 다른 행처럼 나눠 읽어 리듬감이 파괴된다. 최근에 쓰여진 시들이 이런 배행법을 택하거나 아예 행 구분을 하지 않는 것은, 리듬을 배제하고 의미 중심으로 읽어 달라는 요구로서, 긴 문장이 주는 느린 느낌을 이용하여 현대인들의 우울하고 권태로운 정서를 반영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시행은 어떻게 하여 이런 작용을 하는가 다음 전봉건(全鳳健)의 「빛」을 산문 형식으로 풀어 쓴 것과 비교하면서 알아보기로 하시자.
ⓐ점심때
우리는
나무 저를 쪼갠다.
전복
민어
삼치
홍합
문어
회를 먹는다.
생오이
토마토
참외가
곁들인다.
점심때
나무저를 움직이는
네 손에는
네 살빛하고
같은 빛깔의
보석.
그건
먹지 못한다.
ⓑ점심때 우리는 나무저를 쪼갠다. 전복, 민어, 삼치, 홍합, 문어, 회를 먹는다. 생오이, 토마토, 참외가 곁들인다. 점심때 나무저를 움직이는 네 손에는 네 살빛하고 같은 빛깔의 보석. 그건 먹지 못한다.
점심 때 식당에 가서 나무젓가락을 쪼개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 1연을 읽을 때는 나무저의 부드러운 빛깔이 떠오르고, 민감한 독자들은 ‘쪼갠다’는 의미에서 성적(性的) 암시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연을 바꾸기 위해 비워 둔 여백에서 시간의 흐름과 젓가락을 들고 이것저것을 집어먹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2연으로 접어들면 행이 바뀔 때마다 거명하는 회와 야채 이름에서 그들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리고 3연의 ‘네 손에는/네 살빛하고/같은 빛깔의/보석./그건/먹지 못한다.’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1연의 ‘나무저를 쪼갠다’가 성적 욕망의 암시로 해석한 게 결코 잘못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산문으로 고쳐 쓴 ⓑ를 읽을 때는 이런 이미지들은 그냥 행 속에 묻혀버리고 만다. 그리고 나무저를 쪼개는 행위도 점심을 먹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만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행과 연의 유무가 왜 이런 차이를 나도록 만드는 걸까? 이 문제는 ⓐ를 아래처럼 세 가지 방식으로 행을 나누어 낭독할 때 어디에 강세(强勢)가 부여되는가 살펴보면 알 수 있다.
․
ⓐ점심때
․
우리는
․ ․
나무저를 쪼갠다.
․ ․
ⓑ점심때 우리는
․ ․
나무저를 쪼갠다.
ⓒ점심때 우리는 나무저를 쪼갠다.
앞에서 알아본 리듬의 규칙에 따르면, 원작인 ⓐ는 첫행과 둘째 행말에 악센트가 주어지고, 제3행에서는 첫째 음보말과 둘째 음보 첫 음절에 악센트가 주어진다. 하지만 의미가 완벽하지 않은 불완전명사나 조사가 강조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속한 어군(語群) 전체가 강조된다. 그로 인해 하나 하나의 어절들이 강하게 인식되고, 독자들은 각 시어들의 개별적인 의미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처럼 2보격으로 배치하면 앞뒤 음보가 대응하여 약동적인 2보격 리듬이 형성된다. 그로 인해 시어의 의미나 그것이 환기시키는 이미지보다 리듬에 끌려 읽는다. 그리하여 이 정도의 의미로 하나의 연으로 독립시키기는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또, ⓒ처럼 배치하면 그것이 시라는 인식을 갖지 않는 한 그냥 산문의 한 구절처럼 읽힌다. 따지고 보면 이 작품의 첫머리에서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화자가 금지된 욕망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나의 단어를 한 행으로 잡아 리드미컬하게 읽히는 것을 방지하고, 행 중간에 묻힐 ‘우리’라는 지칭(指稱)을 첫머리로 끌어내어 서로가 사랑하고 있음을 암시한 다음에 ‘나무저를 쪼개다’는 구절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행은 임의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 화제의 속성과 시인의 의도에 따라 설정해야 한다.
자아, 그럼 기초적인 원리를 알아봤으니 이에 따라 우리가 이제까지 써온 작품의 행을 다듬어 완성해 볼까? 그래, 어떤 작품으로 완성하고 싶으신가? 아주 리드미컬하게 읽히고, 독자들이 노래처럼 암송하도록 만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율행 단위로 시행을 배치하고, 그게 좀 단조롭다면 군데군데 기준 음보 수보다 한 음보 더 많거나 적게 배치하시자. 기준보다 많은 곳은 다소 느린 느낌이 들 테지만 독자가 잘라서 다음 율행에 포함시켜 읽을 테고, 모자라는 곳은 뒤 행에 음보를 끌어다 읽을 테니까. 단, 이렇게 조절할 경우에는 꼭 해야 할 말도 생략하고, 빼도 좋을 말을 끼워 넣고, 독자들이 곰곰이 생각하며 읽는 게 아니라는 점만은 기억해 두기 바란다.
장중하거나 우울한 작품으로 완성하고 싶으신가? 그렇다면 율행을 깨뜨리고, 〔시행>율행〕으로 배치하시자. 이렇게 율행을 깨뜨리면 독자들은 시상에 따라 읽고, 긴 문장의 느린 느낌과 동원한 어휘들의 뉘앙스가 겹쳐 장중하거나 우울하게 만들 테니까. 그러나 자기가 강조하고 싶은 의미나 이미지가 행 속에 묻혀서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널리 암송되기는 기대하지 말자^*^
하나 하나의 의미와 이미지를 강조하고 독자들이 생각하면서 읽게 만들고 싶으신가? 그렇다면 행을 짧게 나누자. 그리고 강조하고 싶은 말만 한 행으로 만들거나 그 말을 명사형으로 만든 다음 관형어구를 붙여주자. 그러니까 ‘하나의 나뭇잎이 파르르 떤다’는 문장은 ‘파르르 떠는 하나의 나뭇잎’으로 바꾸시자. 우리말은 서술어 중심이라서 이를 생략하면 주어 쪽으로 의미가 쏠리는 것이니까.
암송하기를 바라는 건 포기하지만, 하나하나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독자들이 깊은 생각에 빠지도록 만드는 방법은 없겠는가? 있다. 완결된 의미 단위로 나누시자. 그리고 행 단위로 연을 나눠보시자. 의미 단위로 행을 나눌 경우 문장이 길어지고, 그걸 하나의 연으로 설정할 경우 연과 연 사이의 여백에서 독자들은 시인의 말을 음미할 테니까. 예를 들어볼까?
칼쟁이는 날마다 칼을 간다. 자기를 위해 가는 게 아니라 언젠가 만날 칼잽이를 위해 간다.
샤브리느는 날마다 샤워를 한다. 자기를 위해 샤워를 하는 게 아니라 오후 두 시 딩댕동 울릴지 모르는 벨소리를 위해 샤워를 한다.
제주시 오라동 정실마을 이만수(李滿水) 씨는 해마다 호밀을 심는다. 밤마다 호밀밭 이랑으로 놀러와 북대기질치는 달(月)을 위해 호밀을 심는다.
나는 날마다 언어를 간다. 칼을 가는 칼쟁이랑, 날마다 샤워하는 샤브리느랑, 오후 두 시 푸르게 울릴지 모르는 초인종 소리랑
밤마다 호밀밭 이랑에서 히히덕댈 달을 위해 언어를 간다.
―윤석산, 「칼쟁이는 칼을 간다」 전문
왜 칼쟁이가 칼을 가는지 아시겠는가? 그리고 왜 이 작품을 이 강의의 마지막에 소개하는지도 아시겠는가? 칼을 가시자. 노력하면 결코 안 되는 게 없다. 습작생 여러분! 부디 좋은 작품 쓰시자. 아니, 좋은 작품이 아니라도 시를 포기하지 마시자. 인생에서 시보다 마음대로 자기 꿈을 펼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
4. 연은 어떻게 만드는가
시의 구조에서 행이 하나의 작은 단락이면 연(聯)은 이 작은 단락이 모여서 만든 큰 단락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연은 시의 구절이며 가락, 의미, 이미지 등 내용의 통일성을 가지는 시의 단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연을 만드는 방법 역시 앞에서 살펴 보았던 행 구분의 4가지 방법을 여기에 그대로 적용해 볼 수 있다. 첫째, 리듬의 큰 단락을 하나의 연으로 놓을 수 있으며, 둘째, 의미의 큰 단락을 하나의 연으로 놓을 수 있으며, 셋째, 이미지의 큰 단락을 하나의 연으로 놓을 수 있으며, 넷째, 강조의 큰 단락을 하나의 연으로 놓을 수 있는 것이다.
a. 리듬의 큰 단락으로 연 만들기
리듬의 큰 단락이 하나의 연을 이루는 경우이다. 행을 이루는 리듬의 작은 단락이 운율을 형성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진 것처럼, 리듬의 큰 단락에 의한 연의 형성 역시 시의 운율, 음악적인 부분에 중심이 가 있다.
밤이도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이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 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김억,<봄은 간다>전문----
인용시의 각 연들을 보면 무엇보다도 시의 운율을 잘 살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1연에서부터 제3연을 살펴보자. 첫 음절은 ‘밤’, ‘봄’, ‘날’같은 비슷한 소리를 배치하여 두운의 효과와 울림소리의 음악적 효과를 살리고, 끝 음절 역시 ‘다’, ‘데’의 똑같은 음운으로써 각운을 형성하고 있다. 제4연은 자연스럽게 2행 모두 3음보율을 살리고 있다. 제5연 또한 2음보율과 각운으로 운율을 형성하고 있고 제6연은 2행 모두 음절 수가 똑같고 음보율도 똑같다. 역시 울림소리의 효과까지 나타난다. 의미면에서나 형식면에서나 한 쌍인 것처럼 대구를 이루어 그야말로 연전체가 운율의 한 덩어리임을 한 눈에 알수 있다. 맨 마지막 연 역시 2행이 대구를 이루며 각운의 효과로 운율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위 인용시는 한 연이 리듬의 큰 단락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b. 의미의 큰 단락으로 연 만들기
의미의 큰 단락을 하나의 연으로 놓는 경우이다. 시적 내용이나 의미가 각각 한 단위가 되어서 혹은 강조가 되어서 한 연을 형성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하나의 연은 하나의 의미를 형성하고 있는 ‘의미의 큰 덩어리’ 혹은 ‘의미의 큰 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山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백석,<여승>전문---
제1연을 보게 되면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한 여승을 만난 사건이 중심 의미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시의 화자는 여승이 되기 전의 이 여인을 만난 적이 있다. 제2연에서는 과거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지난날 여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데, 생계를 잇기 위해 어린 자식을 데리고 옥수수를 팔고 있는 초라한 여인의 모습이 제2연의 중심 의미인 것이다. 제3연에서는 여인의 슬픔과 불행함이 중심 의미를 이룬다. 10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 대한 기다림과 슬픔, 그리고 어린 자식을 잃은 비통함이 이 여인을 속세의 현실로부터 떠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제4연은 이 여인이 여승이 되는 장면이 중심 의미인데 삭발하는 장면을 통해 한 여인의 지극한 슬픔과 아픔을 느끼게 해 준다. 이처럼 위 시의 각 연들은 서사적인 이야기구조를 갖고 그 중심내용에 따라 연을 구분하고 있어서, 하나의 소설을 압축해 놓은 듯한 느낌마저 드는데, 이러한 특징 때문에 위 시는 무엇보다도 의미의 큰 단락에 의해서 연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c. 이미지의 큰 단락으로 연 만들기
이미지의 큰 단락이 하나의 연을 이루는 경우이다. 이미지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기에 이미지의 큰 단락에 의해 형성된 연은 그만큼 감각적인 특성과 모습으로 우리의 주의력을 끌어 모은다.
순이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왔구나 !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 포도넝쿨 밑에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젖하구나.
---장만영,<달,포도,잎사귀>전문---
각각의 연들이 한 폭의 풍경화를 보여주는 것처럼 시각적 이미지가 중심이 되어서 하나의 형태를 형성하고 있다. 제1연은 달빛이 베어 있는 뜰의 정경을, 제2연에서는 달의 시각적 이미지와 후각적 이미지를, 제3연에서는 “동해바다 물처럼 / 푸른” 가을 밤의 시각적 이미지를, 제4연에서는 포도와 달빛이 혼연일체가 되고 있는 정경을, 제5연에서는 달빛에 젖은 포도 넝쿨의 어린 이파리들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각각의 연들이 회화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d. 강조의 큰 단락으로 연 만들기
강조의 큰 단락을 하나의 연으로 놓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각 연들이 서로 긴장한 상태로 배치되는데, 이 긴장감 때문에 강조의 효과가 생겨나고 시적 탄력을 얻게 된다.
내 육신에서 솟아나온
땀방울처럼
마른 갈대들이 서걱이는 땅거죽에서
물방울은 돋아 흐른다
어디로 가는가
아무런 약속도 없이 그저 흐르는가
숱한 중생이 나고 죽고 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 사라지곤 하면서
역사를 이루고 흐르는 것처럼
물은 그렇게 흐른다
이끼 낀 바위틈과 금이 섞인 모래 위를
낮게 나직이 지형을 바꾸면서
----김형수,<남한강 기행>전문----
제1연과 제2연을 보게되면, 제1연의 끝행과 제2연의 첫행은 의미의 흐름상 하나의 문장이다. 따라서 의미의 단락으로 묶게 되면 하나의 연으로 놓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일부러 떼어놓음으로써 두 연은 붙으려는 긴장감을 자아내고, 이때 강조의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제3연과 제4연도 마찬가지이다. 제4연의 첫행 “물은 그렇게 흐른다”는 제3연의 끝행 “역사를 이루고 흐르는 것처럼”의 뒤에 이어져서 한 연으로 묶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남으로써 두 연 모두 탄력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만약에 지금 형태의 연들을 의미의 단락으로 해서 놓았다면 이러한 시적 탄력이나 긴장감들이 사라져 버려서 느슨해지고 풀어진 듯한 느낌이 드는 시가 되었을 것이다.
5. 연(聯) 나누기
뛰어난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고기를 결대로 써는 방법부터 배운다고 한다. 자, 이제 작품 전체의 형태와 연(stanza)을 가다듬어 보기로 하시자. 이를 위해서는 먼저 <연시(聯詩)>, <비연시(非聯詩)>, <구체시(具體詩, concrete poem)>의 성격부터 알아 보아야 한다. 연시는 의미 단위로 단락을 나눈 시를 말하고, 비연시는 나누지 않은 시를 말한다. 그리고, 구체시는 행이나 연의 활자 배치와 이용하여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림으로 그런 시를 말한다.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을 나누고 안 나누는 것은 시인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시각적 형태를 고려하면서 별다른 원칙이 없이 나누고 있다. 하지만, 시에서 연은 산문의 대단락과 같은 단위로서, 그 작품이 지니고 의미 단락과 화제의 성격에 따라 나누는 것이 원칙이다. 그것은 다음 두 작품을 비교해봐도 확인할 수 있다.
ⓐ붉은 노을 등에 지고
긴 긴 둑길을
자전거 타고 오는 사람
1.
그 모습이 점점 커지면서
내게로 다가와
미루나무 숲 속으로 사라져 간다
2.
둘러보니 주위엔 아무도 없어
조금 전까지 둑길 위에
자전거를 탄 사람이 있었다는 걸 누가 증명해 줄까
3.
꿈을 꾸고 나서 무슨 꿈이었나 생각나지 않는
이러한 저녁 한 때
자전거를 타고 사라진 사람은
시간 밖에서 영원히 페달을 밟고 있다.
- 김윤성(金潤成), 「둑길」 전문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 풍경 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를 섬기다가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를 희롱하는 쌍룡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던 하늘 밑에 추석(甃石)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佩玉)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 정일품(正一品)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둘 바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에 호곡(號哭)하리라.
― 조지훈(趙芝薰), 「봉황수(鳳凰愁)」 전문
ⓐ는 각 연마다 모티프와 시적 사건이 일어난 시간대가 분명히 다르다. 그리니까, 모티프별로 나눌 경우 <㉠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옴 → ㉡그 사람이 스쳐 지나감 → ㉢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해 누가 증명해 줄까를 생각함 →㉣그 사람은 영원히 시간 밖을 달릴 것이라고 생각함>로 나눠진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도 그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오던 ㉠은 대과거(大過去)에 속하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가던 ㉡은 과거(過去)에 속하며, 그에 대해 생각하는 ㉢은 현재(現在)에 속한다. 또 앞으로도 영원히 시간 밖을 달릴 것이라는 ㉣은 미래에 속한다.
물론 ⓑ도 <㉠대궐의 두리 기둥 → ㉡산새가 둥지를 튼 추녀 → ㉢사대주의로 용 대신 봉황이 그린 옥좌 → ㉣추석을 밟고 가는 내 그림자 → ㉤품석 어디에도 내 몸을 둘 곳이 없음 → ㉥봉황새가 구천에서도 호곡하리라고 생각함>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일순(一瞬)의 일이다. 그리고 좀 더 큰 단위로 나누면, ㉠에서 ㉣까지는 <대궐 풍경>이고, ㉤과 ㉥은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서정적 화제가 지녀야 할 필수 단위이므로 이를 제외하면 결국 <대궐 풍경>만 남는다. 따라서 이 작품은 대궐 풍경에 대한 내 느낌으로 요약된다.
이와 같이 어느 한 순간에 느낀 단일한 정서는 집중성을 살리기 위해 비연시로 구성하는 것이 좋다. 반대로 의미가 여러 단위로 나눠지거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뚜렷이 구분되는 화제는 연시로 구성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연시와 비연시는 시인이 임의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화제의 성격에 따라 선택하는 장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행 나누기의 여부에 따라 연시는 다시 <자유 연시>와 <산문 연시>로 나눠진다. 그리고 비연시는 <자유 비연시>와 <산문 비연시>로 나눠진다.
우리는 어느 단위로 분절(分節)을 하든 각 마디의 마지막 도막에 이르면 그때까지 인식한 바를 통합하고 되새겨보기 마련이다. 그로 인해 자유시의 행말(行末)에는 짧은 휴지(休止)가 설정되고, 연과 연 사이의 빈 여백에서는 각 행의 내용을 종합하고 정리하며 상상하기 위한 보단 긴 휴지가 설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연시와 비연시, 산문시와 자유시의 느낌이 달라지게 된다. 이와 같은 차이는 앞에서 살펴본 「봉황수」를 다음과 개작하여 비교해보면 짐작할 수 있다.
ⓐ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
풍경 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를 섬기다가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를 희롱하는 쌍룡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던 하늘 밑에
추석(甃石)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佩玉)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
정일품(正一品)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에 호곡하리라.
개작(改作)은 원작(原作)의 어느 한 구절도 고치지 않고 행과 연만을 나눴을 뿐이다. 그런데 원작의 답답하고도 쓸쓸하고 유장한 느낌이 상당히 감소되어버렸다. 그것은 연과 행을 나눠 전체 의미를 세분하고, 그로 인해 이해의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제와 연과 행의 관계는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자유 연시 : 행말의 짧고 잦은 휴지와 연 사이의 여백으로 인해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경쾌한 특성을 띔. 일상적 화제에 잘 어울림
②산문 연시 : 긴 시행 뒤에 연 사이의 여백으로 이어져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사변적이고 장중한 특성을 띰. 사변적인 화제에 잘 어울림.
③자유 비연시 : 행말의 짧은 휴지만 있고, 연 사이의 여백이 없어 각 행의 의미가 하나로 통합되어 잘 드러나지 않고,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느낌을 줌. 순간적이고 다중적인 정서의 화제에 적합함.
④산문 비연시 : 행말(行末) 휴지와 연 사이의 여백을 마련할 수 없어 의미가 잘 드러나지 않음. 우울하고, 비시적인 화제에 적합함. 작품의 길 경우 과도한 긴장을 극복하지 못해 독서를 포기할 수 있음.
그러므로, 같은 화제를 택해도 <자유 연시 ↔ 산문 연시 ↔ 자유 비연시 ↔ 산문 비연시> 순에 따라 독서 속도, 의미의 선명도, 정서상 밝기 정도, 가변성 등이 달라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구체시는 행과 연의 배치를 이용하여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와 같이 회화화(繪畫化)하는 유형을 말한다. 그리고, ⓑ처럼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유형도 이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 山
절망의산,
대머리를밀어버
린, 민둥산, 벌거숭이산,
분노의산, 사랑의산, 침묵의
산, 함성의산, 증인의산, 죽음의산,
부활의산, 영생하는산, 생의산, 희생의
산, 숨가쁜산, 치밀어오르는산, 갈망하는
산, 꿈꾸는산, 꿈의산, 그러나현실의산, 피의산,
피투성이산, 종교적인산, 아아너무나너무사폭발적인
산, 힘든산, 힘센산, 일어나는산, 눈뜬산, 눈뜨는산, 새볌
의산, 희망의산, 모두모두절정을이루는평등의산, 평등한산, 대
지의산, 우리를감싸주는, 격하게, 넉넉하게, 우리를감싸주는어머니
―황지우(黃芝雨), 「무등(無等)」 전문
ⓑ나의아버지가나의곁에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니나는왜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
―이상(李箱), 「오감도(嗚瞰圖) : 시제2호」 전문
어떠신가? ⓐ는 한 눈에 봐도 산이라는 걸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꼼지락거리는 글자들은 나무와 돌과 5.18 민주화 항쟁 겪은 광주(光州) 시민들이라는 느낌이 들고. ⓑ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 답답한 느낌이 들지만 자신을 포함하여 증조부까지 4대의 ‘노릇을 한꺼번에 하면서 살아야’ 하는 답답한 심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띄어쓰기도 무시하고, 음송증(吟誦症, verbigeration) 환자처럼 동어반복을 하면서 웅얼거리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자아, 이제 연을 나누기 방식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시자. 연은 산문의 단락 나누기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완결(完結)>, <통일(統一)>, <변화(變化)>, <연결(連結)>의 원칙에 의해 나누어야 한다. 시에서 연은 산문의 단락과 같은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완결의 원칙은 각 연을 소주제(topic) 별로 나누고, 같은 내용은 그 연 안에서 완결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통일의 원칙은 같은 연에서는 그 연의 소주제에 해당되는 내용으로만 조직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완결의 원칙을 지키면 자연히 통일의 원칙을 지키게 된다.
이와 같이 완결과 통일의 원칙을 지키려면 각 연의 소주제를 그 연 안에서 소화할 수 있는 정도의 의미로 나눠야 한다. 소주제를 너무 크게 잡았을 때는 이야기가 넘쳐 다른 연으로 넘겨야 하고, 너무 작게 잡았을 때는 다른 연의 이야기를 끌어와 이 원칙을 어기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드시 모든 의미를 그 연 안에서 완결시켜야만 하는 것만은 아니다. 시상의 흐름에 변화를 주기 위해 한두 곳 정도는 미완의 상태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연의 종류는 <완결된 연>과 <미완의 연>으로 나눌 수 있다. 다음 작품의 1연은 <미완의 연>, 나머지는 <완결된 연>에 해당한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박목월(朴木月), 「나그네」 전문
이 작품의 첫째 연은 <어디(밀밭 길)>에 해당하는 부사구(副詞句)다. 그러므로 의미상으로는 둘째 연에 종속된다. 그리고 처소격(處所格) 조사 ‘을’을 생략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둘째 연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이 첫째 연을 미완의 연으로 조직하여 둘째 연과 이어지도록 한 것은 가급적 첫머리는 간결하게 시작하고, 둘째 연의 마지막 행에서 등장하는 나그네의 의미를 강화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첫째 연과 둘째 연의 빠른 느낌이 들도록 하여 셋째 연 이후의 느린 느낌과 대조시켜 나그네가 가야할 길이 아득함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연을 나눌 때 한 가지 더 알아두어야 할 것은 연 사이 여백(餘白)의 기능이다. 사람들은 그냥 연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장치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 여백은 그 연을 읽는 동안의 긴장을 풀면서, 읽은 내용을 종합하고, 정리하며, 시인이 생략한 이야기들을 생각해보도록 유도하기 위한 <침묵적 진술(silent statement)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이야기를 보다 확실하게 전달하려는 사람은 이 여백을 잘 활용해야 한다.
자, 이제 연의 기능을 알아보았으니 이제까지 써온 작품의 연을 어떻게 가다듬을 것인가 알아보기로 하시자. 우선 그 화제가 어느 한 순간의 이야기인가?, 아니면 여러 도막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인가? 결정 나셨는가? 연시로 쓸 것인가, 비연시로 쓸 것인가는.
그 다음 연을 구성할 때는 완결, 통일, 변화, 연결의 법칙이 적용하되 좀 더 빨리 읽히고 싶은 곳은 <미완의 연>으로, 한 연 한 연 완결시키고 싶으면 <완결된 연>으로 만드시자. 또 같은 연 안의 내용들을 하나로 통합시키고 싶으면 연시 형태를 취하되 각 연은 산문시 형태를 취하고, 활자의 배열을 통해 답답한 느낌이나 연속된 의식의 흐름을 나타내려면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잘 읽히도록 하려면 띄어쓰기를 하되 문장 단위로 마침표를 찍으시자.
반대로 하나 하나의 의미나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으면 자유 연시를 택하시자. 그리고 강조할 시어는 행의 앞에 나오도록 하고, 그게 어렵거든 명사형으로 마쳐 그 말에 초점이 모아지도록 하시자.
<현재-과거-현재> 또는 <현실-환상-현실>처럼 세 도막으로 분명하게 나눠지는 것들은 액자식 구성을 택하시자. 그리고 그런 구성이 단조롭게 느껴지면 아래와 같이 어느 한 쪽을 암시적으로 말하면서 생략하고 다른 쪽을 한 두 연으로 만드는 방식을 택해 보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