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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리교회 되게하소서! 사도행전 13: 1~3
오늘 본문에 안디옥 교회가 나오는데 안디옥교회는 최초로 세워진 이방인 교회다. 그리고 최초로 선교사를 이방나라에 파송한 교회다. 안디옥은 로마제국의 세 번째로 큰 도시였다.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와 알렉산더 다음 가는 도시였다. 이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그들이 모이기만 하면 예수가 구원자 즉 그리스도라고 증언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안디옥교인들을 두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 행11:25,26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에 1년간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쳤고 그로 인해 안디옥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났다. 그 결과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안디옥 교회는 많은 도전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늘 성령으로 충만하여서 부흥하고 또 부흥했다. 그러면 안디옥교회는 어떤 교회였는가?
▶1. 주 안에서 하나 된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하나 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는데 요17장에 보면 그들이 하나 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1)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였지만 평안한 교회이었습니다. 하나된 교회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 문제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성격도 다양합니다. 개성도 독특합니다. 모인사람들이 다 다르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인디옥 교회는 정말 평안한 교회이었습니다.
본문에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말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안디옥 교회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1)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라고 말합니다. 『바나바』는 백인입니다. 『니게르』는 흑인입니다. 백인과 흑인이 함께 하는 교회이었습니다. 이런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안디옥교회는 이런 사람들로 구성 되었지만 평안 했습니다. 정말 교회다운 교회 이었습니다.
2).“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라고 말합니다. 구레네는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에 있는 도시입니다. 현재로 말하면 리비아의 트리폴리를 말합니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는 다른 나라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나와 전혀 다른 이방인들과 함께 하는 교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평안 했습니다.
3).“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라고 말합니다. 분봉왕은 지역을 다스리는 왕을 말합니다. 『헤롯』의 젖동생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헤롯』과 함께 자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마나엔』은 『헤롯』의 왕족이었습니다. 왕족과 평민이 모였는데도 평안 했습니다.
4).사울이 함께 했습니다. 『사울』은 『바울』을 말합니다. 『사울』은 아주 엘리트입니다. 로마 시민권자입니다. 가장 좋은 학교 출신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하버드 대학을 나온 사람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렇게 흑인과 백인이 함께하는 교회입니다.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교회입니다.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함께 하는 교회입니다. 잘난 사람과 어려운 사람들이 함께 하는 교회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여러 계층이 함께 하는 교회입니다. 정말 천국과 같은 교회입니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이런 일이 가능했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품어주는 교회이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인간적이며 세상적인 것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하나로 모여진 교회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교회를 보면서 안디옥 교회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교회는 누구나 품어주는 교회입니다. 누구나 사랑해주는 교회입니다. 세상의 것을 교회 와서 내놓지 않는 성도들입니다. 오직 우리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만 말하는 교회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 끼리끼리만 모이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교회 좋은 교회라고 자랑하는 교회입니다. 부족한 목사를 자랑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너무나 좋은 분이라고 자랑하는 교회입니다.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려고 애쓰고 힘쓰는 분들이 우리교회 성도님들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오직 주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도들을 품어주는 교회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너무나 좋은 교회입니다.
▶지난번 TV에서 보았습니다. 카메룬의 크리비 해변에서 신기한 나무가 있습니다. 큰 나무에 수많은 가지가 늘어져 있습니다. 그 끝에 새집이 200개 정도 매달려 있습니다. 한 집에 3~5마리 새들이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왜 새집을 나무 끝에 짓느냐 하면 ‘뱀이나 짐승들이 새끼나 알을 해하지 못하도록 짓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설명을 들으면서 ‘바로 저 모습이 우리교회 모습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을 품는 곳이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힘든 사람도 품어주는 피난처 교회가 되여야 합니다. 수고하고 지친 사람도 품어주는 안식처가 되어야 합니다. 피부 색깔이 다른 사람도 품어야 합니다.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도 품을 수 있는 따뜻한 예수님의 마음이 우굴 거리는 우리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 어느 사람도 함께 하는 큰 나무가 바로 우리교회입니다.
가만히 보면 당시 문화와 사회통념 상 이 다섯 사람은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차이와 문화와 민족적 편견을 극복하고 하나가 되었다. 인종도, 학벌도, 출신과 집안배경도, 신분도 따지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하나가 되었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남녀노소뿐만 아니라 많이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가난 한 자, 부자, 권세자 힘없는 자, 건강한 자, 병든 자, 장애우, 비 장애우 등등.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그 모든 것을 뛰어 넘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다. 교회에서는 어떠한 차별이 있어서도 안 된다. 더 귀하고 덜 귀한 사람이 없다.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사람도 없다.
교회의 하나 됨에 대해서 엡4:4~6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우리는 한 성령을 믿는다. 한분 주님을 믿는다. 하나의 믿음을 갖고 있다.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가 주 안에서 하나다. 한 몸이다. 한 형제자매다.
▶어느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 날 마지막 순서로 이어달리기 경주가 있었다고 합니다. 1등으로 달리던 어린이가 결승선에 거의 다 와서 넘어졌다고 합니다. 2등으로 달리던 어린이가 1등을 할 수 있었지만 달리기를 멈추고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주었다고 합니다. 둘은 손을 잡고 함께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고 합니다. 두 어린이의 아름다운 행동에 전교생이 박수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날 청군과 백군 모두 승리했다고 합니다.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은 남이 잘되는 걸 기뻐하는 사람, 남이 성공하도록 돕는 사람이라 합니다. 사람들은 승자와 패자로 나누지만 성경은 함께 승자가 되고 함께 사는 상생의 원리를 제시합니다. 우리가 잘 되는 걸 진심으로 기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연합하면 모두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나 사이에 큰 간격이 있었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담이 허물어지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 엡2:14절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뿐만 아니라 주 안에 있는 우리,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자로 믿는 한 믿음을 가진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하나다. 한 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언제나 한 마음 한 뜻으로 힘을 합하여 복음으로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살리는 성도, 우리교회가 되기를 축원한다. 그래서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리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복을 풍성하게 누리기를 축원한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든든하게 서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사역에 귀하게 쓰임 받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한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한 기독교 대학이 캘리포니아 산 속에서 수양회를 개최했습니다. 참석한 사람들 중에는 히틀러 당시 독일 공군에 복무했던 조종사, 일본을 위해 싸웠던 조종사, 그리고 독일 폭격에 참여했던 미합중국 공군 소속의 전직 조종사가 있었습니다. 세 명의 조종사들은 구원을 받은 적이 없었고, 서로 만나 본 일도 없었습니다. 수양회 마지막 시간에 모든 사람들이 캠프파이어 주위에 모였습니다. 사회자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라고 권유하며, 주님을 위해 생명을 번제물로 기꺼이 드리겠다는 표시로 막대기를 집어 불 속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독일 조종사가 제일 먼저 던졌고, 그 뒤를 이어 일본 조종사와 미국 조종사가 따라 던졌습니다. 눈물이 눈에 가득 고인 채 이전의 적들은 서로 팔로 감싸 안고 다른 성도들과 목소리를 함께 하여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이라는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그들은 성도로서 누리는 사랑의 교제를 체험하며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1063-주님 다시오실때까지 -한덩어리되는 교회가 됩시다
▶2.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였다.
안디옥 교회는 교회의 목적이 분명했다. 2절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여기서의 섬김은 예배를 의미한다. 그들은 예배를 위해 금식까지 하였다. 모일 때 마다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렸다. 예배에 최선을 다하고, 예배에 집중하고, 예배에 최고의 가치를 둔 교회였다. 그곳에 하나님께서 임재 하셔서 그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의 예배를 받으셨다. 그렇게 그들의 예배는 살아있었다. 그들의 예배는 기쁨과 감사와 감동과 감격이 있었다. 그들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진정한 예배였다. 그런 예배 자들에게 하나님의 치유의 은혜가 임하고, 영혼이 소생하고, 변화되고, 성장하고, 평강과 기쁨이 크게 임한다. 그러니 여러 가지 도전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교회가 부흥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안디옥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교회가 이와 같은 교회가 되기를 축원한다.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 찬양이 살아있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가 있는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실행되는 교회, 날마다 힘차게 복음 전하는 교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나타나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축원한다.
▶여러분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마다 복음에 목숨을 걸고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게 됩니다.예배가 죽을 때 믿음이 죽습니다. 예배가 죽을 때 교회가 죽고 선교도 죽습니다. 예배가 죽으면 교회도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한 예배가 있고,예배에 감격있는 교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예배가 드려지는 교회는 복음에 대한 열망이 살아나고 기도의 불이 타오르고 선교를 위하는 열망이 타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3. 금식하며 기도하는 교회였다.
세 번째 안디옥 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하는 교회였다. 2,3절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기도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요,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에 나를 맞추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에 기적이 일어난다. 안디옥 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 그 음성에 따라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었다. 날마다 기도에 힘써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시기를 축원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가 될 수 있다. 기도할 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다. 기도할 때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교회의 본질을 유지하고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강하고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다. 기도할 때에 여러분 개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여러분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가 무엇인가?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으니 인본주의의 삶을 산다. 기도하지 않으니 내가 원하는 예배, 내가 원하는 봉사, 내가 원하는 내 뜻대로의 삶을 산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기적도 체험하지 못한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변화되지 않는다. 기도는 하되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나 중심의 생각과 신앙생활과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 따라 말하고, 자기 생각에 따라 말하고, 자기 의지와 욕구대로만 행동한다. 그것은 성도의 삶이 아니다. 여러분 모두가 기도의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모습이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음성 앞에 순종하고 결단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란다.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Charles H. Spurgeon) 목사가 사역하던 런던의 교회는 당시 2만명 이상 교인이 모였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으로 불타오르던 교회였습니다. 스펄전 전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는 교회를 사람들이 방문하면 항상 본당이 아닌 아래층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에는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았는데, 그는 성도들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제 목회의 비밀입니다. 그들이 나의 힘이며 우리 교회의 발전소입니다." 스펄전 목사의 탁월한 설교 때문만이 아니라 기도하던 성도들을 통해 교회는 황금기를 누리고 영국을 변혁시키는 변혁의 초점이 된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가 떠난 뒤 교회가 비틀거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몰락 원인 중 가장 큰 문제로 기도 운동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기도가 사라질 때 하나님은 영광을 교회에서 거두십니다. 기도는 교회를 움직이고 발전케 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4.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성령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2,3절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안디옥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다.
▶"주를 섬겨"-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헬라어로 '레이투르'라 하는 이 말은 두 가지로 번역됩니다. '봉사' 곧 섬긴다, 봉사한다고도 번역하고 일반적으로 '예배'라고도 번역합니다. 영어로는 그래서 worship라고 했습니다. service라고도 합니다. 예배한다는 것을 영어로는 그렇게 말합니다. 서비스는 곧 봉사가 아닙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예배입니다. 주를 섬겼다는 것은 주를 예배했다는 말입니다. 주를 예배했다니 무슨 뜻이겠습니까? 우선 소극적으로 생각해보면 주님께 무엇을 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배할 때에 흔히들 무엇인가 많이 구하려 듭니다. 기도도 내 소원이 있어 가지고 무엇인가 받아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간절히 달라는 것이 많아요. 그러나 분명히 아셔야 됩니다.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는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주님께 봉사하는 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그 앞에 경배하는 마음입니다. 경배하는 마음이요, 말씀을 듣는 자세요, 뜻을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것이요, 그리워하는 것이요, 그의 말씀을 마음에 묵상하는 것이요, 명상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것, 주님과의 만남의 관계가 예배입니다. 이것이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섬긴다고 하면 꼭 물질로 섬기는 것으로 알지만 그렇지 않아요. 마음을 온전히 바치는 것입니다. 우러러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뜻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내 모든 것을 다 그에게 보이고 그로부터 음성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이것을 간단하게 말씀합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이 예배 중에 성령이 말씀하셨어요. 섬기되 특별히 금식하여 섬겼다 합니다. 먹는 욕망이라든가 세속적인 욕망을 다 끊어버리고 영적으로 그 심령을 깨끗케 하여 단순한 마음으로 예배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섬겼어요. 모름지기 섬긴다는 말의 뜻을 몇 번이고 다시 음미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예배라는 것은 개인적 명상이 아닙니다. 어느 사람이 골방에 들어가서 들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이 주일날 낮에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 예배 중에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 중에 주님의 지시를 받는 것입니다. 내 소원을 이루고자 간구하는 자세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섬길 때에 성령이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가라사대"--그 다음 말씀을 들어봅시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부르다, 곧 call입니다. 사명이요, 소명입니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전적으로 성령 주도적입니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 내가 필요해서 시키는 것이니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합니
▶감동주시고, 깨닫게 하실 때 그대로 순종하는 그것이 바로 성령의 지배를 받는 성령 충만한 상태다. 안디옥 교회는 그와 같이 성령 충만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지도자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구별해서 안수하여 선교사로 파송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다른 것 생각하지 않고 순종했던 것이다. 여러분이 말씀을 읽고 들을 때, 기도할 때, 찬송할 때 성령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이다. 그때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시기 바란다. 그럴 때 역사가 일어난다. 그런 사람, 그런 교회가 살아있는 성도, 살아있는 교회요, 그런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귀하게 쓰임 받는다. 그런 사람의 마음에, 기도에, 생각에, 인격에, 삶에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우리교회가 38년전 개척하여 주님 안에서 온전히 하나 되어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을 품고, 온전한 예배로 주님을 섬기는 살아있는 교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 늘 기도하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런 교회를 우리 다함께 만들어 가보자. 그래서 성도 개인의 삶의 모든 순간마다, 성도들이 모일 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임하여 기쁨과 감동의 삶이되시기를 축원한다.
▶밴쿠버 기독교 세계관 대학원장 양승훈(楊昇勳) 교수의 '물에 빠져 죽은 오리' 라는 에세이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자동차 서비스 회사에 근무하는 동생이 서울 본사에서 근무하다 일산에 있는 회사 부품 창고로 자리를 옮긴 적이 있었는데 좌천인 셈이라 마음이 울적했답니다. 기분도 달랠 겸 창고 옆에 오리를 키울 수 있는 작은 수영장을 만들었습니다. 큰 물통의 테를 잘라내고 물통을 땅을 묻은 후 물을 부으니 깊이 가 30cm 정도되는 오리 사육장이 만들어졌습니다. 퇴근하기 전 오리를 키우는 양계장에 달려가 청둥오리 한 마리를 사서 물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출근해보니 오리가 물통 속에 죽어있는 것이 아닙니까! 깜짝 놀란 그는 오리를 이리 저리 뒤척여 보았지만 짐승에 물린 흔적이 없었습니다. 수영이 전문인 오리가 물통 턱을 기어올라오지 못하고 물 속에 빠져죽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오리를 판 양계장에 가서 따졌습니다. 자초지종을 듣더니 양계장 주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 오리는 양계장에서 부화하고 키운 오리입니다. 그래서 수영을 할 줄 모릅니다. 게다가 이 오리는 어릴 때부터 물 속에 집어넣지 않았기 때문에 깃털에 기름이 분비되지 않아 물에 뜨지 못합니다." 원래 오리는 날개 밑에 기름 샘이 있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름을 날개와 털에 바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 속에 들어가면 기름이 묻은 털이 물을 흡수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게 물위를 떠다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오리는 편안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자신이 오리인 것을 잊어버리고 수영하는 법을 체득하지 못했습니다. 날개와 털에 기름도 바르지 못하였기에 수영은 커녕 물에도 뜨지 못하는 오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겉모습은 오리임에도 물위에 뜰 수 없는 오리처럼, 겉모습은 교인이지만 실제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는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성경도 많이 알고 있고, 여러 직분도 받았지만,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 역시 화려한 건물과 훌륭한 조명, 음향시설, 주차공간을 자랑하고 있지만 물위에 뜰 수 없는 오리처럼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하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에 손가락질을 당하는 교회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교회가 손가락질을 받는다 해도 바른 교회만 된다면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 만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든든한 교회가 되고,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고, 중단 없이 생명의 복음을 전하여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살리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한다.